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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3.1절 ‘남북해외 연석회의’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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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7  17: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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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상호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남측 단장과 7일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졌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내년 3월 1일 개최를 목표로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를 추진하기로 남북해외 대표단이 7일 합의했다.

6,7일 양일간 중국 선양(심양) 칠보산호텔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남측 단장으로 참석한 임상호 6.15남측위 공동대표는 7일 낮 현지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7일 오전 계층, 부문별 실무모임 직후 임상호 단장은 “좀더 폭넓게 연석회의를 3월 1일 정도로 한번 해보자고 잠정적으로 결정됐다”며 “가능하면 남이나 북, 국내에서 했으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해외에서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7일 오전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남북해외 연석회의 추진 관련 남북해외 협의가 진행됐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상호 단장과 이승환, 한충목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연석회의 추진기획단’ 위원과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 양철식 부위원장, 김성혜 위원, 림용철 6.15북측위 학술분과위 부위원장, 그리고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해외측준비위원회’ 신필영 명예위원장과 손형근 부위원장, 조선오 사무국장 등은 칠보산호텔 3층 회의장에서 연석회의 관련 실무협의를 갖고 이같이 결정했다.

전날 공동토론회 결과를 담은 공동결의문에서 남북해외 대표들은 “우리는 그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각계 접촉과 교류를 복원시키고 전민족적 통일회합으로서의 연석회의를 반드시 실현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구체적 시점을 적시하지는 않았다.

   
▲ 6일 중국 선양 칠보산호텔에서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가 열렸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임상호 단장은 회의 분위기에 대해 “지금 정세가 정세인 만큼, 이대로 계속 간다면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는 절박함을 갖고 있다”며 “남북해외가 어떻게 긴장국면을 풀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평상시보다 더 깊은 고민을 갖고 임했다”고 밝혔다.

또한 “해외 분들, 특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는 일본 분들의 한반도 통일에 대한 남다른 바람을 느꼈고, 미국에서 통일운동을 해온 분들도 민족공멸의 위기 상황에 절박한 마음으로 연석회의를 같이 준비하고 오셨다는 걸 느꼈다”고 전했다.

문제는, 아직 추진기획단 수준에 머물고 있는 남측이다. 북측과 해외위는 연석회의 준비위를 구성하고 적극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임상호 남측 단장이 6일 공동토론회 모두에 축하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울산진보연대 상임대표와 6.15울산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오랫동안 진보운동진영에 몸담아온 임 단장은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태로 달리고 있는 이 시점에서, 오히려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 우리가 좀더 노력해야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처음으로 남북해외 공동행사의 단장을 맡았다는 임 단장은 “전체 구성원들의 생각을 제대로 대표해서 전달할 수 있는가 많이 부담스러웠다”며 “다행스럽게도 다들 평상시에 참여했던 분들이기 때문에 큰 문제 없이 수행할 수 있었다”고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한편, 7일 오전 칠보산호텔에서 진행된 각 계층 부문별 실무협의에서는 다양한 논의가 오갔지만, 남측 정부가 민간교류를 전면 금지하고 있어 성사여부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박석민 6.15노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올해 서울에서 개최키로 합의됐던 노동자통일축구대회를 내년 5월 1일 개최를 목표로 다시 추진키로 했다”며 “남북이 합의했던 일제의 침략만행과 재무장화를 규탄하는 반일토론회를 조속히 개최하는 노력을 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남측 대표단이 기념사진을 남겼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최상은 전국농민회총연맹 부의장은 “11월 평양에서 통일농민 추수한마당을 개최하자고 논의했다”고 밝혔고, 황철하 6.15경남본부 집행위원장은 “내년 4월 평양국제마라톤대회에 초청하고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손동대 6.15청학본부 집행위원장은 “북측이 지난 9월 제안한 청년학생 대회합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남북해외 모두가 노력키로 했다”고 말했다.

최진미 6.15여성본부 집행위원장은 “올해 열기로 합의했던 남북여성대표자 상봉모임과 평양에서의 남북해외 대규모 상봉모임을 연내에 꼭 이뤄보자고 했다”며 “만약 실현되지 못 하면 내년 제일 선참으로 여성들 상봉모임을 이뤄내 남북의 화해와 단합, 통일을 이루는데 여성들이 절반의 역할을 꼭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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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에게 경주는 특별했다

 

경주 개발은 박정희 정권이 집권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문이었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자는 경제 논리가 깔려 있었다.

김태식 (국토문화재연구원 연구위원·문화재 전문 언론인) webmaster@sisain.co.kr  2016년 10월 07일 금요일 제472호
활성 단층대 위에 놓인 경주는 요즘 계속된 지진으로 불안한 상황이다. 관광객도 크게 줄어든 것 같다. 온통 학생들로 들썩이던 수학여행의 계절인데도 불국사나 석굴암, 대릉원, 첨성대 등의 주변이 한산하다. 음식점 주인들은 한숨만 쉬고 숙박업소마다 빈 객실이 넘쳐난다. 경주를 한국의 대표 관광도시로 키우려 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현재의 광경을 보면 어떤 심정일까?

1979년 10월26일 박정희 대통령의 마지막 공식 일정은 KBS 당진송신소 개소식과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 참석이었다. 그런데 이틀 전인 10월24일에 경주 보문관광단지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해 4월6일 1단계 개장을 완료한 상태였던 보문단지를 다시 점검·시찰하러 간 것이다.

한국관광공사 전신인 국제관광공사에서 당시 개발이사로 재직 중이던 고 최귀남씨는 그날 대통령을 보문단지 현장에서 영접한 사람이다. 그의 회고에 따르면, 전날 대통령이 보문단지에 뜬다는 전갈을 받은 뒤 밤차를 타고 경주에 도착해 대통령 맞을 준비를 했다. 박정희는 다음 날 오후 3시쯤 나타나 보문단지 순시에 들어갔다.  박정희는 상가 단지 앞에 차를 세우고 건물 색조 하나하나, 식재된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며 여러 사항을 지적했다고 한다. 나아가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았을 때를 대비해 야외극장을 활용할 여러 가지 프로그램 개발과 쾌적한 휴양지, 다시 찾는 휴양지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경주개발동우회 <그래도 우리는 신명 바쳐 일했다> 121쪽, 고려서적, 1998).

 
ⓒ영상역사관
1973년 7월3일 박정희 대통령(오른쪽 세 번째)이 경주 지역 유적 발굴조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박정희는 대통령 재임 기간 툭하면 경주를 찾았기에 이 방문이 아주 특별한 행사였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을 떠나기 겨우 이틀 전에 보문단지를 방문한 박정희의 행적은 자신이 만들고 집착했던 작품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필연 같은 우연’으로 보이기도 한다.

경주를 향한 박정희의 꿈은 매우 담대한 것이었다. 천년 수도에 포진한 신라 시대 문화재를 관광산업과 접목해 죽은 도시를 재생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박정희 자신이 1971년 ‘경주관광종합개발계획’이라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입안했으며, 김재규의 총탄에 쓰러진 1979년 10월26일까지 의욕적으로 밀어붙였다.

이런 측면에서 경주 개발은, 박정희 정권이 집권기 내내 의욕적으로 추진한 경제개발과 국토종합개발계획의 중요한 부문이었다. 일종의 산업 육성 차원에서 경주 개발을 추진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통해 경제개발에 절실히 필요한 외화를 획득하자는 경제 논리가 튼실하게 깔려 있었다. 실제로 박정희 정권은 경주를 시작으로 설악산·제주도·한려수도 등을 관광지로 개발하는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된다.

다만 다른 관광지와 달리 경주 개발에는 ‘국민정서 함양’이라는 목적이 추가되었다. 예를 들면 신라의 삼국 통일 정신을 본받아 남북 통일의 기틀을 마련하자는 등 신라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자는 것이다. 이렇게 정권의 정치적·산업적 의지가 복잡하게 얽힌 경주 개발 계획의 중심부에 보문단지가 자리 잡고 있었다.

박정희 정부의 관광산업 육성 의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난 것은 1970년대 후반 들어서다. 1978년 11월27일 오전 8시20분, ‘대망의 연간 외국인 관광객 100만명’을 돌파했다. 그해 100만 번째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미국 여성 바버라 존슨(당시 59세)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KAL 005편으로 김포공항에 들어왔다가 뜻하지 않은 환대를 받았다. 여담이지만 바버라 존슨이 실제로 1978년의 100만 번째 외국인 관광객은 아니었다. 이 행사를 주관한 교통부와 관광공사가 홍보 효과 극대화를 위해 해당 항공기 승객 가운데 미국인 여성을 미리 선정해놓았다. 당시 외국 관광객 가운데 절대다수를 점하던 일본인은 의도적으로 제외했다.

 
ⓒ연합뉴스
1979년 10월11일 박정희 대통령은 경주 보문단지에 주한 외교사절들을 초청해 만찬을 열었다.
2000명 외국인 손님에 긴장한 1979년 경주

이토록 ‘관광입국(觀光立國)’에 대한 열망이 거셌으니, 제28차 아시아태평양관광협회(PATA) 총회 및 제19차 워크숍(1979년 4월 중순 개최) 유치에 성공했을 때 한국 정부와 관광업계가 얼마나 흥분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국은 연례 국제행사인 PATA 총회를 1965년에 이미 한 차례 개최한 바 있다. 하지만 이후 관광산업을 보는 한국 측의 시각이 달라지고, PATA 총회의 규모도 엄청나게 커졌다. 한국이 유치한 1979년 총회의 경우, 참가단 규모가 2000명 이상일 것으로 예상됐다. 당시까지 한국은 이 정도의 인원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를 단 한 번도 개최해본 적이 없었다. PATA를 준비하는 자세와 열기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그것에 못지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PATA 대회의 장소는 두 군데로 확정됐다. 4월16~18일 총회는 서울에서, 4월20~21일 워크숍은 경주에서 열렸다. 경주 워크숍 장소가 바로 보문관광단지였다. 지금은 ‘육부촌’이라 불리는 경북관광공사 관할 ‘컨벤션센터’다.

물론 경주 개발 계획이 처음부터 PATA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아니다. PATA의 한국 개최가 확정된 것은, 경주 개발 계획이 한창 진행 중이던 1976년 4월21일 미국 하와이에서 열린 제25차 PATA 총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PATA는 경주 개발 계획, 특히 보문단지 조성에 더욱 가속도를 붙였다. 대회를 코앞에 둔 4월6일, 보문단지가 1단계로 서둘러 부분 개장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당시 사정을 회고하면서 고 최귀남 국제관광공사 개발이사는 “1979년 초순경 공정에 쫓기는 모든 관계자가 이곳저곳에서 바삐 움직이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히 떠오른다. 그때는 마치 전쟁터와 같았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다. 당시 자욱한 먼지에 덮인 보문관광단지는, 포성이 연달아 터지는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박정희는 1979년 2월6일 교통부를 연두 순시한 자리에서 ‘성공적인 PATA 회의 개최를 위해 정부 각 부처나 관광공사가 적극 협조하여 회의를 잘 치르도록 하라’고 당부도 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1978년까지만 해도 골조 공사 단계였던 보문단지 내 컨벤션센터와 상가가 대회 직전에 완공되었다. 경주조선호텔과 경주도큐호텔도 PATA 회의 직전 문을 열 수 있었다.

4월16일부터 진행된 PATA 총회와 워크숍의 참가단 규모는 역대 최대인 43개국 2424명(국내 대표 499명 포함)에 달했다. PATA 총회 역사상 참가 인원 2000명을 최초로 넘긴 성공적 대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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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랑자’ 펭귄이 첫번째 알을 버리는 이유

‘방랑자’ 펭귄이 첫번째 알을 버리는 이유

조홍섭 2016. 10. 07
조회수 2875 추천수 0
 

한반도 10배 남극해 영역 이동 중 알 낳을 준비, 과부하가 부실한 첫째 알로

나중에 진화한 장거리 이동이 초래한 진화 ‘부적응’, 생식체계 고치기보다 쉬워

 

p1_Jerzy Strzelecki _Macaroni_(js)1.jpg» 노랑색 눈썹이 독특한 마카로니펭귄. 가장 개체수가 많은 왕관펭귄의 하나로 두 개의 알 크기 차이가 심한 종이기도 하다. Jerzy Strzelecki, 위키미디어 코먼스

 

황제펭귄처럼 유명하지는 않지만 남극해에는 왕관처럼 휘날리는 멋진 노랑색 눈썹과 수수께끼의 방랑 생활로 눈길을 끄는 펭귄이 산다. 뉴질랜드 근해 등 남극해에 서식하는 왕관펭귄속 펭귄이 그들로 마카로니펭귄 등 6종이 있다.

 

알을 한 개만 낳는 황제펭귄과 달리 이들은 2개를 낳는데, 처음 낳는 알은 나중 알보다 절반까지 작은 극심한 크기 불균형을 나타낸다. 어미 펭귄은 처음 낳은 작은 알을 어김없이 둥지 밖으로 밀어내 버린다. 드물게 부화에 성공하더라도 작은 새끼는 보살핌을 받지 못해 죽고 만다. 

 

p3_Didier Descouens_마카로니펭귄.jpg» 마카로니펭귄의 알. 첫째 알의 무게는 두번째 낳는 알의 62%에 지나지 않는다. Didier Descouens, 위키미디어 코먼스

 

결국 버릴 알이라면 왜 굳이 낳을 필요가 있을까. 애초에 하나만 제대로 낳아 잘 길러내는 편이 유리하지 않을까. 왕관펭귄속 알의 이런 크기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두고 1960년대부터 논란이 계속돼 왔다. 

 

여러 가설이 나왔다. 예비용으로 낳았다는 설이 있다. 알이나 새끼를 잃었을 때를 대비한 것이란 설명이다. 실제로 첫째 알이 크기는 작아도 부화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

 

둥지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란 주장도 있다. 왕관펭귄은 번식지에 돌아오면 부지런히 알부터 낳는데, 남보다 먼저 번식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첫째 알을 낳는다는 설명이다. 

 

p2_Andrew Shiva.jpg» 바다를 헤엄치는 마카로니펭귄. 왕관펭귄 무리는 남빙양의 바다를 떠돌며 겨울을 난다. Andrew Shiva, 위키미디어 코먼스

 

1990년대부터 왕관펭귄의 방랑 기질에 초점을 맞춘 가설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들은 넓은 바다를 헤엄치면서 남극의 겨울을 나는데, 6개월 동안 돌아다니는 바다의 영역이 200만㎢, 곧 한반도 면적의 10배에 이른다.

 

글렌 크로신 캐나다 댈하우지대 교수와 토니 윌리엄스 캐나다 사이먼 프레이저대 생물학자는 이런 장거리 이주로 인한 부담이 부실한 첫번째 산란으로 이어졌다는 가설을 주장해 왔는데, 이번에 자신들의 이론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p5_Ben Tubby-Rockhopper-Colony.jpg» 남아메리카 포클랜드 섬에 있는 바위뛰기펭귄 번식지. 먼 바다에서 번식지를 향해 헤엄치는 동시에 알을 만드는 것으로 밝혀졌다. Ben Tubby, 위키미디어 코먼스

 

이들은 과학저널 <왕립학회보 비(B)> 4일치에 실린 논문에서 2개의 알을 낳는 펭귄 16종을 대상으로 한 기존 연구 데이터를 바탕으로 첫째 알과 둘째 알의 무게 차이와 번식지에 도달해서 알을 품기까지의 기간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그 결과 장거리 이동을 하는 왕관펭귄속의 펭귄에서만 알 크기의 차이가 나타났다. 가장 두드러진 예는 선뿔펭귄(Eudyptes sclateri)으로 처음 81.6g짜리 알을 낳은 뒤 두번째엔 그 2배 가까운 150.9g의 알을 낳는 것으로 밝혀졌다. 마카로니펭귄도 처음 알 무게가 둘째 알의 62%에 그쳤다.

 

연구자들이 주목한 것은 첫째 알과 둘째 알의 크기 차이가 클수록 번식지에 도착해 알을 낳기까지의 기간이 짧다는 현상이었다. 펭귄의 알에 노른자가 만들어지는 데는 약 15일이 걸린다. 그런데 왕관펭귄속의 펭귄들은 번식지에 도착하고 나서 15일이 되기 훨씬 전에 알을 낳는다. 로열펭귄은 10일, 마카로니펭귄은 10.5일 만에 산란했다.

 

다시 말해 왕관펭귄은 먼 바다에서 미처 번식지에 도착하기 전에 알의 노른자를 만들기 시작한다는 얘기다. 왕관펭귄은 다른 펭귄보다 2배나 빠른 하루 72㎞의 속도로 번식지로 돌아오는데, 막대한 에너지가 드는 헤엄치기와 알 만들기를 동시에 하려니 자연히 알이 부실하다게 된다고 연구자들은 밝혔다.

 

“우리의 연구결과는 중첩된 이주와 생식이 왕관펭귄의 알 생산에 압박을 가해, 두 가지가 많이 겹칠수록 처음 나은 알과 나중 나은 알 사이의 크기 차이가 커진다는 가설이 옳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p4_Arjan Haverkamp_북방바위뛰기펭귄.jpg» 동물원의 바위뛰기펭귄. 여전히 처음은 작고 나중엔 큰 알을 낳는다. 진화가 일으킨 부적응 상태이다.Arjan Haverkamp,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렇다면 왜 왕관펭귄은 수백만년 동안 진화해 오면서 쓰지도 않을 첫째 알을 포함해 알을 두 개 낳는 방식을 고수해 왔을까. 사육장의 왕관펭귄도 자연 상태에서보다 알 크기 차이는 작지만 두 개의 알을 낳는 것으로 보아 이런 형질은 유전적인 뿌리를 지닌다.

 

연구자들은 가능하면 알을 일찍 낳는 형질이 처음부터 펭귄에 강한 선택압력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았다. 알을 일찍 낳는 개체일수록 번식 성공률이 높았을 것이다. 그런데 환경변화에 따라 펭귄들은 먼 거리를 이동하게 되었다. 나중에 진화된 형질은 불가피하게 이동과 산란 준비가 겹치는 과부하를 불렀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말하자면 진화는 왕관펭귄에게 깔끔하고 완벽한 해결책을 제공하지 못한 셈이다. 생식구조를 뜯어고쳐 알을 하나만 낳게 하는 것보다는 처음 낳는 알을 포기하는 쪽이 훨씬 쉽고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Crossin GT, Williams TD. 2016 Migratory life histories explain the extreme egg-size dimorphism of Eudyptes penguins. Proc. R. Soc. B 283: 20161413.

http://dx.doi.org/10.1098/rspb.2016.1413

 

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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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새가 다시 돌아왔다, 그 본성대로

참새가 다시 돌아왔다, 그 본성대로

윤순영 2016. 10. 06
조회수 2827 추천수 0
 

사람들의 삶과 가장 친근했던 그들

아침을 열고 저녁을 알렸다

 

허수아비에공기총에 쫓기고

포장마차 안주감으로

 

쌀값이 떨어지고 농촌은 늙어가고

이젠 그들을 거들떠도 안 본다

 

그들도 더 이상 겁내지 않는다

사람 곁에서 떼지어 논다

 

크기변환_DSC_0603.jpg» 3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들판에서 만난 참새 떼. 참새의 계절이 돌아왔다.

 

'짹’ 참새는 재잘거리며 아침을 열고 저녁을 알렸다자연이 사는 곳에서 멀지 않던 시절 우리는 참새 둥지를 털어 새끼를 꺼내 키웠고논에서 소리쳐 쫓았고밤에는 초갓집 처마 밑을 손전등으로 비춰 잡기도 했다우리 곁에 친근하기로 이만한 새가 있을까.

 

크기변환_DSC_0304.jpg» 참새는 정겹고 화목한 새다. 한국화 화조도에 잘 등장 한다.

 

참새는 많기도 했지만 나락에 해를 끼친다는 생각에 무조건 잡을 대상이기도 했다. 1970~1980년대 공기총 사냥이 성행할 때 참새의 수난은 시작됐고 포장마차에 참새구이가 단골 메뉴로 올랐다

 

자연히 참새는 총은 물론이고 어깨에 나무 막대만 걸쳐도 기겁을 하고 도망쳤다사람이 멀찍이 보이기만 해도 날아갔다.

 

크기변환_DSC_3527.jpg» 모래 목욕을 즐기는 참새. 몸에 붙은 기생충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크기변환_DSC_9203.jpg» 들깨도 참새가 즐겨 찾는 열매이다.

 

크기변환_DSC_0523.jpg» 참새는 곡식과 애벌레, 곤충 등을 가리지 않고 먹는 잡식성이다.

 

참새에게 가장 큰 타격은 살 곳을 없앤 것이었다새마을 사업으로 마을이 현대화 되며 초가집과 기와집이 사라졌다아파트와 슬래브 주택 어디에도 참새가 둥지를 틀 빈틈은 없었다.

 

크기변환_DSC_9405.jpg» 마을이 현대화되어 농경지를 감싸안은 아파트와 슬래브 집들, 농경지 가운데 영농창고 시설과 나무들이 마을을 떠난 참새들의 터전이 되었다.

 

크기변환_DSC_0588.jpg» 초가집과 기와집이 사라져 나무 구멍을 선택하여 번식을 한다.

 

참새는 이제 도시에서 떨어진 들판으로 내몰렸다도시에선 참새 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왔다다행인지 불행인지 농촌에서는 워이~워이~’ 양동이를 두드리며 참새를 쫓는 일이 사라졌다

 

농약과 비료를 치면서젊은이는 떠나고 노인들이 농촌을 지키면서쌀값이 폭락하면서 이제 참새가 나락을 먹는 것을 신경 쓰는 이들은 거의 없다.

 

크기변환_DSC_9432.jpg» 참새를 쫒던 허수아비. 이제는 좀처럼 찾아 볼 수가 없다.

 

크기변환_DSC_9446.jpg» 참새의 잔치 상이 펼쳐진 논. 예전 이맘때면 참새 쫓는 소리가 요란했을 것이다.

 

요즘 참새가 다시 돌아왔다떼를 지어 농촌을 날아다닌다도시에서도 공원에 가면 참새 무리를 쉽게 만난다이제 더는 사람을 겁내지 않는다.사람이 곁에 접근해도 날아가지 않는다

 

애초 참새는 제비처럼 천적을 피해 사람 곁에서 살던 새였다사람의 삶의 방식과 환경이 바뀌면서 다시금 참새는 본성대로 사람 곁에 돌아온 것이다.

 

크기변환_DSC_9647.jpg» 우두머리 참새가 먼저 도착해 주변을 살핀다.

 

크기변환_DSC_0888.jpg» 안전한 것을 알고 참새 무리가 울타리에 날아와 앉는다.

 

크기변환_DSC_1410.jpg» 울타리에 앉아있던 참새들이 차례차례 논으로 내려와 벼 낱알을 턴다.

 

크기변환_DSC_1015.jpg» 열심히 벼 낱알을 먹던 참새가 화들짝 놀라 울타리 위로 날아오른다.

크기변환_DSC_1021.jpg» 논 옆에 있는 울타리는 벼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횃대이자 피난처로 제격이다. 다용도의 환경을 알고 참새는 이곳을 선택했다.

 

크기변환_DSC_1445.jpg» 울타리를 타고 올라간 덩굴이 참새들의 은폐물이 된다.

 

3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들판에서 참새떼를 만났다번식기를 빼고는 철저한 무리 생활을 한다우두머리는 무리를 이끌지만 먹이를 먹으러 내려앉을 때는 모두가 앉은 것을 확인하고 맨 마지막에 합류한다지도자답다.

 

■ 참새의 정지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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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윤순영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한겨레 환경생태 웹진 <물바람숲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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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하 김진태, 두 놈 듣거라!

한 놈은 의사 면허 취소, 또 한 놈은 의원직 박탈해야
 
김갑수 | 2016-10-06 15:21:27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상에는 나쁜 짓을 하고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알고 보면 대부분의 경우 어려운 사정이 있거나 불가피해서 나쁜 짓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은 대체로 자기 잘못을 후회하는 법이며, 개중에는 진정으로 뉘우치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비록 나쁜 짓을 했지만 인간의 범주에 넣어 줄 수는 있다. 나쁜 놈도 어떻든지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쁜 놈’이면서 동시에 ‘가증스러운 놈’이 있다. 이런 놈들은 사정이 어렵지도 않은데, 얼마든지 피해갈 수 있는데 자발적으로 나쁜 짓을 한다.

백남기 선생의 주치의 백선하는 따로 기자회견까지 열어, “유족의 반대로 연명치료를 받지 못해 백 씨가 사망에 이른 만큼 사인을 ‘병사’로 표기한 것은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 놈은 덧붙이기를,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해 사망에 이른 만큼 병사가 옳다면서, 백남기 선생 사망의 책임이 가족에게 있다고 모함질까지 했다.

병원에 실려 왔을 당시 백남기 선생은 이미 가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의료진은 가족에게 요양병원에 보낼 것을 권했으나, 그때 등산복을를 입고 홀연히 나타난 백선하 이 놈이 불필요한 생명 연장 수술을 기획적으로 감행하고 317일 간이나 의료비를 누적시키면서 질질 끌어온 것이다.

이미 317일 전부터 이 놈은 패륜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가망 없는 환자의 고통을 굳이 연장시키면서 자기 이익을 취하는 놈은 의사는 고사하고 인간도 못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 놓고서는 이제 와서 연명치료에 반대했다는 구실을 대며 죽음의 책임을 가족에게 돌리는 만행을 서슴지 않았으니 이게 어디 인간이란 말인가?

백선하 못지않은 놈으로 김진태가 있다. 이 놈 역시 자발적으로 나서 백선하 편을 들어주면서, “사인을 밝히는 알파요 오메가는 부검이다. 그걸 하지 않겠다면서 무슨 특검을 하고 진상을 밝히겠다는 건가. 말이 안 되는 것이고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말했다.

게다가 김진태 이 놈은, “이때 백씨 딸은 어디 있었을까. 인도네시아 발리 여행 중이었다. 이 딸은 아버지가 사망한 날 발리에 있으면서 페북에 ‘오늘밤 촛불을 들어주세요. 아버지를 지켜주세요’라고 씁니다.”고 덧붙였다.

백남기 선생의 둘째 딸 민주화 씨는 원래 한국에 살지도 않았으며, 중요한 가정사가 생겨 시댁 식구들과 함께 발리에 사는 시댁 형님을 잠깐 방문하고 있던 차였다.

백선하와 김진태, 이런 놈들은 절대로 자기 잘못을 후회하거나 뉘우치는 법이 없다. 이런 놈들을 가리켜 이른바 ‘확신범’이라고 하는데, 나는 이런 놈들까지 인간의 범주에 넣어 줄 수는 도저히 없다고 생각한다.

이 사회가 정상적인 인간들이 사는 공동체라면 이런 놈들이 인간 행세를 하고 살아가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급한 대로 우선 한 놈은 의사 면허 취소, 또 한 놈은 의원직을 박탈해야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4&table=c_booking&uid=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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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향한 미국의 '변심', 한국 준비됐나

 

[주장] 싱크탱크 기관들도 '평화협정' 제안... 미 차기 정부 '대화' 국면 예상16.10.06 20:54l최종 업데이트 16.10.06 20:54l글: 정대화(dhchung1)편집: 박정훈(twentyrock)

이 기사 한눈에

  • new

    최근 들어 미국의 외교전문가들과 싱크탱크들이 '북한과 대화하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차기 정부에서는 '대화'를 중시하는 쪽으로 대북정책이 변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약 한 달 후, 11월 8일이면 미국 대선이다.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탄생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특히 주목할 것은 최근 북한에 대한 미국의 태도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의 중요 언론이나 중요 연구소의 발표와 주요 인사들의 말 중 상당수가 북한에 대한 정책전환을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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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셉 위트 교수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
ⓒ 뉴욕타임스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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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먼저 북한 전문 웹페이지 '38 노스'를 운영하는 존스 홉킨스 대학의 조엘 위트(Joel Wit) 교수의 언급을 주목해야 한다. 그는 미 국무부에서 10여 년간 대북담당관으로 근무했고 1994년 북한과의 제네바 협상에 참가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13일 <뉴욕타임스>의 기고에서 북한 핵 개발의 정도가 진전돼 미국의 새 정부는 북한의 5차 핵 실험 이후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외교구상'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나아가 이 이야기는 한미 합동군사 훈련의 유보 혹은 중지, 휴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을 포함한다고 언급했다. 

즉, '북한과의 대화나 협상'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제네바 협상의 주역 로버트 갈루치(Robert Galucci)도 지난 4일 워싱턴에서 열린 동북아시아 지역문제 토론회에 참가해서 '대화와 협상'을 주장했다.

2. 다음으로 미국의 <뉴욕타임스>가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북한은 미치기는커녕 너무 이성적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는 사실이다. 이 매체는 기사에서 '(북한의 전략은) 힘이 약한 국가가 강대국을 적으로 마주했을 때 평화를 이루기 위한 이성적인 방법'이라고 분석했다.

기자의 기억으로는 이러한 <뉴욕타임스>의 태도 변화는 1972년 미-중 화해 당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중국의 마오쩌둥을 방문했을 때와 비슷하다. 이때도 지금의 남북대치 못지않은 냉전시대였으나, 당시 중국에 대한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 언론의 보도 논조는 급속도로 바뀌었다.

3. 힐러리가 대통령이 되든, 트럼프가 되든 무시할 수 없는 미국의 외교정책 싱크탱크, 즉 중요한 연구기관인 미국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의 발표도 예사롭지 않다.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브레진스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을 배출하며 세계정치를 막후에서 좌우한다는 이 영향력 있는 연구기관이 지난달 16일 특별보고서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101쪽 분량에 달하는 이 보고서에서, 미국의 새로운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중국의 동의를 이끌어낼 수 있느냐를 성패의 관건으로 꼽으며 총 6가지 권고사항을 제시했는데 그중에 1, 2가 다음과 같다.

(1) 미국과 동맹국들은 하루속히 중국을 한반도 문제에 관한 5자 협의에 참여시켜야 한다. (2) 미국은 시급히 북한 핵과 미사일 개발을 제한하고 비핵화와 평화협정으로 나아가도록 협상 방식을 재구축해야 한다. 

여기에 기자가 주장해 왔고 중국이 주장하는 '비핵화와 평화협정'을 동시에 해결하는 방안이 들어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즉, 이 영향력 있는 정책연구 기관이 오바마의 정책과는 다른 대북정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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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이 정권수립일을 맞아 지난 9월 9일 오전 핵실험을 단행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부 소식통이 밝혔다. 사진은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3월 공개한 장면으로 김정은 북한 노동당위원장이 핵탄두 기폭장치 추정 물체 앞에서 핵무기 연구 부문 과학자, 기술자들을 만나 지도하는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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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세계 10대 연구소 안에 드는 우드로 윌슨 연구소(Woodrow Wilson Center for International Scholars)의 제인 하먼 소장이 <워싱턴 포스트>에 현지시각 10월 2일자로 북한과의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기고했다.

하먼 소장은 한반도 비핵화는 일단 장기적 목표로 두고, 북한의 핵·장거리미사일 실험의 동결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북한 복귀를 '당면목표'로 삼아 북한과 '직접대화'에 나설 필요가 있다는 제안을 했다.

그는 나아가 "이것은 평양과 베이징을 비롯한 주요 당사국 간에 너무 많은 불신을 낳은 6자 회담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북한과의 '직접협상'을 통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핵 동결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며 '"핵 동결 이후 (미국의) 차기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북핵 해체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외교적 자본을 투자해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5. 마지막으로 평양을 방문하고 북핵 해결을 위한 '페리 프로세스(Perry Process)'로 유명한 클린턴 정부의 전 국방장관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의 최근 발언이다.

페리 전 국방장관 겸 대북정책조정관은  지난달 26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부시 행정부 및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실패했다며,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핵 포기 대신 핵 프로그램의 '동결 및 비확산'을 목표로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진정한 의지와 행동을 보여주기 전에는 '북한과 대화할 수 없다'는 오바마나 박근혜 정부의 현 정책 기조에 대한 비판이자, 차기 미 행정부에 대한 주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시키기엔 너무 늦었다"고 밝혔다. 또한 "(현 단계에서)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피해를 제한하는 것이 전부"라며 시그프리드 헤커(Sigfried Hecker) 미국 스탠퍼드 대학 국제안보협력센터 선임연구원이 제시한 '3가지 노(No)' 정책이 "협상을 시작할 때 좋은 목표들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3가지 노'는 헤커 선임연구원이 2008년 제시한 북 핵 해법으로, ▲ 핵폭탄의 추가생산 금지 ▲ 추가적인 성능향상 금지(실험 금지) ▲ 수출 금지 등 북한 핵 및 미사일 능력의 동결과 비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페리 전 장관은 한·미의 대북 강경파들이 북핵 해법으로 제시하는 이른바 '대북 선제타격론'에 대해서도 "현 상황에서 실질적인 전략이 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 핵을 제거하기 위해선 북한을 붕괴시키거나 북한 붕괴를 기다려야 한다는 주장을 두고서도 "우리는 오랫동안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려왔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북한이 붕괴할 것이라는 어떤 근거도 알지 못한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미국 차기 정부에서는 대북 정책 바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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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럼프와 클린턴의 대선 토론
ⓒ NBC 유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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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외교 전문가들이나 언론에서 최근 들어 '대북정책 전환'에 대한 신호를 연속으로 내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베트남전이 미국이 승리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하자 닉슨이 마오저뚱을 만나러 갔듯이, 북한 핵 무력의 '임계점'에 도달하니 미국이 정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힐러리든 트럼프든,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대북정책은 바뀔 것이다. '핵 동결'이 미국의 이익에 필수적인 조치고, 이는 현재의 정책을 유지해서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힐러리가 대통령이 될 경우 북미 정상회담까지 예상할 수 있다. 클린턴 정부 당시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북한을 방문하고, 북한의 조명록 대장이 클린턴을 만났던 것처럼 대화 국면이 조성될 수 있는 것이다.

새 대통령의 취임 초 1년 안에 미국의 여러 외교정책 사안들이 재정비되고 북한에 대한 정책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 국제정치에서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 나라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정대화님은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로 전 UN 관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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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초토화’ 불러올 한민구 장관은 사퇴하라!”

“‘한반도 초토화’ 불러올 한민구 장관은 사퇴하라!”
 
 
 
편집국 
기사입력: 2016/10/06 [15:14]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민권연대가 6일 국방부 앞에서 한민구 국방부장관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 편집국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권유하는 발언 이후 북한과의 충돌 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는 6일 오후 1시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요구했다.

 

민권연대는 한민구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김정은 위원장 제거 부대 창설’, ‘평양 초토화 계획등의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며이런 강경발언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라고 주장했다.

 

민권연대는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북핵문제의 안전한 관리와 한반도 평화임을 강조했다한민구 장관의 말처럼 남북간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면 평양이 초토화’ 되는 것이 아니라 핵대결로 인해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된다는 것을 국민들이 알기에 평화적인 해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한민구 국방부장관 사퇴를 주장하는 피켓을 들고있다.     © 편집국

 

민권연대는 국방부 장관의 역할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민권연대는 국민들을 지켜줄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지 국민들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내모는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또한 한민구 장관의 발언과 행동은 '평화 통일천명하고 있는 대한민국 헌법과도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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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견문]

 

한반도 초토화’ 불러올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즉각 사퇴하라!

 

 

한민구 국방부 장관으로 인해 남북간 군사적 긴장의 수위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9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대북강경발언을 쏟아냈다한 장관은 김정은 위원장 제거 부대를 만드느냐는 의원의 질의에 그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명시했다북측 지도부에 대한 암살 계획을 우리정부가 공식화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또 평양 초토화’ 계획과 관련해선 그런 역량을 갖추기 위해 여러 수단을 추가할 계획이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북한군 총참모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핵탄으로 서울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대북 강경발언을 늘어놓는다고 해서 북핵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남북관계만 악화시킬 뿐이며군사적 긴장만 고조시킬 뿐이다.

북한 지도부 제거 부대 등이 얼마나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군사전문가 김종대 정의당 의원은 핵실험 동향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 군의 수준에서 유사시 지도부의 위치 파악 등 작전이 실행 가능할지도 의심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북핵문제의 안전한 관리와 한반도 평화다현대전이 일어나면 승패를 떠나 한반도 자체가 잿더미가 된다는 것을 대다수 국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평양 초토화가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초토화 된다북한 지도부를 참수하겠다는 한민구 장관의 발언은 결국 우리국민들을 참수하겠단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한민구 국방부장관은 국민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유사시 중국러시아 등으로부터 군사적 타격의 우려까지 거론되고 있는 사드를 지역주민의 반발과 국민들의 비판적 의견을 무시하고그것도 2달여 사이에 최적지를 바꿔가며 배치를 강행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한민국 헌법은 '평화 통일'을 분명히 천명하고 있다헌법 4조는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한민구 국방부장관이 보이는 행보는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며 우리 국민들의 안정과 생명에는 하등의 관심이 없는 태도다.

 

 

우리는 국민들을 지켜줄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지 국민들을 전쟁의 포화 속으로 내모는 국방부 장관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에는 관심 없는 한민구 국방부 장관 사퇴하라!

 

 

2016년 10월 6

민주민생평화통일주권연대(민권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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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석회의 반드시 실현, 전환적 국면 열 것”

<추가> 선양서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공동결의문 발표(전문)
선양=김치관 기자  |  ckkim@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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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6  19: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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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남․북․해외 대표단은 6일 오후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왼쪽부터 박성일 6.15북측위 사무국 부국장, 남주현 재일본조선여성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황철하 6.15경남본부 집행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우리는 그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각계 접촉과 교류를 복원시키고 전민족적 통일회합으로서의 연석회의를 반드시 실현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것이다.”

6일 오후 3시(이하 현지시간)부터 중국 선양(심양)시 칠보산호텔에서 열린 ‘10.4선언 발표 9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토론회’에 참석한 남․북․해외 대표단 30여명은 공동결의문을 통해 민간교류 복원과 연석회의 실현을 다짐했다. 그러나 연석회의 결성에 관한 구체적인 일정이나 경로 등은 제시하지 못했다.

대표단은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 과업, △전쟁위험 방지 및 평화 실현, △전 민족적 통일대회합 실현 등을 주제로 3시간 동안 토론회를 진행한뒤 오후 6시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결의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결의문을 통해 “남과 북, 해외 각계각층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더욱 높여나갈 것”이라며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 등 각계각층의 연대를 더욱 굳게 다지고 다양한 공동행사와 통일회합을 적극 추진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실현에 앞장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라면서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공동선언들이 열어놓은 6.15시대의 소중한 결실들을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해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 남측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북측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 해외측 대표단.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아울러 “남북공동선언들이 제시한 민족자주와 대단결 정신을 굳게 견지해나갈 것”이라며 “남과 북, 해외의 어느 곳에서나 사상과 이념,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이들은 “한반도의 전쟁위기 종식과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 나갈 것”이라면서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각종 군사훈련 및 무분별한 군비개발과 경쟁 등 모든 형태의 군사적 위협행위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결의문은 “전쟁의 위기를 막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 실현과 민족화해와 단합, 그리고 온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달성을 위해 결의한다”며 “남과 북 해외으 모든 정당과 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 남북공동선언들의 정신을 지키고 그 실천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제2의 6.15시대’를 개척해나갈 것을 뜨겁게 호소한다”고 맺었다.

 

이승환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해소하고 평화를 실현하는 문제, 남북 간의 회합과 접촉을 활발히 진행해서 통일운동을 발전시키는 문제, 3 주제를 가지고 남북해외가 각각 한명씩 발언하고 간단한 결속발언을 주제별로 하는 것으로 진행했다”고 소개하고 “남북해외의 입장이 다른 얘기들이 여과되지 않고 이뤄질 수 있어서 실무적인 고충 때문에 토론회 자체는 비공개했다”고 양해를 구했다.

이승환 공동대표는 토론자들이 6.15공동선언 1항과 10.4선언 2항의 정신을 되살려 “당국관계가 최악이라 하더라도 민간 통일운동은 이런 원칙을 확인하면서 서로 힘을 합쳐 통일운동 발전을 위해 노력해 나가자는 것이 토론의 결론이었다”고 전했다.

2000년 6.15공동선언 제1항은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돼 있고, 2007년 10.4선언 제2항은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는 내용이다.

   
▲ 이번 토론회를 이끌어간 남북해외 주석단. 왼쪽부터 최상은 남측 전농 부의장, 신필영 해외측준비위 명예위원장, 임상호 6.15남측위 공동대표, 양철식 북측준비위 부위원장, 손형근 해외측준비위 부위원장, 림용철 6.15북측위원회 학술분과위 부위원장.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이승환 공동대표는 “지난 8월 양철식 6.15북측위 부위원장이 연석회의 북측준비위 부위원장을 맡아 앞으로 이쪽 일에 대해서 주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고 들었다”며 “남측은 연석회의 추진기획단 공동단장이 참석하려 했으나 중국 비자 문제로 아쉽게 됐다”고 말하고 “해외는 각 지역 대표들이 다 왔다”고 설명했다.

연석회의 내지는 민족대회합의 추진 일정 등에 대해서는 “6.15남측위원회와 민족공동행사를 통해 계속 연습해왔기 때문에, 6.15남측위원회를 떠나서 새로운 준비기구를 만들고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6.15남측위 차원에서 추진기획단을 만들어서 대응하고 있다”며 “6.15남측위원회가 중심이 돼서 통일대회합을 해나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히 제정당들까지 참여하는 민족대회합은 현재 남측의 정치 지형상 여당까지 참여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고 짚었다.

공동토론회를 마친 남북해외 34명의 대표단은 오후 7시부터 칠보산호텔에서 만찬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틀째인 7일 오전에는 각 계층, 부문별 실무협의를 갖고 공동식사를 한 뒤 오후에 귀국할 예정이다.

남북 농민들의 모임에서는 북측 수해지역에 남측에서 남아도는 ‘통일쌀’을 보내자는 협의 등이 진행될 예정이고, 여성들의 모임에서는 지난해 12월 중국에서 개최한 일본군‘위안부’ 토론회 후속 사업 등이 논의되는 등 계층, 부문별 현안들이 논의될 것으로 알려졌다.

   
▲ 공동결의문 발표 기자회견을 마친 남북해외 참가자들이 기념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사진 - 통일뉴스 김치관 기자]

선양 공동토론회에는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연석회의 추진기획단’ 단장인 임상호 6.15울산본부 상임대표를 비롯해 이승환, 한충목 6.15남측위원회 공동대표 등 8명이 참석했다.

‘조선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북남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련석회의 북측준비위원회’에서는 양철식 련석회의 북측준비위 부위원장을 비롯해 림용철 6.15북측위 학술분과위 부위원장, 박영희 민족화해협의회 녀성부 부장 등 10명이 참석했다.

가장 많은 16명의 대표단이 참석한 ‘조국반도의 평화와 자주통일을 위한 남북해외 제정당단체개별인사들의 연석회의 해외측준비위원회’에서는 일본지역에서 손형근 해외측준비위 부위원장 등 6명, 중국지역 차상보 해외측준비위 위원 등 5명, 미국지역 신필영 해외측준비위 명예위원장 등 3명, 카나다지역 김수해 해외측준비위 부위원장 등 2명이 참석했다.

 

'10.4선언 발표 9주년 남‧북‧해외 공동토론회' 결의문(전문)

오늘 남‧북‧해외 각계층 대표들은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향한 민족의 이정표, 10.4선언 발표 9주년에 즈음하여 남‧북‧해외 공동토론회를 진행하였다.

토론회에서 남‧북‧해외 각계층 대표들은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등의 남북공동선언들이 한반도 평화와 통일 실현의 원칙과 방도를 밝히고, 6.15통일시대를 이루어낸 민족통일의 대장전이자 역사적 이정표임을 확인하였다.

남과 북, 해외의 대표들은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과 전쟁위험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게다가 각계의 접촉과 교류마저 중단되어 남북관계가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것에 대해 한결같이 깊은 우려를 표하였다. 또한 남북공동선언들을 존중하고 성실히 이행하는 것만이 현 남북관계의 위기를 타개하고 평화와 통일, 공동번영의 출로라는데 대해 의견을 함께 하였다.

토론회에 참가한 남‧북‧해외 각계층 대표들은 전쟁의 위기를 막고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 실현과 민족화해와 단합, 그리고 온겨레의 숙원인 조국통일의 달성을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지키고 이를 이행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벌여나갈 것이다.

최악의 대결국면으로 치닫는 현 남북관계의 위기를 극복하는 첫 걸음은 무엇보다 남북의 소중한 합의인 남북공동선언을 존중하고 이행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남북공동선언들을 부정하고 그 이행에 장애를 조성하는 모든 행위에 단호히 반대하며,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등 남북공동선언들이 열어놓은 6.15시대의 소중한 결실들을 원래의 자리로 복원하기 위한 활동을 적극 전개해나갈 것이다.

2. 남북공동선언들이 제시한 민족 자주와 대단결 정신을 굳게 견지해나갈 것이다.

‘나라의 통일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나가자’는 것은 남북공동선언들의 기본정신이다. 우리는 공동선언들이 제시한 민족 자주의 정신을 통일문제 해결의 제1원칙으로 굳게 지켜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남과 북, 해외의 어느 곳에서나 사상과 이념, 정견의 차이를 초월하여 온 민족의 대단결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한반도의 전쟁위기 종식과 항구적인 평화 정착을 위해 온힘을 다해 노력해나갈 것이다.

평화 없이 통일 없고, 평화 없이 민족의 미래도 없다. 우리는 전쟁을 반대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지키기 위한 평화운동을 적극 전개해나갈 것이다. 한반도의 전쟁위기를 고조시키는 각종 군사훈련 및 무분별한 군비개발과 경쟁 등 모든 형태의 군사적 위협행위에 단호히 맞서 싸울 것이다.

4. 남과 북, 해외 각계각층의 교류와 연대를 활성화하고 민족의 화해와 단합의 분위기를 더욱 높여나갈 것이다.

남과 북, 해외의 각 정당, 단체, 인사들 사이의 다양한 교류와 연대는 통일운동을 활성화하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여성, 종교 등 각계각층의 연대를 더욱 굳게 다지고 다양한 공동행사와 통일회합을 적극 추진하여 민족의 화해와 단합 실현에 앞장서나갈 것이다. 또한 우리는 그 어떤 장애에도 불구하고 각계 접촉과 교류를 복원시키고 전민족적 통일회합으로서의 연석회의를 반드시 실현하여 남북관계 개선과 나라의 평화, 자주통일의 전환적 국면을 열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남과 북 해외의 모든 정당과 단체 및 각계 인사들이 남북공동선언들의 정신을 지키고 그 실천에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아 하루빨리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제2의 6.15시대’를 개척해나갈 것을 뜨겁게 호소한다.

2016년 10월 6일
중국 심양


(수정,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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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야, 김천이 만만해 보이니?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10/06 09:48
  • 수정일
    2016/10/06 09:48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성주읍 인근 성산포대에서 김천 혁신도시 인근 롯데골프장으로 사드 최적지가 변했다. “성주군민들의 투쟁으로 쫓아낸 사드가 김천으로 날아왔다. 김천이 우습게 보이나? 김천을 만만하게 보다간 큰 코 다칠 것” 김대성 김천시민대책위 공동위원장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김천 사드철회 투쟁을 성주와 비교해 본다.

▲ 김천 41일째(왼쪽), 성주 80일째(오른쪽) 촛불이 10월1일 진행되고 있다.

성주촛불 7월13일부터, 김천촛불 8월22일부터

김천은 8월22일부터 사드반대 촛불을 들었다. 처음엔 김천민주단체협의회가 시작했다. 박보생 시장이 사드반대 김천투쟁위를 결성하면서 촛불은 투쟁위가 주관했다. 9월 들어서는 시민대책위가 촛불의 바통을 이어받았다. 김천역에서 진행되는 사드철회 촛불은 1천여 명을 유지해 오다 국방부의 3부지 발표 후, 5백여 명이 더 늘어났다. 롯데골프장 바로 밑인 농소면과 혁신도시로 꾸려진 율곡면 주민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최근 남면 주민들이 합세하고, 김천시민들의 관심이 높아져 촛불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율곡과 농소면에서는 매일 7시 관광버스가 주민들을 태우고 김천역으로 향한다. 매일 진행되는 김천 촛불의 마지막 순서는 언제나 ‘교육’과 ‘공지사항’ 전달이다. 이 시간을 통해 사드를 공부하고, 투쟁 방향과 행동지침을 전달받는다.

성주에 카톡방 ‘1318+’가 있다면 김천엔 ‘시민 밴드’가 있다.

김천역 촛불 광장과 네이버 밴드 ‘사드배치반대 김천시민대책위’는 시민들의 소통을 책임지는 양대 축이다. 2500명이 넘는 회원을 두고 있는 ‘시민밴드’는 ‘1318+’에 비해 생동감은 떨어지지만, 현안에 대한 밀도 있는 토론을 보장하는 데서는 강점이 있다.

▲ 지난달 30일 롯데골프장으로 사드부지가 발표되자 국방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드철회 성주투쟁위와 사드철회 김천시민대책위

제3부지가 거론되자, 성주투쟁위에서 일부 새누리당 관계자들이 빠져 나가 한 차례 내홍을 겪었다. 김천투쟁위도 촛불을 지속할 기획력과 재정이 바닥나자 슬그머니 뒤로 물러났다. 성주가 투쟁위원장을 새롭게 인선하면서 대오를 정비했던 것처럼, 김천도 시민대책위로 투쟁기구를 새롭게 구축했다.

김항곤 성주군수와 박보생 김천시장

5만 군민을 대표해 성산포대 사드배치를 막겠다던 김항곤 군수는 제3부지가 거론되자 사드 찬성으로 돌아섰다. 반면 박보생 시장은 “15만 김천시민의 생명과 안전은 내 손으로 지킨다. 성주가 뱉어 논 것을 김천이 주어먹을 수는 없다. 염속산이면 몰라도, 롯데골프장은 절대 안된다”고 주장해 왔다. 이로서 김 군수와 달리 박 시장은 출구가 사라졌다. 이 지역에서 차기 국회의원직을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 박 시장은 사드철회 투쟁에 전력을 다해야 하는 처지가 돼버렸다.

▲ 사드반대 성지수호 원불교 비상대책위원회는 사드철회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다.

김천 사드철회 투쟁엔 원불교가 있다.

롯데골프장에서 500m 떨어진 곳에 원불교 성지가 있다. 이곳에 사드가 배치될 경우 성지 이전은 불가피 해진다. 원불교는 지난 시기 훈련터를 육군 계룡대에 빼앗겼고, 한남동 수도원터는 미군부대에 양보했다. 그러나 이곳 ‘달뫼 성지’에는 원불교에서 법모로 모시는 정산종주의 생가가 있다. 정산종주가 롯데골프장이 있는 이곳 ‘달뫼’에서 탄생하고, 성장했으며, 도를 구하기 위해 기도를 드렸다. 원불교는 ‘사무여한(死無餘恨 죽어도 여한이 없다)의 각오로 성지를 지키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사드반대 성지수호 원불교 비상대책위’를 구성해 매일 국방부 앞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정각기도를 올리고, 오후 7시에는 촛불기도회를 이어가고 있다.

오는 11일 사드철회 3주체(성주, 김천, 원불교)가 서울에 모인다.

성주투쟁위, 김천시민대책위, 원불교비상대책위는 스스로를 사드철회 3주체라 부른다. 이들은 오는 11일 서울 종각에 모인다. 이날 오후 2시에 원불교는 5대종단과 함께 기도의식을 진행하고, 성주와 김천 주민들은 미대사관에 항의서를 전달한다. 오후3시 3주체가 종각에 모여 사드 철회를 위한 평화대회를 개최한다. 이날 대회 규모는 1만 명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롯데골프장과는 아직 협의도 거치지 않았다.

성산포대는 이미 군사기지였기 때문에 부지를 수용하거나 정비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롯데골프장은 사정이 다르다. 협상을 해봐야겠지만, 부지 인수비용만 7천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국방부는 롯데 측과 사전협의도 없이 덜컹 부지부터 발표해버린 상태라 협상과정에서 롯데 측에 끌려갈 수밖에 없다.

성주와 김천의 사드 반대 투쟁은 다른 듯 닮았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미국 사드 필요없다’는 구호가 성주에도, 김천에도, 원불교에서도 울려퍼지고 있다.

강호석 기자  sonkang1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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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

[성명] 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  
 
 
 
자주시보 편집부 
기사입력: 2016/10/05 [17:50]  최종편집: ⓒ 자주시보
 
 

 

▲ 2014년 인천에서 열렸던 아시아경기대회 여자 축구에서 우승한 북 여자축구선수들이 시상대 위에서 환호하는 남녁동포들에게 손을 들어 흔들면서 답례하고 있다.     © 자주시보 편집국

 

 

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 <10.4선언 > 9주년을 맞이하여 "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라는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재미동포전국연합회가 보내온 성명서에 의하면 " 6.15공동선언에 이어 발표된 10.4선언은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해 나가는 귀중한 선언이다."라고하며 10.4선언을 남북 갈라진 겨레 하나되는 길에서 귀중한 선언으로 규정하였다. 10.4선언은  6.15공동선언에  대한 그 실천강령으로 남북 지도자가 합의하여 발표하였다.

 

또 성명에서는 6.15와 10.4선언을 하던 시대에는 남과 북으로 갈라진 겨레 하나가 되어 기쁨의 눈물을 흘리었고 남과 북 해외의 동포들이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통일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던 희망찬 연대였다고 하였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의 대북적대시정책에 남측 당국이 앞장에 서 적극적으로 나섬으로서 조선반도는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상태에 빠져있다고 현 조선반도를 위기상황으로 보았다.

 

성명은  그러나 우리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으며, 조국통일은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 사상이 응축된 우리민족끼리 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울러 외세가 우리민족의 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남과 북 해외의 민족들은 자주적이고 민족대단결로 조국의 통일을 반드시 이룰 것이라고 성명서에 못을 박고 있다.

 

성명은 마지막으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만이 조국 땅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온다"면서 "우리는 자주평화 통일의 신심을 안고 그 어떠한 시련이 있을지라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자주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향해 의연하게 진군해 나갈 것이다."라고 재미동포들의 조국통일에 대한 각오로 끝을 맺고 있다.

 

그럼 아래에서 재미동포전국연합회의 성명서 전문을 전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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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10.4선언 이행하여 자주평화통일 이룩하자.

 

 온 겨레의 가슴 절절한 조국통일의 염원을 담은 10.4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이 발표된 지 9년이 지났다. 6.15공동선언에 이어 발표된 10.4선언은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이룩해 나가는 귀중한 선언이다.

 

2007년 10.4선언이 우리 조국강토위에서 울려 퍼져 세계로 뻗어 나갈 때 통일은 되었다면서 그렇게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서로 얼싸안았다. 그리고 통일의 노래를 부르며 남과 북 해외가 함께 어깨동무하며 자주평화통일을 향해 전진해나갔다.

 

그러나 지금의 조국 땅에는 전쟁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이다. 미군과 일본 그리고 박근혜정부는 전쟁을 유발하는 각종 군사행동과 함께 중상모략, 경제제재 등 대북 적대정책을 악랄하게 감행하고 있다.

 

미국이 앞장서서 이남, 일본과 함께 하는 대북군사적대행위는 날로 심해져 가고 있다.

 

과거에는 방어훈련이라고 거짓말을 하면서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했지만, 이제는 노골적으로 선제공격을 위한 훈련이라고 뻔뻔스럽게 말하고 있다. 그리고 각종 핵무기를 동원하고 일본까지 끌어들여 각종 한미일합동군사훈련을 하고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북을 적대시하는 대북 적대정책에 환장해 미국보다 더 설치고 있어 남북관계는 분단 이후 최고의 파국상태에 달하고 있다.

 

민족의 염원인 조국통일은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조국의 통일은 반드시 자주통일, 민족대단결로 해야 한다.

 

외세인 미국과 추종 국가들이 우리 민족의 염원인 조국의 자주평화통일을 방해하고 있지만 우리는 자주적으로 단결단합하여 반드시 조국을 통일할 것이다.

 

통일은 외세의 간섭없이 우리민족끼리 해야 한다. 남녘 땅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외세군대들은 물러나야 한다. 특히 북과의 전쟁을 획책하는 미군과 추종 국가의 군사세력은 핵무기를 들고 사라져야 한다.

 

통일은 평화롭게 해야 한다. 민족의 대참화를 가져오는 전쟁으로 통일할 수 없다. 분단과 전쟁을 이용하는 무리는 결코 정의롭지 못한 악의 세력들이다. 평화를 깨트리는 각종 대북군사책동과 대북 중상모략은 당장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만이 조국 땅에 전쟁을 막고 평화를 가져온다. 그리고 통일을 이룩할 수 있다.

 

우리는 자주평화 통일의 신심을 안고 그 어떠한 시련이 있을지라도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실천해나갈 것이다. 우리 민족은 자주평화통일의 새 세상을 향해 의연하게 진군해 나갈 것이다.

 

2016년 10월 4일
재미동포전국연합회 대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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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실은 농민 차량 100대 막아선 경찰… 9명 연행 (종합)

 

‘미신고 집회 물품’ 적재를 이유로 통제, 오후 10시 현재 한남대교 남단서 대치 중

 

옥기원 기자 ok@vop.co.kr
발행 2016-10-05 22:31:52
수정 2016-10-05 22:31:52
이 기사는 번 공유됐습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를 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트럭을 타고 상경하던 전농 회원 차량 100여대를 강제로 막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를 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트럭을 타고 상경하던 전농 회원 차량 100여대를 강제로 막고 있다.ⓒ김철수 기자
 

경찰이 ‘쌀값 폭락 항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벼를 싣고 상경하던 농민 차량 100여대(경찰추산 50여대)를 강제로 막아섰다. 미신고 집회 물품을 적재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의 차량 통제로 퇴근시간 한남대교 남단에 교통정체가 이어졌다. 경찰과 대치가 이어지던 상황에서 항의하던 농민 9명이 연행되기도 했다.

서울 강남경찰서와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 따르면 경찰은 오후 3시께 서울 한남대교 남단에서 정부서울청사로 향하던 농민 차량 100여대, 농민 200여명을 막았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농민들은 벼를 싣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릴 쌀값 폭락 항의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는 중이었다.

경찰관계자는 “불법 시위용품을 적재했는지 등을 검문·검색하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차량을 통제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의 통제로 한남대교 남단에 농민 차량 100여대가 길게 늘어섰다. 경찰병력과 농민차량, 퇴근시간 한남대교를 지나던 차들이 얽혀 교통정체가 이어졌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를 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트럭을 타고 상경하던 전농 회원 차량 100여대를 경찰이 강제로 막자 나락을 내리는 순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를 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트럭을 타고 상경하던 전농 회원 차량 100여대를 경찰이 강제로 막자 나락을 내리는 순간 경찰이 막아서고 있다.ⓒ김철수 기자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를 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트럭을 타고 상경하던 전농 회원 차량 100여대를 경찰이 강제로 막자 그자리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
5일 오후 서울 강남구 한남대교 남단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를 하기 위해 나락을 싣은 트럭을 타고 상경하던 전농 회원 차량 100여대를 경찰이 강제로 막자 그자리에서 집회를 하고 있다.ⓒ김철수 기자

경찰이 미신고 집회물품으로 규정한 쌀을 크레인을 이용해 강제로 내리는 과정에서 농민과 충돌도 있었다. 농민들이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1000kg짜리 포대가 터져 도로에 벼가 쏟아졌다. 전농에 따르면 1000kg짜리 쌀 50포대 정도가 차량에 실려있었다.

오후 3시부터 시작된 통제는 오후 10시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경찰과 농민들의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농민 9명이 일반교통방해와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연행되기도 했다.

김영호 전농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시절 약속했던 쌀값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고, 심지어 미국 밥쌀까지 수입해 쌀값이 폭락했다”며 “1년동안 죽을 힘을 다해 농사지어 수확한 쌀이 사료값만도 못해 합법적으로 신고까지 마치고 항의하러 올라왔는데 경찰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농민들을 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경찰의 통제로 오후 2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릴 예정이던 ‘쌀값 대폭락 벼 반납 농민 대회’는 열리지 못했다. 농민들은 집회를 대신해 고 백남기 농민의 시신이 안치된 서울대병원에 조문을 가려했으나 경찰이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이들의 이동을 통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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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 정상화 후 청와대-국민의당은 살벌한 전쟁

국군의날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정권 붕괴, 탈북조장’발언 두고 양측 혈전 가속화
 
임두만 | 2016-10-05 11:54:55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국군의날 기념식 치사에서 북한의 김정은 정권 붕괴를 위해 국제사회가 모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하면서 북한 주민들의 탈북을 종용하는 발언을 했다.

이날 박 대통령은 “북한이 소위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국제적 고립과 경제난은 날이 갈수록 심화될 것이며 체제 균열과 내부 동요는 더욱 확대될 것”이라며 “‘늦게 오는 자는 역사가 처벌할 것’이라는 말이 있다”는 말로 북한 정권에 대한 ‘처벌’을 언급한 것이다.

이어서 박 대통령은 북한 군인 및 주민들에게 “여러분이 처한 참혹한 실상을 잘 알고 있다”면서 “언제든 대한민국의 자유로운 터전으로 오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탈북을 권유하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 치사 후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근혜 대통령께서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과 북한 군인들의 탈북을 촉구했다”면서 “대단히 과격하고 위험천만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이 글에서 박 위원장은 “박 대통령의 기념사를 현장에서 들으면서 저는 섬뜩한 부분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며 “북한의 붕괴와 귀순을 직접 거론하면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압박하는 게 아니라 ‘선전포고’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즉 “실질적인 대북선전포고”라는 말을 한 것이다.

이런 비판에는 김대중 대통령 당시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국민의당 최경환 의원(광주북을 초선)도 가세했다. 최 의원은 국민의당 원내대책회의에서 “한 장성 출신 인사가 보낸 문자메시지”라며 “다음 수순은 북한이 도발해오게 계속 자극하고 북한이 참지 못하고 도발하면 전쟁이라도 해서 분단을 종식시키겠다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까지 전쟁에 준하는 충돌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대통령께서 말씀이 거칠어지네요. 탈북을 권유하고 북한과 일전불사하겠다는 태도군요. 앞장서 불안을 조장하는 그 의도가 걱정됩니다”라고 썼다. 그리고 이런 박 위원장이나 최 의원의 발언은 야당 대표와 국회의원으로서 의당 할 수 있는 우려로 받아들여 졌다.

하지만 문화일보는 4일 청와대 익명 관계자라는 취재원을 이용, 청와대가 극도로 흥분하고 있음을 알게 하는 기사를 보도했다. 즉 이 관계자가 박 위원장이나 최경환 의원의 발언을 묵과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고 보도한 것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청와대 관계자는 4일 문화일보의 취재 통화에서 박 위원장의 비판과 관련해 “대북 송금 사건으로 처벌받은 분이,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 할 수 없는 망발을 쏟아냈다”면서 “북한핵 문제에 대해 현역 정치인 중 가장 책임이 있는 분이 할 수 있는 발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이 관계자는 “북한에 송금된 돈으로 만들어진 핵무기 방어를 위한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도 반대하고, 북한 주민을 인도적으로 포용하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도 선전포고라고 하는 박 위원장은 과연 북한에 어떤 큰 약점이 잡힌 것이냐”고 원색적으로 반문했다.

이는 청와대가 박지원 위원장이나 최경환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전쟁을 건 것이나 같다. 그래서 이 전쟁에 국민의당 고연호 대변인이 나섰다. 고 대변인은 아예 실명으로 “익명을 빙자한 (우리 당)박지원 대표에 대한 청와대의 공격은 무책임한 정치선동”이라는 논평을 내고 청와대의 자세를 질타했다.

고 대변인은 이 논평에서 “청와대가 익명의 뒤에 숨어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를 원색적으로 비난한 것은 백주대낮에 자행된 정치적 선동에 다름없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날 기념사에서 북한 주민들에게 탈북을 권유한 것은 누가 봐도 적절치 못했다”고 주장하고 “남북한 긴장이 극도로 고조된 상황에서 국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탈북 권유’ 발언은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선전 포고나 다름없다는 박 대표의 지적은 타당하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대통령의 잘못된 언행을 야당 대표가 엄중히 비판한 것을 새겨들어야 할 청와대가 ‘관계자’라는 익명을 앞세워 “박 대표가 북한에 약점이 잡힌 것이냐”고 공격한 것은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다“고 비판하고 ”공당의 대표에 대해 청와대가 밑도 끝도 없이 색깔론을 덧씌우고 인신공격한 것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폭거“라고 반발했다.

그 다음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면 북한편이라는 청와대의 빈곤한 사고는 도대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고 묻고는 “오히려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이 도대체 누구에게 어떤 약점을 잡혔 일방적으로 사드를 밀어붙이고, 미르와 우병우 의혹에 대해 감싸기에만 급급한지 묻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고 대변인은 “국정 실패와 무능을 덮기 위해 정권을 비판하는 국민과 야당, 언론에 대한 옥죄기에만 몰두하는 대통령과 청와대의 통렬한 반성과 책임 있는 사과를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청와대 비판에 직면한 당사자인 박지원 위원장과 최경환 의원도 가만있지 않았다. 박 위원장은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 관계자가 저와 최경환 의원의 대통령 국군의 날 기념사 비판에 대해 강력 반발 성토 했습니다”라며 “관계자가 누구입니까? 떳떳하게 실명을 밝히세요”라고 요구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뒤에 숨지 말고 얼굴을 내 보세요. "박지원,북에 약점 잡혔나" 묻지 말고 그 사실을 정부가 제일 잘 아시겠죠”라며 “사실이면 수사하세요. 비판의 자유를 보장되는 헌법을 우리는 가졌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런 다음 러시아가 일본에 도쿄 훗가이도 사할린 블라디보스톡을 연결하는 대륙횡단 철도를 제안했다는 보도에 대해 언급하며 청와대의 경직성을 비판했다.

그는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결과로 DJ는 ‘철의 씰크 로드’ 즉 부산 목포에서 기차가 출발 서울 평양 러시아를 횡단 런던 파리까지 가자고 제안, 중국은 중국 대륙 횡단을 요구했고, 당시 푸틴 대통령은 더욱 적극적이었다”면서 “러시아 철도 관계자와 우리 손영래 철도청장께서 두만강을 함께 답사하고 러시아를 방문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회고했다. 이어서 “만약 남북관계가 좋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이런 얘길하면 또 청와대는 북에 약점 잡혔다 할까요?”라고 비꼬았다.

최경환 의윈도 반발했다. 최 의원도 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오늘 아침 저의 발언에 대해 ‘북한의 대변이냐?’고 공격했다”면서 “소가 웃을 일”이라고 비꼬았다. 이어서 그는 “저는 대한민국 국회의원”이라며 대통령과 청와대를 공격했다.

최 의원은 “지금 북한 핵실험, 사드배치 논란으로 한반도는 최악의 위기 상황, 언제 뭐가 터질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진단하고 “그런데 상황을 진정시키고 안정시켜야 할 대통령은 반복해서 상대를 자극하는 발언만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지적 도발 가능성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고 군은 대비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우려하는 것은 국정의 책임자인 대통령은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발언을 삼가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험천만한 발언으로 상황을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면서 “청와대와 새누리당의 자중을 촉구한다”고 덧붙였다. 바야흐로 청와대와 국민의당이 전쟁을 피튀기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형국이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28&table=c_flower911&uid=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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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산증인 함세웅 신부

35년 식민지배에 우리 민족은 왜 이리 타락했을까
[역사 독립군 임종국 5화]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함세웅 신부

16.10.05 23:25 | 글:조호진쪽지보내기|편집:이준호쪽지보내기

▲ 신학생 시절의 함세웅. ⓒ 함세웅

1942년 식민지 조국에서 태어난 소년이 그리스도교를 처음 접한 것을 일곱 살 때였습니다. 부모 몰래 성당을 다닌 것은 선물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던 소년은 신부님과 수녀님이 들려준 성서 이야기에 심취했습니다. 나라를 빼앗긴 채 떠도는 히브리인(유대인)과 일제 침략으로 신음하는 조선인의 아픔이 어린 가슴에도 와 닿았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이집트에 끌려가 노예살이 하는 히브리인들을 구출하라는 계시를 받은 모세가 그들을 이끌고 밤을 틈타 탈출하자 이집트 기마병들이 추격에 나섰는데 뒤에선 군대가 쫓아오고 앞에선 홍해바다가 가로 막았단다. 이집트 군대에 포위된 히브리인들이 '아이고, 이제는 죽었구나!'하고 탄식하던 그때, 모세가 지팡이를 내리치자 홍해바다가 갈라졌단다.

히브리인들이 갈라진 바닷길을 따라 앞 다투어 달아나자 이집트 군대가 뒤쫓아 오면서 함성을 질렀단다. 갯벌에서 겨우 빠져나왔지만 이집트 군대가 맹렬히 추격해오자 히브리인들은 '그냥 노예로 살았으면 죽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모세를 원망했는데 그때, 모세가 지팡이로 바다를 치자 갈라졌던 바다가 합쳐지면서 뒤쫓아 오던 이집트 군대가 물에 빠져 모두 죽었단다."
 
▲ 1970년 로마 신학대학원 유학 중 교황 바오로 6세와 함께 ⓒ 함세웅

1950년 7월 초등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소년이 살던 원효로까지 진격해 온 인민군들이 여의도를 잇는 임시 다리를 만들자 100여대의 미군 B-29 폭격기가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폭격에 잿더미가 된 도시와 하늘을 뒤덮은 검은 연기, 아비규환의 신음과 널려진 주검들..공포에 휩싸인 소년은 눈앞의 집을 두고도 성심여고 천주학당으로 피신했습니다. 그러자 수녀님이 소년을 감싸주었습니다.

1956년 용산중학교 3학년 때였습니다. 복사(服事)가 된 소년은 잠원동 천주교 공동묘지에서 신부님을 도와 위령 미사를 봉헌했는데 신앙인의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었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묘비명을 읽는데 '오늘은 내 차례 내일은 너의 차례'라는 라틴어 격언이 가슴을 울렸습니다. 전쟁 중에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소년은 성소 체험을 하면서 신부가 되고 싶어 1957년 사제 후보 양성학교인 성신고등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로마 유학 마치고 돌아온 함세웅, 핍박 받는 이들의 사제가 되다
 
▲ 사제 서품을 받는 함세웅 신부 ⓒ 함세웅

1960년 가톨릭대에 입학한 뒤 1965년부터 1973년까지 로마에서 유학, 그레고리오 신학대에서 교부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함세웅(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신부에겐 고위성직자의 길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핍박받는 자들의 사제가 되기로 한 것은 스승 때문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주의의 앞잡이가 된 종교지도자(바리사이와 사두가이파)에 맞서 십자가 고통을 받아들인 스승 예수를 따르기로 서원한 제자로서 가야할 당연한 길이기도 했습니다.

함 신부는 1973년 귀국했습니다. 새로운 교회를 꿈꾸며 귀국한 신부가 마주한 조국의 현실은 참담했습니다. 유신독재에 맞선 목사와 신부, 지식인과 운동가들은 감옥에 갇히거나 죽임을 당했습니다. 1973년 4월 부활절 시위사건, 1973년 8월 김대중 납치사건, 1973년 10월 서울대 최종길 교수 고문치사 사건, 1974년 4월 민청학련과 인혁당재건위 사건 등이 잇달아 일어났습니다.
 
▲ 함석헌 선생과 함세웅 신부 ⓒ 함세웅
 
▲ 1979년 12월 8일 감옥에서 석방된 함세웅 신부 ⓒ 함세웅

1974년 원주교구장인 지학순 주교가 유신헌법은 무효라고 선언하자 군법회의는 내란음모란 죄를 씌우면서 15년형을 선고했습니다. 1975년 4월에는 인혁당 사건을 조작하면서 8명의 억울한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북한의 지령을 받아 남한 정부를 전복시키려 했다는 누명을 씌운 것입니다. 독재정권의 잔인함에 분노하던 일부 사제들이 투쟁의 전면에 나섰습니다. 감옥에 갇힌 이들이 바로 교회이고 이들과 함께 싸우는 것이 참 신앙고백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과 소명, 생존권리, 기본권을 선포하고 일깨우고 수호할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그러기에 교회는 이 기본권이 짓밟히고 침해당할 때면 언제 어디서나 피해자가 누구이든 그의 편에 서서 그를 대변하면서 유린당한 그의 권리를 회복해 주기 위하여 가해자와 침해자가 누구이든 그를 거슬러 항변하고 저항하고 투쟁할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1호 시국선언문의 일부)

1974년 9월 함세웅 신부는 동료와 선후배 사제들과 함께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을 만들면서 유신헌법 철폐, 민주헌정 회복, 국민 생존권과 기본권 존중 등을 요구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습니다. 투쟁에 앞장 선 청년 신부는 1974년 민주회복국민선언과 1976년 3․1 민주구국선언에 참여하면서 두 차례 투옥됐습니다.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에 끌려간 함 신부는 서대문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3사 상6방 6895, 함 신부의 수인번호입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갇힌 자와 함께 갇힌 고난의 신부는 감옥을 교회로 삼으면서 유신독재에 신음하는 양심수와 민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1976년 상고 이유서에선 "마음과 목숨과 생각과 힘을 다하여 침묵을 깨뜨려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양심이 침묵하면 돌들이 소리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1977년 상고 이유서에선 민중의 고통과 슬픔에 침묵하는 교회를 향해 외쳤습니다.

"억압 아래서 인권을 짓밟히고 있는 민중이 있는 모든 곳에서 반드시 인간의 존엄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을 선포하는 교회의 노력이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민중의 고통과 슬픔이 있는 그 어느 곳에서라도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외면하거나 게으름을 부리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고난의 44년 신부생활에서 은퇴했으나
 
▲ 은퇴 미사를 집전하는 함세웅 신부 ⓒ 조호진

함세웅(74) 신부는 지난 2012년 사제생활에서 은퇴했습니다. 44년간의 사제생활 동안 감시와 투옥에 시달리면서 반체제 인사와 종북 신부라는 누명을 감당해야 했으니 이제 그만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권력과 재벌 그리고 교권의 불의가 더 교활해지면서 고난의 길에서 멈추지 못했습니다. 정의와 고난의 행진을 하다 쓰러지는 그날까지 십자가를 매고 가야하는 사제의 소명 때문입니다.

2013년 민족문제연구소 4대 이사장에 취임한 그는 친일파 청산과 역사정의 실현에 나섰습니다. 남북 민족의 분열을 조장하는 친일독재 세력을 청산하고 민족의 화해와 통일 그리고, 완전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그날을 위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고문과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으로 시대의 아픔을 누비고 있습니다.

아들과 민족 앞에서 친일의 잘못을 고백한 아버지의 용기
 
▲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 발족식에서 인삿말을 하는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 ⓒ 조호진

함세웅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장은 지난 7월 9일 충남 천안에서 열린 '임종국선생조형물건립추진위원회'(위원장 이용길) 발족식에서 임종국과 그의 부친 임문호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임종국 선생의 발자취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면서 아버지 임문호의 친일행적을 발견한 아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고 쓰라렸겠습니까. <친일문학론>에 아버지의 이름을 넣는 문제로 고민하는 아들에게 임문호 선생은 내 이름을 꼭 넣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인간적 한계 때문에 일제에 무릎을 꿇었던 아버지가 아들과 민족 앞에서 친일의 잘못을 고백한 것은 아름다운 용기이고 진정한 회개입니다. 우리는 그런 아버지를 손가락질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훌륭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민족에게 저지른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빌 때 친일파 청산은 아름다운 역사로 승화될 것입니다."
 
▲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파병 반대에 나선 문규현 신부와 함세웅 신부 ⓒ 함세웅

매국 행위를 감추고 왜곡하고 반발하는 친일파와 그 후손들의 죄는 그래서 용서할 수 없습니다. 매국노뿐만이 아니라 친일파의 주장에 부화뇌동하면서 친일청산을 훼방한 이들 또한 용서받기 힘들 것입니다. 함세웅 신부가 들려준 노무현 대통령과의 일화에서 친일파와 친미파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재임 시절에 '국방부 관료와 장성, 외교부 관료와 대사 중에 미국 사람들보다 더 미국적인 사람들이 있다. 미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그들은 이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외면한 채 일본과 합의한 이 정부를 보면서 친일파가 판을 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미국과 사드 배치를 합의하는 것을 보면서 친미파가 판을 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매국노들입니다."

삼일운동이 아닌 삼일혁명, 독립운동이 아닌 독립전쟁이었다

 
▲ 민족문제연구소에서 인터뷰 중인 기자와 함세웅 신부 ⓒ 민족문제연구소

지난 9월 20일 민족문제연구소에서 함세웅 이사장을 다시 만났습니다. 함 이사장에게 묻고 싶었던 것은 임종국 선생이 남긴 이 말씀이었습니다.

"아일랜드는 300년 만에 압박을 벗었고 유대민족은 2000년을 나라 없이 떠돌아 다녔으나 그들은 민족의 전통을 상실하지 않았다. 우리가 불과 35년으로 이 지경까지 타락했다는 것은 단순히 친일자들의 수치로만 끝날 일이 아니다. 온존된 일제의 잔재는 이 땅의 구석구석에서 민족의 정기를 좀 먹었고 민족의 가치관을 학살하였다. 이 흙탕물을 걷어내지 못하는 한 민족의 자주는 공염불이요 따라서 민족의 통일도 백일몽이다."

35년의 식민지배에 이 민족은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 민족의 수치를 어떻게 하면 끝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민족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함세웅 이사장은 친일파 청산과 역사정의로 흙탕물을 걷어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목숨을 바친 독립군들의 싸움은 아일랜드 독립운동 못지 않았다면서 독립운동이란 표현을 독립전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많은 약소국들은 저항하고 투쟁하다 나라를 빼앗겼지만 조선은 무능한 왕조와 매국노들로 인해 자발적으로 병탄(倂呑) 됐습니다. 하지만 안중근 의사를 비롯한 수많은 순국열사와 독립군들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던졌습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졌음에도 우리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삼일운동이 아니라 삼일혁명이며 독립운동이 아니라 독립전쟁인데 운동이란 용어를 사용하며 격하시켰습니다. 이를 바로 잡아야합니다."

민족의 고통을 외면한 한국 교회, 종교에게 민족은 무엇인가
 
▲ 종교보다 민족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함세웅 신부 ⓒ 함세웅

함 이사장에게 "종교에게 민족은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한국 교회가 민족과 민중의 고통을 외면했기에 "기독교에게 민족은 무엇이냐고"고 묻고 싶었던 것입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와 싸우던 1970년대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람들이 가톨릭은 외래 종교라며 비판했습니다.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싸웠는데 이런 비판을 받으니 좀 섭섭했지만 그 비판을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에 온 선교사 중에 훌륭한 선교사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기독교는 제국주의 종교입니다. 제국주의 침략에 동조 혹은 협조했던 잘못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와 민족문제가 부딪쳤을 때 민족의 가치가 종교의 가치보다 우선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기독교는 로마와 세계의 기독교가 아닌 한국의 기독교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기독교는 국가를 초월하지만 민족문제 앞에 선 사제들은 민족을 우선해야 합니다. 종교가 민족 정체성을 상실하면 껍데기로 전락한다는 것을 일제 강점기에서 목격했습니다. 때론 민족이 종교보다 훌륭합니다."

민주화운동의 산증인 함세웅 신부가 목숨 바친 독립군에게 바친 눈물

민주화운동의 산증인이자 원로인 함세웅 신부는 독재정권과 싸우고 남북통일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동지라고 부릅니다. 가시밭길에서 만나서 정의의 싸움을 함께했기에 동지라고 부릅니다. 가족과 핏줄보다 더 의미 있는 이들이라며 반가워합니다. 사제에겐 가족이 없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가족보다 민족이고 동지이기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불의한 세력과의 싸움에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한 사제에게 눈물은 무엇일까? 눈물은 사랑과 자비의 열매이기에 꼭 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눈물 흘린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멈칫할 뿐 바로 답을 주지 않았습니다. 답변은 인터뷰를 마친 뒤에 주었습니다. 그 이야기가 가슴에 남았습니다.
 
▲ 박재동 화백이 그린 함세웅 신부 ⓒ 함세웅

"사제의 눈물에 대한 질문에 멈칫한 것은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하라는 스승의 가르침 때문이었습니다. 불의한 자들 앞에서 약한 눈물을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눈을 부릅뜨고 살았습니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 특히, 불의와 싸우다 고통 받는 사람들로 인해 남몰래 눈물을 흘렸습니다. 최근에는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를 보면서,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의 뜨거운 사랑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사제의 눈물은 시인의 눈물과 달랐습니다. 정의의 머나먼 노정을 거쳐 온 원로 사제의 눈물은 값싼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허투루 흘리지 않는 사제의 눈물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지사들의 민족애 앞에서 가슴 뜨겁게 흘러 내렸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 죽음을 선택한 예수에게 바친 눈물처럼 독립군에게 바친 눈물 또한 하염없는 은총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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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증식 황새·따오기, 준비 안된 자연 복귀

인공증식 황새·따오기, 준비 안된 자연 복귀

조홍섭 2016. 10. 05
조회수 572 추천수 0
 
지난해 9월 예산 15마리 풀어놨는데
1년만에 감전사 등으로 3마리 죽어
 
절반은 방사지 주변 머물고
나머진 서해안 중심으로 남북 오가
 
먹이 많고 친환경농업 등 필요한데
지자체와 주민 아무런 대책 없어
 
정부당국 예산 지원 끊어
인공번식지 황새 번식조차 중단
 
검증된 서식지인 김해 봉하마을도
절대농지 해제 등 개발 움직임
 
171마리 있는 창녕복원센터 따오기도
내년 9월 방사 앞두고 같은 운명

 

na1.jpg» 지난해 9월3일 방사된 황새들이 충남 예산 황새공원에서 평화롭게 날고 있다. 황새가 자연에 오롯이 복원되려면 정부와 지자체, 시민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예산황새공원
 
황새를 자연에 풀어놓은 지 1년이 지났다. 내년 이맘때엔 따오기도 방사할 예정이다. 남획과 환경 파괴로 이 땅에서 사라진 이들을 사람이 사는 농촌에 복귀시키는 일은 국립공원 안에 반달가슴곰과 산양, 여우를 방사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복귀에 성공한다면 야생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삶터를 만드는 셈이지만 난관도 적지 않다.
 
한국교원대학교 황새생태연구원은 지난해 9월3일 충남 예산에서 8마리를 시작으로 5월31일 2마리, 7월18일 4마리 등 모두 15마리의 인공증식한 황새를 자연에 풀어놓았다. 
 
na2.jpg» 지난해 자연에 풀어놓은 민황이와 만황이가 5월 예산 인공둥지에서 번식에 성공했다. 그러나 암컷 민황이는 1일 감전사했다. 예산황새공원
 
지난 5월 방사한 황새 부부가 짝짓기해 새끼 2마리를 얻기도 했지만 사고가 잇따라 3마리를 잃었다. 1일 첫 자연번식에 성공한 암컷인 민황이가 방사지인 예산에서 전선에 걸려 감전사했다. 
 
비슷한 사고가 8월7일에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말에는 중국으로 향하다 폭풍에 휩쓸려 오키나와 가까운 오키노에라부 섬에까지 밀려가 폐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na3.jpg» 위성추적 중인 방사 황새 13마리의 9월29일 위치. 예산을 중심으로 서해안을 남북으로 이동하는 모습을 보인다. 황새생태연구원.
 
방사한 황새의 등에는 소형 위성추적장치가 부착돼 있다. 그 기록을 보면 9월29일 현재 방사 지점인 예산에 6마리, 충남 당진·서산 4마리, 충남 태안 1마리, 경기 안성 1마리, 전북 임실 1마리 등이 있다. 방사지를 중심으로 다수가 머물고 있지만 어린 개체는 꽤 먼 거리를 이동하기도 한다. 3월 중순엔 3년생 수컷 황새가 북한 황해남도 연백평야까지 가 열흘쯤 머물다 오기도 했다.
 
박시룡 교수(황새생태연구원장)는 “현재까지 방사한 황사의 절반가량만 예산에 머물고 나머지는 서해안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이동하는 행태를 보인다”며 “전남에서 경남을 거쳐 일본 서식지로 이동하는 개체가 나타날지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동북아 황새 교류해야 멸종 피해
 
05391720_P_0.JPG» 지난해 9월3일 충남 예산군 예산황새공원에서 황새 8마리를 자연으로 풀어놓는 모습. 한국과 일본의 황새 집단이 살아남으려면 동북아 차원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예산/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황새는 러시아 아무르강 유역과 중국 동북부가 주된 서식지였고 벼 재배가 시작된 한반도와 일본으로 퍼져나갔다. 개체수가 적은 한반도와 일본 황새가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려면 동북아 황새의 교류가 필수적이다. 한반도 황새가 멸종하자 때를 같이해 일본 황새도 멸종한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에는 2005년 효고현 도요오카시에 처음 방사한 이래 약 90마리의 황새가 살고 있다. 2014년엔 일본에서 방사한 황새 2세인 ‘봉순이’가 경남 김해시 화포천 습지에 찾아오는 등 3마리의 어린 황새가 김해, 울산, 제주 등을 찾아 옛 교류의 물꼬를 트고 있다.
 
9월28일 경상남도람사르환경재단이 경남 창녕군에서 연 환경포럼에 참석한 일본의 ‘황새 전문기자’ 마쓰다 사토시 <요미우리신문> 기자는 “방사한 황새 개체수가 늘면서 도요오카시를 넘어 후쿠이현의 에치젠시, 도쿄 근교인 지바현 노다시로 퍼졌다”며 “노다시는 주변 30개 읍·면·동이 함께 황새의 야생복귀를 추진하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황새 복귀와 함께 농민은 경제적 이득을 얻고 시민은 하천 정비나 홍수 대책을 세울 때도 생태를 배려한 공사를 하는 등 황새와 공존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본 방사 ‘봉순이’ 3년 전부터 찾아와
 
03912914_P_0.JPG» 나무로 만든 가짜 알을 품고 있는 황새생태연구원의 황새 부부. 정부의 예산 지원이 부족해 자연 방사를 확대하지 못해 취한 불가피한 조처로 2011년에 이어 올해에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황새복원센터
 
이처럼 방사한 황새는 장거리 이동을 하기 마련인데 대부분의 지역에서 황새와 공존할 준비는 거의 돼 있지 않다. 박 교수는 “황새가 살려면 먹이 자원이 아주 풍부해야 하고 이를 위해 친환경농업 등 지자체와 주민이 오랜 시간 준비해야 하는데 사실상 아무런 대책도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황새의 번식 중단 사태는 그런 단적인 예다. 황새생태연구원이 4월부터 황새의 번식을 억제하기 위해 수정란을 모두 가짜 알로 바꿔치기하고 있다. 연구원은 애초 첫 방사지인 예산을 ‘윗마을’로 삼고 여기서 퍼진 황새가 두 달 이상 머무는 곳을 다음 단계 황새 방사지로 정해 한반도의 적정 서식 규모인 50쌍으로 야생 황새를 늘려가자는 ‘황새 아랫마을 사업’을 구상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방사한 황새의 야생적응 상태를 4~5년간 본 뒤 결정하자”며 이 사업에 대한 예산 지원을 거부해 중단된 상태다. 정부의 지원 없이 해당 지자체가 번식장을 짓고 주변 농지의 유기농 전환과 인공습지 조성, 관리인력 확충 등에 나서리라고 기대하기는 힘들다. 
 
박 교수는 “교원대 번식장이 포화 상태인데다 4~5년이면 황새의 생식능력이 떨어지는데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지자체장의 호응과 주민 참여에 기댈 수밖에 없어 막막하다”고 말했다.
 
na4.jpg»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전경. 쌀 수급 안정 대책의 하나로 농업진흥지역(절대농지) 해제 대상에 포함돼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로 경지정리가 돼 있고 수리시설이 잘 갖춰져 있는 상태이다. 조홍섭 기자
 
정부가 지원은커녕 이미 황새가 도래할 여건을 갖춘 곳조차 흔들고 있다.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들판은 3년 전부터 ‘봉순이’가 찾아오는 검증된 황새 서식지다. 장차 국내에서 방사한 황새가 자리잡을 유력한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쌀 수급 안정 대책의 하나로 농업진흥지역(옛 절대농지) 해제 대상에 이곳을 포함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정호 ㈜봉하마을 대표는 “9년 동안 친환경농업으로 흙과 습지가 살아나 먹이가 풍부해지면서 황새가 오게 됐다”며 “이곳이 개발된다면 먹이터가 사라져 봉순이는 물론 화포천 습지를 찾는 수많은 철새가 더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05199348_P_0.JPG» 화포천 습지에서 뱀장어를 사냥하는 봉순이의 모습. 도연 스님
 
중국에서 두 차례 두 쌍 들여와 증식
 
황새와 함께 동요에도 나오는 친근한 새인 따오기도 내년이면 자연에서 볼 수 있게 된다. 1979년 비무장지대에서 관찰된 한 마리를 끝으로 사라졌지만 중국에서 2008년과 2013년 1쌍씩 도입한 개체를 증식해 현재 경남 창녕군 따오기복원센터에서 171마리를 기르고 있다. 
 
올해 태어난 새끼만 77마리에 이르는 등 최근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인다. 복원센터는 따오기 약 20마리를 야생적응 방사장으로 옮겨 논과 습지에서 먹이를 찾는 훈련을 한 뒤 내년 9월께 자연에 날아가도록 할 계획이다. 4일부터는 복원센터의 따오기를 일반에 공개하고 있다. 자연 방사를 앞두고 따오기가 사람에게 익숙해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관련 기사‘멸종 위기’ 따오기,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다).
 
512.jpg» 4일 일반에 처음 공개한 경남 창녕군 우포 따오기 복원센터의 따오기들. 최상원 기자
 
그렇지만 풀어놓을 따오기가 잘 살아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따오기 서식지는 미꾸라지 등 먹이가 풍부한 친환경농업을 하는 논습지가 있고 사람과 천적으로부터 보호받는 곳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서식지 조성은 창녕군 안에도 충분치 않다. 김천일 창녕우포늪 생태관광협회장은 “우포늪 일대는 벼를 거둔 뒤 이모작으로 심는 양파와 마늘이 주 소득원인데 농약을 치지 않고 이들을 재배할 수가 없다”며 “생존이 달려 있는데 친환경농업을 강요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05262767_P_0.JPG» 따오기의 인공증식은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들이 자연에 무사히 돌아가려면 먼저 갖춰야 할 일이 많다. 우포 따오기 복원 센터
 
풀어놓은 따오기가 우포를 벗어나 멀리 날아갈 때 아무런 대책도 없다는 것도 문제다. 자연 방사한 따오기는 중국에서는 방사한 곳으로부터 10㎞ 안에 머물렀지만 일본에선 300㎞를 날아가기도 했다. 
 
김성진 따오기복원센터 박사는 “애초 창녕군 관내에서 서식한다는 가정에서 사업을 했기 때문에 창녕군 밖으로 나간 따오기는 다시 수거해 오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사업비의 일부만 지원할 뿐 중앙정부나 도가 따오기 복원에 손 놓고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이다.
 
이인식 따오기복원위원회 위원장은 “따오기의 서식 여건이 적합한지 조사도 충분치 않은 상태에서 자연 방사를 서두르면 안 된다”며 “환경부 등 중앙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조류 전문가의 참여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창녕/조홍섭 환경전문기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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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진 발발부터 원전 중단까지 204분이 걸린 사연

 

9월12일 오후 8시32분 규모 5.8의 지진이 발생했다. 한 시간 뒤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에 이상 없다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런데 밤 11시56분부터 월성 원전 4기가 가동을 중단했다.

천관율 기자 yul@sisain.co.kr  2016년 10월 04일 화요일 제472호
9월12일 오후 8시32분, 국내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인 5.8의 지진이 일어난다. 지진의 진앙으로부터 27㎞ 떨어진 곳에 월성 원자력발전소 4기와 신월성 원자력발전소 2기가 가동 중이었다.

지진 발생으로부터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원전 운영을 책임지는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경주 지역 지진에 의한 원전 영향 없어’라는 제목으로 보도자료를 냈다. 한수원은 “구조물 계통 및 기기의 건전성을 확인한 결과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였다”라고 밝혔다. 

같은 날 밤 11시56분. 월성 원전 4기가 순차적으로 가동을 중단한다. 지진 발생 시점에서 3시간24분 뒤였다. 한수원은 “시설 안전에는 이상 없이 정상운전 상태임을 확인”(9월13일 보도자료)하였으나, “선제적인 조치”(9월14일 설명자료)로 월성 원전 가동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시사IN 조남진

최대 규모 지진이 발생하고, 한 시간도 안 되어 ‘원전 이상 무’ 선언이 나오고, 그로부터 두 시간여가 지나 원전을 껐다. 204분의 우여곡절 동안 실제로 벌어진 일은 무엇이었을까.

흔히 국내 원전은 규모 6.5 지진에 견디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같은 규모 지진이라도 원전과의 거리나 지반의 특성 등에 따라 원전이 받는 충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원전은 지진의 규모가 아니라 충격이 원전에 도달했을 때 강도를 기준으로 내진 설계를 한다. 이를 최대지반가속도(PGA)라 하고, 단위로는 ‘g’를 쓴다. 월성 원전을 비롯해 가동 중인 국내 원전은 0.2g(이 값을 규모 6.5 지진에 해당한다고 간주한다)에 이상 없이 견디는 능력을 목표로 설계되어 있다. 내진 설계 기준으로 이해해도 큰 무리는 없다.

9월12일 지진 당시 월성 원전에서 측정된 최대지반가속도는 0.0981g(1호기)와 0.0832g(2호기)였다. 내진 설계 기준 0.2g의 절반 이하여서 당장 치명적 문제가 생길 가능성은 적었다. 한 시간도 못 되어 한수원이 ‘원전 이상 무’ 보도자료를 내놓은 이유다. 

하지만 지진 상황에서 원전 운영자는 내진 설계 기준만 따지는 것은 아니다. 원전의 이상 여부와 관계없이, 그 값이 넘으면 일단 원전을 꺼야 하는 기준도 있다. 이것이 운전기준지진(OBE)이다. 월성 원전의 OBE는 0.1g다. 즉, 지진의 충격이 0.1g를 넘어가면, 내진 설계 범위 안쪽이라 해도 일단 원전을 끄도록 되어 있다.

지진 당시 월성 1호기 측정값인 0.0981g는 OBE(0.1g)보다도 낮다. 끄지 않아도 되는 상황일까? 이 단계에서는 확정할 수 없었다. OBE는 자유장, 그러니까 실외 측정값을 기준으로 한다. 내진 설계가 된 원전 내부에서 지진의 충격을 재면 자유장 측정값보다 낮게 나오기 쉽다. 실제로 월성 원전 부지에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측정한 값은 OBE를 초과하는 0.12g였다. 이 결과는 한수원 공식 데이터가 아니므로 당장 원전을 끌 근거로 쓸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는 ‘응답스펙트럼 값 점검’이라고 불리는 추가 검증을 통해 0.1g를 넘겼는지 확인하도록 되어 있다. KINS 규제 지침 4.18은 이렇게 쓴다. “OBE(자유장 기록을 근거로 함) 초과를 결정하는 기준은 초과판정 기준 가속도 응답스펙트럼 값 점검이다.” 이후 응답스펙트럼 값을 분석한 결과 실제로 정지 기준선을 넘긴 것으로 확인되었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수치는 위험 경고

그러므로 지진 발생 시점에서 원전 관리자가 정보를 취합해 내릴 수 있는 합리적 판단은 이런 것이었다. 0.0981g라는 1호기 측정값과 0.12g라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데이터로 미루어보아, 운전 정지 기준선을 넘겼을 가능성은 꽤 높다. ‘아마도 정지 기준선을 넘겼을 것으로 보고, 확인을 위해 계산이 필요한 상황’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수원은 “지진에 의한 원전 영향 없어”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한다. 이 말을 ‘현재 원전 가동 상태에 이상 징후 없음’이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거짓말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진실도 아니다. 원전은 운전 정지가 요구되는 지진 충격이라는 ‘영향’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한수원은 그 가능성을 고려할 정보가 충분히 있었으므로 “영향 없어”라고 단언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보통 시민은 원전에 아무런 일도 없다는 의미로 “영향 없어”라는 말을 받아들였다가, 불과 두 시간 후에 나온 원전 가동 중단 소식을 접하고 “멀쩡하다더니 왜 갑자기 원전을 끄나”라며 혼란에 빠졌다. 한수원이 자초한 일이었다.

이틀 후 한수원이 내놓은 자료도 혼란을 부채질했다. 언론의 비판 보도에 대한 설명자료에서 한수원은 이런 말을 한다. “월성 1~4호기는 전혀 문제가 없었고 안전운전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안전 최우선 원칙’과 ‘철저한 예방 점검’ 차원에서 절차서에 따라 수동으로 정지한 선제적인 조치입니다.” 이 문장은 ‘꼭 그럴 필요는 없었지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자세로 적극적·예방적 조치를 취했다’는 인상을 준다.

사실은 미묘하게 다르다. 원전 가동 중단은 절차에 규정된 대로였으므로 한수원이 다른 판단을 내릴 여지가 없었다. 응답스펙트럼 값 점검 결과 중단 기준선을 넘긴 것이 확인되었고, 이후 한수원은 “절차서에 따라” 가동 중단 프로세스를 밟았다. 이 절차 자체의 성격이 ‘선제적’이라고 논평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규정된 절차에 따른 원전 중단을 두고 ‘선제적 조치’라고 부른 것은 아주 쉽게 오독을 유도했다.

국회에서는 한수원이 측정·계산값을 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국민의당 신용현 의원은 응답스펙트럼 측정값이 원전 정지 기준값을 넘겼는데도 한수원이 이 수치를 공개하지 않았다며 “민감한 수치를 의도적으로 감춘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것이 아주 본질적인 문제 제기는 아니었다. 한수원은 지진의 충격이 “정지 기준인 지진분석값 0.1g를 초과”하였다고 밝힌 바 있는데, 정지 기준을 넘겼다는 사실은 ‘응답스펙트럼 측정값이 기준을 넘겼다’는 사실을 포괄하는 정보다. 구체적 수치를 공개하지 않은 것은 맞지만, 민감한 정보를 은폐했다고 보기에는 무리였다.

 

ⓒYTN 화면 갈무리
9월12일 지진이 일어나고 3시간24분 뒤에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 원전 4기의 가동을 순차적으로 중단시켰다. 원전 가동 중단 소식을 전하는 방송 뉴스 장면.
그러나 이 장면에서 한수원의 발목을 잡은 것은 결국 한수원이었다. 9월22일 국회 현안보고 자리에서 신용현 의원은 “(응답스펙트럼 측정값이 원전 정지 기준값을 초과하였으므로) 한수원이 밝힌 예방 점검 차원의 선제적 조치라는 입장이 거짓으로 밝혀졌다”라고 질타했다. 한수원이 원전 정지 결정을 선제적·예방적 조치인 양 홍보한 탓에, 마치 데이터를 은폐한 모양새로 몰리는 부메랑을 맞았다.

고삐 풀린 복잡성은 사고를 일으킬 토양 

일련의 혼란은 지진 이후 내내 한수원을 괴롭혔다. “즉시 원전을 정지했어야 하는데 3시간 넘게 늑장 대응을 했다”라는 의혹도 언론에 등장했다. 한수원은 여기서도 억울한 대목이 있다. 지진 직후 원전을 정지할 근거는 분명하지 않았다. 만약 월성 1호기 내부 측정값이 0.1g를 넘겼다면 곧바로 원전을 끌 근거가 있다. 하지만 0.0981g였으므로 응답스펙트럼 계산을 거쳐야 한다. KINS 규제 지침을 보면 데이터 처리와 계산에 4시간까지 쓸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결과값을 확인하고 원전을 끄는 데까지 3시간24분이 걸렸다. 비상 상황에서 신속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규정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상 무 선언’에서 ‘원전 중단’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정보의 널뛰기를 연출했다. 

지진부터 원전 가동 중단까지 204분의 우여곡절을 되짚어보면, 한수원이 중대한 규정 위반이나 치명적인 정보 은폐를 했다는 비판은 과도해 보인다. 절차는 규정을 벗어나지 않았고, 정보는 판단에 필요한 만큼은 공개되었다. 오히려 주목할 대목은 자기 신뢰를 손상시킬 정도로 안전을 과하게 단언하는 한수원 특유의 태도였다. 과거에도 원전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한수원은 “안전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라고 되풀이했다. 호언장담과 단호한 확신이 조건반사처럼 등장했다. 원전에 대한 여론의 불신과 불안감을 어떻게든 줄여보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하지만 원전에 대한 불신을 완전히 없애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다. 원전 관리자가 아무리 자신감을 과시해도 공포는 사라지지 않는다. 왜 그럴까. 원전을 잘 모르는 보통 시민이 막연히 느끼는 불안의 근거를 날카롭게 제시한 연구자가 미국 예일 대학 사회학과 명예교수 찰스 페로다. 그는 최악의 원전 사고 중 하나인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조사와 재발 방지 프로젝트를 지휘했고,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하여 위험 연구의 고전으로 손꼽히는 책 <무엇이 재앙을 만드는가?>를 썼다.

책에서 페로 교수는 ‘정상 사고(normal accidents)’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긴밀하게 연계된 복잡한 시스템에서는, 예상 못한 방식으로 두 가지 이상의 장애가 상호작용을 일으킬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다. 물론 시스템은 경보와 사고 방지 절차를 추가해 대응한다. 하지만 추가된 사고 방어 체계가 다시 시스템의 복잡성을 높이고, 이는 다시 사고 위험을 높인다. 복잡하고 긴밀히 연계된 시스템에서는 속성상 사고 발생이 정상적이며 불가피하다. 페로 교수가 꼽는 ‘복잡하고 긴밀히 연계된 시스템’의 최고봉이 원전이다.

 

ⓒ연합뉴스
2013년 5월 경북 경주 월성원자력본부에서 열린 지진 상황 대비 방사능방재 훈련에서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복잡한 시스템은 인간의 통제 능력 한계를 벗어나고, 고삐 풀린 복잡성은 그 자체로 사고를 일으킬 토양이 된다. 원전을 불안해하는 시민은, “핵심 문제는 복잡성 그 자체다”라는 페로 교수의 통찰을 의식적으로든 직관적으로든 이해한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위험과 사고야말로 정상(normal)이 된다.

보통의 경우라면, 책임자의 자신감과 확신은 지켜보는 시민의 근심을 덜어준다. 하지만 복잡하고 긴밀한 시스템의 책임자가 확신에 차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제 책임자의 확신은 그가 복잡성과 불확실성이라는 시스템의 숙명을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신호가 된다. 책임자의 과신과 시민의 불신이 맞물려 상승한다. 이럴 때는 오히려 근본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는 겸손한 태도가 더 신뢰를 줄 수 있지만, 복잡하고 긴밀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위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인정하는 것을 대단히 두려워한다. 

기상청도 비슷한 실수를 저질렀다. 지진 다음 날인 9월13일 고윤화 기상청장은 “규모 6.5 이상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은 거의 희박하다”라고 브리핑했다. 한반도에서 규모 6.5 이상 지진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지진은 현대 과학으로는 예측이 불가능한 자연재해다. 한반도 지진 잠재력의 최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전문가들도 의견이 엇갈리는 주제로, 근본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점이 원전과 닮았다. 확신할 수 없는 문제에 대한 과신은 신뢰보다는 불신을 키웠다. 

원전 관리자의 확신에 무작정 기대는 태도는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 대안으로 제안된 해법 중의 하나는, ‘진흥 프로세스’와 ‘안전 규제 프로세스’를 분리해서 서로가 서로를 껄끄럽게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러면 운영 책임자의 확신에 기대지 않아도 된다. 가스 산업의 한국가스공사와 한국가스안전공사, 전력 산업의 한국전력과 한국전기안전공사의 관계가 좋은 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이 모델을 따라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가 장관급으로 독립해 2011년 10월 출범했다. 원래 구상대로라면 원자력 진흥 담당인 한수원과 안전 규제 담당인 원안위가 상호 견제하며 굴러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원안위 설치법에 깊숙이 관여한 한 야당 정책통의 설명은 이렇다. “이런 상호 견제 관계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안전 규제 블록의 힘을 키워 진흥 쪽과 체급을 맞춰줘야 한다. 감리 산업과 같은 자체 산업을 쥐여주고 자체 전문가 집단을 키워서, 안전 규제 블록이 자기 이해관계를 따라 굴러가도록 만들어야 제대로 긴장이 형성된다. 그런데 원안위가 박근혜 정부 들어 총리실 소속 차관급으로 격하되면서 일이 꼬였다.” 

차관급으로 격하된 이후 원안위는, 한수원의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과 대등한 긴장관계를 형성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심지어 원안위는 국무총리실 산하인데, 국무총리는 당연직 원자력진흥위원장이다. 지진 이후 언론 대응이나 국회 업무보고의 풍경을 보면 안전 논의도 한수원이 주도하고 원안위는 한수원의 정보를 받아 전달하는 무력한 모습이 자주 연출되었다. ‘진흥’과 ‘안전 규제’의 균형 모델은 아직 갈 길이 먼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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