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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군, 동.서.남해에서 무력시위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10/11 10:29
  • 수정일
    2016/10/11 10:2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항공모함 외 비공개..'선제타격론' 열기식힐 의도인 듯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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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10  21:4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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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 해군이 10일부터 15일까지 동.서.남해 전역에서 대북무력 시위성 훈련을 진행한다. 사진은 훈련에 참가한 미 항공모함 로널드레이건호. [사진출처-로널드레이건호 공식 페이스북]

한국과 미국 해군이 10일 동.서.남해 전역에서 대북무력 시위성 훈련에 돌입했다. '불굴의 의지'(Invincible Spirit)'로 이름 붙여진 훈련은 오는 15일까지 실시된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오전 정례브리핑에서 "한.미 양국 해군은 오늘(10일)부터 15일까지 한반도 전 해역에서 '2016 불굴의 의지' 훈련을 실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핵실험 등 북한의 연이은 도발에 대한 한.미 동맹의 강력한 응징의지를 과시하고 양국 해군의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향상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훈련에는 핵추진 항공모함인 로널드레이건호를 중심으로 순양함, 이지스구축함 등 함정 7척, 해상초계기, 미군 FA-18 전폭기, 한국측 함정 40여 척, 공군 전술기 등이 참가한다. 여기서 동.서해에서는 후방 침투 북한군 특수작전부대를 격멸하는 '대특수전부대작전훈련(MCSOF)'이, 서.남해에서는 항모강습단 훈련이 진행된다.

해군은 "해상무력 억제, 대잠전, 대공전, 대지 정밀타격훈련, 항모호송작전 등의 실전적인 훈련을 통해 양국 해군의 상호운용성과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양국은 지난 2010년 7월과 11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동해와 서해에서 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를 참가시킨 가운데, 대북 무력시위를 벌인 바 있다. 천암한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에 대응하기 위한 것으로 한.미 국방장관이 이례적으로 공동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 2016년 을지프리덤가디언(UFG) 한.미 연합군사연습에서 실시된 '대특수전 부대작전훈련'. [사진출처-국방홍보원]

하지만 이번 훈련에 핵추진 잠수함은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군 관계자가 밝혔다. 여기에 로널드레이건호가 후방에 정박하고 다른 참가 함정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미국 측이 이번 훈련을 중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지 않거나, 박근혜 정부의 고조된 대북 선제타격 의지를 열기를 식히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8월 논평에서 "핵 선제타격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라고 반발했으며, 김광학 외무성 미국연구소 연구사는 9월 "미국의 부문별한 선제타격 움직임은 자멸을 재촉할 뿐이다"라고 경고했다. 

훈련이 실시된 당일에는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을 통해 "미국과 남조선 호전광들의 선제타격 기도는 패배자들의 단발마적 발악"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임박한 징후가 있을 경우에 자위권 차원에서 선제타격을 할 수 있다"며 대북 선제타격론을 거듭 강조했다.

한편, 5차 북핵실험 이후 박근혜 대통령이 국군의 날 기념사를 통해 탈북을 종용하는 등 대북 강경발언과 군 당국의 선제타격론으로 북한을 자극해, 북한 당 창건기념일인 10일 추가 핵실험 혹은 장거리미사일 발사 등을 기대했던 정부는 북한의 군사조치가 없어 머쓱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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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줄기는 오직 백남기 한 명을 향했다

물줄기는 오직 백남기 한 명을 향했다
경찰 살수차의 물대포에 맞아 혼수상태에 빠진 백남기씨가 317일 만인 9월25일 사망했다. 하지만 당시 물대포를 쏜 경찰도, 현장을 감독한 기동단장도, 이들을 지휘한 서울청장과 경찰청장도 사과하지 않았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2016년 10월 10일 월요일 제473호
공권력이 물대포로 시민을 조준 사격해 중태에 빠뜨렸다. 이 시민은 317일 만에 사망했다. 백남기 농민은 2015년 11월14일 전남 보성을 출발해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했다. 버스에 묶인 밧줄을 손으로 당기다 머리에 물대포 직사 살수를 맞고 쓰러졌다. 그 후 다시는 깨어나지 못했다.

그가 쓰러진 지 304일 만인 9월12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는 ‘백남기 농민 청문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는 살수차 ‘충남 9호’에 탑승했던 경장 2명이 출석해 증언했다. 가림막 뒤이긴 했지만 이들이 공개된 곳에서 증언한 것은 처음이었다. 지휘 라인에 있던 신윤균 전 제4기동단장(현 영등포경찰서장),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 강신명 전 경찰청장 등도 참석했다. 이날 청문회 과정에서 드러난 사실과, 드러나지 못한 사실을 살펴보았다.
 
ⓒ시사IN 신선영
백남기씨 사망 당일인 9월25일 경찰과 시민들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대치하고 있다.
먼저 청문회 결과 경찰의 살수차 운용에는 거의 아무런 안전장치가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최 아무개 경장은 살수 방향 조절을, 한 아무개 경장은 살수 압력 조절을 담당했다. 두 사람 중 방향 조절을 담당한 최 아무개 경장은 “살수차에 실전 투입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최 아무개 경장은 실전은 처음이지만 교육훈련을 수십 차례 받았다고 말했다. 사건 전날인 11월13일에도 전국 13개 지방청 살수차 운용 경찰관 57명을 대상으로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사전 교육을 실시했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교육은 경찰 내부 지침인 ‘살수차 운용지침’ 교육과 실습 훈련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날뿐 아니라 평소에도 살수차 사용 훈련 시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는 연습은 없었다. ‘살수차 운용지침’에 적힌 ‘살수차 사용 시 주의사항’에는 ‘직사 살수를 할 때에는 안전을 고려하여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여 사용한다’고 되어 있다. 훈련 단계에서 이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진선미 의원:사람을 대상으로 내지는 모형을 대상으로라도 가슴 이하 부위를 겨냥하는 연습을 해본 적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최 경장:교육훈련 시에 모든 상황을 가정해서 연습할 수 없다는 점을 양해 부탁드립니다. 
진선미 의원:그러니까 안 했다는 얘기지요?
최 경장:예,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중략) 바닥에다가 살수하는 그런 위주로 훈련을 했었습니다.


사람 가슴 이하로 살수하는 훈련을 받아본 적이 없는 두 경장은 사건 당일 ‘충남 9호’를 이끌고 서울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에 도착했다. 도착 이후 총 일곱 차례 살수했다. 이 중 네 번째 살수에 맞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두 경장은 당시 CCTV로 밖의 상황을 파악했는데, 야간이고 비가 내렸으며 4분할된 작은 화면이라 물줄기에 가려 백남기 농민이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살수차 물줄기에 가려 시야가 제한되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한 아무개 경장).” “개개인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최 아무개 경장).”

그러나 두 경장이 살수 당시 상황을 파악했던 충남 9호 CCTV 영상을 <시사IN>이 확인한 결과 이 같은 해명은 사실과 달랐다. 경찰청이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이 CCTV 영상을 보면, 네 번째 살수에서 밧줄을 당기는 시위대 무리를 한번 좌우로 훑은 물줄기가 CCTV 기준 시각 19시53분57초 백남기 농민 한 사람을 향해 움직인다. 이후 19시53분58초부터 약 20초 동안 백남기 농민과 그를 구하러 달려온 이들을 차례로 조준한다. 까만 사람 그림자가 보이면 흰 물줄기를 움직여 그 위에 포개는 식이다(CCTV 시각은 실제보다 한 시간 가까이 이르게 설정됐다). 화질이 좋지 않아 백남기 농민의 정확한 상태는 잘 보이지 않지만, 백남기 농민과 이후 모여든 이들을 향해 살수한 것은 확인된다.

이 과정에서 ‘가슴 이하 겨냥’ 지침은 물론 ‘거리에 따라 물살 세기에 차등을 두고 안전하게 사용하여야 한다’는 살수차 운용지침도 무시되었다. 경찰은 당시 백남기 농민은 살수차에서 20m 떨어진 거리에 있었고 살수 압력은 2500~2800rpm이라고 주장했다. 이 수치는 지침에 명시된 예시(시위대가 20m 거리에 있는 경우 2000rpm 내외)를 초과해 논란이 되었다. 애초에 경찰의 주장이 사실인지조차 확인할 방법이 없다. 살수차에는 거리 측정 장비도, 실제 사용된 물살 세기를 사후적으로 확인할 장비도 없다.


 
 
김영호 의원:그러면 거리 측정하셨습니까?
한 경장:예, 저희가 평소에 교육받을 때 거리별 살수를 연습했는데요. 그날도 지형지물이라든지 건물 위치 이런 것들을 확인하면서 거리를 짐작했던 것으로….
김영호 의원:아니, 백남기 농민이 보이지도 않는데 거리 측정이 가능해요?(중략)
한 경장:저희는 최대한 안전하게 살수하기 위해서 왕복하면서 좌우로, 한 명을 겨냥해서는 절대 쏘지 않았습니다.



한 경장은 ‘살수차 사용 결과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그는 충남 9호가 현장에 도착해 “경고 살수 1회, 곡사 살수 3회, 직사 살수 2회”를 했다고 적었다. 이 보고서는 사건 직후 경찰청이 국회에 제출했고 언론에도 보도됐다. 그러나 충남 9호 CCTV와, 맞은편에서 이 살수차의 살수 장면을 기록한 광주 11호 CCTV를 보면 총 일곱 차례 모두 직사 살수한 것이 확인된다. 살수차 운용지침에는 ‘살수차를 사용할 경우, 먼저 살수차를 사용할 것임을 경고 방송하고 소량으로 경고 살수를 한 후 본격 살수한다’고 되어 있다.

이 점을 청문회에서 추궁받은 한 경장은 경고 살수를 1회 했다고 주장하면서도 “밤샘 조사를 받고 그날 새벽에 다시 충남청 제1기동대로 내려가야 했다. 블랙박스를 서울청 감찰계에 제출하고 왔기 때문에 그 기억에 의존해서 살수차 보고서를 작성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사실과 다른 보고서를 작성한 것을 시인했다.

충남 9호차에 살수를 지시한 현장 책임자는 신윤균 당시 제4기동단장이었다. 신윤균 4기동단장은 “버스에 밧줄 6개를 걸고 수십명이 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걸 이격시키기 위한 살수라는 것은 당연히 알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수를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이격’이란 ‘밧줄을 잡아당기지 못하도록 뒤로 빠지게 하는 것’을 뜻한다. 청문회 증언에 따르면 살수의 시작과 끝을 제외한 살수차 운용은 두 경장의 재량에 달려 있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사실인지, 구체적으로 어떤 무전을 주고받은 뒤 백남기 농민을 조준했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다. 경찰은 2009년까지 무전망 사용질서 유지 등을 위해 무전통신을 녹음해왔다. 그러다 2009년 촛불 1주년 집회 당시 주상용 서울경찰청장이 진압에 대한 과잉 발언을 한 게 논란이 된 이후 112 신고처리 관련 무전망을 제외하고는 녹음을 중지했다. 살수 방향을 조절한 최 아무개 경장은 “시위대가 보이는 방향으로 좌우로 상하로 흔들면서 하다가 (중략) 시위대가 모여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경우 잠시 멈추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행사된 공권력에 의해 그날 오후 6시56분 백남기 농민이 쓰러졌다.

그가 쓰러진 이후에도 매뉴얼은 작동하지 않았다. 살수차 운용지침은 ‘살수차 사용 중 부상자가 발생한 경우, 즉시 구호조치하고 지휘관에게 보고한다’고 되어 있지만 살수는 백씨가 쓰러진 뒤에도 세 차례 더 이어졌다. 한 아무개 경장은 백남기 농민이 쓰러진 사실을 언제 알았느냐는 질문에 “저희는 처음 그 사실 자체를 몰랐다. 현장에서 집회가 다 마무리되고 서울청 감찰조사계에 가서 조사를 받으면서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지휘 라인에 있는 책임자들도 관련 사실을 저녁 8시40분~9시쯤 뒤늦게 파악했다고 말했다. 지휘 총책임자인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9시경에 TV의 자막을 보고 알았다”라고 말했다.

대통령령인 ‘위해성 경찰장비의 사용 기준 등에 관한 규정’은 살수차를 사람의 생명이나 신체에 위해를 끼칠 수 있는 위해성 경찰장비의 하나로 명시한다. 그런데도 위해성 경찰장비인 살수차의 운용지침은 경찰 내부 지침에 불과하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시위 진압용으로 살수차를 사용할 경우 인체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으므로 구체적 사용 기준에 대한 부령 이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할 것’을 2008년과 2012년 권고했다. 같은 이유로 물대포 직사 살수는 헌법 재판관들의 우려도 받았다. 경찰청은 살수차 운용지침에 따라 사용 요건 등을 구체적으로 정하고 있고,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현장 지휘관 교육 조치를 이미 하고 있다는 등의 이유로 인권위의 두 차례 권고를 수용하지 않았다. 이 ‘안전한 살수차 사용’의 현실을 백남기 농민 사건이 보여주었다.

살수차 사용에 관해 공권력이 갖고 있던 유일한 기준인 내부 지침을 어겼다는 점은 청문회에서도 지적되었다. 그럼에도 경찰 실무자부터 지휘 책임자까지 하나같이 지침 위반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건 직후인 2015년 11월23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 출석한 강신명 당시 경찰청장은 지침 위반 지적에 이렇게 말했다. “그때의 상황과 그 규칙을 준수할 수 있었던 기대 가능성이 있었는지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것이지, 단순히 외형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즉시 위법하다 그렇게 예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청문회에서도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살수차 운용지침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남춘 의원실 제공
경찰청이 박남춘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충남 9호 살수차가 백남기 농민(버스 앞 파란 옷 입은 이)에게 물대포를 쏘기 직전 상황.
물줄기는 오직 백남기 한 명을 향해 움직였다

이 같은 ‘당당한’ 태도는 지휘 라인부터 말단까지 일관됐다. ‘(백남기 농민이) 보이지 않았다’ ‘사고가 난 줄 파악할 수 없었다’라는 식이었다. 이들은 최대한 안전하게 살수했다는 말만 반복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말도 했다. “저희 기계 작동이 느립니다. 좌우로 빨리빨리 할 수 있는 게 아니고요, 천천히 가기 때문에 영상 보시면 알겠지만 충분히 피하려면 피할 수가 있습니다(한 아무개 경장).”

경찰은 사건 직후 자체 감찰을 벌였다. 두 경장을 상대로 네다섯 시간 조사했다. 신윤균 4기동단장은 전화로 20분간 조사받았다. 경찰은 사건이 검찰에 고발되면서 조사를 중단해 최종 감찰 보고서는 없다고 했다. 중간 보고서는 있지만 국회에 제출하지 않았다.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야당 의원들이 법률에 없는 예외 사유라고 항의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사건 304일 만에 어렵게 열린 청문회는 끝이 났다.

백남기 농민의 가족은 2015년 11월18일 강신명 경찰청장을 포함해 경찰 7명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미수 등 혐의로 고발했지만 수사는 지지부진하다. 그해 12월 고발인 조사를 진행한 뒤, 2016년 6월 고발 일곱 달 만에 경찰 관계자 4명을 조사했다. 같은 날 있었던 민중총궐기를 주도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기소와 재판이 이뤄져 지난 7월 징역 5년을 선고받은 것과 대비된다. 노승권 서울중앙지검 1차장 검사는 “하여튼 수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과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고발 열 달이 지나도록 조사받지 않았다. 9월29일 검찰은 구은수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소환할 뜻을 내비쳤다. 

그사이 강신명 경찰청장과 구은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퇴임했다. 신윤균 4기동단장은 영등포경찰서장 발령을 받아 근무 중이다. 최 아무개 경장과 한 아무개 경장도 정상 근무 중이다. 사건 당시 시위 진압을 담당한 이중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 경비국장은 강원지방경찰청장 발령을 받았다. 아무도 공식 사과하지도, 징계를 받지도 않았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사건 직후는 물론이고 청문회 당일, 백남기 농민의 죽음 이후에도 사과하지 않고 있다. “사실관계와 법률관계가 불명확”하므로 수사와 재판 결과가 나오면 책임진다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심심한 사죄”를 할 때조차 강신명 경찰청장은 백남기 농민의 가족을 바라보지 않았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사실·법률관계가 나와야 책임지겠다고 했지만, 지난 7월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에 대한 1심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백남기 농민을 향한 경찰의 직사 살수가 위법하다고 인정했다. “경찰은 (중략) 시위 참가자인 백남기의 머리 부위에 직사 살수하여 그가 바닥에 쓰러짐으로써 뇌진탕을 입게 하였고, 쓰러진 이후에도 그에게 계속하여 직사 살수를 한 사실, 같은 날 밤 시간 불상경 부상을 입고 응급차량으로 옮겨지는 시위 참가자와 그 응급차량에까지 직사 살수한 사실이 인정된다. 경찰의 이 부분 시위 진압 행위는 의도적인 것이든 조작 실수에 의한 것이든 위법하다.”

법적 판단 이전에 사과한 전례도 있다. 참여정부 당시인 2005년에도 시위에 참가한 두 농민 전용철·홍덕표씨가 사망했다. 전용철씨가 숨진 직후 충남 보령경찰서는 전씨가 농민집회에 참가한 뒤 그날 밤 10시30분께 귀가 중 쓰러졌다는 조사 내용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냈다. 허준영 당시 경찰청장은 현장에서 쓰러진 전씨를 집회 참가자들이 옮기는 사진과 전씨가 경찰에 맞아 쓰러졌다는 증언이 나온 뒤에도 경찰 폭력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병인 간경화나 음주, 시위대에 밀려 쓰러졌을 가능성 등을 언급했다. 

12월14일 경찰은 전씨의 사망과 관련해 과격 진압의 책임을 물어 이종우 기동단장을 직위 해제했다. 홍덕표씨의 부상이 진압 경찰의 가격에 의한 것이라고도 시인했다. 12월26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경찰의 과잉 진압이 있었고 전씨와 홍씨의 사망 원인이 경찰의 진압 과정에서 일어난 것으로 판단한다며 해당 부대를 특정해 검찰에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경찰청장에게 서울지방경찰청장 등 책임자 징계도 권고했다. 

당시 인권위 조사 결과는 형사적 사법 판단이 아니었다. 두 농민의 사망 모두 행위자를 구체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 발표 다음 날 노무현 대통령은 행위자별 ‘범죄 사실’이 특정되고 형사적인 재판 결과가 나오기 전에 대통령으로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연합뉴스
2005년 경찰의 과잉 진압에 의한 농민 사망 사건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과 허준영 경찰청장(왼쪽)이 대국민 사과를 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노무현 정부 당시에는 경찰청장·서울청장 사퇴

노 대통령은 “폭력 시위가 없었다면 이러한 불행한 결과는 없을 것”이라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같은 날 이기묵 서울지방경찰청장도 “시위 대응을 맡은 최고 책임자로서 책임을 통감한다”라며 사퇴했다. 허준영 경찰청장은 인권위 조사 결과를 수용한다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면서도 임기는 마치겠다고 말했다. 이틀 뒤 “통치에 부담을 드려서는 안 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밝히고 사퇴했다.

2015년 11월24일 박근혜 대통령은 백남기 농민에 대한 언급 없이 그날의 시위대를 테러단체 IS(이슬람국가)에 견주었다. 이후 어떤 언급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유가족이 반대했지만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당일 부검 영장을 신청했다. 9월2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부검 영장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자 기자들에게 “백남기 농민의 사인이 불명확해 부검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백남기 농민 청문회’에 참석했던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국가는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갈 권한이 없다. 미필적 고의든 사고든 국가 공권력 행사 과정에서 사람이 죽었다. 백남기 농민이 거기서 시위를 했건 폭동을 저질렀건 내란을 했건, 어떤 행위를 했건 현장에서 공권력 때문에 죽었다는 사실만으로 국가는 책임져야 한다. 경찰청장이 그런 책임의 의미 자체를 이해 못하고 있었다.” 2016년 9월25일 백남기 농민이 317일 만에 사망하기까지는 물론 사망한 후에도, 박근혜 정부의 어떤 관료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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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해~한반도, 슈퍼태풍 고속도로 되나

필리핀해~한반도, 슈퍼태풍 고속도로 되나

김정수 2016.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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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34도까지 바짝 다가온 ‘슈퍼태풍'
최근 40년 동안 최고 도달지점
북위 28도에서 ‘6도’ 북상
한반도 턱밑까지 올라와
 
최근접 슈퍼태풍은 27도 도달 ‘매미'
빈도 변함 없어도 강도는 세져
‘한반도 안전지대' 머잖아 끝날 수도

 

512 (1).jpg
 
지난 5일 부산에 상륙해 짧은 시간 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내고 사라진 태풍 차바는 10월 태풍치고는 이례적으로 강력했다. 이날 제주 고산에서 측정된 차바의 최대순간풍속 56.5m/초는 국내 태풍 가운데 역대 4위를 기록했고, 제주도와 남부지방 곳곳에서 강수량과 풍속의 기존 10월 극값 기록을 바꿔놨다. 
 
과학계의 연구 결과는 앞으로 한반도가 이처럼 이례적이고 강력한 태풍을 갈수록 자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슈퍼태풍’도 예외가 아니다.
 
슈퍼태풍은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의 정의로 ‘1분 평균 최대풍속이 초속 65m(시속 234㎞) 이상인 태풍’을 말한다. 우리 기상청의 태풍 분류에서 최고 단계인 ‘매우 강’한 태풍보다 강도가 50%가량 더 센 초강력 태풍이다. 
 
2013년 필리핀을 초토화한 ‘하이옌’, 최근 대만과 중국 등에 큰 피해를 준 ‘네파탁’ 등이 대표적이다. 한반도는 지금까지 슈퍼태풍의 안전지대로 남아 있었다. 한반도 주변까지 올라온 슈퍼태풍이 없었고,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가운데는 2003년 9월 매미가 북위 27도까지 슈퍼태풍급 위력을 유지하며 올라온 것이 가장 근접한 기록이다. 
 
슈퍼태풍까지 발달했다가도 한반도 쪽으로 북상하면서 모두 세력이 약화됐다. 그러나 가속화하는 지구온난화가 또 다른 이례적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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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2012년에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슈퍼태풍이 통과한 위치와 통과 빈도. 문일주 제주대 교수(태풍연구센터 소장) 제공
 
상륙하는 태풍일수록 강도 세져
 
태풍이 탄생해서 발달했다가 소멸하는 데까지는 해수면 온도뿐 아니라, 대기 상·하층에 부는 바람의 속도와 방향 차이인 윈드시어, 이동 경로 주변의 기압 배치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한다. 과학자들이 지구온난화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고 있다는 데는 대부분 동의하면서도 미래 태풍의 발생 빈도와 강도를 두고는 오래 논란을 벌여온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대부분의 분석 결과를 보면, 태풍의 발생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지라도 태풍의 강도는 점차 강화돼 왔다는 쪽으로 의견이 수렴되고 있다. 세계기상기구(WMO) 태풍위원회는 2012년 평가보고서에서 미래 기후를 전망하는 기후모델들 대부분이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서태평양 지역에서 태풍의 발생 빈도는 줄어들지만 강도는 강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채플힐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웨이 메이 교수와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주립대 상핑 셰 교수는 지난달 5일 <네이처> 자매지인 <네이처 지오사이언스> 온라인판에 육지에 상륙하는 태풍의 강도가 지속해서 강화됐다고 보고했다. 상륙하지 못하고 해양에 머물다 일생을 마친 태풍들의 강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중국, 대만, 일본, 한국, 필리핀 등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를 강타한 태풍은 1977년 이후 최근까지 12~15% 강력해졌다는 것이다. 
 
이들은 상륙한 태풍의 강도 증가를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연안 바다 표층의 온난화와 연결지었다. 점차 따뜻해진 연안 바다가 자라나는 폭풍에 점점 더 많은 에너지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높아지는 데 따른 지속적인 해수면 온도 증가로 중국 동부와 대만, 한국, 일본 등이 앞으로 갈수록 강력한 태풍을 맞게 되리라고 이들은 경고했다. 
 
인간이 일으키는 지구온난화가 태풍이 발원하는 ‘웜풀’ 확대의 주범이라는 사실은 한국 과학자가 주도한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연중 수온이 섭씨 27도에서 30도를 유지해 지구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로 꼽히는 적도 주변의 인도-태평양 웜풀은 1953년과 2012년 사이 60년 동안 32% 팽창했다. 
 
포항공과대(POSTECH) 환경공학부 민승기 교수팀은 이 팽창을 불러온 주범이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임을 알아내 지난 7월 <사이언스> 자매지인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보고했다. 기후모델을 이용한 분석 결과 웜풀 팽창은 인간이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를 반영했을 때만 실제 상황대로 이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 교수는 “온실가스 증가에 따른 웜풀의 팽창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며 “이러한 인위적인 팽창은 인도양과 태평양 해역에서 비대칭적인 패턴으로 일어날 수 있고, 피해를 줄 수 있는 강수나 태풍과도 연관이 있어 지속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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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2012년 인도·태평양 웜풀의 변화 모습. 민승기 포항공과대 교수 제공 
 
슈퍼태풍, 40년 동안 660㎞ 북상
 
지난해 국립기상연구소 최기선 박사 등이 1977년 이후 태풍을 대상으로 분석해 지구과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을 보면, 1999년 이후부터 태풍이 최대 강도를 나타내는 위도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1999~2013년의 태풍들은 1977~1998년의 태풍들보다 열대 및 아열대 북서태평양의 북서해역에서 많이 발생해 태풍이 발생한 지점의 위도도 증가했다. 
 
태풍의 진로도 1998년까지의 태풍들은 주로 필리핀 동쪽 먼 해상으로부터 인도차이나반도를 향해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일본 동쪽 먼 해상으로 북상하는 경향을 보인 반면, 1999년 이후 태풍들은 주로 동아시아 중위도 지역으로 북상하는 패턴을 나타내 훨씬 고위도로 이동하는 경향을 보인 것으로 분석됐다.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허창회 교수 연구팀이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의 제5차 기후변화평가보고서에 활용된 이십여개 기후모델의 결과를 바탕으로 미래 열대 사이클론 활동을 예측한 것을 보면, 북대서양을 통과하는 허리케인의 빈도는 앞선 연구들과 마찬가지로 감소하는 경향을 보일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북서태평양 해역의 태풍, 특히 동아시아의 중위도 지역인 한국과 일본에 상륙하는 태풍의 빈도는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강도는 강화되더라도 빈도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거나 오히려 줄어들 것으로 제시됐던 앞선 다른 연구 결과들과 다르게, 미래로 갈수록 한반도가 더 자주 더 강한 태풍의 위협에 시달리게 되리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허 교수는 “태풍이 일생 동안 최대 강도가 나타나는 위치가 북상을 해 동아시아 해안으로 가까이 오게 되는 것은 지구온난화와 연관된 해수 온도 상승, 편서풍이 약화되는 데 따른 상하층 바람의 차이인 윈드시어의 약화 등에 의해 태풍이 올라오면서 약화되는 과정이 점점 천천히 일어나게 되기 때문”이라며 강력해질 태풍에 대한 대비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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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서태평양 태풍 활동지역의 최근 40년 간 바닷물 수온 상승 실태를 살펴보면 한반도로 태풍이 올라오는 길목과 한반도 주변의 상승 속도가 특히 높다. 문일주 제주대교수(태풍연구센터 소장) 제공.
 
2014년 미국 위스콘신대학의 제임스 코신 교수와 그의 동료 과학자들은 1982년부터 2012년 사이에 발생한 태풍을 포함한 열대 사이클론 자료를 재분석해 전 지구적으로 발생한 열대 사이클론이 이동 중 최대 강도에 도달한 위도가 10년마다 북반구에서는 53㎞씩, 남반구에서는 62㎞씩 극 방향으로 이동한 사실을 발견했다고 학계에 알렸다. 당시 학술저널 <네이처>에 실은 연구 논문에서 이들은 대기 상하층 바람의 윈드시어 변화, 해수면 온도로 대표되는 폭풍 잠재강도의 변화, 열대구역의 확장 등을 이동을 불러온 원인으로 지목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 소장인 문일주 교수 연구팀이 1975년부터 2012년까지 38년간을 19년씩 전·후반기로 나누어 북서태평양의 태풍과 슈퍼태풍 발생 빈도를 분석해본 결과, 태풍의 연평균 발생 빈도는 전반기 25.1회에서 후반기 24.6회로 2%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슈퍼태풍의 발생은 태풍이 주로 발달하는 해역의 해양 열용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전반기 연평균 2.9회에서 후반기 연평균 4.4회로 52%나 증가한 것으로 분석됐다. 
 
슈퍼태풍 상태로 한반도에 상륙한 태풍이 없어 한반도에 영향을 준 태풍 중에 최성기 때 슈퍼태풍급으로 발달했던 태풍의 발생 빈도를 따져봤더니 전반기 연평균 0.58회에서 후반기 연평균 0.68회로 1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975년 이후 40년 동안의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슈퍼태풍의 도달 위도를 따져봤더니, 가장 많은 태풍이 도달한 위도는 전반기 북위 17도에서 후반기 21도5분으로 4도5분 북상했고, 최고 북상 위도는 전반기 북위 28도에서 후반기 34도로 6도 북상한 것으로 나타났다. 위도 1도가 110㎞이니, 북쪽으로 660㎞ 치고 올라온 셈이다.
 
문 교수가 미국 해양대기청(NOAA)의 1979년부터 2014년까지의 바닷물 수온 자료를 분석한 것을 보면, 필리핀 동부에서 한반도 주변까지 이어지는 해역은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한 태풍이 이동하는 해역 가운데서도 특히 빠른 수온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태풍의 발달과 소멸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대기 상층과 하층 바람의 차이인 윈드시어의 장기적 변화도 갈수록 한반도 주변을 태풍 발달에 좋은 환경으로 바꾸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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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0년간 태풍 발생과 이동 지역의 윈드시어 변화 추이를 보면 한반도 주변의 윈드시어의 약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대기 상하층 바람의 방향과 속도의 차이인 윈드시어가 약화될수록 풍이 잘 발달하게 된다. 문일주 제주대교수(태풍연구센터 소장) 제공.
 
문 교수가 1979년 이후 2014년까지의 미국 국립환경예보센터(NCEP) 자료를 재분석해봤더니, 태풍이 만들어지고 이동하는 북서태평양과 그 주변 지역 가운데 특히 한반도 주변에서 윈드시어의 약화 추세가 두드러졌다. 
 
윈드시어가 크면 태풍이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고, 약할수록 태풍의 발달에 유리하다. 이 분석 결과를 토대로 문 교수는 “한반도 주변이 태풍 발달에 좋은 대기 조건으로 바뀌고 있고, 한반도 주변 태풍 길목의 수온 상승으로 가까운 미래에 슈퍼태풍이 강도를 유지하고 북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대기오염 개선 안 할 수도 없고…
 
미국 컬럼비아대 대기과학자 애덤 소벨을 비롯한 6명의 연구자들이 지난 7월 <사이언스>에 발표한, 열대 사이클론(태평양의 태풍과 대서양의 허리케인을 아우른 용어)의 잠재 강도 증가가 대기오염에 의해 억제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연구 결과도 주목할 만하다. 이들은 온난화를 일으키는 온실가스가 열대 사이클론의 강도를 강화시키려는 힘이 인간이 대기 중에 배출하는 오염물질로 형성되는 에어로졸에 의해 많은 부분 억제됐다고 밝혔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작은 입자인 에어로졸이 지구로 들어오는 햇빛을 흡수하거나 반사함으로써 냉각 효과를 발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에어로졸의 이런 효과는 갈수록 약화될 수밖에 없다. 대기 중 온실가스 농도가 계속 증가하면서 에어로졸의 냉각 효과를 압도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언제 찾아올지 모를 강풍과 폭우 피해를 줄이겠다며 대기오염 개선 노력을 중단하고 국민에게 더러운 공기를 계속 마시게 할 정부가 있을 리 없다. 결국 공기가 맑아지면서 태풍의 강도는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이란 얘기가 된다. 
 
김정수 선임기자 jsk21@hani.co.kr, 인포그래픽 노수민 기자 bluedahl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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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지 않는 연어...노르웨이 세계최대 연어양식장에 가다

[밥상 위의 세계(1)]돌아오지 않는 연어...노르웨이 세계최대 연어양식장에 가다

올레순|이인숙 기자 sook97@kyunghyang.com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쿠르시쿠이 해안가에 위치한 마린하베스트 바다양식장에서 관리자들이 양식장을 살펴보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쿠르시쿠이 해안가에 위치한 마린하베스트 바다양식장에서 관리자들이 양식장을 살펴보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세계 최대 연어양식업체인 노르웨이 마린하베스트의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100만 마리의 연어가 파이프로 공급되는 사료를 받아먹으며 자란다. 자연산 연어의 트레이드마크인 분홍빛은 크릴새우에게서 나오지만, 양식연어는 그 성분을 화학적으로 합성해 빛깔을 낸다. 이 회사에서 ‘만들어진’ 연어가 서울의 대형마트에 진열되기까지는 72시간밖에 걸리지 않는다.

 

경향신문은 2015년 ‘지구의 밥상’ 시리즈를 통해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의 글로벌화가 우리 먹거리에 농축돼 있음을 보여줬다. 콜라식민지가 된 섬에서부터 경제제재로 인해 본의 아니게 ‘미래 먹거리의 실험장’이 된 쿠바까지, 밥상을 규정하는 거대 산업과 그 속에 숨겨진 차별을 들여다봤다. 이번에는 우리 밥상 위의 생선과 고기, 채소와 과일이 어떻게 세계화의 톱니바퀴 속에 물려 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핀다.

세계의 ‘닭공장’이 된 브라질에서 이민자들의 물결은 축산업의 흐름을 바꾸었다. 주스와 빙수와 디저트를 넘어 제사상에도 오르게 된 새로운 ‘국민과일’ 망고는 필리핀 노동자들의 손에서 뜨거운 증기에 소독돼 한국으로 향한다. 북아프리카의 수단에서는 지평선까지 펼쳐진 참깨밭에서 생산한 참깨를 거대 공장에서 타작한다. 콜리플라워, 브로콜리, 아티초크 등 식탁 위를 다국적 언어로 채우는 채소들의 고향 격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는 슬로푸드 운동이 한창이다.

한때 ‘녹색 혁명’의 성공사례로 꼽히던 인도의 농촌은 세계 농업의 모든 문제점이 집약된 곳이다. 데칸고원의 농민들이 벌이는 씨앗지키기 운동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씨앗을 보관하는 글로벌 프로젝트와도 맞닿아 있다. 10회에 걸친 이번 ‘밥상 위의 세계’ 시리즈 마지막회에서는 ‘노아의 방주’로도 불리는 북극권 스발바르 섬의 종자보관소를 찾아가본다.


 

 

루베르트 이작센(52)이 연어를 처음 먹어본 것은 3살 때였다. 그 어릴 때 일이 머릿 속에 남은 건 맛이 “기이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어부였다.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 아버지의 아버지도 어부였다. 노르웨이 북부 작은 어촌 마을 호브(Hovden)에서 나고 자란 그는 “동네 친구의 아버지는 어선 냉동기계에 다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고 또 다른 친구의 아버지는 바다에서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꼬마 루베르트는 1960년대 인기 어린이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배운 동요 ‘세 마리 작은 물고기(tre sma fisk)’를 흥얼거리곤 했다. 이 노래는 노르웨이 사람들이 아침에 빵과 곁들여 즐겨 먹는 고등어통조림 광고에도 쓰였다. 10대 때 처음으로 한 아르바이트는 공장에서 대구 턱살을 잘라내는 일이었다. 한때는 노르웨이 서부 해안을 오가는 120년 역사의 여객선 후르티구르텐에서 일했다. 지금은 수산업 수출을 지원하는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NSC)에서 디지털마케팅을 맡고 있다.

그의 삶은 늘 바다와 엮여있었다. 어린 시절 가족의 밥상에는 1주일에 5번은 생선이 올라왔다. 주로 아버지가 노르웨이의 찬 바다에서 잡아온 대구, 명태 같은 흰살 생선이었다. 어쩌다 아버지가 강에서 잡아 온 기름진 연어는 낯설었다. 집에서 직접 연어를 훈제해서 먹었다. 참나무, 자작나무를 태운 뜨거운 연기에 연어가 바로 익어버리지 않도록 연기를 모으는 관을 길게 만들고, 연어를 매단 상자에 연결해 향이 배게 했다.
 

■연어는 ‘만들어진다’

낚시꾼을 유혹하는 탄력 넘치는 붉은살은 연어가 다음 세대를 위해 비축해놓은 에너지의 결과물이다. 연어는 10~12월 알을 낳기 위해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올 때 아무 것도 먹지 않기 때문에 그 전에 엄청난 양의 지방을 축적해둔다. 그래야 강의 거센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고난의 행군’을 끝낼 수 있다. 이런 연어의 독특한 회귀는 종종 문학작품이나 노래의 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어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강 곳곳에 댐이 생겼고 강물은 오염됐다. 야생연어는 남획 탓에 보호의 대상이 됐다.

연어는 크게 그린란드로 갔다가 강으로 돌아오는 대서양 연어와 베링해로 갔다가 강으로 돌아오는 태평양 연어로 나뉜다. 북쪽 그린란드 같은 몇몇 곳을 빼면 야생 대서양 연어는 거의 사라졌다. 왕연어, 은연어, 홍연어 등 태평양 연어는 미국 알래스카와 러시아 동부 정도에만 남아 있다. 이작센은 “노르웨이에서 연어낚시는 이제 마니아들과 돈 있는 사람들만 즐기는 고급 스포츠”라고 했다. 정부의 보호방침에 따라 연어낚시를 하려면 하루에 최대 4000크로네(55만원)를 내야 한다. 한국에서도 연어는 포획금지생물종이다.

그 대신 연어는 세심하고 철저하게 계획된 공정 속에서 ‘만들어진다’. 우리가 대형마트와 초밥집에서 보는 신선한 오렌지색 살토막은 원산지가 노르웨이건 캐나다건 칠레건 스코틀랜드건 모두 양식된 대서양 연어다. 연어는 바다에서 강으로 돌아오는 대신에 플라스틱 상자에서 부화되고 커다란 수조에서 사료를 먹으며 성장기를 보낸다. 다 자라면 배에 실려 해안 가두리로 옮겨진다. 사료로 몸집을 키워 주변 가공공장에서 생을 마친다.

지난해 한국에서 소비된 연어의 40%는 이런 사계절 양식의 산물인 생연어다. 그 생연어의 99.2%가 노르웨이의 피요르 가두리에서 자란 대서양 연어다. 양식 생연어가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한국인의 밥상에 올라오는 연어는 알래스카 자연산 연어 통조림이나 냉동 양식연어로 만든 훈제연어 위주였다. 이마트의 김상민 수산팀 바이어는 “한국에서 생연어를 많이 먹기 시작한 지는 10년 정도 밖에 안된다”고 말했다.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포스나보그에 위치한 세계 최대 양식기업 마린하베스트의 연어 가공공장에서 직원들이 도살된 연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세척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나보그 | 이인숙 기자

9월16일 노르웨이 서부 포스나보그에 위치한 세계 최대 양식기업 마린하베스트의 연어 가공공장에서 직원들이 도살된 연어의 내장을 제거하고 세척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포스나보그 | 이인숙 기자

연어는 오메가3가 많은 ‘수퍼푸드’라는 홍보가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자들에게 먹혔다. 1~2년 새 연어 무한리필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지난해 수산물 수입의 ‘큰손’ 러시아가 서방 제재로 노르웨이 연어를 수입하지 못하게 되면서 시장 공급량이 늘어 연어가격이 떨어진 것도 국내 연어붐을 도왔다.

한국 소비자들의 입맛은 이미 노르웨이 양식연어에 길들여졌다. 롯데마트 신호철 MD는 “알래스카 홍연어나 뉴질랜드의 왕연어 같은 자연산은 양식연어보다 비싸고 맛도 좋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오렌지빛 살에 흰색 줄무늬가 있는 노르웨이 연어가 각인돼 있어 큰 호응이 없다”고 말했다. 자연산은 양식연어와 달리 선홍빛을 띠며, 지방이 많은 사료를 먹지 않기 때문에 흰색 줄무늬가 선명하지 않고 가늘다. 맛도 담백하다.
 

■예방주사 맞는 연어

9월 16일 노르웨이의 수산도시 올레순의 루테빌카야(Rutebilkaia) 부두를 찾았다. 쾌속보트에 올라, 아르누보 양식으로 지어올린 알록달록 장난감같은 마을을 벗어나 깊고 잔잔한 피요르로 향했다. 한 시간 가량 물살을 가르자 피요르의 끝, 스테인스비크(Steinsvik) 마을에 다다랐다. 하얀 구름띠가 허리에 걸린 가파른 산이 거울같은 수면에 그대로 그려지는 한적한 시골, 주민은 고작 50명 남짓이다. 그런데 마을 입구 선착장 옆에 이질적인 회색 공장 두 채가 서 있다.

세계 최대 연어양식 기업 마린하베스트가 버려진 신발공장 부지를 사들여 지난해 새로 만든 시설로, 알에서 깨어난 치어가 자라는 곳이다. 세계 양식 연어 4분의 1을 수출하는 마린하베스트는 유전자, 알, 치어, 사료부터 양식장과 도살·가공공장까지 ‘연어의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한다. 이 회사가 자랑하는 것은 자기들만의 품종 ‘무비(Mowi)’다. 노르웨이 최대 연어 서식지 중 한 곳인 보수(Vosso)강에서 채집한 연어를 수십년간 교배로 개량한 것이다.

이 회사는 무비 암컷의 배에서 알을 채취해 수컷의 정액과 섞어 수정한 뒤 이곳으로 옮긴다. 공장의 위생관리는 강박적이었다. 갈아신은 실내화에 비닐캡을 씌우고 머리에도 비닐캡을 쓰고 손을 닦았다. 인공부화실 앞에 놓인 스폰지를 밟자 거품이 나와 신발 비닐캡을 또 한번 세척한다. 부화실은 서늘했다. 성장속도를 조절하기 위해 온도는 5℃ 안팎으로 맞춰져 있다.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에서 치어들을 살피고 있는 직원.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에서 치어들을 살피고 있는 직원.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플라스틱 서랍이 16개씩 들어있는 철제 선반 10개에 든 치어는 320만 마리. 약 713억원의 가치를 지닌 ‘귀한 몸’들이다. 플라스틱 서랍을 꺼내보니 투명한 오렌지색 영양주머니인 난황낭을 단 치어들이 꼬물거린다. 연어가 양식 물고기의 대표선수가 된 것은 알이 크고 영양분이 많아 부화시키기 쉽고, 몇 주 동안 먹이 없이도 자랄 수 있는 이 난황낭이 있기 때문이다. 직원 2명이 스포이트로 죽은 치어를 골라내 컵에 담고 있었다.

이곳에서 두달 정도를 보내고 치어가 사료를 먹을 수 있는 크기(0.2~5g)로 자라면 둘레 15m, 깊이 4~5m 수조로 옮겨진다. 스몰트(smolt)라 불리는 이 시기 연어는 사람으로 치면 10대다. 크기별로 4단계를 거쳐 네 개 수조를 옮겨 다니다 몸무게가 200g이 되면 바다로 간다. 사료도 점점 커지고 성분도 처음에는 단백질이 많았다가 지방이 늘어난다. 바다에서 보는 연어는 은빛과 올리브색이 섞여 반짝거리지만 민물에서 자라는 치어는 어두운 녹색이다. 강에서 살 때 진화시킨 보호색이다. 빛을 싫어하는 새끼 연어를 위해 수조가 있는 공간도 어둑했다. 수조마다 사료 탱크가 있고, 거기서 나온 긴 관이 걸쳐져 있다. 관에 한 줄로 뚫린 작은 구멍에서 몇 초마다 사료가 떨어진다.

바다로 나가기 직전 단계의 새끼들은 일주일 전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했다. 연어가 다치거나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물에 수면제를 넣어 잠들게 한 뒤 펌프로 끌어올려 컨베이어벨트에 놓으면 기계가 연어의 배를 찾아 주사를 놓는다. 연어는 박테리아 감염병인 절종증 등에 걸리기 쉬운데 과거에는 사료에 항생제를 넣어 문제가 됐다. 1980년대 후반 노르웨이 수의협회가 연어 백신을 개발한 뒤 항생제 사용은 크게 줄었다. 농업부에서 어류 건강 담당을 맡았던 수의학자 파울 미틀링은 세계보건기구(WHO) 기고에서 “연어의 수가 노르웨이 사람보다 2배는 많은데 노르웨이 사람이 1년에 섭취하는 항생제는 5만kg인 반면, 연어에 사용되는 항생제는 1000kg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 플라스틱 상자안에서 난황낭을 먹고 자라는 연어 치어.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스테인스비크 공장 인공부화실 플라스틱 상자안에서 난황낭을 먹고 자라는 연어 치어. 스테인스비크 | 이인숙 기자

■100만 마리가 자라는 양식

바다 양식장은 배로 30분 떨어진 구르시쿠이(Gurskøy)에 있었다. 가두리 9개와 통제센터 역할을 하는 배, 그물을 청소하는 기계가 달린 배, 가두리를 옮겨다니는 이동식 ‘선상 사무실’이 주요 시설이다. 가두리에서는 은빛 연어가 쉴 새 없이 물 위로 뛰어올랐다. 둘레 160m, 깊이 40m의 거대한 가두리 한 개당 17~18만 마리가 들어 있다. 6개 가두리가 가동 중이니 이 양식장에만 약 100만 마리가 자라고 있는 셈이다. 18~20개월이 지나 4~6kg이 되면 가공공장으로 간다.

양식장의 조건은 꽤 까다롭다. 움직임이 격렬한 연어가 밀집되지 않도록 가두리는 해수 97.5%, 연어 2.5%로 구성되야 한다. 항생제는 쓸 수 없다. 한 세대의 양식 사이클이 끝나면 해저환경을 위해 3개월 간 양식장을 놀려야 한다. 마린하베스트가 노르웨이 전역 양식장 120개 중 동시에 가동하는 것은 100개 정도다. 연어 배설물로 바다가 오염된다는 문제 제기에, 2007년부터 양식장 바로 아래 바닥과 500m 떨어진 곳의 바닥 샘플을 채취해 정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양식장 운영은 모두 기계가 한다. 상시 근무직원 2명은 감독만 할 뿐이다. 통제센터 모니터에는 가두리별로 몇 마리가 언제 들어왔고 지금까지 사료를 얼마를 줬는지, 모든 상태가 숫자로 표시된다. 가두리마다 카메라가 있어 조이스틱으로 상태를 살필 수 있다.

양식장에서는 ‘쉭쉭’ 바람 부는 듯한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다. 통제센터에서 발전기를 이용해 각 가두리에 연결된 관으로 사료를 밀어내는 소리다. 연어 100만 마리가 하루에 먹는 사료는 40~50톤. 피요르 연안을 오가는 사료공급선은 매주 두차례 이곳을 지난다. 가두리 청소는 12일에 한번씩 한다.

사료는 마린하베스트가 노르웨이와 스코틀랜드에 설립한 공장에서 만든다. 과거에는 피요르의 청어 따위를 갈아서 줬지만 이 식욕 넘치는 물고기를 살찌우기 위해 야생 물고기가 남획되자 비판이 일었다. 이 때문에 점차 식물성 성분을 늘리고 있다. NSC에 따르면 사료는 콩단백질 25% 등 식물성 단백질과 탄수화물 50%, 식물성 기름 19%, 사람이 먹지 않는 생선머리나 부위를 갈아 만든 어분(魚粉)과 물고기 기름 29%로 돼 있다.

양식 연어가 바다 양식장에서 먹는 사료.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사료는 콩단백질 등 식물성 성분이 50%, 식물성 기름 19%, 사람이 먹지 않는 생선머리나 부위를 갈아 만든 어분(魚粉)과 물고기 기름 29%로 구성돼 있다. 구르시쿠이 | 이인숙 기자

양식 연어가 바다 양식장에서 먹는 사료. 노르웨이수산물위원회에 따르면 사료는 콩단백질 등 식물성 성분이 50%, 식물성 기름 19%, 사람이 먹지 않는 생선머리나 부위를 갈아 만든 어분(魚粉)과 물고기 기름 29%로 구성돼 있다. 구르시쿠이 | 이인숙 기자

연어의 트레이트마크인 오렌지색도 ‘만들어진다’. 연어살이 붉은 빛을 띠는 것은 먹이인 크릴새우와 플랑크톤 속 항산화물질 아스타잔틴 때문이다. 마린하베스트의 가이르 홀 홍보매니저는 “크릴에서 나오는 성분과 유전적·생물학적으로 동일한 성분을 복제해서 만든다. 인체에는 100% 무해하다”고 설명했다.

연어가 다 자란 뒤에는 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한다. 바다 양식장에서 가공공장까지 1~2시간, 공장에서 도살·가공되는 데는 10분이면 된다. 품질을 최상으로 유지하고 상처가 나지 않게 하려고, 도살하기 전 먼저 물에 이산화탄소를 넣어 의식을 잃게 한다. 홀은 “연어를 도살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동물권을 존중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고 말했다.

피와 내장을 제거하고 세척된 연어는 아이스박스에 담긴 채 트럭에 실려 7시간만에 오슬로 공항에 도착한다. 전용 터미널에서 직송 항공기에 실려 한국의 세관·검역을 통과해 도매업체를 거쳐 매대에 오르기까지는 7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인천-오슬로 직항 여객기는 여름 한철 운행되지만 생연어가 타고 오는 직항은 연중 주4회 대한항공이 화물기를 띄운다.
 

■고등어 컨베이어벨트

강에서 태어난 연어가 살아서 바다에 갈 확률은 1%다. 양식은 이런 자연의 방정식을 깼다. 노르웨이는 연어양식을 가장 먼저 시작한 나라다. 1970년 7월 히트라 섬에서 오베·시베르트 그론트베드 형제가 자연산 연어 새끼 2만 마리를 모아 양식에 성공한 것이 최초다. 1960년대부터 품종개량을 연구해 온 하랄 셰르볼트와 트뤼그베 예드렘은 41개 강에서 연어 종을 채집한 뒤 사료를 적게 먹이면서 빨리 성장시키는 미국의 동물 사육 원리를 가져와 성장 속도를 극대화시킨 연어혈통을 만들어냈다. 노르웨이는 30년만에 세계 연어의 절반을 생산하는 1위 수출국이 됐다. 해안선 8만3000km에 걸쳐 연어 양식장 1076개가 들어서 있다.

양식 연어 2위 생산국은 칠레다. 노르웨이와 정반대편 남반구 끝에 있는 이곳 앞바다에서도 대서양 연어가 자란다. 원래 남미에 연어는 없었다. 차가운 물에 사는 연어가 적도를 넘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르웨이가 개발한 품종이 칠레, 뉴질랜드 등 세계 각지로 수출됐다. 노르웨이 해안이 양식장으로 붐비고 규제가 심해지자 노르웨이 연어회사들은 규제가 덜하고 노동력이 싼 곳으로 진출했다.
 

9월 14일 올레순 인근 엘링소이 섬의 닐르 스페르 공장에서 트롤어선이 잡아온 고등어가 박스에 담겨 포장되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 14일 올레순 인근 엘링소이 섬의 닐르 스페르 공장에서 트롤어선이 잡아온 고등어가 박스에 담겨 포장되고 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북해유전으로 돈을 버는 산유국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르웨이의 뿌리는 바다다. 1946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수산부를 설치했으며 수산업은 석유, 가스에 이어 3번째 수출산업이다. 수산물 대국 노르웨이는 이제 한국의 밥상에서 ‘국민생선’ 고등어의 자리도 차지할 참이다. 한국 연근해에서 1990~2000년대 평균 18~20만톤씩 잡히던 고등어는 최근 5년 새 평균 12만톤 정도로 감소했다. 덜 자란 고등어까지 싹쓸이한 남획 탓이다. 2011년까지 수입 고등어의 절반은 중국산이었는데 이제는 국내에서 팔리는 고등어 4마리 중 1마리가 노르웨이산이다.

9월이면 노르웨이에서는 고등어철이 시작된다. 고등어의 지방 함량이 30% 가까이 돼 가장 맛있을 때다. 9월 14일 올레순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엘링소이(Ellingsøy) 섬에 들렀다. 마침 수산물 가공기업 닐스스페르(Nils Sperre) 공장에 올해의 첫 고등어가 들어온 날이었다. 공장과 연결된 부두에는 트롤 어선이 들어와 있었다. 닐스스페르 같은 업체들은 유통시간을 줄이기 위해 어부들이 만든 온라인 경매 ‘실델라갓’에서 바로 생선을 사들인다.

아침부터 하늘을 덮고 있던 먹구름에서 가을비가 세차게 쏟아졌다. 그러나 고등어는 비를 맞을 일이 없다. 공장 입구에 설치된 고압 펌프가 배 아래 5℃ 차가운 물탱크에 담긴 고등어 350톤을 바로 끌어올려 공장 컨베이어 벨트에 쏟아놓았다. 일본 도쿄의 수입업체에서 온 바이어가 연신 고등어의 배를 갈라보며 선도를 점검하고 있었다. 공장을 함께 돌아보던 사장 하랄 스페르(63)는 여름휴가에서 이제 막 돌아왔다. 그는 일본 바이어를 가리키더니 “저이는 일주일 전부터 와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며 “고등어 수확이 시작되는 매년 9월부터 끝나는 11월까지 28년째 이곳에 와 고등어를 살핀다”고 귀띔했다. 이 시기 공장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까지 돌아간다.

9월 14일 올레순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판매원이 해산물을 봉지에 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삶은 바다와 떼어놓을 수 없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 14일 올레순 시내의 슈퍼마켓에서 판매원이 해산물을 봉지에 담고 있다. 노르웨이 사람들의 삶은 바다와 떼어놓을 수 없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고등어는 레일을 지나며 200~600g까지 크기별로 4단계로 나뉘어져 20kg짜리 박스에 담긴다. 선반에 차곡차곡 쌓인 고등어 상자는 커다란 냉각팬이 -24℃ 냉풍을 뿜어내는 터널로 들어가 18시간 안에 꽁꽁 얼려진 뒤 냉동고로 향한다. 지난해 이곳에서 만들어진 고등어 필레 3만톤의 절반이 한국으로 수출됐다.

하랄은 1923년 이 회사를 세운 닐스 스페르의 아들이다. 바닷가 작은 나무창고에서 소금에 절여 말린 대구인 ‘바칼라우’를 만드는 것이 시작이었다. 지금은 온풍기로 말리지만 아버지 시절에는 대구를 소금물에 푹 절여 돌에 널어 말렸다. 포르투갈어로 대구를 말하는 바칼라우가 노르웨이어로는 ‘바위(klipp)’과 ‘생선(fisk)’이 합쳐진 ‘클립피스크(klippfisk)’라 불리는 이유다.
 

■어촌의 삶은 기다리는 삶

9월 16일, 올레순 북쪽 부두에 정박해 있던 루랑(LoRan)호는 출항 준비로 분주했다. 이 배는 스톨라 오토 디브(55)와 세 자녀가 함께 운영한다. 일종의 가족기업인 셈이다. 디브 가족은 주변 작은 섬 구도이(Godøy)에 터잡고 살아온 어부 집안이다. 30명 안팎인 섬 주민은 모두 디브 집안의 어선에서 일했다. 삼남매 중 둘째인 루벤(30)은 “우리 할머니의 일생은 기다리는 것이었다. 어릴 때는 바다에 나간 아버지를, 결혼한 뒤에는 남편을 기다렸고 나이 들어서는 아들을, 지금은 손자를 기다린다”며 웃었다.

선장 스톨라는 “물고기는 자연이 주는 가장 큰 선물”이라며 이날 밤 선원들과 바닷길에 나섰다. 길이 51m의 대형 주낙어선 루랑은 북극해인 바렌츠해까지 나가 대구, 해덕대구, 핼리버트(넙치) 따위를 잡는다. 주낙의 길이는 50km에 달한다. 루랑호에서 잡아올린 대구의 70%는 올레순의 공장에서 바칼라우로 만들어진다. 장남 트론트(33)는 “청정한 바다에서 우리가 잡는 생선에는 어떤 항생제도 없고 주낙으로 하나씩 건져 올리는 생선은 가장 신선하다”며 자부심이 대단했다. 홍일점인 막내 토냐(24)는 아버지와 오빠들처럼 선장이 되기 위해 견습 중이다. 토냐는 15살부터 배를 탔다. 거칠고 험한 바닷일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모든 어선은 어획량 쿼터가 정해져 있다. 30여년 전만 해도 제한이 없었지만 물고기가 급감하면서 규제가 생겼다. 북대서양 국가들이 해양자원의 지속가능한 이용을 위해 만든 국제해양개발위원회(ICES)의 자료를 토대로 해마다 각국이 어획량을 합의하면 정부는 어선들에 쿼터를 배분한다. 노르웨이에서 할당량은 ‘물고기 보호장벽’이면서 어업을 폐쇄적인 구조로 만드는 ‘경제장벽’이다. 할당량은 어부가 아닌 배에 속한다. 배가 상속되면 할당량도 상속돼 하나의 재산권이 됐다. 그래서 어촌에는 가족기업이 많으며, 어민들은 상대적인 고소득층이다. 최근 저유가로 석유산업이 기울자 어업의 주가는 더 올라갔다.

9월16일 노르웨이 올레순 북쪽 부두에 정박해 있는 원양 주낙어선 루랑호 앞에서 선장 스톨라 디브(맨 오른쪽)와 장남 트론트(왼쪽에서 두번째), 둘째 아들 루벤(맨 왼쪽), 막내딸 토냐(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9월16일 노르웨이 올레순 북쪽 부두에 정박해 있는 원양 주낙어선 루랑호 앞에서 선장 스톨라 디브(맨 오른쪽)와 장남 트론트(왼쪽에서 두번째), 둘째 아들 루벤(맨 왼쪽), 막내딸 토냐(오른쪽에서 두번째)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올레순 | 이인숙 기자

바다는 언제까지 아낌없이 ‘선물’을 내줄 수 있을까. 지구의 70%는 바다이고 어업은 먼 바다에서 일어나는 까닭에 우리는 물고기의 일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하다. 씨뿌리고 김매고 농약을 칠 일 없이 거두기만 하면 되니 공짜인 것만 같다. 중금속이 없고 안전하다면 물고기는 마음껏 먹어도 되는 것일까.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고등어에 버금가는 ‘국민생선’ 명태는 2000년 이후 어획량이 제로다. 맥주 안주로 사랑받는 쥐포의 재료 말쥐치는 한때 잡히면 버릴 정도로 흔한 생선이었지만 1980년대 이후 급감해 지금은 잡히지 않는다. 이제 명태는 러시아에서, 쥐치는 베트남에서 온다. 고등어는 국산에서 중국산, 노르웨이산으로 옮겨왔다. 노르웨이 고등어마저 씨가 마르면 다른 바다를 찾을 수 있을까. 세계자연기금(WWF)은 “국제 어선단의 조업 능력은 지금 바다가 지탱할 수 있는 수준의 2~3배를 넘어서 전 세계 바다의 절반이 고갈됐다”고 지적한다.

노르웨이 연어산업의 기틀을 닦은 사육학자들은 양식이 해법이라고 봤다. 마린하베스트의 슬로건은 ‘파란 혁명(blue revolution)을 선도한다’다. 업계는 연어 1kg을 얻는 데 필요한 탄소발자국(2.5)이 소(30), 닭(2.5), 돼지(5.9)보다 훨씬 적다고 주장한다. 양식업계는 유전시추 기술을 접목한 심해 양식장, 완벽한 환경 통제가 가능한 육지양식장 개발까지 시도하고 있다. 이제는 품종개량을 넘어 유전자조작(GM)까지 넘본다. 미국 회사 아쿠아바운티가 개발한 GM연어 ‘아쿠아어드밴티지 연어’는 지난해 11월 미 식품의약청(FDA) 승인을 받았다. GM연어는 성장속도가 야생 연어의 11배, 기존 양식 연어의 2배 가까이 빠르다. 지난 5월 캐나다도 GM연어의 판매를 승인했다.

연어치어시설, 바다 양식장과 가공공장은 연어산업의 거대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관리는 치밀했고, 과학적이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 모두가 이렇게 많은 돈과 에너지가 투입된 연어를 먹어야 할까, 지구 저편에서 비행기타고 온 생선을 먹어야만 할까 하는 생각이 내내 머릿 속에서 돌아다녔다.
 

■자연산과 양식연어가 섞이면

연어양식의 규제망이 예전보다 촘촘해진 것은 맞지만 연어, 참치 같은 먹성 좋은 물고기를 대량 사육하는 것이 지속가능한지에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다. 연어를 키우느라 바다생물을 싹쓸이한다는 비판이 일자 이제는 사료의 절반 이상을 옥수수, 콩 따위로 채우고 있다. 전 세계 콩의 70%가 가축 사료로 쓰이는 지금 양식 물고기까지 살찌우려면 더 많은 숲이 사라지고 콩밭이 들어서야 한다. 참치의 경우는 살 1kg을 얻는데 사료 20㎏이 필요하다.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 수산도시 올레순. 올레순 | 이인숙 기자

노르웨이 남서부 해안 수산도시 올레순. 올레순 | 이인숙 기자

연어 항생제 문제도 해결되지 못했다. 미국 최대 도매업체 코스트코는 지난해 항생제 사용이 지나치다며 칠레 양식 연어의 수입을 줄이겠다고 선언했다. 올 상반기에는 칠레 양식장에서 연어가 전염병으로 집단 폐사해 연어값이 뛰었다. 백신으로 항생제를 대신한다 해도 문제는 끊이지 않는다. 지금 연어 양식장의 가장 큰 골칫거리는 ‘바다물이(Sea lice)’다. 연어의 피부에 기생하는 바다물이는 양식업 규모에 비례해 무섭게 번식했다. 양식장 연어가 모두 폐사할 위험은 물론 야생 연어에도 옮는다.

노르웨이는 지난해 이 때문에 연어 생산량이 5% 줄었다. 정부는 이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양식장 허가를 더 이상 내주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양식장에서는 살충제를 뿌리거나 바다물이를 잡아먹는 ‘청소 물고기’를 가두리에 집어넣거나 온수를 분사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하고 있지만 아직 해법을 찾지 못했다. 비싼 레이저 기계를 양식장에 투입하는 방법까지 등장했다. 업계가 지난해 바다물이 문제에 쏟아부은 돈만 50억 크로네(6800억원)다.

연어가 가두리를 탈출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사람이 주는 사료를 먹고 통제된 환경에 길들여진 연어가 야생 연어와 유전적으로 섞이면 연어는 언젠가 자연에서 살아남는 능력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현지 환경단체 그린워리어의 소셜미디어에는 자체 제작한 감시선이 노르웨이 연안을 오가며 연어 배설물이 깔린 양식장 바닥을 찍어 고발하는 영상이 계속 올라온다.

WWF는 1995년 세계 최대 수산기업인 유니레버와 제휴해 지속가능한 어업을 위한 기준을 정하는 비영리단체 해양관리협회(MSC)를 만들었다. MSC인증이라는 환경라벨을 붙여 소비자를 움직이고 그 힘으로 기업을 움직이는 것이다. 2010년에는 양식관리협회(ASC) 인증제도가 탄생했다. 구르시쿠이 양식장 사무실 벽에는 2012년 6월 ASC인증을 얻었다는 증서가 걸려 있다. 노르웨이 전체 수산업 양식장 1069개 중 ASC인증을 받은 양식장은 76개로 7% 수준이다. 마린하베스트는 2020년까지 모든 양식장에 ASC인증을 받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외에도 해초 사료, 초식 물고기 양식, 물고기 배설물을 분해하는 해초 등 지속가능한 양식을 위해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어차피 인증제도는 판촉수단일 뿐이라며 불신의 눈길을 보낸다. 그린피스 북유럽지부의 할바르 루어븐트 북극해 캠페이너는 “ASC 인증에는 바다물이를 없애기 위해 쓰이는 과산화수소 등 화학약품에 대한 규제가 없다”며 “이런 인증은 자칫 소비자들에게 친환경 생선을 먹는다는 착각을 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가능한 해산물 리스트를 만드는 미국 캘리포니아 몬테레이만 수족관의 해산물감시위원회(Seafood Watch)는 노르웨이의 ASC인증 연어를 인정하지 않는다. 양식장 2곳을 뺀 노르웨이 양식 연어는 ‘피해야 할 생선’으로 붉은 딱지가 붙어 있다.

인구는 더 늘어나고 사람들은 더 많은 물고기를 먹게 될 것이다. ‘생물’ 물고기의 미래와 ‘식품’ 물고기의 미래 사이 균형점은 어디일까.

■특별취재팀: 구정은 박경은 이인숙 정환보 남지원 이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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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파업’ 신입 철도노동자의 속내 “이 악물고 버텼는데 또 인턴 하라니...”

 

퇴직을 앞둔 그와 이제 막 입사한 그, 그들이 말하는 ‘성과연봉제’

이승훈 기자 lsh@vop.co.kr
발행 2016-10-10 08:31:14
수정 2016-10-10 09: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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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오는 27일 예정된 총파업을 결의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오는 27일 예정된 총파업을 결의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정의철 기자
 

“철밥통 지키기”, “불법파업”, “성과연봉제와 퇴출제는 별개”

정부여당이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며 총파업에 돌입한 노조에게 쏟아내고 있는 비판이다. 정부는 노조의 파업을 “정당성이 없다”고 비난하며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도노동자를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정부의 ‘일방적인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해 10일째 총파업을 진행하고 있다. 노조는 정부와 정치권에 성과연봉제 시행을 유보하고, 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만들어 2017년 3월까지 공공기관 개혁과 임금체계 개선방안을 마련 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총파업 중심에는 2만7000여명의 철도노동자들이 있다.

철도노동자들은 왜 이토록 성과연봉제 도입에 반발하는 것일까? 총파업에 나서게 된 그들의 속 얘기를 들어봤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다.ⓒ김주형 기자

“기관사가 되기 위해 이를 악물고 버텼다”
신입 기관사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평생인턴제”

“상사 눈치만 보며 연월차는 쓰지 못하고, 다쳐도 산재신청을 못하고,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기관사만 되면 바뀔 거라고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렇게 온갖 일을 하면서 버티고 정규직이 됐더니 동료들끼리 경쟁을 하며 서로를 짓밟으라고 한다.”

7일 <민중의소리>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철도 부기관사 이모씨(30대)는 “성과연봉제는 노예연봉제·평생인턴제라고 생각한다”며 이같이 토로했다. 그는 올해 6월30일 입사한 3개월 차 신입 기관사다.

이씨는 구의역 사고의 김군과 똑같은 스크린도어 보수 작업, 최저임금을 받으며 물류하청 일 등을 하면서 기관사 시험을 4년간 준비해 기관사가 됐다. 올해 6월 부기관사로 한국철도공사 채용에 최종 합격했다. 3개월간의 인턴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만 하는 인턴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경쟁을 해야만 했다. 어렵게 경쟁을 뚫고 기관사가 됐지만, 이번에는 경쟁체제로 모는 성과연봉제가 노조의 동의도 없이 통과된 것이다.

그는 “인턴 동기들의 피눈물위에 살아남으니, 또다시 동료들과 그 비참하고 비인간적인 경쟁을 하라고 강요한다”고 분노했다.

게다가 이번 신입채용 계획은 지난해 노사가 임금피크제 시행과 함께 합의한 내용이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임금피크제 시행에 따라 1310명을 올해 내로 채용하기로 해 놓고, 500여명만 채용한 상태다. 3개월 인턴과정을 고려하면 회사는 최소 9월경에는 하반기 채용을 시작했어야만 했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에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임금피크제를 통해 2천300여개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표했다. 하지만 이를 도입한 뒤 외려 청년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조사가 발표되고 있다. 정부는 성과연봉제 역시 “청년일자리 만드는 성과연봉제”로 포장하고 있다.

이씨는 “약속했던 신규채용은 절반수준에도 못 미친다”며 “성과연봉제를 일자리 만들기로 치장하지만, 사실상 상대적 박탈감으로 불안에 떠는 청년들과 우리를 대립하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과연봉제로 일하는 환경은 더욱 악화될 거고, 공기업을 시작으로 전 영역으로 확대 되리라 본다”며 “그런 점에서 철도사람들의 파업은 단순히 자기 밥그릇 지키기가 아닌 우리 모두의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깃발을 앞세우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10일 서울 용산구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철도노조 2차 총력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노조깃발을 앞세우고 성과연봉제 반대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정의철 기자

성과연봉제, 회사 내 인간관계 악화
노동조합 파괴로 노동자 권리 악화

“일을 기가 막히게 잘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는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졌다. 이처럼 다양한 사람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 회사다. 그런데 정부와 회사가 말하는 성과연봉제는 직원 간 관계와 분위기는 필요 없고, 열심히 일해서 수익만을 높이라는 말이다. 회사 내 인간관계는 파괴될 것이다”

1976년 12월에 철도청에 입사해 40년간 기관사 일을 해온 전성철씨(59)는 “회사 직원들끼리 함께 산에도 가고 공도 차는 등 화목한 분위기가 형성돼 있지만,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옆에 동료가 곧 경쟁상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씨는 “지금도 매달 사내 시험을 보고, 1년에 두 번은 비교적 엄격한 평가를 하고 있다”며 “성과제가 도입되면 이런 평가·시험제도는 더욱 강화되고 동료 간에 분위기는 삭막하게 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동자의 권리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노사가 합의한 객관적인 평가방식이 있더라도, 사용자의 주관이 개입돼 노조원에 대한 부당한 평가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전씨는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노동조합이 무력화 될 것”이라며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는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한 모든 행동이 통제되지 않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저성과자 평가는 곧 퇴출로도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고용노동부가 올해 1월에 발표한 양대지침의 주요내용에는 ‘직무능력·성과 중심 인력운영 및 근로계약 해지절차’가 담겨 있다. 노조가 성과연봉제는 곧 퇴출제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되는 이유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전북버스 노동자가 ‘성과주의 반대’ 수건을 펼쳐들고 있다.
철도노조 호남본부·건강보험노조 광주전남본부는 27일 오후 광주송정역 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고 있다. 이날 파업에 동참한 전북버스 노동자가 ‘성과주의 반대’ 수건을 펼쳐들고 있다.ⓒ김주형 기자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
“공공의 안전과 권익을 위한 것”

2005년 4월25일 효고(兵庫)현 아마가사키(尼崎)시에서 운행 중이던 급행열차가 곡선 구간에서 탈선한 뒤 선로변의 아파트에 충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106명이 숨지고, 562명이 부상당했다. 이 참사는 전역에서 지체한 1분30초를 만회하려던 기관사가 과속으로 운전하면서 발생했다.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지나친 경쟁사와의 경쟁, 실적 압박이 사고의 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은 대국민 호소문을 통해 “후쿠지야마 사고는 공공부문 성과주의가 어떻게 공공성을 침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며 “실적 압박의 중압을 견디지 못한 노동자의 노동이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사고”라고 강조했다.

이어 “철도를 비롯한 공공부문에 불어 닥친 ‘성과주의’라는 태풍은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인 ‘공공성’을 침해할 것”이라며 “이윤만을 위한 철도가 아닌, 국민의 철도가 되기 위한 파업임을 공감해 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철도 부기관사 이모씨는 “이미 철도는 117년의 노하우로 안전에 기반 한 최대한의 효율을 목표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여기에 더 무리하기 시작하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할 것이고 모두 시민의 피해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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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이 골프장 때문은 아니라는 얼빠진 천안함재단

 
‘원인 규명과 추모보다는 안보 교육을 위해 이용됐던 천안함재단’
 
임병도 | 2016-10-10 08:46:54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2010년 KBS의 천안함 특집방송 및 모금 생방송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침몰로 46명의 승조원이 숨지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당시 KBS는 주말 3일 동안 13시간 천안함 특별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KBS는 ‘특별생방송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방송하면서 실종자와 그 가족들을 위한 성금을 모금하기도 했습니다.

원인 규명이 되기도 전에 추모와 모금 방송이 나오는 모습에 일부 국민들은 반감과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국민들이 모은 성금 중 일부가 군 지휘관 회식비용 등으로 사용됐다는 의혹이 국회에서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사건으로 모인 성금은 400억 원이 넘었습니다. 그러나 일부만 유가족에게 돌아갔고 나머지는 ‘천안함 재단’ 설립에 사용됐습니다. 숨진 46용사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천안함재단’ 그러나 오히려 유족들이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천안함 폭침이 골프장 때문은 아니라는 천안함재단’

천안함 유가족들은 재단의 설립 목적인 추모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며 차라리 해체해서 그 돈을 국가나 국민에게 반환하라는 주장을 펼쳐왔습니다. 2015년에는 유가족들이 재단 해체를 요구하는 탄원서를 청와대와 국가보훈처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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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들이 재단 임원들의 골프장 이용을 문제 삼자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2함대에 있는 골프장 떄문에 폭침 사고가 난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KBS뉴스 캡처

 

2015년 유가족들은 천안함재단 임원들이 2함대 해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며 이를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유가족은 KBS와의 인터뷰에서 “2함대 앞바다 바닷물이 그냥 보통 물로 보이냐. 가족의 눈물이 고여 있는 데다. 그것만은 막아달라고 제가 처음에 그 부탁했거든요.”라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박래범 천안함재단 사무총장은 “재단 임원들이 같이 가는 건 일 년에 한 번 갑니다. 2함대에 있는 골프장 때문에 천안함이 그렇게 폭침 사고가 난 건 아니잖아요?”라며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천안함 46용사를 기리기 위해 설립된 재단 임원들이 그들이 숨진 바다가 보이는 해군 골프장에서 골프를 쳤다는 사실은 성금을 낸 국민조차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습니다. 또한, 변명 또한 그리 설득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퇴임 선물로 황금열쇠 받은 김인규 KBS 사장, 천안함재단 고문으로’

더불어민주당 김해영의원(부산 연제구 정무위)은 국가보훈처로부터‘천안함재단의 운영현황에 대한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천안함재단이 모 방송국 사장의 퇴임을 축하하며 재단의 경비로 10돈짜리 황금열쇠(297만원)를 선물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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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임 선물로 황금열쇠를 지출했다는 천안함재단의 지출결의서와 김인규 전 KBS 사장의 재단 고문 위촉 사진 ⓒ천안함재단

 

여기서 말하는 모 방송국 사장은 김인규 전 KBS 사장을 말합니다. 김인규 사장은 2012년 11월 퇴임을 했고 이듬해인 2013년 4월 2일 천안함재단의 고문으로 위촉됐습니다.

천안함재단이 김인규 전 KBS사장에게 297만원짜리 황금열쇠를 선물하고 고문으로 위촉한 이유는 천안함 사고가 발생하자 발빠르게 추모 방송과 특집 성금 모금 방송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군인 46명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는데 그들보다 오히려 방송으로 홍보에 힘쓴 인물에게 황금 10돈의 선물과 고문이라는 직책을 선사했습니다. 진정으로 그들을 기억하려는 천안함재단이 해야 할 사업은 아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수차례 감사를 요구했지만, 외면한 국가보훈처’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에 따르면 천안함재단 유가족들은 ‘재단발전간담회’ 등의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 천안함재단의 해체를 요구했습니다.

① 이사장의 개인저서를 재단의 경비 2,000만원으로 사들여 군부대등에 기증했다 유족의 반발로 다시 반환
② 이사장, 이사진 등은 두 쪽 난 천안함이 내려다보이는 제2함대체력단련장(골프장)에서 해군측의 준회원 자격 부여로 골프를 즐김.
③ 모 방송국 사장의 퇴임을 축하하며 재단의 경비로 10돈짜리 황금열쇠(297만원)를 선물
④ 이사장은 군부대 특강에서 재단의 경비로 출장일비, 교통비, 숙박비, 식비를 지원
⑤ 해당 부대에 재단 경비로 100~200만원씩 위로금으로 지급
⑥ 이사장은 부대에서 따로 특강료를 지급받은 것으로 나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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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재단 이사회 회의록 ⓒ천안함재단

 

천안함유가족들은 2015년부터 국가보훈처 등에 천안함재단의 감사를 요구했습니다. 2015년 6월 KBS 방송으로 관련 뉴스가 보도되자, 재단 측도 국가보훈처에 감사를 요구했습니다.

천안함재단 이사회는 7월과 8월에도 국가보훈처에 감사를 재요청했습니다. 국가보훈처는 유가족의 감사요청에 대해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도 천안함재단에 대한 감사는 없었습니다.


‘원인 규명과 추모보다는 안보 교육을 위해 이용됐던 천안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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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 이후 초등학교 안보교육 등이 급증했다

 

유가족들은 천안함재단이 추모사업비와 생존자와 유가족 지원에 너무 적은 비용을 사용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천안함재단의 사업비 중에서 눈에 띄는 지출은 ‘천안함 추모 음악회’나 ‘대국민 안보 교육’이었습니다.

재단 측은 추모행사비용은 대부분 보훈처와 해군에서 지원했기 때문에 적었고, 재단 특성상 직원이나 사무실 운영비는 불가피한 예산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국민들이 400억이 넘게 모아준 성금이 고작 재단 직원의 급여와 사무실 운영비를 위해 사용되는 모습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46명의 안타까운 목숨이 숨진 천안함 사건을 이용해 ‘안보 교육’에 치중하고 ‘안보 정국’을 만들려는 불순한 정치적 의도는 이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천안함침몰KBS성금모금-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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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백남기 보험청구땐 ‘외상성’ 진단서엔 ‘병사’…“사기쳤냐”

 

11.14 이후 11번 ‘외상성’ 보험청구…SNS “백선하 수정지시하고 사죄하라”민일성 기자  |  balnews21@gmail.com
 

   
▲ 故 백남기 농민의 주치의인 백선하 서울대학교병원 교수가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견동 서울대학교병원 의학연구혁신센터 서성환홀에서 열린 故 백남기 농민 사망진단서 논란에 대한 서울대학교병원-서울대학교 의과대학 합동 특별조사위원회 언론 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서울대병원이 고 백남기씨 사망진단서에 ‘병사’로 기재해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는 가운데 정작 건강보험급여 청구에는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기재했던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9일 노컷뉴스에 따르면 서울대병원은 고 백남기씨의 상병코드를 ‘외상성’ 경막하출혈로 기재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11차례 건강보험급여(보험급여)를 청구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심평원의 관련 내역을 확인한 결과 서울대병원은 고 백남기씨가 병원에 실려온 지난해 11월14일부터 2016년 9월까지 줄곧 백씨의 상병코드를 ‘외상성’ 경막하출혈(AS0650, AS0651)로 기재해 보험급여를 청구했다.

서울대병원은 11차례에 걸친 보험급여 청구에서 ‘(양방)열린 두개내 상처가 없는 외상성 경막하출혈(AS0650)’과 ‘(양방)열린 두개내 상처가 있는 외상성 경막하출혈(AS0651)’를 기재했다.

그러나 고 백남기씨 사망 직후 9월25일 백선하 교수의 지시로 레지던트 권모씨가 작성한 사망진단서에는 ‘외인사’가 아닌 ‘병사’로 기재했다.

정춘숙 의원은 “서울대병원과 백선하 교수는 스스로 결자해지하는 자세로 사망진단서 오류를 바로잡고 논란을 종식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사진출처=JTBC 화면캡처>

해당 보도가 알려지자 SNS에서는 서울대병원의 시정을 촉구하는 의견이 잇따랐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서울대병원장은 백선하 교수에게 진단서 수정을 지시하고 공개사과하라”라고 성토했다. 또 정 전 의원은 “검‧경찰은 부검시도를 철회한다는 발표를 하고, 이제 특검을 통하여 살수과정과 은폐 등에 대한 자세한 수사를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김진애 전 의원은 “백남기 농민 의료보험 청구할 때는 ‘외상성 출혈’로 썼군요. 그것도 11번이나. 뭡니까?”라며 “사망진단서에는 왜 ‘병사’라 쓴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서주호 정의당 서울시당 사무처장도 “서울대병원과 주치의 백선하 교수는 패륜적 만행 사죄하고 사망진단서 외인사로 수정해야 한다”고 성토했다.

SNS에서는 “존경받는 의사가 어찌하여 얼마 남지 않은 권력 앞에 양심을 팔아 먹은 건지, 영원한 권력은 없소이다, 명예를 지키세요”, “보험은 외상성으로 돈 받아 먹고, 진단서는 병사로써서 가족에게 돈 받고, 이건 사기 아닌가”, “저게 사실이라면 서울대병원 보험사기친 거냐? 병원 폐업시켜라”, “보험공단은 서울대병원 부당보험급여청구 감사하라”, “서울대학병원 고발 당하겠네”, “양심을 파는 백선하임이 판명됐네요” “백선하 한 사람 때문에 서울대병원이 그 동안 쌓은 명예가 한 순간 날아갔다” 등의 의견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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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방 이야기]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대륙서점'

30년째 같은 간판 쓰는 주인장의 속내

[나의 책방 이야기] 서울 동작구 상도동 성대골 '대륙서점'

16.10.09 19:59l최종 업데이트 16.10.09 19:59l

 

지인에게 "동네에 자주 드나드는 단골책방 없냐"고 물었더니 "누가 요즘 책방에 가느냐"고 면박을 줍니다. 그런데 이상하죠? 책방은 계속 생겨나니까요. 심지어 심야책방, 책맥(책+맥주), 낭송회 등등의 문화도 선도해 만들어갑니다. 여러분의 취향저격 책방 이야기를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오늘은 잊고 지내던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네 
내일이면 멀리 떠나간다고

어릴 적 함께 뛰놀던 골목길에서 만나자 하네 
내일이면 아주 멀리 간다고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 동물원, <혜화동>

어릴 적, 자신이 살던 동네 혹은 골목길에 대한 추억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우리에게 '골목길'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아련함, 친숙함을 느끼게 한다. 내게도 걷기만 하면 늘 아련함을 느끼게 하는 그런 골목이 존재한다. 바로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성대골'이 그렇다.

1999년 아직은 코흘리개였던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 손 잡고 처음 이곳에 온 뒤로 성대골은 내가 10대 시절을 오롯이 보낸 고향과도 같은 곳이 되어버렸다. 어릴 적에는 친구들과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닌 골목길이었고, 코밑에 수염이 드문드문 나기 시작한 고등학생 때는 매일 오가던 등하굣길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아련했던 10대 시절이 그리울 때면 가끔씩 찾아 향수를 느끼곤 하는 길목이기도 하다. 그 골목길 한 켠에 유일한 동네책방 '대륙서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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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전경 1987년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튼 대륙서점은, 30년 동안 줄곧 이 자리를 지켜왔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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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살 생일을 앞둔 대륙서점

대륙서점의 역사는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는 지금 있는 자리에서 바로 맞은 편에 자리잡고 있던 서점이었다. 그러나 1987년 당시 40대 초반이었던 양성훈 사장이 인수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새롭게 문을 열었다.

그리고 긴 시간 동안 대륙서점은 성대골 주민들과 함께 했다. 그러나 대형 서점이 도서시장을 장악하면서 동네책방들에 위기가 찾아왔다. 대륙서점이라고 그 위기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고심 끝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학습지 전문 서점으로 거듭났다. 딱 거기까지가 내가 대륙서점에 대해 갖고 있던 기억이었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성대골은 그 사이에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나의 10대 시절 추억도 이젠 기억에 묻어야 하는구나'하는 서운한 마음으로 쓸쓸히 걷고 있을 무렵, 어느덧 내 발걸음은 대륙서점 앞에 멈춰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들여다 보이는 대륙서점은 내 기억 속에 자리잡고 있던 옛날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밝은 조명 아래 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진지하게 책을 읽고 있었다. 도대체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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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책방지기가 인수하기 전, 30년 동안 대륙서점을 운영해왔던 양성훈·남덕임 부부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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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대륙서점으로 다시 탄생하기 전, 학습지 전문 서점이었던 시절의 대륙서점 내부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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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롭게 거듭난 대륙서점을 찾다

"어서 오세요."

서점에 들어서자, 젊은 책방지기(이곳에서는 주인을 이렇게 불렀다) 박일우(41)씨가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었다. 곧이어 그의 아내 오승희(33)씨도 들어왔다. 책방을 한 번 스윽 둘러보기 무섭게 책방지기 부부에게 "그동안 어떤 일이 었었던 거냐"고 물었다. 오씨가 웃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학습지 전문 서점으로 거듭난 뒤에도 대륙서점의 운영 상태는 좋지 못했다고 한다. '마을에 책방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30년 가까이 대륙서점을 지켜왔던 양성훈·남덕임 부부도 더 이상 서점 운영을 이어나가기 힘든 상황에 내몰렸다. 5년 이상 수익이 나오지 않아, 임대료조차 납부하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 결국 고심 끝에 노부부는 2015년, 문을 닫기로 결정했다.

때마침 신혼부부였던 박일우·오승희 부부가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당시 두 사람은 성대골에 신혼살림을 차린 상태였다. 성대골에 처음 자리를 잡아 '이제 뭐 먹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부부에게 우연히 접한 대륙서점 폐점 소식은 운명과도 같았다.

오씨는 "책방을 인수하기로 마음먹기까지 딱 하루 걸렸다"고 고백했다. 지금도 편집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그녀는 "음식점을 차릴까도 고민해 봤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게 차라리 더 자신 있었다"고.

부부는 다음 날 바로 서점을 찾았다. 지금은 전 주인이 된 양성훈 사장 역시 하루 고민하고 바로 다음 날 "책방을 인수하라"며 젊은 부부에게 대륙서점을 넘겼다. 모든 과정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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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을 인수한 뒤에 새롭게 리모델링하는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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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비는 책으로 받겠습니다"

그런데 막상 책방을 인수하고 나니, 막막한 부분이 한둘이 아니었다. 당장 리모델링 문제부터 해결해야 했다. 마침 오씨가 활동하던 '청춘플랫폼'을 만든 디자인 기업 블랭크(Blank) 측이 대륙서점 리모델링에 두 팔 걷고 나섰다.

블랭크는 도심의 사각지대에 위치한 빈 공간들을 재활용하여, 주민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주로 만들어 온 사회적 기업이었다. 블랭크 측은 한 발 더 나아가 "설계비를 책으로 받겠다"고 했다.

"우리 부부의 어려운 사정을 들은 블랭크 측이 책으로 설계비를 받기로 했다. 그래서 매월 5권씩 3년 동안 블랭크 팀에 책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서 지금도 그 친구들이 읽고 싶은 책들을 알려오면, 우리가 직접 주문해서 가져다주고 있다."

블랭크 측이 이토록 파격적인 양보를 한 것은 '우리 마을에도 좋은 모델을 만들어보자'는 데 부부와 뜻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테리어 과정에서 가장 많이 고민했던 부분 역시 '어떤 공간으로 활용할 것인가'였다. 내부 장식보다는 어떤 책을 팔고, 어떤 공간으로 운영해나갈 것인지 논의를 거듭했고, 그 결과 주민들이 '사랑방'처럼 이용할 수 있는 지금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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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내부 모습 동네책방이라고 하지만 매우 좁다. 이 좁은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책방지기 부부의 고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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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아지트

책을 좋아한 오씨와 커피를 좋아하는 박씨는 각자가 좋아하는 걸 함께 해보자고 마음 먹었다. 책방 한 켠에서 커피와 맥주 등 음료를 파는 '북카페'의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그러나 단순한 북카페가 아니었다. 부부는 "책하고 사람들을 좀 더 쉽게 연결해줄 수 있는 아지트와 같은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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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한 켠에는 이렇게 음료를 제조해서 파는 공간이 있다. 대륙서점을 찾는 주민들은 직접 주문한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기도 하고, 밤에는 맥주 한 잔과 더불어 책맥을 즐기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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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2015년 11월 8일, 절기상으로는 이제 막 겨울에 들어서는 입동(立冬)에 대륙서점 시즌 2가 문을 열었다. 많은 책을 구비할 여유가 없어, 처음에는 200만 원 어치의 책으로 시작했다. 앞으로 계속 쌓아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새롭게 문을 연 지 이제 1주년이 가까워져 오는 지금, 부부는 "예전에 비해서 책이 훨씬 많아졌다"며 웃는다.

찬찬히 서가를 둘러보니 책을 소개하는 코너의 이름이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보통 '인문, 사회, 과학, 예술' 등으로 분류하는 대형 서점과는 달리 '현재 우리는 어떤 사회에 있나요?', '가슴 뜨겁게 취하고 싶은 날, 술친구가 되어주는 책', '새벽에 홀로 깨어 있고 싶을 때'와 같이 문구 형식으로 이루어진 코너명이 참으로 신선했다. 부부가 직접 고민해서 붙인 문구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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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코너의 문구는 책방지기 부부가 손수 지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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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서점에 비하면 입고되는 책의 규모도 턱 없이 부족할 터. 특별히 책을 고르는 기준이 따로 있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우리 부부가 좋아했던 책이나, 작가 혹은 편집자로 일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추천 받은 책 위주로 입고했다. 그렇게 200권의 책을 갖다놨는데, 정작 주민들은 베스트셀러를 찾았다. 주민들의 수요에 맞춰서 지금은 우리가 추천하는 책과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함께 갖다놓고 있다."

대륙서점은 주민들로부터 '예약 주문'을 받기도 한다. 동네 주민들이 원하는 책을 주문하면, 책방에 자연스럽게 입고한다. 그러다가 책방지기 부부가 읽어보고, 괜찮은 책이라고 판단하면 추가 입고해서 다른 주민들에게 소개하기도 한단다. 그래서 부부는 "우리만의 책방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 하는 책방이다"라고 대륙서점의 성격을 규정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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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대골 주민들의 공유서가 대륙서점에는 '공유서가'란 게 있다. 책방 단골 손님들이 자신이 감명 깊게 읽은 책을 한 달 동안 대륙서점에 대여해주면, 서점에서 코너를 만들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코너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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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잡지를 출판하기도

대륙서점에서는 '독립출판물' 코너 역시 별도로 마련해놓고 있다. 독립출판물이란 저자가 기획, 편집, 출판 그리고 서점 입고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아 하는 출판물을 의미한다. 베스트셀러가 장악해버린 도서시장에서, 독립출판물의 가치를 널리 알리기 위한 차원인 셈이다.

올 여름에는 대륙서점에서 직접 출판한 책이 나오기도 했다. <상도동 그 가게>가 바로 그것. 대륙서점이 위치한 성대골(상도동) 일대의 아주 오래된 가게부터, 새로 생긴 호텔까지 상도동에 있는 가게들을 소개하는 잡지다. 

상도동 주민 기자단부터 마을활동가, 건축하는 청년, 일러스트레이터 겸 작가인 청년 그리고 대륙서점 책방지기 부부가 참여해 만들었다. 이 책은 오로지 대륙서점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대륙서점에서는 <상도동 그 가게>에 이어, 올 하반기에 <상도동 그 소설>이라는 주제의 다음 시리즈를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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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 명의로 처음 출간된 <상도동 그 가게>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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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다

학습지 전문서점으로 오랫동안 기억되어온 대륙서점이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난 것에 대해 동네 주민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많은 주민들이 동네에 이런 데가 생겨서 좋다고들 한다. 물론 여전히 관심 없는 이들도 많다. 워낙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다보니, 이런 책방이나 행사에 관심 없는 주민들도 많다. 그런 이들조차도 가볍게 발걸음 할 수 있도록 다양한 행사와 모임을 주선해오고 있다."

실제로 대륙서점은 책을 파는 서점이지만 서점의 역할을 넘어 동네 주민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매월 첫째 주에는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우리 동네 독립영화관'을, 둘째 주에는 독립다큐멘터리를 상영하는 '씨네륙'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해오고 있다. 

다큐 공동체인 '푸른 영상'과 연대하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감독을 서점으로 초청해 '감독과의 대화'를 갖기도 한다. 이번 달말에는 동작구 지역라디오 '동작FM'과 연대하여 '한국 현대사 30장면, 그 오욕과 감격의 역사'라는 주제의 한국현대사 특강을 개최할 예정이다. 영화 상영을 넘어 인문학 강좌까지 외연을 넓힌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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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에서 진행한 '우리 동네 독립영화관' 상영 모습. 대륙서점에서는 정기적으로 독립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상영하고, 감독을 초청해 '감독과의 대화' 시간을 갖는다.
ⓒ 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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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는 대륙서점 주차장에서 '플리마켓'이 열리기도 했다. 오씨는 "결국 이런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동네 주민들에게 대륙서점으로 들어오는 문턱을 낮춰주기 위함이다"라며 "평소엔 들어오기 꺼려지던 서점이지만, 플리마켓을 통해 자연스럽게 서점으로 들어오고, 또 그렇게 책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대륙서점은 사회 참여 활동도 꾸준히 해오고 있다. 지난 1일에는 세월호 참사 900일을 맞아, 플리마켓 수익금 10만 원으로 '세월호 기억 팔찌' 캠페인에 후원하기도 했다. 이렇듯 사회 참여 활동에 앞장서는 것은 책방지기 부부의 소신이 뚜렷한 탓이다.

"살아가면서 더 이상 사회적인 문제를 외면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세월호 코너를 만드는 등, 책방을 찾는 주민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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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에서 개최하는 플리마켓 당시 모습. 평소 책과 거리가 멀었던 동네 주민들에게 대륙서점의 문턱을 낮춰주기 위한 행사였다. 대륙서점 측은 수익금 10만원을 '세월호 기억팔찌 캠페인'에 후원했다.
ⓒ 대륙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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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책 한 권 찾아주는 곳이 동네책방

최근 들어 동네책방이 때 아닌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가수 요조, 개그맨 노홍철 등 유명인사들까지 앞다투어 책방을 열면서, 동네책방을 찾는 젊은 세대들의 발걸음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이러한 책방 열풍을 두고 '반짝 인기'에 그칠 것이라며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적지 않다.

아무래도 서점의 규모나 위치에 있어서 대형 서점이 월등한 우위를 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하나둘 문을 닫아가는 동네책방을 지원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대안이 없다. 그렇다면 대형 서점에 비해 동네책방이 갖는 매력 포인트는 뭐가 있을까?

"대형 서점에 가면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매대를 장악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작 유명하지는 않지만 가치 있는 책들은 빛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책방은 다함께 읽고 고민해보고 싶은 책들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그저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러 발견한 그 책이, 어쩌면 평생 만나보지도 못했을 책이 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런 '평생 책' 한 권 찾아주는 것이 동네책방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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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가를 직접 소개하는 책방지기 오승희씨의 모습. 그녀는 특히 황경신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고 했다. 별도로 황경신 작가의 코너가 서점 한 켠에 마련되어 있을 정도였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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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고 싶다

학습지 전문 서점에서 지역공동체의 사랑방이자 문화공간으로 새롭게 거듭난 대륙서점. 그러나 여전히 '각종 초.중.고 학습지 접수처'라고 쓰인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다. 부부는 "지난 30년의 역사를 계승하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부부가 책방을 인수하면서, 대륙서점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시 출발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동네 주민들과 어울려왔던 추억을 그대로 이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어렸을 때 여기서 문제집 사서 공부하던 친구들이, 어엿한 성인이 되어 다시 찾아오고 있다. 그중에 책을 낸 친구도 있고, 우리와 문화공연을 함께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런 친구들에겐 결국 이 서점이 추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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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에는 흔치 않은 '턴 테이블'과 'LP판'이 있다. 책방지기 부부가 신혼살림으로 장만해온 것이라고 한다. 점점 잊혀져가는 옛 가치를 되살리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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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인터뷰 내내 유독 '같이'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단어야말로 대륙서점 운영철학을 잘 담아내고 있는 표현이었다.

"동네 사람 누구나 와서 같이 얘기하고, 늦게까지 술도 마시고, 다같이 어울려 책도 보고 영화도 보면서 서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그런 공간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책방을 운영하는 것도 친구를 사귀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그저 책방 주인과 손님으로 만나는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삶의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그런 친구 관계로까지 발전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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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을 찾은 주민들. 꼭 책을 읽지 않아도 좋다. 웃음소리 끊이지 않는 지역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는 것 역시 대륙서점의 목표 중 하나다. 근처에 거주한다는 박혜성씨는 "이런 공간이 우리 동네에 생겨서 너무 좋다. 책방을 가려면 항상 홍대 등 번화가로 나가야했는데, 진정한 동네책방이 생긴 셈"이라며 대륙서점의 새로운 출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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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취재를 마치고 나와, 대륙서점의 전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뷰파인더에 눈을 가져다 대는 그 순간. 대륙서점이 입주한 건물 옆으로 새로 올라가고 있는 건물이 눈에 띄었다. 무섭게 올라가고 있는 건물 옆에서 낡은 대륙서점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문득 '이러다 대륙서점마저...' 하는 불안감이 들었다. 책방지기 부부 역시 "사실 건물이 재개발될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설사 재개발이 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이 자리를 지키며 주민들과 소통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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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륙서점의 책방지기 박일우·오승희 부부의 모습.
ⓒ 김경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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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동안 너무나 관대했는지도 모른다. 나만의 추억이 깃든 공간을 찾아 헤매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한 번쯤 있지 않던가. 다시 찾은 그 공간이 더 이상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온전히 내 기억 속에만 묻어두고 돌아와야 했던 발걸음은 또 얼마나 쓸쓸했던가. 그래서일까. 성대골 주민들의 추억을 지켜주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대륙서점의 노력이 눈물겹게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이제는 없어서는 안될 성대골의 명물(名物)이 된 대륙서점. 지난 30년 동안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 자리에서 한결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줄 수 있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상호명: 대륙서점 
주소: 서울특별시 동작구 성대로 40 1층 대륙서점 
영업시간: 매일 AM 11 : 00 ~ PM 10 : 00 
TEL : 02-821-8878 
블로그: http://blog.naver.com/daeruk_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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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삼성, 제주기지 반대 맞서 “공개돼선 안 될 긴밀한 협조”

 
[토요판] 뉴스분석 왜?
해군-삼성 분쟁이 ‘중재’로 간 까닭
2013년 8월19일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이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작성한 협조 공문. 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삼성의 손실배상 산정 과정에서 해군은 검찰에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 지휘를 요청한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군은 설명했다.
2013년 8월19일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이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작성한 협조 공문. 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에 따른 삼성의 손실배상 산정 과정에서 해군은 검찰에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 지휘를 요청한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해군은 설명했다.

 

 

 

▶ 2013년 제주해군기지 공사 반대로 공사기간이 연장됐다며 삼성물산이 국가에 손실액 보상을 청구합니다. 몇 달 앞서 해군은 검찰에 공문을 보내 삼성의 손해액 산정 절차로 소송(공개)이 아닌 중재(비공개)로 사건 지휘를 요청합니다. 소송 과정에서 ‘어떤 사실’이 노출되는 것을 막기 위한 해군의 전략이었습니다. 해군과 삼성 사이엔 감춰야 할 공조 정황이 있었습니다. 해군-삼성은 적극적인 협조로 공사 반대에 대응했고, 협조 정황 공개를 막기 위한 ‘중재 작전’엔 법무부도 힘을 보탰습니다.

 

 

 

2013년 8월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장 앞으로 공문 한 장이 작성됐다. 발신자는 해군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기지건설사업단)이었다. 그달 19일 사업단에서 전결 처리됐다.

 

공문은 ‘시공사와의 분쟁에 있어서 중재 합의에 대한 검찰 지휘 요청 의견서’란 제목을 달았다.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발생한 삼성물산(항만 1공구 시공사)과의 분쟁을 검찰이 소송이 아닌 ‘중재’로 사건을 지휘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시공사와 국가 사이의 계약서에 의하면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소송 또는 중재에 의할 수 있으며, 중재에 의할 경우 (…) 양측 당사자 사이의 중재 (절차에 동의하는) 합의가 필요함. 중재의 경우 소송의 경우를 준용하여 검찰청의 지휘를 받도록 법률에 규정이 되어 있기에 중재 합의를 함에 있어서도 검찰청의 지휘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이 됨.”

 

분쟁은 제주해군기지 공사기간 연장으로 발생한 삼성의 추가 비용 청구 건이었다. 해군은 공문에 붙임자료(‘공기연장 추가비용 지급 사안의 현황과 그 해결책의 검토-중재의 필요성’)를 딸려 보냈다. 자료엔 검찰이 중재로 지휘해야 할 ‘내밀한 이유’가 적혀 있었다. 기지건설 반대에 맞서는 해군-삼성 간의 “적극적”이고 ‘공개돼선 안 될’ 협조가 있었다는 사실이 ‘같은 편끼리의 귓속말’처럼 검찰에 설명됐다. 공사지연 배상금 규모를 다투는 분쟁 형식도 “긴밀한 협조” 정황의 노출을 차단할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소송 아닌 중재로 지휘해달라”

 

“왜 소송으로 가지 않고 대한상사중재원으로 보냈는지 우리도 궁금했다.”

 

고권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그때’(중재 절차 당시)를 회고했다. 2012년 5월16일 제주해군기지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발주처인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은 공기 변경 계약을 체결한다. 이 계약으로 ‘2010년 1월29일~2014년 7월28일’로 잡혀 있던 공사기간이 2015년 9월26일까지 늘어났다. 변경 직후 삼성은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금액으로 360억2916만4277원과 그 이자를 요구했다. 연장의 이유를 해군과 삼성은 기지건설 반대 시위에서 찾았다. 애초 양쪽 사이에 공기 연장의 책임규명 논란은 없었다. ‘반대시위로 입은 삼성의 피해액 산정’이 분쟁의 형식과 내용이었다.

 

 

2013년 8월 해군이 검찰에 공문 
삼성 공사지연 손실액 산정 절차 
소송 대신 “중재합의 지휘” 요청 
“삼성과 협력정황 노출되면 안돼” 
법무부 승인으로 해군 뜻대로 진행 

상사중재원 판정문에 ‘협조’ 흔적 
2012년 삼성에 케이슨 가거치 지시 
반대자들에게 ‘공사 불가역성’ 전시 
7기 중 6기 파손 91억 국고 낭비 
해군 “사실관계 답할 사항 아니다”

 

 

해군이 검찰에 요청한 대로 절차는 진행됐다. 삼성과 해군은 손해액 산정을 상사중재원에 판단을 맡겼다. 상사중재원은 중재법에 따라 설립(1966년 3월)된 상설 중재기관이다. 중재 판정은 법원의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받는다. 소송이 상대를 공박하며 승패를 겨루는 싸움이라면, 중재는 합의를 전제로 합의 내용을 정하는 과정이다.

 

2015년 6월18일 상사중재원은 해군이 삼성물산에 27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정했다. 판정을 기초로 해군은 2016년 3월28일 기지 건설에 반대한 116명과 5개 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구상금) 청구소송을 냈다. 공기 연장 추가 비용 275억 중 34억4839만3880원을 해군은 반대시위 탓으로 계산했다.

 

소송이 아닌 중재를 통해 손해액 합의에 이른 데엔 해군의 ‘기획’이 있었다. 국회 국방위원회 이철희 의원(더불어민주당 간사)이 정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와 <한겨레> 취재로 확인됐다. 중재는 무엇인가를 감추기 위한 해군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해군은 중재를 선택한 이유를 “소송과 비교할 때 법적 효력은 같되 처리 절차가 상대적으로 빠르기 때문”이라고 <한겨레>에 설명했다.

 

“삼성이 국책사업 과정에서 (공사 반대로) 손해를 입었고 공기 연장이 불가피한 상황이란 사실은 우리도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남은 문제는 공기 연장에 따른 손해를 객관적으로 검증하는 것인데 소송으로 가든 중재로 가든 효력은 같다. 소송이 몇 년씩 걸릴 수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재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해군본부 공보과장·대령)

 

2012년 9월 초 제주 강정 앞바다에 가거치된 케이슨이 태풍에 파손돼 쓰러진 채 잠겨 있다. 원래 공정엔 없던 케이슨 가거치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 주민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군이 삼성에 지시(대한상사중재원 판정문)해 이뤄졌다. 연합뉴스
2012년 9월 초 제주 강정 앞바다에 가거치된 케이슨이 태풍에 파손돼 쓰러진 채 잠겨 있다. 원래 공정엔 없던 케이슨 가거치는 해군기지 공사 반대 주민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한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해군이 삼성에 지시(대한상사중재원 판정문)해 이뤄졌다. 연합뉴스
해군본부의 설명은 기지건설사업단이 검찰에 보낸 공문 붙임자료에도 언급돼 있다. “본 사안의 본질은 추가 비용에 대한 책임규명이 아니라 적정한 추가 비용에 대한 객관적 검증이므로 소송보다는 중재로 해결하는 것이 합당하다.”

 

해군이 설명하지 않은 ‘삼성과의 관계’가 있었다. 내용은 공문 붙임자료에 명시돼 있다. “제주민군복합항 건설 사업의 경우 해군과 시공사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응하여 긴밀히 적극 협조하여 왔음. 지금까지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공사의 원만한 진행을 위하여 해군이 협조를 요청하는 사항에 대해 시공사는 이해득실을 떠나서 적극적으로 협조하여 왔으며, 이는 추후 분쟁 발생시 (…) 상호 신뢰하여 이루어진 행위 등을 존중하고 (소송이 아닌 중재로) 해결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점을 신뢰하여 왔기에 이루어진 측면이 강함.”

 

검찰의 도움을 요청하는 해군의 논리에서 몇 가지 사실이 확인된다. ① 해군기지 반대 시위 대응은 해군과 삼성의 공조 속에서 이뤄졌다. ② 이해득실을 떠난 삼성의 적극적 협조는 손해배상액 산정 등 분쟁이 발생했을 때 해군의 ‘중재 처리’를 기대하며 들어둔 일종의 ‘보험’이었다. ③ 공기 연장으로 삼성이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실제 상황’이 발생했을 때 결과는 삼성의 기대대로 처리됐다.

 

해군은 이 협력 관계가 소송에서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러한 신뢰를 뒤로하고 (그간의 협조) 절차가 공개되고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소송으로 분쟁을 해결할 경우 당사자 간의 이미지 및 신뢰가 훼손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임.”

 

‘삼성과의 적극 협력’ 중엔 노출돼선 안 되는 정황들도 있다고 했다.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의 경우 언론의 주목을 받아왔기에 소송에 의할 경우 그 액수가 큰 점을 고려하면 또다시 언론에 노출이 될 수가 있음. 언론에 노출이 되는 것을 꺼리는 이유는 공사 방해 시위대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상호간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사항과 대처사항 등 내부적으로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정황들이 존재하기 때문임.”

 

중재를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이유로 ‘비공개 심리’를 꼽기도 했다. “중재 절차는 일반인에게 비공개로 진행이 되기에 이러한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됨.”

 

해군이 검찰에 중재 지휘를 요청한 ‘깊은 뜻’은 이랬다.

 

 

법무부까지 힘 보탠 비공개 전략

 

삼성이 상사중재원에 중재를 신청한 시점은 2013년 11월이었다. 해군이 검찰에 중재 지휘 요청 공문을 보내고 3개월 뒤였다. 이미 정부-삼성-검찰 간에 중재 절차 합의가 끝난 뒤였다. “신청 접수는 분쟁 쌍방 간의 중재 절차 합의를 전제로 한다”고 중재원 관계자는 설명했다. 피신청인은 “대한민국(소관 해군)”이며 황교안 당시 법무부 장관이 법률상 대표자로 명기됐다. 법무부는 2013년 9월10일 제주지검으로 공문을 발신했다. 해군의 뜻에 따라 ‘중재 지휘’ 수용을 요청한 제주지검에 법무부 차원에서 승인을 공식 통보하는 내용이었다. 중재 신청에 따른 비용 납입은 12월(사건개시)에 이뤄졌고, 1차 심리는 한 달 뒤인 2014년 1월에 열렸다.

 

해군본부는 삼성의 중재 요청도 해군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고 <한겨레>에 밝혔다. 중재로 가기 위한 ‘세팅’도 해군이 했다는 뜻이다.

 

“삼성은 국가에 손해배상만 요구했지 소송과 중재 중 특정 절차를 정한 것은 아니었다. 중재로 가는 것이 맞다는 판단은 우리가 했다. 우리 제안을 삼성이 받아들였다.”(공보과장)

 

검찰에 보낸 공문에서 해군은 다르게 설명했다. 해군은 삼성이 국가에 중재를 요청한 때가 2012년 12월(해군의 공문 발송 8개월 전)이라고 썼다. “(삼성의) 합의 요청서가 국가 측에 넘어온 이후에도 중재 절차가 타당한지, 타당하다고 해도 중재 합의를 해줄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기관이 어디인지를 두고 8개월간 절차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고 했다. 해군은 “결국 중재 합의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곳은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이라는 결론이 내부적으로 내려졌으나 (…) 정부 내에서 절차를 지연시킨다고 (삼성이) 느낄 가능성이 크”다며 “조속한 지휘”를 촉구했다.

 

<한겨레>에 밝힌 내용이 사실이라면 삼성에 중재를 제안한 해군이 삼성을 앞세워 검찰의 중재 지휘를 독촉하는 모양새다.

 

“언론에 공개돼선 안 될 내용이란 없다.”

 

‘비공개로 남는 것이 바람직한’ 해군-삼성 간의 협조가 무엇인지 해군은 답변하지 않았다. 변남석(준장) 제주민군복합항건설사업단장은 “더는 내가 답할 부분이 아니”라며 추가 설명은 해군본부로 넘겼다. 해군본부는 “우리의 공식 답변은 국책사업이란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지 그 부분에 해군이 답할 사항은 없다”(공보과장)고 했다.

 

해군이 함구하는 삼성과의 “긴밀한 협조” 중 하나가 상사중재원 판정문에서 확인된다. 2012년 3월부터 삼성물산은 케이슨 7기(수중 건설 기초공사에 주로 사용되는 상자 모양의 구조물)를 1공구 쪽 바다에 가거치(임시거치)했다. 그해 여름 세 개의 태풍이 잇달아 강정바다를 덮쳤다. 7월18일 태풍 ‘카눈’, 8월27일 태풍 ‘볼라벤’, 8월31일엔 태풍 ‘덴빈’이 케이슨을 때려 6개를 파손시켰다. 아파트 8층 높이(20여m 8885t)의 케이슨들이 망가진 채로 바다에 방치됐다. 그해 11월25일 삼성물산 예인선(45t급)이 새 케이슨 거치 작업을 마치고 회항하다 태풍에 깨진 케이슨과 부딪혀 침수됐다. 파손된 케이슨으로 추정되는 구조물을 포클레인이 바지선 위에서 부숴 밤바다로 밀어 넣는 장면도 목격됐다. 바다에 퇴적물이 쌓이면서 연산호 군락 개체수가 급격히 감소했다.

 

상사중재원은 케이슨 가거치의 ‘숨은 목적’을 기록으로 남겼다. 케이슨 가거치는 애초 삼성물산의 공사 계획엔 포함돼 있지 않은 공정이었다.

 

“피신청인은 반대 민원으로 공사가 지연되는 상태에서 공정을 만회하고 반대 민원인들에게 공사 중단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려서 공기가 지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이 사건 공동수급자(삼성물산)에 케이슨 가거치 계획을 제출하도록 지시했다.” 삼성은 해군의 지시에 따라 7개의 케이슨을 가거치했다. ‘케이슨 가거치로 공정이 단축됐다’는 해군의 주장을 상사중재원은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고 봤다.

 

 

협력 결과 ‘국고 91억원 낭비’

 

강정 앞바다는 물살이 세기로 유명하다. 해군은 시공사 선정 당시 입찰 안내서에 50년 빈도의 한계파고를 10.4m로 제시(상사중재원 판정문)했다. 가거치 때 삼성은 감리단 검토를 거쳐 그보다 높은 11.5m로 한계파고를 설정했다. 파도의 압력을 줄이기 위해 케이슨을 파도 방향에 세로로 놓고 케이슨 사이에 이격을 두어 파압 감소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2년 태풍은 삼성의 대처를 넘어섰다. 50년 빈도의 파고를 초과하는 최대 12.3m의 파도가 덮치며 가거치된 케이슨들을 깼다. 케이슨 파손은 해군이 주장하는 가거치 이유(공정 단축)와 정반대로 공기 연장(케이슨 재제작 기간 77일)과 추가 비용(재제작 8억원+파손처리 83.33억원=91.33억원)을 발생시켰다. ‘공사의 불가역성’을 강변하기 위해 삼성에 케이슨 가거치를 지시한 해군은 결국 ‘국고 91억원 낭비’란 결과를 낳았다. 해군은 “(사실 여부는) 답변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다. 이철희 의원은 지적했다.

 

“군과 시공사는 그간 있었던 은밀한 협조를 숨기기 위해 공개 절차인 소송이 아닌 공개되지 않는 타협인 중재로 하였다는 사실이 문서로 확인됐다. 중재 절차는 국가와 기업이 짬짜미한 것으로, 그 부담을 국가가 공사 반대 주민과 시민에게 떠넘겼고 그 결과가 구상권 청구인 것이다.”

 

현재 대림산업(항만 2공구 시공사)도 해군과의 합의를 거쳐 중재 절차를 밟고 있다. 대림이 국가에 청구한 손해배상액은 231억원이다. 삼성물산도 2차 배상 청구를 추진하고 있다. 액수가 결정되면 해군은 강정 주민들과 단체들에 추가 구상금을 청구할 계획이다.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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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위안부'를 통해 '사죄'를 읽다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 'The Apology' 국내 첫 상영
부산=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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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10.08  20:5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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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중국, 필리핀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다큐멘터리 'The Apology'가 8일 오후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국내에 상영됐다. 사진은 영상 속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모습. [사진출처-'The Apology' 공식 페이스북]

일본 우익의 망발 '창녀는 돌아가라'. 이에 맞선 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다시는 우리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소설이 아니다. 실제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 할머니의 이야기다. 2012년 일본 증언집회를 간 할머니를 향해 우익들이 입에 담을 수 없는 표현으로 악을 써댔지만, 길원옥 할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를 설파했다.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이 원하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란 무엇일까. 그리고 왜 사죄를 받으려 하는가. 사죄를 받기 위해 왜 피해자들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한 영화가 국내에 처음 선보였다.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다큐멘터리 'The Apology(사죄)'가 8일 오후 부산 센텀CGV에서 처음 상영됐다. 변영주 감독의 '낮은목소리'가 처음 선보인 1995년 이후 20여년 만에 '위안부'를 주제로 한 제대로 된 다큐멘터리가 등장했다.

영화는 대만계 캐나다인 티파니 슝(Tiffany HSIUNG) 감독이 7년에 걸쳐 만난 한국, 중국, 필리핀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았다.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통해 사죄의 의미를 찾는다.

여기에는 길원옥 할머니가 일본 우익들의 망언을 고스란히 듣는 장면이 담겨있다. 참을 수 없는 표현에 영화 속 할머니의 표정은 덤덤하다. 오히려 평화를 외친다.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요구한다. 무관심으로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향해 할머니는 마이크를 잡고 끊임없이 평화를 설파한다. 그렇게 길원옥 할머니는 평화활동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 중국에 거주하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카오 할머니. [사진출처-'The Apology' 공식 페이스북]

중국 카오 할머니. 한번도 제대로 자녀에게 자신이 '위안부'였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위안부'를 곱지않게 보는 사회의 손가락질은 카오 할머니를 체념케했다. 자신의 엄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접한 딸의 눈빛에는 과거사를 받아들이기 어려움이 역력하다.

필리핀 아델라 할머니. 그 또한 사회의 시선으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자상한 남편이 자신을 떠날까봐, 아들이 부끄러워할까봐. 할머니는 '위안부' 피해의 고통과 침묵의 강요로 평안을 누릴 수 없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아들에게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다. 그리고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이들 피해자들이 보다 편한 삶을 누릴 수 없을까. 방법은 단 하나. 바로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이다. 한국과 일본정부가 지난해 '일본군'위안부'합의'('12.28합의')에서 보여준 '대독 사과', 아베 일본 총리가 '털끝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허울뿐인 사죄는 피해자들에게 안식을 주지 못하듯이 말이다.

그렇다면 20여년 동안 흔들림없는 일본 정부의 오만함과 마주하면서도 왜 사죄를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아델라 할머니가 침묵의 강요를 떨쳐내고 카오 할머니가 체념에서 벗어나며, 길원옥 할머니가 더 이상 노구를 이끌고 세계를 다니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는 전쟁없는 평화로운 세상과 맞닿아 있다. 그리고 정의와 기억없이 화해와 치유란 없다는 이야기다.

   
▲ 필리핀 거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아델라 할머니. [사진출처-'The Apology' 공식 페이스북]

다큐멘터리 'The Apology'가 '위안부' 문제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무겁지만은 않다. 여느 할머니와 같이 약이 없으면 하루를 버티기 힘들고, 흘러간 옛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앞으로의 계획은 먹고자는 일이라는 일상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티파니 슝 감독이 "피해자들이 고통을 겪고 후유증을 어떤 방식으로 헤치며 어떻게 생존하고 살아왔는지 기록함과 동시에 그녀들이 가진 힘과 회복력을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는 설명처럼,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의 삶과 정신력을 보여준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투쟁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The Apology'라는 원제를 '나비의 눈물'로 바꿔 소개하고 있다. 과연 '나비의 눈물'이 영화를 요약할 수있을까. '위안부' 주제로 최근 흥행을 거둔 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의미를 알 수없는 CG로 등장한 '나비'에서 영감을 얻은 것일까. 옥의 티다. 

다큐멘터리 'The Apology'는 오는 12일까지 영화제 기간 동안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아쉬워 말자. 내년 초 영화 'The Apology'는 국내에 개봉될 예정이다. 그리고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나비의 눈물'이 아닌 제대로 된 제목으로 국내 관객들과 만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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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지, 미국이 해외군사기지 닫아야 하는 7가지 이유 언급

  •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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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
    2016/10/09 11:44
  • 수정일
    2016/10/09 11:44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타임 지, 미국이 해외군사기지 닫아야 하는 7가지 이유 언급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0/09 [00:17]  최종편집: ⓒ 자주시보
 
 

 

미국의 해외 군사기지는 비용을 증명할 수 없고, 미국의 이익에 반한다고 카토 연구소 존 글레이저가 타임 지에 기고했다.

 

8일 스푸트니크 보도에 따르면 먼저 글레이저는 해외군사기지들이 어떻게도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미국을 보호할 수 없다고 전했다. "유럽 350개 기지에 8만 군인 배치는 미국인의 물리적 안전보장과는 직접 관계가 없다"고 글레이저는 말한다. 또한 그는 미국은 두 해양과 핵무기로 잘 보호되고 있다고 밝혔다.

 

둘째, 군사기지로부터 예상되는 '견제 효과'는 과대평가 돼있다. 효과는 반대일 수도 있다.

 

▲ 2016년 9월 9일 조선이 핵탄두기폭시험을 진행한 때로부터 약 4시간 뒤 조선핵무기연구소가 핵탄두기폭시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였다. 이 사진은 리춘희 인민방송원이 조선핵무기연구소 성명을 낭독하는 장면을 방영한 텔레비전영상이다. 조선핵무기연구소는 성명에서 "조선로동당의 전략적 핵무력건설구성에 따라 우리 핵무미연구소 과학자, 기술자들은 북부핵시험장에서 새로 연구제작한 핵탄두의 위력판정을 위한 핵폭발시험을 단행하였다"고 밝혔다. 북은 미군의 대북 핵공격 위협, 특히 주한미군의 핵위협 때문에 그 방어를 위해 핵억제력을 구축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셋째, 글레이저는 군사기지들이 핵무기 확산을 항상 막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다. 이런 방법으로 일본과 한국에 핵무기가 나타나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이러한 조치들은 북한과 같은 주변국가에 자체개발을 부추길 수 있다.

 

넷째, 지역주민들의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

 

▲ ▲ <> 행사를 마치고 용산 주한미군 기지로 거리행진을 하고 있는 대학생들. 용산 주한미군 기지 앞 2015. 9. 19.     ©자주시보 이성원 기자

 

다섯째, 어느 국가에 군사기지 존재는 미국이 어쩔 수 없이 '독재체제'를 유지하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 제5함대 기반의 요충지가 있는 바흐레인의 경우가 그렇다고 글레이저는 말한다.

 

여섯째, 미국은 자신의 군사시설로 필요없는 전쟁을 엮을 수 있다. 예를 들어, 남중국해에서 충돌이 있을 경우, 대만, 일본, 필리핀의 안전확보를 위해서 미국이 개입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군사기지들은 이미 기술적으로 낙후되어있다. 현재 신기술 덕분에 부대를 빨리 멀리 보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기지들을 미국내에 배치해도 된다고 글레이저는 전했다.

 

미국의 트럼프 대선후보도 미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는 과도한 군사비 지출을 줄이고 이를 경제활성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해외 주둔 미군을 축소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해외 미군 기지를 축소 폐지하자는 주장이 어느 일개 전문가의 견해가 아니라 당선가능성이 높은 미국 대통령 후보의 입에서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미국 내에 해외미군기지 축소 주장이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분출되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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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을 해부해버린 남자

 

[인터뷰] ‘시크릿파일 국정원’으로 돌아온 20년 국가정보원 취재 김당 기자

김도연 기자 riverskim@mediatoday.co.kr  2016년 10월 09일 일요일
 

김당 기자를 처음 본 건 TV브라운관에서였다. 2003년 참여정부 출범 100일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대북송금 특검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은 까닭을 날카롭게 물으며 특검 이후 ‘남북 관계 훼손’을 우려했던 기자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 기자회견 영상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이 ‘각본설’에 휩싸일 때마다 SNS에서 회자되곤 한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불법적이고 부정적인 것은 청산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오마이뉴스 청와대 출입기자로서 그가 왜 대북송금 특검에 의문을 제기했는지 한참 뒤에 알게 됐다. 그가 1995년부터 20년 동안 국가정보원을 취재해온 전문가였고 2003년 현대그룹이 국정원의 환전 및 편의 제공하에 5억 달러를 불법 대북송금한 사실을 특종한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것이다.

그가 지난달 30일 탐사보도 결정판인 ‘시크릿파일 국정원’이라는 책을 냈다. “한국 실정에 맞는 국가정보론 연구서의 공백을 메우는 아주 중요한 저작”이라는 문정인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의 평가대로 역대 국정원장과 요원들의 증언이 빼곡한 국정원 실록에 가까운 저술이다. 

 

국정원 5급 이상 간부들의 고교·대학·출신지,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에 제공된 행사 비용, 탈북자와 관련된 대외비 등은 이 책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는 고급 자료다.

 

그는 이 책에서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불신과 그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불신의 악순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사용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기관 사용설명서’를 제공해야 한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지난해 오마이뉴스에서 정년퇴직한 김 기자를 지난 3일 오전 일산 교보문고에서 만났다. ‘간첩조작 사건’과 ‘대선 개입’의 주범으로 각인된 국정원의 바른 사용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 김당 전 오마이뉴스 편집주간이 지난 3일 오전 일산 교보문고점에서 미디어오늘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김도연 기자)
 

-책을 출간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대외비와 비밀의 장막 뒤에 숨은 정보기관의 실상을 알리고, 국민에게 제대로 된 사용법을 제시하는 것이 이 책의 집필 의도이자 목표다.”

-서문을 보면 “현존하는 출판물 가운데 국정원 간부들의 실명과 사진, 그리고 ‘대외비’가 가장 많이 포함된 책”이라고 밝혔다.

“국정원 비밀의 금기와 터부를 깨는 것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 비밀이나 공작활동의 무차별 폭로가 목표는 아니다. 취재와 인터뷰에 응한 50여 명의 전현직 국정원 간부들과 직원들에게 신세를 진 책이다.”

-새롭게 공개된 사실이 있나?

“2007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피랍됐을 때, 한국 정부가 지불한 몸값이 2000만 달러라는 사실을 많이들 주목하는 것 같다. 국정원이 주도한 협상이었다.”

2007년 예비비 중 국정원 사용예산결산 내역을 보면, 국가안전보장활동경비로 900억 원의 예비비를 전액 사용해 불용액이 0원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의문을 가졌던 그는 복수의 정보위원을 통해 국정원이 2008년 정보위 결산보고 당시 2007년 아프간 인질 석방 비용으로 2000만 달러를 사용했다고 보고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는 “(당시 정부가) 대테러 전쟁의 일반 원칙과 자국민 보호 사이에서 후자를 택했다”며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 김대중 정부의 대북송금을 최초 보도한 기자로 유명하다. 이와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의 대북송금 특검 수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관련 내용의 소제목 가운데 하나는 “정보기관공작을 법으로 심판한 노무현의 오판”이다.)이다.

“국정원이 하는 일의 태반은 큰 의미의 ‘공작’이다. 정상회담은 가장 큰 공작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다. 당연히 국정원이 기획하고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 노무현 정부는 집권 초 과반인 한나라당과의 관계를 고려, 협치를 기대하고 특검을 받아들였지만 기대했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 특검을 수용하면서 남북관계가 3년 동안 단절됐다. 임기 말 정상회담을 추진하며 10·4 선언이라는 성과를 냈지만 정권이 교체된 뒤 도루묵이 됐다. 전략에서 아쉬울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참여정부 출범 직후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2000년 김대중 정부의 6·15 남북정상회담 당시 거액의 대북 송금이 있었고 이를 현대가 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한나라당의 대북송금 특검안을 수용했는데, 이로 인해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조사 대상이 됐다. 김 전 대통령의 측근들도 형사처벌을 받았다. 대북송금 특검은 지금도 호남과 친노 세력간 아물지 않은 상처로 남아있다.

김당 기자는 이번 저작에서 “남북 대치 상황에서 남북 정상회담은 최고 수준의 국가 비밀공작의 결과였다. 5억 달러 대북송금 과정에서의 2억 달러 환전 편의 제공은 현대라는 기업을 매개로 당시 현대의 ‘7대 경협 사업’과 거의 동시에 병행 추진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한 것”이라며 “이를 기소한 것은 1972년 남북한 당국이 분단 이후 최초로 합의 발표한 7·4 남북공동성명을 이끌어낸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비밀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실정법을 어겼다고 기소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 노무현 정부의 국정원 과거사위 활동에 대한 평가도 의외였다. 삼성 X파일 등 국정원이 자체 불법 감청 사례를 조사해 사법 처리한 것에 대해 비판적이다.

“도청이 범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다만 X파일 사건을 수사하다보니 감청 사례까지 걸러냈다. 감청을 하지 않는 정보기관은 없다. 그러나 들키면 안 된다.(웃음) 내부 고발자를 통해 밝혀진 게 아니라 국가기관이 자체 조사를 통해 사법처리를 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이러는 경우는 없다. 많은 간첩 조작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사위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감청이라는 기술적인 문제까지 국가기관이 개입해 처리하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현장 도청 미림팀을 운용한 안기부 수뇌부는 기소되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 시절의 임동원, 신건 국정원장만 기소됐다. 끼어넣기식으로 진행되는 감청은 실제 원장이 알 수 없다.”

 

▲ 김당 기자가 지난달 30일 펴낸 저서 ‘시크릿파일 국정원’(출판사=메디치)

- 노무현 정부는 국정원 개혁에 대한 의지가 강했던 반면, MB정부 이후의 국정원은 민주 정권 이전으로 회귀했다는 평가다. 이를 증명해주는 인물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 아닌가?

 

“YS정부의 권영해 안기부장과 MB정부의 원세훈 국정원장은 참 많이 닮았다. 권영해 안기부장(1994.12~1998.3)은 재직 중에 북풍, 총풍, 세풍 등 ‘3풍 사건’에 모두 관여한 유일한 공직자다. 원세훈 원장은 대선에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개인 비리로 재직 중에 구속된 인사들이다. 정권에 충성하는 역대 원장들은 많았지만 이처럼 돈을 받아 사법처리된 사람들은 없었다.”

- 이명박 정부의 국정원과 박근혜 정부의 국정원은 어떤 차이가 있나?

“원장들의 성향이 다르다. 박근혜 정부 이병호 원장의 경우 국정원이 안보전문기관인 모사드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소신대로 조직을 운영하는지 의문이다. 국정원에서 국정원장은 신과 같은 존재다. 국정원장이 국정원장실에 있으면 주변에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을 정도로 수직적이고 위계적이다. 원장님 지시말씀은 사실상 어명에 가깝다. 모든 인사를 틀어쥐고 있기 때문에 내부에서 꼼짝할 수 없는 거다. 원세훈의 국정원은 이를 악용했다.”

- 국정원하면 ‘간첩조작’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최승호 전 MBC PD는 국정원의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자백’이라는 영화를 만들었다. 혹시 봤나?

“보진 못했다. 오마이뉴스에 있을 때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을 파헤치지 못해서 아쉬움이 컸다. 최승호 PD를 보면서 내가 ‘전문가의 함정’에 빠진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설마 간첩을 조작할까’라는 안이한 생각. 국정원 조직을 잘 안다는 생각에 의심이 없었다. 최 PD가 취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다큐멘터리까지 제작한 데 대해 존경과 부러움의 박수 보낸다. (김 기자는 이번 책 제4장에서 탈북자와 관련한 대외비 자료를 공개했다.)”

 

▲ 영화 '자백'의 한 장면.

- 국정원 개혁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국정원은 대통령 직속기관이다. 결국 좋은 개혁은 정권 교체다. 국가 안보가 아닌 정권 안보에만 심혈을 기울이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줘야 한다. 이를 위해 주기적인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 1960년부터 1998년까지 한 정권에만 충성했던 게 한국의 정보기관이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 TK·PK 지역 편중이 다소 완화되고 권영해 등은 선거법 및 안기부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분명 변화가 있었다.”

- 현 야당이 집권한다면 국정원 개혁이 이뤄질 것이라고 보는가? 이뤄진다면 어떤 방식이 돼야 할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완성은 못했지만 노무현 정부에서 국정원 개혁을 추진한 경험이 있다. 첩보 위성을 확보하는 등 한국의 과학기술 수준에 걸맞은 첩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백화점식 정보수집 방식은 지양하고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아울러 북한과의 관계 개선에도 정보기관이 역할을 해야 한다. 앞으로는 국정원이 수집할 경제 정보도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아날로그 방식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여전히 정치개입, 선거개입에 머물고 있다. 모사드나 CIA는 1970년대에 이런 소모적 정쟁을 졸업했다.”

- 국내 언론은 의심없이 국정원발 소스를 받아쓰고 있는데, 국정원 전문 기자로 조언을 한다면?

“공영방송 KBS나 연합뉴스에서 쏟아내는 북한 보도와 관련해 국정원발로 의심되는 스트레이트가 는 것 같다. 과거 국정원은 산케이 등 일본 외신이 국정원 소스를 보도하게 만들고 이를 국내 언론이 인용하는 식으로 언론을 활용하곤 했다. 결국 기자들이 경계하면서 기사를 쓸 수밖에 없다. 물론 중요한 이슈라면 받아쓰기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최대한 사실을 확인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

 

김당 기자는 누구?

김당 기자는 1995년부터 20년 동안 정보기관을 취재해왔다. 그는 1987년 월간 ‘샘이깊은물’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시사저널 창간해인 1989년 시사저널로 자리를 옮겨 10년 동안 재직했다.

1997년 15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안기부 북풍공작 추적 보도’, ‘최초 공개 안기부 조직표’ 등의 특종으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이듬해인 1998년 시사주간지 기자로는 처음으로 한국기자협회의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이후 동아일보 ‘신동아’ 팀을 거친 그는 2002년부터 ‘오마이뉴스’ 정치데스크를 맡아 대선 취재를 지휘했다.

2003년에는 현대그룹이 국정원의 환전 및 편의 제공하에 5억 달러를 불법 대북송금한 사실을 특종했고 박지원 전 문광부 장관(현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의 현대 비자금 150억 원 수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탐사보도했다.

오마이뉴스 편집국장, 편집주간 겸 부사장 등을 역임한 그는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현재는 ‘시크릿파일 국정원’ 후속편을 고민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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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기, 부검 말고 특검을" 국화꽃 든 추모대회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3000명 참가... "국가폭력 물러가라, 특검 실시하라" 외쳐

16.10.08 20:43l최종 업데이트 16.10.08 20:43l

 

기사 관련 사진
▲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행진을 마치고 종로 거리에 차려진 임시분향소.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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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폭력 책임자 처벌·살인정권 규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이날 추모대회는 '부검 반대', '특검 추진'에 집중됐다. 추모대회에 모인 참가자 3000여 명은 (경찰추산 2000명)은 "우리가 백남기다", "살인 정권을 규탄한다", "국가 폭력 물러가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외쳤다. 추모 대회는 서울 외에도 부산, 인천, 광주, 경남, 청주,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됐다.

고 백남기씨의 장녀 백도라지씨는 이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주가 다 돼가는데, 부검 영장으로 인해 아직 장례도 못 치르는 이 상황이 자식으로서 너무 힘들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백씨는 이어 "애초 무장도 안 했던 농민을 공격하고서는, 이를 책임져야 할 정부·경찰이 (도리어) 시신을 빼앗아 부검하겠다는 적반하장 행태를 보니 화가 난다"라며 "조문 오시는 많은 분들 덕에 버티고 있다, 아버지를 쓰러지게 한 책임자들을 처벌받게 하고 사과를 받는 일만 남았으니 앞으로 힘내서 꼭 이기겠다"라고 말했다.

고 백남기씨는 지난해 11월 14일, 박근혜 대통령 공약이었던 '쌀값 21만 원 보장'을 요구하려 민중총궐기에 참여했다가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는 당시 두개골 골절·뇌출혈 등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에서 4시간 넘게 뇌수술을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이후 의식불명 상태로 317일간 투병하다 지난 9월 25일 오후 사망했다.

앞서 6일 이철성 경찰청장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해, 경찰 수뇌부로서는 처음으로 공식 유감 표명을 하기도 했다. 이는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11개월여 만에 경찰에게서 나온 첫 애도 발언이다. 그러나 경찰·검찰은 여전히 부검 영장을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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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살인정권 규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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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3000여 명 참가자들은 "우리가 백남기다","국가 폭력 물러가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외치며 대학로부터 종로까지 행진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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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검찰 부검 강행하려 해... 국민 여러분께서 백남기 농민 지켜달라"

추모대회에는 정재호·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황주홍 국민의당 의원, 윤소하·이정미 정의당 의원 등도 함께했다. 이들 야 3당은 지난 5일 고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수사요구 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다. 정 의원은 이날 "박 대통령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 안에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 사망 진상규명을 시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에는 가족이 다 같이 참가하기도 했다. 스스로 '하림이네 가족'이라고 밝힌 한 남녀 부부는 7개월·33개월 된 두 딸의 유모차를 각각 끌고 대회에 참석했다. 경기 남양주에 산다는 이들 부부는 "누가 봐도 외인사로 돌아가신 상황인데, 경찰이 부검하겠다는 건 억지라고 생각된다"며 "부검을 할 게 아니라 오히려 특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백남기 투쟁본부는 추모대회 말미 검경 측의 부검 강행 의지를 비판하며 "백남기 농민을 지키는 일이, 부검 강행을 위한 시신 탈취를 막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라고 지적했다.

투쟁본부 측은 또 '국민 행동 제안' 낭독을 통해 "지난 5일 강형주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사실상 '유족 동의 없이는 영장이 집행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히자, 경찰과 검찰이 10월 25일까지 영장 강제 집행을 하겠다고 우기고 있다"라며 "'우리가 백남기, 우리가 유가족'이라는 마음으로 백남기 농민을 지켜달라, 특검 촉구 서명에 적극 동참해달라"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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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개월·33개월 된 두 딸의 유모차를 끌고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참가한 '하림이네 가족'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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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3000여 명 참가자들은 "우리가 백남기다","국가 폭력 물러가라, 특검을 실시하라"고 외치며 대학로부터 종로까지 행진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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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가량 추모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이후 국화꽃과 장미꽃 등을 들고 대학로부터 종로1가까지 행진했다. 종로 로터리를 거쳐 지난해 백남기 농민이 경찰 물대포에 쓰러진 종로 르메이에르 빌딩 앞까지 행진한 참가자들은, 빌딩 앞에서 임시 분향소를 차리고 헌화하며 추모대회를 마무리했다.

백남기 농민을 오래 봐 왔다는 정현찬 가톨릭농민회 회장은 "백남기 농민은 젊을 때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싸웠고 그 후에는 이 땅의 농촌을 지키려고 살았다"라며 "부검은 사인이 불명확하고 유가족이 원할 때 하는 것이지 이렇게 사인이 명확할 때 하는 게 아니다, 국민 여러분께서 백남기 농민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이들은 오는 15일에도 전국 동시 다발 추모 대회·촛불 집회 등을 진행하는 한편, 백씨가 물대포로 쓰러진 지난해 11월 14일로부터 1주기 즈음인 11월 중순에도 민중총궐기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경찰은 병력 71개 부대, 5680여 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고 백남기 농민 부검 영장에 대한 갈등이 지속되는 가운데,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  10월 첫 주 정례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치인 29%를 기록했다. (4~6일 전국 성인 1009명 대상,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공정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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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경찰은 병력 71개 부대, 5680여 명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참가자가 경찰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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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8일 오후 3시께 서울 종로구 동숭동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앞에서 열렸다. 임시분향소에 참가자들이 헌화 후 조문하고 있다.
ⓒ 유성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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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길 왜 갔냐고요? 세 아이의 아빠라서요

 
 
[토요판] 커버스토리 / 이진순의 열림 | 고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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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향기로운 가족

 

‘세월호의 의인’ 민간잠수사 고 김관홍
아내 김혜연이 말하는 ‘세월호의 기억’

 

 

잠수사들이 일당 백만원을 받고 시신 한 구당 500만원의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의 발언이 보도되었을 때에도, 잠수사들은 산소를 공급하는 생명줄에 목숨을 매달고 수심 40미터 아래의 외로운 주검을 찾아 검은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인터넷도, 신문, 방송도 닿지 않는 바지선에서 컵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새우잠을 자면서 그들은 잠수의 기본규칙도 어겨가며 하루 네댓번씩 아이들을 찾아 심해로 내려갔다. 차가운 물속에서 공포에 질려 뒤엉킨 시신을 더듬어 품에 안아 올리는 동안, 그들도 죽음과 삶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잠수병으로 인한 심각한 후유증과 ‘돈 벌러 갔다’는 주변의 오해, 법적인 문책뿐이었다. 결국 지난 6월17일 세월호의 의인으로 불리던 김관홍 잠수사는 오랜 트라우마와 후유증에 시달리다 심장 쇼크로 세상을 떴다. 그에겐 38살의 아내와 11살(라은), 9살(다은), 7살(효)짜리 세 자녀가 있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묻는다. “다른 데선 사고 나도 거의 다 구조하던데 우리나란 왜 그래? 우리나라엔 그렇게 사람이 없어?” 우리는 이 아이들에게 뭐라고 답할 것인가. 안방 벽면에 붙은 가훈 ‘참 향기로운 가족’ 앞에 김혜연씨와 세 자녀가 손을 맞잡고 서 있다. 지난달 28일 김관홍 잠수사의 아내 김혜연씨를 만났다. 글 이진순 풀뿌리실험실 ‘와글’ 대표,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불이 난 원룸에서 사람들을 깨우고 미처 피하지 못해 희생당한 학생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딸이 말했다.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나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김혜연씨는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불이 난 원룸에서 사람들을 깨우고 미처 피하지 못해 희생당한 학생 이야기를 뉴스에서 본 딸이 말했다.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나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 김혜연씨는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저는 잠수사이기 이전에 국민입니다. 국민이기 때문에 달려간 거고, 제 직업이, 제가 가진 기술이 그 현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간 것일 뿐이지 (제가) 애국자나 영웅은 아니에요…. 고위 공무원들한테 묻겠습니다. 저희는 그 당시 생각이 다 나요. 잊을 수 없고 뼈에 사무치는데 사회지도층이신 고위 공무원께서는 왜 모르고 기억이 안 나는지….”(김관홍 잠수사의 증언.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1차 청문회. 2015년 12월16일)

 

 

 

 

 

 

살려달라고 창문을 두드리던 아이들을 품고 세월호가 뒤집어졌을 때, 우리 사회 부패와 무능의 치부도 적나라하게 밑장을 드러냈다. 배에 버리고 나온 304명 가운데 단 한 명도 살려내지 못한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은 ‘사상 최대의 사기극’으로 끝났다. 그나마 시신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던 건 온전히 민간잠수사들의 공이었다. 참사가 나고 7월10일 일방적인 수색중단 통지를 받을 때까지 희생자 292명의 시신을 수습해 올린 것은, 해경도, 해군도 아닌 단 25명의 민간잠수사들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지난 6월17일, ‘세월호의 의인’으로 불려온 김관홍 잠수사가 숨진 채 쓰러져 있는 걸 가족들이 발견했다. 11살, 9살, 7살 삼남매가 학교에 가려고 엄마와 집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아버지는 흔들어도 깨어나지 않았다. 탁자 위에는 전날 밤 아버지가 삼남매에게 주려고 사온 초콜릿 세 개가 남아 있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죽음을 어떻게 이해할까? 장하고 자랑스런 일을 한 아버지가 팽목항 앞바다를 다녀온 뒤 점점 폐인이 되어간 이유를, 이 뻔뻔하고 치졸한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배신감을, 그래도 끝까지 가슴에서 내려놓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기대와 소망을, 그들은 이해할 수 있을까?

 

김관홍 잠수사의 부인 김혜연(38)씨를 찾아볼 용기를 낸 건, 김관홍을 모델로 한 김탁환의 소설 <거짓말이다>가 출간되고, 부인이 운영하는 꽃집의 상품권과 책을 한데 묶어 파는 패키지 상품이 출시되었단 소식을 듣고 나서였다. 누군가 올린 블로그에, 부인이 운영하는 화원 ‘꽃바다’(fbada.com)의 명함이 실려 있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한 번도 언론에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던 유가족인데, 인터뷰를 청하는 게 무례는 아닐까? 인터뷰 요청은 조심스러웠다. 망설임 끝에 부인은 인터뷰를 허락했다. 남편을 대신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지난달 28일, 그녀가 알려준 주소지로 찾아갔다.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의 아담한 빌라였다.

 

 

굵고 짧게 살고 싶다던 남편

 

“이렇게 굵고 짧게 살고 싶다고 했어요. 이 화분은 자기 거라고, (화원 할 때) 어디 팔지 말라고 했죠.”

 

인삼 모양이지만 그보다 훨씬 굵고 튼실하게 생긴 뿌리가 흙을 뚫고 솟아올라 있었다. 남편이 특별히 좋아했다는 ‘와인쥐손이’ 화분을 바라보며 김혜연이 말했다. 아이들 장난감으로 가득한 앞 베란다 창틀에 작은 화분들이 오종종하니 진열되어 있었다. 남편이 애지중지했던 ‘좀백자단’이며 ‘꿩의다리’ 같은 낯선 야생화 이름이 적힌 화분이 아이들 점프하며 뛰어노는 트램펄린 옆에 놓여 있었다.

 

-인터뷰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간 언론 접촉은 피하셨던 것 같아요. 장례식 기사에 실린 사진에도 얼굴은 가리고 나오셨던데요.

 

“지금 큰애가 사춘기거든요. 4학년 딸이요. 엄청 예민할 때라, 아이들도 인터넷을 다 보니까 조심스러웠어요. 지금은 많이 안정이 돼서 제가 인터뷰하는 거,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아, 그래요?

 

“꿈이 기자로 바뀌었대요.(웃음) 사회부 기자를 하고 싶대요.”

 

다섯 식구의 세월호 기억목걸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다섯 식구의 세월호 기억목걸이.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삼남매와 함께한 가족사진 속의 김관홍은 다부지고 옹골찬 체격이 그가 좋아하던 야생화 뿌리를 닮았다.

 

-고양시에 사시는 줄 알았는데, 거긴 화원만 있는 건가요?

 

“이 집으로 이사 온 지 한 달쯤 돼요. 전에 살던 집은, 야생화 키우는 하우스 안에 살림집을 겸한 거였는데, 신랑이 거기서 안 좋은 일을 겪고 보니 계속 살기가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안 봤으면 모르겠는데 아침에 아빠 쓰러진 걸 거기서 다 같이 봤고. 여자 혼자서 야생화 관리하는 것도 힘에 부치고요. 보안도 허술하고….”

 

-장례 치르고 이리 옮긴 거군요.

 

“네. 화원도 정리하고 지금은 인터넷 주문받는 일만 해요.”

 

얘기를 나누는 중에도 그에게 화환을 주문하는 전화가 간간이 걸려왔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엄마 혼자 밖에 나가 일하기가 힘들어, 집에서 인터넷으로 화환이나 꽃바구니를 주문받고 중개하는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화원은 부인이 하시던 건가요?

 

“둘이 같이 했죠. 시아버지가 야생화 농장을 하세요. 애기아빠가 원체 꽃 만지고 분재 만지는 걸 어려서부터 좋아해서 일찌감치 ‘난(蘭) 자격증’도 따두었대요. 난 재배하는 전문가 자격증. 전 야생화에 대해서 하나도 몰랐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남편한테 배웠지요.”

 

-그럼 화원은 남편이 열자고 한 거예요?

 

“막내 태어나고 나서 시아버지가 권하셨어요. 이젠 아이도 셋이나 되니 바다에 나가서 위험한 일 하지 말라고.”

 

-그래서 잠수사 그만두고 화원만 하려고 했나요?

 

“그건 아니고요.(웃음) 바다를 버리지는 못하죠. 어차피 겨울에는 바다 일도 없으니까 자기가 좋아하는 꽃이나 분재를 키우자 생각했던 것 같아요.”

 

부인은 바다에 대한 남편의 열망을 꺾을 수 없었다. 처음 그를 만난 것도 스킨스쿠버 교실에서였다. 김혜연은 실내 강습을 겨우 마친 초급생이었고 남편은 이미 스킨스쿠버 경력 10년 차의 전문가였다. 바다가 좋아서 같이 다니다가 정 많고 실속 안 차리는 그의 순수함에 마음이 끌렸다. 2005년, 만난 지 삼 년째 되는 날 둘은 결혼했다. 김혜연의 나이 스물여섯, 김관홍은 서른두살이었다.

 

카드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산업잠수사로 전업하겠다고 했을 때도 김혜연은 반대하지 않았다. 레저스포츠로 하는 잠수가 아니라 바닷속에서 용접이나 교각 작업을 하는 일이라 고되기는 할 테지만, 잠수 경력이 오랜 남편이 위험을 피하는 데 있어서는 베테랑이니 믿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남편은 10년간 산업잠수사 일을 하면서 잠수후유증으로 크게 고생해본 적이 없었다. 세월호 희생자 수습에 뛰어들기 전까지는 그랬다.

 

 

잠수경력 20년의 베테랑 남편
오랫동안 공들인 큰 계약 앞두고
4월이라 화원은 한창 바쁠 때인데
‘그렇게 원하면 가도 좋다’ 하니
말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가더라

 

해경들은 따로 밥해주는데
처음엔 컵라면 몇 개밖에 없다더라
잠수 도중 호흡 끊어져 병원 실려가
약속 안 지키는 사람들 지켜보며
현장에서 돌아와 더 힘들어해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안방에는 삼남매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남편은 아이 욕심이 많았다. 두 살 터울로 삼남매를 낳고도 더 낳자고 해서, 부인의 타박을 받기도 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생업을 접고 왜 거기를 갔을까

 

-잠수사 경력이 꽤 오랜 편이죠?

 

“한 20년 되죠. 산업잠수사를 한 것만도 10년이니까, 그 전부터 다 합치면….”

 

-그 정도 경력이면 한 달 수입이 얼마나 됩니까?

 

“이게 들쑥날쑥해서 매달 똑같지가 않아요. 일당제로 하는데, 보통은 하루 100만원쯤 하고요. 하루 한 시간만 들어갔다 나와도 기본이 50(만원)이에요. 큰 작업은 월 단위로 끊어서 계약을 맺어요. 그렇게 하고 다시 몇 달간 쉬면서 몸을 회복하는 기간을 가지죠.”

 

-세월호 구조 현장에선 잠수사들한테 어떻게 일당을 지급해 줬어요?

 

“일당 받기로 하고 간 건 아녜요. 처음부터 자원봉사자로 간 거기 때문에 계약서를 쓰고 일당을 정하고 그런 건 없었대요. 아마 계약서 안 쓰고 일한 유일한 경우가 될 거예요. 그러다가 5월에 잠수사(고 이광욱 잠수사) 사망 사고가 난 뒤부터 계약서를 쓰게 했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현장으로 가기로 할 때 부인께 상의하던가요?

 

“그 무렵에 큰 공사 계약을 앞두고 있었어요. 오랫동안 공들여온 장기 사업이었는데 그건 액수도 크거니와, 그 일을 하고 나면 그다음 일이 연결, 연결되기 때문에 굉장히 큰 사업이었죠. 근데 그 계약을 며칠 앞두고….”

 

-거길 안 가고 세월호로 간 거예요?

 

“계속 전화가 왔었어요. 먼저 내려가 있는 아는 잠수사들한테서. 저는 물론 못 가게 하고 싶었죠. ‘거기 500명이 넘게 대기하고 있다는데 왜 꼭 당신이 가야 돼?’ 하니까, ‘500명이 있어도 직접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10명도 안 될 거’라고 하더라고요. 해경도 못 할 거라면서….”

 

-그래서 동의하셨나요?

 

“며칠 동안 마음을 못 잡고, 뭘 해도 건성으로 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마음이 딴 데 가 있으니 일이 손에 안 잡히는 눈치였어요. 마침 4월이라 화원은 한창 바쁠 때인데, 마음이 벌써 떠버렸으니 여기 있으나 없으나 똑같겠다 싶어서 ‘그렇게 원하면 가도 좋다’고 했죠.”

 

-좋아하시던가요?

 

“그 말 떨어지자마자 당일로 바로 내려가던데요.(웃음)”

 

-생업을 접으면서까지 세월호로 달려가려고 마음먹은 가장 큰 이유가 대체 뭘까요?

 

“애가 셋이잖아요.”

 

-네?

 

“우리도 애를 셋 키우는 부모니까요. 처음에 제가 말렸던 것도 애가 셋이라 위험한 걸 하지 말라고 그런 거였는데, 하루 이틀 지나고 보니, 안타까운 부모 마음은 우리도 (세월호 유가족과) 똑같은 거더라고요. 처음엔 애들 때문에 말리다가 결국 애들 때문에 가라고 했어요.”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흔치 않은 큰일거리도 포기하고, 한창 바쁜 꽃집도 아내한테 맡겨두고, 김관홍은 맹골수도 세월호 현장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4월23일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의 예상대로, 작업 가능한 현장의 잠수인력은 7~8명에 불과했고 5월10일이 넘어서야 25명이 겨우 채워졌다. 말로는 민·관·군 합동 작전이었지만, “해경 잠수부는 선체에 진입할 능력도, 장비도 없는 상태라” 선체에 들어가 시신을 수습하는 건 온전히 민간잠수사들의 몫이었다. 산소탱크를 메고 갈 만큼 통로가 확보되지 않아 불가피하게 ‘표면공급식’(바지선에서 수중의 잠수사에게 호스를 통해서 공기를 전달하는 방식) 잠수를 했다. 공기를 전달하는 생명줄이 꼬이거나 걸려도 안 되고, 바지선 위의 스태프와 호흡을 맞춰야 하는 정교한 작업이라 능숙한 산업잠수사에게도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5월6일에 이광욱 잠수사가 사망하는 사고도 있어서 걱정 많이 하셨겠어요?

 

“매일 전화를 했는데 처음에는 먹는 게 너무 힘들다고 했어요. 먹을 거라곤 컵라면 몇 개밖에 없다고, 보급품이라고 왔는데 여자 팬티가 왔다고 그러더라고요. 필요한 물건은 택배로 부쳐주기도 했어요.”

 

-체력소모가 극심한 일을 하면서 식사도 제대로 못했단 말이에요?

 

“해경들은 따로 밥해주는 데가 있었는데, 그걸 같이 먹지 못했대요. 4월30일 지나서야 정상적인 식사를 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얘기하는데 자기 쓰러져서 죽을 뻔한 거 아냐고, 잠수 도중 호흡이 끊어져 병원에 실려가서 입원도 3일간 했었다고 하더군요. 퇴원하곤 바로 또 현장으로 복귀했지만.”

 

-처음부터 못 내려가게 할걸, 후회하지 않았어요?

 

“후회하죠. 왜 가라고 했을까…. ‘다른 잠수사들도 있는데 왜 당신이 하냐?’는 소리도 했어요. 팀 짜서 같이 갔던 잠수사들도 며칠 못 견디고 돌아왔는데, 당신도 다른 분들한테 맡기고 그냥 나오라고.”

 

-그러니 뭐라던가요?

 

“자기 아니면 할 사람이 없다고 그러죠.(웃음) 모든 일에 자신감이 있던 사람이라, 다들 자기처럼 할 거라고 사람을 믿었던 거죠. 오히려 거기(세월호 수색 현장) 있을 때보다 나와서 더 힘들어했어요. 그렇게 앞뒤가 바뀌고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들 보면서….”

 

남편은 7월10일 정부가 일방적으로 수색 작업을 변경하기로 하고 현장 작업 종료를 문자 한 통으로 통지한 것에 격렬히 분노했다. 292명을 꺼낸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현장에서 나가라고 하고 그 뒤 3개월간 2구밖에 인양하지 못하는 걸 보면서, 자원활동 하러 내려간 민간잠수사들을 돈 벌러 온 언딘 소속 사설업체 잠수사라고 오도하는 걸 보면서, 해경의 무리한 지시로 이광욱 잠수사가 목숨을 잃었는데 그 법적인 책임을 민간잠수사 공우영(현재 1심 무죄 선고, 2심 계류 중)씨에게 떠넘기고, 정작 책임져야 할 해경 관계자는 승진하는 걸 보면서, 사람에 대한 김관홍의 믿음, 세상에 대한 김관홍의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는 해양경찰청장 명의로 우편 배달된 감사장을 이빨로 뜯어 찢어버렸다.

 

 

“저희는 돈을 벌러 간 게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도우러 간 것이지. 양심적으로 간 게 죕니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타인한테 벌어지지 않길 바랍니다. 어떤 재난에도 국민을 부르지 마십시오. 정부가 알아서 하셔야 합니다.”(김관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2015년 9월15일)

 

 

 

 

한 구씩 달래서 가슴에 품고 나온 아이들

 

현장에서 나온 뒤 그의 몸과 마음은 한없이 허물어져 갔다.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고,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서 생전 처음으로 아이에게 매를 들고, 매일 밤 술을 마셨다. 목과 허리에 디스크가 오고, 어깨 회전근막이 파열되고, 잠수사에게 가장 무서운 병이라는 골괴사(뼈에 혈액 공급이 되지 않아 뼈조직이 죽어가는 잠수병의 일종) 진단도 받았다. 다시 잠수사로 돌아갈 수 없었던 그는 대리운전 기사가 되었고, 정부에서 약속한 치료비가 나오지 않아 집에는 빚이 쌓여갔다.

 

-프로 잠수사로 잠수병의 위험을 잘 아시는 분이….

 

“다른 데서 일할 때는 30분 일하고 6시간 쉬고, 안전규정에 따라서 일을 하니까 몸에 해가 될 게 없죠. 여기서는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에 하루에 네댓 번씩 잠수를 했으니까요.”

 

세월호 선체에 내려가 희생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 그들이 작업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배가 가라앉고 물이 들이치는 아수라장 속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 그 끔찍한 비극의 현장을 목도한 유일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희생자들은 극심한 공포와 낮은 수온과 수압에 의해서 아주 고통스럽게 사망했습니다. 극도의 공포 속에서 한 구 한 구 얽혀서, 저희 손으로 한 구 한 구 달래가면서, 한 구 한 구 안아서 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김관홍.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국정감사. 2015년 9월15일)

 

 

시신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부둥켜안고 있는 경우도 있고 손을 꼭 잡고 얽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좁은 통로와 장애물들을 통과해서 나오려면 그 어깨와 손을 억지로 떼어내야 했다.

 

“얘들아, 조금만 기다려줘. 한 명만 데리고 나가고 곧 돌아올게. 엄마아빠 보러 같이 가야지.”

 

잠수사들은 아이들을 그렇게 달래가면서 한 구씩 인양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자기 몸에 최대한 밀착해서 꼭 끌어안고 나오는 방식으로. 가족들 품으로 돌려보낸 292명의 희생자들은 모두 그렇게 인도되었다.

 

 

“선내에서 발견한 실종자를 모시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두 팔로 꽉 끌어안은 채 모시고 나온다! … 산 사람끼리 껴안을 때보다 다섯 배 이상 힘을 줘야 해…. 끝까지 포옹을 풀어선 안 되는 건 기본이고, 이동 중에 실종자의 몸이 장애물에 부딪쳐 긁히거나 찢긴다면 여러분은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할 거다.”(김탁환, <거짓말이다> 33쪽)

 

 

 

 

-남편이 그런 얘긴 안 하던가요?

 

“몰랐어요. 저도 책을 읽기 전까진 ‘애들을 안고 나왔다’는 걸 몰랐어요. 제게 밖에서 있었던 얘길 많이 하는 편인데, 제가 충격받을까봐 그랬는지 시신 수습하는 과정에 대해선 일체 얘기하지 않았어요. 이따금씩 길에서 아디다스 줄무늬 추리닝 입은 아이들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곤 했어요. 거기 아이들 3분의 2가 저 추리닝을 입어서 자긴 학교 체육복인 줄 알았다고 농담식으로 얘기했는데… 늘 수습하지 못한 9명이 눈에 밟힌다고 했죠.”

 

-김관홍씨가 다른 데서 인터뷰하신 것 보니까, 그 일 이후로 ‘아내나 아이를 포옹할 수 없었다’고 하셨던데.

 

“그것도 전혀 몰랐어요. 원래 아이들을 잘 안아주고 몸으로 놀아주는 사람이었어요. 애들이랑 사이사이 껴서 같이 잤는데, (세월호 이후로) 방에서 식구들이랑 안 자고 거실에서 따로 자더라고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정말 힘들어서 피했던 거예요.”

 

 

 

문자 한 통으로 수색 종료 통지
‘돈 벌러 왔다’ 오도하기도
생전 처음 아이들에게 매질하고
매일 밤 고통 속에 술 마시기도
해경청장 감사장 찢어버렸다

 

‘애들 안고 나왔다’는 것 몰라
평소 몸으로 놀아주던 남편은
아내·아이 안아주지 않았다
아빠 핸드폰 갖고 싶다는 큰딸
아내는 남편 번호 지우지 못해

 

 

 

엄마는 의인이 되는 게 좋아?

 

-남편이 세상 뜬 지 석 달이 넘었네요. 남편이 없다는 걸 실감하시나요?

 

“아니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신랑이 바다로 가면 서너 달 떨어져 있다가 한 달에 한두 번 왔다 가고, 그렇게 10년을 살았거든요. 그래서 지금도 어디 장비 메고 나간 것만 같아요. 며칠 전까지도 남편 핸드폰을 갖고 있었거든요. 핸드폰의 번호를 정리하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리 전화해줄 사람이 이젠 없구나.”

 

큰딸이 아빠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해서, 번호만 바꿔서 물려주었다. 부인은 아직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남편의 전화번호를 지우지 못했다.

 

-아빠의 죽음에 대해서 아이들한텐 뭐라고 하셨어요?

 

“있는 그대로 얘기해줬어요. 언론에서는 자살이다 뭐다 얘기를 많이 하지만, 그건 아니고요. 워낙 오랫동안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서 심장 기능이 무척 약해진 상태였어요. 원래 술을 잘 못하는 체질인데 괴로우니까 술 먹고 잠을 청하고, 안 되면 수면제도 먹고 했기 때문에… 조그만 충격에도 심장이 버티질 못하는 거죠. 그날 밤도 ‘4·16 연대’ 사람들 만나고 와서 곧바로 잠들지 못하고 술을 많이 마셨나 봐요. 그래도 잠을 못 자니까 수면제도 두 알 먹은 거죠. 요즘 한 알로 안 돼서 양을 늘렸거든요. 약물중독은 아니고 경찰 부검 결과도 심장이 안 좋아 생긴 쇼크사래요.”

 

-김탁환 작가가 김관홍 잠수사를 모델로 한 소설 <거짓말이다>를 내놓으면서 이례적으로 긴 작가의 말을 썼는데, 그 이유가 “고인의 자녀들이 이다음에 커서 아버지가 얼마나 멋진 의인이었는지 알게 하고 싶었다”고 밝히셨어요. 아이들은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알고 있나요?

 

“대략은… 더 자세히는 아직 얘기하지 않았어요.”

 

-애들이 자라서 그 책을 읽고 여러 가지 전모도 알게 되고 나서, ‘아빠가 그렇게까지 하실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을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하시겠어요?

 

“며칠 전에 불이 난 원룸에서 사람들 다 깨우고 미처 피하지 못해서 희생당한 학생 있었잖아요. 뉴스에서 그분 어머니 인터뷰하는 거 보면서 저희 딸이 묻더라고요. ‘엄마는 저게 좋아?’ 하고요.”

 

-엄마는 저게 좋냐…?

 

“아빠도 의인이라고 그러던데, 그게 좋냐고요. 자기는 의인이 되기보다는 가족들이랑 함께 오래 사는 게 더 좋은 것 같다고요.”

 

-(한숨) 그래서 뭐라 하셨어요?

 

“그건 아빠의 선택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네가 아빠의 마음을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 누군가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으면 그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아빠가 한 일로 292명의 가족들이 그나마 위안을 얻었으니… 아빠가 좋은 일을 한 거라고 얘기했어요.”

 

-끝으로, 제게 당부하고 싶으신 것 있으세요?

 

“너무 포장해서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 단순 무식하지만 정이 많았던 사람이라고…. 그리고 애아빠 가까운 지인들 가운데도, 시체 수습하면서 돈 많이 벌었을 거라고 농담처럼 얘기 던지는 분들도 있고 그랬는데.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순수한 마음에 간 거라고 밝혀주세요.”

 

-네. 그대로 쓰겠습니다. 애들은 어리고 아직 젊으신데….

 

울컥하는 마음에 가슴속 말이 뛰쳐나왔지만, 그 뒷말을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38살 아직 너무나 젊은 나이, 김혜연은 이제 어린 삼남매를 데리고 맹골수도 해역보다 혼탁하고 거친 세상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그 짐을 나눠 지지도 못하면서, 어쭙잖은 위로나 동정이란 얼마나 가소로운가. 한동안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 인사랍시고 겨우 찾아낸 말이 해놓고도 한심했다.

 

-앞으론… 좋은 일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좋은 일이 많아질까요? 세상이 이런데… 우리 애들은 좀 살 만한 세상이면 좋겠어요.”

 

김관홍 잠수사가 세상을 뜬 뒤, 7월1일자로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강제 종료되었고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일명 ‘김관홍잠수사법’(세월호참사 피해지원특별법 개정안: 민간잠수사를 세월호 피해자로 포함시킴)은 아직 논의조차 안 된 채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녹취 심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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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티반군 구형미사일 한 방에 미 신형 함선 격침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10/08 17:19
  • 수정일
    2016/10/08 17:19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후티반군 구형미사일 한 방에 미 신형 함선 격침
 
 
 
이창기 기자 
기사입력: 2016/10/08 [04:49]  최종편집: ⓒ 자주시보
 
 

 

▲ 후티반군이 UAE해군이 임대하여 사용하고 있는 미해군 HSV-2 Swift 고속 삼동선을 격침시키는 모습     © 자주시보, 이창기 기자

 

예멘의 사바(saba)뉴스 3일 보도에 따르면 후티반군이 쏜 대함미사일에 아랍에미리트가 임대하여 예멘전쟁에서 사용하고 있는 미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를 격침시켰다고 보도하였다. 이번 후티반군의 공격으로 함선의 많은 병사들이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고속 삼동선은 전투보다는 주료 지휘함이나 수송선 등으로 비교적 안전한 곳에서 운용하는 장비이다.

 

특히 삼동선 형태의 배바닥으로 물의 저항을 줄여 시속 50노트(92.6 km/h)의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으며 스텔스 선체에 스텔스도료를 발라 레이더 포착을 어렵게 하는 등 첨단 기술이 적용되었다.

 

▲ 미 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 , 안전한 후방에서 지휘선으로 이용하거나 수송선으로 활용하는 군함이다. 헬기가 뜨고 내릴 수 있는 적지 않읕 크기이다.

  

그런데 동영상을 보니 미 해군의 첨단기술이 적용된 HSV-2 Swift가 후티반군의 레이더에 그대로 포착, 단 한 발의 스틱스 대함미사일(실크웜일 수도 있음) 미사일을 얻어맞고 그대로 화염에 휩싸여 불타는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6일 모 블로그에서 침몰한 선체를 인양했다며 관련 사진을 공개했는데 처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었다. 수리해서 재사용은 아예 불가능해 보였다.

 

▲ 후티반군의 북한제 스틱스 대함미사일(추정)에 격침되었다가 인양한 HSV-2 Swift 미 해군 고속 삼동선 

 

일부 군사전문가들은 이란에서 복제 생산한 중국제 C-802 지대함 미사일에 당한 것 같다고 말하고 있지만 동영상을 잘 보면 미사일 하단의 보조로켓이 함께 점화되어 날아가다가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것으로 보아 스틱스계열 미사일이 가능성이 매우 높다.

 

▲ 후티반군이 쏜 대함 미사일이 미 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를 향해 날아가면서 보조로켓을 떨어뜨리는 모습, 하단 보조로켓으로 초기 가속력을 내는 대함미사일이 바로 스틱스이다.     © 자주시보

 

P-15 테르밋 (러시아어: П-15 "Термит") 대함미사일을 나토에서 SS-N-2 스틱스라 부르는 데 속도가 아음속으로 미사일 치고는 좀 느리고 사거리도 40KM 밖에 나가지 않지만 워낙 파괴력이 커서 한 발만 맞아도 치명상을 당하는 무기이다.

특히 이 미사일은 많은 양의 화약과 함께 로켓 추진을 위한 액체연료로 많이 담고 있는데 목표 타격 당시 남아있는 이 연료까지 가세하여 화염을 일으키기 때문에 피격당할 경우 거대한 화염에 휩싸이게 되고 불타면서 결국 침몰하게 되며 침몰하지 않더라도 화염에 많은 인명피해를 당하게 된다.

 

이를 중국과 북이 복제 개량생산하여 실전배치 했고 북은 이란에 관련 기술을 넘겨 주어 이란에서 이를 복제생산(면허생산)하여 중동 각지의 반미 진영에 공급하는 미사일로 알려져있다.

 

이 스틱스 미사일의 폭탄무게를 줄이고 터보제트엔진으로 바꾸어 사거리와 속도를 높인 미사일을 실크웜이라고 나토에서는 부르는데 이 실크웜도 스틱스의 형태는 거의 같아 야간에 날아가는 모양만으로는 구분하기는 어렵다.

 

▲ 러시아의 kh-35, 우란 대함미사일, 북도 똑같은 미사일을 최근 공개한 바 있다.     ©자주시보

 

▲ 이란의 대함미사일, 중국의 C-802 대함미사일을 복제했다고 한다., 아래에 보조로켓이 없다.  중국의 C-802도 북의  KH-35 우란계열 대함 미사일과 형태가 같기 때문에 이란이 중국이 아니라 북의 것을 복제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중국은 미사일과 같은 핵심무기는 잘 수출하지 않는다. 영토분쟁을 많이 격고 있어 자국의 핵심 기술이 유출되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북은 미사일을 오래 전부터 제3세계 각국에 마구 수출해왔다. 심지어 탄도미사일인 스커드미사일까지도 적지 않게 수출해왔으며 이를 공개하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

 

최근에 이 실크웜도 여전히 속도가 느린 편에 속해 요격미사일이나 기관포에 요격될 우려가 있다며 더욱 속도가 빠른 작고 길쭉한 대함미사일을 주로 개발하여 사용한다. 그것이 중국의 C-802대함미사일이고 북도 일명 KH-35 대함미사일이 이런 형태이다.

 

하지만 북은 이런 신형 대함미사일도 개발하여 실전배치를 하고 있지만 구형 실크웜이나 스틱스계열의 미사일도 계속 업그레이드를 시켜가며 사용하고 있다. 특히 북은 레이더 교란기술이 뛰어나 상대 함선 지역 일대를 모두 레이더재밍무기로 교란시킨 후 이 미사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이런 미사일의 속도가 느리기는 하지만 상대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하고 당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진행 중인 예멘 전쟁이 그것을 역력히 보여주고 있다. 예멘전쟁에서 후티반군은 구 예멘 반미 정부로부터 물려받은 이런 미사일 무기를 이용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최신 구축함을 격침시키는 등 엄청난 활략을 하고 있다.

최신구축함은 위상배열레이더에 첨단 대공미사일과 기관포 등 미사일 방어무기를 수없이 장착하고 있는데 그런 사우디의 최신형 구축함도 후티 반군의 스틱스 미사일에 당해 바다에 침몰한 바 있다.

 

특히 후티 반군은 야간에 이 스틱스 대함미사일을 이용한 공격을 자주 가했는데 야간이라 더욱 그것을 탐지하기 어려웠던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 북의 스틱스 대함미사일(실크웜일 가능성도 있음) 발사 훈련 장면, 목표물을 명중하는 동영상을 보니 그 파괴력이 거대한 섬을 뒤흔들 정도로 엄청났다. 항공모함도 이 미사일 한 발만 맞아도 성치 못할 것 같았다.     ©자주시보

 

▲ 후티 반군이 사우디 군함을 향해 발사하는 스틱스 미사일(실크웜일 가능성도 있음), 아래쪽에서 보조 로켓이 떨어져나가는 모습이 선명하다.     ©자주시보

 

▲ 후티반군이 사우디 군함을 공격하는 실전 유튜브 동영상에서 목표물로 나오는 사우디 최신형 스텔스 구축함, 헬기착륙장까지 보유하고 있으며 선체가 완전 스텔스형이며 최신 위상배열레이더를 설치한 최근 구축함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동영상 장면이다.     ©자주시보
▲ 2015년 12월 5일, 후티반군 미사일 공격에 두동강이 나서 침몰하는 사우디 군함을 보도하는 이란 파르스 국영통신, 헬기를 탑재할 수 있는 크기의 적지 않은 군함이다.     ©자주시보

 

▲ 후티 반군에게 파괴된 사우디 군함 목록     ©자주시보

  

미사일이 발전한 현대전에서는 대형 장비가 오히려 죽음의 대형 공동묘지로 전락하고 있다. 특히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대형장비를 값싼 미사일 한 발로 완파시켜버리고 있어 더욱 미국과 그 동맹국들에게는 더욱 치명적이다.

이번에 격침된 미 해군 고속 삼동선 HSV-2 Swift도 1억달러나 나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를 격침시킨 미사일은 600달러 정도라고 한다.

 

3일 사나 통신에 따르면 이번 공격으로 더욱 자신감을 얻은 후티반군은 예멘 인근 해역을 지나가는 친미 하디 정부군이나 이를 지원하는 사우디 등 아랍연맹군, 미군 함선들을 보이는 족족 모조리 격침시켜버리겠다고 공식 발표하였다.

 

한편 5일 미국의소리 방송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예멘 정부(하디 정부)를 보호하려는 동맹국(아랍에미리트) 군함에 대한 반군의 공격을 강력히 비난"했다며 "예멘의 후티 반군은 지난 주말 홍해와 아덴만을 연결하는 밥 알-만데브 해협에 있던 아랍에미리트연합 군함에 로켓 공격을 가했다."는 사실을 보도하였다.

 

▲ 예멘 후티 반군이 미 해군 수송선을 격침시킨 아덴만 인근 밥 알-만데브 해협, 빨간 풍선은 이먼 고속 삼동선을 파괴한 위치     © 자주시보

 

예멘 전쟁은 결국 북에 수없이 많이 생산 배치되어 있는 재래식 무기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들임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내년에 더 이상 북의 핵개발을 두고 볼 수 없다면 전쟁을 일으킬 계획까지 세우고 있다는 내부자 폭로가 나오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의 북한 정권 교체, 한민구 국방장관의 김정은 국무위원장 체포 특수부대 창설 등 북을 심각히 자극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이제 한반도에서 전쟁이란 말을 쉽게 꺼낼 상황이 아닌 것 같다. 미국의 첨단 무기가 북의 구형 무기에 저렇게 맥없이 당하고 있다. 미국의 군사적 지원만 있으면 북과 전쟁을 해서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한반도 긴장고조를 막고 평화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남북대화에 나서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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