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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영국·멕시코·태국·싱가포르, 의료영리화의 어두운 미래 보여줘

[의료민영화 집중조명⑧] 민영화 먼저 한 5개국 사례 보니...‘괴담’ 아니다

미국·영국·멕시코·태국·싱가포르, 의료영리화의 어두운 미래 보여줘

전지혜 기자 jh@vop.co.kr

입력 2014-01-23 16:38:31l수정 2014-01-23 18:42:22
 
“의료 민영화가 되면 병원 진료비가 치솟아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하고 거대 자본이 병원을 장악한다.”

“제왕절개 수술의 경우 한국은 199만 원, 미국은 1996만 원, 맹장수술은 한국은 221만 원, 미국은 1513만 원이다.”

“의료 민영화가 되면 한국도 미국처럼 된다. 다큐멘터리 영화 ‘식코’가 현실이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 12월 13일 ‘보건의료 서비스 투자 활성화 대책’을 발표한 이후 인터넷상에는 이 같은 내용이 급속히 퍼졌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권에 ‘의료민영화’가 올랐고 거센 반대 움직임이 일었다. 정부는 급히 의료민영화 논란을 ‘허구이자 근거 없는 괴담’이라고 치부하면서 의료민영화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기도 했다. 정부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유지하는 등 현행 제도의 틀을 유지하기 때문에 의료민영화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중요한 것은 의료민영화라는 단어가 아니다. 국민들은 ‘의료 민영화’가 추진된 일부 해외 사례를 접하면서 의료비용이 상승해 돈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막대한 치료비 부담에 진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의료민영화를 추진한 외국의 국민들은 과연 ‘안녕’할까? 각국의 의료제도에 대해 살펴본다.

미국, 의료 비용 많이 들지만 극심한 의료 불평등...국민 건강 수준은 세계 30위 정도

세계 각국의 영리병원은 해외환자유치형, 고급의료충족형, 자본조달·기능특화형, 산업연계형 등 크게 4가지로 분류된다. 세계 각국은 대부분 영리병원을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전체 병원 중 영리병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미국 18%, 프랑스 20%, 싱가포르 20% 등 대부분 20% 미만이다.

유럽 국가들은 ‘의료는 공공재’라는 철학이 확고하다. 민간 영리병원은 일부 특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뿐 실제로는 비영리공공병원이 의료의 중심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와는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시장중심보건의료체계’의 원조로 알려진 미국은 의료 사유화가 극단적으로 진행돼 대표적인 의료민영화 실패국으로 꼽히고 있다. 

미국에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없다. 미국의 의료보장제도는 크게 세 가지의 공공부문과 두 가지의 민간부문 등 5가지 제도의 혼합형태로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보훈 대상자에 대한 공적 의료보장 프로그램인 ‘보훈병원서비스’와 공공의료보험으로 65세 이상의 노인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어(medicare)’,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한 ‘메디케이드(medicaid)’가 있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인구는 민간의료보험에 의한 보장과 자선을 통한 의료 보장을 받을 수 있다.

세 가지 공공부문의 재원을 모두 합치면 2005년 기준으로 전체 의료비의 45.4%에 이른다.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한 기업에 대한 세금 공제액이 2004년 기준으로 1886억 달러(약 188조 원)에 이르고 정부가 공무원들의 의료보장을 위해 민간 의료보험을 구매하는 데 들이는 비용은 2005년 기준 1,202억 달러에 이른다. 이들 비용을 모두 합치면 공공과 민간 부문에서 공적 재원으로 지출되는 의료 비용만 2005년 기준으로 GDP의 9.7%에 이르는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지난해 6월 발표한 ‘OECD 헬스 데이터 2012’를 보면 미국의 의료비는 GDP(국내총생산)의 17.6%를 기록했다. OECD 평균인 9.5%와 비교하면 훨씬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은 세금을 통한 공적 부담을 매우 많이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지출이 매우 크다. 미국에서 의료보험이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된 보장을 못 받는 사람들의 수는 1978년 이후 매년 늘어나고 있으며, 의료보험이 없는 미국인의 수는 1972년 2,100만 명에서 2006년 4,700만 명이 됐다. 보험에 들었어도 병원비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국민이 1800만 명이며 병원비 때문에 파산하는 사람은 연간 20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에서 가계 파산의 가장 큰 원인은 병원비로 의료비 파산자의 대부분은 의료보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적으로 의료 비용은 많이 들지만 극심한 의료 불평등을 겪고 있으며, 국민들의 건강 수준은 세계 30위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의료민영화

의료민영화 집중조명(자료사진,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뉴시스

 


미국 의료보험제도, 산업자본 지지에 기반

현재 미국의 의료보험제도는 산업자본의 지지에 기반을 두고 있다. 민간 의료보험 가입을 지원하는 대기업의 경우 대게 고용주가 특정 민간 의료보험회사와 단체 가입을 체결하고 보험료의 100%를 지불한다. 기업 입장에서 보험료를 100% 부담하는 것이 손해인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체 가입이라 민간 의료보험회사와 협상의 여지도 커서 보험 혜택 수준도 상당히 높은 편이다. 

노동자 개인 측면에서 보면 소위 무상 의료라고 부를만하다. 하지만 사실상 의료보험이 고용과 직접 연계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대기업 노동자들에 대한 효과적인 통제 수단’이라는 비판이 따르고 있다. 미국의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으면 임금만 잃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줄 의료보험도 잃게 된다. 

실업 상태에서 의료보험을 유지하려면 개별적으로 민간 의료보험 상품을 사야 하는데 개인 가입의 경우 단체 가입보다 훨씬 불리한 조건인데다 보험료가 비싸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급등하는 의료보험료 때문에 대기업들이 의료보험에 대한 지원을 축소하고 있다. 

영국, 무상의료서비스 많은 부분 민간 부문으로 넘어가...‘공적 자금 투자보다 돈 더 많이 들어’

1948년 국가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NHS)를 도입한 영국에서는 통상 6개월 이상 거주하는 사람(resident)이면 의료상의 이유로 따로 돈을 지출할 일이 거의 없다. 몇 가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 NHS의 의료기관이 제공하는 모든 의료서비스는 완전 무상으로 제공되기 때문이다. 

NHS 조직은 보건부를 정점으로 보건의료서비스를 총괄하는 10개의 전략건강기구(Strategic Health Authority, SHA)가 있으며 그 아래 전반적인 주민의 보건과 의료서비스를 담당하는 330여 개의 기초 건강보호 트러스트(Primary Care Trust, PCT)가 있다. 2002년 4월부터 설치된 트러스트는 전략건강기구의 직속산하기관으로 NHS 예산의 80%를 집행하는 NHS 중심 기관이다. 

영국은 NHS 도입 이후 30년간 극심한 재원부족과 빈번한 행정 개편을 겪었다. NHS 소속 병원 중 상당수는 문을 닫았으며 인력부족은 일상화되었고 병원 치료에는 긴 대기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국가보건서비스가 자리를 잡으면서 의료 서비스의 지역적 불균형이 개선되고 모든 시민에게 동등한 의료 이용이 보장됐다. 영국보다 보건 의료비를 두 배 이상 지출하는 미국은 물론 다른 선진국에 비해서도 국민 건강 수준이 좋은 편이다. 

하지만 1980년 대처 정부가 의료 보장 범위를 줄이고 지역 간 형평성을 무너뜨리면서 NHS의 많은 부분을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 결과 NHS는 점차 민간 부문이 점령하게 됐고 NHS 소속의 병원 운영을 민간이 넘겨받기 시작했다.

초기에 민간 자본이 NHS에 투입된 것은 주로 병원 주차장이나 쓰레기 소각장을 세우는데 활용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1995년 관련 규정이 완화되면서 NHS 산하 트러스트는 민간 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치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병원 시설 건립과 서비스 제공 영역까지 전 부문으로 확대되어 있다.

민자 유치 사업의 절차는 이렇다. 우선 민간 자본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병원 시설에 자본을 투자하고 건물과 장비를 구비하거나 관리를 맡는다. NHS 산하 트러스트는 20~60년에 걸쳐 그 시설과 장비를 임대하고 운영하면서 지역 주민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민간 자본은 임대 기간 병원 건립 비용의 일정 비율(11~19%)을 국가보건서비스 산하 병원 트러스트에 임대료 명목으로 청구함으로써 투자 재원을 회수한다.

이에 따라 영국 내부에서는 ‘과거에 직접 공적 자금을 투자했던 것보다 민자 유치 사업이 돈이 더 많이 들어간다’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민간 시설 임대료의 기준이 되는 자산 가치 평가에 거품이 많기 때문이다. 재무부의 공식 대출이자가 3.5%인 것과 비교할 때 건립 비용의 11~19%를 임대료로 받는 것은 지나친 폭리라는 것이다. 영국 하원의 ‘공공재정위원회’는 노퍽 앤 노리치 병원을 건설한 민간 계약자가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회수해 간다는 사실을 지적한 바 있다. 

멕시코, 의료민영화 정책 추진되면서 민간 의료보험이 공적 의료보험 붕괴시켜...

멕시코는 1994년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 체결 후 의료민영화 정책이 추진되어 민간 의료보험이 공적 의료보험을 붕괴시키는 현상이 벌어졌다. 주요 대도시의 경우 의료서비스의 질이 보장돼 있지만 지방이나 원주민 공동체의 의료 환경은 열악한 상황이다.

멕시코의 의료 시스템은 IMSS, ISSTE와 같은 사회보장 보험 제도와 노동사회보장부(SSA) 직영의 공적 구제제도, 중상류층이 가입해 있는 민간 보험 등 3개로 차등화돼 있다. IMSS에는 모든 노동자가 가입되어 있으며, ISSTE에는 모든 공무원이 가입되어 있다. 공적 구제제도를 통해 실직자와 자영업자 등 비보험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1차 진료만 제공하고 있다. 전체 인구의 4%인 중상류층은 민간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2010년 발간한 ‘중남미 의료 시스템 개혁 연구’ 보고서를 보면, 멕시코에서 공적 의료보험 혜택을 받는 인구는 2004년 기준으로 46%에 불과하다. 멕시코 국민 중 52%가 진료 비용이 너무 비싸 진료비를 부담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진료를 포기한다는 연구조사 결과도 있다.

태국·싱가포르, 의료민영화 통해 영리병원 활성화·의료관광 발달시켜

의료민영화를 통해 영리병원이 활성화되고 의료관광을 발달시킨 국가들도 있다. 태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영리병원이 가장 활성화된 나라로 한해 150만 명이 넘는 외국인 환자 유치로 약 2조 원가량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방콕에 있는 범룽랏병원의 경우 매년 45만 명의 외국인이 진료를 받고 있다.

하지만 수도 방콕과 유명 관광지에 위치한 영리병원은 높은 임금으로 우수 의료진을 유인하지만 낙후된 나머지 지역에는 의사 부족 현상도 심각하다. 범룽랏병원의 경우 의사가 무려 1200여 명에 이르고 이 중 미국 의사자격증을 가진 의사도 220여 명이다. 그러나 2006년 기준 태국 전문의 1명당 환자 수는 방콕이 886명인 반면 동북부는 5738명, 북부는 3351명, 남부는 3789명으로 집계됐다.

태국 병원 노조는 한국의 보건 의료 산업 노조에 ‘돈 많은 외국인 환자들에게 의료 시설과 자원이 집중되면서 내국인 환자들의 의료 서비스 이용 기회가 줄어들고 그 질도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는 내용의 자료를 보낸바 있다. 공공병원의 우수한 인력들이 영리 병원으로 유출되면서 의료 인력의 지역 간 불평등이 심화되고 사회 계층 간 의료 서비스 이용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영리병원이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동안 현지인들의 사회적 비용은 늘어났다. 저소득층은 민간보험에 가입해 영리병원을 이용할 경제력이 없으므로 정부가 지정한 국공립병원에서 국민보장제도의 적용을 받을 수밖에 없다. 태국의 공적 의료보장제도는 세 가지로 구분된다. 국민 대다수가 가입한 무상의료제도인 ‘국민건강의료제도’와 공무원·국영기업 노동자와 가족에게 혜택을 주고 있는 ‘공무원의료보장제도’, 민간기업 노동자가 대상인 ‘사회보장제도’ 등이다. 

한국도 태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의료관광 활성화?...“여건이 달라”

싱가포르도 의료민영화를 통해 영리병원이 활성화된 국가로 꼽힌다. 싱가포르는 전체 의료기관의 절반 이상이 영리병원이며 이곳을 찾는 해외 환자는 전체 진료 건수의 30% 이상에 해당한다. 

싱가포르의 의료보장제도는 영국의 국가건강서비스(NHS)와 같은 유럽의 사회연대 개념이 아닌 개인 책임의 원칙에 바탕을 두고 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내에서도 선천성 질환이나 말기환자 케어와 같은 분야에서는 정부의 보조를 더 늘려나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싱가포르의 경우 1980년대 초 보건의료개혁을 통해 모든 공공병원을 공사화하면서 영리병원을 전면허용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14개의 공공병원과 15개의 민간영리병원이 서비스경쟁을 벌이고 있다. 영리병원의 경우 주로 내국인 고소득층이 찾고, 진료환자의 30%는 외국인이다. 

그러나 태국과 싱가포르 등은 우리나라와 여건이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태국은 2011년 기준 민간병원이 213개, 공공병원 871개를 갖고 있어 공공 의료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관광자원이 매우 풍부한 국가이기도 하고 인건비도 저렴해 가격 경쟁력도 있다. 

싱가포르도 1차 의료는 민간이 80%, 2, 3차 의료의 경우 공공 병상 수가 전체 병상의 70~80%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사회보험은 보장성이 낮아 공공병원이든 영리병원이든 애초에 큰 의미가 없고, 소규모 도시국가여서 이중 의료체계가 가능하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공공 의료 기관 수는 5.9%, 공공 병상 수는 10.4%로 공공 의료가 매우 취약하다. OECD가 2008~2009년을 기준으로 조사해 공개한 ‘각국 보건 통계’를 분석한 결과 공공병원 병상수 비중은 평균 75.1%인 것으로 나타났다. 2011년 기준으로 한국은 10.4%로 파악돼 OECD 평균의 7분의 1에 그쳤다. 

한국과 1인당 GDP 수준이 비슷한 체코의 공공병상 비중은 91%, 스페인은 74%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국가 중에서도 멕시코의 공공병상 비중은 65%였다. 미국의 공공병상 비중도 2010년 기준 25.8%로 한국보다 많다. 

한국이 태국이나 싱가포르처럼 의료관광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기에는 몇가지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 태국처럼 인건비가 저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국이나 독일처럼 충분한 최고 수준의 의료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 이 때문에 국내에 생길 영리 병원은 외국환자보다는 내국인 환자들을 유인하는 데 혈안이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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