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로 환경 읽기 12. <동경핵발전소>
핵발전 유치한 도쿄도지사, 핵발전 옹호할수록 빠져드는 딜레마 풍자
서울에서 안 된다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안 되는 것, 교훈 줘
» 지난해 그린피스 활동가들이 고리원자력발전소 신고리 3·4호기 앞에 상륙해 신고리 5·6호기 추가 건설 계획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원자력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수도권에는 원전을 세우면 안 되고 씀씀이가 적은 울주에는 왜 되나. 울주/ 김봉규 선인기자 bong9@hani.co.kr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은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발전소 건설에 필요한 입지 조건은 다음과 같다. 첫째, 냉각수로 사용할 수 있는 충분한 물이 있어야 한다. 둘째, 에너지 소비 지역과 생산 지역의 거리가 가까워야 한다. 셋째, 지질학적인 안정성이 확보돼야 한다. 넷째, 만에 하나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따른 피해가 작아야 한다.
냉각수는 충분하다
그렇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은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고 있다. 먼저, 냉각수를 보면 100만㎾급 원전 한 기를 돌리기 위해서는 매초 70톤 정도의 물이 필요한데, 한강은 초당 평균 600톤 정도의 물이 흐르기 때문에 핵발전소 한, 두기 정도를 가동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한강의 유량이 풍부하다는 것은 이미 지난 4대강 사업의 타당성 평가에서도 밝혀진 바 있다. 당시 평가를 보아도 한강은 상시로 산업용 화물선 및 여객선 운항이 가능할 정도로 유량이 풍부하다. 심지어 4대강 사업 이후 오히려 유량이 줄어들어 녹조가 자주 발생하는 요즘에도 핵발전소를 가동하기에 부족함 없는 양의 물이 흐른다.
» 한강은 유량이 줄어 녹조가 발생할 때도 핵발전소를 가동하기에 충분한 물이 흐른다. 지난해 녹조로 초록빛으로 물든 팔당호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송전 손실 제로
둘째, 만약 서울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외부로부터 전기를 끌어올 필요가 없기 때문에 송전에 따른 에너지 손실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송전 과정에서 손실되는 에너지의 양은 전체 생산량의 30%에 달한다. 이러한 송전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 초 고전압으로 송전하고 있고, 이로 인해 고압 송전탑 주변 주민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송전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에너지를 소비하는 곳에서 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에너지 자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2013년 기준) 서울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면 서울의 에너지 자급률이 올라갈 뿐만 아니라 더 효율적으로 핵발전소를 운영할 수 있다.
또한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곳에 국가에서 제공해 주는 다양한 지원과 편의시설은 추가로 얻을 수 있는 혜택이다. 따라서 서울은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음에도 건설이 강행될 것으로 예상하는 핵발전소를 유치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일 필요가 있다.
» 전국 시도의 전력자급률. 자료=이수경,"서울 강남, 그들만의 특권"<물바람숲>영
지질학적 안전성 확보
셋째, 서울은 핵발전소를 운영하기에 지질학적으로 안전하다. 12일 핵발전소가 밀집한 경북 경주에서 기상청 관측 이래 최대인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지진은 양산단층대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서울에는 이제껏 별다른 지진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단층대가 지나지도 않는다.
설사 지진이 발생한다 해도 진도 6.5까지 견디도록 건설되고 있는 핵발전소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이미 한국수력원자력에서는 약 20쪽에 달하는 홍보자료를 통해 핵발전소가 지진에 얼마나 안전한지를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 9월12일 경북 경주시에서 관측 사상 최고 규모의 지진이 일어났다. 한수원은 원전의 내진설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자료들을 토대로 볼 때, 서울은 지질학적으로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무엇보다 이미 서울에 핵발전소보다도 낮은 내진 기준(규모 5.7~6.3)으로 건설되고 있는 도시철도들이 수도 없이 많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심지어 1~4호선은 내진 시설이 전혀 되어 있지 않다), 서울이 핵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지질학적으로 얼마나 안전한 곳인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2004년 1월에는 서울대학교 교수 63명이 서울 관악산에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만들자는 성명을 발표한 적이 있을 정도로 서울의 지질학적 안전성은 이미 전문가들의 검증을 충분하게 거쳤다(■ 관련 기사: “관악산에 핵폐기장 만들자던 사람에게 원전안전 맡길 수 있나”, “지나친 공포? 우리에겐 스스로 조심할 권리가 있다”).
당시 성명에 서명한 63명의 교수 중에 황우석 전 수의대 교수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 다소 의아하지만, 어느 한 분야에서 정통한 전문가는 다른 분야에서도 혜안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측면에서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서울대 터 안 관악산에 유치하는 제안서를 발표하는 강창순 전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오른쪽). 왼쪽 끝에 황우석 전 수의대 교수가 보인다.
핵발전소는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다
핵발전소가 얼마나 안전한 발전 시설인지를 이 글을 통해서 다시 제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다. 앞선 지질학적인 안전성을 포함해서, 핵발전소가 그 이외의 사고에 대해서도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은 정부와 최고의 전문가들이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다.
한국수력원자력 누리집 홍보센터에 접속해 보면 “알수록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 원자력, 지진에도 안전한 핵발전소, 원자력 30년사 꿈꾸는 에너지 아름다운 미래” 등과 같은 자료들을 확인할 수 있다.
» 단단한 암반 위에 건설하기 때문에 핵발전소는 안전하다고 한다. 한수원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공 조직이며, 수많은 전문가가 일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에서 홍보하고 있는 내용인 만큼 우리가 그 내용에 의구심을 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홍보자료들이 핵발전의 긍정적인 면에 치우쳐 있고, 방사성폐기물 처리 문제나 폐원자로의 처리 문제 등이 충실하게 다뤄지지 못한 것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떤 자료든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차원에서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정부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러한 자료들을 꼼꼼하게 읽어보면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건이나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건은 우리나라에서는 발생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말 그대로 남의 나라 일일 뿐이다. 다소 편파적인 자료를 읽는 데 거부감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자료들을 읽어볼 것을 권한다.
영화 <동경핵발전소>
앞선 필자의 글을 읽으면서 어떤 생각을 했는가? 아마 내용이 다소 엉뚱하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한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이다. 필자에게 “만약 서울에 핵발전소가 설치된다면?” 이라는 질문을 하게끔 한 영화가 바로 <동경핵발전소>이다.
» 영화 <동경핵발전소>에서 도쿄에 핵발전소를 유치하자고 주장하는 도지사.
이 영화는 도쿄 도지사 텐마(야쿠쇼 코지)가 도쿄도청 주요 보직자들과 기획회의를 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회의에서 도지사는 일본 수도 도쿄에 핵발전소를 유치하겠다는 선언을 한다. 더욱이 그 위치는 도청 바로 앞 공원이다.
이 갑작스러운 선언에 회의에 참여한 여러 보직자가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며 반발하지만, 도지사 텐마의 논리적인(?) 설득에 참가자들은 하나, 둘 수긍해 간다. 보직자들은 각자 자신의 입장에서 도지사의 주장을 반박해 보려고 하지만 “만년 적자인 도쿄 재정 문제 해결, 청년 일자리 창출, 핵발전소 유치 지역 지원금 활용”과 같은 확실한 경제적 효과 앞에서 점차 할 말을 잃어 간다.
» 도쿄에 핵발전소를 유치해야 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는 도지사.
또한 핵발전소를 도쿄에 건설하게 되면 도쿄 시민이 강하게 반발할 것이라는 의견에 대해서 도지사는 정색하며 “원전 건설에 따른 위험은 시골이나 도쿄나 똑같이 감수해야 한다.”라고 말하는 장면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자승자박의 논리
도쿄 도지사가 핵발전소를 유치하자는 논리에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논리들이 현재 핵발전을 찬성하며 주도하는 진영의 논리라는 것이다.
핵발전이 정말 그렇게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경제적이라면 그러한 발전소는 멀리 외딴 지역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가 집중된 도심 지역에 위치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핵발전의 안정성, 친환경성, 경제성을 강조하면 할수록 핵발전소의 입지는 대도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현실의 경우 핵발전소는 대도시 주변에 절대로 건설되지 않는다. 이렇게 <동경핵발전소>는 핵발전을 옹호하면 할수록 빠져들게 되는 딜레마적 상황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실제로 서울 시장이 한강 변에 핵발전소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한다면 서울 시민들과 관련 정치인들은 이를 막기 위해 그들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할 것이다. 핵발전소는 서울에 건설되면 절대로 안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서울에는 안 되는 것이 울진, 월성, 영광, 고리에서는 되는 것일까?
얼마 전부터 서울에서는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에너지 소비량을 줄여서 우리나라의 원전을 하나 줄여보겠다는 것이 운동의 주요 골자이다. 이 운동이 정치적으로 보여주기식 활동이 아니라 진짜 원전 줄이기 운동이 되려면, 서울에 전기를 보내려고 지금도 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는 지역을 위해 더욱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안 된다면 우리나라 어느 지역에서도 안 되는 것이다.
» 서울시가 ‘원전 하나 줄이기’ 정책의 하나로지난 8월11일 원전하나줄이기 정보센터에서 개최한 ‘2016년 여름 붕어빵 캠프’에 참여한 가족이 25개 자치구의 에너지 소비 현황을 실시간 다양한 색상으로 알려 주는 ‘서울에너지 나무’를 보고 있다. 에너지 소비량이 높은 지역은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장수선 인턴기자
에너지 수급난 등을 이유로 타 지역에서 원전이 계속 운행되고, 새롭게 건설되는 것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 서울을 위해 에너지를 생산하느라 고생 많았지만, 이왕 운영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운영해 주시고, 가능하면 몇 기 더 건설해서 에너지를 생산해 주십시오. 서울에 핵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이 여러모로 타당하지만 그렇게 하기는 왠지 찝찝하니 서울에는 건설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이 영화가 개봉된 지 7년이 지난 2011년에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 사고를 겪었다. 만약 일본 시민과 정치인들이 이 영화에 조금만 더 관심을 보였다면, 그래서 노후 원전부터 줄여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면,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를 겪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현재 우리나라도 과거 일본이 갔던 길을 그대로 걷고 있다. 인적이 드문 먼 곳,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해안가에 설치된 핵발전소는 안전할 것이라고 믿으면서 말이다.
조성화/ 환경과교육연구소 대표, 수원시 기후변화체험교육관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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