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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해와 치유,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폭력적인지…”

 

[이영광의 발로GO 인터뷰 87] ‘위안부’ 문제 다룬 소설 <한 명> 김숨 작가이영광 기자  |  kwang3830@hanmail.net
 

6월항쟁의 도화선이 된 청년 이한열의 운동화 복원과정을 그린 <L의 운동화>의 김 숨 작가가 이번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처절한 삶을 소설화 한 신작 <한 명>을 출간했다.

소설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로 정부에 등록된 생존자가 단 한 명 남은 시점에 등록되지 않은 ‘위안부’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현재와 과거를 오간다. 출간까지의 뒷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2일 서대문역 근처 커피숍에서 김 숨 작가를 만났다.

김 작가는 <한 명> 집필 계기와 관련해 “신고한 ‘위안부’ 피해자보다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의 숫자가 훨씬 많은데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분이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하는 생각에서였다”고 밝혔다.

소설은 줄곧 주인공을 ‘그녀’로 표현하다 마지막에 ‘풍길’이란 이름을 등장 시킨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는 13살 때, 납치를 당해 만주 위안소로 끌려가는 순간 영혼과 육체를 강탈당한다. 소설 <한 명>은 ‘나’라는 실존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서 ‘그녀’가 잊고 있던 13살 이전, 고향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불러주던 ‘그녀’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음은 김 숨 작가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했다.

   
▲ 소설 <한 명> 김숨 작가 ⓒ 이영광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순간적 아닌 지속적인 것”

- 소설 <한 명>, 지난 8월 초에 출간되었는데, 반응은 어떤가요?

“‘위안부’ 문제에 평소 관심이 있으셨던 분들이 많이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고등학생들의 반응이 무엇보다 고맙고 뜻깊게 다가왔어요. 청소년 기자들과 만나 <한 명>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해 갖는 그들의 관심과 애정에 감탄했어요. 피해자들의 증손녀뻘 되는 그들이, 손녀뻘 되는 나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저 자신이 부끄럽기도 했어요. 그들의 관심이 순간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인 것에 안도했죠.”

- 주위에서 책을 읽고 뭐라고 하나요?

“‘쓰기 힘들었겠다’거나 ‘애썼다’ 같은 말씀을 주로 해주셨어요. 읽기도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썼으니, 쓰는 동안 힘들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은 일들과 살아 돌아온 이후에 그분들께 주어진 삶이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찍하고 고통스러웠잖아요. 하지만 그 말들이 이상하게 제게 위로가 되고, 든든한 힘이 되었어요.”

- 일본군 ‘위안부’ 이야기는 아픈 역사로 지금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한 명>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제 중편 <뿌리 이야기>에 ‘위안부’ 피해자가 지나가는 인물로 등장해요. 잠깐의 등장이었지만, 제게는 무척이나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그 소설에 대해 공개적으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을 때 언젠가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소설을 쓰고 싶다는 고백을 했어요. 바람은 있었지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결코 만만한 소재는 아니잖아요. 써지지 않으면 쓸 수 없겠구나 싶었는데, 작년에 ‘한 명’이라는 제목이 오면서 소설이 써지기 시작했어요.”

- ‘위안부’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제가 관심을 갖는 대상 중 하나가 ‘노인’이예요. 노인들에게 시선이 가요. 그들의 표정, 행동, 말들에 흥미를 느껴요. 영감을 받기도 하고요. 현재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들은 노인들이세요. 정주하신 못한 삶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는데,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이 열대여섯 살 이후로, 정주하지 못하고 뿌리 뽑힌 삶을 살아오셨어요.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피해자들에게 시선이 갔던 것 같아요.”

-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어땠나요?

“막연하면서도, 그분들이 죄인처럼 숨어서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 친할머니나 외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가 아니어서, ‘위안부’ 피해자들이 저와 먼 분들처럼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분들의 증언들을 읽으면서 그분들이 제 아주 가까이에서 살고 계셨다는 것과 제 친할머니나 외할머니를 대신해 ‘위안부’로 동원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위안부’ 피해 사실 숨길 수밖에 없었던 분들의 ‘입’이 되어 주고자…”

- <한 명>은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지 않은 할머님을 주인공으로 내세웠는데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하고, 역사적인 사명감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증언하시는 피해자분들을 보면 존경스러워요. 그런데 살아 돌아온 많은 피해자들이 끝까지 가족에게조차 말하지 못한 채 가슴 속에 한으로 품고 살다 돌아가신 걸고 알고 있어요. 그런 분들의 내면을 그리고 싶었고, 수면 아래에서 숨죽이고 있는 그분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싶었어요. 소설로라도, 자신이 피해자라고 떳떳하게 말씀하시는 못하는 분들의 ‘입’이 되어 주고 싶은 마음이 제게 있었던 것 같기도 하죠.”

- 소설 속에서는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하지 않은 분이 한 명인데, 실제로는 더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가는 분이 어딘가에 계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자보다 신고하지 않은 피해자의 숫자가 훨씬 더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분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끝끝내 말하지 못한 채, 사과의 어떤 말도 듣지 못한 채, 피해자임에도 도리어 죄인처럼 살다가 돌아가셨죠.”

-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요.

“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현재의 삶을 이해하는 것도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분들이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계신지 그려 보이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현재의 오늘의 삶이 여전히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까요.”

-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해야 해서 취재도 많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증언집들과 관련 기사를 찾아 읽고, 관련 영상 자료들을 찾아보았어요. 제가 구할 수 있는 자료들은 거의 구해서 읽고, 본 것 같아요. 하지만 ‘위안부’ 피해자분들을 찾아뵙지는 않았어요.”

- 왜 안 만났죠? 직접 만나 증언을 듣는 것도 의미 있었을 텐데.

“일종의 거리 두기를 한 것인데, 한 분의 경험에 갇히는 것을 우려했던 것 같아요. 할머니들을 찾아뵙고 ‘할머니께서 겪은 일들을 소설로 쓰고 싶으니 저에게 좀 들려주세요’라는 말을 할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어요.”

“소설 <한 명>, 돌아가신 ‘위안부’ 피해자들이 남긴 증언”

- 현재 살아계신 분이 적지만 그래도 여러 분을 만나시면 되지 않을까요?

“현재 생존해 계시는 ‘위안부’ 피해자분들은, 그분들이 하실 수 있는 증언을 수십 수백 차례 하셨어요. 그분들이 들려주실 수 있는 이야기들을 충분히 들려주셨다고 생각해요. 돌아가신 분들이 남긴 증언들도 제게는 중요했고요.”

- 증언집을 읽으며 느끼는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해 제가 너무 몰랐다는 반성을 절로 하게 되더라고요. 증언집에 실린 내용들이 상상을 초월해 놀랐어요. 피해자분들이 증언하는 동안 얼마나 고통스러우셨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증언 작업을 꾸준히 해오신 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도 들고요.”

- 힘드셨을 것 같은데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은 무엇이었어요?

“불임의 몸이 되어 돌아온 피해자분들이 많으세요. 대개의 여자에게는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평범한 삶이 그분들께는 주어지지 않았어요. 평범한 삶을 간절히 바라고, 바라는 대목을 읽을 때 가슴이 아팠어요.”

- 소설에서 주인공을 ‘그녀’로 표현하다 마지막에 ‘풍길’이란 이름을 등장시켰는데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연재할 때만 해도, 주인공은 물론 다른 소녀들에게 이름을 부여하지 못했어요, 그러나 퇴고하는 과정에서 이름을 부여하게 되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는 13살 때, 납치를 당해 만주 위안소로 끌려가는 순간 영혼과 육체를 강탈당해요. 저는 <한 명>이 ‘나’라는 실존을 찾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고 생각해요. 그녀가 잊고 있던 13살 이전 고향에서 부모님과 친구들이 불러주던 태초의 이름을 찾아주고 싶었어요.”

“위안소의 소녀들이 가장 그리워했던 존재.. 엄마”

-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과 여동생의 대화에서 ‘뭘 갖고 싶냐’는 여동생의 물음에 주인공은 대답을 못 하지만 여동생이 잠들었을 때 “엄마, 엄마가 갖고 싶어”라고 말하는데 왜 엄마가 갖고 싶다고 했을까요?

“‘위안부’ 피해자분들의 증언을 읽다 보면, 위안소 시절 죽어서라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어 했어요. 어떻게든 살아서 고향에 돌아가자는 약속을 서로 하기도 했고요. 위안소의 소녀들에 가장 그리운 존재는 엄마였던 것 같아요. 살아서 돌아온 그녀들을 가장 따뜻하게 보듬어준 존재가 엄마였던 것 같고요.”

- 소설에서 각주가 많은 건 거의 드문 것 같은데 아무래도 증언집을 참고로 해서 그런가요?

“저의 소설적인 상상력만으로는 쓸 수 없고, 써서는 안 되는 소설이었어요.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진실과 사실에 근거해야만 했어요.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증언들을 소설 안으로 끌어오기로 했어요. 그분들의 증언이 제게 영감을 주었을 뿐 아니라, 소설을 끌고 나가는 데 큰 힘이 되었어요. 출처를 정확히 밝히는 게 피해자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최근 공식 출범한 '화해치유재단'에 일본 정부가 이달 중으로 10억 엔(약 111억 원)을 집행한다며 외교부가 발표한 다음 날인 26일 오전 서울 마포구 연남동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왼쪽), 김복동 할머니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화해와 치유, 쓰는 사람에 따라 얼마나 폭력적인지…”

-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 면전에서 우리 정부 주도로 출범한 ‘화해 치유 재단’에 10억엔을 송금했다는 이유로 소녀상 철거를 압박하면서 이면합의 의혹이 또다시 불거졌어요.

 

“화해와 치유가 굉장히 좋은 낱말이잖아요. 그러나 좋은 낱말을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쓰느냐에 따라 폭력적인 낱말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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