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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음모’ 사건 변호인 “이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인터뷰]‘내란음모’ 사건 변호인 “이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변호인단 단장 김칠준 변호사 “역사가 30여년 전으로 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면 ‘무죄’ 선고돼야”

최명규 기자 acrow@vop.co.kr
입력 2014-02-13 17:56:12l수정 2014-02-13 21:03:43

 

 

남은 재판 과정을 설명하는 김칠준 변호사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다산 사무실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조작 사건 변호인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가 이번 이석기 의원 판결과 관련해 인터뷰를 갖고 있다.ⓒ윤재현 인턴기자

 

“이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특정 정치적 지향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성취해낸 인권과 민주주의가 국정원의 음모에 의해 폐허가 되는데 이것을 막을 것이냐, 못 막을 것이냐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 단장 김칠준 변호사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이후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 국가정보원에 의해 ‘내란음모’ 혐의를 받아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 진보당 인사 7명이 구속 기소된 이 사건에 대한 재판이 오는 17일 1심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

지난해 10월 재판이 시작된 이래 4차례의 공판준비기일, 45차례의 공판기일을 합쳐 300시간이 넘는 시간에 걸쳐 재판이 진행됐고, 검찰과 변호인단은 치열한 법정 공방을 펼쳤다. 90명이 넘는 증인이 법정에 나와 증언했고, 문제의 5·12 이석기 의원의 강연 녹음파일도 재생됐다. 핵심 증인인 국가정보원 프락치 A씨에 대한 증인 신문도 이뤄졌다.

‘내란음모’ 사건은 재판을 거치면서 한 편의 ‘희대의 소극(笑劇)’으로 변모했다. 검찰은 ‘녹취록’ 이상의 증거를 내놓지 못했고, 그마저도 수백 곳이 수정되면서 ‘누더기’로 변했다. ‘추정’이 주요 근거였던 A씨의 오락가락하는 진술은 이른바 ‘RO(Revolution Organization:혁명 조직)’가 국정원과 A씨의 ‘창작물’임을 반증했다. 국정원이 벌인 황당한 수사 에피소드는 이 거대한 ‘희극’의 소품에 불과했다.

이 소용돌이의 한가운데에는 이석기 의원 등 피고인뿐만 아니라 ‘변호인’도 있었다. 첨예한 법정 공방의 한 축에 섰던 변호인단의 단장,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를 12일 <민중의소리>가 만났다.

“사건의 정치적 무게, 사회적 압박 극심…그래도 판사가 유죄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결심 공판 이후에도 이 사건을 계속 되새김하고 있다. 과연 판사가 최악의 경우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를 한번 되짚어 보곤 한다. 아무리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내란선동과 내란음모는 유죄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 발 여론몰이로 시작된 이 사건의 정치적 무게, 사회적 압박들이 극심하고, 그로 인해 실제로 판사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그래도 역시 상식적으로나 법리상으로나 유죄 판결을 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할 텐데,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게 제 기본적인 생각이다.”

서울 서초동 법무법인 다산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김 변호사는 1심 선고를 앞둔 심경을 담담하게 밝혔다. 그는 “검찰의 논리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해야 한다. 또 이 지하혁명조직이 구체적으로 5월 10일, 12일을 위해 사전 준비를 해야 하고, 그날이 혁명의 결정적 시기라고 판단했어야 한다. 5월 12일에도 폭동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수히 많은 의혹이나 연기피우기식 문제제기는 있지만, 뭐 하나 명확하게 입증된 바도 없는데 어떻게 ‘내란음모’가 되겠느냐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엄청난 여론에, 사회적 공안몰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겠지만, 그래도 법원이 바로 선다면,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면 결코 내란음모에 대해 유죄 판결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처음 이 사건을 접했을 당시에 대해 웃으면서 “이석기 의원은 제가 잘 모르는 분이기도 하지만, 또 사고 쳤나 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사고를 치냐, 이런 갑갑함과 안타까움도 있었다”고 솔직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국정원의 여론몰이와 정치적 노림수가 분명한 사건”이라며 변론을 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사건 직후 시작된 ‘여론재판’ 분위기에 개인적인 부담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사건을 들여다 본 뒤 “전형적인 실체 없는 ‘RO’에 대한 공안몰이라고 생각했다”며 “이 사건의 핵심 증거는 A의 진술 이외에는 별다른 게 없다 판단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 변호사는 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A씨의 2010년 국정원 진술조서가 2013년 진술조서와 핵심 부분에서 차이점이 있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이 사건이 ‘A와 국정원의 합작품’이고, A씨는 ‘제보자’가 아닌 ‘국정원 수사 업무를 위탁받은 보조자’라는 점을 알 수 있었고 더욱 자신감이 생기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참고로 2010년 A의 초기 진술조서에는 조직명이 ‘RO’가 아닌 ‘내일회’로 적시돼 있고, 총책도 이석기 의원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지목돼 있다. ‘제보’ 동기도 천안함 사건이 아닌 북한의 ‘3대 세습’이라고 A씨는 진술하고 있다. 이처럼 진술이 변한 것은 A와 국정원의 짜맞추기를 반증하는 부분이라는 것이 김 변호사의 주장이다.

“세상은 이 사건을 ‘국정원 발 먹튀 사건’으로 기억할 것”
 
이석기 의원 결심 공판 참석하는 변호인단

이석기 의원의 변호를 맡은 김칠준-하주희 변호사가 3일 오전 경기도 수원 영통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이석기 의원 등의 결심 공판장으로 향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김 변호사는 재판의 전 과정을 돌아보면서 8가지 주요 변곡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A와 파트너인 국정원 문모 수사관에 대한 증인 신문 △디지털 증거 등 증거수집 절차와 증거능력 공방 △각계 전문가 증인들의 증언 △5·12 모임의 성격에 대한 공방 △국정원이 주장했던 황당한 ‘에피소드’ 공방 △‘녹취록’을 둘러싼 ‘각주 전투’ △피고인 신문 △최후 변론이 그것이다.

김 변호사는 특히 ‘에피소드 전투’와 관련해 클라이막스로 국정원이 '설악산 등반'을 '이석기 의원 보위를 위한 혹한기 산악훈련'이라고 주장한 에피소드를 지목했다. 이석기 의원이 과거 대표로 있던 CNC(CN커뮤니케이션즈) 소속 직원들을 비롯한 20여명은 입산통제기간이었던 지난해 4월 설악산을 등반했다. 재판에 검찰 측 증인으로 출석한 설악산 관리공단 직원들은 이들의 해당 등산 코스가 산불예방을 위한 입산통제기간이 아니라면 '통상적인 등산 경로'라는 점, 그리고 적발 당시 해당 일행들이 일반 등산객과 큰 차이가 없었다는 점 등을 진술하며 국정원 측 주장의 허구성을 드러냈다.

이밖에도 김 변호사는 이상호 피고인이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한국전력’을 검색한 것을 두고 국정원이 ‘주식동향’ 이외에 다른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점을 확인하지도 않은 채 ‘국가기간시설에 대한 정보수집’이라고 주장한 일화, 국정원이 백화점에 간 한동근 피고인의 통화내역을 가지고 근처에 있던 한국정보화진흥원에 대한 정보수집으로 규정한 일 등을 거론했다.

김 변호사는 “국정원이 피고인들이 엄청난 내란음모를 위해 준비하거나 정보를 수집했다는 각각의 에피소드에 대해 그 허구성을 충분히 밝혀냈다”며 “에피소드 전투들 덕분에 재판 분위기도 엄중하고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재판에서) 8개의 전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현장에 방청했던 기자, 또는 언론을 통해서 그런 흐름들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그래도 검찰에서 혹시 비장한 무언가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긴장했던 것들이 별 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 선고가 끝나고 나면 세상은 이 사건을 ‘국정원 발 먹튀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가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면 당연히 무죄 선고돼야”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인 만큼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도 상당하다. 김 변호사는 이에 대해 “한국사회에서 ‘내란음모’라는 죄명 자체가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며 “문제는 이것이 역사 속에 사장된 옛일이라 생각했는데,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이 명백히 드러났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드시 무죄를 선고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며 “역사가 3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면 이 사건은 당연히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하지만 유죄 선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 김 변호사는 “만약에 유죄 판결이 나면 싸움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라며 “아직도 ‘겨울공화국’이라는 엄중한 인식을 다시 하면서 옷깃을 가다듬고 다시 싸워야 할 것”이라고 각오를 전했다.

그는 “정말 만에 하나 유죄가 나온다면, 어떠할 것이냐. 천만 다행으로 이 사건의 핵심 판단 대상이 되는 5월 12일 상황이 생생하게 음성파일로 남아 있다”며 “겨울공화국이 해동되고 나면 어차피 재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새로운 광명천지에서 이 녹음파일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재판이 다시 이뤄진다면, 당연히 과거의 내란음모 사건이 그랬듯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결심 공판에서 최후 변론에 앞서 ‘녹음 파일이 있어 천만 다행’이라는 취지로 발언했던 것은 바로 이 의미였다.

더불어 김 변호사는 “이 사건은 많은 질문을 던졌던 사건”이라며 “(5·12 강연) 거기 모였던 사람들의 생각들은 당연히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범주 속에 포함돼 사회적·정치적 논의를 통해 해결돼야 할 얘기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것들을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회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무죄 판결이 난다면, 그러한 점들을 법원이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음은 김칠준 변호사 인터뷰 전문이다.
 
진지한 표정의 김칠준 변호사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다산 사무실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조작 사건 변호인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가 이번 이석기 의원 판결과 관련해 인터뷰를 갖고 있다.ⓒ윤재현 인턴기자



“정치적 무게, 사회적 압박 극심…그래도 판사가 유죄 근거를 제시하기는 어렵다”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이다. 이 사건의 변호인을 맡으셨다. 지난해 10월부터 4차례 공판준비기일, 그리고 11월 12일부터 총 45차례에 걸친 공판이 진행됐다. 이제 선고만을 앞두고 있는데.

 

결심 공판 이후에도 이 사건을 계속 되새김하고 있다. 과연 판사가 최악의 경우 어떤 생각을 할 것인가를 한번 되짚어 보곤 한다. 아무리 최악의 경우를 상정하더라도 내란선동과 내란음모는 유죄로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 발 여론몰이로 시작된 이 사건의 정치적 무게, 사회적 압박들이 극심하고, 그로 인해 실제로 판사가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그래도 역시 상식적으로나 법리상으로나 유죄 판결을 하려면 그 근거를 제시해야 할 텐데, 그러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게 제 기본적인 생각이다.

 

선고 결과를 가름하는 데서 관건은 무엇이라고 보나?

 

결국 (지난해) 5월 12일 강연 내용으로 ‘내란음모를 모의한 자리’, ‘내란을 선동한 자리’라고 규정지어야 한다. 그런데 당시 강연 이후에 분반 토론 이뤄지고 마무리되는 통상적인 강연 형식을 갖추고 있었다. 질문자나 분반토론에서 실제 나왔던 발언들, 법정에 증인들이 나와서 했던 얘기를 다 들어보면, 결국 주제가 전쟁이 발발한다면 그에 따르는 문제들이 엄청나고, 이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거나 또는 두려워하는 것이 분명한 데다 참석한 사람들 사이에 의견도 분분하고, 발언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내란음모 자리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문서나 행동에 의해 뒷받침된 것도 아니고 말뿐인데, 이것을 내란을 위한 음모나 선동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일부 발언을 짜깁기 한다 하더라도 가능하겠느냐는 것이 기본적인 생각이다.

게다가 검찰의 논리구조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라면 반드시 지하혁명조직이 존재해야 한다. 또 이 지하혁명조직이 구체적으로 5월 10일, 12일을 위해 사전 준비를 해야 하고, 그날이 혁명의 결정적 시기라고 판단했어야 한다. 5월 12일에도 폭동에 대한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논의와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뭐 하나 제대로 명확하게 입증된 것이 없다. 무수히 많은 의혹이나 연기 피우기식 문제제기는 있지만, 뭐 하나 명확하게 입증된 바도 없는데 어떻게 내란음모가 되겠느냐 생각한다.

5월 12일 논의만을 가지고는 도저히 내란음모나 내란선동을 규율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그렇기 때문에 검찰도 ‘RO’와 ‘RO’의 활동과 준비에 대해서 그렇게 많이 집착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변론 과정에서도 ‘RO’가 과연 지하혁명조직으로 실재하는 조직인지 많은 시간 할애해서 변론했다.

 

핵심증인 A의 진술 등에서도 ‘추정’이 근거로 제시되는 등 ‘RO’가 ‘상상 속의 조직’이라는 점은 반증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RO’ 자체가 기본적으로 국정원과 A의 ‘작출’(만들어낸 것)이다. 명칭, 강령, 5대 의무, 가입 절차, 이런 것들에 대한 상을 먼저 그려놓고 그것에 짜맞추기 식으로 A가 진술한 것이다. 간간이 몇 가지 단초에 따른, 수첩에 R.O라고 기재돼 있다든가, O라는 단어가 나온다든가, 이것을 가지고 지하혁명조직 있었다고 하는데 그거야말로 논리의 비약이고, 추측이다.

국정원이 (홍순석, 한동근, A의) 3인 모임이 ‘RO’의 세포모임이었다고 주장하는 것도 사실은 그냥 과거 학생운동을 경험했던, 그리고 지금 여러 활동하는 동문들 사이 모임이지, 그것이 ‘RO’의 세포모임이라거나 ‘RO’에 그러한 유사한 세포모임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든가, 그것의 총집합체가 ‘RO’라는 것은 국정원의 설정일 뿐이고, 무엇 하나 입증된 것 없다.

5·12 사전 준비라고 나열됐던 것이 예를 들면, 이상호 피고인이 인터넷으로 ‘한전’을 검색해 접속해서 봤다는 것이다. 재판 과정에서 스마트폰으로 들어가면 초기 화면에 주식동향이 나오고, 그 다음 화면으로 넘어갔다는 증거가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 드러났다. 한동근 피고인이 백화점 간 것을 가지고 마치 주요시설에 대해 탐문한 것처럼 주장했는데, 이는 온갖 공안적 상상력을 동원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실천적인 준비행위를 한 적이 없었다.

 

5월 10일 곤지암 청소년수련원 모임에는 아이들 울음 소리도 들린다.

 

적어도 5월 10은 내란을 음모하는 모임이 아니었다는 것은 검찰도 스스로 인정을 할 정도로, 아무도 준비하지 않고 아이들도 같이 오고 한 모임이었다. 이석기 의원이 정세의 엄중함을 가지고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고, 강연을 소집했던 경기도당에서도 머쓱했을 것이다. 강연을 듣는 사람들이 정세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한 미안함도 경기도당 사람들에게 있었을 텐데, 그러고 나서 5월 12일 마리스타 모임이 이뤄진 것이었다.

5월 10일은 내란을 음모하는 자리 아니었고 5월 12일은 내란을 음모하는 자리였다면, 그 이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검찰이 입증해야 한다. 아무것도 입증된 것이 없다. 단지, 정세의 심각성을 좀 더 느꼈고 이것이 반영됐다 정도. 그것이 어떻게 내란음모인가. 실제 대화 내용도 그러한 것들이다.

검찰에서 얘기하는 일부의 대화, 이건 그야말로 전쟁이란 말이 갖고 있는 일반적 의미 때문에, 전쟁이란 단어가 나오기 때문에, 이석기 의원의 물질·기술적 준비라는 말도 전쟁이 발발했을 때까지도 연상하는 일부 발언이 있었던 것 맞지만, 그것도 일부 사람들이 있었고, 내용도 스스로 ‘뜬구름 잡는다’, ‘너무 추상적이다’ 얘기를 할 정도였다. 그런 발언이 적절했느냐, 부적절했느냐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폭동이니 모의니, 이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아무리 뒤집어 보고, 양보해 봐도 얻을 수 있는 결론이다.

그래서 법원이 정말로 이런 엄청난 여론에, 사회적 공안몰이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겠지만, 그래도 법원이 바로 선다면, 법원이 인권과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한다면 결코 내란음모에 대해서 유죄 판결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제가 재판 마치고 나서도 갖고 있는 소감이다.



“변론을 하기로 마음먹고 사건을 들여다보니,
전형적인 실체 없는 ‘RO’에 대한 공안몰이구나 생각 들었다”

 
내란음모 조작 사건 변호인단 단장 김칠준 변호사

1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법무법인 다산 사무실에서 이석기 의원 내란음모 조작 사건 변호인단 단장을 맡고 있는 김칠준 변호사가 이번 이석기 의원 판결과 관련해 인터뷰를 갖고 있다.ⓒ윤재현 인턴기자

 

지난해 8월 28일 국정원이 이석기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실 등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에 들어갔고, 혐의가 ‘내란음모’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하기도 했고, 사회적 충격파가 엄청났다. 이 사건을 처음 접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언론 통해 이 사건 접했을 때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석기 의원은 제가 잘 모르는 분이기도 하지만, 또 사고 쳤나 보다, 이 중요한 시기에 왜 사고를 치냐, 이런 갑갑함과 안타까움도 있었다. (웃음)

그러나 사고를 쳤든 안 쳤든 국정원의 여론몰이와 정치적 노림수가 분명한 사건이라는 것은 충분히 나타났고, 그 정도가 너무 지나쳤다고 생각을 한다. 수원지역에서 활동했던 이상호씨 등 여러 활동가가 구속되는 것을 보면서, 당연히 변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변론을 하기로 마음먹고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고 내용을 보니, 이건 전형적인 실체 없는 ‘RO’에 대한 공안몰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하혁명조직으로서 ‘RO’는 없겠지만, 관련자들이 일정한 정치적 입장과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따라서 그 과정에서 국정원과 검찰이 어떤 꼬투리를 잡고, 어떤 약점을 쥐고 이 사건을 만들었는지 궁금했다.

결국 적어도 기소 단계에서 이 사건 핵심 증거는 A의 진술 이외에는 별다른 게 없다 판단했다. 이후에 A의 2010년도 진술조서가 드러나고 A와 국정원 수사관의 법정 증언을 통해 그들의 조사과정이 낱낱이 드러나면서, 이것은 A와 국정원의 합작품이고 A는 제보자가 아니라 국정원 수사 업무를 위탁받은 보조자로서 이런 진술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었다. 2013년도 진술이 어떤 의도 하에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가 2010년도 진술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나면서 한편 더 자신감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됐다.

또 한편으로는 각종 압수수색을 통해 이적표현물이라고 하는 북한 원전, 영화, 각종 문건, 그 다음에 자필 메모, 이런 것들이 압수가 된 것을 나중에 보고는 조금 마음이 편안하진 않았다. 다만, 증거재판주의의 엄격한 증거조사 방식에 의하면 이것들은 전문증거(傳聞證據:타인의 증언이나 진술서를 통해 간접적으로 법원에 보고하는 증거)이기 때문에 적어도 내란음모 증거로써 사용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설사 증거가 된다 하더라도, 국정원이 일부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있을 수 있겠지만 ‘RO’의 존재와 활동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가 아니라는 점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부분도 특별히 더 문제가 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검찰은 여전히 증거능력 유무와 상관없이 그 안의 일부 내용을 짜깁기 하거나 확대, 왜곡 해석해 마치 지하혁명조직 ‘RO’가 존재하고 활동하는 구체적 증거가 있는 양 언론플레이를 하고 법정에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진보당에 비판적이지 않으면 곧장 매도당하는 분위기에 개인적 부담도”
“그러나 이것은 국정원의 음모에 의해 폐허가 되는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

 

이 사건이 처음 났을 때 온 언론이 ‘내란음모’, ‘이석기’로 도배가 됐다. 하루 만에 “언론에선 재판 끝”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국정원 발 ‘따옴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고, 특히 <한국일보>가 공개한 녹취록 발췌본은 여론재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상당히 불리한 지형에서 재판에 들어갔는데.

 

처음 이 사건을 맡기로 했을 때는 답답했다. 진보든 보수든, 진보당에 비판적이지 않으면 곧장 사회적으로 매도당하는 분위기였다. 그에 따른 개인적 부담도 물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아니지 않느냐, 이 물꼬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저밖에 없지 않느냐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사건을 맡자마자 바로 서울 사무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했다.

이것은 인권과 민주주의의 문제다. 특정 정치적 지향에 대한 지지 여부를 떠나서 우리 사회가 성취해낸 인권과 민주주의가 국정원의 음모에 의해 폐허가 되는데 이것을 막을 것이냐, 못 막을 것이냐 문제라고 생각을 했다. 주변의 인권단체들에게도 당사자들을 개인적으로 지지하느냐, 또는 호불호 여하에 상관없이 이 문제를 인권 시각으로 봐야 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국정원의 수사에 대해서 규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권이 아니라고 호소했다. 인권 활동가들이 언제 모두가 다 환호하는 속에서 활동했나. 몰매 맞을 각오를 하고 인권의 이름으로 사회적으로 항의하고 문제제기 하는 것이 바로 인권의 운명 아니냐고 생각을 했다. 인권 진영에서도 그러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그래서 인권단체 쪽에서 먼저 이 문제를 인권의 시각에서 보고 대응하는 것이 시작됐고, 이후 사회적인 여론들도 조금씩 선회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한다.



재판은 한 편의 ‘희극’으로…“8가지 변곡점이 있었다”
 

재판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그 내용이 언론들에 의해 알려지면서 이 사건은 한 편의 ‘희극’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재판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주요 변곡점으로 짚을 수 있겠나?

 

재판에서 여덟 가지 주요 변곡점들이 있었다고 본다. 첫 번째는 제보자 A, 그리고 파트너였던 국정원 문○○ 수사관에 대한 증인 신문이었다. 그 과정과 함께 이후에 2010년도 진술조서 드러남으로써, 국정원 수사관과 A가 어떻게 유착이 돼서 어떤 방식으로 수사가 됐고, 어떻게 조서 내용이 작성됐는지 밝혀낼 수 있었다.

두 번째는 각종 증거 수집 절차 관련 적법성 여부였다. 이 사건이 유달리 압수수색도 많았고, 압수수색 된 증거물 중에는 전통적 문건 외에도 전자 문서, 전자 파일과 같은 디지털 증거들이 엄청 많았다. 디지털 증거 수집 절차와 증거능력을 부여하기 위한 조건 관련해서 법원의 부분적 판결은 있지만 아직 입법이나 판례가 풍부하지 않은 상태다. 그러한 디지털 증거에 대한 수집 절차가 적법했는지,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두 번째 큰 전쟁이었다.

그것에 대한 주장과 논쟁은 재판 선고를 통해 나오겠지만, 진행하는 과정에서도 재판부가 나름 최선을 다해서 증거능력 부분에 대해서, 증거 수집 절차에 대해서 심리를 하고 판단을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는 그게 부족하다 생각은 하고 있지만. 디지털 증거들에 대한 포렌식(디지털 포렌식:PC나 노트북, 휴대폰 등 각종 저장매체, 또는 인터넷 상에 남아 있는 디지털 정보를 분석해 범죄 단서를 찾는 수사기법) 절차가 어떠해야 하고, 증거를 제출하기까지 어떤 절차를 갖춰야 하는지 끊임없이 법정에서 논쟁 벌였다. 그 결과 많은 증거가 자체로 채택되지 않았다.

채택됐다 하더라도 판결문에서는 증거배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법원의 멘트가 있었다. 따라서 현재 증거로 채택된 것이라 하더라도 이것이 유죄 근거로 사용될 수 있는지는 판결문에 적시될 것이다.



“검찰 측 전문가 증인들, 민방위 반공교육 수준”
 

세 번째 전투는 전문가 전투라고 본다. 검찰은 북한이 아직도 적화 통일을 꿈꾸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간첩을 파견해 대남혁명을 끊임없이 도모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수많은 관계자들을 증인으로 신문을 신청했다.

반면 저희는 총 5명 전문가 증인이 있었다. 북한과 북미관계, 핵문제, 그 다음에 한국에서 6·25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정치사찰과 예비검속의 실상을 드러내는 문제, 그 다음에 국가보안법 해석 문제에서 이적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등 전문가들의 증언이 이어졌다.

5명 전문가들의 증언은 법정 녹음파일을 인터넷에 공개해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용으로 쓰기에도 부족함 없을 정도로 최고 전문가로서 가장 잘한 증언들이라는 평가다. 누가 봐도 설득력이 있었다. 더구나 변호사의 질문에 대한 답변뿐만 아니라, 재판부의 보충질문에 대한 답변 등 전 과정을 통해, 그 북한의 연방제 통일 방안뿐만 아니라 북한의 대남정책의 실상이 무엇인지, 북미 간 핵 분쟁의 본질이 무엇인지, 2013년도 상반기 전쟁위기 상황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 국민들이 잘 알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했다.

또한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정보기관과 공안기관이 진보적 시민들을 상대로 사찰하고 명단을 작성하고 때론 미행하는 실상을 실제 과거사위원회에서 조사를 담당했던 전문가 증언을 통해 낱낱이 드러냈다. 국가보안법의 이적성이라는 것이 애매하게 북한 구성원을 이롭게 할 목적 아니라, 구체적 내용은 그들이 남한에서 체제전복을 위한 시도에 도움이 된다는 것 정도로 이적 목적이 명확해야 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판결 여하에 상관없이 주옥같은 전문가 진술이다.

그런데 이에 반해서 검찰 측 증인들은 민방위 반공교육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이것이 전문가 증인을 통한 전투였다.

 
설악산 산악훈련 의혹을 보도한 문화일보 11월 11일자 1면 톱기사

이른바 ‘이석기 경호대’의 설악산 특수훈련 의혹을 보도한 문화일보 11월 11일자 지면ⓒ민중의소리



“‘설악산 등반’이 ‘혹한기 군사훈련’? 국정원 주장 ‘에피소드’들 허구성 밝혀내”
 

문제의 5월 12일 서울 합정동 마리스타 교육수사회 모임의 성격을 둘러싼 공방도 치열했다. 또 국정원의 공안적 상상력에 따른 황당한 에피소드들도 많았는데.

 

그것을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전투라고 할 수 있겠다. 네 번째 전투는 바로 ‘5월 12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각 분반 별로 사람들이 참석했던 사람들, 수사기록에 실명이 공개되지 않은 사람도 나와서 하나하나 당시 상황과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했다. 그게 네 번째 전투였다. 검찰은 녹취록 일부 발언 가지고 들이대며 반격해왔지만 적절히 해명하면서 당시 실상을 드러냈다. 네 번째 전투도 무사히 치렀다.

다섯 번째가 국정원이 주장했던 에피소드들, 즉 ‘에피소드 전투’다. 클라이막스는 사실 설악산 등반이었다. 국정원이 ‘혹한기 군사훈련’이라고 주장했던 것 관련해 당시 설악산 장수분소에 있던 두 명의 증인들이 나와서 생생하게 증언했다. 산불예방 때문에 입산금지만 됐을 뿐 보통 등산객들이 다니는 등산 코스였고, 당시 일행들이 통상적인 등산 코스를 오르는 등산객과 다른 부분들은 전혀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을 증언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적발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도 다섯 사람을 적발했는데, 사실은 버스를 타고 단체로 입산했던 사람 중 다섯 사람만 단속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또 엄청 춥다고 혹한기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당시 4월이었다. 검찰이 당시 온도에 관한 기상청 자료를 냈는데, 정작 피고인들이 산에 올랐던 날은 날씨가 좋았고 따뜻했다. 따라서 다음 날 추운 것은 예상치 못했던 날씨였다. 혹한기 동계훈련이라면 처음부터 기온이 혹한기일 것을 예측하고 했을 텐데, 이것은 처음부터 등산이었고 예기치 않게 갑자기 추워진 것일 뿐이었다.

또 다른 에피소드는 이상호 피고인이 한국전력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정보를 수집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정에서 스마트폰을 보여주면서 딱 ‘한전’을 치고 들어가면 첫 화면에 나오는 것은 주식동향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또 국정원 측 증인으로 나온 사람도 주식동향 이외에 다른 화면으로 넘어간 거 없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동근 피고인의 에피소드도 당시 지도를 출력해서 그런 것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국정원의 상상이었는지 드러냈다.

각종의 에피소드 전투. 국정원이 피고인들이 엄청난 내란음모를 위해 준비하거나 정보를 수집했다는 각각의 에피소드에 대해서 그 허구성을 충분히 밝혀냈다. 그러한 에피소드 전투들 덕분에 재판 분위기도 엄중하고 심각한 분위기가 아니었다. (웃음)



“‘3인 모임’ 녹음파일, 40대 남성들의 따뜻함과 선량함 드러나”
 

‘누더기’가 된 이른바 ‘녹취록’을 둘러싼 공방도 치열했다. 검찰은 처음에 112곳, 많게는 272곳을 수정해 ‘녹취록’을 다시 제출했고, 변호인단도 녹음파일을 하나하나 확인해 450여 곳이 수정된 녹취록을 제출했다. 하나하나 해설을 단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그것을 ‘각주 전투’라고 한다. 여섯 번째 전투로, 녹음 파일을 듣는 과정이었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국정원에 의해 채록된 녹취록이 언론에 전해지고, 일방적으로 유포됐다. 그래서 반박하는 방법으로 모든 법정에서 듣는 녹음파일에 대해 국정원의 녹취록이 어느 부분이 잘못됐는지 수정했고, 일일이 각주를 달아서 왜 오녹취가 됐는지, 발언 취지는 무엇이었는지 재판부가 녹음 파일을 들으면서 함께 보도록 한 것이다. 이것을 각주 전투라 부른다. 검찰은 초창기 그에 대해 대응을 못하다가, 녹음파일 중반부터는 검찰도 각주를 달기 시작했다.

국정원이 ‘RO’의 세포모임이라고 주장하는 3인 모임의 1년 치 녹음 파일을 들으면 40대 남성들이 모여 앉아서 건강, 가정, 돈 얘기, 살아가는 얘기가 대부분이고, 아주 짧은 순간 학습 얘기를 한다. 무엇보다도 이 녹음 파일들에는 40대 남성들의 따뜻함과 선량함 드러나 있다. 또 홍순석 피고인이 A가 몰래 자기 목에 칼 들이대고 있는지도 모른 채, A를 얼마만큼 배려해 주고 신경써 주는지 드러난다. (웃음) 유무죄를 떠나 판사님도 이 세 사람 중 두 명의 피고인에 대해서 인간성에 대한 판단 끝났을 것이다. 이게 어디 지하 혁명가냐. 우리 시대 따뜻한 40대 남자다. (웃음)

그 다음에 5월 10일(곤지암)과 12일 마리스타 수도회 모임. 단어들만 언뜻 보면 오해의 소지는 있지만, 전후맥락과 그 언어의 다른 사용례들, 이런 것까지 충분히 각주를 통해 설명하면서 5월 12일 모임의 대화 주제, 모임의 성격, 중간 내용의 진정한 의미를 충분히 밝혀냈다. 이게 여섯 번째인 ‘각주 전투’였다.

일곱 번째는 피고인 신문이었다. 그동안 미진했던 부분들을 피고인들이 자신의 입으로 적절하게 해명하게 하고, 검찰 질문에 대해선 일체 진술을 거부함으로써 언론을 의식한 검찰의 의도적인 질문들에 대해서 조기에 봉쇄해 버리는 방식을 취했다. 이것도 적절하게 진행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녹음파일 내용의 불분명함…‘피고인 이익으로’ 형사소송 대원칙 적용해야”
 

마지막 여덟 번째는 무엇인가?

 

바로 최후 변론이다. 검찰은 이미 완성된 원고를 읽어내려 가는 방식으로 최종의견진술을 했고 그동안 검찰이 주장했던 모든 내용들을 집약했던, 검찰 입장에서는 잘된 구형 의견이었겠다 싶다.

반면에 변호인들은 검찰처럼 원고를 작성해서 일사천리로 변론하기보다는 재판 과정에서 강조하고 싶었던 것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마음으로 변론을 했다. 문서로서만 보면 A의 진술이 어떻게 짜 맞춰졌는지 느낌이 오지 않았을 텐데, 그 부분을 강조했다. 또 검찰이 왜 ‘RO’와 ‘세포모임’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논리 구조를 갖고 있는지, 뒤집어 얘기하면 ‘RO’와 ‘세포모임’과 사전준비, 이 모든 단계가 깨지면 검찰의 논리가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검찰이 금지옥엽처럼 여기는 소위 보위수칙이나 각종의 5대 의무, 이걸 ‘RO’의 존재 근거 삼고 있는데, 이것은 뒤집어 ‘RO’가 없다는 것에 대한 명확한 근거이다. 왜냐? 3인 모임이나, 5월 10일과 12일, 모든 모임에서 5대 의무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단선연계 복선포치(單線連繫 複線布置)’라는 조직 보위의 가장 심각한 원칙이 이유 없이 지켜지지 않았다. 혁명의 결정적 시기가 아니라면 전혀 이유가 없는데 말이다. 검찰의 주장처럼 엄중한 5대 의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바로 이러한 점들은 ‘RO는 없다’는 명백한 반증이라는 점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한다.

구두 변론에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은 이번 사건은 ‘문서’ 또는 ‘실천’으로 뒷받침 된 것이 아니라 단순히 ‘말’일 뿐이라는 점이다. ‘말’이라 함은 말하는 사람의 언어습관, 단어에 대한 사용례, 또 당시 분위기, 듣는 사람 태도, 이런 것들을 모두 종합해서 평가해야 한다. 또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은 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자기가 의도하지 않게 말이 나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다 염두에 두고 판단해야 한다. 지금 그것을 판단할 수 있는 대상은 녹음파일밖에 없는데, 음성파일이 당초에 마이크도 없는 상황에서 이뤄져 이 부분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다. 그래서 음성파일을 통한 판단에는 일정 한계 있을 수밖에 없다.

한계가 있다면 당시 발언자들이 법정에 와서 했던 해명, 진위가 충분히 중요한 근거로 활용돼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음파일을 통해 내용이 정 불분명하거나 모호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형사소송 대원칙을, 그 정신을 여기서 적용해 판단해야 한다. 섣부르게 발언과 말의 취지를 재판부가 추정해선 안 된다는 것, 이런 것도 꼭 하고 싶었던 말이다.

더불어 5월 12일 현장에서 주제 강연이 내란선동 될 수 없고, 분반 토론에서 아무런 합의나 일치된 의견도 없는데 결의라 할 수 없다는 것, 그런 과정을 통해서 구체적인 폭동에 대한 선동도, 음모도 없다는 점 강조했다.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 단장인 김칠준 변호사가 지난해 9월 26일 수원지법 앞에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내란음모' 사건 변호인단 단장인 김칠준 변호사가 지난해 9월 26일 수원지법 앞에서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양지웅 기자



“세상은 이 사건을 ‘국정원 발 먹튀 사건’으로 기억할 것”
 

그러한 재판의 전 과정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무언가 어마어마한 것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코미디가 아니냐’는 지적들이 계속 나온다.

 

앞서 얘기했던 8개의 전투가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현장에 방청했던 기자, 또는 언론을 통해서 그런 흐름들이 밖으로 알려지면서 ‘그래도 검찰에서 혹시 비장한 무언가를 들고 나오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긴장했던 것들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별 게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그래서 재판이 끝나고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냐’는 물음에 “이 사건 선고가 끝나고 나면 세상은 이 사건을 ‘국정원 발 먹튀 사건’으로 기억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판결이 난다면 결국 이 사건은 국정원이 정치적 노림수는 충분히 다 누리고 나서 ‘먹튀’ 하는 사건으로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죄 판결이 난다면?

 

만약에 유죄 판결이 나면 싸움은 다시 시작되는 거다. 아직도 ‘겨울공화국’이라는 엄중한 인식을 다시 하면서 옷깃을 가다듬고 다시 싸워야 할 것이다.

 

검찰이 결심공판 이후 추가 의견서를 내고 있다. 무죄가 선고된 이른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재심 판결을 인용하면서 당시 재판부가 ‘내란음모는 맞다’는 것을 사실상 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논리를 폈는데.

 

검찰이 유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정말 무리수를 둔 거다. 물론 학문적으로야 구성요건 해당성이 인정되면 그 다음에 위법성을 판단하고, 이렇게 학문적으로 분석할 때는 있지만, 법원 판단에서는 그게 분리되지 않는다. 그 사건에 있어서도 ‘사실은 인정되나’, 이렇다 얘기하지도 않았다. 학문적으로 분석해 볼 수는 있겠으나 ‘사실은 인정하지만 정당행위’다? 그 판결 자체가 이미 ‘내란음모가 아니다’라는 것을 전제로 한 판결인데, 그것을 인용하는 것 자체가 한편으로는 검찰의 조급함을 드러내면서 무리수를 둔 것이라고 본다.

또한 그 내란음모 조작 사건을 통해서 많은 피해를 봤던 우리 국민 대다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란음모 사건 통해서 민주주의가 지연되고 독재로 회귀했고, 많은 국민들이 형용할 수 없는 고난과 피해를 입은 건데 말이다. 그러한 고난과 피해를 입은 모든 국민들에게 예의가 아니다.



“역사가 30여년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음 보여주려면 무죄 선고돼야”
 

33년만의 ‘내란음모’ 사건인 만큼 이 사건이 갖는 역사적 의미도 상당하다고 보는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사회에서 ‘내란음모’라는 죄명 자체가 어느 것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우리 사회의 많은 내란음모 사건들이 말이다. 전두환 사건 같은 경우에는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과정에서 있었던 재판이었지만, 나머지 모든 ‘내란음모’는 집권자들이 자신의 정치적 목적 하에서 탄압 수단으로써, 구체적으로는 매카시즘의 수단으로 했던 것이었다.

문제는 이것이 역사 속에 사장된 옛일이라 생각했는데,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얼마든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상황이 명백히 드러났다는 점이다. 이 사건에서 반드시 무죄를 선고 받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적어도 역사가 30여 년 전으로 되돌아가지 않았음을 보여주려면 이 사건은 당연히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

그리고 구두변론에서도 첫머리에서 얘기를 했는데,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유죄가 나온다면, 어떠할 것이냐. 천만 다행으로 이 사건의 핵심 판단 대상이 되는 5월 12일 상황이 생생하게 음성파일로 남아있다는 것이다. 유죄 판결이 난다면, 겨울공화국이 해동되고 나면 어차피 재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 새로운 광명천지에서 이 녹음파일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재판이 다시 이뤄진다면, 그 때는 당연히 과거의 내란음모 사건이 그랬듯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천만 다행이다, 이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이 사건은 많은 질문을 던졌던 사건이라 생각한다. 특히 거기 모였던 사람들의 생각들은 당연히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범주 속에 포함돼 사회적·정치적 논의를 통해 해결돼야 할 얘기들이 있다. 과연 이러한 얘기들을 햇볕도 못 보게 하면서 법적으로 엄청난 ‘내란음모’라는 행위로 단죄하는 것이 맞느냐, 이제 우리 사회가 그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는 것이다. 또 이러한 것들을 다 사회적 공론의 장에서 토론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한 사회에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무죄 판결이 난다면, 그러한 점들을 법원이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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