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한편 일자리 창출과 노동시장의 격차 해소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자 최대한 지원을 해 나갈 예정이다.” (고용노동부)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장그래 죽이기 종합대책이다. 장그래 희롱법이며 장그래 양산법이다. 장그래의 눈물을 닦아주는 길은 간단하다. 상시지속적인 업무에 비정규직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민주노총)

고용노동부가 29일 비정규직 종합대책안을 발표했지만 노동계 반발은 거세다. 노사정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한국노총은 “합의 안 된 내용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다면 대화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간주할 수밖에 없다”며 “노사정위 참여를 지속할 수 없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노동계가 이렇게 반발하는 이유가 뭘까. 미디어오늘이 노동계와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11문 11답으로 정리했다. 

1.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나.
이번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는 크게 비정규직 계약기간 최대 4년까지 연장, 고령자와 전문직 등에서 파견직 허용, 공공부문 비정규직 고용 규모 제한, 노사합의로 추가근로 허용, 해고 가이드라인 마련, 호봉제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생명 안전 관련 업무에 비정규직 제한 등의 내용이 담겼다. 

2. 가장 논란이 되는 정책은 무엇인가.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이다. 정부는 현재 2년인 비정규직 계약기간을 35세 이상 노동자에 한해 노동자가 원할 경우 최대 2년까지 추가로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즉 최대 4년까지 비정규직으로 일할 수 있는 셈이다. 4년 일하고 정규직 전환이 되지 않는다면 사업주는 노동자에게 별도 이직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들에게 일할 기회를 주고 궁극적으로 정규직 직접고용 전환효과를 높이겠다는 취지다.  

   
 
 

3. 4년까지 일하게 해준다는데 반발하는 이유는.
현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율을 5% 수준이다. 95%의 노동자가 2년 쓰고 버려지는 셈이다. 따라서 노동계는 기간이 연장되면 비정규직 노동자는 4년 꽉 채워서 쓰고 버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35세 이상 노동자가 그 나이에 비정규직으로 4년 일하고 나면 갈 곳이 없다”고 지적했다. 

4. 기간 연장이 정규직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야기는 뭔가.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이렇게 지적한다. “지금은 2년 짜리 일자리는 비정규직을 채용해도 3년, 4년짜리 일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용한다. 하지만 비정규직 기간이 늘어나면 이런 일자리들이 죄다 비정규직으로 채워질 것이다. 더 저렴하게 노동자를 쓸 수 있는데 어떤 바보같은 사용자가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뽑겠나.”

5. 고령자와 전문직 등에서 파견직 허용은 무엇인가.
현재 파견법은 32개 업종에서만 파견을 허용하고 있다. 정부는 “규제가 엄격해 이로 인해 기업이 용역이나 사내하도급의 활용을 늘리는 측면이 있다”며 “용역, 하도급 노동자들은 파견만큼의 법적 보호를 받지 못 하고 오히려 저임금과 고용불안 문제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밝혔다. 따라서 정규직 대체 가능성이 적은 고령자(55세 이상)와 고소득 전문직을 중심으로 파견을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6. 고령자에게 좋은 일자리를 주는 것 아닌가. 
노동계에서는 아니라고 판단한다. 이미 파견직 고령노동자는 최저임금을 받고 있기 때문에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부작용이 더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남신 소장은 업종 제한 없이 나이를 기준으로 파견이 허용되면 기존에 파견이 허용되지 않았던 직종에까지 파견직 노동자로 채워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7. 비정규직 대책인데 호봉제 이야기는 왜 들어갔나.
일명 ‘끼워넣기’라는 평가다. 정부는 한국의 과도한 연공서열 중심의 호봉제가 중장년 노동자의 조기 퇴출, 비정규직 채용확산, 정규직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확대를 야기 시킨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호봉제 대신 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를 바꾸겠다고 하는 이유이다. 한국노총은 노사합의로 추가근로가 허용되는 것과 더불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시간 일하면서 임금은 더 적게 받게 생겼다”고 평가했다. 

   
▲ 2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 및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부의 비정규직종합대책 폐기를 촉구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8. 해고 ‘가이드라인’도 마련된다는데?
종합대책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최소의 직무수행능력이 결여된 경우 노동자는 우선 직업훈련이나 전환 배치 등을 하게 된다. 그마저 어려울 경우 근로조정 등을 통해 고용유지 하는 방법이 고려된다. 그마저도 안 된다면 사용자는 근로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9. 가이드라인 마련은 좋은 거 아닌가.
근로기준법 23조에 따르면 사용자는 노동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등을 할 수 없다. 그간 법원은 이 ‘정당한 이유’를 상당히 까다롭게 판단했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직무수행능력이 해고요건에 들어간다면 저성과자들 퇴출이 시작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측이 마음에 안 드는 노동자를 저성과로 ‘콕 찝어서’ 해고시킬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0. 그럼 노동계가 바라는 건 무엇인가.
상시 지속적인 업무는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규직으로 사용한 다음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하는 ‘출구’ 전략은 이미 효과가 없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것. 민주노총은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이 원칙임을 명확히 하고 일정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기간제 근로계약 체결이 가능하도록 관련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1. 좋은 점은 없나.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있다. 이남신 소장은 노동조합에 ‘차별시정 신청권한’을 준 것을 의미있게 평가했다. 기존에 차별시정 신청권한은 당사자에게만 있어 효력이 없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율은 2-3% 수준밖에 안 된다는 점에서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노광표 소장은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 인상’이 의미 있다고 평가했다. 노 소장은 “물가 인상과 경제성장률을 단순히 더하는 게 아니라 소득분배개선분을 반영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