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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통령, 연합 정치 안하면 '동물 정치' 된다

 
[기고] '포스트 87년 체제'의 선거제도-정당정치 ②
선학태 전 전남대 교수
2017.01.22 12:42:50
 
이 글은 87년 체제의 한계와, 극복 방안을 서술한 선학태 전 전남대 교수의 두번째 글이다. '승자 독식' 양당제 구조의 폐혜에 관한 '진단'은 다음 링크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포스트 87년 체제'의 선거제도-정당정치 ① 
 
해법 : 선거제도-정당정치 패러다임 교체
 
먼저, 권력분점의 연동형 비례대표제. 승자독식 소선거구제의 안티테제는 권력분점 비례대표제이다. 이점에서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이념·노사·계층·지역·세대 등 다층적 균열이 제대로 조직·대표되도록, 정당 득표율-의석점유율 간 비례성을 극대화하는, 권력분점 '연동형 비례대표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소선거구제 연동)로 개혁돼야 한다.
 
권력분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정당 중심의 비례대표제와 지역 중심의 단순다수대표제 간의 유기적인 연계 기제가 작동하여 계층·세대·생태 대표성과 지역대표성이 절묘하게 조합될 수 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재벌 경제력 집중, 노동시장 이중구조, 청년실업, 비정규직차별, 소득·부 양극화, 수도권-지방 불균형 등 공공악재를 혁파하는 의원 의정활동을 촉진하는 제도적 인센티브이다. 바꿔 말하면 비례대표제 하의 의원들은 협소한 지역(구) 예산·이권·특혜를 챙기는 '골목정치'의 브로커가 아니라, 경제민주화-복지국가-경제성장 등 전국민적 전사회적 공공재 확대의 정책의제화와 입법화에 충실한다. 
 
둘째, 이념블록 다당제. 권력분점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사회적 기반에 뿌리를 두고 비전·정책을 차별화하는 이념블록 다당제를 유인한다. 이념블록 다당제는 한국사회의 노사·계층·이념·세대·환경·지역 등 복합적인 갈등과 분열을 조직·대표하는, 균형 잡힌 '보수우파-중도-진보좌파 블록'으로 재편되는 '무지개' 정당체제이다. 
 
다당제를 하부구조로 하는 '보수우파-중도-진보좌파 블록'의 정당체제는 각각 30% 안팎 분포의 '진보좌파 vs 중도 vs 보수우파' 블록으로 다원화되고 있는 우리사회의 이념적 스펙트럼 현상을 투영하는 '포스트 87년 정당체제'이다. 
 
이념블록 다당체제에선 이념적 '색깔'에 따라 정치인들의 '교통정리'가 이뤄진다. 진보좌파 인사는 진보좌파 정당으로, 중도인사는 중도정당으로, 보수우파 인사는 보수우파 정당으로 이동, 정체성이 차별화된 정당체제가 구조화된다. 
 
이념블록 다당제 하의 유권자들 당선 가능한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전략적 투표가 아니라 정당의 정강정책을 보고 표를 주는 진성투표를 행사한다. 무엇보다 이념블록 다당제 하에선 지역주의 정치는 마치 봄날 눈 녹아 내리듯이 사라질 것이다. 지역주의 정치는 비단 지역개발 차이와 인사차별의 시정만으로 극복될 수 없다. 이건 노무현 정부 하에서 확연히 검증되었다. 탈(脫)지역주의 정치는 가치와 정책비전에 기초한 '탈지역적 계급·계층·생태·세대' 중심의 이념블록 다당체제의 제도화로 접근해야 한다. 지역 유권자가 가치·정책 프로그램을 보고 정당을 선택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셋째, 이념블록 교차 연합정치.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념블록 다당제 하에선 노동·저소득층의 이익을 대표하며 복지정치를 선호하는 진보좌파 정당도, 계층적 중간집단과 이념적 중도층을 대표하며 실용주의 정치를 지향하는 중도정당도, 기업·상류층의 이해를 대표하며 성장정치를 선호하는 우파정당도 국회권력을 독과점하는 패권정당이 되는 것이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념블록 다당제는 정당 간 권력분점·공유를 유인한다. 바꿔 말하면 국회 과반의석을 점유한 정당이 부재하는 다당체제는 통상 정책지향, 공직지향, 득표지향의 연합정치를 유인하는 제도적 인프라이다. 
 
이념블록 다당제는 행정부·국회의 정책의제화·입법화 과정에서 교차적 협조가 아니면 파국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따라서 진보좌파-중도, 보수우파-중도, 진보좌파-보수우파 등 이념블록을 뛰어넘는 다양한 유형의 이념블록 교차 연합정치가 제도화된다.
 
이런 시나리오는 실제로 현실화되었다. 소선거구제-양당제-집권당단독정부 중심의 영국식 웨스트민스터 모델을 지향했던 뉴질랜드의 정당정치는 1993년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후 웨스트민스터 정당정치 패턴으로부터 이탈하는 중대한 변형을 경험했다.
 
즉 6개 정당이 의회에 진출하여 진보좌파-중도-보수우파 구도의 이념블록 다당체제가 창출됐고, 어떤 정당도 의석 과반을 획득하지 못해 국민당/뉴질랜드제1당 연립정부(1996~99), 노동당 주도 연립정부(1999~2007) 등 이념블록을 넘나드는 연합정치가 제도화됐다. 
 
연합정치에서 이른바 '회전축'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 '회전축' 정당은 의회 과반의석을 형성하는 캐스팅보트를 쥐고 때론 진보좌파 정당, 때론 보수우파 정당, 때론 중도정당을 연정파트너로 번갈아 선택하는 등 이념블록을 넘나드는 연합정치의 절묘한 권력 균형추 역할을 한다. 
 
예컨대 독일의 이념블록 다당제에선 '회전축' 연합정치가 제도화돼 있다. 기민당·사민당, 좌-우 양대 정당 중 어느 정당도 구조적으로 과반의석을 획득할 수 없어 소수정당의 협력 없이는 독자적으로 정부구성이 어려운 구도가 통상적으로 나타난다.
 
이 때문에 양대 메이저 정당 간 경쟁구도에서 역설적으로 소수정당인 자민당과 녹색당이 정치적 균형추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기민당과 사민당은 경쟁적으로 피벗정당인 자민당 혹은 녹색당을 연정파트너로 획득하려 한다. 이처럼 독일의 비례대표제-이념블록다당제는 이념블록 교차의 연합정치를 제도화한다. 
 
이념블록 교차의 연립정부는 노동과 자본을 동등하게 대표하며 노사(정) 파트너십의 안정적 작동을 견인한다. 노사(정) 대화에서 정책교환이 이뤄진다. 사용자단체는 법인세 인하, 노동유연화 등 친자본적인 정책만을 요구할 수 없으며, 지배구조개선-중소기업상생협력 등 양보·화답 스탠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노동도 전면무상의료・재벌해체 등 포퓰리즘 정책만을 밀어붙일 수 없고, 대신 임금인상 자제, 노동유연성 등 친기업적 정책의 수용이 불가피하다.
 
예컨대 덴마크·네덜란드·핀란드 이념블록 교차의 연합정치는 유연안정성 모델이라는 '황금 트라이앵글'을 창출하는 노사정 대화를 촉진시킨 정치적 동력이었다. 비유럽국가 브라질의 룰라 좌파 대통령(2002~2010)의 좌우 초이념 블록 연립정부도 빈민-서민 복지정책과 친기업적 신자유주의 정책을 동시에 수용하는 노사정 대타협을 유도하곤 했다.
 
연정 대통령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유인하는 다당제-연합정치는 대통령제와의 제도적 조합이 불가능하다는 비판이 있다. 다당제-연합정치는 내각제와 제도적 친화성을 가지는 반면, 다당제-연합정치-대통령제는 행정부-입법부 교착상태로 국정마비 등 대통령제의 리스크를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따라서 양당제-집권당단독정부-대통령제가 통치능력·효율성을 향상시키는 최상의 제도적 조합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연립정부는 의원내각제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대통령제 하의 연립정부는 대통령 소속정당이 의회에서 과반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는 소수정당일 경우에 구성된다. 연립정부-대통령제 조합이 불가능하거나 '예외적' 현상은 결코 아니다. 연합정치-권력구조 관계에 필연적 논리나 제도적 인과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국정운영 패러다임을 협치-연정 모델로 전환시킬 필요조건인 정치적 인프라, 즉 '여소야대 5당체제'라는 정치적 하드웨어는 구축되었다. 금년 조기대선에서 어느 정당, 누가 집권해도 여소야대국회-소수파대통령 구조에 맞닥뜨릴 것이기 때문에 집권당 단독정부 구성으로 국정안정을 기대하는 건 환상이다. 집권당-야당 간 교차적 협치 혹은 연립정부를 구성하지 않으면 정치적 파국·공멸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소수파 대통령의 국정운영의 전략적 옵션은 야당-대통령 간 교착상태를 돌파하기 위해 야당과의 협치 공간, 아니면 연립정부 구성을 탐색하는 것 외에 다른 탈출구가 없다. 사실 박근혜 정부의 패착은 권력분점의 협치를 하라는, 작년 4·13 총선 민심이 던진 준엄한 메시지에 제대로 순명하지 않는데서 비롯된다. 
 
그러나 앞서도 지적했듯이 현재의 여소야대 5당 체제는 사회적 뿌리를 둔 이념적 차별성을 갖고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견고한 다당체제라기 보다는, 대권 주자 간 권력투쟁과 정파적 이해 차이 등으로 인해 급조된 일과성의 '예외적 구도'일 가능성이 높다. 한마디로 5당 체제가 제도적으로 구조화된 것이 아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불안정한 구조이다. 그래서 이 글은 권력분점 연동형 비례제-이념블록다당제-연합정치의 제도화를 주장한 것이다. 
 
연합정치는 권력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를, 권력분점의 연정 대통령제(coalitional presidentialism)로 전환시킨다. 연정 대통령제는 의원내각제와 유사하게 작동하며 한국 대통령제의 아킬레스건인 대통령-국회(야당) 간의 정책·입법 교착상태를 완화하는 제도적 연결고리이다. 
 
참고로 브라질 연정 대통령제를 소개한다. 브라질의 비례대표제-다당제-연합정치는 한국형 연합정치의 설계에 의미심장하다. 사실 브라질 '1988년 헌법'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용인했다. 그래서 종종 미국 주류 정치학자·정치인들에 의해 최악의 제도적 디자인으로 혹평했다. 그러나 브라질 정당정치는 개방형비례대표제-대선결선투표제-이념블록다당제-연합정치-연정대통령제를 매우 정상적으로 작동시키고 있다. 
 
예컨대 브라질의 사민당 소속 카르도소(1995~2002) 대통령은 중도정당과 보수정당들, 그리고 노동자당의 룰라 대통령(2003~2010)과 호세프 대통령(2010~2016 전반기)은 중도좌파에서 중도우파에 이르기까지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한 초블록 연정 시스템을 작동시켰다. 초블록 연정은 대통령 소속 정당을 비롯한 어떤 정당도 자신의 정책만을 고집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연정 파트너 정당 간의 정책조율·교환 메커니즘을 통해 대통령-의회 간 입법교착을 돌파했다. 
 
비례대표제-연합정치-권력구조 관계 
 
'대통령 4년 중임제 vs 분권형 대통령제 vs 내각제' 등 권력구조 중심의 택일적 개편이 개헌 논쟁의 핵심 의제가 돼서는 안 된다. 권력구조의 작동양식은 선거제도-정당정치 패턴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프랑스 소선거구제-분권형 대통령제(2000년 개헌 이후)와 영국 소선거구제-내각제는 일반 통념과는 달리 사실상 여야 간 협치 시스템이 붕괴되는 양극적 블록정치로 작동한다. 반면 브라질 비례대표제-4년중임 제왕적 대통령제는 좌-우 블록 경계를 넘나드는 정당 간 연정 시스템에 의해 작동한다. 이 사례들은 협치형 헌정체제란 권력구조 그 자체가 아니라 정당 간 권력분점을 견인하는 비례대표제-연합정치에 의해 설계될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단언컨대, 개헌을 통해 4년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중 어떤 정부형태로 개편해도(금년 대선에서 어느 정당, 누가 집권해도) 선거제도-정당정치가 비례대표제-연합정치로 전환되지 않으면 국회는 식물·동물 국회, 행정부와 충돌하는 악순환을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권력 집중과 분산은 정부형태가 아니라 선거제도-정당체제의 종속변수에 불과하다. 본래 권력집중형 권력구조는 대통령제가 아니라 국회의 다수파가 행정부와 국회 모두를 장악하는 내각제이다. '소선거구제+내각제'(영국), '소선거구제-정당명부비례대표 병립제+내각제'(일본)인 경우 집권당이 사실상 행정부와 입법부 모두를 장악·통제하는 제왕적 총리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내각제가 권력 분산형으로 보이는 이유는 내각제 국가들이 대체로 다당제를 유인하는 비례대표제를 도입, 복수 정당으로 연립정부를 작동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현행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로 인해 권력구조 개헌이 불가피하다면 대안적 분권형 권력구조는 국가의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에 성공한 핀란드식(2000년대 이전) '대통령 우위 분권형 대통령제'를 제안한다. 그러나 핀란드 '대통령 우위 분권형 대통령제'의 안정적 작동은 분권형 대통령제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비례대표제-연합정치와의 연동을 통해 가능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핀란드 비례대표제-다당체제는 득표율·의석율에서 30%를 상회하는 지배정당을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핀란드 정당정치는 연립 과반내각 혹은 연립 과대규모내각으로 작동하며, 역대 내각은 좌우블록 정당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연합정치이다. 이러한 이념블록 교차의 연정은 의회-행정부 협치 공간을 확장하고 대통령·총리가 어느 정당 출신이든 상관없이 대통령-총리 간 권력 갈등 및 정책갈등을 조정하는 기제이며, 각 정당이 자신의 특정 이념적 정향에 입각한 정책프로그램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정치적 공간을 구조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선거제도-정당정치 혁신의 선차성 
 
선거제도-정당정치는 정부유형·이념성-국회·행정부관계-노사정관계-시장경제유형-조세·복지국가유형을 규정하는 강력한 임팩트를 투사하며 민주주의 발전의 지렛대로 작용한다.
 
건물에 비유하면 선거제도는 '주춧돌'이고 정당체제는 '기둥'이며, 권력구조는 '지붕'에 불과하다. 주춧돌과 기둥을 발본적으로 갈아치우겠다는 강렬한 문제의식 없이, 달랑 지붕만 바꾸려는 '헌법개정'은 절대로 올바른 수순이 아니다. 개헌론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명제이다. 확언하건대,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념블록다당제-연합정치는 4년 중임 대통령제, 분권형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등 어떤 권력구조와도 조응이 가능하다. 
 
촛불항쟁의 저변에는 '대한민국 혁명'을 달성하라는 열망이 관류한다. "대한민국 세상을 갈아 뒤엎는 새판짜기"의 유일한 방법은 비례대표제가 유인하는 정당정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 외에 다른 도리가 없다. 권력분점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념블록다당제-연합정치의 제도화야말로 한국민주주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가는 협치형 헌정체제의 하부구조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정치적 민주주의와 사회경제적 민주주의가 선순환하는 '포스트 87년 체제'를 그랜드 디자인해야 한다.  
 
지구가 평평하지 않고 둥글다는 패러다임 전환이 신대륙을 발견했듯이 권력분점 연동형 비례대표제-이념블록다당제-연합정치는 경제민주화-복지국가-사회통합을 조합하는 대한민국의 '해 뜨는 지평선'을 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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