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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하려고 특조위에 남은 거 아닙니다"

 
2016.07.01 05:16:36
'강제 종료' 세월호 특조위 조사관들, 그간 못했던 그들의 이야기
 

짐을 싸는 파견 공무원들의 뒷모습을 망연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정부는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6월 30일 자로 '사망 선고'를 내렸다. 그나마도 120명 정원에 한참 못 미치던 인원이 절반가량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남은 인원은 위원장, 상임위원, 비상임위원, 별정직 공무원 싹 다 끌어모아도 45명 안팎. 원래도 크지 않던 조직이 이제는 정말 '소수정예'가 됐다.

그러나 외부에서 오는 시련이 클수록 내부의 결속은 커지는 법. 정부로부터 사망 선고를 받은 30일, 이들은 더욱 똘똘 뭉쳐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야 말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특조위는 이날 서울 중구 특조위 대회의실에서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장장 12시간에 걸쳐 특조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고민을 나누는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이어말하기' 대회를 열었다. 

 

 

▲세월호 특조위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 규명을 위한 이어말하기' 대회. 말하는 이는 이석태 위원장. ⓒ프레시안(서어리)


이번 밤샘 토론회는 조사관들이 자발적으로 준비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조위 관계자는 "(정부의 뜻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다짐에서 조사관들이 삼삼오오 뜻을 모은 것"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이나 위원이 아닌 일선 조사관들이 취재진이 모인 공개석상에서 발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개 발언에 익숙지 않은 이들은 신중하게 말을 고르면서도 그간 국민을 향해, 정부를 향해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토해내듯 털어놓았다.

이들은 "밥벌이를 위해 이 위원회 앉아있는 게 아니라는 걸 간곡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말하고 싶다"고 했다. "5살짜리 딸아이가 자신에게 왜 그 큰 배가 뒤집혔는지, 배가 뒤집힌 이유를 왜 조사할 수 없는지 묻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끝까지 가겠다"고 했다. 

제발 끝까지 세월호 진상조사를 하고 싶다는, 절규와도 같은 특조위 조사관들의 이야기를 지면에 그대로 옮긴다.

 

 

"고작 한 건'이 아닙니다" 

 

얼마 전에 위원회 첫 보고서가 나왔습니다. 세월호 선적된 모든 화물의 양을 조사했습니다. 조사를 통해서 기존에 있었던 것과 다른 사실을 정리해서 냈습니다. 모 언론에서는 '고작 한 건을 했다'고 보도한 걸 봤습니다. 고작 한 건이 그 한 건인 것 같은데, 그 한 건의 보고서를 제가 주도적으로 쓰게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위원회가 공무원도 파견이 안 되고 부족하다 보니, 순수한 의도를 가지고 자원을 해준 분들의 힘을 많이 빌었습니다. '고작 한 건'을 하려고 저와 자원해서 봉사한 분 그렇게 두 명이서 2개월 꼬박 바쳐서 하나하나 검증을 다 해서 발표했습니다.


왜 이런 말씀드리냐면, 그 하나 발표하려고 두 명밖에 안 되는 인력, 그것도 한 명은 아무 대가도 없이 밥만 사주면서 애써 해야지 이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려드리려는 겁니다. '고작 한 건'이 아닙니다. 저희는 그렇게 사명감 갖고 애써서 일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한 건이라는 식으로 이야기 나올 게 아니고, 그 한 건을 시작해서 다른 게 나올 때까지 지지를 받고 싶습니다. 앞으로 성과로 드러나는 과정이 있었으면 좋겠고, 꼭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다들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허투루 내면 안 되기 때문에 더욱 신중한 겁니다. 비록 기간 문제에 부딪혀 지금 나오는 성과가 미미해 보일지 몰라도 그게 아니란 걸 꼭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중략)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국회를 통해 조직이 구성됐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방해들이 있었습니다. 특경대(반민특위 직속 특별 경찰대)는 사무실을 아예 빼고, 무기로 뺐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조로 (특조위 사무실에) 쳐들어오는 거 말고 거의 비슷하지 않냐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흐름이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민특위는 이렇다 할 성과 없이 해산됐습니다. 저도 두렵습니다. 불안합니다. 반민특위처럼 끝날까 봐서요.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는다고 하지만 반복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간절히 바라는 건, 반복이 아니라 새로운 역사가 되었으면 합니다. 대형 참사를 조사하고 규명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만들어진 위원회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역사가 되는 걸 알 겁니다. 반민특위가 실패라고 끝났던 것처럼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러 글들에는 당시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들, 조사관들의 이름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결국엔 우리는 좋든 싫든 역사에 남습니다. 역사에 남을 때 부디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그래도 반민특위랑은 달랐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호중 위원이 말했듯, 결과물을 가지고 안산에 가서 아이들에게, 고인이 된 분들에게 '이랬더랍니다' 말할 정도까진 갈 수 있도록 위원장님, 위원님들, 과장님, 팀장님 믿고 끝까지 해보겠습니다.

 

(진상규명 소위원회 A 조사관)

 

 

ⓒ프레시안(최형락)

 

 

"저도 피해자들에게 '편해지라'는 말 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세월호 진상 규명보단 세월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들이 어떻게 하면 다시 일상생활에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가 가장 큰 주제이고 그 관심 때문에 여기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영국 힐스버로우 사고 자료를 보니 이런 자료가 있습니다.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는 피해자들이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 죽음의 정치적 법적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돕는다. 재난의 죽음은 복잡한 인과관계가 존재하고 생존자와 피해자 가족은 답을 찾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제가 진상규명보다는 회복에 관심이 있음에도 지금 이 이야기를 하려는 이유는 하나, 정부의 공식 조사는 피해자들의 회복에 1순위입니다. 이것이 선행되지 않는데 피해자들에게 회복을 바란다고 하는 것 자체가 또 다른 폭력입니다. 그래서 특조위가 계속돼야 합니다.

상담하는 입장이다 보니, '힘들겠어요', '편해지세요'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건 폭력 같아서 할 수 없습니다. 저는 상담사입니다. 일을 하고 싶습니다.

 

(지원 소위원회 B 조사관)

 

"이런 황당한 위원회가 어딨습니까" 

 

대통령이 특조위 기간 보장 요구에 대해 세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라는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정치인의 정치적 언사라고 하더라도 그건 너무 실망스럽고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요즘 말로 뭐가 중한지를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과거에 서너 개 정도의 국가폭력 조사한 기관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한 달 조사 기간은 아마 세월호 특조위의 석 달 기간에 맞먹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사사건건 과정 하나하나를 그냥 순순히 넘어가지 못하고 자료를 요청할 때 응하지 않은 적이 없던 적이 없습니다. 현재 권력을 조사하는 게 이렇게 힘든 것인지를 처음 경험했습니다. 조사 기간이 너무 짧습니다. 우리가 채용된 시점이 7월이고, 2차 채용이 11월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 황당한 위원회가 어딨습니까. 이 위원회를 통해 뭘 얻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입니까.

우리 위원회는 바깥에서만 힘든 게 아니다. 행정 부처와 지원 부서의 관리자와 상급자를 모시고 일하는 게 처음입니다. 지원 행정 부서는 조사 행위자들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거라고 접근하고 그렇게 일이 이뤄져야 합니다. 다 파견된 분들입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기준과 업무 편의성에 조사관들이 다 맞춰왔습니다. 이런 위원회는 처음 봅니다. 저는 9층에서 이상한 조사관이 되었습니다. 문제 제기하고, 그런 관행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이상한 조사관이 된 것입니다.

밥을 벌기 위해 하자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밥을 벌려는 목적으로 이 위원회 앉아있는 게 아니라는 걸 간곡하고 억울한 심정으로 말하고 싶습니다. '케이크 5만 원'이 대서특필된 적이 있습니다. 과거 모든 공무원 기관에서 다 했습니다. 하물며 체육대회도 있고 야유회도 있었습니다. 여기선 웃음 한 번 어려웠고 체육대회 같은 것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왜곡하는 것은 천인공노할 일입니다. 그런 데 대해 기자들이 제대로 써주셨으면 합니다.

 

(진상규명 소위원회 C 조사관)

 

 

ⓒ프레시안(최형락)

 

 

"다섯 살 딸아이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제가 이 자리에서 일하게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다섯 살이 된 딸입니다. 2년 전 4월 16일 당일에 사고가 난지도 몰랐는데, 사나흘 지났을 때 딸이 사진을 봤는지 물어봤습니다. 배가 왜 넘어졌느냐고요. 배는 가야 하는데 넘어져 있으니 의문을 갖고 질문을 던진 겁니다.


누군가는 단순한 교통사고라고 표현하는데,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 참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으로 대하게 됐고, 저는 아이의 물음에 대해 답을 주기 위해 노력을 해봤습니다.

네다섯 살짜리가 대한민국에 살면서 벌써 이런 질문을 어른에게 던져야 하는 상황이 답답합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참담하고, 그에 대해 답을 찾으려고 돌아다니는 과정에서 보람도 느끼지만, 그런 상황 자체가 눈물도 나고 답답하고 그렇습니다. 아이가 또 물어보게 될 것 같습니다. 왜 조사를 제대로 못 했느냐고요. 그럼 그때는 뭐라고 대답할까요. 미래가 있는 사회라면 최소한 아이들에게 이런 답은 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적어도 네 살 다섯 살 학교도 가지 않은 아이들이 의문을 갖게 만드는 사회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진상규명 소위원회 D 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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