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1월부터 종교인 소득에 세금을 부과하려던 방침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종교인 과세를 규정한 소득세법 시행령의 시행시기를 이미 1년간 연기해 내년부터 시행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일부 개신교 교단의 반발을 의식해 또 다시 2년간 유예하도록 기획재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따라 박근혜 집권기간에는 종교인 과세가 없던 일이 되었다. 2016년 4월 총선거, 2017년 12월 대통령 선거로 이어지는 정치일정을 감안하면 종교인 과세는 물 건너간 셈이다. 담뱃세 대폭인상을 서민증세라며 반대하는 척하던 새정치연합도 이 문제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다. 언론도 동조하는지 축소보도하거나 아예 묵살해버렸다. 

박근혜 정권이 종교인 과세를 추진했지만 그것은 꼼수에 불과하다. 정권 출범부터 부자감세-서민증세라는 비판여론이 고조되자 종교인에 대한 형식적인 과세를 통해 공평과세를 꾀한다는 명분을 쌓으려고 했다는 인상이 짙다. 근로소득세를 자진해서 납부하는 종교인들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기타소득세’로 분류해 오히려 조세혜택을 주려고 했다. 기타소득세는 근로소득, 사업소득, 임대소득, 이자-배당소득 이외의 원고료, 자문료, 사례금 등 불규칙적인 소득에 붙는 세금으로서 세율이 낮다. 기타소득으로 분류되면 소득의 80%를 필요경비로 인정해 과세대상에서 빼준다. 

나머지 20%에만 주민세를 포함한 22%의 세율을 적용해 원천징수한다. 이 경우 전체소득의 4.4%만 세금으로 내는 셈이다. 5만원 이하이면 면세혜택도 준다. 종합소득세를 신고하면 오히려 환급 받을 수도 있다. 그나마 봉급생활자와는 달리 1년에 두 번만 세금을 내는 ‘반기납부특례’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종교단체에서 받는 소득 이외의 근로소득, 퇴직소득, 연금소득 등 다른 소득에는 분리과세의 혜택도 준다는 것이었다. 이미 근로소득세를 납부하는 종교인이라면 세금이 크게 경감될 수 있다. 한마디로 상징적인 과세를 통해 오히려 감세를 제도화하려고 했던 것이다. 

종교는 거대한 권력이다. 어느 정권이나 조세저항이 커지면 슬그머니 종교인, 종교법인-단체에 세금을 물려볼까 궁리하다 곧 포기하고 만다. 표를 잃을까 두려워 돌아서는 것이다. 부자감세에 대한 비판여론이 높아지고 재정압박이 커지자 이명박 정권에 이어 박근혜 정권도 종교세를 건들려다가 꼬리를 내린 셈이다. 대통령 선거기간에는 모든 후보들이 그들의 신앙과는 무관하게 조계종 법회에 나란히 참석해 합장하는 희극을 연출한다.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개신교가 주최하는 조찬기도회에 나가 아멘을 말한다. 일부 종파는 특정후보를 지지하라고 노골적으로 외친다. 종교인들이 정치개입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 교회 이미지. ⓒ pixabay
 

종교인과 종교단체-법인이 조세의 무풍지대에서 면세특권을 향유하는 한편 엄청난 국고보조금이란 특혜를 누린다. 역대 정권이 지난 수십년간 종교행사인 기도회, 세미나, 체험행사 따위와 종교건축물에 해마다 수백억원의 정부예산을 투입해 왔다. 또 종교단체가 설립한 학교에 지원하는 국가교부금도 해마다 수천억원에 달한다.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복지단체에 대한 지원금도 해마다 수백원억에 이른다. 정치인들이 종교계에 표를 달라고 국민의 혈세를 눈먼 돈 퍼붓듯이 한다. 하지만 검증회계가 없는데다 집행내역이 공개되지 않아 투명성이 얼마나 확보되는지 의문이다.   

헌법 38조는 국민개세주의와 공평과세를 규정하고 있다. 어떤 법에도 종교인-종교단체에 대한 비과세 규정이 없다. 신자들을 동원해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까닭에 종교가 암묵적으로 비과세 성역으로 자리 잡았다. 그 사이에 일부 종교는 재정적으로 급팽창하고 있다. 대형교회들은 경쟁적으로 중세 유럽의 웅장한 성전을 닮아가는 모습이다. 대형 사찰들도 신축-증축공사가 한창이다. 또 일부 대형교회는 세습화되고 종교법인을 통한 횡령, 배임, 탈세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종교세의 필요성이 간헐적으로 거론되곤 한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를 반영해 1994년 천주교 주교회의가 사제의 소득세 납부를 결의했다. 개신교에서도 자발적으로 소득세를 납부하는 목회자들이 늘고 있다. 또 소득세 납부방법을 모르는 목회자를 대상으로 소득신고 지원운동을 펴기도 한다. 조계종도 기본적으로 소득세 납부를 찬성하고 있다. 종교인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적 정서에 부응해 종교계가 대체적으로 소득세를 내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일부 개신교 교단만이 근로소득세 납부를 거부하고 있다. 

성직자라는 개념은 종교 직무상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일 뿐이다. 그런데 개신교 일각에서 종교인의 활동은 ‘근로’나 ‘노동’이 아니라 영적이며 종교적인 ‘봉사’라면서 그 대가로 ‘사례비’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박근혜 정권이 이런 소수의 주장에 정치적으로 영합해 근로소득세가 아닌 기타소득세로 분류해 내도록 했던 것이다. 또 혹자는 신자들이 이미 세금을 낸 돈으로 헌금하니 이중과세라는 억지 논리를 편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봉급을 받는 공무원에 대한 과세도 이중과세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 종교인이기 이전에 국민이라는 점에서 세금을 내지 않으면 국민으로서 자격이 없다는 뜻이다. 

세계적으로 종교인에게 과세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나라는 종교계에 대한 국가의 조세권을 포기하고 있다. 내년부터 실시하려던 종교인 소득에 대한 과세방안은 조세특혜의 성격이 강하다. 또 거대한 재산을 굴리는 종교단체-법인에 대한 과세문제는 전혀 언급조차 없다. 일부 개신교가 반발한다는 이유로 금년초 기획재정부가 타협안을 내놓았다. '원천징수'를 철회하고 '자진납부'로 바꾸고 세무조사도 면제한다는 것이었다. 알아서 주면 주는 대로 받겠다는 소리다. 거기에다 저소득 종교인에 대한 근로소득장려세제라는 조세특혜도 제시했다. 그런데도 소수의 개신교 목사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과세 자체를 포기했다. 은퇴 언론인이 신문에 기고한다는 이유로 사업자로 분류해 고율의 세금을 물리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일부 개신교 목사들이 반대한다지만 전체 종교계로 보면 극소수에 불과하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86%가 종교세에 찬성하고 반대자는 12%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국민적 지지를 업고 종교세를 물리면 그것으로 모든 논란은 끝난다. 그들이 얼마나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지 몰라도 국민개세주의는 협의나 합의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다음 선거를 의식해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공평과세의 원칙을 저버리며 종교계에 추파를 던진다. 종교계에 면세특권을 부여함으로써 성실하게 살아가는 일반국민을 조롱하는 꼴이다. 그런데도 언론은 입을 다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