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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제국의 두 기둥 - 한국인이 외면하는 제국주의 미국

미 제국의 두 기둥 - 한국인이 외면하는 제국주의 미국 7
 
경제주권을 헌납한 2011년의 한미FTA
 
최천택. 김상구 공저
기사입력: 2015/12/28 [00: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최초의 반미시위,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

 

1961년 2월, 한국 경제의 대미경제예속을 항의하는 최초의 반미시위가 일어났다. 협정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원조를 빌미로 한 미국의 내정간섭적 태도에 대한 학생 및 혁신운동세력의 반대투쟁이 조직되기 시작하였다. 학생들은 ‘2.8한미경제협정반대공동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한미경제협정이

 

①경제적 예속화와 내정간섭을 강요하고

②치외법권 남용으로 인해 통치권을 유린하며

③세금포탈로 재정주권을 침해하고

④원조물자의 일방적 중단을 구실로 정치적 시녀화를 강압할 수 있다는 점을 들어 ‘편파적이고 불평등’한 조약이라고 규정하는 한편 그 철회를 미국에 강력히 요구했다.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은 남한에서 전개된 최초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반미운동으로서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이 ‘반외세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운동 과정에서 처음으로 ‘양키 고 홈’의 구호가 외쳐졌으며, 민족적 자긍심이 원조국가의 예속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학생들의 염원이 강하게 표출되었다. 이어서 주한미군 주둔지 및 인근지역에서 주한미군의 계속되는 범죄행위에 대해 한미행정협정의 제정을 촉구하는 운동도 집요하게 전개되었다.

 

 

 

▲ 한미 경제 및 기술원조협정의 문제점을 보도한 민족일보 창간호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1961년 2월 13일 첫 선을 보인 민족일보 창간호는 한미경제협정조인을 비판하는 내용을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경제자립성을 모독·침해”라는 제목이었다. 그리고 기사는 이 한미협정을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과 실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비판하고 정당사회단체들의 규탄성명을 함께 실었다. 아래는 보도된 일부 내용이다.

 

•통일사회당

이번 신협정에서 양측이 확인한 바 있는 ‘한미상호방위조약’(1954년 12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1950년 1월), ‘대한민국과 통일사령부간의 경제조항에 관한 협정’(1952년 5월) 등은 모두가 한국이 가장 어렵고 남의 힘이 아쉬운 처지에 놓였던 6·25동 란을 전후하여 체결되었던 것으로 주권 국가로서의 위신과 이익이 상반되는 제조건을 규정하고 있었으므로 전국민이 이점을 유감으로 여겨왔거늘 이를 개선하기는커녕 오히려 개악하는 방향으로 단일화한 장면 내각의 반민족적 처사는 전체 애국시민의 규탄을 받아야할 것이다.

 

•사회당창당준위

금번의 협정개악으로 한국민을 위하여 한국민이 써야할 우리의 돈 원조물자 판매대전을 미국이 마음대로 갖다 쓰도록 되어 있는데(제4조) 이것은 미국의 과잉상품을 원조라는 이름으로 강매하는 것을 의미한다. 원조물자 판매대전에 미국은 한푼도 갖다 쓰지 말고 그 사용은 한국정부에 일임하라.

 

•민자통 사무총장 담

‘한미경제협정’이란 것은 물론 반대해야한다. 그것은 민족매판자본의 연명을 기도함이며 아울러 민족자주경제건설의 기본적 방향이 되는 민족자주통일을 방해하기 위한 하나의 국제계획의 기도로 되기 때문이다.

 

•혁신당

미국인 및 그 가족과 미국정부 대리상사와 그 고용인들에게 외교관만 부여하는 특전을 부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동 협정은 한국의 독립국 체모를 상실시키는 것이다.

 

•사회대중당

한미협정 제3 제4 제5 제6조는 미국의 속국화하려는 기도로써 한국의 주권을 공공연히 침해하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적 조처는 극동원조 내지 외교정책의 일대 과오를 범했다. 양당위원들은 총사퇴를 각오하고 굴욕적인 동 협정의 비준을 거부해야 한다.

 

한미경제협정은 미국이 자국의 과잉 상품 및 과잉 자본을 한국에 독점적으로 공급함으로써 한국경제의 재생산구조를 대미의존체제로 만들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학생들과 혁신계 정당뿐 아니라 일부 신민당 의원들조차 “남한을 지배하겠다는 미국의 책략 가운데 일부”라고 규탄한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민주당 정부의 반응은 이승만 치하 때나 전혀 변함이 없었다. 2월 15일, 장면 총리는 주례 공식기자회견에서 “한미경제협정 반대운동이 북한 괴뢰의 지령에 의한 것이며 그 구체적 증거를 잡았다.”고 발언했다. 하지만 장면 정부가 내놓은 구체적 증거라는 것은 북한의 평양방송에서 한미경제협정을 반대한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결국 1961년 2월 28일, 박준규 의원이 제안한 세 가지 양해조건을 조건부로 민의원에서 찬성 32표, 반대 1표로 비준안이 가결됐다. 혁신정당 의원들은 퇴장함으로써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참의원에서는 제적 34명 가운데 찬성 32표, 반대 1표로 통과됐다.

 

한미경제협정 반대투쟁은 비록 광범한 국민대중의 호응을 얻는 데는 실패하고 3주간의 비교적 짧은 기간에 종결되었지만 미국의 대한 원조경제 정책의 목적을 적나라하게 알려준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은 결코 은혜의 나라가 아니라는 뜻이다.

 

앞의 글 “최초의 불평등조약, 조미수호통상조약‘에서 거론했지만, 한국과 미국 사이의 불평등 조약은 188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미국의 정책이 노골화되기 시작한 것은 1945년 9월, 미군이 한반도에 주둔하고부터다.

 

미국은 1945년 9월부터 한국을 점령·지배한 이래, 미군정 시대에 수많은 포고와 군정청 법령을 난발하여 남한경제를 지배·수탈했다. 이승만 정부 수립 이후에도 미국은 각종 조약·협약 체결을 강요하며 지배를 계속했다. 45년부터 69년까지 미군포고·군정청법령·각종조약·협약 등에 대한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남한에 이승만 단독정부가 출범한 뒤에, 미국은 이전 군정청과 남한과도정부에게 소속되어 있었던 귀속재산 소유권·관리권을 형식상 승계·이양하였다. 1948년 9월 11일에 최초에 맺은 ‘한미간 재정 및 재산에 관한 협정’에서, 미국은 ‘대한민국은 재조선 미군정청 법령 제33호에 의해 귀속된 전 일본인 공유 또는 사유재산에 대하여 미군정청이 이미 실행한 처분을 승인하고 비준한다’(제5조)고 했다. 남한 총자산의 80%에 해당하는 엄청난 귀속재산 중 많은 부분을 수탈했던 행위에 대해, 이승만정권이 기정사실로 승인하도록 했다.

 

또 이 협정에서 ‘대한민국은 재조선 미군정청 운동자금으로 지칭되는 조선은행 대월당좌에 의해 사용한 자금에 대한 일체의 채무를, 미국정부로 하여금 그 책임을 면하게 한다’고 하였다. 이로써 미군정이 통치비용으로 과다 지출하는 바람에 생긴 적자재정을 이승만 정권에게 떠 넘겼다. 더욱이 제3조 3항과 제9조에 따라 미국이 요구하면, 한국 어느 곳이든 재산의 소유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리고 미국이 희망하는 재산을 양국의 협정가격으로 양도하되 제1회 양도분으로 ‘서울 정동, 송현동, 사간동, 을지로 반도호텔 부근 등 7만 평’을 규정하였다.

 

이 양도 재산만해도 서울의 노른자위로 만만치 않은 액수인데 미국의 일방선언으로 차지해 버렸다. 미국은 이 협정으로 남아 있는 귀속재산을 이승만 정권에게 넘기면서, 동시에 적자 재정 수백억 원과 미 주둔군 비용충당을 위한 차용금까지 고스란히 떠넘겼다. 이렇듯 미국은 원조물자에서 생긴 대충자금(원조물자 판매 대금)으로 권력을 장악하여 재정·경제에 대한 지배체제를 단단히 다졌을 뿐 아니라, 일방적인 협약을 맺어 지금까지 주둔하고 있다. 나중에 미국은 미군 주둔비용까지 한국정부에게 요구하게 된다.

 

기타 주요한 조약으로, 52년 5월 24일 조인한 ‘대한민국과 유엔군 통일사령부간의 경제조정에 관한 협정’(마이어 협정), 53년 12월 24일 조인한 ‘경제재건과 재정안정계획에 관한 합동경제위원회 협약’ 1956년 3월 24일의 ‘한미 간 잉여농산물 구매협정’ 등 각종 협정으로, 한국경제에 대해 우위·지배권을 유지하고자 했다. 그 뒤 61년 2월엔 장면정권과 ‘한미 경제 및 기술원조 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의 군사·정치·경제·사회·교육·문화·종교 등 모든 부분을 장악하고 한국경제를 미국 독점자본에 더욱 종속·예속화하였다.

 

한국의 근대화와 IMF

 

미국이 한국과 맺은 불평등 외교협정의 역사는 이승만·박정희 정권을 넘어 1980년대에도 계속되었다. 특히 미국은 1980년대에 이르러 미국경제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한국을 대상으로 통상 개방 압력을 강하게 행사하였다. 지적재산권(저작물에 대한 권리), 담배시장 개방, 민간 항공사의 상대방 공항 이용 등 이 외에도 한국과 미국이 체결한 조약이 불평등하거나 한국의 주권을 제약하는 내용을 담겨 있는 사례는 허다하다.

 

미국과의 불평등조약은 국방관련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은 국방관련 과학기술에 대해서 미국과 맺은 쌍무 협상에 의해 국방기술 개발을 제한받고 있다. 한국에서 개발할 수 있는 탄도 미사일 사거리의 경우 300km를 넘을 수 없고, 탄두 중량은 500kg를 넘을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는 현실이 바로 대표적인 사례이다. 미국이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와 탄두의 중량을 제한한 조약은 2001년 개정 발효된 ‘한미 미사일 지침’이다. 미국은 미사일 탄두 중량이 500㎏을 넘게 되면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고, 사거리가 300㎞ 이상이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기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이유를 가지고 한국의 미사일 기술 개발을 제한하고 있다. 현대 전쟁에서 미사일이 갖는 중요도를 고려해볼 때, 한국의 자주국방 능력은 미국과의 협정으로 심각하게 제약받고 있는 것이다.

 

한미간 불평등 협약은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덩치가 커지면서 경제영역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무엇보다도 1997년 12월 3일, 한국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의향서’는 가장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의 하나이다. 의사결정 구조가 미국의 강한 영향력 아래에 있는 IMF는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긴급 구제 금융을 조건으로 한국의 경제정책 결정권한을 요구해 경제정책결정에 노골적으로 개입, 경제의 신탁통치라는 지적까지 받았다.

 

충격적인 사실은 IMF가 한국 대통령의 통치권까지 제약하려 했던 점이다. 당시 대통령 선거 국면이었던 한국의 사정에 따라 IMF측은 한국의 3당 대통령후보들이 IMF와의 합의 의향서를 이행한다는 각서를 쓸 것을 요구해 이를 관철시켰다. 이회창 후보와 이인제 후보는 각서 형식의 문서에 서명했고, 김대중 후보는 서명을 하지 않는 대신 김영삼 대통령 앞으로 별도의 이행 서한을 보냈다. IMF의 이러한 행위는 다음 대통령의 통치권 행사까지 간접적으로 구속하는 행위라는 정치적 비판을 받았다.

 

당시 IMF의 가혹한 정책 강요 행위는 2011년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IMF의 대책과 대조되면서 강한 비판을 받았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는 2010년 6월 3일 연합뉴스와 가진 서면인터뷰에서 1990년대 외환위기 당시 IMF가 구제 금융을 제공하는 대가로 요구한 것들이 너무 혹독했다는 지적에 대해 "당시 어떤 실수가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다."면서 잘못한 부분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말았다.

 

같은 시기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IMF 구제 금융을 거부한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는 IMF와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의향서’를 체결한 한국을 두고 “주권을 포기해버린 거지”로 묘사하였다.언론들은 일제히 경제주권을 상실했다고 보도했다.

 

한미FTA, 불평등 경제협정의 결정판

 

한미간 불평등 경제협정의 결정판은 한미FTA 협약이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체결한 ‘대기성 차관 협약을 위한 의향서’의 이행이 한창이던 1998년, 미국은 한국과 또 다른 투자협정 체결을 시도했다. 바로 한미 양자 투자 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이다. IMF와 맺은 협정으로 주식과 채권시장 등이 완전히 개방되고 국영기업의 민영화 바람이 거세게 몰아닥친 후, 미국은 양자 투자협정 체결로 한국 시장의 개방 폭을 더욱 넓히려 한 것이다.

 

한미 양자 투자협정은 미국이 한국 영화산업의 스크린쿼터제 폐지를 협정 체결의 선결조건으로 내세우면서 많은 영화인을 비롯한 국민의 반발에 부딪히고, IMF 외환위기 이후 급격하게 증가한 외국자본에 대한 우려로 2003년에 결국 중단되고 말았다. 하지만 한미 양자 투자협정은 2006년 노무현 정부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과 함께 부활하게 되

었다. 그리고 2011년 11월 22일, 이명박 정부 아래서 국회는 한미FTA 비준동의안을 처리하였다.

 

세계 주요국 FTA 추진 현황 (2011년 12월 기준)

 

 

기체결

협상중

한국

칠레,싱가포르, EFTA,아세안,

인도,EU, 미국

콜롬비아, 캐나다,

멕시코, 호주,

뉴질랜드 ,터키

미국

NAFTA, 중남미 5개국, 도미니카, 모로코, 바레인, 싱가포르, 오만, 요르단, 이스라엘, 칠레,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한국, 호주

-

일본

ASEAN, 말레이시아, 멕시코, 브루나이, 싱가포르, 인도네시아, 칠레, 태국, 필리핀

GCC, 베트남, 스위스, 인도, 한국, 호주

중국

ASEAN, 마카오, 칠레, 파키스탄, 홍콩

 

GCC, 뉴질랜드,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호주

EU

EFTA, Faroe Islands, OCTs, PLO, 남아프리카공화국, 레바논, 마케도니아, 멕시코, 모로코, 시리아, 안도라(관세동맹), 알제리,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칠레, 크로아티아, 터키, 튀니지, 한국

ACP, GCC,

MERCOSUR, 이란

 

ASEAN

AFTA(10개국), 일본, 중국, 한국

인도, 호주, 뉴질랜드

멕시코

NAFTA, EFTA, EU,

MERCOSUR, Northern

Triangle, 과테말라, 니카라과, 볼리비아, 브라질, 엘살바도르, 온두라스, 우루과이, 이스라엘, 일본, 칠레, 코스타리카, 콜롬비아/베네수엘라

싱가포르, 파나마,

페루, 한국

 

 

 

 

칠레

Trans Pacific(SEP), CACM,

EFTA, EU, MERCOSUR, 멕시코, 미국, 온두라스, 인도(PTA), 일본, 중국, 캐나다,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한국

FTAA, 베트남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낸 미국 컬럼비아대학의 요셉 스티글리츠 (Joseph E. Stiglitz) 교수는 MRZine지와의 인터뷰에서 FTA 는 "해당 국가의 생산구조를 파괴할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스티글리츠는 약소국으로서 미국과의 FTA는 “협상이 아니라 강제부과"라고 까지 말했다. 또, FTA는 양극화를 부추길 뿐이고, 약소국으로서 바람직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이런 실정이라면, 한국정부는 왜 미국과의 FTA를 서둘렀는지 그리고 미국은 한국과의 FTA에 왜 그리 목을 매달았는지 그 속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를 보자. NAFTA, 중남미 5개국, 도미니카, 모로코, 바레인, 싱가포르, 오만, 요르단, 이스라엘, 칠레, 콜롬비아, 파나마, 페루, 한국, 호주 등의 나라가 2011년 12월 현재 대미 FTA 체결국이다.

 

놀랍게도 우리나라가 이들 나라 중 가장 큰 무역대국이다. 세계무역기구(WTO)가 발표한 2011년 기준으로 발표한 수출입을 종합한 세계무역규모 순위는 미국, 중국, 독일, 일본, 프랑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 한국, 홍콩 등의 순이다. 세계 10대 무역대국 중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는 오직 대한민국뿐이다. 스티글리츠는 약소국의 대미 FTA를 우려했지만 오히려 강대국들이 미국과의 FTA를 외면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의 가장 밀접한 우방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마저 미국과의 FTA를 서두르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과 FTA를 채결한 국가들은 모두 경제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거나, 경제사정이 매우 열악한 약소국들뿐이다. 대한민국은 전세계에서 7번째로 교역량이 많은 경제대국이다. 그렇다면, 미국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FTA를 체결한 약소국들과는 그 입장이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왜 미국과의 FTA 체결을 서둘렀을까? 일단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문제를 짚어보기로 하자.

 

미국의 재정적자와 한미FTA

 

미국 정부는 역사적으로 전례가 없는, 그리고 지속 불가능할 정도의 부채를 초래하고 있다. 2012년 7월 8일 현재 미국 연방의 부채는 15조 8천 6백억 달러를 넘고 있다. 2010년 기준 국내총생산 14조 6천억 달러를 이미 초과했으며, 2012년 미 연방 예산의 4배를 넘어선 수치다. 참고로 2012년 연방예산은 3조 7천억 달러로 1조 1천억 달러의 적자 예산이다.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를 제외하고, 미국은 1792년 회계가 시작된 이래 이처럼 빚을 진 적이 없다. 현재, 달러의 이자율은 낮고 달러 가치는 안정적인 상황에서 이런 재정적 추락은 우려라기보다는 이야기꺼리에 그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조용한 상황은 지속되지 않을 것이다.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자 세계 준비통화의 발권자로서 미국은 그런 전례 없는 부채 수준을 키우면서 앞으로 10년을 보낼 처지가 아니다. 만약 미국 지도자들이 이런 부채 중독을 억제하려고 대응하지 않는다면, 세계 금융시장이 재정정책에서 급격하고 징벌적인 조정을 강요함으로써 자신들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 결과는 미국의 내핍시대가 될 것이며 재정지원 복지프로그램과 방위비 등 어떤 종류의 연방 지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물론 개인 및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이는 미국의 대외정책과 다가오는 시대의 국제관계에도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본다.

 

현실적으로 책임있는 예산 추이는 지출 삭감만으로는 달성될 수 없다. 이자 비용은 삭감될 수 없고,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프로그램도 삭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지출 위주의 전략은 모든 지출 분야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방위비와 국내 임의경비 모든 분야 모두 획기적으로 감축될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를 거쳐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중동전쟁,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의 전쟁 등 제국의 과잉 팽창정책이 이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모습이 현재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의 재정위기를 보면 미국이 왜 FTA에 목을 매고 있는지 그 답이 보인다. 조만간 미국은 세계 최대의 무역국이란 자리도 내놓게 된다. 수출은 2011년 현재, 이미 중국이 미국을 앞질렀다. 대부분의 경제 전문가들은 2016년경이면 중국이 '세계 최대 무역국'으로 등극할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그렇다면 왜 한국인가? 한국의 수출입 비중을 나타낸 표를 보면 정답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본격화된 시기는 2000년 대 초부터다. 이 시기는 미국, 일본에 의존하던 한국의 수출입 구조가 중국 및 EU 등으로 다변화된 시기와 묘하게 일치한다. 특히 중국은 2000년 대 중반부터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 되었으며 2012년 현재는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많은 무역량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미국은 일본이나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이 포함된 전통적 우방국들과 FTA를 먼저 체결하고 싶었을 터이다. 하지만 이들 국가가 어떤 국가들인가? 결국 미국은 한국을 모델케이스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1882년 이래 영원한 속국, 미국은 한국을 선택했다.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

 

우리는 왜 한미FTA를 반대해야만 하는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자.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복잡한 설명은 생략하겠다. 이 글에선 2011년, 민주노동당이 정리한 12가지 독소조항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한다.

 

1) 래칫(톱니바퀴의 역진방지장치) : 한번 개방된 수준은 되돌릴 수 없다.

낚시할 때 쓰는 미늘 같은 것인데, 거꾸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선진국 및 산업국가사이의 FTA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독소조항 중 하나다.

- 쌀 개방으로 쌀농사가 전폐되고 식량이 무기화 되는 상황이 와도 절대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 광우병 쇠고기 수입으로 인해 인간 광우병이 창궐하는 상황이 와도절대 수입을 막지 못한다.

- 의료보험이 영리화되고 병원이 사유화 된 후 아무리 부작용이 나타나도 다시는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 전기, 가스, 수도 등이 민영화된 후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교육 및 문화 분야가 사유화 된 후 다시 예전으로 되돌릴 수 없다

- 교육 및 문화 분야가 사유화가 된 후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음.

2) 서비스 시장의 네거티브 방식 개방 : 명시된 비개방 분야 외 나머지를 모두 개방.

개방해야 할 분야를 조목조목 제시하는 것(포지티브방식- POSITIVE)이 아니라 개방하지 않을 분야만을 적시하는 조항이다. 따라서 미래에 생겨날 새로운 서비스시장은 무조건 모두 개방해야 한다.

- 온갖 도박장, 피라미드판매업 등 미국의 서비스 산업이 국내에 마구 들어오게 될때 군말없이 이것을 수용해야 됨.

3) 미래의 최혜국 대우 조항 : 다른 나라에 미국보다 더 많이 개방할 경우에 자동으로 미국에 적용.

미래에 다른 나라와 미국보다 더 많은 개방을 약속 할 경우 자동적으로 한미 FTA에 소급 적용하는 조항이다.

- 일본과 FTA를 체결할 경우, 농산물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보다 더 강점이 잇을 수 있다. 그래서 콩이나 보리를 개방했을 경우, 원래 한미 FTA에는 없던 콩이나 보리도 즉각 미국에게 개방해야 됨.

 

 

4) 투자자 - 국가 제소권(ISDS) : 다국적기업이 제멋대로 제3의 민간기구에 제소.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이 한국정부를 상대로 국제 민간 기구에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이 경우 당연히 한국보다 힘쎈 미국의 투기자본 및 초국적 기업이 승리한다.)

한마디로 초국적 투기자본이나 기업이 자신의 이윤확대를 위하여 상대국가의 법과 제도를 무력화 시키는 독소조항이다.

- 이 제도로 인해 한국에 투자한 미국자본이나 기업은 국내에서 재판받을 필요가 없음.

- 오스트리아 등 미국과 FTA를 추진하거나 맺은 국가들 대부분은 이 독소조항을 채택하지 않았음.

- 한국과 유럽의 FTA에 협상에서는 이 독소조항을 논의조차 하지 않음.

- 대한민국의 헌법상의 주권 국가의 사법권, 평등권, 사회권이 무너짐

- 한국정부는 부동산 정책을 포함한 공공정책을 사실상 포기하게 됨.

5) 비위반 제소 : 사업자가 기대 이익을 얻지 못하면 일방적으로 국가에 소송을 제기.

FTA협정을 위반하지 않았을 경우라도 세금, 보조금, 불공정거래시정조치 등 자본이나 기업이 정부의 정책으로 인해 '기대하는 이익'을 못 얻었다고 판단되면 국제민간기구에 상대정부를 제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자본이나 기업이 자신들의 경영실수로 기대이익을 못 얻었을 경우라도 한국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음

- 국제 민간기구에 제소해서 무조건 이기기만 하면 천문학적인 보상금을 타낼 수 있음.

6) 정부의 입증 책임 : 필요불가결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하지 못하면 무조건 개방.

국가의 정책, 규정 등 상대 국가는 그것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음을 '과학적으로 입중 해야 하는 책임'을 지는 조항이다.

-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의 광우병 쇠고기 반대 여론 같은 경우, 과학적 입증자체가 터무니없는 일임

- 한국은 기초과학 분야의 국제적 위상이 취약함

 

 

 

 

7) 간접수용에 의한 손실보상 : 미국인에게는 한국 법보다 한미FTA가 우선 적용.

상대국가의 정책이나 규정에 의한 직접적인 손해가 아니더라도 이를 통해서 간접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판단되면 이를 보상해야 하는 조항이다.

- 땅이 좁고 인구가 많은 한국은 토지 공개념 등 사유를 제한하는 공동체적 법제를 가지고 있음(미국은 한국과 정반대) 그러나 이 독소조항으로 인해 한국의 모든 공동체적 법체제가 완전히 사라지게 됨

- 한미FTA를 한국정부의 모든 정책과 규정의 상위법인양 해석되게 됨

- 대한민국의 주권이 유명무실 해질 위험이 있음

 

 

8) 서비스 비설립권 인정 : 사업장을 우리나라에 설립하지 않아도 영업가능.

상대국가에서 사업장을 설립하지 않고도 영업을 할 수 있게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국내에 설립되지 않은 회사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이 없다.

따라서 서비스 비설립권 조항으로 인해 부과하거나 불법사실을 처벌할 수 없게 된다.

- 미국은 각 나라와 FTA를 맺으면서 "FTA이행법" 을 만들었음 : 이 법에서 " 미국법률에 저촉되는 모든 FTA규정은 어떤 상황에서든 모든 미국인에게 무효다"라고 선언했다.(미국에서는 FTA가 단순한 행정협정 일뿐임)

- 한국정부는 한미FTA에 저촉되는 한국의 모든 법(30여개)을 고치려고 한다. ( 한미FTA가 조약이며 법률이라고 주장함)

9) 공기업의 완전 민영화 + 외국인 소유지분 제한 철폐 : 미국 자본에게 한국은 100% 먹힌다.

한국의 공적이며 독점적인 공기업을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들에게 맛좋고 수월한 사냥감으로 던져주는 조항이다.

- 의료보험공단, 한전, 석유공사, 농수산물유통공사, 주택공사, 수자원공사, 토지공사, 도로공사, KBS, 중소기업은행도시가스, 수도공사, 우체국, 주택공사, 지하철공사, 철도공사,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등 미국의 거대한 투기자본에게 넘어가 사유화될 가능성이 농후함

- 수도요금, 전기료, 지하철요금, 가스요금, 의료보험료 등이 대폭 인상되게 됨으로서 서민경제가 파탄 나게 됨

10) 지적재산권 직접 규제 : 한국에 대한 지적재산권의 단속권을 미국이 직접 행사.

미국의 특허권자가 한국의 국민이나 기업에 대한 지적단속권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고가의 오리지널 약보다 값싸고 효과 좋은 카피약 사용불가능

- 미국의 경우 완벽한 민간의료보험에 가입되어 있는 사람이라도 성인1인당 1달에 70만원(700$)지출)

- 카페, 블로그, 개인홈피 등 지적재산권 문제로 엄청난 분쟁을 격어야 함

 

 

 

11) 금융 및 자본시장의 완전 개방 : 한국은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

현재도 그렇지만 앞으로 더욱더 한국금융 시장이 국제투기자본의 놀이터가 되게 하는 조항이다.

- 외국투기자본이 한국 내에서 아무런 제재없이 은행업을 할 수 있게 됨

- 외국투기자본이 국내은행의 주식을 100%소유할 수 있게 됨

-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감소로 많은 중소기업이 떼부도를 맞게 됨

- 사채 이자율이 제한이 없어지고 사채천국이 됨

12) 스냅백 조항(snapback)

한국정부가 미국과 약속한 자동차 협의사항을 이행하지 못할 경우 미국이 한국에 부여한 자동차 특혜 관세혜택을 언제든지 임의로 일시에 철폐할 수 있게 하는 조항이다.

- 미국의 무역보복이 일상화 되고 한국경제는 막장으로 내몰리게 됨

 

  FTA 그 후 캐나다, 멕시코

 

그렇다면 우리보다 앞서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들의 경제현황은 어떠할까? 미국과 FTA를 체결한 나라 중에 내노라할만한 국가는 겨우 오스트레일리아 정도다. 그것도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S)를 삭제한 다음에 체결했다. 일찍이 캐나다와 함께 북미자유무역지대(NAFTA)로 결속한 멕시코는 지금 경제적으로나 정치·사회적으로 거의 미국의 속국이나 다름없이 추락하였다. EU·일본·북유럽·중국 등 강대국들이 미국과는 단독으로 왜 자유무역협정을 맺지 않고 있는지 세계은행(IBRD) 보고서가 간접으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그것은 지구상의 세 가지 FTA 유형(type) 중 미국과의 FTA 방식이 가장 혹독하고 예속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상품무역과 관련한 관세면제 협정(South-South Type)이 아니고, 또 고유한 경제제도나 토착경제ㆍ문화정책에는 비교적 관대한 범관세 및 무역관련 경제협정(EU Type)도 아니다. 미국과의 FTA 방식은 그 어느 협정보다도 더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경제, 사회, 문화, 금융, 서비스, 교육, 노동 등 전반적인 투자 및 경제제도 동조화 협정이 미국식 FTA이기 때문이다.

 

1989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이후 각종 경제통계를 살펴보면, 자유무역협정이 캐나다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짐작할 수 있다. 캐나다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85년 미국의 77% 수준이던 것이 10년 만에 68% 수준까지 떨어졌다. 시간당 8.8달러 이하를 버는 성인 남성의 비율은 1989년 7.9%에서 1993년에는 8.9%로 늘었고, 같은 기간 시간 당 27.6달러를 버는 비율은 9.3%에서 11.6%로 늘어나 소득 불평등이 심화됐다. 자유무역협정 발효 직후부터 1993년 사이 하위 10%에 속하는 남성 노동자의 연간 실질소득은 무려 31.2%, 하위 20%는 20.2% 줄었다. 상위 20%는 연간 실질소득이 2%만 떨어졌다.

 

분배의 악화는 성장에도 나쁜 영향을 끼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가 집계한 회원국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감 추이를 보면, 캐나다의 경우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이 발효된 1989년부터 10년 동안 연평균 2.1% 증가에 그쳐, 이전 10년 동안(1979-1988년)의 연평균 증가율 3.1%보다 1%포인트 주저앉았다. 같은 기간 회원국 평균치 2.6%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어서 성장둔화의 요인을 일시적 세계경기 침체 등 다른 외부환경 탓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발효 전 10년 동안에는 캐나다의 증가율이 회원국 전체 평균치(2.9%)를 웃돌았다. 캐나다의 경제성장이 다른 회원국들에 뒤지는 양상은 1994년 나프타 발효 뒤 10년 동안에도 이어졌다.

 

한미 FTA는 미국과 한국 모두 비준이 완료되었다. 그리고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의 10년 후 모습을 확인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10년 후 모습은 어떠할까? 우리는 그저 체념만 하고 있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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