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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속 빈 강정보다 못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의 실체

 
 
외교부, “미국 측의 추후 동의와 서면동의 있어야 한다” 인정…‘성과 과장’ 논란일 듯
 
김원식 | 2015-06-18 10:02:1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지난 16일(이하 현지시각) 한미 양국 간에 타결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안 내용이 애초 정부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선진적 위상을 반영한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되었다”라는 발표와는 달리 그 실질 내용에 있어서는 아무런 자율권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예상된다.

외교부는 한미 양국 간에 정식 서명이 이루어진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금일 개정 협정에 대한 정식 서명이 이루어짐으로써, 40여 년 전 체결된 현행 협정이 우리나라의 선진적 위상을 반영한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되게 되었다”고 자평했다.

또한, 서명식에 참가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이번 협정 개정을 통해 사용후핵연료의 효율적 관리,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원전수출 증진 등을 중심으로 한미 양국 간 선진적·호혜적 협력이 확대됐다”며 “새 협정은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방식으로 한미 간 전략적 협력을 강화한 성공사례”라면서 “한미상호방위조약, 한미 FTA(자유무역협정)에 이어 한미동맹을 지탱하는 또 하나의 핵심축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수의 국내 언론은 “2010년 시작된 개정 협상이 타결됨으로써 국내 원전에서 쓰인 사용 후 핵연료를 관리하는 방안이 마련되는 등 종전보다 상당히 ‘진전된’ 내용들이 포함됐다”며 “향후 중간저장, 재처리, 파이로 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에서 우라늄 등을 추출해 재활용하는 방법), 영구처분, 외국 위탁재처리 등 방안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했다. 나아가 일부 언론은 “특히 핵연료(우라늄) 농축과 사용후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이른바 ‘골드 스탠더드’가 포함되지 않았다”며 “그동안 미국의 사전동의 규정 등에 따라 완전히 묶여 있던 우라늄 저농축과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을 통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재처리) 가능성의 문이 열렸다”고 보도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이날 외교부가 공개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 전문(아래 11조 참조)에 따르면, 우리 정부와 일부 언론의 이러한 주장은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을 반영하지 않은 자화자찬식의 평가인 것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되고 있는 원자력의 ‘농축, 재처리 및 그 밖의 형상 또는 내용 변경’ 규정을 명기한 협정 11조를 요약하면, 우리 정부가 농축이 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힌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 관련이든 이른바 ‘파이로프로세싱’ 등 재처리, 재활용 방식 등에 관해서는 오히려 양자 간에 고위급 위원회 등을 통하여 수행되는 협의에 따라 적용 가능한 조약, 법령, 인허가 요건에 합치되어야 하며, 역시 양자 간의 서면 합의를 명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기자의 질의에 외교부는 “농축 관련 조항 또한 ‘원전연료의 안정적 공급 확보’의 일환으로, 장래에 미국산 우라늄을 이용한 20% 미만의 저농축이 필요하게 되면 한미 간 협의를 통해 합의하여 실시할 수 있는 추진경로를 마련했다”고 답해 사실상 저농축 우라늄도 향후 한미 간의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외교부는 또한, “파이로프로세싱(건식 재처리) 등과 관련해서도 여전히 미국의 사전 동의(서면 합의)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의에 “미래 우리가 추진할 가능성 있는 활동에 대해서는, 한미 공동연구('11-'20) 결과 등을 바탕으로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구체 협의하여 추진해 나갈 수 있도록 한다”라고 밝혀 사실상 추후 미국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것임을 인정했다.

외교부는 또한, “개정 협정문 어디를 보아도 명시적으로 한국 측의 자율권이나 실질적인 권한 강화가 명기된 부분이 없다”는 지적에 “NPT 당사국으로서의 평화적 원자력 이용 권리”나 “상대방의 원자력 프로그램을 존중하고 부당한 방해나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무규정도 포함됐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현존시설에서 미국산 사용후핵연료 이용 시 기존 건별 또는 5년 단위로 미국의 승인을 받아야 하던 체제를 전면 허용(장기 동의) 체제로 전환하는 등 원자력 연구개발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사용후핵연료 재활용(파이로프로세싱) 등에 있어서도 우리의 장래 필요와 여건에 따라 고위급위원회를 통해 합의하여 실시할 수 있는 추진경로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또 “결국 고위급 위원회를 통해 미국 측의 사전 동의와 서면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라고 재차 묻자 외교부의 한 관계자는 전화 인터뷰에서 “당연히 그것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사용후핵연료의 관리를 위해 필요한 ‘조사 후 시험(사용후핵연료의 특성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과 ‘전해환원(파이로 프로세싱 전반부 공정으로서 사용후 핵연료 안에서 높은 열을 발생시키는 원소를 제거하는 작업)’ 등 앞 단계의 일부(연구활동)는 국내 시설에서 자유롭게 수행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우리 측이 농축을 할지 말지를 명시적으로 밝힌 바가 없다”며 “향후 그러한 필요성이 있을 때, 상호 협의한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시민단체, “서면 합의 명시는 협상 후퇴 결과”… 오바마, “미국 법 맞게 협상했다” 강조

한편, 외교부는 “일부 언론에서는 이번에 개정문에서 이른바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를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골드 스탠더드’ 규정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규정은 실제 효력이 없는 아랍에미리트(UAE, 2003년)나 대만(2014년) 두 국가 이외에는 어느 나라도 미국과의 원자력협정에 명기되지 않았다”는 질의에는 구체적으로 답변하지 않았다. 다만 외교부 관계자는 “일부 언론에서 미 의회가 그러한 조항을 넣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고 보도한 적은 있으나, 그 문제(골드 스탠더드 미포함)를 우리(외교부)가 집착하거나 성과로 말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하여 양이원영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 처장은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특히, 외교관계에 있어서 (정부가) 이렇게 부풀려 발표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밝혔다. 양이 처장은 이어 “외교부 입장에서는 그동안 일방적으로 진행되어 온 양국 간의 원자력 문제에 있어 이제는 우리의 지위가 협상에 올려질 수 있는데 까지 올라가는 일정한 진전이 있었다고 할지 모르나, 공개된 협정 전문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양이 처장은 특히, “과거 재농축에 관해 상호 합의한다는 일부 협상안이 알려졌을 때는 ‘우리가 저농축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다’고까지 오보가 있었으나, 이번에 공개된 협정문에는 ‘서면 합의’라는 조항까지 분명히 명시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국, 앞으로 서면으로 된다, 안된다를 미국이 통보한다는 것이다. 이는 일종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최종 협상 결론은 사실상 더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민중의소리

한편,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16일, 이번에 서명된 한미원자력협정 개정안을 의회로 송부한 직후 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협정안은 미국 원자력법의 요구 조건을 규정한 법령이나 여타 법령을 모두 충족시키며 협상이 이뤄졌다”고 밝혔다. 오바마는 이어 “한국은 비확산 측면에서 강력한 이력(track)을 갖고 있고 지속적으로 비확산 의무를 다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의 비확산과 다른 외교정책의 이해(interests)도 증진시키고 있다”도 강조했다.

한 마디로 이번 한미원자력협정은 미국이 정한 법 규정 내에서 이루어졌으며, 한국은 앞으로도 비확산을 계속 추구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핵 관련 주권이나 자율성에 있어 “우리나라의 선진적 위상이 반영된 새로운 협정으로 대체됐다”며 여러 진전이 있었다는 우리 외교부의 평가와는 대조를 이룬다. 따라서 일각에서는 외교부가 성과 부풀리기에 급급해 핵심 협정 내용은 뒤로하고 대국민용의 이른바 ‘뻥튀기’ 발표를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고 있다.

 

제11조: 농축, 재처리 및 그 밖의 형상 또는 내용 변경

1.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원료물질 또는 특수핵분열성물질의 재처리 또는 그 밖의 형상 또는 내용의 변경 또는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모든 원료물질, 특수핵분열성물질, 감속재 물질, 또는 장비에 이용되었거나 이러한 물질 또는 장비의 이용을 통하여 생산된 원료물질 또는 특수핵분열성물질의 재처리 또는 그 밖의 형상 또는 내용의 변경은, 그러한 활동이 수행될 수 있는 시설에 관한 사항을 포함하여 당사자들이 서면으로 합의하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2.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우라늄, 그리고 이 협정에 따라 이전된 장비에 이용되었거나 이러한 장비의 이용을 통하여 생산된 우라늄은 가. 이 협정의 제18조제2항에 따라 설립될 양자 고위급 위원회를 통하여 양자 간에 수행되는 협의에 따라 그리고 당사자들의 적용가능한 조약, 국내 법령 및 인허가 요건에 합치되게 농축을 하기 위한 약정에 서면으로 합의하고, 나. 그 농축이 우라늄 235 동위원소가 오직 20퍼센트 미만인 경우에 한하여 농축될 수 있다.

3. 형상 또는 내용의 변경은 원자로 연료의 조사 또는 재조사, 또는 조사되지 아니한 원료물질이나 조사되지 아니한 저농축우라늄에 대한 변환, 재변환, 또는 성형가공은 포함하지 아니한다.

 


*17일 자 ‘민중의소리’에 게재된 필자의 기사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1&table=newyork&uid=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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