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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가 '사고'라는 당신이 되새길 청와대의 기막힌 주문

 

[게릴라칼럼] 윗분 '심기'보다 중요한 '목숨', 총선이 보여준 것16.04.20 07:36l최종 업데이트 16.04.20 07:36l글: 강인규(foucault)편집: 홍현진(hong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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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찾아와도 또 흐르는 눈물 16일 오후 경기도 안산 세월호참사정부합동 분향소에서 출발해 단원고를 거쳐가는 세월호참사 2주기 추모행진에 참석한 유가족이 단원고 기억교실을 방문해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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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돌 때 실을 잡았는데
명주실을 새로 사서 놓을 것을 쓰던 걸 놓아서 이리 되었을까
엄마가 다 늙어서 낳아서 오래 품지도 못하고 빨리 낳았어
한 달이라도 더 품었으면 사주가 바뀌어 살았을까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벌어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를 못 받아서 
미안해, 없는 집에 너 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갈게 딸은 천국에 가


2년 전 합동 분향소에 놓여있던 어머니의 편지다. 세월호로 소중한 자식, 자매, 형제, 친구를 잃은 사람들 가운데 덧없는 자책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수학여행 떠나는 것을 왜 막지 않았을까, 왜 더 잘해주지 못했을까, 전화를 왜 못 받았을까, 전화를 받고도 왜 구하지 못했을까, 심지어 왜 낳았을까. 

한국 정부와 언론, 일부 국민은 '사고로 죽은 이들의 책임을 왜 정부에게 묻느냐'며 유족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은 국가에게 쏟아낸 분노보다 훨씬 큰 자책을 자기 자신에게 쏟았고, 지금까지도 자신을 괴롭히고 있을 것이다. 아무 죄도 없는 자신들에게 말이다. 

곱디고운 딸을 잃은 어머니는 자신이 지옥에 갈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었다. 정부와 언론은 그런 부모들에게 '불온'과 '탐욕'의 딱지를 붙이며 비난했다. 그들의 자식이 '단순 사고'로 죽었다고?   

배가 항로를 이탈하고 선체가 급격히 기우는 사고에도 승객들은 멀쩡히 살아있었다. 선원이 배를 버리고 도망치고, 선실로 물이 차올라올 때에도 그들은 살아있었다. 살아있었을 뿐 아니라, 완전히 뒤집혀 물 속에 잠긴 뒤에도 탈출하기 위해 철문을 맨 손으로 뜯어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국가는 이들에게 손을 뻗어 끌어올리지 않았다.  

사고로 죽은 게 아니라 국가의 방치로 죽었다. 수백 명의 어여쁨이, 자랑이, 희망이, 안타까움이 어처구니없이 꺼져갈 때, 수천 명의 부모, 형제, 친구, 그리고 수천 만 명의 국민이 비통함 속에 삶의 의욕을 잃었다. 그들 입에서 '이건 나라도 아니'라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정부의 무능'을 탓하는 이들이 많았으나, 세월호 참사는 '무능'이 아니라 '전략적 선택'의 결과였다. 책임자들이 책임을 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는 사이, 윗 사람에게 자신을 돋보일 '그림'을 만들려고 궁리하는 사이, 이들보다 훨씬 오래 살았어야 할 아이들은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국민 목숨보다 '윗분용' 보고서 숫자가 더 중요한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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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종자 가족 요구사항 듣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경청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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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방송된 <그것이 알고싶다> 세월호편은 이 참사가 불행한 상황이 우연히 겹쳐 일어난 결과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만 톤 급의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현장에 처음 도착한 것은 고무보트 한 척과 헬기 두 대뿐이었다. 이들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구조작업을 더 어렵게 만든 것은 청와대의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배가 급속히 물 속으로 꺼져가고 있을 때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은 구조 지휘에 바쁠 해경 본청에 전화를 걸어 배 이름을 물은 뒤, "'에'자, '세자'...울? 아, '세월호'..."하며 느긋하게 철자법을 확인한다. 여기에 '출발 시간'과 '도착 예정 시간'을 물은 뒤 '배의 크기'까지 확인하고는, '현지 영상이 나온 게 있느냐'고 묻는다. 

해경 측에서 사진을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난처해 하자, "여기 지금 VIP(대통령) 보고 때문에 그런데" 하며, 빨리 보내라고 재촉한다. 결국 구조중인 대원들에게 영상 주문이 전해지고, 현장 작업을 벌이던 대원이 사진까지 찍어야 했다. 청와대는 이제 '구조 인원이 몇 명인지' 알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한다. 

청와대의 끈질긴 요구는 몇 명 되지도 않는 일손마저 빼앗아 갔다. 방송에서 인터뷰한 생존자 한 사람은 "해경이 구조는 안 하고 인원수만 계속 세고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다시 집요하게 '영상'을 요구하기 시작한다. 

"영상 시스템(탑재한 배가) 언제 도착하느냐"고 묻더니, 배가 오는 대로 "영상 바로 띄우라"는 명을 내린다. 그 다음 정말 기막힌 주문이 내려진다. 

"그것부터 하세요, 다른 것 하지 말고."

배가 머리만 남기고 가라앉은 상황에서 청와대는 "지금 거기 배는 뒤집어졌는데 지금 탑승객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는다. "아직 선실 안에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라고 답하자, "네? 언제 뒤집어졌어요?"라며 되묻는다. 청와대 담당자가 가장 경악한 순간은 대통령에게 인원이 잘못 보고된 것을 깨달은 때였다. 

"166명이라고? 큰일 났네. 이거 VIP(대통령께)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 

청와대는 이렇게 세월호가 가라앉던 위급한 순간에 1시간 50분이나 통화를 하며 시간을 끌었다. 하지만 그 뒤 나온 것은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라는 대통령의 질문과, 청와대 대변인의 "청와대, 콘트롤 타워 아니다"라는 책임회피 발언이었다. 보고의 목적이 구조가 아니라 보고 그 자체였음이 드러난 것이다. 

'각하'와 '존영'의 호칭 뒤에 도사린 죽음

위계적 권력은 사람을 지위로 구분한다. 대통령과 상관은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경외의 대상이고, '아랫것들'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하는 무가치한 존재가 된다. 이런 위계적 구조 속에서 국민은 (선거날 하루만 빼고) 권력의 사다리에서 가장 밑바닥에 놓인 하찮은 존재로 전락한다.  

이승만 독재에서 시작되어 군사정부를 거치며 형성된 한국의 정치권력은 '윗분'들의 심기를 국민의 목숨보다 소중하게 모신다. 이런 나라에서는 대통령의 추가 안전 보장을 위해 피난하는 국민들로 가득한 다리를 폭파할 수 있고, 대통령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무고한 국민을 간첩으로 만들어 처형할 수 있고, 대통령 자리를 얻기 위해 국민을 향해 총을 겨눌 수 있고, 발포 명령이 즉각 수행된다. 

그런 나라에서는 '민주화' 이후에도 대통령이 '각하'나 '절대존엄'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그의 얼굴을 담은 사진은 '존영'으로, 그가 쓰는 화장실은 '세면장'으로 표기된다. 그의 결정은 항상 옳으며, 그에 대한 비판은 어느 경우도 허용되지 않는다. 

실책을 드러냄으로써 절대적 위엄을 해치는 짓은 용납될 수 없었으므로, 국가의 책무를 묻는 유족들은 당연히 불순세력이 되어야 했고, '종북'이 되어야 했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집권한 권력은 책임만 회피한 게 아니라, 경제난의 원인까지 유족들에게 돌렸다. 정부는 '이제 경제살리기에 매진할 때'라며 시신 수습도 안 된 상태에서 '세월호 지우기'에 나섰고, 보수언론은 '경제 살리기 골든타임'이라며 대대적인 여론환기 작업에 돌입했다.

그 결과는 또 다른 국민의 희생이었다. 이듬해 메르스라는 또 다른 재앙이 터진 것이다. 세월호 때 그랬듯, 국민 목숨보다 담당자가 책임을 면하고 윗분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더 중요했으므로, 덮고, 감추고, 변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 과정에서 1명의 환자는 186명의 감염자와 37명이 사망자로 번졌다. 겨우 상황이 수습되자, 정부는 경제실패의 책임을 메르스에게 돌렸다.  

총선 결과가 보여준 상식 회복의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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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은평갑에서 제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인이 14일 오전 당선 후 첫 일정으로 안산 화랑유원지내 세월호희생자 정부합동분향소를 방문해 유가족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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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은 한국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안겨주었다. 그것은 '돈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는 당연한 상식의 회복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점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후보가 단일후보로 추대되고, 결국 당선된 사실이다. 

세월호 2주기의 뜨거운 추도 열기는 그 승리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 다수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소시오패스'가 아니었던 셈이다. 유족들은 이제 비로소 마음 놓고 울 수 있게 되었다.  

박주민 변호사는 세월호를 앞세워서는 표를 얻기 어렵다는 '전략적 우려' 따위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전면에 내걸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을 정조준했다.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911 테러에 관해 조사 받았듯, 박근혜 대통령도 조사받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말해왔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것은 지나간 사건의 인과관계를 해명하고 책임을 묻는 '정의 회복'의 문제만이 아니다. 이것은 오직 힘의 행사에만 눈이 먼 야만적 권력에게 사람 목숨의 소중함을 가르치는 일이다. 국민의 생명이 최소한 '윗분' 심기 챙기기만큼은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총선 패배 뒤 첫 대국민 담화에서 "앞으로 국민의 민의를 겸허히 받들어 국정의 최우선 순위를 민생에 두겠다"고 말했다. 이어 "사명감으로 대한민국의 경제 발전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마무리하도록 하는 데 혼신을 노력을 다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국민 목숨을 지키지 못하는 권력, 지키지 못한 것을 뉘우치지 못하는 권력, 국민의 죽음 앞에서 슬퍼하지 않는 권력이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주고, 행복하게 해주리라 기대하는 것이 현명한가? 다행히 우리는 표로 답했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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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4. 19를 맞으며…

 
혁명정신은 실종되고 4. 19 영령들은 통곡한다.
 
김용택 | 2016-04-19 09:00:42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대한민국헌법 전문 중 일부다. 우리국민들은 4·19민주이념인 자유, 민주, 정의를 누리며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살고 있는가? 왜 우리는 1948년 7월 12일에 제정, 공포된 우리헌법과 다른 삶을 강요받고 있는가? 오늘은 4.19 혁명이 일어난 지 56년째를 맞는 날이다.       

4. 19 혁명 다시보기 https://youtu.be/2yxTn_H8-Ss?t=11

KBS 영상실록 https://youtu.be/3Vakt2zW9bA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연한군에게 무조건 항복함으로써 2차 세계대전은 끝나고 대한민국은 광복을 맞게 된다. 이후 남과 북은 미,소군정시대를 마감하고 1948년 5월 10일 선거를 통해 탄생한 대한민국 정부가 탄생한다. 이승만정부는 반민특위를 만들고, 농지개혁을 추진하며,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어려운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갖은 부정과 부패가 국민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정부는 6ㆍ25 전쟁 중에 발췌개헌을 강행하였고, 이후 사사오입개헌을 통해 장기집권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1956년 자유당의 이승만 후보가 제3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부통령으로 민주당의 장면 후보가 자유당의 이기붕 후보보다 유리하게 되자 위기감을 느낀 자유당은 이기붕을 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대적인 부정선거를 자행하였고, 이에 전 국민이 분노하게 되어 마침내 4․19 혁명이 일어나게 된 것이다.


4.19혁명의 전개 과정은…?

4.19혁명은 1960년 2월 28일, 자유당선거의 부정선거에 항의하며 대구 지역 고교생 1,700여 명이 학원의 자유를 외치며 가두시위에 나섰다. 대구에서 시작한 부정선거 규탄시위는 1960년 3월 15일 마산시민들도 정부통령 선거에 항의해 시위에 나서자 당황한 경찰이 실탄을 발포, 4월 11일 마산시 중앙부두에서 행방불명된 김주열 시신 발견이 발견된다. 김주일학생의 시신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분노한 마산시민들의 2차 시위는 급기야 4월 18일, 고려대생 3천 여명 국회의사당 앞 시위로 확산되고 종로 4가에서 폭력배 습격사건이 발생한다.

대구, 마산 서울에서의 부정선거 규탄 시위는 4월 19일 마침내 부산, 광주, 대구, 전주, 청주, 인천 등에서 이승만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되기에 이른다. 서울에서는 시민들이 경무대(현 청와대) 앞에서 시위하는 시민들이 경찰이 무차별 실탄 사격. 21명이 사망하고 172명 부상하는 참사를 불러온다. 4월 20일에서 4월 24일 사이에는 전국적으로 시위 확산. 대구, 인천, 광주, 수원, 이리 등으로 시위 확산되고 급기야는 4월 25일 대학교수단 300여 명 시위. 대통령, 국회 의장 등 총사퇴 요구하기에 이른다. 국민들의 저항에 마침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 사퇴 성명 발표함으로써 4월 27일 이승만 대통령 사퇴서 제출, 하와이로 망명, 4.19는 민중의 힘으로 혁명저부를 수립한다.

혁명의 완성은 헌법 전문이 명시한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의 계승..’으로 자유민주 정의의 새 역사를 창출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불의에 항거하는 4. 19정신이 계승,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수립된 살기 좋은 나라가 되고 있는가?


혁명정신은 실종되고 4. 19 영령들은 통곡한다.

피흘려 찾은 대한민국. 일제 강점기 36년간 우리민족이 국내에서 혹은 만주와 간도에서 일제에 저항해 싸우다 차마 필설로 다할 수 없는 참혹한 고통을 당하고 이승만 독재정권을 물리치기 위해 피로 되찾은 나라가 민주주의 대한민국이다. 4. 19혁명이 일어난 지 56년을 맞지만 우리사회는 정치가 실종되고 민주주의는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치부재는 열심히 일해도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 청년들이 N포사회, 헬조선을 한탄하고 있다. 사회양극화는 한계에 달하고 청소년과 노인들이 삶을 포기하는 비극적인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이를 바로잡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야 할 정부는 노동자들을 한계상황으로 내모는 노동법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4.19정신을 계승해야 할 정부는 8. 15를 건국절이라며 4. 19 혁명정부를 무너뜨린 박정희정권을 칭송하는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 학생들이 학교를 떠나고 청년과 노동자들이 희망을 잃은 나라에 어떻게 4.19이념과 복지를 말할 수 있는가? 다시 4.19를 맞으며 우리는 잃어버린 민주주의, 실종된 4. 19 이념을 되찾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30&table=yt_kim&uid=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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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팔레스타인, 반미로 뭉친 반세기 연대

[친절한 통일씨] 북한.팔레스타인 수교 50돌
조정훈 기자  |  whoony@tongil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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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18  01:5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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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1년 북한 김일성 주석이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에게 공화국영웅 칭호를 주고 있다. [자료사진-통일뉴스]

1990년 5월 북한을 방문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alestine Liberation Organization, PLO) 의장은 김일성 주석에게 "나의 가장 친근한 형님"이라고 불렀다. 2004년 11월 북한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수반이 사망하자 3일간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북한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를 두고 '전투적 우의와 연대성'이라고 표현한다. 1966년 4월 13일 북한은 국가상태가 아니었던 PLO와 국교를 수립했다. 올해로 수교 50돌을 맞았다. 북한과 팔레스타인은 어떠한 관계였는가.

'반미, 반제국주의'로 뭉친 북한과 팔레스타인

북한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는 북한의 자주외교노선과 관련있다. 중국과 소련 중심외교였던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중.소분쟁이 심화되자 주체사상체계를 수립하고 자주외교노선으로 대외기조를 바꿨다. 여기에는 반둥회의로 대표되는 제3세계 국가와의 국제적 연대와 교류협력 강화를 통한 반미, 반제국주의 연대의식이 자리매김했다.

김일성 주석은 1955년 4월 반둥회의에 참석하고 이듬해 열린 당 3차 대회에서 "식민주의를 반대하며 공고한 평화를 지향하는 수억만 아시아, 아프리카 인민의 한결같은 염원을 표명했으며, 이 지역 인민들의 단결을 뚜렷이 보여줬고, 제국주의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줬다"고 말했다.

이러한 반미.반제국주의 연대의식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도 그대로 녹아있다. 1차대전 이후 영국의 식민지였던 팔레스타인지역은 1947년 유대인 민족국가 수립을 지지하는 영국의 정책에 따라 유엔에서 분할결의가 통과됐다.  그리고 1948년 팔레스타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건국됐으며, 1964년 이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들을 중심으로 한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가 결성됐다.

이러한 팔레스타인 역사는 북한에게 큰 관심사였다. 일제 강점기 이후 미.소에 의해 38선으로 분할되고 유엔이 남한 단독선거를 통한 정부수립을 결정했던 역사가 북한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반미, 반제국주의 국제연대를 위한 가장 가까운 친구로 팔레스타인이 다가선 것이다.

그래서 북한은 결성된지 2년밖에 되지 않은 PLO와 1966년 4월 수교를 맺었다. 당시 국제법적으로 국가로 인정받지 않던 PLO를 북한은 국가로 인정한 것이다. 북한 사회과학원은 '국제법의 당사자' 범위로 '자주적 독립국가를 창건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혁명조직 또는 전민족적 대표기관'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민족해방운동단체로 해석된다.

물론, 민족해방단체를 국가로 봐야하느냐의 논란이 있지만, 북한은 항일투쟁운동을 예로 들며 "국제법의 당사자는 다른 나라들이 그를 국제법의 당사자로 승인한 결과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주독립국가, 자주적인 인민정권, 전민족적 대표기관으로 출현한 그 사실 자체로서 국제법의 당사자로 된다"고 설명한다. 

즉, 북한에게 있어 PLO는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국가는 아니지만, 이스라엘과 미국, 영국 등 서방에 맞선 반미, 반제국주의 노선에 입각해 팔레스타인 민족의 자주국가를 수립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임으로 국가의 자격을 지닌 것이다.

   
▲ 1993년 북한을 방문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김일성 주석. [자료사진-통일뉴스]

북 김일성 주석과 팔레스타인 아라파트의 일화

수교 이후 북한은 팔레스타인에 게릴라 훈련, 일반군사훈련, 조종사훈련, 장교단교관훈련 등을 지도하고 비밀자금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PLO의 국가수립을 군사적으로 지원해 온 것이다.

1969년 하페즈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방북 당시, 김일성 주석이 PLO에 대한 군사훈련 실시 및 무기제공 등 군사적 지원을 공식 표명했으며, 압둘 지하드 PLO 부총사령관이 1975년, 1980년 평양 방문해 군사적 원조를 약속받은 데서도 알 수 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PLO 소탕을 위해 레바논을 침공했을 당시, 북한은 정부성명을 통해 PLO에 대한 지원병  파견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지지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여기서 북한은 △사회주의와 비동맹권의 공동행동, △반제, 자주 공동전선의 형제로서의 국제주의적 의무인 지원병 파견 의사를 그 이유로 들었다.

북한과 팔레스타인 관계는 김일성 주석과 야세르 아라파트 PLO 의장과의 관계에서도 엿볼 수 있다. 1990년 5월 아라파트 의장의 북한 방문 일화가 대표적이다. 아라파트 의장은 북한을 방문하면서 북한이 건조한 선박을 선물받기 원했지만, 실무자들의 사전논의가 있지 않았다.

그런데 아라파트 의장이 김 주석을 만나 "가장 친근한 형님이기 때문에 외교적 관례가 어울리지 않는다"면서 배를 선물해달라고 했다는 것. 이에 김 주석은 '진달래'라는 배를 건조해 보냈다.

1993년 7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자격으로 방북한 아라파트는 예루살렘을 수도로 하는 국가수립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음을 김 주석에게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자 김 주석은 "조선말에 네 떡이 하나면 내 떡도 하나라는 것이 있다. 우리는 한쪽 뺨을 맞고 다른쪽 뺨을 내대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적들이 우리의 뺨을 치면 맞받아 그들의 뺨을 칠 것이다. 끝까지 싸워야 한다. 다른 출로는 없다"고 말했다. 이를 북한은 김 주석이 아라파트에게 준 교시라고 설명하고 있다.

북한과 팔레스타인과의 관계는 2004년 11월 아라파트 사망에서도 알 수 있다. 북한은 3일 동안 일부 기관에 조기를 게양하는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중국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소련 유리 안드로포프, 콘스탄틴 체르넨코, 유고슬라비아 요시프 티토, 시리아 하페즈 알 아사드 사망과 같은 예우를 보인 것이다.

김일성 주석과 아라파트 수반 사후 양국은 여전히 연대를 강조하고 있다. 현재 김일성-아라파트 시대 만큼의 관계는 아니지만 "역사적이며 전통적인 친선협조관계"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앞으로도 팔레스티나 인민의 정의의 위업에 변함없는 지지와 연대성을 보낼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중동에 대한 국제사회의 정치역학관계가 복잡한 속에서, 북한과 팔레스타인이 언제까지나 한결같을 지는 알 수 없다. 빌 클린턴 전 미국대통령이 2004년 발간한 회고록에서 밝혔듯이, 2000년 12월 평양을 방문해 북.미 관계개선을 하려고 비밀리에 움직였지만, 아라파트가 평화협정 관련 회담을 요청해 취소했다는 일화처럼, 반미를 기치로 뭉쳤던 형제국이라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미국의 관심사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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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법'으로 '불행한 대통령' 탄생 막자

 
[20대 국회 시험대] ① 의회 권력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
 
| 2016.04.19 07:27:06
4.13총선 이후 의회 정치가 힘을 발휘할 공간이 생겼다. 60년 넘게 이어온 대통령 중심제에 변화를 줄 수 있는 명분도 생겼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력을 제대로 견제하기 위해 의회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간 꾸준히 제기돼 왔다. 이른바 이원집정부제나 내각제 개헌론도 이런 지적 위에 서 있다.  
 
정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정립하기 위해서는 어느 당도 강력한 힘을 얻지 못하고 있는 20대 국회의 여소야대 정국 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불행한 대통령'의 등장을 막고, 직접 민주주의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불가피한 일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지난 3월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내각제가 좋다고 본다"고 했고, 국민의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1월 "호남정치 복원을 위해 이원집정제, 내각제 개헌이 돼야 한다"고 했다. 문재인 전 대표도 2012년 대선 후보 당시 "(집권할 경우) 대통령 권한을 분산하는 분권형 대통령제 뿐만 아니라 내각책임제까지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나 개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원내 3당이 위태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민 총의를 제대로 모아내기는 어렵다. 다만 현 정치 시스템에 균열을 내야 할 필요는 있다. 의회 중심 정치를 만들어 낼 필요는 있다. 이를 위해 첫번째로 할 일은 국회법 개정안(유승민법)의 재추진이다.  
 

▲ 유승민 의원 ⓒ프레시안 자료사진

4대강 사업, 왜 못 막았을까?'유승민법' 재추진이 꼭 필요한 이유
 
지난 2015년 '정치 6.25사태'를 돌아봐야 한다.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새누리당은 공무원연금을 처리하기 위해 일종의 '패키지딜'로 야당이 요구한 국회법 개정안에 동의했다. 유승민 원내대표 시절 일이다. 국회법 개정안은 세월호 특별법과 관련해 정부가 제정한 시행령이 모법의 취지를 훼손하고 있다는 판단에 따라 제기된 법안이다. 
 
특정한 이슈에서 시작된 법안이었지만, 의회의 입법권이 대통령의 행정권에 의해 침해당하는 상황을 방치하기 어렵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다. 이른바 '시행령 공화국'에서 벌어지는 '입법 하극상'을 교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유승민 의원이 동의를 했고, 그래서 그는 지난해 6월 25일 대통령 발언을 기점으로 사실상 축출됐다. 이것이 정치 '6.25사태'다. 
 
'시행령 공화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행정부는 국회의 입법권을 기묘하게 뒤틀어왔다. 박근혜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총선 직전 새누리당이 밀어붙여 통과시켰던 테러방지법도 시행령에 민간 이슈에 대한 군 관여 가능성을 집어 넣어 놓았다. 명백히 입법 취지 위반이지만, 행정부는 모법 위에 선 시행령을 오늘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같은 사례는 많다.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해 6월 1일 14개 상위법 위반 시행령을 발표했다. 세월호 특별법을 포함해, 올해도 여전히 논란이 진행 중인 누리과정 교부금 지원 관련법, 국립대학 회계 재정 운영법, FTA 농어업인 지원법, 학교 옆 관광호텔 설립법, 의료기관 부대 사업 관련법, 5·18 희생자 보상법, 전교조 노조 인정 관련 노동조합법, 연장근로·임금피크제 관련 근로기준법, 4대강 사업 관련 국가재정법, 카지노 심사제 관련 경제자유구역법 등이 포함돼 있었다.  
 
쉽게 말해 국회가 학교 옆의 무분별한 난개발을 막기 위해 법을 제정했는데, 정부가 시행령을 교묘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특정 재벌 기업에 특혜를 주는 일이 발생했다고 하자. 그런 상황에서 국회는 제어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  
 
무소불위 시행령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4대강 사업과 같은 혈세 낭비도 막을 수 없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공약이라는 이유만으로 22조 원의 세금을 강바닥에 쏟아 넣은 이 사업은 합법적인 틀 안에서 태어날 수 없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은 국가재정법을 무시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4대강 사업에서 제외한 시행령을 근거로 이 망국적 사업을 밀어붙였다. 국회의 권한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다. 
 
입법 목적에 어긋나는 시행령이 남발되면 국민이 국회에 위임한 입법권은 무력화된다. 이를 견제하자는 것이 이른바 '유승민법'이다.  
 
그런데 '유승민법'은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라는 암초를 만났다. 박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하며 당시 원내대표였던 유승민 의원을 향해 "배신의 정치 심판" 발언을 했다. 이후 새누리당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스스로 선출한 유승민 당선자를 직에서 몰아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가진 과도한 대통령직의 권한을 훼손하길 원치 않았던 셈이다. 권력에 취하면 그렇게 된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이성이 사라진다. 자신의 권력을 조금이라도 침해할 여지가 생기면, 극도의 흥분 상태를 보이게 된다.  
 
의회 권한 강화, 통제되는 대통령87년 이후의 정치 모습이라면
 
유승민법은 새로 시도돼야 한다. 20대 국회가 꼭 할 일 중 하나다. 대통령의 과도한 권한에 균형추를 달아주는 것이다. 2017년 선출될 19대 대통령을 위해서라도 꼭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이 채워져야 할까. 일단 2015년 5월 28일 김태년 의원 등 23명이 공동으로 발의한 국회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참고할 수 있다.  
 
이 법안은 제안 이유에서 "법률의 제, 개정 절차는 국회를 통해 의결되는 과정에서 국민의 의사를 다양하게 반영할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는 반면, 행정입법은 행정기관에 의해 독점적으로 제·개정됨으로써 국민의 의사와 관계없이 행정편의에 따라 제·개정될 위험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때문에 "국회에 의한 행정입법의 검토 절차를 개선하여 국회의 입법권을 보호하고, 행정입법 과정에 국민의 의사를 반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대통령령, 총리령, 부령, 훈령, 예규, 고시가 제정, 개정, 폐지되거나, 입법예고 또는 행정예고된 때, 소관상임위원회에 제출하여 검토받도록 함(안 98조의 2)
 
나. 상임위원회는 위원회 또는 상설소위원회를 정기적으로 개회하여 그 소관중앙행정기관이 제출한 대통령령등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여부등을 검토하도록 함.
 
다. 의원은 10인이상의 연서에 의해 국회 소관상임위원회에 공포된 대통령령등에 대하여 법률에의 위반여부 검토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함.
 
라. 상임위원회는 대통령령등을 검토하여 당해대통령령등이 법률의 취지 또는 내용에 합치되지 아니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소관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이 경우 중앙행정기관의 장은 시정을 요구받은 내용에 대한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 없이 소관상임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함(안 98조의 3 신설)

 

대통령 '시행령'이 법률의 취지에 어긋난다면 "상임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소관중앙행정기관의 장에게 그 내용의 시정을 요구"할 수 있고, 정부는 "처리 계획과 그 결과를 지체없이" 상임위에 보고해야 한다. 이보다 더 강화된 내용을 담을 수도 있다. 국회 내에 정부 제정 시행령을 감시할 수 있는 전문 기구를 마련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유승민 의원의 무소속 당선을 확대 해석한다면,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사태의 원인 일부가 소멸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당시 이같은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에 대체로 찬성했고, 일부 단어를 바꾸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정의화 국회의장도 "위헌이 아니다"라는 법률 자문 결과를 내놓은 적이 있다.  
 
당시 청와대의 '위헌' 주장은 행정부가 내놓은 하나의 해석, 하나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이제 국회는 협치를 통해 행정부를 제대로 견제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4대강 사업과 같이 특정 정치인의 욕심에 따른 천문학적 세금 낭비를 막을 수 있는 길이고,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성숙시킬 수 있는 길이다. 나아가 '불행한 대통령'의 탄생을 막고, 민의가 제대로 반영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불순한 의도로 여론을 왜곡하고 제멋대로 제단할 위험을 없애는 길이다. 강화된 의회 권력에 의해 통제되는 대통령, 이것이 87년 체제 이후의 대통령의 모습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개헌'으로 갈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실험의 장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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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한 방에 바뀌었다, 대선 양강구도로 재편

  • 분류
    아하~
  • 등록일
    2016/04/19 08:37
  • 수정일
    2016/04/19 08:37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여론조사] 문재인 24.7%, 안철수 18.9%, 더민주-새누리당 정당 지지율도 역전

16.04.18 10:02l최종 업데이트 16.04.18 12:2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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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1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자택에서 나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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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강 : 18일 오후 12시 30분]

4.13총선에서 새누리당을 제치고 원내 1당에 오른 더불어민주당이 전국 정당지지율 조사에서도 창당 이후 처음 1위에 올랐다. 반면 새누리당은 총선 패배와 맞물려 처음으로 20%대 지지율을 기록하며 2위로 내려 앉았다. 국민의당은 지지율이 대폭 올라 새누리당과 근소한 차이로 3위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여소야대', '3당체제', '박근혜 정부 심판'이라는 총선 민심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다만, 더민주와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호남에서도 급상승하면서 국민의당이 완승했던 호남 총선 결과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였다. 

PK에서 야당 약진, 지역구도 약화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총선 직후인 14~15일 유·무선전화면접 및 ARS 조사를 실시한 결과(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 응답률 4.0%),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 새누리당은 전주 대비 7.3%포인트 하락한 27.5%, 더불어민주당은 2.8%포인트 상승한 30.4%,.국민의당은 5.4%포인트 상승한 23.9%를 기록했다고 18일 발표했다. 

지역별 지지율 변화를 살펴 보면 이번 총선에 드러난 민심의 향방이 더욱 분명히 나타난다. 이번 총선 최대 이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부산과 경남에서 더민주의 상승세와 새누리당은 지지층 이탈이 두드러졌다. 지역구 당선자가 호남에 집중됐던 국민의당은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율 상승을 보이며 전국정당의 기반을 잡아가는 모습이다. 

새누리당은 전통적 우세지역이었던 부산-울산-경남에서 무려 11.1%포인트 하락해(31.9%) 8.1%포인트 상승한( 34.1%) 더민주에게 1위 자리를 내줬다. 더민주는 부산에서 5석, 경남에서 3석 등 8석을 얻었다. 울산에서도 민주노총 출신의 무소속 당선자가 2명 나왔다. 국민의당도 이 지역에서 20.7%의 지지를 얻으며 전국적 지지세 상승을 이어갔다. 

수도권 지역에서도 새누리당의 몰락이 두드러졌다. 새누리당은 서울에서만 9.6%포인트가 빠지며 24.2%를 기록했다. 이는 국민의당에도 뒤쳐지는 수치다. 새누리당은 경기-인천에서도 6.5%포인트가 하락해 25.3%를 얻어 더민주에게 정당 지지율 1위 자리를 내줬다. 

수도권 민심의 특이점은 서울 지역구 선거에서 압승한 더민주의 지지율이 소폭 하락했다는 것에 있다. 더민주는 서울에서 전주 대비 3.7%포인트 하락한 27.9%를 기록했다. 전체 49개 의석 가운데 37개를 휩쓸었던 총선 결과와는 거리가 있다. 반면 국민의당은 서울에서 7.2%포인트가 상승해 2위로 올라섰다. 

호남에서도 비슷한 경향의 민심 변화가 감지됐다. 광주와 전남, 전북에서 단 3석만 더민주(새누리당 2석)에 내주며 호남을 싹쓸이 했던 국민의당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큰 변화 없이 44.4%로 나타났다. 반면, 호남에서 참패를 당한 더민주의 지지율은 전주 대비 9.3%포인트 급상승해 33.9%로 국민의당에 오차범위 안(±8.9%포인트)으로 접금했다. 

이 같은 수도권과 호남의 정당 지지율 변화는 각 지역에서 유권자들이 각각 더민주와 국민의당에 '선택적 지지', '비판적 지지'를 했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새누리당 텃밭에서 야권의 지지율 동반상승하고, 수도권과 호남에서 각 정당이 고른 지지율을 기록하며 과거 지역별로 확연히 지지층이 구분됐던 지역구도가 다소 약해지는 모습이다. 

19대 국회보다 1석 많은 6석을 확보한 정의당의 지지율은 1.3%포인트 상승한 9.0%로 자체 최고 지지율을 경신했다. 정의당은 서울 5.2%포인트 올라 15.3%로 상승했고, 대구·경북 (1.6%포인트 상승, 8.9%)과 광주-전라(0.3%포인트 상승, 8.9%)에서도 10%에 근접하는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근혜 취임 후 최저치, 문재인-안철수 대선 양강 구도 

박근혜 대통령도 새누리당의 지지율과 함께 동반 폭락했다. 박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긍정평가)는 31.5%를 기록, 지난주보다 8.1% 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취임 후 약 3년 2개월 동안 해온 주간집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최저 지지율은 2015년 2월 '비선실세 국정개입 논란'이 있었던 시기에 31.8%였다. 

'국정수행을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 평가 역시 62.3%로 7.8%포인트 급등, 취임 후 현재까지 가장 높았던 2015년 2월 1주차와 동률을 이뤘다. 부정평가와 긍정평가의 격차는 30.8%포인트로, 이 역시 박 대통령 취임 후 가장 큰 폭으로 벌어졌다.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총선 이 전부터 몇 주동안 30%대에 머물고 있다. 당초 '콘크리트 지지층'으로 여겨졌던 40%선이 사실상 무너진 모습이다. 여기에 국회가 여소야대로 개편되면서 '조기 레임덕'이 확실시 된다. 그동안 일방적으로 법안 통과를 요구하며 국회를 압박했던 자세에서 탈피하는 게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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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17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했다.
ⓒ 오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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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문재인 전 대표와 안철수 공동대표의 양강구도가 분명해지고 있다. 문 전 대표는 지난주 주간집계 대비 4.6%포인트 상승해 24.7%로 14주 연속 1위를 차지했다. 문 전 대표는 지난해 4.29 재보궐 패배 이전인 4월 5주차에 24.8%를 기록한 이후 약 1년 만에 가장 높은 지지율을 회복했다. 

특히 문 전 대표는 광주·전라(7.6%포인트 상승, 23.5%)에서 지지율이 큰 폭으로 상승했다. 더민주가 호남에서 대부분의 의석을 내주며 국민의당에 완패했지만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은 오히려 크게 오른 것이다. 문 전 대표는 총선 기간 호남을 방문해 "호남이 지지를 거두면 정치를 그만두고, 대선에도 불출마하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문 전 대표는 또 부산·경남·울산(8.8%포인트 상승, 27.4%)에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제치고 지지율 1위로 올라섰고, 경기·인천(4.4%포인트 상승, 28.3%)과 소폭 하락한 서울(0.3%포인트 하락, 23.3%)에서도 선두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안 공동대표 역시 4.7%포인트 급등한 18.9%로 자신의 최고 지지율 경신하며 여권 주자들을 모두 제치고 문 전 대표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안 공동대표는 호남에서 문 전 대표에게 3.2%포인트 앞선 1위, 대전·충청·세종(8.6%포인트 상승, 22.2%)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에 1.0%포인트 앞선 1위로 도약했다. 

반면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서울 종로에서 낙선하며 지지층이 급속도로 이탈해, 4.8%포인트 급락한 10.1%를 기록했다. 총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대표직을 사퇴한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 역시 5.2%포인트 하락한 8.7%로 당 대표 선출 이전과 비슷한 수치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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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7시간은 왜 중요한가

[산하칼럼]대통령의 7시간은 왜 중요한가

2016.04.18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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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가 북침이냐 남침이냐는 질문 자체는 의미가 없다. 엎어치든 메치든 1950년 6월 25일의 전면전은 북한의 기습에 의해 시작된 게 맞다. 그리고 그 전쟁은 3년을 끌면서 수백만의 한국인의 목숨과 수십만의 외국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든 사태에서도 그렇지만 초동대응은 대단히 중요하다. 사태 초반의 게으름이나 판단착오가 어떤 비극을 가져오는지는 세계사가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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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의 시작은 흔히들 반공 웅변대회에 등장하는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로 알고 있지만, 꼭 그런 건 아니다. 이미 새벽 3시에 인민군은 오늘날 고현정 소나무가 서 있는 정동진에 기습 상륙해서 한국군 8사단의 허리를 자르려 들었고 개성 지역의 포격은 4시 45분쯤 시작했다. 육본 정보과장 김종필 중위(우리가 아는 그 이름 맞다)는 4시 30분쯤 포탄이 막 떨어진다는 7사단 일직 장교의 보고에 눈이 번쩍 뜨이고 있었다.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한국군 수뇌부는 뭘 하고 있었던가. 우선 코끼리라는 별명을 지닌 육군 참모총장 채병덕은 전날 육군 장교 클럽 오픈을 기념한 미군 군사고문단과의 술자리에 지쳐 자고 있었다. 새벽 2시를 넘어 귀가했으니 아마 정신도 없었을 것이다. 정보과장 김종필은 정보국 장교들을 호출하는 한편 작전국으로 달려갔다. "당장 비상을 걸어야 합니다." 그러나 작전국 일직 사령의 답은 완강했다. "저는 그럴 권한이 없습니다."

 

권한이야 총장에 있었다. 이미 총장 집에는 득달같은 전화가 걸려 와 있었다. 6사단 7연대장 임부택 중령의 전화였다. 새벽 5시 10분쯤. "화천 지구에 적 공격!"을 알리는 다급한 목소리에 부관은 총장의 부인을 깨웠고 부인은 총장을 깨웠지만, 술 취한 총장은 "어짜피 38선에서 노상 있는 분쟁일 거이야." 하면서 꿈속을 헤매고 있었다.

 

전화를 수없이 돌려도 총장이 나타나지 않자 육본의 장교가 직접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달려왔고 그제야 채병덕은 꿈나라에서 벗어나게 된다. "뎐군 비상하라우." 평안도 억양의 총장 명령이 떨어졌지만, 비상은 쉽게 걸어지지 않았다.

 

작전국장은 장창국 대령. 그런데 이사 간 지 얼마 안 된 그의 집에는 전화가 없어서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애가 탄 헌병 백차가 출동해서 장창국 대령의 집 근처로 추정되는 곳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방송을 해 댔다. "장창국 작전국장님 비상입니다. 비상입니다."

 

채병덕 참모총장도 이제는 서둘러 국방 장관 신성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은 건 국방장관 비서실장 신동우 중령. "당관님 당장 바꾸라우." 그때 신동우 중령이 한 말은 길이 역사에 남는다.

 

"장관님은 숙소에 계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장관님은 영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일요일에는 아무도 만나시지도 않고 전화도 받지 않으십니다."

 

이 영국 신사 국방장관을 만나기 위해 그 황망한 시간, 다급한 순간에 코끼리 채병덕은 쿵쾅거리며 달려가야 했다. 그가 신성모에게 상황을 보고한 건 3시간이 지난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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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에는 전화를 받지 않는 신사 '신성모'

 

그래도 준비가 돼 있었던 동부전선의 6사단과 8사단은 인민군의 공격에 대응했지만 서부전선은 쉽게 붕괴됐다. 분단 이후 끊겼던 경의선을 몰래 이은(이 부분에선 논란이 있지만) 인민군은 세상에 기차를 타고 개성역에 내려서 개성을 장악해 갔다. 이때 인민군에 넘어간 개성은 지금도 우리 땅이 아니다.

 

국군이 인민군의 전면남침을 제대로 파악한 건 9시경, 대충 남침이 시작된 지 5시간이 지난 뒤였다. 38선 전역에서 공격이 시작됐고 북한 공군기도 서울 상공에 나타나고 개성이 벌써 적의 손에 넘어갔지만, 전면전이라는 걸 파악한 건 그만큼 늦었다. 당연히 대응도 늦었고 그 지연의 대가는 국군이 치러야 했다.

 

작전국장 장창국은 아침에 아내와 함께 찬거리를 사러 갔다 돌아와서는 집에서 편안히 쉬고 있었다. 하도 헌병들이 사이렌을 울려서 무슨 일인가 나가보니 자신을 찾고 있었다, 기절초풍하여 그 짚차에 몸을 싣고 내달려 육본에 도착한 게 10시. 인민군이 공격을 시작한 지 7시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신성모 국방장관은 경무대에 도착했다. 그러나 아침잠 없는 늙은이 이승만은 자리에 없었다. "경회루에 낚시 가셨습니다." 다시 경복궁으로 뛰어들어가서 보고한 게 10시 30분이었다.

 

전쟁의 첫날 7시간은 그렇게 한심하게 지나갔다. 대통령에게 보고되는데만 7시간이 걸렸다. 이날을 복기해야 하는 이유는 다시 그런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전화가 빗발쳐도 별거 아니라며 코를 골았던 육군 참모총장의 실수가 그렇고, 핫라인 하나 없는 작전국장의 처지가 그렇고, 일요일에는 누구도 만나지 않는다는 최악의 영국 신사 신성모는 그 하이라이트였다.

 

누구도 책임지는 이가 없고 누구도 정리하는 이도 없이 작전국장님, 참모총장님, 국방장관님만 부르짖으며 이리 뛰고 저리 뛰었던 한국군은 바야흐로 몰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우리는 지금 그 7시간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알고, 누가 어떤 삽질을 했는지 대충 알고 있다. 그 사실들이 끊임없이 복기 되고 추정되고 스토리의 일부가 되어야 반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만약 채병덕 총장이 어디서 뭐 하고 있었는지가 비밀로 남아 있다면, 신성모의 행적이 안개에 싸여 있다면, 그 둘은 그저 단단한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면, 국으로 "니들을 몰라도 돼" 이러고 있다면 그 미스테리 하에서 누가 누굴 믿을 수 있을 것이며 과연 우리 군은 무슨 교훈을 얻어 어떻게 승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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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7시간이 궁금한 이유는 다른 게 아니다. 연애를 하고 누군가를 만났다는 식의 이야기는 믿지 않는다. 7시간 동안 무슨 음모를 꾸며 세월호를 수장시켰다는 주장에도 반대한다.

 

결국, 궁금한 건 대통령으로서 수백 명이 갇혀 있는 배의 침몰 소식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냐일 뿐이다. 어떤 보고를 받고 무슨 지시를 내렸고 어느 정도로 사태를 파악하고 있었는지가 미치도록 궁금한 것이다. 하물며 세월호가 뒤집힌 그 날은 일요일도 토요일도 아닌 수요일이었는데. 신성모처럼 일요일 핑계도 대기 어려운 상황에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단 말인가.

 

6.25 때 7시간은 고려의 옛 고도였던 개성을 순식간에 내주는 시간이었다. 갈팡질팡 오락가락의 최고봉을 달리며 수뇌부 스스로 사람들을 헛갈리게 한 시간이었다. 4월 16일 평일 오전 대통령의 7시간이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다.

 

 

 

 

 

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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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일공중폭발설은 허구다

[개벽예감200] 미사일공중폭발설은 허구다
 
 
 
한호석 (통일학연구소 소장) 
기사입력: 2016/04/18 [08:44]  최종편집: ⓒ 자주시보
 
 

 

<차례>
1. 미국전략사령부가 꺼내놓은 아리송한 추론
2. 오전 5시 3분에 미사일폭발이 있었을까?
3. 심리압박전술에 말려든 미국 군부는 공포를 느꼈다
4. ‘태양절’에는 미사일을 쏘지 않는다

 

▲ <사진 1> 2016년 4월 15일 미국전략사령부 대변인은 미국전략사령부가 조선의 미사일발사를 추적하였고, 그것이 실패하였음을 포착하였다고 발표하였다. 하지만 그것은 추론을 가지고 만들어낸 허구적인 발표였다. 위의 사진은 미국전략사령부 청사입구의 바닥에 새겨진 사령부휘장 앞에서 미국군 지휘관들이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이다. 미국전략사령부는 네브래스카주 오풋공군기지에 있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1. 미국전략사령부가 꺼내놓은 아리송한 추론

 

미국 동부시간으로 2016년 4월 14일 밤, 미국의 주요언론매체들은 조선이 이동식 탄도미사일 한 발을 쏘았으나 실패하였다는 속보를 일제히 전했다. 미국에서 긴급보도형식으로 나온 관련보도들 가운데 가장 자세한 내용을 전해준 것은 미국 텔레비전방송 <ABC>가 내놓은 보도기사였는데,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2016년 4월 15일 오전 미국전략사령부(U.S. Strategic Command) 기자회견실에 나타난 마틴 오다늘(Martin O'Donnell) 대변인은 “미국전략사령부 (미사일감시)체계가 미국 중부시간으로 오후 3시 33분 조선의 미사일발사를 추적하였고, 그것이 실패하였음을 포착하였다. 북미주항공방어사령부에 따르면, 조선이 발사한 미사일은 북미주에 위협을 주지 않았다”고 간략하게 밝혔다. <사진 1>


여기서 주목하는 것은, 미국전략사령부가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포착하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이다. 원래 미국전략사령부의 기본임무는 적국의 전략미사일발사징후를 감시하다가 유사시 전략공격으로 적국을 제압하는 것이다. 그런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전략사령부가 감시하는 대상은 일반탄두를 탑재하는 전술미사일이 아니라 핵탄두를 탑재하는 전략미사일이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이번에 미국전략사령부는 조선인민군이 전략미사일을 발사하려는 징후를 집중적으로 감시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위에 인용한 미국전략사령부 대변인의 발표내용은 아주 짤막한데다가 구체적이지도 않아서 그것만 읽어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모를 파악하기 힘들다. 미국전략사령부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어떤 미사일을, 어느 장소에서 발사하였는지 언급하지 않았고, 어떻게 실패하였는지도 언급하지 않았다. 알맹이는 모두 빼놓고, 조선에서 미사일이 발사되었으나 실패로 추정된다는 자기들의 일방적인 주장만 부각시킨 것이다. 그처럼 부실한 발표내용을 보완하려면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이 보도한 몇 가지 사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 <사진 2> 미국전략사령부는 조선인민군이 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그 미사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종류의 미사일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무수단'이라고 부르는 전략미사일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 군부가 '무수단'이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전략미사일의 공식명칭은 화성-10호다. 위의 사진은 6축12륜 자행발사대에 실려 열병행진에 참가한 화성-10호의 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전략사령부는 조선인민군이 발사하였으나 실패하였다는 그 미사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미사일인지 밝히지 않았지만, 미국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무수단’이라고 부르는 전략미사일이라고 지적하였다. 미국 군부가 ‘무수단’이라는 자의적 별칭으로 부르는 전략미사일의 정식명칭은 화성-10호다. <사진 2>


그러나 그런 언론보도내용과 달리, <AP통신> 2016년 4월 15일 보도기사에서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그것은 도로이동식 미사일인 것 같았는데, (어떤 종류의 미사일이었는지) 아직 판단하는 중”이라고 하였다. 이 발언을 들어보면, 미국 군부는 이번에 조선에서 발사되었으나 실패하였다는 그 미사일이 어떤 종류의 미사일이었는지 파악하지 못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건 좀 이상하다. 미국군 정찰위성은 고성능 전자광학촬영장비를 장착하고 조선 상공을 무시로 드나들며 지상의 감시대상들을 정밀하게 촬영할 뿐 아니라, 심지어 자동차에 붙어있는 차량등록판까지 식별할 수 있다고 이만저만 자랑하지 않았는데, 이번에 조선에서 발사되었으나 실패하였다는 그 미사일이 화성-7호인지 화성-10호인지도 분간하지 못했다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인가?

 

▲ <사진 3> 미국 군부가 자기의 정찰위성을 세상에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군 정찰위성은 비밀에 쌓여있다. 미국군 정찰위성이 몇 대나 되며,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도 모른다. 위의 사진은 오래 전에 퇴역하여 박물관에 전시된 미국군 정찰위성을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여기서 관심의 초점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얼마나 뛰어난 정밀촬영능력을 가졌는가 하는 문제에 맞춰지는 게 아니라, 조선인민군이 미국군 정찰위성을 감쪽같이 따돌리는 공중정찰무력화능력에 맞춰져야 한다. 조선인민군은 위성추적레이저를 우주공간으로 쏘아서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을 지나는 통과궤도와 통과시간을 알아내었고, 그로써 미국군 정찰위성을 아주 간단히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조선인민군은 미국군 정찰위성이 조선 상공을 지나가는 지대와 시간대를 피하여 움직이면 되는 것이다.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군 정찰위성도 조선 상공에서는 그처럼 맥을 추지 못한다. <사진 3> 


미국전략사령부는 이번에 조선에서 발사되었으나 실패하였다는 그 미사일이 어떤 종류의 미사일이었는지 분간하지 못하고 아리송한 추론만 꺼내놓았는데, 미국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런 아리송한 추론을 마치 확인된 사실인양 보도해버렸으니, 조선에 관련된 이전의 보도행태들에서 계속 반복되어온 것처럼 이번에도 독자들이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들었다.

 

 

2. 오전 5시 3분에 미사일폭발이 있었을까?


미국전략사령부가 이번에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transporter erector launcher)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되었다고 밝힌 시각은 미국 중부시간으로 오후 3시 33분이었는데, 미국 본토와 한반도 사이의 시차를 계산하면 그 시각은 한국 표준시로 2016년 4월 15일 오전 5시 33분이고, 조선 표준시로는 당일 오전 5시 3분이다. 2016년 4월 15일 한반도의 해뜨는 시각은 조선 표준시로 오전 5시 20분 1초였으므로, 미국전략사령부는 그 날 해뜨기 17분 전에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되었으나 실패하였다고 발표한 것이다.


미국전략사령부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가 어디에서 미사일 한 발을 발사했는지 발사지점을 밝히지 않았지만,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호도반도에서 발사되었다고 보도하였다. 호도반도는 함경남도 금야군 남쪽에 있으며, 원산만의 갈마반도와 마주보고 있다.


위에 서술한 몇 가지 사실을 가지고 미국전략사령부의 발표내용을 좀 더 정확하게 재구성하면, 조선 표준시로 2016년 4월 15일 오전 5시 3분 호도반도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되었으나 실패하였다는 것이다.


누구나 인정하는 것처럼, 그 날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발사되었다는 미사일 한 발이 어떻게 실패했는지를 밝혀주는 내용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상하게도 미국전략사령부는 그에 대해 언급하지 않고 그저 실패하였다는 말만 남겼다. 그래서 궁금해진 미국의 <ABC 뉴스(News)> 취재기자가 미국 국방부 관계자에게 조선의 미사일발사가 어떻게 실패했는지 물었더니, 당시 호도반도에서 “폭발이 있었다(there was an explosion)”는 것이고, 미사일이 날아가던 중에 공중에서 폭발하였는지 아니면 미사일이 날아가다가 떨어져 지상에 충돌하면서 폭발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는 아리송한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그 미사일이 발사된 직후 불과 몇 초 정도만 상승비행을 하다가 공중에서 쾅하고 폭발하였다고 제멋대로 각색한 추측보도를 내보내는 바람에 독자들이 진실을 파악하기가 더욱 힘들어졌다. 

 

▲ <사진 4> 이번에 미국 해군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은 동해에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다. 그 감시활동에는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4척,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1척, 일본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1척이 동원되었다. 위의 사진은 일본 요꾜스까 미해군기지에 배치된 제7함대 소속 9,000t급 이지스구축함 벤폴드호의 모습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일본에 주둔하는 미국 해군 제7함대 대변인의 말을 인용한 미국 일간지 <USA 투데이(TODAY)> 2016년 4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당시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이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일본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과 함께 동해에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면밀히(closely)” 감시하고 있었다고 하였으니,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4척,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1척, 일본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1척이 출동하였던 것이다. <사진 4>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태평양 공해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는 경우, 미국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쪽으로 쏘거나 미국의 서태평양 군사전략거점이 있는 괌쪽으로 쏘게 된다. 그래서 미국 해군 제7함대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미사일발사징후가 보이면, 미사일이 하와이쪽으로 날아가는 방향에 이지스구축함 2척을 긴급출동시키고, 괌쪽으로 날아가는 방향에 다른 이지스구축함 2척을 긴급출동시키게 된다.


지금 미국 해군 제7함대가 주일미해군기지에 배치한 이지스구축함은 모두 6척인데, 2017년 여름에는 7척으로 늘어나게 된다. <중앙일보> 2006년 6월 7일 보도에 따르면, 미국 해군 제7함대는 동해에 ‘미사일방어작전수역(BMD)’을 설정해놓았는데, 미사일방어작전수역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조선의 탄도미사일을 요격하려는 미사일요격작전수역이다. 미국 해군 제7함대의 이지스구축함 6척은 일본 중동부의 요꼬스까(橫須賀), 일본 서북부의 오꾸시리(奧尻町), 일본 남서부의 사세보(佐世保)를 잇는 거대한 이동축선을 따라 미사일요격작전수역을 상시적으로 순항하면서 조선의 미사일발사징후를 감시하고 있다.


그런데 미사일발사감시에 능하다는 이지스구축함 6척이 동해에 출동하여 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호도반도 일대를 면밀히 감시했는데도 미사일이 발사 직후 공중에서 폭발했는지 아니면 해변 또는 해수면에 추락하여 폭발했는지를 분간하지 못했다면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실제로 호도반도 현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의문을 풀어줄 중요한 단서는 <세계일보> 2016년 4월 15일 보도기사에 들어있다. 보도기사에 따르면, 당시 동해에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감시하고 있었던 이지스구축함들이 자기들의 감시레이더로 어떤 폭발현상을 포착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 <사진 5> 무선교신감청을 전문으로 한다는 제777부대는 비밀에 쌓여있는 부대다. 그 부대의 공식명칭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는데, 한국 언론에서 편의상 제777부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주한미국군 암호해독부대의 휘장인데, 이 부대가 제777부대인 것으로 보인다.     © 자주시보


폭발현상을 포착하지도 않았는데, 미국 군부는 어째서 조선의 미사일이 발사 직후 폭발하였다고 주장한 것일까? 위의 보도기사에 따르면, 미국 군부는 조선 내부의 무선교신내용을 감청한 “특수정보(Special Intelligence)”에 근거하여 폭발하였을 것으로 추정하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호도반도에서 어떤 폭발이 있었는지는 직접 확인할 수 없었지만, 조선인민군의 무선교신을 감청하여 폭발이 있었음을 추론하였다는 뜻이다. 폭발설은 한낱 추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사진 5>


감청정보를 가지고 추론한 폭발설은 과연 믿을 만한가? 무선교신감청이라고 하면 무선통신수단을 사용하여 주고받는 대화를 제3자가 그대로 엿듣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군용무선교신은 제3자가 감청해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암호로 교신하고, 매우 복잡하게 변조된 주파수로 교신하는 것이다. 그처럼 난해한 군용무선교신을 감청하는 전문부대가 한국에 있으니, 그것이 제777부대다. 한미연합부대인 이 감청전문부대는 조선 내부에서 오가는 수많은 무선교신전파를 포착해서 주파수를 알아낸 뒤에 그 특정주파수를 타고 오간 암호를 찾아내고, 그 암호가 무슨 뜻인지 해독하여 교신내용을 ‘복원’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제777부대에서 작성한 감청정보에 대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권한은 미국군에게 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인민군이 자기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사용하는 암호를 제777부대가 얼마나 정확하게, 재빨리 해독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인데, 군사부문의 암호해독은 결코 간단치 않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제777부대가 당시 조선 내부에서 오간 수많은 무선교신전파들 가운데 어떤 무선교신전파를 잡아내고, 그 무선교신암호를 해독하여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된 직후 폭발하였음을 알아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인민군이 무선교신전파를 통해 기만정보를 흘려 제777부대의 정보판단을 교란하는 사례가 적지 않을 뿐 아니라, 제777부대가 암호해독과정에서 주관적 해석의 오류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에, 감청정보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그런 감청정보에만 의존하여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된 직후 폭발하였을 것이라고 해석한 미국 군부의 추론은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없는 어설픈 속단으로 보인다.


명백한 것은, 공중에서 폭발하였는지 아니면 해변 또는 해수면에 충돌하여 폭발하였는지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모호한 감청정보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폭발설’만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 <사진 6> 원래 미사일자행발사대는 발전기차량, 통신차량과 함께 한 조가 되어 작전하게 된다. 미사일자행발사대만 출동하지 않는다. 위의 사진은 지난 시기 러시아군이 사용한 15V75 통신차량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자행발사대와 함께 운용하는 통신차량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지만, 위의 사진에 나타난 통신차량과 비슷하게 생겼을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3. 심리압박전술에 말려든 미국 군부는 공포에 시달렸다


한국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보도기사에서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 1~2대가 호도반도에 전개되었다고 하였고, 한국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보도기사에서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 2~3대가 호도반도에 전개되었다고 하였다. 
원래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 한 대에는 발전기차량 한 대와 통신차량 한 대가 각각 따라붙게 되므로, 차량 3대가 한 조가 되어 작전하게 된다. 그러므로 조선에서 미사일자행발사대 2~3대가 한꺼번에 출동하면, 6~9대의 차량들이 함께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사진 6>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보도기사들에서는 미사일자행발사대 1~3대만 현장에 나타났다고 하였으니, 미사일을 발사할 때 반드시 있어야 할 발전기차량과 통신차량이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정황은 조선인민군이 실제로 미사일을 발사하려고 움직인 것이 아니라 미사일발사징후를 일부러 노출함으로써 미국 군부를 극도의 긴장 속에 몰아놓는 심리압박전술을 전개하였음을 말해준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한국의 언론매체들은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가 호도반도에 모두 몇 대 출동하였는지 서로 엇갈리게 보도하였는데, 그것은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가 2016년 4월 15일에만 호도반도에 출동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장기간 동안 그곳에 출동하였기 때문에 그런 엇갈린 보도가 나온 것이다. 장기간이라면 얼마나 오랜 시일을 말하는 것일까? 


한국 정부 소식통들의 말을 인용한 <연합뉴스> 2016년 4월 14일 보도에 따르면,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20여 일 전부터 호도반도에 나타났다고 하였고, 한국 국방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한 <동아일보> 2016년 4월 15일 보도에 따르면,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지난 4월 초부터 호도반도에 잇달아 전개되었다고 하였다.


원래 미사일자행발사대는 적국의 정찰위성 감시망을 피해 발사위치로 은밀히 출동하여 기습적으로 미사일을 발사하고 다른 곳으로 재빨리 이동하는 법인데, 이번에 호도반도에 나타난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은 이상하게도 10~20일 동안 같은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출몰하였다. 이런 이상한 정황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국 군부에게 일부러 자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드러내 보였음을 말해준다. 

 

▲ <사진 7>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조선의 미사일발사는 실패했지만, 그것은 격렬하고 재앙적인 기도였다고 실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인민군의 심리압박전술에 말려든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호도반도에 출몰한 기간 동안 줄곧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위의 사진은 미국 워싱턴 DC 근교에 있는 국방부 청사를 촬영한 것이다. 공중에서 내려다보면 오각형으로 생긴 건물이라고 해서 흔히 펜타곤이라고 부른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호도반도에서 반복적으로 출몰하고 있다는 정보를 감춰오다가 4월 14일에 가서야 뒤늦게 언론에 알려주었는데, 그 동안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에서 미사일이 갑자기 발사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며 가슴을 무척 졸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를테면 <AP통신> 2016년 4월 15일 보도기사에서 미국 국방부 대변인이 “(조선의) 미사일발사는 실패했지만, 그것은 격렬하고 재앙적인 기도(fiery, catastrophic attempt)였다”고 실토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인민군의 심리압박전술에 말려든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호도반도에 반복적으로 출몰한 10~20일 동안 줄곧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사진 7> 


미국 군부의 주장대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이번에 미사일을 발사하였다면 미국군기지를 직격하기 위해 실탄을 발사한 것이 아니라 태평양 공해상에 탄착시킬 모의탄을 발사한 것이었을 터인데,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모의탄을 장착하고 호도반도에 출동한 것을 왜 그처럼 두려워한 것일까? 그 까닭은 미국 해군이 이지스구축함 4척을 동해의 미사일요격작전수역으로 출동시키고, 한국 해군 이지스구축함 1척과 일본해상자위대 이지스구축함 1척으로 작전역량을 보강하였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동해의 미사일요격작전수역으로 출동한 미국, 한국, 일본의 이지스구축함 6척은 당시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면밀히 감시하고 있었는데, 그 6척 중에서 미국 해군 구축함 4척은 조선인민군 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이 발사되는 경우 그것이 비록 모의탄이라고 해도 그 미사일을 공중에서 격추하기 위한 요격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한국 구축함이나 일본 구축함은 미사일감시능력만 있고 미사일요격능력은 없다.

 

▲ <사진 8> 만일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일본열도 상공을 지나가는 경우, 동해의 미사일요격작전수역에 출동한 제7함대 구축함들은 그 미사일을 요격하게 되어 있다. 이번에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호도반도에서 태평양쪽으로 모의탄을 장착한 중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 4척은 요격태세를 갖추고 미사일요격작전수역에 긴급출동하여 상부의 요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위의 사진은 미국 해군 이지스구축함들이 요격미사일을 발사하는 훈련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만일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발사된 미사일이 일본열도 상공을 지나가는 경우, 동해의 미사일요격작전수역에 출동한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은 그 미사일을 요격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제7함대의 작전수칙이다. 이번에 미국 군부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호도반도에서 태평양쪽으로 모의탄을 장착한 중거리미사일을 발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으므로,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 4척은 요격태세를 갖추고 미사일요격작전수역에 긴급출동하여 상부의 요격명령을 대기하고 있었다. 그래서 <USA 투데이> 2016년 4월 15일 보도기사에서 미국 해군 제7함대 대변인은 “작전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언급할 수 없지만, 우리의 이지스함선들은 그 지역에서 확고한 미사일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말했던 것이다. <사진 8>


그런데 정작 심각한 문제는 동해의 미사일요격작전수역에 출동한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이 조선인민군 자행발사대에서 발사된, 모의탄을 장착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경우, 조선인민군이 즉각 보복공격에 돌입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 조선인민군의 보복공격은 미사일요격에 참가한 이지스구축함들을 격침시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 구축함들이 출항한 주일미해군기지들까지 파괴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발진기지로 돌아갈 항공연료 대신 고폭탄을 가득 싣고 결사대로 출격한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이 해수면을 스치는 듯한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제7함대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 미사일방어작전수역에서 요격미사일을 발사한 구축함들을 격침시키고, 그 뒤에 있는 주일미해군기지들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나의 자의적인 상상이 아니라, 조선인민군 항공군 전투비행사들이 지난 수 십 년 동안 세대를 이어 끊임없이 연습해온 기습공격씨나리오의 핵심내용이다.

 

▲ <사진 9> 미국 해군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이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발사한, 모의탄을 장착한 미사일을 요격하는 경우, 조선인민군은 즉각 보복공격에 돌입하게 되어 있다. 발진기지로 돌아갈 항공연료 대신 고폭탄을 가득 싣고 결사대로 출격한 조선인민군 추격기들은 해수면을 스치는 듯한 무전파초저공비행으로 제7함대의 방공레이더망을 뚫고 들어가, 미사일방어작전수역에서 요격미사일을 발사한 구축함들을 격침시키고, 그 뒤에 있는 주일미해군기지들까지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위의 사진은 조선인민군 항공군 육탄자폭비행결사대의 각오를 말해주는 전투구호를 촬영한 것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그들은 그런 씨나리오를 연습만 해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출격한 적도 있다. 이를테면, 조선의 인공위성 광명성-2호가 우주로 솟구쳐오른 2009년 4월 5일 김정은 당시 반타격사령관의 출격명령을 받은 항공군 제447군부대 소속 추격기 비행사 14명은 결사의 각오를 담은 결의편지를 각자 남기고, 자기의 아내들과 아이들이 써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편지를 가슴에 품고 미그-23 추격기를 몰고 출격하여 동해 상공의 공중매복구역에서 무전파초저공비행을 하며 매복하고 있었고,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이 광명성-2호를 동해 상공에서 요격하는 순간 그 구축함들과 주일미해군기지들을 육탄자폭공격으로 파괴하려는 기습작전에 돌입할 태세를 취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날 김정은 당시 반타격사령관은 “적들이 요격으로 나오면 진짜 전쟁을 하자고 결심했었다”고 말했다. 조선인민군 육탄자폭비행결사대가 실제로 어떻게 훈련하고 출격하는지에 관해서는 2015년 4월 6일 <자주시보>에 실린 나의 글 ‘붉은 매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자세히 논한 바 있다. <사진 9>


관련기사: www.jajusibo.com/sub_read.html?uid=19621


그런데 만일 조선인민군 육탄자폭비행결사대가 미국, 한국, 일본의 구축함 6척을 격침시키고 주일미해군기지들을 파괴하면, 미국군은 조선의 군사전략거점들을 파괴하기 위한 전략공습을 감행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긴급전략공습을 전담하는 미국전략사령부가 이번에 조선인민군의 미사일발사징후를 줄곧 감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일 미국전략사령부가 출동시킨 전략폭격기들이 조선의 군사전략거점들을 전략공습으로 파괴하기 위해 한반도 남부상공에 나타나는 순간, 조선인민군은 주저 없이 전전선에 걸쳐 선제총공격을 개시할 것이며, 그로써 전면전이 폭발하게 된다는 것은 누구라도 쉽게 예견할 수 있다.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발사된 미사일 한 발이 걷잡을 수 없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미국 군부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은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호도반도에 반복적으로 출몰하여 미사일발사징후를 드러내 보이는 동안 전쟁공포에 시달리며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 국방부 대변인의 말을 빌리면,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의 호도반도 출동은 미국에게 “격렬하고 재앙적인 기도”로 간주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대변인의 말마따나 조선과 미국이 격돌하는 전쟁이 미국에게는 재앙으로 된다고 해도, 조선의 언론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최후결전’을 기다려온 조선에게는 그 전쟁이 조국통일대전으로 될 것으로 보인다.

 

 

4. ‘태양절’에는 미사일을 쏘지 않는다


만일 이번에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모의탄을 장착한 미사일이 발사되었다면, 그 미사일은 호도반도에서 일본열도 상공을 넘어 태평양 공해상에 떨어졌을 것인데, 그렇게 멀리 쏘려면 탄도미사일의 최장사거리에 도달하기 위해 발사각을 45도로 유지해야 하고, 발사방향을 하와이쪽 공해 상공이나 괌쪽 공해 상공으로 설정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이것은 미국군에게 발사원점, 발사각, 발사방향을 미리 노출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일 발사원점, 발사각, 발사방향이 모두 미국군에게 노출된 상태에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을 발사하면, 제7함대 이지스구축함들이 요격미사일로 그 미사일을 쏘아맞출 확률이 결정적으로 높아진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처럼 요격당할 위험을 뻔히 알면서도 미사일을 쏘는 경우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이번에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10~20일 동안 호도반도에 계속 출동한 진짜 목적은, 모의탄 미사일을 실제로 쏘려는데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미사일발사징후를 일부러 노출하여 미국을 심리적 압박과 공포로 몰아넣으려는 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만일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모의탄 미사일을 실제로 쏘려고 하였다면, 미사일자행발사대를 호도반도에 반복적으로 출동시키지 않고, 미사일자행발사대를 어느 날 불시에 호도반도가 아닌 다른 곳에 출동시켜 기습적으로 쏘았을 것이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불시에 미사일을 쏘지 않고,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을 호도반도에 반복적으로 출동시킨 사실은, 2016년 4월 15일 오전 5시 3분에 미사일이 발사되었으나 폭발하였다는 미국 군부의 주장이 허구임을 말해준다. 미사일은 발사되지 않았고, 폭발도 없었다. 미국전략사령부의 발표문에 나온 오전 5시 3분이라는 시점은 미사일이 발사된 시각이 아니라 제777부대가 조선인민군 무선교신을 감청한 시각인 것이다.

 

▲ <사진 10> 미국 군부가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되었으나 폭발하였다고 주장한 2016년 4월 15일은 조선에서 김일성 주석의 탄생일로 경축하는 '태양절'이었다. 해마다 4월 15일이 되면, 조선의 최고영도자는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며, 평양을 비롯한 각지에서는 성대한 경축행사가 열린다. 그런데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처럼 '민족 최대의 명절'로 경축하는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양절'에 미사일을 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위의 사진은 올해 '태양절'에 평양 대동강변에서 성대하게 진행된 축포발사장면이다.     © 자주시보, 한호석 소장


미국 군부의 허구적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논거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이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되었으나 폭발하였다고 주장한 2016년 4월 15일은 조선에서 김일성 주석의 탄생일로 경축하는 ‘태양절’이었다. 해마다 4월 15일이 되면, 조선의 최고영도자는 조선인민군 고위급 지휘관들과 함께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하며, 평양을 비롯한 각지에서는 성대한 경축행사들이 진행된다. <사진 10>


그런데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그처럼 ‘민족 최대의 명절’로 경축하는 분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태양절’에 미사일을 쏘는 것은 생각하기 힘들다. 조선의 과거경험을 살펴보면, 국가적 명절을 며칠 앞두고 지하핵실험을 하거나 인공위성을 쏘아올리기는 하였지만, 국가적 명절 당일에 미사일을 쏜 적은 없었다. 더욱이 단거리전술미사일을 발사하는 것이 아니고, 자칫 전면전으로 비화될 위험을 무릅쓰고 중거리전략미사일을 ‘태양절’에 발사하는 것은 아무리 모의탄을 발사하는 것이라고 해도 조선의 국가관례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면, ‘태양절’에 조선인민군 미사일자행발사대에서 미사일 한 발이 발사되었으나 실패하였다는 미국전략사령부의 발표내용은 조선의 내부사정을 모르는 그들이 자의적으로 꾸며낸 허구가 아닐 수 없다. 미국 군부는 전략미사일을 실은 미사일자행발사대들이 호도반도 일대에 계속 출동하는 현상을 보면서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를 오랫동안 느꼈을 터이니, 허구를 사실로 믿어버리는 착각에 빠질 만하지 않은가.


주목하는 것은,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자행발사대를 2~3대만 출동시켜 미사일발사징후를 노출해도, 미국 해군 제7함대, 미국태평양사령부, 미국전략사령부, 미국 국방부와 합참본부, 백악관 국가안보회의가 화들짝 놀라게 되고, 나중에는 유엔안보리까지 뒤숭숭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미사일발사징후를 일부러 노출하여 미국 군부를 공포에 떨게 하는 심리압박전술은 이번에 한 차례로 끝난 게 아니다. 미국 군부에게 공포를 주는 조선인민군 전략군의 심리압박전술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한국 언론매체들이 꺼내놓은 추측보도대로, 이번에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중거리탄도미사일 화성-10호를 실은 6축12륜 자행발사대를 출동시켜 미사일발사징후를 노출하는 심리압박전술을 전개했을 때, 미국이 그처럼 화들짝 놀라며 공포를 느꼈는데, 앞으로 조선인민군 전략군이 4발만 쏴도 미국 본토 전체를 잿가루로 만들 수 있다는 각개발사식 다탄두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호를 실은 8축16륜 자행발사대를 출동시켜 미사일발사징후를 노출하는 고도의 심리압박전술을 전개하는 경우, 겁먹은 미국이 어떻게 행동할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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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선거혁명 시동 건 야권 ‘정책 공조’]야 3당 ‘공통 공약’ 18개…이것만 지켜도 대한민국 바뀐다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ㆍ합치면 167석…‘여소야대’ 국회서 법안 통과 가능

4·13 총선에서 167석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 등 야 3당의 공통 공약들이 주목받고 있다. ‘여소야대’ 국회에서 야당들이 공통 공약 추진을 위해 힘을 합치면 법안 통과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경향신문이 17일 야 3당 총선 공약을 분석한 결과‘청년고용할당제 민간기업 확대’ ‘테러방지법 인권침해 조항 개정’ 등 적어도 18개 공약이 일치하거나 세부 내용까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 보육·교육·인권의 ‘정상화’

우선 정부·여당의 ‘폭주’를 되돌려놓겠다는 공약들이 눈에 띈다. 3당은 공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막고 검정제로 되돌려 교육 과정의 민주성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민주는 ‘교과서 국정화 금지 및 검정제 전환 특별법’을 제정해 법으로 못박겠다고 했다.

지난 2월 야 3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저항했던 테러방지법도 더민주·국민의당은 국가정보원의 과도한 정보수집권과 영장 없는 전화감청 등 조항을 개정하겠다고 공약했다. 정의당은 아예 ‘테러방지법 폐지’를 내걸었다.

학부모 입장에서도 많은 점이 바뀔 수 있다.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을 전액 중앙정부가 부담한다는 야 3당 공약이 지켜지면, 지방교육청과의 갈등으로 빚어진 ‘보육대란’은 사라질 수 있다.

전체 어린이집 중 5.6%(2014년 기준)에 불과한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도 더민주는 기존 어린이집 매입 등으로 30%로 높이겠다고 했고, 국민의당도 모든 읍·면·동에 국공립 어린이집을 하나 이상 두겠다고 약속했다. 육아휴직 때 받는 월급은 현재 통상임금의 40%에서 50%(국민의당)나 100%(더민주)로 늘어나고, 남편 출산휴가는 5일에서 2주(국민의당), 30일(더민주)로 길어질 수 있다.

■ “공통 공약만 지켜도…”

청년 분야에서도 상당한 공감대가 마련돼 있다. 청년고용할당제는 적용 대상을 현재 공공기관에서 대기업으로 확대해 더민주는 정원의 3%, 국민의당·정의당은 5%를 의무채용토록 하겠다고 했다. 청년 구직자 수당도 세 당 공히 6개월에서 1년 동안 월 50만원 이상 지급을 공약했다. 단, 국민의당은 취업 후 갚는 것으로 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소득’ 기준으로 재편해 퇴직 후 지역가입자의 ‘보험료 폭탄’을 막겠다는 공약은 야 3당은 물론 여당도 부분 도입을 약속해 국회 논의가 급진전할 수 있다. 비정규직 보험료를 고용주가 대신 부담케 한다는 야당 공약이 지켜지면 비정규직 소득 증대와 정규직 전환 증가가 기대된다.

대기업에 쏠리는 이익을 관련 중소기업과 나누는 ‘이익공유제’가 도입되고, 하도급 업체가 대기업 ‘갑질’로 인한 손해에 대해 광범위하게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상생경제’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도 ‘여소야대’ 민심을 담아내기 위해 야권의 ‘정책 연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고 있다. 야권이 스스로 수권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경향신문과 함께 총선 정책 검증을 진행했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서순탁 정책위원장은 통화에서 “야 3당의 공통 공약만 지켜져도 한국 경제와 복지 수준이 크게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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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네쌍둥이 국가경사 비행기 타고 귀가”

북, “네쌍둥이 국가경사 비행기 타고 귀가”
 
“제7차 로동당 대회 앞두고 조국에 기쁨 더해 줘”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4/17 [19:27]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네쌍둥이가 5개여 월 동안 평양 산원에서 입원을 마치고 국가가 제공한 비행기를 타고 귀가했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조선에서 태어난 네 쌍둥이들이 평양산원에서 퇴원해 비행기를 타고 귀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1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로동신문이 지난 16일 '비약하는 조국에 기쁨을 더해준 네쌍둥이 소식'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5개월여 동안 평양산원에서 치료를 받아오던 네쌍둥이가 최대 명절인 '태양절'(김일성 주석 탄생일, 4월15일)에 건강히 퇴원해 비행기를 타고 귀가했다”고 전한 소식을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태어난 네쌍둥이는 당시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평양산원 의료진의 도움으로 건강해졌으며, 부모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선군조선의 효녀로 훌륭히 키우겠다"며 네쌍둥이의 이름을 각각 김선은 김군은 김효은 김녀정이라고 지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 네 쌍둥이는 최소 4kg에서 6kg 정상 체중을 찾아 청진시 육아원으로 떠났다.     © 자주시보 이정섭 기자

 

신문은 "당 제7차 대회를 앞두고 비약하는 내 조국에 기쁨을 더해주며 태어난 네쌍둥이는 원수님의 영도 밑에 더욱 번영할 우리 조국의 찬란한 미래를 약속해주는 뜻 깊은 경사"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앞서 이 신문은 지난해 12월 당대회를 앞두고 북한에서 세쌍둥이, 네쌍둥이가 잇달아 태어나고 있다며 이를 '나라의 경사'라고 보도했다.

 

북의 매체들은 평양산원 개원 후 네쌍둥이가 태여난 것은 이번까지 7번째라고 밝혔다.

 

 

네쌍둥이의 어머니는 리봄향은 함경북도 청진시 신암구역 교동 22인민반에 거주하고 있으며 지난해 10월말 도산원에서 네쌍둥이임신부로 진단받은 즉시 비행기로 평양산원에 입원한 것으로 알려져 출산일을 포함해 퇴원까지는 무려 7개월 동안 입원해 있었다.

 

매체들은 “평양산원 2산과(산부인과 여성과)의 의사, 간호원들은 첫 해산을 하는 리봄향 여성을 위해 온갖 정성을 다하였다. 그리하여 리봄향 여성은 지난해 11월 3일 딸 네쌍둥이를 순산하였다.”면서 “네쌍둥이가 태여난 그날로부터 퇴원하는 날까지는 무려 160여일간, 그 나날 아기들이 받아안은 혜택은 헤아릴 수 없다.”고 전했다.

 

또한 신생아들은 “보육기(인큐베이터)안에서 80여일, 침상(침대)에서 또 70여일 동안 네쌍둥이를 담당한 3애기과(소아기과)의 의사, 간호원들은 물론 평양산원의 전체 의료집단이 애기들이 하루빨리 튼튼한 몸으로 퇴원하도록 하기 위해 정성을 기울였다. 네쌍둥이들의 건강문제는 보건성을 비롯한 해당 부문의 제일 큰 관심사로 되었다.”고 말했다.

 

이어 “평양산원의 의사, 간호원들은 세쌍둥이, 네쌍둥이가 태어 날 때마다 국가적으로 큰 경사라고 하시며 온갖 사랑과 은정을 다 돌려주시던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뜻을 빛내어 갈 일념으로 백 수십일 간 온갖 지성과 노력을 다하였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의료집단의 지극한 정성에 의하여 네쌍둥이의 건강상태는 나날이 좋아져 출생한 때로부터 거의 반년이 되는 오늘은 몸무게가 4kg이상, 최고 6kg을 넘어서 애기궁전을 나서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는 한없이 다심하신 친어버이심정으로 네쌍둥이와 부모에게 출생년월일을 새긴 금반지와 은장도, 옷감, 모포로부터 꿀과 졸인 젖에 이르기까지 은정어린 선물을 가슴가득 안겨 주시였다.”고 감사를 표했다.

 

매체는 “애기어머니와 산원의료일군들은 이 세상 천만어머니들의 정을 다 합쳐도 비길 수 없는 뜨거운 사랑으로 조국의 미래를 안아 키우시는 경애하는 원수님의 따뜻한 품이 있어 네쌍둥이가 튼튼히 자라게 되였다고 하면서 격정을 금치 못하였다.”고 게재했다.

 

매체는 끝으로 “이날 귀여운 네쌍둥이는 온 나라의 축복속에 사랑의 하늘길로 청진육아원을 향해 떠났다.”며 글을 마쳤다.

 

한편 2014년 희망정치포럼 황선 대표와 재미동포 신은미 씨는 북의 쌍둥이 정책에 대해 말했다가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기소되기도 했으나 이번 북의 보도로 인해 사실임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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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 "이번 총선, 박근혜 실정에 대한 경고"

 

박원순 시장 방문... "서울 야당 압승은 박 시장 시정 긍정적 평가한 것"

16.04.17 20:11l최종 업데이트 16.04.18 07:39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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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 교수가 17일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시장과 만나 얘기하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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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김용옥이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실정에 국민들이 경고를 보낸 것"이라고 일갈했다.

도올은 17일 오후 서울시청 신청사에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집무실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그러나 야당을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니 기뻐하기보다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마음(공구하는 마음)으로 어떻게 국가 비전을 세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 자리에서 "이번 선거는 국민 없는 '민맹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을 봐달라는 것"이라며 "도올 선생이 하는 '차이나는 도올'이 2030세대의 투표율을 올리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도올은 이에 대해 "수도권, 특히 서울에서 야당의 압승은 박원순 시정에 대한 긍정적 평가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 화답했다.

도올은 이어 "야당은 지금 논공행상을 하거나 대권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할 때"라며 다시 한번 야당의 마음가짐을 경계했다.

한편, 이날 만남은 도올이 진행하는 <차이나는 도올>(jtbc-tv)의 열혈 시청자인 박 시장이 요청해서 비공개 면담으로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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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올 김용옥이 17일 서울시청 시장 집무실에서 박원순 시장과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서울시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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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 수도권 처참한 패배, 3가지 이유는?

[분석] '영남화' 새누리, 분노한 수도권 민심에 무감했다
 
| 2016.04.18 07:07:58



 

 

 

 

우선 반성으로 기사를 시작해야겠다. 새누리당의 압승을 예상했다. 수도권 절반 이상의 의석수를 새누리당이 가질 거라 감히 예측했다. 변명을 하자면 세 가지 근거에서 그랬다. 각종 접전지에서 새누리당 후보의 우세를 가리키는 여론조사, '사실…160석 이상을 예상해'와 같은 새누리당 내부 인사들의 비공식 예측, 그리고 흉흉한 민심 속에서도 새누리당 승리로 번번이 끝났던 앞선 4.29 재보궐 등의 선거 결과 등. 나름 과학, 취재, 귀납적 추리를 종합한 예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틀렸다. 

예측에 실패했으니 평가라도 제대로 해야 할 일이다. 정치권, 언론 모두 마찬가지다. 일단 박근혜 대통령의 패배란 점은 중론이다. 국민의당 출현에 따른 교차 투표의 확장과 두 야당의 '보수 표심' 흔들기가 먹혔다는 분석도 뒤따르고 있다. 전부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반복되는 실정과, 국민의당의 출현, 그리고 두 야당의 '조금 더, 조금 더 오른쪽으로!'는 선거 전에도 눈으로 확인되는 현상이었다. 현상을 보기 좋게 서술하는 것은 제대로 된 평가라기보다는 약간의 분석을 곁들인 비평에 가깝다. 

놓쳤던 것은 이 현상들이 가진 '힘'의 크기였다. 이를 다른 말로 풀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에 투표할 유권자의 수'다. 각종 안전사고나 전염병 예방 및 대처를 못 해 국민 몇 명이 죽어 나가든, 장기 불황 속에서 잘못된 경제 정책을 얼마나 반복하든, 국민적 반발 속에서도 과거로 회귀하는 교과서 정책을 강행하든, 당 지도부가 '막말'을 얼마나 일삼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 표는 여전히 존재할 것으로 봤다. 보수 정권의 장기화와 새누리당의 승리로 끝난 7.30 재보궐·4.29 재보궐 선거 결과 등으로 생겨난 과대망상이었다. 

선거 결과 그런 것은 없었다. 특히 서울 49곳 중 12곳, 수도권 전체 122석 중 35석(28.7%) 승리란 결과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요약되는 이 표심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아일보>는 지난 15일 자 '與 승리 수도권 10곳도 野 합산 땐 열세… "실제보다 더 참패'" 기사에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 승리를 거둘 자체 동력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수도권 122곳 투표 결과를 살펴보니, 국민의당 득표율이 20%가 넘었는데도 새누리당이 야당에 패한 지역이 18곳이나 된다는 분석 끝에 내려진 결론이다. 

 

 

ⓒ연합뉴스

  
"수도권 전략 없다" 아우성 집어삼킨 여론조사 

정치인들은 종종 "민심을 잘 아는 것은 지역구 의원이나 지방의회 의원들"이란 얘기를 한다. '그런데도 그 모양이야?'란 생각이 들겠지만, 사실 이는 고백하듯 하는 얘기다. "지역을 돌아보니 민심이 뿔이 났는데 우리 당(대통령) 어떡하면 좋아"란 말의 다른 얘기인 것이다. 돌이켜 보면, 선거전 초입에만 해도 새누리당 수도권 후보들을 중심으로 해서 "당 지도부는 수도권 전략을 내놓으라"는 아우성이 빗발쳤었다. 지역을 다니며 느껴지는 뿔난 민심을 어르고 달랠 '당근'을 달란 얘기였다. 그러나 '수도권 선거 전략 부재'는 선거가 끝날 때까지도 이어졌다.  

과거 새누리당 또는 한나라당은 이렇지 않았다. 경제 민주화와 재벌 개혁으로 '좌클릭' 했던 19대 총선·대선은 물론, 이명박 대통령 시절 한나라당도 친서민 중도실용 구호를 '뻥'으로나마 강조했었다. 한나라당의 17대 총선 압승 원인인 뉴타운 개발 정책도 대표적인 수도권 전략이었다. '새누리당 하는 짓은 미워도 내 자산은 키워주니 뽑아준다'는 표들로 야당은 번번이 선거에서 졌다. 그런데 이번 선거는 정책 쟁점이라곤 최저임금 정도였고 그마저도 '말장난' 공약 논란으로 정리됐다. 새누리당의 '최저임금 9000원' 공약에 수많은 유권자들은 "또 거짓말한다"는 냉소적인 반응만을 보였다.  

정책 선거를 견인하지 못한 것은 공히 여야 모두에 책임이 있지만, 이는 야권에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박근혜 심판론' 대 '야당 심판론'으로만 선거를 치른 결과 수도권 부동층과 20~40대 부동층은 새누리당을 외면했다. 부동산 열풍 바람을 탔던 서울 스윙보터 지역의 선거 결과는 참패 수준이다. 일례로 서울 마포갑에서 당선된 더민주 노웅래 후보와 2위를 한 새누리당 안대희 후보의 표 차는 1만6022표(18.7%p)다. 19대 (8294표차 11.42%p), 18대 (1680표·2.67%)와 비교해 엄청난 차이다. 

시계를 다시 되돌린다면 새누리당은, 아니 정치권은 어떤 민심을 제대로 읽어냈어야 하는 걸까. 서울 서초갑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의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이 당선자는 "초이노믹스(최경환 의원이 경제부총리를 하며 강행한 돈 풀기와 부동산 띄우기)로 경기가 좋아지기는커녕 전셋값이 뛰는 등 서민 주거 부담이 가중됐다"며 현 정부의 경제 정책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소수인 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다수였다는 것을 유권자들이 알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수당을 뽑아주면 최소한 내 자산은 늘어난다는 환상은 다 깨져버린 셈이다. (☞ 관련 기사 : "전세 1억 올려달라"?…최경환 책임이다)

여기서 이미 많은 언론이 분석했지만 한 번쯤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초이노믹스나 박근혜 정부의 반복되는 실정으로 새누리당이 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를 미처 포착하지 못한 각종 여론조사들이다. 서울 지역에서 낙선한 한 새누리당 후보자는 수도권 전략 부재의 이유로 새누리당 씽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여론조사를 지적했다. 그는 "선거 직전까지도 수도권에서조차 여연 조사 결과가 긍정적으로 나왔었다"고 전했다. 여권표가 분열되고 있음을 직시 못 한 잘못된 여론조사가 '수도권 전략을 내놓으라'는 후보들의 아우성을 집어삼킨 셈이다. (☞ 관련 기사 : '박근혜 심판' 총선 못 맞춘 여론조사, 왜?)

 

 

 

▲ 친박계 최경환 의원과 비박계 김무성 대표. 계파는 다르나 두 의원 모두 영남권 의원이다. ⓒ연합뉴스

 

  

색깔론에 경제위기 겁박까지…수도권 민심 모르니 필패


이렇게 새누리당에 투표를 해야 할 이유가 좀처럼 만들어지지 않는 가운데, 김무성 대표는 엉뚱한 얘기들만을 쏟아냈다. 수도권 지역 유세 중에도 그는 '이 후보 상임위원장을 시켜준다' '저 후보 국회의장을 만들어보자'는 희한한 감투 유세를 계속했다. 몸싸움으로 악명 높은 차명진(부천 소사) 후보의 유세장에서 "차 후보를 내세워 몸싸움을 해서라도 노동법을 통과시키겠다"는 제 살 깎아 먹는 발언을 했다. 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종북 세력과 손잡은 운동권"에 빗대는 색깔론, "새누리 과반이 무너지면 주가가 폭락한다"는 대책 없는 주장도 쏟아냈다. 코스피는 총선 휴장 다음날인 14일 2015.93으로 올 들어 최고점을 기록했다.  

이처럼 수도권 민심에 둔감한 영남권 의원들의 광폭 행보로 일부 후보들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한 서울 지역 후보는 선거 기간이 한창일 당시 "김 대표가 다녀온 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좀 빠졌다"고 한탄했고, 선거 막바지에는 '정치 일번지' 서울 종로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의원과 경합 중이었던 오세훈 전 시장이 김 대표의 선거 유세를 거부했다는 언론 보도도 나왔다. 유세 현장에서 김 대표를 보고 '영도대교 위' 그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감투, 몸싸움, 색깔론, 경제 위기 등을 외쳤던 그에게서 이번 총선의 '적극 투표층'으로 나선 20~30대는 어떤 인상을 받았을까. 

젊은층의 조롱과 비아냥을 산 영남권 의원들은 또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나 조원진 의원 등 TK(대구-경북) 친박 의원들은 선거를 앞두고 대구를 찾아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박근혜 대통령은 식물 대통령이 된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동시에 대구 지역 친박 후보들은 단체로 무릎을 꿇고 '잘못된 공천에 죄송하다. 살려 달라'고 빌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이 비박 학살 칼춤을 추고 2년도, 2달도 아닌 불과 2주 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수도권 캠프에서 일하는 참모들은 이구동성으로 한탄했다. '제발 그만 좀 하자'고 말이다. 

계파는 다르지만 김무성, 이한구, 최경환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영남권 의원들이다. 영남의 정서와 수도권 정서가 다르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 출마했던 한 수도권 지역 여성 후보는 "당의 영남화로 수도권 의원들의 입김이 당 지도부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패인의 하나로 지목했다. 비교적 더 권위적이고 보수적인 영남 중진 남성의원들의 무딘 감수성이 수도권 20~40대 유권자들의 외면을 불렀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TK와 PK(부산-영남)에서까지 돌아선 지지자들이 다수 나왔으니, 새누리당은 '입 관리'에 우선 충실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여기서 이번 총선 결과를 가장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이 있다. 선거 책임을 지는 지도부이자, 수도권 중진인 원유철 원내대표다. 경기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기도 했던 원 원내대표는 다른 누구보다 수도권의 민심을 제대로 읽고 이를 선거 전략에 반영했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정작 수도권이 참패에도 원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추대되는 분위기다. 비박계를 중심으로 '뻔뻔한 일(심재철)'이라는 반발도 터져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입장에서 이번 총선 결과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또다시 계파 내홍에 휩싸이면 이제는 사태가 정말 커질 것이다. 다음 선거는 2017년 대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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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식기 새 촬영, 새 처지에서 생각해 보세요

번식기 새 촬영, 새 처지에서 생각해 보세요

윤순영 2016. 04. 15
조회수 3081 추천수 0
 

새끼 옮기거나 둥지가 훤히 드러나게 손 대는 등 사진윤리 어긋난 촬영 행태 이어져

한밤중 플래시 터뜨리면 일시적 실명, 새끼 포기 못하는 어미는 불편 감수하고 있을 뿐

 

사본 -크기변환_YSY_6774.jpg» 어두운 골짜기에서 나뭇가지와 잎으로 가려진 곳에 둥지를 트는 긴꼬리딱새. 어떤 몰지각한 사진가가 사직을 잘 찍기 위해 둥지를 가린 나뭇가지와 잎을 모두 제거해 둥지가 훤하게 드러났다. 천적에게 고스란히 노출되는 이런 식으로 둥지는 짓는 어미는 없다. 이런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 필자가 촬영했다. 사진=윤순영

 

크기변환_YSJ_9251.jpg» 사방이 고스란히 드러난 둥지에서 불안해 하는 긴꼬리딱새 암컷. 이런 둥지는 천적의 공격에 취약해 정상적인 어미라면 결코 이런 곳에 둥지를 틀지 않는다. 사진=윤순영

 

자연의 사진을 찍으면서 피사체인 동물을 결과적으로 학대하는 행태가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겨울에는 두루미의 잠자리를 넘보며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더니 새들의 번식기인 4~6월을 맞아서는 둥지를 튼 새의 모습을 찍으면서 새를 학대하는 일이 늘고 있다(■ 관련 기사사진가 등쌀에 숨을 곳 잃은 수리부엉이 새끼).

 

물론, 사진가 모두가 그렇다는 얘기는 아니다그러나 일부 몰지각한 인사와, 경험이 없어 자신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빚어내는지 모르는 사진가가 둥지 주변을 훼손해 천적에 노출시키거고 어린 새끼를 둥지에서 꺼내 연출을 하는 등의 행태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크기변환_8.jpg» 어미도 앉기 불편할 만큼 굵은 배롱나무 가지에 오목눈이새끼들이 나란히 앉아 있다. 날지 못하는 새끼를 둥지에서 꺼내 일렬로 앉힌 혐의가 짙다. 보통 때라면 먹이를 가져온 어미에게 서로 먼저 달라고 아우성을 칠일 텐데 사람 손에 시달려서인지 먹이는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불안에 떠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진=한국사진방송 갤러리

 

그렇다고 자연 다큐멘터리나 자연 사진을 촬영하지 못하게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연에 대한 예의를 지키면서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식적인 선에서 자연을 배려하는 사진촬영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

 

크기변환_1[1].jpg» 사진작가 김아무개씨가 2012년 11월 서울에서 연 개인전에 전시한 '새의 선물' 연작 가운데 하나. 날지 못하는 붉은머리오목눈이 새끼를 꺼내 인위적으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어미의 억지 모정을 이끌어내 촬영한 사진이다. 나무를 붙잡은 새끼의 발을 살펴보는 어미 새의 행동에서 새끼 새의 발을 접착제로 나무에 붙이지 않았나 의심이 들기도 한다. 어미 새는 어쩔 줄 모르고 걱정스럽게 새끼를 새끼를 바라보고 있고 새끼는 겁에 질려 있다. 사진=한국사진방송 갤러리

 

둥지훼손과 함께 야간 촬영도 논란의 대상이다. 흔히 올빼미과 조류는 낮 동안 사물을 잘 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낮에도 밤보다 빈도가 떨어질 뿐 활동을 하고 사냥도 한다다만, 선호하는 먹이가 주로 야행성이어서 밤에 적극적으로 활동을 한다.

 

번식시기에 새끼도 키우는 야행성 조류에게 별안간 스트로보를 터뜨리면 어둠에 적응하느라 크게 열려 있던 동공에 한꺼번에 다량의 빛이 들어와 눈이 부셔 앞이 보이지 않게 된다동공의 크기가 주변의 빛에 맞도록 줄어들 때까지 새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상황에 빠진다.

 

불가피하게 야간 촬영을 할 때는 순간적인 발광보다 지속적인 조명이 낫다. 이 방법이 적어도 야행성 조류 앞에 스트로보를 들이대고 정면광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게 영향이 적었다고 말할 수 있다.

 

untitled.png» 램프 파이어는 35w, 색온도 4300k 지속광으로 촬영된 소쩍새. 사진=윤순영

 

스트로보가 터질 때마다 놀라 가져온 먹이를 물고 둥지 주변을 여러 번 선회한 뒤 힘들게 둥지로 들어간다새끼가 자랄수록 먹이가 많이 필요해 어미 새는 불편한 스트로보의 섬광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다. 겉보기에 스트로보가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번식을 망칠 위험에 직면한 어미가 위험과 불편을 무릅쓰고 택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사실을 알야야 한다.

 

이런 촬영이 눈에 띄지 않는 또는 장기적인 나쁜 영향을 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야간 촬영을 위한 강한 순간 조명이 조류의 생태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한 체계적 연구결과는 아직 알려진 바 없다(■ 관련 기사야간 동물학대 사진 논란, 지속광 촬영을 제안한다)

 

조류사진 촬영 문화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 무엇이 옮고 무엇이 그르냐를 따지기 이전에 생명 경시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

 

그동안 자연 학대 사진에 대해 한국사진작가협회는 어떤 제재를 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공모전에서 그런 사진이 입선하는 사례가 빈번했다한국사진작가협회는 선의의 사진가가 피해를 보는 일이 없고 건전한 사진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관계 당국도 조류보호를 위한 지침서를 만들어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필자가 그 동안의 경험을 토대로 얻은, 새들에게 주는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사진을 촬영할 수 있는 요령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 새 촬영 때 지킬 점

 

망원렌즈와 위장막 필수새의 처지에서 생각하라.

사전에 촬영하고자 하는 새의 생태적 특성과 습성을 아는 것이 좋다또 300㎜ 이상의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거리를 유지해 새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것이 기본이다.

 

 

촬영할 때 산새류는 20m 물새류는 50m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위장막은 필수 장비이다위장막을 사용할 때는 거리가 10m일 때는 300㎜ 렌즈, 25m이면 500~600의 렌즈가 적합하다야간촬영은 스트로보보다 지속광을 사용하는 것이 피해를 줄일 수 있다.

 

한 번에 모든 촬영 준비를 끝내고 불필요한 행동을 삼가야 한다.

새들은 소리와 큰 행동에 민감해 불안해 한다그곳 환경과 어울리는 옷차림과 정숙한 기다림은 좋은 사진을 얻는 지름길이다.

 

둥지 주변의 나뭇가지를 함부로 치지 않는다.

둥지를 만지거나 여러 명이 촬영하는 것보다 단독으로 촬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나 3명 이상은 넘지 않도록 한다여러 번 둥지를 방문하여 해를 끼치지 않는 모습을 새가 익히도록 하는 것도 방법이다.

 

새는 민감하고 예민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

환경 변화가 새에 줄 엄청난 위협과 심리적신체적 긴장 상태를 새의 처지에서 헤아려 이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새 사진가의 기본 자세이다.

 

■ 탐조 때 주의할 점

 

새들은 소리에 민감해 이상한 소리가 들리면 매우 불안해합니다.

정숙한 관찰자가 더 많이 볼 수 있습니다시끄럽게 떠들거나 함부로 뛰어다니면 안 됩니다.

새는 사람보다 8~40배 높은 시력을 갖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과 잘 어울리는 색깔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새들은 우리들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위협을 느낍니다.

 

몰래 훔쳐보는 자세는 피해야 합니다.

새들이 더 경계를 합니다산새류는 20m 이상물새류는 50m 이상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새를 자세히 보고 싶으면 미리 쌍안경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풀이나 나무를 훼손하면 새들은 이곳을 다시 찾지 않게 됩니다.

들풀덩굴 등을 밟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도토리산딸기머루달래와 같이 새들의 먹이가 되는 열매를 함부로 채취하면 안 됩니다.

 

둥지나 그 속에 있을 알을 만지면 알이 부화되지 않습니다.

둥지에 있는 풀이나 나뭇가지도 그대로 놔두어야 합니다.

조류의 번식 기간에는 번식지에 불필요한 출입을 삼가야 합니다.

 

사람들이 몰려 있으면 새들이 금방 알아차립니다.

함께 움직이는 인원은 3~5명을 넘지 않도록 합니다.

사람들이 많을 때에는 여러 그룹으로 나누어 움직입니다.

 

새가 날아오르는 장면을 보기 위해 돌을 던지면 안 됩니다.

고니는 한 번 날아오를 때 30분간 먹은 에너지를 한순간에 소모한다고 합니다.

두루미는 한 번 날기 위해 300개의 낱알을 먹어야 합니다돌을 던지거나 위협하는 것은 절대 금물입니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새들에 해를 끼칩니다.

무심코 버린 비닐 끈에 발이 묶이거나 쓰레기를 먹고 죽는 새도 있습니다쓰레기는 봉투에 담아 집으로 되가져가야 됩니다.

 

자동차 바퀴 때문에 서식처가 파괴되기도 합니다.

땅바닥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 새들도 있습니다. 자동차는 이들의 서식처를 한 순간에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차량 통행이 허용된 도로와 주차장만을 이용해야 합니다.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물바람숲>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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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가 ‘야당지’로 돌변하다

 

[기고] “박근혜는 ‘참패 5적’” “새누리 탈당하고 거국내각 구성하라”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media@mediatoday.co.kr  2016년 04월 17일 일요일
 

언론이 권력의 흥망성쇠에 따라 어떻게 표변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나폴레옹의 엘바섬 탈출과 파리 입성’에 관한 보도이다. 그 일화는 아주 잘 알려져 있지만 다시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돼 황제 자리에서 쫓겨나 엘바섬으로 실질적 ‘유배’를 당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은 1814년 2월28일 추종자들을 이끌고 그 섬을 탈출했다. 그가 3월20일 파리에 입성하기까지 프랑스 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은 시시각각으로 달라졌다.

3월9일: 괴물 대역적 엘바섬 탈출. 10일: 코르시카 태생의 식인귀(食人鬼), 주앙에 상륙. 11일: 맹호, 숨 가쁘게 나타나다. 13일: 악마, 리용에 있다. 18일: 찬탈자, 60시간이면 수도에 도착. 19일: 보나파르트, 무장군 이끌고 전진 중. 20일: 나폴레옹, 내일 파리 도착, 입성은 힘들 듯. 21일: 황제 나폴레옹, 지금 퐁텐블로궁에 계시다. 22일: 황제 폐하, 어젯밤 틸릴리궁에 환궁.

4월13일의 20대 총선이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나자 권력 언론이자 수구·보수언론인 조선·중앙·동아일보가 대통령 박근혜를 향해 융단폭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조선은 총선 이튿날인 14일자 사설(‘박근혜 대통령과 친박의 오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다’)에서 박근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은 임기 초에는 인사 실패를 거듭했고, 안하무인의 태도로 불통 시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박 대통령 주도로 선진화법을 만들어 주요 국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매번 의사 결정이 지연되면서도 국민에게 사과 한 번 하지 않고 국회 탓만 했다. 이제 국정 주도력이 국민 불신을 받음으로써 사실상 임기 말 레임덕이 그 어느 정권보다 빨리 시작됐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 조선일보 14일자 사설.
중앙은 같은 날짜 사설(‘중간선거에 참패한 여권···국민 이기는 권력 없다’)에서 “박근혜 정권의 참패는 민심이 분노하면 선거 구도를 삼켜버릴 정도로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박 대통령은 국민 이기는 권력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동아 역시 사설(“성난 민심 ‘선거의 여왕’을 심판했다”)을 통해 “‘선거의 여왕’으로 불린 박근혜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탄핵 때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은 충격적”이라며 “기득권에 빠져 국정은 도외시하고 자신들의 안위만 염두에 둔 ‘웰빙 새누리당’에 국민이 철퇴를 내린 것”이라고 ‘단죄’했다.

2012년에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고, 박근혜 정권 ‘지킴이’ 구실을 충실하게 했던 신문들의 사설이라고 믿기에는 내용이 너무나 강경하고 직설적이다. 

가장 섬뜩한 것은 조·중·동과 같은 부류에 속하는 문화일보 4월 14일자 기사 제목(“박근혜·이한구·김무성·최경환·윤상현 새누리 ‘참패 5적’”)이다. 

이 기사는 “독선과 불통으로 당청 관계나 당정 관계의 혼선과 혼란을 초래한 청와대, 새누리당 공천 과정에서 유아독존 식으로 칼날을 휘두른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 ‘옥새 파동’으로 정치를 희화화 한 김무성 대표, 친박 마케팅과 진박 코스프레의 주역 최경환 의원, ‘막말 파문’으로 몸 담았던 당 전체의 표를 잠식한 것으로 평가되는 윤상현 의원 등이 그들”이라며 박근혜를 ‘참패 5적’의 첫 번째 인물로 꼽았다.

 

▲ 문화일보 14일자 보도.
‘5적’이라는 말은 1970년에 시인 김지하가 발표한 담시(譚詩) <오적>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그는 1905년에 나라를 일본에 팔아넘긴 ‘을사오적’에 빗대어 박정희 독재정권 시기의 ‘오적’을 소재로 ‘이야기 시’를 썼다. 

 

김지하가 지칭한 5적은 재벌,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이었다. 그런데 문화일보는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를 ‘4·13 총선 참패 5적’의 ‘수괴’로 꼽은 것이다. 조·중·동 못지않게 박근혜 정권을 지지하고 엄호해 온 신문에 실린 그 표현을 본 독자들은 ‘이게 문화일보 맞는가’ 하고 놀랐을 것이다.

중앙일보 4월15일자 사설은 “헌정 사상 최대 참패라면 내각과 청와대 참모가 총사퇴하는 게 책임지는 모습”이라며 “정치권에서 여당을 탈당한 대통령의 거국 내각, 야당까지 아우르는 대탕평 인사를 거론하는 것을 주목한다”고 강조함으로써 박근혜가 새누리당을 떠나 거국 내각을 구성하라고 주장했다. 

박근혜가 그렇게 할 인물이 아님을 명백히 알 텐데도 이렇게 강한 논조의 사설을 내보내니 한겨레나 경향보다 훨씬 더 진보적으로 보인다. 

같은 날짜 조선일보 사설은 “집권당이 이 정도로 크게 선거에서 졌다면 대통령이 나서서 그동안의 잘못을 반성하고 국정 쇄신에 대한 새로운 각오를 밝히는 게 옳다”며 박근혜를 이렇게 꾸짖었다. 

“그게 선진국 대통령들이 흔히 보여주는 모습이다. 더구나 이번엔 박 대통령과 친박의 무리한 공천 보복이 여당 참패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 청와대가 집권당의 참패를 남의 일처럼 말하면 박 대통령 스스로 남은 임기 동안 가시밭길로 걸어들어가는 꼴이다.” 

 

동아일보 사설 역시 “박근혜 대통령의 오만에 대한 심판이 20대 총선의 민의”라며 “박 대통령이 그런 민의를 읽고도 침묵하는 것이라면 남은 임기도 ‘마이웨이’를 하겠다는 뜻으로 읽혀 섬뜩하다”고 비판했다.

 

집권당의 총선 참패가 확정된 14일 오전 박근혜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청와대 대변인 정연국은 두 줄짜리 논평을 내놓았다. “20대 국회가 민생을 챙기고 국민을 위해 일하는 새로운 국회가 되길 바란다.” 

그러자 동아일보는 15일자 사설에서 박근혜를 정조준했다. “민심을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흔한 표현조차 없다. 마치 총선 결과와 청와대는 아무 상관이 없고, 그저 남의 일을 논평하는 것 같다. (···) 박 대통령이 앞으로 어떻게 국정을 운영해 나갈지 국민에게 직접 밝히는 게 옳다. 그것이 정권을 맡기고 중간평가에서 엄중하게 경고한 국민에 대한 예의이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제1투표소에서 제20대 국회의원 총선거 투표를 하고 있다. 보수 언론은 선거 참패 원인으로 박 대통령을 꼽고 있다. (사진=청와대)
조선·중앙·동아일보는 일간지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 신문들은 박근혜가 새누리당의 ‘진박’을 통해 ‘반박’을 몰아내고 실정법에 어긋나는 것이 분명한 선거운동을 노골적으로 벌이던 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리고 왜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180~200석을 얻을 수 있다는 ‘여론조사 전문가들’과 새누리당 집행부의 주장을 ‘경마 중계방송’ 하듯이 보도했는가? 

그 신문들이 진정으로 주권자들의 입장에서 박근혜의 행태를 비판했다면 총선 참패 뒤 그에게 던지는 화살이 표적을 제대로 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박근혜는 총선 참패로 ‘레임덕’을 넘어 ‘데드덕(죽은 오리)’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근혜가 기상천외한 ‘묘책’으로 데드덕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 조·중·동은 2009년에 ‘노무현 죽이기’를 하던 때처럼 수시로 박근혜를 인정사정 없이 비판하고 닦달할 것이다. 

그러나 그 보다 더 명확한 사실이 있다. 조·중·동은 앞으로 19대 대통령 선거 시기가 다가오면 언제나 그랬듯이 새누리당 후보를 음양으로 적극 지원할 것이다. 세습·족벌 언론과 수구·보수 정치세력은 운명과 이익을 공유하는 일심동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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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지진, 사망 39명 천여명 사상 9만명 피난

일본 지진, 사망 39명 천여명 사상 9만명 피난
 
일본 정부 자위대 2만 5천명 투입...구난 안간힘
 
이정섭 기자 
기사입력: 2016/04/17 [08:21]  최종편집: ⓒ 자주시보
 
 

 

▲ 무너지고, 깔리고, 갈라지고, 불나고 일본열도가 지진으로 아비규환이다.     ©


 

일본의 지진이 계속 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6일 오전 1시 25분경, 구마모토현(熊本県)에서 진도 6강의 지진이 발생해 일본에서 지진으로 인해 39명이 사망했으며 1천여명이 사상자와 9만여명이 피난길에 올랐다.

 

교토 통신은 지난 16일 일본의 지진 소식을 전하면서 구마모토현은 첫 번째 지진 발생 후에도 진도 6약 이상의 지진이 잇따라 3회 발생했다고 밝혔다.

 

구마모토현에 따르면 빌딩과 가옥이 붕괴되면서 26명의 사망이 추가로 확인돼 14일 이후 사망자는 총 39명이 됐다. 오이타현(大分県)을 포함해 광범위한 지역에서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 구마모토현에서는 약 9만 명이 피난했다.

 

구마모토현 마시키마치(益城町)에서는 14일 최대 진도 7이 관측됐으나, 기상청은 “이번(오전 1시 15분)이 14일 이후 발생한 지진의 본 지진”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최초로 발생한 지진은 매그니튜드(M) 7.3으로 한신(阪神) 대지진과 같은 규모다. 진원의 깊이는 약 12킬로미터였다.

정부는 자위대와 경찰 등의 파견 요원을 증강해 구조와 복구에 전력을 기울고 있다.

 

구마모토현과 관내 시정촌(市町村, 기초자치단체)에 따르면 야쓰시로시(八代市)에서 화재로 1명이 사망했다. 이외에 구마모토시와 니시하라무라(西原村), 미나미아소무라(南阿蘇村) 등에서 남녀 18명이 사망했다. 구마모토현은 이 중 10명의 신원을 발표했다. 오전 4시까지 ‘가옥에 갇혀 있다’ 등으로 구조를 요청하는 110번 전화가 구마모토현에서 922건, 오이타현에서 190건 있었다.

 

구마모토현과 경찰 등에 따르면 미나미아소무라에서는 도카이대(東海大) 아소 캠퍼스 부근 아파트 4개 동의 1층 부분이 손상을 입으면서 11명이 깔렸다. 대규모 산사태도 발생해 아소 대교가 붕괴했다. 우토시(宇土市) 시청이 일부 파손됐고 미나미아소무라와 니시하라무라에 걸친 다와라야마(俵山) 터널이 붕괴했다.

 

최초의 진도 6강 지진 발생 후 오전 1시 46분경 진도 6약, 오전 3시 55분경에 진도 6강, 추가로 오전 9시 48분경 진도 6약의 지진이 발생했다. 기상청은 “최대 진도 6약의 여진 발생이 1주일 정도 예상된다”며 경계를 당부했다.

 

14일 진도 7로 시작된 일련의 지진활동에 대해 전문가는 처음에 규슈(九州) 중앙부를 북동-남서 방향으로 이어진 ‘히나구(日奈久) 단층대’에서 북쪽에 인접한 ‘후타가와(布田川) 단층대’으로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아소산은 오전 8시경, 소규모 분화가 발생했으나, 기상청은 지진과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이타현 지사도 육상자위대에 재해 파견을 요청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수상은 16일의 현지 시찰을 중단했다.

 

규슈 전력에 따르면 16일 오전 5시 현재 구마모토현, 오이타현, 미야자키현(宮崎県)에서 약 20만 3천 세대가 정전됐다. 가고시마현(鹿児島県)의 센다이(川内) 원전과 사가현(佐賀県)의 겐카이(玄海) 원전에는 이상이 없다.

 

JR 규슈의 재래선은 후쿠오카현(福岡県)과 미야자키현, 가고시마현 등의 구간을 제외하고 첫 차부터 운행을 중단하고 안전 확인을 실시 중이다. 구마모토 공항은 모든 발착 항공편이 결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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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 그날 언론과 박근혜는 무엇을 했는가?

  • 분류
    알 림
  • 등록일
    2016/04/17 09:30
  • 수정일
    2016/04/17 09:30
  • 글쓴이
    이필립
  • 응답 RSS
 
2014년 4월 16일, 그날 언론과 박근혜는 무엇을 했는가?
 
 
 
임병도 | 2016-04-16 09:00:21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보내기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돌아왔습니다.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있습니다. 그 날의 아픔을 되새기는 슬픈 사연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언론과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 언론과 대통령은 무엇을 했는지 다시 정리해봤습니다.


‘대참사 날 뻔했다가 아니라 대참사가 벌어졌다’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2014년 4월 16일 문화일보 1면

2014년 4월 16일 언론은 엄청난 오보를 쏟아 냈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발생한 후 몇 시간 뒤 발행된 문화일보는 ‘대참사 날 뻔했다’는 1면 기사를 내보냈습니다. ‘대참사 날 뻔’이 아니라 대참사가 벌어졌습니다. 이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그날 언론이 도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MBC 기자회에 따르면 4월 16일 언론사 중 가장 먼저 사고해역에 도착한 기자는 목포MBC 기자들이었습니다. 목포MBC 기자들이 사고해역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이미 세월호는 뱃머리만 남기고 침몰한 상황이었습니다.

목포MBC 기자들이 본 것은 구조작업을 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도는 해경과 헬기였으며, 잠수요원들도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목포 MBC 기자들은 정확한 구조자를 파악했었는데,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으로부터 구조자는 단지 160여 명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목포MBC 기자가 구조자가 160여명에 불과하고 수백 명의 아이들이 배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때, 언론에서는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라는 소식이 보도됐습니다. 목포MBC 기자들은 즉시 MBC전국부에 ‘학생 전원구조’는 오보일 가능성이 크다고 알렸지만, MBC는 중앙재난대책본부가 발표한 ‘학생 전원구조’ 오보를 그대로 보도했습니다.


‘반성하는 언론? 세월호를 잊으라는 KBS’

2014년 4월 16일 언론은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그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시청률을 높여주는 사건일 뿐이었습니다. 마치 축구 경기를 중계하듯 너나 할 것 없이 자극적인 세월호 관련 이야기만 쏟아냈습니다. 진실 보도는 그들에게 거추장스러운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MBC,KBS,YTN,.조선일보의 세월호 참사 보도 내용들

수많은 아이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외칠 때 ‘학생 전원구조’ 오보가 나왔습니다. MBC는 아이들이 빠져나오지도 못한 상황에서 보상금을 얼마나 받을지 보도했습니다. 조선일보는 아이들이 물에 빠져 숨을 거둘 때 연예 프로그램 결방을 결부시켜 클릭률 장사를 했습니다.

구조 작업이 진행되지 않았지만, 언론은 구조작업이 대규모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보도했습니다. ‘구조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했던 시간, UDT와 SSU는 해경의 통제로 초기에 투입되지 못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고, 기자들과 언론사는 반성한다고 했습니다. 2년이 지난 지금 나아졌을까요?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가 내건 세월호 현수막을 철거한 KBS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새노조)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하루 앞둔 4월 15일 오전 KBS 신관 정문에 세월호 참사 2년을 추모하는 현수막을 내걸었습니다. KBS는 이 현수막이 회사의 승인 없이 무단으로 설치됐다며 추모 현수막을 철거했습니다.

KBS 새노조에 따르면 세월호와 관련된 뉴스와 시사대담 프로그램을 제외한 정규 혹은 특집 프로그램을 KBS TV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합니다. 세월호 유가족의 이야기만 다뤄도 줄줄 쏟아질 아픈 기억을 공중파에서는 볼 수가 없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 아이들을 두 번 죽게 만들었던 언론은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론은 자신들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아직도 모르는 대통령의 7시간’

세월호 참사가 벌어지고 2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박근혜 대통령이 첫 서면 보고를 받은 후 7시간 동안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전새정치민주연합 김현미 위원이 공개한 자료. 7월 8일 국회운영위원회의 속기록과 국가안보실 서면 답변을 통해 재구성한 4월 16일 청와대와 대통령의 타임라인 ⓒ416세월호민변의기록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안보실장을 통해 문서로 세월호 사고를 보고받았습니다. 사고 접수 후 1시간 8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10시 15분 대통령은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할 것, 선내 객실 등을 철저히 확인하여 누락되는 인원이 없도록 할 것”이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그러나 이미 세월호는 모든 입구와 갑판이 침수되어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고를 보고 받은 후 6시간 10분 동안 청와대에서는 회의가 없었습니다. 오후 4시 10분에서야 비서실장이 주재하는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렸습니다.

첫 서면 보고 후 7시간이 지나서야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대책본부를 방문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중대본에 와선 한 말은 “다 그렇게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였습니다. 293명의 실종자 전원이 배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이런 소리를 하는 대통령이 7시간 동안 세월호 관련 보고를 제대로 받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면 그녀 스스로 아이들을 구하지 못하더라도 상황만큼은 인지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들이 죽어가는 시간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녀가 무엇을 했는지 청와대는 기밀이라며 아직도 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 명단>

-미수습자(9명) : 고창석(단원고 교사), 권재근(혁규 아버지), 권혁규(7살), 남현철(단원고 2학년 6반), 박영인(단원고 2학년 6반), 양승진(단원고 교사), 이영숙(일반인 승객), 조은화(단원고 2학년 1반), 허다윤(단원고 2학년 2반)

-단원고 2학년 1반(17명) : 고해인, 김민지, 김민희, 김수경, 김수진, 김영경, 김예은, 김주아, 김현정, 문지성, 박성빈, 우소영, 유미지, 이수연, 이연화, 정가현, 한고운

-2반(24명) : 강수정, 강우영, 길채원, 김민지, 김소정, 김수정, 김주희, 김지윤, 남수빈, 남지현, 박정은, 박주희, 박혜선, 송지나, 양온유, 오유정, 윤민지, 윤솔, 이혜경, 전하영, 정지아, 조서우, 한세영, 허유림

-3반(26명) : 김담비, 김도언, 김빛나라, 김소연, 김수경, 김시연, 김영은, 김주은, 김지인, 박영란, 박예슬, 박지우, 박지윤, 박채연, 백지숙, 신승희, 유예은, 유혜원, 이지민, 장주이, 전영수, 정예진, 최수희, 최윤민, 한은지, 황지현

-4반(28명) : 강승묵, 강신욱, 강혁, 권오천, 김건우, 김대희, 김동혁, 김범수, 김용진, 김웅기, 김윤수, 김정현, 김호연, 박수현, 박정훈, 빈하용, 슬라바, 안준혁, 안형준, 임경빈, 임요한, 장진용, 정차웅, 정휘범, 진우혁, 최성호, 한정무, 홍순영

-5반(27명) : 김건우, 김건우, 김도현, 김민석, 김민성, 김성현, 김완준, 김인호, 김진광, 김한별, 문중식, 박성호, 박준민, 박진리, 박홍래, 서동진, 오준영, 이석준, 이진환, 이창현, 이홍승, 인태범, 정이삭, 조성원, 천인호, 최남혁, 최민석

-6반(23명) : 구태민, 권순범, 김동영, 김동협, 김민규, 김승태, 김승혁, 김승환, 박새도, 서재능, 선우진, 신호성, 이건계, 이다운, 이세현, 이영만, 이장환, 이태민, 전현탁, 정원석, 최덕하, 홍종용, 황민우

-7반(32명) : 곽수인, 국승현, 김건호, 김기수, 김민수, 김상호, 김성빈, 김수빈, 김정민, 나강민, 박성복, 박인배, 박현섭, 서현섭, 성민재, 손찬우, 송강현, 심장영, 안중근, 양철민, 오영석, 이강명, 이근형, 이민우, 이수빈, 이정인, 이준우, 이진형, 전찬호, 정동수, 최현주, 허재강

-8반(29명) : 고우재, 김대현, 김동현, 김선우, 김영창, 김재영, 김제훈, 김창헌, 박선균, 박수찬, 박시찬, 백승현, 안주현, 이승민, 이승현, 이재욱, 이호진, 임건우, 임현진, 장준형, 전형우, 제세호, 조봉석, 조찬민, 지상준, 최수빈, 최정수, 최진혁, 홍승준

-9반(20명) : 고하영,권민경, 김민정, 김아라, 김초예, 김해화, 김혜선, 박예지, 배향매, 오경미, 이보미, 이수진, 이한솔, 임세희, 정다빈, 정다혜, 조은정, 진윤희, 최진아, 편다인

-10반(20명) : 강한솔, 구보현, 권지혜, 김다영, 김민정, 김송희, 김슬기, 김유민, 김주희, 박정슬, 이가영, 이경민, 이경주, 이다혜, 이단비, 이소진, 이은별, 이해주, 장수정, 장혜원

-교사(10명) : 유니나, 전수영, 김초원, 이해봉, 남윤철, 이지혜, 김응현, 최혜정, 강민규, 박육근

-일반인(30명) : 김순금, 김연혁, 문인자, 백평권, 심숙자, 윤춘연, 이세영, 인옥자, 정원재, 정중훈, 최순복, 최창복, 최승호, 현윤지, 조충환, 지혜진, 조지훈,서규석, 이광진, 이은창, 신경순, 정명숙, 이제창, 서순자, 박성미, 우점달, 전종현, 한금희, 이도남, 리샹하오

-선원(6명) : 박지영, 정현선, 양대홍, 김문익, 안현영, 이묘희

-선상 아르바이트(4명) : 김기웅, 구춘미, 이현우, 방현수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는 미수습자 9명과 295명의 사망자 명단을 똑똑히 보시기 바랍니다. 도대체 이 명단보다 더 중요한 국가 기밀이 어디에 있습니까? 지금이라도 그 날 당신이 무엇을 했는지 국민에게 밝히고 용서와 사죄를 구하기 바랍니다.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역사의 죄인으로 기억되지 않는 마지막 기회입니다.

2014년 4월 16일 언론과 박근혜 대통령이 무엇을 했는지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미수습자 9명과 사망자 295명의 죽음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본글주소: http://poweroftruth.net/column/mainView.php?kcat=2013&table=impeter&uid=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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