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말 고질병으로 여겨지던 ‘알박기 인사’가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파면으로 빚어진 권력 공백 상황에도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윤석열 집권에 기여했거나 정권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온 이들을 새 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임기가 보장되는 권력기관이나 공공기관 고위직에 내려꽂기 위해 온갖 무리수가 동원된다. ‘대통령의 내란’으로 초래된 헌정 위기가 가까스로 수습되는 국면이란 점에서, 최근의 ‘알박기 인사’는 사실상의 ‘내란 연장’ 시도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알박기 금도’마저 깬 ‘한덕수의 난’
논란의 정점은 지난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헌법재판소가 파면한 윤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을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한 일이었다.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주어진 ‘현상 유지적 권한 행사’의 범위를 넘어선 위헌적 행위라는 비판이 거셌다. 지난달 26일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를 이끄는 이진숙 위원장이 안팎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문화방송(MBC) 아나운서 출신 신동호씨를 신임 교육방송(EBS) 사장으로 임명한 것도 몰염치한 권한 남용이란 비판에 직면했다.
‘정권 차원 보은 인사’로 여겨지는 공공기관의 임원 인사도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14일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를 보면, 12·3 비상계엄 하루 뒤인 지난해 12월4일부터 지난 4월11일 사이에 공시된 공공기관 임원 모집 공고는 모두 101건이다. 헌법기관과 권력기구, 공영방송 등의 고위직뿐 아니라, 정부 산하 공공기관의 대표, 상임이사, 감사직도 최종 임명권자가 바뀌기 전 서둘러 자리를 선점하려는 ‘구정권’의 주변 인물들이 경쟁적으로 몰려드는 탓이다.
대통령이 탄핵당한 권한대행 정부에서 ‘알박기 인사’가 여전히 횡행하는 데는 전임 윤석열 정권의 특수성이 자리잡고 있다. 임기를 3년밖에 채우지 못한 채 중도 하차하면서 미처 실행에 옮기지 못한 ‘보은 인사’의 수요가 많았던데다, 대통령이 스스로 내란죄 피고인이 되면서, 새 정권이 들어설 경우 ‘단죄와 청산’의 범위가 어디까지 확대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일관된 발탁 기준, ‘정치 성향’과 ‘충성심’
최근 기관장에 선임되거나 내정설이 나돈 인사들을 보면, 대부분 윤석열 정권 출범에 기여했거나, 출범 뒤 대통령실에서 윤 전 대통령과 손발을 맞춰온 참모진,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 선출 공직 진출에 실패한 정권 주변 인사들이다. 이들이 진입을 희망하는 자리는 전임자의 총선 출마나 임기 만료 등으로 공석이 된 곳으로, 이들의 발탁 기준 역시 ‘전문성’과 ‘유관 경력’보다는 ‘정치 성향’과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다.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올해 초 경찰 인사에서는 ‘용산 출신 친윤 경찰’들이 대거 영전했다. 윤석열 정부 3년 동안 3계급 ‘초고속 승진’을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 임명이 대표적이다. 대통령 국정상황실에 파견됐던 남제현 치안감을 비롯해, ‘세관 마약 수사 외압’ 논란에 연루됐던 김찬수 대통령실 행정관, ‘채 상병 사망 수사 외압’ 연루 의혹을 받는 박종현 행정관 등도 무사히 진급했다.
지난달 17일 임기가 시작된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에는 지난해 총선 당시 서울 중랑갑에 국민의힘 후보로 출마했다 낙선한 김삼화 전 의원이 임명됐다. 초대 양육비이행관리원장에는 대통령실 행정관 출신이자 지난해 총선에서 경기 구리시에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나섰던 전지현 변호사가 선임됐다. 앞서 1월20일에는 최춘식 전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석유관리원 이사장으로 취임했고, 대선 당시 윤석열 캠프에서 활동한 이주수 전 서울농수산식품공사 이사회 의장은 2월4일 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됐다.
임기 안 끝난 대통령기록관장을 왜?
대통령기록관장 인사는 정치적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윤 전 대통령 파면으로 대통령기록물 이관 등 중요 업무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현직 기록관장의 임기가 끝나기도 전에 후임자 인선 절차가 진행된 것이다. 대통령기록물 사정에 밝은 이들 사이에선 새 기록관장이 올 경우 비상계엄 관련 기록물의 유출이나 봉인 우려까지 제기한다. 행정안전부가 진행 중인 새 대통령기록관장 선임 절차는 최종 후보자 2명 가운데 1명이 윤석열 정권 임기 내내 대통령비서실에서 기록 담당자로 일한 행정관 출신이다. 심성보 전 대통령기록관장은 14일 “계엄 당시 대통령실 상황을 잘 아는 인물이 대통령기록관장이 되면, 어떤 기록을 숨겨야 하는지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제도를 악용해 기록물을 온전히 이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감사원의 지난 4일 전보 인사는 ‘과거 청산 발목잡기’ 성격이 짙다. 장난주 국민제안감사1국장을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감사교육원 교수직에 발령했는데, 장 국장은 감사원이 애초 벌였던 대통령 관저 감사가 부실 논란에 휩싸인 뒤 국회 요구로 재감사가 실시되면서 투입된 실무책임자였다. 감사원에선 “감사청구 업무의 실무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가장 적합한 인사를 신임 국장으로 발령한 정당한 인사권 행사의 일환”이라고 강조했지만, 관저 부실 감사 논란 등으로 탄핵당했던 최재해 감사원장이 복귀 직후 시행한 인사라는 점에서 ‘보복 인사’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최소한의 ‘염치’와 ‘절제’마저 실종
영화계 역시 예외는 아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대통령 탄핵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1월6일 영화진흥위원회 신임 위원 6명을 임명했는데, 영화계 현장과 유리된 교수와 투자 전문가 등이 대다수였다. 문체부 산하 한국관광공사, 한국콘텐츠진흥원, 국립국악원과 인천국제공항공사 산하 인천공항보안도 기관장 공모 절차를 진행 중이다.
논란이 커지며 정권 말기나 권력 공백기에는 필수불가결한 인사가 아니면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권한대행 체제 정부에서 이를 중단하거나 보류하려는 분위기는 감지되지 않는다. ‘정치적 양극화’가 심화되고 ‘내란 정권’ 종사자들 사이에서 ‘정권교체 이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며 ‘절제’나 ‘염치’라는 심리기제가 작동할 여지가 사라져버린 탓이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공적 기관의 정상 작동을 어렵게 하고, 조직에 장기적이고 심각한 후유증을 남긴다는 데 있다.
윤석열 정권이 주어진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3년도 안 돼 몰락하면서 미뤄온 보은 인사의 수요가 한꺼번에 몰린 특수성도 있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현재는 각 기관 임원 추천위원회나 공공기관 운영위원회 등을 윤석열 정권 친화적인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차기 정권에 넘겨야 한다는 고려 없이 막무가내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정권 임기-기관장 임기 일치가 답일까?
더불어민주당은 ‘정권 말기 알박기 인사’ 방지를 위해 대통령 임기와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공공기관 운영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공공기관장의 임기를 일괄적으로 정권 임기에 맞추는 건 과도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철 위원은 “업무의 특성상 정권 임기와 무관하게 기관장 임기를 보장해야 하는 공공기관도 있다. 기관 특성을 반영해 공공기관 운영법을 전면 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부)는 “인사권은 임명권자의 재량인 만큼 일일이 제도적인 통제가 어렵지만, 정말 일해야 하는 자리만큼은 정권이 바뀌어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암묵적 관행이나 정치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박민주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에서 진행을 맡았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과 박민주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이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기 앞서 손을 마주치고 있다.이정민
"윤석열 파면 이후 일주일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내란 세력들이 활개 치고 다니고 있어요. 지금은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 사회 곳곳에 있는 내란 세력들을 청산해야 할 때입니다." - 박민주
"지난해 12월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같은 당 김재섭 의원에게 '내가 박근혜 탄핵 반대할 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 다 찍어줬다'고 말했잖아요. 그 말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이 끊임없이 증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 김형남
두 활동가는 매번 무대 위에 있었다. 항상 행진을 이끄는 트럭 위로 올랐다. 두 사람이 외친 구호를 광장의 사람들이 연호했고, 두 사람이 택한 노래는 광장의 노래로 재탄생됐다.
12.3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윤석열퇴진·사회대개혁(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사회자로서 마이크를 잡았던 김형남·박민주 활동가는 그간 함께 광장을 지킨 시민들을 향해 "윤석열 파면으로 우리의 역할이 끝난 게 아니"라고 당부했다. 두 사람의 말처럼 그들이 몸담고 있는 '윤석열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지난 8일 단체명을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바꾸고 목표를 재정립했다.
김형남 활동가의 또 다른 직함은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다. 2016년부터 군대에서 발생하는 인권 침해 사건들을 상담하고 피해자를 지원해 왔다. 박민주 활동가 역시 한국진보연대와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 각각 자주통일국장과 조직국장으로 일하며 비상행동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두 활동가를 지난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만나 '내란부터 파면까지 넉 달 간의 소회'를 물었다. 또 시민과 함께 누볐던 광화문 일대를 찾아 두 사람이 바라는 미래가 무엇인지 들었다. 인터뷰 후 그들은 "저녁 집회에서 또 만나요"라고 인사했다. 두 사람의 행진은 끝나지 않았다.
아래 두 활동가와 나눈 인터뷰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겨우 원점 찾은 승리의 경험, 이젠 플러스로"
▲윤석열 탄핵을 촉구하는 17차 범시민대행진이 지난 3월 29일 오후 서울 광화문 동십자각 앞에서 열렸다.남소연
- 12.3 내란 사태 이후 비상행동이 67차례에 걸쳐 윤석열 퇴진 집회를 열었습니다. 지난 4개월을 돌아보면 어떤가요?
김형남 활동가(아래 김):"내란 이후 123일 동안 67번 집회를 열었으니 이틀에 한 번 이상 집회를 연 거네요. 제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은 불안함, 내지는 두려움이었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결과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무거운 분위기들이 전반적으로 자리 잡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불안함과 두려움이 사람들을 계속해서 광장으로 불러내지 않았나 싶어요. 시민들도 다들 생업이 있을 것이고 학생들은 학교에 가야 할 건데 그 와중에 이틀에 한 번꼴로 집회에 나와 싸운 거잖아요. 모두 각자가 겪고 있던 불안한, 두려운 감정을 어떻게 희망으로 전환해 낼 것인지 고민하기 위해 광장에 모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박민주 활동가(아래 박): "박근혜 이후 다시 국민 앞에 윤석열이라는 거대한 적이 탄생한 거잖아요. 그러다 보니 시민들이 광장의 효용성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이크를 잡는 내가 시민들을 설득해 보자', '어떻게 하면 광장에 나오는 일에 확신을 갖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으로도 이어졌고요. 그런데 바깥으로 나오는 시민들을 보면서 '내가 괜한 걱정을 했구나' 싶더라고요. 시민들이 정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광장에 나왔거든요. 이후 저는 '광장에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이 집회를 완주할 수 있도록 잘 끌고 가는 것', '집회의 분위기나 참가자들의 마음 상태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것' 등에 집중했어요."
- 윤석열 파면 전 마지막 주말 집회(17차 범시민대행진)를 사회자로서 함께 진행했습니다. 당시 어떤 마음으로 무대에 올랐나요?
박: "그때가 탄핵 전 마지막 주말 집회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채 무대에 올랐어요. 17차 범시민대행진이 3월 29일이었는데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일 공지가 4월 1일, 실제 선고가 4월 4일이었으니까요. 집회 당시에는 '탄핵까지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탄핵 국면이 계속 장기화하다 보니 '집회에 온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선고가 늦어질수록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고민이 있었어요. (17차 범시민대행진은) 그런 염려 속에 준비했던 기억이 납니다."
김:"그때는 '계속해서 선고 일정이 안 잡히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참가자들의 감정선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집회에 온 참가자도 시민 한 명이고, 집회에서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는 사람도 시민 한 명이니까요. 그렇지만 마이크를 쥔 사람이 '너무 불안하다'고 할 수는 없어요. 집회는 감정을 나누는 시간도 맞지만,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해 내는 시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우리의 감정을 불안을 넘어서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 비상행동에서 사회를 맡거나 행진할 때 시민들에게 전하는 발언은 어떤 과정을 거쳐 나오나요?
김: "저희 둘이 온라인에 공유 문서를 만들어 같이 쓰면서 완성하는 작업을 거쳤어요. 콘텐츠는 국면마다 좀 달랐는데요. 예를 들면 윤석열이 풀려난 직후(3월 8일)에는 '재구속 요구', '즉시 항고 않은 검찰 규탄' 이런 내용들이 주가 되고, 3월 15일쯤부터는 '헌법재판소의 선고 지연 규탄' 등 내용이 주가 되는 식이에요. 시점에 따라 계속해서 내용을 변주해서 발언문을 준비했습니다."
박: "헌법재판소 변론이 끝나고 (선고 일정만을 기다리던) 잠잠한 시기가 있었어요. 그래서 둘이 집회 대본을 쓰다가 토론을 참 많이 했어요. 집회 참가자들에게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슈를 계속 모니터링했고, 문장 첫머리에 들어가는 단어나 수식어까지도 계속 신경 쓰곤 했어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에서 진행을 맡았던 박민주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정민
- 윤석열이 파면되던 순간엔 어떠셨나요?
김: "선고 당일 헌법재판소 인근 비상행동 집회 현장에 있었는데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왠지 파면할 것 같이 결정문을 낭독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현장에 계시던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또 저는 군인권센터에서 일하다 보니 선고 중간에 채상병 부모님도 생각이 나고, 생존 해병도 생각나고... 그래서 '그분들에게 지금 이 순간은 어떤 순간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일을 겪는 것 자체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자신이 겪었던 일을 부정당하는 것, 폭로를 위해 낸 용기가 무의미하게 여겨지는 것, 목소리를 내도 바뀌지 않는 것 등이 되게 사람 마음을 병들게 하거든요.
어쨌든 저도 북받치는 감정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그 순간 '내가 울기보다는 돌아봐야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에 눈물이 들어갔어요. 그리고 또 울지 않은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어요. 선고 직후 저희가 같이 행진해야 하는데 민주님이 엉엉 울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라도 울면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두 손으로 'T' 자를 그리며) 제 MBTI(성격유형지표)가 대문자 T(사고형)거든요(웃음)."
박: "(멋쩍게 웃으며) 제가 원래 진짜 울지 않는 스타일인데요. 당연히 윤석열이 파면 될 거로 생각해 왔고, 그래서 제가 선고 당일에 울 거라고 더욱 생각하지 못했어요. 옆에 있던 비상행동 막내랑 같이 부둥켜안고 생중계를 보는데 '파면한다'는 네 글자를 들으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어요. 그냥 엉엉 소리 내며 울었어요. 무대에서 시민분들 얼굴을 열심히 보려고 했는데 지난 넉 달 동안 함께한 모습이 자꾸 기억나더라고요. 또 제가 이태원 참사 시민대책위원회 활동도 했거든요. 유가족분들과 전국을 돌 때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라 사무치기도 했어요.
제 서울 생활 자체가 윤석열 정권과의 싸움이었어요. 활동가로 일하기 시작한 시점이 윤석열 당선 한 달 뒤였거든요. 윤석열 당선이 2022년 3월 10일이었는데, 한평생을 지역에서 살던 제가 활동가로 일하려고 2022년 4월에 서울로 온 거예요. 윤석열 정권 초기부터 싸웠던 제 서울 생활이 탄핵 선고 순간에 떠오른 거죠. 그래서 더 눈물이 콸콸 났던 것 같아요."
- 두 분에게 윤석열 탄핵은 어떤 의미로 다가오던가요?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에서 진행을 맡았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이 1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정민
박: "진짜 몇 안 되는 승리의 경험이요. 모든 시민·사회단체가 윤석열 정권의 만행으로 탄핵을 외치며 엄청나게 싸웠거든요. 그렇게 노력한 끝에 역사적인 승리의 경험을 눈앞에서 맞이한 거예요. 광장의 효용성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죠. 그리고 또 우리 사회의 전환점이라고도 생각해요. '윤석열 정권 이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한 단계 더 발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으니까요."
김: "지난 넉 달의 싸움은 윤석열이 우리 사회를 마이너스로 만든 것을 '0(원점)'으로 끌고 오기 위한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도 (내란 세력 등이) 계속 우리 사회를 마이너스로 끌고 가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긴 하지만요. 윤석열 파면 이후 집에 돌아갈 때 시민분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요? 저는 기분이 좀 이상했어요. 왜냐하면 윤석열이 파면됐다고 내 인생이 갑자기 극적으로 변하는 게 없으니까. 내가 사는 집도, 집에 가는 길도, 밥 먹는 하루도 다 똑같으니까. 파면의 순간 차오르는 승리의 감정도 너무 중요하지만, 이제는 0을 플러스로 바꾸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탄핵은 우리 사회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라고 봅니다."
집회 플레이리스트, 두 사람이 꼽은 노래
- 비상행동에서 활동하며 가장 기억에 남던 순간은 언제인가요?
박: "좀 많아요. 비상계엄 선포 당일에 시민들이 국회 앞으로 모인 날도 기억에 남고요. 12월 7일, 국회 탄핵소추안 1차 표결 때 국민의힘이 퇴장하고 그 추운 날 시민들과 국회 앞을 지키면서 버틴 날도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지난해 12월 21일~22일 남태령이요. 시민들이 남태령으로 모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저도 갔는데, 그때 농민분들이 하셨던 말이 생각나요. 청년들이 막 남태령으로 몰려와서 길바닥에서 같이 밤을 새우고, 영하의 추위도 견디고, 계속 '차 빼'라는 구호를 외치고, 춤 추고, 노래하니까 '윤석열은 쟈들을 못 이긴다'라고 하셨거든요. '즐기는 사람들은 이길 수가 없다'고 감탄하시면서요. 그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 "저는 얼마 전 3월 25~26일에 있었던 두 번째 남태령~경복궁 집회가 기억에 남아요. 정확히는 경복궁 인근에서 경찰이 트랙터를 끌고 가려던 오전 상황이요. 처음엔 (너무 이른 오전이라) 시민들이 20~30명밖에 없었는데요. (경찰의 견인을 막으려고) 트랙터 앞에 다 드러눕고, 끌려 나가면 다시 또 드러눕고. 이런 식으로 견인하는 길을 계속 막으며 시간을 벌었어요. 그런데 오전 6시쯤 지나면서 자꾸 골목, 골목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는 거예요. 남태령에서 건너왔다는 분, 소식 듣고 집에서 왔다는 분, 출근하다 왔다는 분... 저는 그 순간 이미 경찰의 기세가 꺾였다고 봤어요. 그 순간이 지난 4개월의 여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떤 동력으로 그동안의 사기를 만들어 왔는지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요. 우리는 늘 그런 경험을 만들어 왔어요."
▲윤석열 탄핵소추안 가결 촉구 시민행동12.3내란 사태를 일으킨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표결에 부쳐질 예정인 12월 7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 모인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 가결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동참을 촉구하고 있다.권우성
- K-팝을 활용한 집회와 행진이 떠올라요. 집회 플레이리스트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박: "저는 '이유 같지 않은 이유', '아모르파티', '위플래쉬' 이렇게 세 곡이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는 집회 초반부터 자주 선곡한 노래였는데 가사가 너무 적절했어요. '이젠 기대하지 않아',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등의 가사가 있는데요. 윤석열이 갑자기 이상한 대국민담화를 발표하거나 주변 내란 세력들이 헛소리할 때 적절했던 것 같아요. 중간중간 구호를 넣기도 좋았고요. '아모르파티'는 강력하게 밀고 나가는 느낌이랄까요. 기세를 올리기 좋더라고요. '파면은 필수' 이런 식으로 개사하는 것도 좋았고요(웃음). '위플래쉬'는 말해 뭐하나요."
김: "비상행동이 집회나 행진을 할 때 사실 노래에 번호를 붙여서 소통해요. 그래야 뒤에 계신 음향 기사 선생님에게 설명하기 좋거든요. 짠 건 아닌데 '위플래쉬'가 공교롭게 18번이에요. '위플래쉬'는 사람들 기세를 쫙 당길 때 너무 좋은 노래예요. (비상행동 집회의) 상징곡이 됐죠. 그 외에 제가 자주 선택했던 노래는 '그대에게'입니다. 구호나 멘트를 넣어 같이 외칠 수 있는, 아주 잘 짜인 노래예요.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게'는 가사를 좋아해요. 노래가 주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좋아요. 탄핵 국면에서 '그래도 우리가 이길 거야', '우리가 지금 역사의 한 페이지를 만들고 있어'라는 멘트로도 이어질 수 있고요.
마지막 하나는 K-팝은 아닌데요. '민중의 노래'요. 처음엔 '민중의 노래'를 틀면 따라 부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이제는 다 외우시더라고요. 행진 선두에서 보면 참가자의 80%가 부르고 있어요. 그 밖에도 여러 노래가 있는데 참가자들이 연령을 막론하고 추임새를 따라 하세요(웃음). '우리가 광장에서 함께 보낸 시간이 노래 하나를 온전히 외울 수 있을 만큼 오랜 시간이었구나'를 느낄 수 있었죠."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범시민대행진에서 박민주 활동가가 행진 사회를 보고 있다.윤석열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
- 두 분의 목청에 대한 호평도 있습니다. '쉬지 않고 사회를 보는데도 목이 쉬지 않는다'는 식의 칭찬인데요. 특별한 비결이 있나요?
박:"저는 목이 쉬어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작년 12월 남태령 대첩에 다녀오고부터 회복이 잘 안되더라고요. 그때 '피곤하거나 잠을 잘 자지 못하면 목이 빨리 가는구나'를 깨달았죠. 그래서 요즘은 보조제들을 챙겨 다녀요. 주머니에 넣어뒀다 사회 보기 직전에 먹고, 주변 사람들한테도 나눠주고요."
김: "저도 살면서 목이 쉬어본 적이 없거든요.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지고 그랬는데. 근데 또 기계가 아니라 자주 쓰면 닳잖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회복은 되는데 금방 또 목이 가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은 물을 많이 마시고 있어요. 평소보다 3배 많이 마시니까 피부도 좋아지더라고요. 그리고 집회를 앞두고는 금주하고요."
- 지난 4개월간 다양한 분들과 함께했는데 유독 고마웠던 사람은요?
박: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같이 집회를 만들어 주신 분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집회 때마다 시민 발언을 취합하신 분, 또 그런 시민분들에게 발언 수칙을 안내해 주신 분, 참석자 관리 자원봉사를 하신 분 등이요. 모두 고된 일이잖아요. '소매넣기'를 해주신 분들도 기억나요. 소매 안의 물건을 훔치면 '소매치기'인데, 되레 소매 안에 물건을 넣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그분들을 그렇게 불렀어요. 그분들이 제 주머니에 사탕, 음료, 비타민 등을 넣고 가시는데 무대에서 내려오면 저도 몰랐던 간식이 나왔어요.
미안한 분들도 있어요. 저는 자주통일평화연대에서도 활동하고 있는데 현재 윤석열의 외환죄 관련 수사가 순탄히 진행되지 않잖아요. (단체에서) 접경 지역 주민들과 함께 수사를 촉구하는 서명 운동을 하는데, 제가 비상행동 집회를 챙길 때는 참여를 못했어요. 그럴 때면 다른 활동가분들이 대신 고생해 주셨어요."
김: "저희처럼 마이크 잡는 사람들은 어찌 보면 표가 나는 일을 하는 거예요. 비상행동 음향 팀이나 조명 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애써주시고 있는 거고요. 그런 분들에게 참 감사하죠. 또 저희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이름 모를 시민들이 계산해 주시는 경우도 있었어요. '시민분들이 단순히 집회에 참석하는 것만이 아니라 집회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고생까지도 생각하고 계시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군인권센터 활동가들한테도 되게 고마워요. 어찌 됐든 저 한 사람이 빠지면 그만큼의 일손이 비는 거잖아요."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박민주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 주최로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범시민대행진에서 진행을 맡았던 김형남 군인권센터 사무국장과 박민주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이 11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이정민
- 단체 이름이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에서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바뀌었습니다.
김: "윤석열이 파면됐다고 끝난 게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지금도 내란 세력은 헌법재판관에 이완규를 지명하는 등 매일 뭔가 일을 벌이고 있잖아요. 앞으로도 저는 내란 세력이 많은 사건, 사고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아직 우리에게는 할 일이 남아 있어요. 우선은 내란 세력이 다시금 권력을 쥐지 않도록 해야겠죠."
박: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이미 윤석열 파면 이후 일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 안에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사회 곳곳에 있는 내란 세력들을 우리가 다시 한번 힘을 모아서 청산해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만 사회대개혁까지 이룰 수 있다고 봐요."
"문재인보다 더 압도적 득표 필요"
인터뷰를 마친 후 두 사람과 함께 광화문 인근을 찾았다. 비상행동이 시민들과 함께 쉼없이 목소리를 높이고 행진한 곳이다. 광화문을 한참 동안 바라보던 두 사람은 "독자들에게 한 마디만 더 전해도 되겠느냐"며 마지막 말을 전했다.
"이번 승리의 경험을 바탕 삼아 다시 광장에 나와 싸워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내란 세력은 재집권하고 싶어 발악을 하고 있어요. 이를 함께 막아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사회대개혁이란 과제 역시, 우리가 얼마나 광장에서 싸우냐에 따라 그 깊이가 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겉핥기식 법과 제도가 만들어질 수도 있고요. 반대로 우리가 조금만 더 열심히 싸운다면 우리의 바람에 가깝게 사회대개혁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 조기 대선 국면에서 우리는 윤석열 파면에 앞섰던 이들이 완주할 수 있도록, 그리고 또 새로운 정부를 구축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합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진행한)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가 41%대의 득표율로 이겼습니다. (윤석열 탄핵 직후인) 지금은 그것보다 더 압도적으로 이겨야 한다고 봐요. 그래야 차기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을 거예요." - 박민주
"비상행동 집회 참가자 수가 연인원으로 집계하면 1000만 명이 넘어요. 우리가 서로를 지켜낸 것에 저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정말 감사해요. 아직 우리가 완수해야 할 과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정체화하고 어떻게 우리가 다음 세상으로 넘어가야 하는지 고민하면 좋겠어요. 이는 주최 측이나 다른 누군가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그리고 지난해 윤상현 국민의힘 의원이 했던 말, 기억하시나요? 같은 당 김재섭 의원에게 '내가 박근혜 탄핵 반대할 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 다 찍어줬다'고 말했잖아요. 그 말이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시민들이 끊임없이 증명해 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내란 세력들이 했던 일과 말들을 잊지 않을 거야. 바로잡아 나갈 거야'라는 감각을 계속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 김형남
내란 우두머리 혐의를 받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첫 형사재판이 열리는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들어서고 있다. 2025.4.14. 연합뉴스
"지금부터 검찰 모두 진술을 시작하겠다. 대통령 윤석열을 피고인으로 칭하겠다."(검찰)
12·3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 윤석열이 14일 '대통령' 수식어를 떼고 자연인 신분으로 자신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첫 공판에 출석했다. 그는 공판에서 79분의 모두진술과 그 외 의견진술 등 약 93분간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12·3내란 행위에 대해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라고 또다시 주장했다. 헌정질서를 무너뜨린 데 대한 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26년 검사 경력' 운운하며 검찰의 공소내용과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등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이 나오면 직접 끼어들어 반박하기도 했다.
"윤석열, 직업은 전직 대통령…"
"주소는 서초동 아크로비스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이날 오전 서울법원종합청사 417호 대법정에서 윤석열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첫 공판을 진행했다. 지난 4일 헌재가 파면을 결정한 지 꼭 10일 만이다. 앞서 윤석열은 지난 2월 20일 이 재판의 첫 공판준비기일에 구속 상태로 출석한 바 있다. 이날 공판기일은 준비기일과 달리 일부 예외를 제외하고 피고인 출석이 의무인 만큼 윤석열도 재판정에 나왔다. 지난달 7일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로부터 '구속 취소'라는 특혜를 받은 윤석열은 오전 9시48분쯤 청사 지하주차장을 통해 차량으로 입정했다. 재판부가 경호상 이유로 비공개 출석을 요청한 대통령경호처 신청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형사재판이 열리는 14일 윤 전 대통령이 탑승한 차량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2025.4.14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오전 10시 재판부가 개정 선언을 하면서 본격적인 공판이 시작됐다. 윤석열은 짙은 남색 정장에 붉은 넥타이를 매고 머리는 가지런히 빗어넘긴 모습으로 재판에 임했다. 윤석열은 재판부가 들어서자 일어나 고개 숙여 인사를 했다.
재판부는 개정 선언 뒤, 피고인의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인정신문 절차를 밟았다. 재판장이 "인적 사항을 확인하겠다. 생년월일은 1960년 12월 8일, 직업은 전직 대통령. 주소는"이라고 묻자 윤 전 대통령은 "서초 4동 아크로비스타 ○○○호"라고 답했다. 지난 2017년 5월 23일 파면 후 피고인 자격으로 첫 법정에 출석한 전직 대통령 박근혜는 재판장이 직업을 묻는 말에 "무직"이라고 답해 세간에 회자됐던 점과는 비교되는 장면이었다. 재판장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냐고 묻자 윤 전 대통령의 변호인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정 신문이 끝나자, 검찰이 윤석열에 대한 공소사실 요지 낭독을 시작했다. 검찰은 윤석열을 "피고인으로 칭하겠다"고 한 뒤 국정 상황에 대한 윤석열의 인식, 비상계엄 사전 모의와 준비 상황을 차례로 언급하면서 "피고인은 국헌문란을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은 위헌·위법한 포고령에 따라 헌법기관의 권능 행사를 불가능하게 하고 정당제도 등 헌법과 법률의 기능 소멸을 목적으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피고인은 군경을 동원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민주당사 등을 점거해 출입을 통제하고 한 지역의 평온을 해하는 폭동을 일으켰다"며 "검사는 이와 같은 피고인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에 형법 87조를 적용해 기소했다"고 말했다.
45년 만에 비상계엄이 선포됐고, 국회 본청에는 계엄군이 진입했다. 국회의 발 빠른 결의로 계엄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그 여파는 컸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과 수사기관의 수사를 동시에 받는 처지가 됐다. 사진은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월 3일 밤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국회의사당에서 계엄군이 국회 본청으로 진입하는 장면. 2024.12.17. 연합뉴스
"공소 사실 전체를 부인한다"
"평화적 대국민 메시지 계엄"
약 1시간 7분 동안 검찰의 공소사실 요지 낭독에 이어 피고인 쪽이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윤석열 변호인 윤갑근 변호사는 "공소사실을 전체 부인한다"면서 '야당의 예산 폭거' 등으로 계엄을 선포했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또 "대통령은 국회 봉쇄를 지시한 사실이 전혀 없고, 국회의원 정치인 등을 영장없이 체포, 구금하라는 지시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구체적 사실에 대해서는 왜 비상계엄을 했는지 (윤석열이) 잘 안다"면서, 발언 기회를 넘겼다.
윤석열은 검찰의 발표 자료(PPT)를 법정 내 모니터에 띄워달라고 한 뒤, 직접 협의를 부인했다. 그는 "저도 과거(검사 시절)에 여러 사건을 하면서 12·12, 5·18 내란 사건의 공소장과 판결문을 분석했지만, 이렇게 몇 시간 만에, 또 비폭력적으로 국회의 해제 요구를 즉각 수용해 해제한 '몇 시간 사건'을 거의 공소장에 박아넣은 것 같은, 이런 걸 내란으로 구성한 자체가 참 법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도 수사기관(에서 한 관계자) 진술이 많이 탄핵당하고 실체가 밝혀졌는데, 초기에 '내란 몰이' 과정에서 겁을 먹은 사람들이 수사기관의 유도에 따라서 진술한 게 검증 없이 (공소사실에) 반영이 많이 됐다"고 주장했다.
윤석열은 또 "계엄 사전 모의라고 해서 2024년 봄부터 그림을 그려왔단 자체가 정말 코미디 같은 얘기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야말로 장기집권을 위한 군정실시 같은 것을 목표로 하면 이것도 말이 될 수 있지만, 이번 12·3 비상계엄 조치에 대해서 아까 (검찰이) 투입병력이나 무장병력이라 (말)하는데, 군인들이 어디 가든 총을 들고 다니지만 절대 실탄을 지급하지 말고 실무장 안 한 상태로 투입하되 민간인 충돌을 절대 피하라 지시했다"면서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 계엄이지,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군정실시 계엄이 아니라는 건 계엄 진행 결과를 볼 때 자명하다"고 궤변을 늘어놨다.
윤석열 대통령이 25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 대통령 탄핵심판 11차 변론에서 최종 의견 진술을 하고 있다. 2025.2.25. 연합뉴스
윤석열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임명하며 비상계엄을 사전모의했다는 검찰의 지적에 대해서도 "계엄이란 건 늘상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합참본부 계엄과에 매뉴얼이 있고 여러 훈련을 하는 것"라면서, "계엄을 쿠데타, 내란과 동급으로 이야기하는 자체가 법적인 판단을 멀리 떠난 것이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는 총선을 앞둔 지난해 3월부터 여러 차례 '비상대권' '비상계엄' 등을 언급하며 군사조치에 대해 김 전 장관 등과 논의한 것으로 드러났지만, 사실 자체를 부인한 것이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11월 27일 또는 28일 경에, 그동안 저도 어떤 비상조치라는 걸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등 검사들 탄핵 발의 움직임을 보고 상당히 심각하다고 생각했다"면서 "헌법 상의 비상조치, 계엄선포라는 것을 통해서 주권자 국민들에게 이걸 확실하게 알리고 직접 나서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런 조치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계엄령이 아닌 이른바 '계몽령'이라는 주장을 형사법정에서도 반복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발동한다는 계엄령의 전제와 완전히 어긋난 것으로, 본인 스스로 자의적으로 군대를 동원했다는 걸 인정한 것과 다름 없다. 특히 헌재는 지난 4일 윤석열을 파면하면서 "계엄 선포 당시에는 검사 1인 및 방통위 위원장에 대한 탄핵심판절차만이 진행 중이었다"며 "국회의 권한 행사가 위법·부당하더라도,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피청구인의 법률안 재의요구 등 평상시 권력행사방법으로 대처할 수 있으므로, 국가긴급권의 행사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윤석열의 주장은 헌재의 선고 요지에서도 드러나듯 계엄의 요건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헌재 판결을 부정하듯 공판 내내 기존의 주장만 강조했다.
윤석열은 도리어 내란 책임을 군인들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그는 "예하 사령관이라던지 밑에 부대장들은 자기들이 평소 연습했던 그야말로 정말 비상 상황으로, 쿠데타는 아니지만 군정 같은 것들이 실시될 상황이라고 봤기 때문에 이 사람들은 저와 (국방부) 장관과의 커뮤니케이션한 것을 넘어서서, 그런 비상 매뉴얼을 가지고 조치를 취하지 않았나 싶지만, 그런 것들이 유혈 비상 사태로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병력 자체를 실무장하지 않고 소수의 병력을 투입하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군인들이 과도하게 행동해서 자신이 오히려 사태를 막았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김용현, 이진우, 여인형, 조태용.
"역대 국무회의 중 계엄 가장 활발히 논의"
"몇 시간 짜리 내란이 인류 역사에 있었나"
윤석열은 오전 공판에서 42분 모두발언을 한 데 이어 오후 공판에서도 37분 동안 나머지 모두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여러 차례 '난센스'라는 단어를 사용해가며 12·3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윤석열은 국무회의를 모아놓고 자신은 비상계엄을 선포하겠다며 국무회의를 불과 5분 만에 끝냈고 회의록도 남기지 않았다. 계엄의 절차적 요건조차 갖추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윤석열은 이에 대해 "계엄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국무위원들의 자기 의견을 아주 심도있게 들었기 때문에 역대 어느 국무회의보다 논의가 활발했다"면서 "비상조치, 긴급재정경제명령 이런 것과 관련된 국무회의는 더군다나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주례 국무회의처럼 할 수 없기 때문에 하자가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에 지체없이 통보 안했다는 점에 대해선, 방송으로 전국민 전세계에 알리고 즉시 국회의원과 관계자들이 국회에 들어오고 유관 단체사람들이 수천 명에 국회에 이미 들어와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서면으로 통보하고 할 필요조차 없었다"면서 "그럴 시간 없이 계엄을 심의에 즉각 들어갔고, (국회 해제) 결의가 난 후엔 바로 국무위원을 소집해서 도착하는 즉시 계엄해제를 했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계엄 해제를 의결한 뒤 3시간 30분이나 지나서 해제 발표했음에도 마치 즉시 조치한 것처럼 궤변을 늘어놓은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밤 긴급성명을 통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4일 새벽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에서 우원식 국회의장이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여야 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을 재석 190인, 찬성 190인으로 가결했다. 2024.12.4. 연합뉴스
또 윤석열은 자신이 내란 당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비상 입법기구'를 창설하라는 취지의 문건(쪽지)을 건넨 데 대해서도 "계엄 관련 국무회의 하면서 경제장관에게 이걸 준다는 거 자체가 난센스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 봉쇄에 대해서도 "헌재에 갈때 그 좁은 구청 건물만도 못한 헌재와 그 주변을 봉쇄차단하는데 1만 명 이상의 경찰 병력 들어간다. 초기에 300명, 1000명 넘는 인원이 나중에 왔다는데 그거 가지고 국회를 완전 차단하고 봉쇄하는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다. 난센스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거듭 "이게 무슨 마치 내란을 획책했는데 인력 부족해서 우리가 성공하지 못했다라고 설명하는 건 난센스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국회가 사법통제로서 계엄해제 결의를 했을 때엔 대통령이 그걸 즉각 수용해서 받아들이면 되는 건데, 전시사변이 아니면 계엄 선포하게 되면 그게 전부 내란이란 말이냐"면서 "방송으로 전국민 전세계 공고해놓고 국회가 그만두라 해서 당장 그만두는 그런 몇시간짜리 내란이란 게 도대체 인류 역사상 있는 건지 저는 되묻고 싶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모두진술을 마무리하면서도 "저 역시 26년간 검사 생활을 하면서 치열하게 공직 생활을 해왔다"며 "공소장, 구속영장을 보니 26년간 많은 사람을 구속하고 기소한 저로서도 도대체 무슨 내용인지, 뭐를 주장하는 건지, 이게 왜 어떤 로직(논리)에 의해 내란죄가 된다는 건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해 차기환 변호사와 대화하고 있다. 2025.1.21 [사진공동취재단] 연합뉴스
불리한 진술 나오자 말 끼어들기하며
"증인 신문에 정치적 의도있다" 방해
오후 재판에선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대령)과 김형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의 증인신문도 이뤄졌다. 조 단장과 김 대대장은 앞서 12·3 비상계엄 당일 국회로 출동했던 군 지휘관으로, 상부로부터 국회에서 '정치인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진술한 바 있다. 두 증인은 이날 형사법정에서도 동일한 진술을 이어갔다.
조 단장은 '(2024년 12월 4일) 0시 31분부터 1시 사이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으로부터 본청 내부에 진입해 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란 지시를 받은 게 맞느냐'는 검사의 질문에 "네"라고 답했다. 조 단장은 "(수방)사령관이 저한테 그런 임무를 줬고 저는 '일단 알겠다'고 답변한 뒤 사령관에게 다시 전화해 '이 역할에 대해 저희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되고 특전사령관과 소통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잠시 후 사령관이 저한테 전화해 '이미 특전사 요원들이 들어갔기 때문에 특전사가 의원들을 끌고 나오면 밖에서 지원하라'고 했다"며 "'지원하라'는 말은 밖에서 대치하는 사람들 쪽에서 길을 터주는 역할을 하라고 말해서 제가 '지원'이라 표현했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증인으로 출석한 김 대대장 역시 '이상현 특전사 1공수여단장으로부터 담을 넘어 의원들을 끌어내란 지시를 받은 걸로 보인다'는 검사 질문에 "네 그렇다"고 답했다. 그는 특히 "이 단장이 '대통령님이 문을 부숴서라도 끄집어내 오래'라고 했느냐"라는 질문에도 "네"라고 답했다. 김 대대장은 다만 정당한 지시인지에 대한 판단과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자신이 하달받은 임무를 부하들에게 내려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시민들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대상인데 왜 우리를 때릴까 의문이 들었다"며 "가만히 보니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제대로 된 의무를 수행하는 건가 의문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5일 국회사무처가 지난 3일 밤 계엄령 선포 후 국회의사당에 진입한 계엄군의 작전 상황을 담은 폐쇄회로(CCTV)영상을 공개했다. 사진은 계엄군이 국회 직원들의 저지를 뚫고 국회의사당 2층 복도로 진입하는 모습. 2024.12.5 [국회사무처 제공] 연합뉴스
윤석열은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들이 이어지자 재판장의 허락도 없이 말을 끼어들기도 했다. 윤석열은 조 단장 증언 중엔 "그 증인이 오늘 나와야 했는지 그렇게 급했는지 순서에 대해서도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이 있다. 헌재에서 (증언을) 상세히 한 거 같은데…"라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재차 진술 기회를 요청해 "오늘 같은 날 헌재에서 이미 다 신문한 사람을, 기자들도 와 있는데, 자기들 유리하게 굳이 장관을 대신해서 나오게 한 건 증인 신문에 있어서 다분히 (검찰의)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윤석열은 김 대대장의 증언 중에도 재판장을 향해 "실탄을 개인 화기에 집어넣고 군인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실무장하지 않은 채로 출동시킨 거고, 군대가 이동하면 어떤 상황이 생길지 몰라서 박스에 실탄을 넣어갔다"면서 "실무장하지 않았던 것을 실무장한 것처럼 나중에 차량에 실탄이 있지 않았냐는 건데 군대가 빈 총만 갖고 이동하는 건 어디에도 없다"고 항변했다.
재판부는 윤석열이 계속해서 발언하자 "다시 한번 말하는데 반대신문 통해서 그때그때 물어봐도 될 것 같다" "질문하는데 질문하는 사람 입장에선 맥이 끊기는 기분이 들 수 있다"고 여러 차례 지적하며 소송을 지휘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럼에도 윤석열은 증인신문을 마친 뒤에도 "오늘 했던 군 지휘관들은 사실 증인으로 내세울 필요도 없는 사람들 아니냐"고 거듭 주장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에는 상당히 초조함을 보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재판부는 조 단장과 김 대대장에 대한 반대신문 기회를 윤석열 쪽에 줬지만, 윤석열이 "다음 기일 때 하겠다"고 답하면서 다음 기일로 미뤘다. 윤석열 쪽 윤갑근 변호사는 공판 종료 후 퇴정하면서 "오늘 이뤄진 두 명의 증인은 계엄 사무에 있어서 최일선에 종사했던 사람이고 대통령과 직접 연관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오는 21일 오전 10시 두 증인을 불러 다시 신문을 이어갈 예정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고 있다. 2025.4.11 [공동취재] 연합뉴스
민주당 "뻔뻔한 윤석열, 주권자 국민 모독해"
진보당 "당당하면 지하주차장에 숨지 마라"
윤석열이 첫 공판에서부터 혐의를 전면 부인하자, 야권에서는 일제히 비판이 쏟아졌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윤석열이 오늘 처음 나온 형사 재판 법정에서 뻔뻔하기 이를데 없는 태도로 내란죄를 부정했다"며 "헌법정신과 주권자에 대한 모독이고 헌법재판소 판결에 대한 정면 부정"이라고 했다. 한 대변인은 "(윤석열은) '평화적인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 '계엄은 늘 준비해야 하는 것' '몇 시간 사건을 내란이라니' 등 셀 수도 없는 궤변으로 헌법재판소 판결을 정면 부정했다"며 "자숙은커녕 위헌적 불법 계엄으로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짓밟고도 처벌을 피하려는 법꾸라지 행태로 국민을 조롱했다"고 비판했다.
한 대변인은 "더욱이 내란 수괴가 형사재판 법정을 헌법정신과 주권자를 모독하는 장으로 만들고 있는데 재판부는 그런 내란 수괴를 감싸고 있으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구속 취소도 모자라 재판정에 지하 통로로 출석하게 해주고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도 감춰주는 특혜를 받으니 대한민국의 법치주의가 얼마나 우습겠냐"고 했다. 그는 "내란 수괴 앞에서 흔들리는 법치주의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윤석열의 망언을 지켜보는 국민은 가슴에서 천불이 난다"며 "피고인 윤석열에게 경고한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국민은 위헌적 불법 계엄으로 주권자의 신임을 배반한 내란 우두머리 피고인이 법정에서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궤변을 늘어놓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
김보협 조국혁신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내란수괴 윤석열이 오늘 첫 형사재판에 출석해 내란죄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윤석열은 헌법재판소 파면 선고에 승복하지도 않았고, 넉 달 넘도록 나라를 어지럽힌 데 대해 국민께 사과한 적도 없다. 오늘도 진술이랍시고 넋두리만 늘어놨다"면서 "윤석열은 오늘 재판에서도 '몇 시간 사건' 타령을 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허위 주장"이라고 비판했다.
김 수석대변인은 "(윤석열은) 지난해 12월 3일 그 끔찍했던 밤을 기억하는 온 국민을 바보 취급하고 있다. '내란'이 아니라 '내란 몰이'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내란수괴 윤석열과 그의 변호인단은 참으로 미련하고 뻔뻔하다. 보통 사람들은 한번 주장한 것이 먹히지 않으면,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지 않는데 이 자들은 헌재에서 판판이 깨진 주장을 내란 재판에서 다시 반복하고 있다"면서 "헌재 탄핵재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은 황당한 변론이 형사재판에서는 통할 것이라고 믿지 않고서야 하기 힘든 짓"이라고 혀를 찼다.
그는 "윤석열 변호인단은 변론 중에 '피고인'이라는 정식 호칭 대신 '대통령께서'라고 말했다. 검찰은 정정해달라 재판부에 항의하고, 판사는 소송지휘권을 이용해 부적절한 호칭을 사용하지 말라고 경고했어야 한다"며 "윤석열은, 국민에게 위임받은 권력을 악용해 국민께 총부리를 겨눴다가 파면당한 전직 대통령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비상행동 관계자들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 엄벌 및 재구속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5.4.14. 연합뉴스
홍성규 진보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헌정파괴범 주제에 마치 개선장군이라도 되는 냥 '다 이기고 돌아왔다'던 윤석열은, 재판 첫 날에도 오전 42분, 오후 41분간 총 83분에 걸쳐 차마 들어주기 힘든 궤변을 쏟아냈다"며 "그토록 억울하다면, 그토록 당당하다면, 왜 굳이 지하주차장으로 숨어들어가 비공개로 출석한다고 했느냐, 떳떳하게 법원청사 정문으로 왜 걸어 들어가지도 못하느냐"고 따졌다.
홍 수석대변인은 "끔찍한 흉악범이 파렴치에다 졸렬하기 또한 짝이 없다"면서 "이 내란수괴의 뻔뻔함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이야말로 바로, 온 국민의 분노에도 불구하고 내란범의 탈옥을 허가했던 지귀연 재판부의 '전례 없는 특혜'"라고 지적했다. 또 "지하주차장 출입 요청을 받아들인데 이어 영상기자단의 촬영 허가 신청까지 불허했다"며 "역대 대통령 모두 재판 때마다 법정 촬영이 이뤄졌던 것에 비춰보면, 가히 전례 없는 오직 윤석열만을 위한 특혜"이라고 했다.
홍 수석대변인은 "윤석열과 조금도 다를 바 없는, 한통속 법비(法匪)들이 여전히 곳곳에서 활개치고 있다"면서 "사회 곳곳에 도사린 내란세력을 철저히 척결하고 단죄해야 한다는 우리 국민들의 명령이, 사법부 또한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명백한 이유"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세월호 다큐멘터리 <침몰 10년, 제로썸>(이하 제로썸)'이 4월 2일 전국 상영을 시작한 후 일주일 만에 4000명 가까이 몰리며 관객 수 1만명을 돌파했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로 보면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영화가 상영을 지속한다면 더 많은 관객이 몰릴 것은 당연하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영화에 대한 비판이 시작됐다. 정상적인 비판은 대응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비아냥과 영화에 대한 '저주'에 가까운 발언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성숙한 시민의 자세는 분명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이런 비난에 일일이 대응할 이유도 찾지 못한다.
비난이 아닌 비판에 대해서는 필자로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는 책임을 느낀다. 세월호를 취재하며 외력의 가능성을 제시해 왔기 때문이다. 필자는 기자 신분으로 네덜란드 마린 2차(침수실험), 3차(외력실험) 실험에 연이어 참관했다. 기자 중 목포 MBC 기자와 필자 외에 두 실험에 연속 참관한 기자는 없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취재 현장을 동력으로 외력에 관한 기사를 지속해서 쓸 수 있었다.
3년 전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왜 '내인설‘ 기각했나
최근 내인설을 주장하는 측은 <제로썸>을 비판하며 이 영화가 의도적으로 사실을 비틀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비판을 하나씩 뜯어보면 과연 그런가라는 반문이 제기된다.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 2017~2018년)의 열린안(외력의 가능성 제시)과 내인설(배 자체의 문제 제기)을 이어받아 조사를 진행한 마지막 세월호 조사 기구인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 2018~2022년) 종합보고서는 명확한 결론 하나를 내리고 있다. 내인설 기각이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화 주장은 내인설을 지탱하는 기둥과 같은 것이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주장은 세월호 방향타가 최대 35도까지 우현으로 쏠려 배가 좌현으로 넘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해 사참위가 상당 부분 시간을 할애한 것도 고착 여부를 정리하지 않으면 세월호 진상규명에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세월호 모형사진. 이용우 기자 사진
노력의 결과 사참위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사실과 거리가 멀다고 결론 내렸다. 사참위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사참위는 복원성이 취약한 세월호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을 계기로 급히 우선회하며 좌현으로 기울었다는 내인설 보고서의 설명 중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우선회를 유발했다는 부분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표현에서 '매우' 낮다는 표현은 내인설 주장에서 일말의 가능성조차 남기지 않겠다는 표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사참위는 밸브 고착 현상으로 우현 전차가 일어났다면 왜 침몰 직전 방향타가 우현이 아닌 '좌현 8도'에 있었는지 내인설은 추가 설명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부분이 설명되지 않으면 문제는 굉장히 심각해진다. 단순히 '매우 낮다'라는 표현을 넘어서는 실체적 의혹, 즉 외력설의 가능성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사참위는 방향타 '좌현 8도'에 대해 다양한 조사를 했고 선원이 고착이 발생한 타기장치를 정지시키고 정상 상태의 타기 장치를 가동하는 긴급 행위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게 다수의견이라고 했다. 대법원이 제 3항해사에게 업무상 과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점도 제시했다. 결국 우선회를 한 세월호의 방향타 '좌현 8도'가 설명되지 않으면 이는 외력설을 증거하는 여러 단서 중 하나가 되고 만다.
더욱이 2018년 선조위가 마무리될 때 필자가 내인설을 주장한 한 위원에게 방향타 좌현 8도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때 해당 위원은 "그 부분이 설명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내인설 주장자들도 그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사참위는 다향한 근거들을 제시해 가며 '밸브 고착화 기각' 즉 내인설 기각을 내놨다. 필연적 귀결이다.
남아있는 참사 원인은 '외력' 가능성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외력의 증거로 제시한 것은 상당히 많고, 그 내용 또한 적지 않게 길다. 여기에서 모든 걸 다 설명하고 싶은 욕심이 크지만, 독자들이 읽기에 버거울 것이 걱정돼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간다. 가장 먼저 '충격음 발생 후 세월호 기울기 시작'이다. 화물의 이동 전에 충격음이 발생했고, 그로 인해 세월호가 기울었다는 주장은 이미 많이 제기되어 왔다.
사참위는 사고 당일 8시 49분 31초까지 녹화된 선내 CCTV 영상들을 분석했을 때 이 시점까지의 영상에서 화물이 이동하는 장면이 '눈에 띄게 관찰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43초경부터 C갑판 랙카 차량이 전도됐고, 45~48초 사이 C갑판 선적 화물 대부분이 움직였다. 45~48초는 선체 기울기가 빠르게 30도를 넘어가는 때였다.
사참위는 대량의 화물 이동이 일어난 45~48초 무렵에 두 차례의 높은 횡경사(옆으로 넘어지는 각도 속도) 속도 피크(peak)가 나타난 점에 주목했다. 이 중 첫 번째 피크는 초당 3.6도였다. 48초는 세월호 기울기가 무려 약 40도까지 순식간에 기운 상태였다. 이에 대해 사참위는 명확히 보고서에 그 원인을 밝혔다.
"대량 화물 이동 이전에 외력 같은 다른 요인의 작용에 의해 일어났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양된 세월호 선체가 직립 후 파단 모습. 이용우 기자 사진
세월호 출항 당시 복원성(GoM)을 열린안은 0.62m, 내인설은 0.406m로 보고 있다. (마린 3차 실험에서 모형을 통해 표류하는 세월호의 복원성을 구했을 때 나온 수치가 심지어 0.56~0.58m다.) 우현 급전타가 나온다 해도 복원성 0.6으로는 20도 이상 기울기가 구현되기 어렵다는 주장은 선조위 초기부터 제기됐다. 앞서 말했지만 우현 전타 가능성은 '매우 낮다'가 결론이다. 그럼 배는 왜 좌현으로 급격히 기울었을까. 복원성 문제가 아니라 다른 것이 원인이지 않을까.
최근 필자와 통화한 열린안 관련 고위 관계자는 "세월호 복원성으로는 배는 넘어지지 않는다"라며 "항해하는 데 충분한 복원성"이라고 말했다. 사참위도 종합보고서에 "세월호의 급격한 횡경사에 외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보았다"라고 적었다. 이런 이유로 '세월호 복원성은 나빴다'라는 모호한 표현보다 '사고가 날 만큼 나쁘지 않았다'라는 정확한 표현을 해줄 필요가 커진다.
문제는 세월호에 발생한 충격음이다. <제로썸>도 생존자를 통해 이 부분을 지적한다.
209번 차량 블랙박스에 녹음된 '쾅' 하는 충격음은 31~36초에 7회나 연달아 녹음됐다. 이후 세월호 기울기는 20도 이상으로 커진다. 열린안에 따르면 38~39초경 차량 블랙박스 3대에서 '기익'하는 소리가 잡힌다. 이때는 화물이 움직이기 전이었다. 여기에 더해 세월호 선수 방향은 37초부터 불과 14초 동안 180도에서 243도로 급격히 우선회 했다.
이 모든 걸 두고도 과연 외력이 음모론으로만 남아 있어야 할까. 핀 안정기의 과회전은 이미 충분히 외력의 가능성으로 제시됐고, 이를 조사한 전문가의 인터뷰는 <제로썸> 영화에 실려있다. 핀 안정기실 격납고 부위의 외관 변형과 손상에 대해서도 사참위 종합보고서는 "인양 과정으로 인한 손상 가능성이 없는 독특한 손상 흔적을 발견했다"고 했다. 이 손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무작정 외력이 없었다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도 이런 부분 때문이다. 다만 사참위는 이와 관련한 외력 힘의 크기, 침수 영향 등 조사에서는 실제 사고와 정확히 떨어졌다는 결론은 내리지 못했다.
사참위 종합보고서에 "세월호의 급격한 횡경사에 외력이 작용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쓰인 부분(위)과 "세월호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을 계기로 급히 우회전하며 좌현으로 기울었다는 내인설 보고서의 설명 중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우선회를 유발했다는 부분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쓰인 부분(아래). 이용위 기자 사진.
다큐 <제로썸>이 제기하는 질문들을 들어보라
사참위 결론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우선회와 횡경사를 유발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이다. 외력과 관련해서는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했다. 다만 사참위는 이에 덧붙여 "(외력 외에)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하여 외력이 침몰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라고 했다.
이 결론 때문에 내인설 주장자들은 좌절해야 했고, 외력설 주장자들은 분노해야 했다. 하지만 외력설은 기각되지 않았다. 사참위는 외력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정확히 했기 때문이다.
<제로썸>은 이런 바탕에서 세월호 11주기에 나왔다. 영화는 우리가 자칫 보고서에만 함몰될 수 있는 위험을 제거해 준다. 진보든, 보수든 정권을 가진 자들이 보여준 이상한 행동들을 지적한다. 미국이 취한 행동도 따져볼 법하다. 진상규명에 무엇을 배제할 이유는 없다. 이를 통해 잠수함에 대해 생각의 여지를 제공한다.
잠수함의 선박 충돌 사고는 곳곳에서 일어난다. 2001년 하와이 앞바다에서 떠오르는 미 핵 잠수함과 일본의 한 수산고교 실습선이 충돌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잠수함 충돌 사고가 있었다. 1998년엔 미 해군 7함대 소속 7000톤급 핵잠수함 라졸라함이 우리 어선과 충돌했고 어선은 침몰했다. 사고는 해당 잠수함이 작전을 마치고 진해항에 입항 중에 난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부산 가덕도 인근 해상에서는 한국 해군 잠수함과 노르웨이 상선이 충돌했다. 잠수함 충돌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외력 가능성은 과학적으로 충분히 제시됐다. 일각에서는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검증받지 못했다고 하는데, 검증은 보고서 발표 이후에도 충분히 할 수 있고 그렇게 되고 있다. 내인설 주장자들이 세월호에도 헌법재판소 같은 역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한 비판을 보면서, 오히려 사참위는 헌법재판소 같은 역할을 했고 그에 대한 평가는 사회에 맡긴다라고 맞받아치고도 싶다.
<제로썸> 제목이 모욕적이라고 그들은 주장한다. 조사관들이 본인들의 명예와 수많은 비판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많은 증거를 따져 만든 결론을 일단 무시하고 보는 태도가 더 모욕적으로 느껴진다. 외력 증거들 앞에서 잠수함 실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잠수함을 부정하는 태도는 마치 범죄 현장에 범인이 없으니 범죄를 부정하는 것처럼도 들린다. 세월호 진실을 정말로 덮으려는 태도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비상계엄을 선포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이 14일 첫 형사재판에 출석한다.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지난 4일)으로 민간인 신분이 된 이후 열흘 만이다. 그는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위험에 빠뜨리고도 반성의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후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에 도착한 뒤 주민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어차피 뭐 5년 하나 3년 하나 (다르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동아일보는 “기이한 정신승리의 극치”라고 진단했고 한겨레는 “극단적인 무책임과 비정상적인 자아도취를 드러냈다”고 비판했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 당한 뒤 첫 공개 재판에서 어떤 발언을 할지 주목된다.
이와 함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는 지난 11일 KBS와 방송영상기자단의 윤 전 대통령 법정 출석 장면 촬영 요청을 불허했다.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윤 전 대통령 구속을 취소한 데 이어 편파적으로 재판 운영을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다 이기고 돌아왔다”
동아일보는 사설 <“다 이기고 돌아왔다” “5년 하나 3년 하나”… 기이한 ‘정신승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사저로 돌아간 모습을 두고 “파면된 지 1주일 만인데,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마치 개선장군이 금의환향하는 듯한 모습이었다”며 “12·3 비상계엄 이후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 드러난 윤 전 대통령의 기괴한 현실 인식에 국민은 이미 이골이 날 지경인데, 파면 후에도 여전한 비현실적 억지 주장은 또다시 할 말을 잃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윤 전 대통령이 아직도 사과나 승복의 표현을 밝히지 않는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의 언사에선 지난 4개월간 나라와 국민에게 끼친 해악과 고통에 대한 일말의 반성은커녕 한때 국가 최고지도자를 맡았던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책임감도 찾아보기 어려웠다”며 “책임을 회피한 채 자기 위안을 통해 합리화하려는 이른바 ‘정신승리’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고 진단했다.
▲동아일보 2025년 4월14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오로지 싸워서 이기는 것 외에 어떤 양보도 타협도 몰랐던 검사 출신 대통령은 우리 정치를 황량하게 만들었다”며 “한데 그것도 모자라 앞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딛고 바로잡아야 할 자신의 실패마저 부인하며 승리라고 우기는 심산은 과연 무엇인지 씁쓸할 따름”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법정촬영 불허, 비공개 출석 허용 비판 확산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가 법정 내 윤 전 대통령 촬영을 거부한 당일 서울고법도 윤 전 대통령이 지하주차장을 통한 법원 비공개 출석 요청을 수용했다. 경향신문은 사설 <윤석열 인권 챙기는 법원, 피해자 국민 알권리는 안중에 없나>에서 “형사재판 피고인이 지하 주차장을 통해 법정에 출석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정 내 촬영을 불허한 재판부를 두고도 이 신문은 “모두 국민 법감정과 관례에 반하는 비상식적 조치들”이라고 비판했다.
과거 전직대통령 재판 촬영을 허용했던 전례를 두고도 경향신문은 “윤석열의 12·3 내란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범죄보다 사안이 훨씬 중하다”며 “그런데도 윤석열 내란 사건 재판부는 아무런 이유도 밝히지 않고 법정 촬영을 불허했으니 전례 없는 특혜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의 인권만 중요하고 내란 피해자인 국민 알권리는 안중에 없는 건지 재판부에 엄중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경향신문 2025년 4월14일자 사설
“사법부 시작부터 공정성 의심, 엄중한 사태”
한겨레도 사설 <‘피고인 윤석열’ 또 특혜, 재판 공정성 신뢰 깨졌다>에서 “윤 전 대통령의 구속 취소 결정을 내린 재판부가 잇따라 예외적인 조처로 특혜를 베풀고 있다”며 “재판 시작도 전에 공정성에 대한 신뢰가 깨지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해당 재판부를 넘어 사법부 전체가 신뢰 위기에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겨레는 “현 재판부가 윤 전 대통령 쪽에 경도된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하기에 충분하다”며 “헌법 수호와 직결된 중대한 재판이 이렇게 시작부터 공정성을 의심받는 것은 사법 신뢰를 근본부터 흔드는 엄중한 사태다.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기 전에 재판부는 물론 사법부 전체가 각성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동아일보도 사설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만 적용되는 잇단 예외 조치에 ‘특혜 아니냐’는 논란이 이는 게 무리는 아닐 것”이라며 “허언만 남은 전직 대통령에게 이제 남은 것은 사법 절차에 따른 엄정한 단죄”라고 썼다.
한덕수 대선 출마 간보기 비판 확산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차출론(대망론)을 두고 신문들도 비판하고 나섰다. 동아일보 정용관 논설실장은 동아일보 34면 ‘정용관 칼럼’ <한덕수 출마론… 얼마나 설득력 있을지>에서 한 대행이 이완규 함상훈 헌법재판관을 지명한 것을 두고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상실한 대통령의 권한대행이 그 대통령을 대신해 고유의 인사권을 행사할 것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6년 임기’의 재판관을 ‘60일 권한대행’이 정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것이고, 누가 당선되든 후임 대통령의 권한을 침해한 것으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논설실장은 “한 대행이 거대 야당에 각을 세우며 맷집이 세진 듯하지만 위험한 도박에 다걸기를 할 정치적 뱃심을 갖고 있을지엔 ‘글쎄’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며 “윤 전 대통령과 3년 가까이 한배를 탔던 탄핵 정부의 2인자라는 점은 ‘본질적’ 한계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내 권력을 유지하려는 친윤 주류의 도구로 이용되고 말 것이란 관측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2025년 4월14일자 34면
한겨레도 사설 <한 대행, ‘출마 간보기’ 멈추고 ‘위헌 지명’ 즉각 철회해야>에서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선 출마 간보기’ 행태가 길어지고 있다”며 “대선을 51일 앞둔 13일에도 가타부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겨레는 “출마와 불출마 중 어느 쪽이 일신의 안위와 영달에 유리한지 저울질하느라 과도기 국정 공백과 혼란에 대한 국민 우려에는 눈을 감은 것인가”라며 “한줌 기득권을 지키겠다고 국정 혼란을 부추기는 일도 서슴지 않는 무책임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특히 한 대행이 출마한다 해도 이 신문은 “어차피 대다수 국민이 ‘내란 방조’ 책임이 큰 한 대행을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진단을 내놓았다.
오세훈 유승민 불출마 국민의힘 국정실패 책임 만회하려면
6·3대선을 50일 앞두고 주요 대선주자들의 잇단 불출마와 경선룰을 둘러싼 갈등이 대선 국면의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불출마, 유승민 전 의원은 경선 불참을 선언해 국민의힘 경선 구도에 지각변동이 발생했다.
조선일보는 사설 <중도 확장 가능성 주자들 잇단 국힘 경선 불출마>에서 “비상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정부·여당에 등을 돌린 중도층의 마음을 다시 얻지 못하면 대선 후보를 선출하더라도 본선에서 민주당과 의미 있는 경쟁조차 기대하기 힘들다”며 “그러나 현재 국힘 내부는 계엄과 탄핵에 대한 일반 대중의 여론과는 반대편에 선 쪽이 다수를 형성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조선일보는 “오 시장이나 유 전 의원 같이 중도층 유권자에게 호소력을 가지는 주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공간이 좁혀지고 있다”며 “대선 주자들의 잇따른 불출마에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을 국힘 대선 후보로 내세우자는 ‘한덕수 차출론’도 영향을 미쳤다”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 부재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을 지휘하는 한 대행을 대선에 참여시키는 것이 국정에 도움이 될지 의문”이라며 “경선이 시작되려는 마당에 외부에서 대안을 찾는 것은 당내 주자들의 경쟁력을 스스로 깎아내리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 2025년 4월14일자 사설
한국일보도 사설 <국민의힘 경선, 보수 쇄신과 재건 경쟁돼야>에서 오세훈 시장과 유승민 전 의원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일부 주자의 중도하차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며 “대선 가늠자로 불리는 중도층에선 국민의힘 주자에 대한 선택지가 그만큼 줄어든다는 얘기”라고 분석했다. 한국일보는 “파면된 대통령과의 단절, 정책 비전 제시 등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마땅한 노력을 보여주지 않고 있어서”라며 “윤석열 정부의 국정 실패 책임을 만회하려면 건전한 보수로 거듭나려는 의지와 청사진을 제시하는 게 순리”라고 지적했다. 한국일보는 “대선 후보 경선을 상대당 후보를 겨냥한 네거티브로 허비할 게 아니라 보수 쇄신과 재건 경쟁을 통해 외연 확장의 주춧돌을 놓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민주당이 6·3 대선 후보를 당원 투표와 여론조사를 50%씩 반영해 선출하기로 했다.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 110만여 명과 민주당 지지층과 무당파 국민 100만명의 여론조사를 선거인단 삼아 뽑는 것이다. 2002년 대선 이후 일반 국민도 경선에서 한 표를 던지는 방식을 택했는데 이번엔 여론조사로 대체됐다. 일반 국민도 투표에 참여해야 한다는 비명계 요구는 묵살됐다. 당원 투표와 ‘역선택 방지’ 여론조사로만 후보를 뽑으면 민주당을 장악한 이 전 대표가 절대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제21대 대통령선거에 출마를 선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비전 선포 및 캠프 인선 발표를 하고 있다. 2025.4.11 ⓒ뉴스1
6.3 조기대선 50여일 남기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50%에 육박하는 지지율로 압도적인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여론조사가 나왔다. 차출론이 끊이지 않는 한덕수 국무총리는 8.6%로 보수진영 내에서 상당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13일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실시한 4월 2주차 주간 여론조사 결과 차기 대선에서의 정권교체 의견은 58.7%, 정권연장은 35.3%로 나타났다. 두 의견 간 격차는 23.4%p로 전주(19.9%p)보다 3.5%p 더 벌어졌다.
특히 중도층 내에서도 정권교체론(65.8%)이 정권연장론(26.7%)보다 약 40%p 가까이 우세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정권교체가 우세했는데, 관심을 모으는 부산·경남(PK)에서도 정권교체가 51.1%로 정권연장 43.6%를 앞섰다. 대구·경북(TK)에서만 정권연장이 50.9%로 정권교체 44.5%보다 많았다.
정당 지지율에서도 더불어민주당이 46.7%를 기록해 33.1%의 국민의힘을 13.6%p 차이로 앞섰다. 3주 연속 오차범위 밖에서 민주당이 우세를 보였다. 이어 조국혁신당 5.6%, 개혁신당 2.7%, 진보당 0.8%, 기타 정당 순으로 조사됐다.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 조사에선 이재명 전 대표가 48.8%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10.9%로 2위였고, 처음 조사 대상에 포함된 한 권한대행이 8.6%로 3위에 올랐다. 한 권한대행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21.6%를 얻어 27.0%의 김 전 장관을 바짝 추격했다. 무당층에선 11.2%로 김 전 장관(11.1%),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10.1%) 등을 앞섰다.
차기 대선 후보 적합도는 이어 한 전 대표 6.2%, 홍준표 전 대구시장 5.2%, 이준석 의원 3.0%, 유승민 전 의원 2.7%, 오세훈 서울시장 2.6%, 안철수 의원 2.4%, 김경수 전 경남지사 1.3%, 김동연 경기지사 1.2%, 김두관 전 의원 0.9% 순이었다. 다만 오 시장은 12일 대선 불출마를, 유 전 의원은 13일 경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대선주자 가상 양자 대결에서도 이 전 대표가 주요 보수 주자에 압승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전 대표 54.2%, 한 권한대행 27.6%로, 이 전 대표 54.3%, 김 전 장관 25.3%로 나타났다. 또한 이 전 대표 54.4%, 홍 전 시장 22.5%로, 이 전 대표 54.0%, 한 전 대표 18.3%로 조사됐다.
이번 조사는 리얼미터가 지난 9일부터 11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506명을 대상으로 무선(100%) 자동응답을 활용해 진행했다. 응답률은 4.7%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디어스=이영광 객원기자]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을 복원하겠습니다.” 지난해 ‘5만 전자’ ‘AI시대 늦장 대응’ 등 삼성 위기론이 불거지자 삼성전자 경영진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내놓은 약속이다. 그런데 트럼프 시대에 들어서 최근 미국 상호관세 문제까지 부상하며 위기 요인은 더욱 커진 듯하다. ‘삼성 위기론’의 실체는 무엇이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경제 문제 취재하는 서영민 KBS 기자가 지난 2월 『삼성전자 시그널』이란 책을 출간했다. 지난해 KBS [시사기획 창]에서 방송된 <삼성, 잃어버린 10년>을 만든 서 기자는 다큐에 미처 담지 못한 이야기와 추가 취재한 내용을 책에 담았다. 삼성전자의 두 번 사과 이야기로 시작한 『삼성전자 시그널』을 통해 서 기자는 삼성의 위기를 분석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전망한다. 『삼성전자 시그널』 출간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지난 2일 서 기자와 전화 연결했다. 다음은 서 기자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삼성전자 시그널- 2025년 삼성의 운명이 결정된다〉 표지 이미지(서영민 저/한빛비즈)
먼저 『삼성전자 시그널』 출간 소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월 중순에 책이 나와서 이제 한 달 반 정도 됐습니다. 처음에는 엄청 신경 쓰이더라고요. 매일매일 인터넷 서점 들어가서 몇 등 했는지 살폈는데 지금은 시간이 좀 지났잖아요. 초반에 매일 아침에 일어나 일수 도장 찍듯이 보니까 약간 힘든 면이 있었는데 요즘은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책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출판사에서 쓰자고 연락이 왔어요. 작년에 삼성전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는데 방송 이후 다양한 매체 통해서 이 얘기를 계속하게 됐습니다. 많은 분이 공감하는 얘기였기 때문에 책 출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삼성이라는 기업에 대해 쓰게 된 이유는 2022년 GOS(Game Optimizing Service, 게임 최적화 서비스)사태였습니다. 그때 쓴 기사가 굉장한 반응을 일으켰어요. 그래서 조금 더 써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자님은 삼성에 관심이 많았나요?
“삼성에 관심을 가졌다기보다 대한민국 경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업계라고 부르는 곳에 출입해 본 적이 별로 없고, 대부분 경제부 생활을 재정·금융 쪼개서 했습니다. 그래서 삼성이라는 개별 기업에 관심을 가진 적이 많진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시경제와 삼성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이 둘이 다른 것이 아니고 하나가 다른 하나를 설명해 주는 관계라는 사실이 어느 순간 계속해서 머릿속에 머물게 됐습니다. 그런 와중에 글 쓸 기회가 있었고 관심을 키우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시그널』 출간한 서영민 KBS 기자
부제가 ‘2025년 삼성의 운명이 결정된다’인데 어떤 의미일까요?
“실은 출판사에서 정한 부제입니다. 출판사에서는 2025년에 책을 판매해야 하니 ‘2025년’의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 했고, 부여하고 나니 저도 이 책의 내용과 상당히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삼성이 지난해에 굉장히 많은 어려움을 겪었죠. 그 결과 2024년 10월에는 DS 부문장이 나서서 사과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으로 전개됐어요.
만약 2025년에도 2024년과 똑같은 식의 성과밖에 못 거두면 굉장히 참혹해지기 때문에 2025년은 달라져야 하고, 성과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든 아니면 앞으로 어떤 가능성이 있다는 걸 시장에 보여주든 둘 중의 하나는 해야 하는 거죠. 그런 측면에서 삼성에게 올해는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일단 어떤 기업이든 기본적으로 사람과 같이 생로병사를 겪습니다. 100년 가는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삼성은 아마도 이병철 회장이 창업했을 때를 기준으로 한다면 이미 한 80년 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업의 생로병사를 겪을 만큼 겪은 기업이에요. 근데 시간이 지났다고 다 망하는 건 아니잖아요. 어려워지는 기업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어려워지는 이유를 기업 내부의 운영 차원에서 제 책에도 썼습니다. 짐 콜린스의 이야기들을 인용하자면 자만한다거나, 엄청난 투자를 하는데 그 투자가 삽질이 된다거나, 아니면 어떤 의미에서 기업의 본령이 있다면 IT 기업이니까 기술 혁신이 중요한데 기술 혁신 말고 딴생각을 했다거나, 아니면 어떤 전략적인 실패가 있다거나 이런 종류의 실패가 있겠죠.
삼성의 경우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지정학적으로도 얘기해요. 예를 들면 미국과 일본이 경쟁하던 80년대 후반 같은 경우 미국에서 일본을 누르려고 하죠. 그런 식의 지정학이 삼성에 작용한다면 엄청 불리한 일이에요. 근데 지금의 지정학은 그런 지정학은 아닌 것 같아요.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기 위해서 중국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하고, 중국에 좋은 장비나 좋은 수입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 상황인데요. 이 정도의 상황이 삼성의 운명을 결정할 상황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삼성은 장사 잘하면 됩니다.”
KBS 〈시사기획 창〉 ‘삼성, 잃어버린 10년’ 방송 화면 갈무리
그럼 다른 요인이 있나요?
“근본 문제는 삼성이 기술적으로 매우 위험한 지경에 있는 것 같다는 겁니다. 기술 기업인데 ‘기술적’으로 위험해요. 기술적으로 위험하다는 게 한 부분이 아니고, 삼성이 영위하는 가장 중요한 사업부들도 다 위기에 있죠.
이를테면 스마트폰은 지금 성숙 단계에 있는 사업입니다. 근데 성숙 단계에 있는 사업에서 애플은 끝없이 수많은 이익을 창출해 냅니다. 많이 팔 뿐만 아니라 판 뒤에 이익도 많이 창출해 내요. 근데 삼성은 많이 팔기는 하는데 여기서 이익이 애플과 비교하면 현저하게 낮은 이익이 납니다. 그 속을 들여다보면, 삼성이 하드웨어는 만들지만 소프트웨어는 건드리지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요즘 애플의 매출 특징과 재무제표상의 특징을 분석해 보면 판매 대수가 늘어나지 않는데 매출은 계속 늘어나고 영업이익도 늘어납니다. 그건 다 소프트웨어에서 나옵니다. 앱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는 이 생태계에서 나오는 수익 그리고 기계에 대한 보험료 수입, 라이센스 수입, 기타 서비스라고 부르는 물리적인 물질을 만들지 않는 데서 나오는 수익이 어느 정도냐면 지난해 ‘서비스’라고 분류된 회계 기준으로 거기에서 나온 매출이 100조가 넘습니다. SK하이닉스의 전체 매출보다 많고 애플 안에서도 아이폰을 제외한 다른 하드웨어 판매 매출을 합친 것보다 서비스 부분 매출이 많습니다. 삼성은 이 부분이 통째로 없어요.”
왜 그렇죠?
“갤럭시 운영체제가 안드로이드인데 통째로 구글 소유예요. D램 같은 경우 짧게 말씀드리자면 HBM을 못 만들고 있습니다. 아직 5세대 HBM3 제품을 엔비디아에 납품하지 못하는 상태죠. 기술적으로 떨어진 겁니다. 기술적으로 떨어졌다는 건 D램을 만들긴 만드는데, 나중에 조립해서 HBM을 만드는 걸 못 한다고 해석될 여지가 있죠. 작년 초까지만 해도 ‘D램 자체는 괜찮은데 HBM을 못 만드는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HBM은 쉽게 말하면 D램이라는 벽돌을 8~12개 수직으로 쌓은 겁니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 그리고 올 상반기가 될수록 분명하게 드러나는 게 D램 벽돌 하나하나의 성능이 SK하이닉스만 못하다는 사실입니다. HBM3E라는 똑같은 5세대 HBM에 들어가는 D램이 SK하이닉스는 10나노대 5세대 제품이고 삼성전자는 4세대 제품입니다. 그러니까 삼성전자가 한 세대 더 전 모델을 써서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된 이유는 D램의 수율(양품비율)이나 아니면 새로운 D램을 만들어내는 개발 역량 측면에서 하이닉스에 뒤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D램의 경쟁 위기인 겁니다. 근데 D램은 삼성의 ‘본체’입니다. 스마트폰은 현금을 창출해 내는 상자 정도 되는데, D램은 본진입니다. 사이클이 좋을 때는 엄청난 영업이익을 내는 데고, 여기서 생긴 돈으로 삼성은 늘 다른 데 투자해서 몸집을 불려서 성공해 왔습니다. 삼성은 미래에도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데 문제가 생긴 겁니다.”
KBS 〈시사기획 창〉 ‘삼성, 잃어버린 10년’ 방송 화면 갈무리
삼성이 시대를 못 따라가는 걸까요?
“시대를 못 따라간다는 표현이 좋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삼성이나 다른 경쟁사들을 만나봐도 ‘삼성이 기술이 부족한가요’라고 물어보면 기술이 부족하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ISSCC라는 국제고체회로학회에 학회 논문을 발표하는데, 이게 반도체 업계에서는 최고인 학회지입니다. 이 학회지에 기술적인 논문을 얼마나 싣느냐가 그 회사의 경쟁력 좌우한다고들 평가하는데, 올해도 삼성이 세계 기업 가운데서 가장 많은 논문을 거기에 실었습니다. 그러니까 기술적으로 삼성이 떨어져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이때 도입하면 좋은 개념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개념일 수 있는 것 같아요.
삼성이 제품의 새로운 메모리를 설계해 내는 능력은 꽤 있는데 이걸 실제로 양산하고 공정을 관리하는 능력에 있어서 뭔가 문제 있는 것 같다는 시각도 있고요. 그런 것이 D램의 위기를 상징할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SK하이닉스가 주 52시간 등 국내 법규 어겨가면서 한 게 아닌데 삼성이 못한다는 게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거든요.
다른 한편, 삼성의 파운드리 부분 실패가 매우 뼈아플 겁니다. 사실은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던 시점에 삼성이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이 거의 20%였는데 그 뒤로 돈을 어마어마하게 넣었지만 지금 10% 밑으로 떨어졌어요. 그러니까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던 시점에 절반 이하로 실적이 떨어진 겁니다. 왜 이렇게 실적이 떨어졌을까에 거대한 전략의 실패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전략의 실패가 어디서 나오느냐면 파운드리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시대의 흐름이죠.”
SK하이닉스는 주 52시간제 다 지켰어도 문제없었다고 하셨죠. 반도체업은 주 52시간제 지키면 사업 못하니 예외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삼성 쪽에서 책임 있는 사람에게 ‘52시간 때문에 개발 못했습니까’라고 말하면 ‘아닙니다’라고 답할 겁니다. 52시간은 무관합니다. 다만 지금은 따라가야 되죠. 삼성은 한시가 급합니다. 제가 최소한 1년 뒤져 있다고 말했는데 그건 D램이고요. 파운드리 부분은 TSMC에 얼마나 뒤져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속도를 빠르게 하는 데 52시간이 도움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겠죠.
근데 처음에도 말씀드렸지만, 근본적으로 52시간과 혁신은 무관합니다. SK하이닉스는 52시간을 지켜가면서 했고, 그 안에 있는 연구진들이 엄청나게 갈아 넣은 것도 아니에요. 제가 SK하이닉스 3D 개발한 연구진들을 만나보면 다들 52시간이 아니고 딱 3교대로 돌아가면서 계속 일하던 만큼 했고 일과 워라벨에 있어서 큰 불만이 없었습니다. 다만 지금 삼성은 급해졌으니까 뭐라도 하나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겉으로 하는 것 같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문제가 있죠. 근본적인 문제는 혁신 능력이 사라져 버린 것이고, 그 혁신 능력을 다시 찾아내려면 인재가 있어야겠죠. 인재 차원에서 보면 52시간 규제를 완화하는 건 정반대의 이야기가 됩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CG) [연합뉴스TV 제공]
인재 수급이 어려워지나요?
“안 그래도 지금 우수 인재들이 공대로 안 가고 의대로 갑니다. 의대로 가는 이유는 의대는 대학 가면 끝이기 때문입니다. 근데 지금 삼성전자에 들어간다는 건 일단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공대 들어가서 스펙 계속 쌓고 해외도 갔다 오고 자격증 따고, 뭐 뭐 뭐 다 해야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런데 회사 연봉도 의대랑 비교하면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 노력을 계속 하느니 입시 한 방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의대 가는 친구들이 많은 겁니다.
근데 이런 상황에서 52시간제 허물어서 삼성전자를 일 더 많이 하는 직장으로 만들어 빨리 쫓아가게 만든다? 단기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그게 단기적으로 가능하다고 쳐도 그렇게 워라벨이 나쁜 회사를 젊은 사람들이 갈까요? 장기적으로 보면 혁신 인재 수급에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결과적으로 답이 어떻게 되는지는 어렵지 않게 제 생각을 말씀드릴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전혀 답이 아니고 바람직하지도 않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 52시간제 요구를 계속하는 걸까요?
“삼성이 진짜 위기인 것 같으니 뭐라도 해주고 싶으니까요. 다들 겁이 나는 겁니다. 삼성 없는 대한민국을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 않습니다. 삼성이라는 기업이 우리나라 수출의 10% 이상을 여전히 차지하고 GDP도 많이 차지하는 회사인데 이 회사가 잘못될 경우에 어떻게 감당하죠? 그래서 밖에서 뭐라도 도와주고 싶은 겁니다.
그런 얘기들이 제 생각에 근본적인 쓸모는 없지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건, 삼성이 위기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다 공유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삼성이 위기라는 것이 결국 대한민국 성장의 위기라는 이야기를 모두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죠. 그 점에서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고 보고요. 다만 진짜 삼성에 필요한 것은 우리가 해줄 수 없어요. 돈도 부족하지 않고 노동자도 부족하지 않은 삼성이 스스로 혁신을 하지 않으면 밖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습니다.”
[연합뉴스TV 제공]
삼성이 스스로 혁신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스스로 혁신해야 됩니다. 밖에서 도와줘서 혁신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책 뒷부분에 수도권 집중 문제도 나오더라고요. 그 문제와도 연결되는 건가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삼성의 내부 혁신 말씀드렸는데 혁신은 내부에서 하는 것이고 밖에서 해줄 수 없는 것이라는 게 하나의 큰 대전제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성이 할 수 있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는 사회의 역할이 있다고 본다면 ‘수도권 집중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지금 용인에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든다고 합니다. 거기 만드는 이유는 수도권이 아니면 도저히 인재들을 끌어올 수 없어서라고 이야기합니다. 인재들이 수도권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거죠. 예전에 IT 업종은 평택, 천안 쪽까지는 괜찮다고 얘기했는데 요즘은 그것도 안 된다고 얘기해요. 판교선, 용인선 이 정도 얘기를 합니다. 인재들이 거기까지밖에 없다는 건 수도권 집중이 그만큼 심하다는 얘기인데, 이 수도권 집중이 지속가능하고 인재들이 이 분야로 계속 올 수 있느냐는 질문을 던져봐야 됩니다.
우리나라는 젊은 사람들이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가 없어요. 블루칼라 직종이거나 아니면 수도권이 아닌 곳에서 할 수 있는 그런 사업장들이 다 수도권으로 올라옵니다. 근데 이렇게 되면 수도권의 집값은 엄청 비싸지고 교통은 복잡해지고 삶의 질은 안 좋아지고, 혼자 벌어서는 도저히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으로 계속 몰리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에서는 젊은이들이 혁신하겠다거나 도전해보겠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습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연합뉴스 자료사진]
결국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사회 전체의 문제네요.
“맞습니다. 제 책 제목이 ‘삼성전자 시그널’이지만 ‘대한민국 시그널’이라고 불러도 크게 어긋남이 없습니다. 읽으시다 보면, 삼성 얘기라고 써놨지만 이게 결국 우리나라의 어두운 성장의 미래라는 생각을 하시게 될 겁니다”.
이 책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삼성이 위기에 있습니다. 대한민국 성장도 위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위기는 절대로 쉽게 극복할 수 없는 위기입니다. 삼성의 위기를 보다 보면 대한민국 성장 위기의 본질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정도의 얘기 같고요. 올해가 정말 중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합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지난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권리당원 투표(5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50%)를 병행하는 ‘국민참여경선’으로 6·3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19대 대선 이후 준용돼온 국민경선(대의원·권리당원+참여 의사를 밝힌 일반 국민 선거인단 참여)을 유지할 것을 요구해온 비주류 주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민주당 대선특별당규위원회는 12일 국회에서 제5차 전체회의를 열어 이런 방식을 확정한 뒤, 의원총회와 최고위원회에 보고했다. 이춘석 특별당규위원장은 이후 국회에서 브리핑을 열어 “대선특별당규위원회는 치열한 논의 끝에 국민경선에서 국민참여경선으로 (경선룰을) 바꾸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경선룰 변경의 이유로 ‘당원주권 강화’와 ‘역선택 방지’ 등을 내세웠다. 그는 “지난해 제1차 전국당원대회를 개최하고 당원주권 시대를 열겠다고 천명했다”며 “정당의 주인인 당원들의 후보 선출 권리를 강화하는 게 당원주권을 강화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도 극우세력을 동원한 비정상적인 선전선동이 끝나지 않고 대선 국면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가장 현실적이고 시대 상황에 맞는 국민참여경선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어떠한 제도든 간에 (국민의힘 지지자 등이 민주당 경선에 개입할 수 있다는) ‘역선택’을 원천적으로 배제할 방법은 없다”면서도 “안심번호 추출에 의한 여론조사 방식이 지금 주어진 방법 중에서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국민참여경선은 권리당원 50%, 일반국민 여론조사 50%로 후보자를 선출하는 방식이다. 우선 12개월 전에 민주당에 가입해서 6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한 약 110만명의 권리당원에게 50%의 권리가 배정된다. 나머지 50%인 일반국민 여론조사는 안심번호를 100만개 추출해 진행할 계획이다.
이 위원장은 “2개의 여론조사(기관)를 선택해서 약 50만명씩 국민여론조사에 따른 투표를 하고, 그 합산치를 50%에 반영하는 방식”이라며 “많은 샘플 수를 정한 것은 가능한 많은 국민들의 의사를 수용해 국민 뜻을 잘 받들려는 (의도)”라고 했다.
이날 특별당규위원회에서 확정한 경선룰은 최고위원회, 당무위원회, 전당원투표, 중앙위원회 의결을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비주류 주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김두관 예비후보 쪽 백왕순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어 “경선 당사자인 후보 쪽과 경선룰에 대한 협의조차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며 “민주당 경선룰 확정에 대해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어대명(어차피 대선후보는 이재명) 경선’ 참여가 무슨 의미가 있는 지 숙고에 숙고를 하겠다”고도 했다.
김동연 경기지사 쪽 고영인 전 의원도 이날 입장문을 내어 “김동연 캠프는 ‘국민선거인단 없는 무늬만 경선’에 단호히 반대한다”고 했다.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는 아직 이렇다 할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김 전 지사는 13일 오전 11시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상징적 장소”라며 세종특별자치시청에서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12일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진행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12일 전국의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빗속에서 광장에 모여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한 사회대개혁을 촉구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학비노조)는 이날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노동자대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이날 노동자대회를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이후 '1호 사회대개혁 집회'라고 이름 붙이고 "비정규직 노동의 차별을 끝장내는 사회대개혁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날 노동자대회에 모인 2천여명의 학비노조 조합원들은 이날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한 봄비와 강한 바람에 우비와 우산으로 비를 막으면서 자리를 지켰다. 이들은 '학교비정규직 차별철폐' 등이 적힌 손피켓을 들고 "학교 급식실 문제를 해결하라"고 구호를 외쳤다.
이날 학비노조는 모든 대선후보들에게 학교비정규직 차별 해소 등 급식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수립할 것을 촉구했다. 민태호 학비노조 위원장은 "모든 대통령 후보들에게 촉구한다. 무상급식 수호와 학교 급식실 종합 대책안 마련을 위해 학비노조와 함께 정부 대책기구를 꾸릴 것을 약속하라"면서 "학교부터 비정규직 차별 해소와 실질 임금 보장 대책의 수립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민 위원장은 "일자리 경쟁력을 잃어버린 학교 급식실에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친환경 직영 무상급식은 무너질 것"이라며 "이윤 추구로 학생 건강을 위협했던 위탁급식으로 넘어가거나 학부모들이 도시락을 싸는 시절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밥하는 아줌마를 천대하지 말라"면서 "대선 후보들은 학교부터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고 실질 임금을 보장해서 불평등 세상을 바로잡겠다 약속해야 한다"고 재차 촉구했다.
내란세력 척결과 사회대개혁이 노동자의 노동권 보장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은 파면되었지만, 그에게 부역한 정치권, 공공기관, 검찰, 검찰 등 우리 사회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내란세력들이 여전히 건재하다"면서 "학교 급식실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싸워왔지만, 무상급식을 방해했던 오세훈은 여전히 서울시장 자리에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에는 근본적으로 바꾸어 보자. 내란을 청산한다는 것은 노동자들의 노동권이 보장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1호 사회대개혁 집회'인만큼 시민들의 연대발언도 있었다. 고려대 학생인 노민영 씨는 "추운 겨울, 광장을 가득 채운 분홍빛 물결과 나부끼는 학비노조의 깃발을 보았다. 학교뿐만 아니라 광장을 열어내고 지켜내고 계셨다"면서 "이곳에 와서야 알게 됐다. 저희가 맛있게 급식을 먹는 동안 학교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뜨거운 조리기구로 인해 화상을 입고, 폐암 발병률이 높지만 산재로 인정받기조차 어렵고, 아파도 쉬지 못하고 생계를 걱정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노 씨는 "노동이 존중받지 않는 학교 누군가가 고통을 감수해야만 유지되는 교육은 결코 건강한 장소가 아니"라며 "급식 노동자들의 권리가 향상되고 비정규직 철폐되는 것은 우리 모두가 더 나은 공동체로 함께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12일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진행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대회에서 민태호 학비노조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급식 노동자 권리 향상이 사회대개혁의 첫걸음"
비정규직 차별과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인한 인력 부족, 위험한 노동환경 등을 겪고 있는 현장의 목소리도 나왔다. 정성미 창원지부 조합원은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한 학교비정규직 노동자의 사연을 소개했다. 2002년 9월 경남 고성에 있는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조리실무사로 근무하다 2022년 7월 정년퇴직한 A씨는 퇴직 전 폐암 4기 진단을 받은 후 3년간 투병하다 지난 1월 20일 사망했다.
정 씨는 "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설계하며 편안한 노후를 꿈꾸셨을 선배님께서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고통 속에서 지내시다 결국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에 마음 한편이 아려와 며칠 동안 밤새 뒤척이며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며 "폐암이 과연 선배님만의 문제일까 하는 두려움이 제 가슴을 무겁게 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정 씨는 정부와 교육청을 향해 "환기 시설 개선뿐만 아니라 인력 충원을 통해 노동강도를 완화하는 현실적인 폐암 예방 대책을 하루빨리 마련하고 이미 폐암 진단을 받은 사람들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지부의 정란미 조합원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여전히 학교 현장에서 인력 부족에 쩔쩔매며 하루를 보내고 있고, 노후화된 시설은 교체되지 않아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며 "똑같이 일하고도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다른 처우를 차별이 아니라 차이라고 말하는 관료들의 독설에 가슴에는 피멍이 든다"고 현장분위기를 전했다.
이날 노동자대회에는 정당에서도 참여해 연대의 뜻을 밝혔다.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은 "학교 급식 노동은 단지 한 끼 식사의 문제가 아니다. 아이들의 건강과 보편적 복지를 지키는 최전선"이라며 "하지만 지금 그 최전선이 위험하다. 결원은 채워지지 않았고, 방학 중 무임금과 각종 복지 참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오늘 이 광장의 목소리를 반드시 국회로 옮기겠다"고 약속했다.
정혜경 진보당 의원은 "실패한 친위 쿠데타로 윤석열은 파면되었지만 윤석열이 만들었던 그 모든 세력들은 현재 자리에 다 있다"면서 "내란 수괴의 권한대행 한덕수, 최상목 경제부총리, 심우정 검찰총장 등이 다 여전히 권좌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윤석열의 의기양양한 모습을 TV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윤석열 내란 일당이 모두가 처벌을 받을 때까지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라며 "우리의 과제는 다시 이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내란 세력들을 모두 처벌하는 그날까지 이 길을 계속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학비노조는 집회를 마치고 종각, 을지로입구를 거쳐 숭례문까지 비정규직 차별 해소, 급식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행진을 진행했다.
12일 광화문 동십자각에서 진행된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노동자대회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을 하고 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많은 사람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2017년 박근혜씨 탄핵 때, 여러 투쟁 사업장이 모여서 공동투쟁을 했는데 세종호텔지부도 함께였습니다. 그 당시에 이재명 예비후보(당시 '성남시장')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이 후보가 정부청사 앞 천막에 찾아왔습니다. 당시에 박근혜 정권에 대한 비판은 했지만, 비정규직 제도와 정리해고에 대해선 꽤 생각이 달랐습니다. 실망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도 이 후보는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도 만나고,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만나면서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후보에게 묻고 싶습니다. 이재명 예비후보님,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서민에게 충성하실 겁니까? 기업에게 충성하실 겁니까? 명확히 입장을 정해주십시오.
이재명 예비후보는 윤석열 정권과 검찰로부터 많은 탄압을 받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권과 검찰로부터 탄압을 더 많이 받은 건 노동자이고, 기업한테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게 노동자의 일상인 걸 이 후보가 알면 좋겠습니다. 이 후보가 '깊고 깊었던 겨울을 국민이 깨고 나오는 중으로, 따뜻한 봄날을 꼭 함께 만들었으면 한다'면서 출마 선언했는데, 장기 투쟁 노동자는 여전히 겨울의 한복판에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통령이 투쟁 사업장 해결해야 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투쟁 사업장을 꼭 해결해야 합니다. 투쟁 사업장은 그저 하나의 사업장이 아닙니다. 투쟁 사업장에서 겪는 부당해고, 부당징계 등이 얼마나 많은 사업장에서 일어납니까. 그런데 대부분 억울하다고, 아프다고 말 한 번 못 하고 포기합니다. 투쟁 사업장은 아프단 말도 못 하고 떠난 사람들을 대리하는 곳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새로운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투쟁 사업장으로 대표되는 모든 노동자에게 미래가 달라질 거라는 비전을 보여줘야 합니다. 이런 고통을 겪는 노동자가 더 확산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한국은 노동자한테 매우 박합니다. 비정규직 제도 때문에 직장에서 불안정하게 다니다가 쫓겨나고, 비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노동자가 많습니다. 돈을 많이 벌려고 자영업을 한다는 것도 예전 이야기입니다. 직장에서 밀려나서 자영업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사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누가 새로운 대통령이 되든, 노동 개선 정책을 강하게 밀어야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몇 배, 문재인 전 대통령의 몇십 배를 넘어서는 노동 개선 정책이 필요합니다.
▲행진 중 발언하는 안미숙안미숙 대표가 행진 중 발언하고 있다. ⓒ 정남준
[안미숙] 노동자를 존중하는 대통령
저는 울산에서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해고 투쟁하는 안미숙입니다. 2024년 대법원의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선고 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업체 중 '이수기업'은 폐업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이수기업 소속 노동자들은 모두 해고됐습니다. 저는 오랜 시간 불법파견 투쟁을 했고, 지금은 해고 투쟁까지 하고 있습니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퇴를 권합니다
12.3 계엄 직후 울산에서도 탄핵 촉구 집회가 열렸습니다. 저희 이수기업 해고자들도 집회가 열린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매일 집회에 참여하며 '윤석열 탄핵'을 주장했습니다. 그 덕에 울산 시민들에게 저희 투쟁도 꽤 알렸습니다.
계엄을 빼고 말해도, 윤석열씨는 대통령을 할 자격이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 없이 기업은 없습니다. 노동자 없이 국가도 없습니다. 그런데 윤씨는 기업과 국가를 굴리는 노동자는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국가를 운영하는 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이번 대선 출마를 결심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도 같습니다. 노동자를 존중하지 않는다면 사퇴를 권합니다. 새로운 대통령은 노동자를 존중해야 합니다.
부당함을 겪고, 목격하는 게 일상
얼마 전에 조카가 황당한 이야길 들려줬어요. 제 조카가 이번에 6개월짜리 인턴을 지원해서 마지막 면접만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축하한다고, 인턴이면 월급을 얼마나 주냐고 물으니까, 안 준대요. 대신 6개월간 일하면서 스펙을 쌓는 거래요. 듣고 있는데 '한국... 기가 막힌다' 싶더라고요. 스펙을 미끼로 '공짜 노동'을 시키는 거잖아요. 누군가는 '그런 데는 가지마'라고 하지만, 안 갈 수도 없어요. 청년 세대 사람들이 몰라서 그런 곳에 가는 거 아니잖아요.
비슷한 일 하나 더 말할게요. 어제 은행 가서 업무를 보고 왔어요. 직원이 친절하고 좋았어요. 어제 깜박한 게 있어서, 오늘도 같은 은행을 갔어요. 기왕이면 같은 직원한테 받으려고 찾으니까, 계약 기간이 어제까지라서 오늘 '계약 해지'됐다는 거예요. 황당하더라고요.
꼭 저처럼 대기업이 아니더라도, '불법파견'처럼 무거운 말이 아니어도, 투쟁 사업장이 아니어도 노동자가 겪는 부당함이 온갖 곳에 있어요. 아주 많은 직장에 '계약직', '비정규직', '기간제'라는 말이 붙은 노동자가 있어요. 대통령이 노동자를 존중한다면, 안정적인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겠다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될 거예요. 존중하질 않으니까 이런 상황이죠. 윤석열씨 다음에 대통령이 되겠다고 결심했다면, 이 정도 제도 개선은 마음먹어야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요.
▲행진하는 서면시장번영회지회서면시장번영회지회가 행진을 하는 중 허진희 조합원이 발언을 하고 있다. ⓒ 정남준
[허진희]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라요
저는 부산에서 부당해고 철회, 체불임금 지급, 노동조합 인정,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로 투쟁하고 있는 서면시장번영회지회 조합원 허진희입니다. 2021년 4월 29일, 9명 조합원이 힘을 합쳐 투쟁을 시작했어요. 투쟁 시작 이틀 후, 저희 지회장님이 해고됐어요. 1400일이 넘게 싸우면서 조합원은 두 명으로 줄었지만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저희는 투쟁 중에 사측한테 맞은 적도 있고 여러 법적 소송도 진행했습니다.
폭군이 되지 마세요
계엄 이후 서면시장 건너편에서 탄핵 광장이 열렸어요. 지회 집중 선전전이 수요일이라서, 저희도 매주 수요일 함께 했어요. 구호도 외치고, 발언도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니까 좋았어요.
저는 정치를 잘 몰라요. 하지만 대선 출마를 결심한 사람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있어요. '폭군은 되지 말아주세요.' 윤석열 전 대통령은 폭군이었다고 생각해요. 노동자를 무시하고, 노동조합 차별을 강화했고, 계엄을 선포했어요.
대통령이 노동자를 무시하면, 회사는 노동자를 더 무시해요. 대통령이 노동조합을 탄압하면, 회사는 노동조합을 더 탄압해요.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지켜본 바로는 대통령이 제일 먼저 탄압하는 게 노동자더라고요. 그래도 이번 탄핵 광장이 알려준 게 있어요. '노동자가 앞장서서 싸우고, 시민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 싸운다.' 만약 새롭게 당선되는 대통령이 노동자를 탄압한다면, 노동자와 시민은 분명 다시 싸울 거란 걸 말하고 싶어요.
노동자가 원하는 세상
저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바라요. 사람은 사람답게 사는 게 상식이잖아요. 국민의힘이든, 더불어민주당이든, 또 다른 당이든, 기업가든, 노동자든 다 사람이잖아요. 사람이 사람에게 폭력을 쓰지 않아야 하고, 부당해고 당했다면 복직해야 하고, 임금이 체불됐다면 받을 수 있어야 하고, 법으로 노조를 보장받고 있으니까 노동조합 활동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세상. 상식이라고 생각해요.
▲손잡고 행진 중인 허진희 조합원과 안미숙 대표서면시장번영회지회 행진에서 안미숙 대표와 허진희 조합원이 손을 잡고 있다. ⓒ 정남준
2025년 6월 3일, 대한민국 제21대 대선이 열린다. 윤석열씨가 파면된 후 이뤄지는 조기 대선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유력 정치인이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내란수괴'라는 별명이 붙은 윤석열씨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의 대선인 만큼 모두가 윤석열씨와 '다름'을 말하고 있다. 자신의 장점, 강점을 말하고 있다.
윤석열 정권 전에도 투쟁했고, 윤석열 정권 후에도 투쟁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은 대선 출마자를 바라보며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이들은 새로운 대통령에게 무엇을 바라고 있을까? 긴 시간 거리에서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서울, 울산, 부산의 해고자를 만나서 물었다.
[고진수] 새로운 대통령은 누구에게 충성할 것인가?
저는 서울 명동역 10번 출구 앞 철탑 위에 있습니다. 서비스연맹 세종호텔지부의 지부장, 고진수입니다. 2021년 12월, 세종호텔이 저와 저희 조합원들 12명을 해고해서 현재 복직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고공농성 59일 차(2025년 4월 12일 기준)입니다. 문재인 정권에서 시작한 복직 투쟁이 윤석열 정권을 넘어, 새로운 정권까지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건희 씨가 11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관저에서 나와 서초동 사저로 향하고 있다. 2025.4.11 [공동취재] 연합뉴스
또 지귀연 판사다. 전대미문의 '내란수괴 석방' 결정은 역시 우연이 아니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경찰이 천신만고 끝에 체포‧구속했던 윤석열을 형사사법 사상 최초의 '시간 단위' 구속기간 계산법으로 풀어줘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던 지귀연 판사가 이후에도 내란죄 공판을 비공개로 진행하며 증인의 변호인까지 퇴정시키는가 하면 언론사의 윤석열 촬영 신청까지 무턱대고 거부하는 등 상식 밖의 행태를 이어가고 있다. 노골적으로 '윤석열 지킴이'를 자처하는 이런 독단적인 판사에게 내란 사건 재판을 계속 맡겨도 되는지 시민들의 의구심과 불안감이 날로 커지는 상황이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지귀연 부장판사)는 오는 14일 열리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1차 공판에 대한 언론사의 법정 내 촬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전날 결정했다. 피고인석에 앉은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국민이 전혀 볼 수 없다는 뜻이다.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는 왜 불허하는지 이유도 밝히지 않았다.
법정 방청 및 촬영 등에 관한 대법원 규칙에 따르면 재판장은 피고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 법정 내부 촬영 신청에 대한 허가를 할 수 있다. 다만, 피고인의 동의가 없더라도 촬영을 허가함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재판장 직권으로 허가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지난 2017년 5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건 첫 정식 재판, 이듬해 5월 이명박 전 대통령의 뇌물수수·횡령 등 사건 첫 정식 재판 때 이들이 피고인석에 앉은 모습이 언론을 통해 전 국민에게 공개됐다.
삼성 등 대기업에서 총 592억원의 뇌물을 받거나 요구·약속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된 전직 대통령 박근혜 씨가 2017년 5월 23일 재판을 마친 후 구치소로 가는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2017.5.23. 연합뉴스
다스 자금을 횡령하고 삼성 등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2018년 4월 구속기소됐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19년 1월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속행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1.23. 연합뉴스
윤석열과 똑같은 내란 수괴(우두머리) 등 혐의로 전두환·노태우가 법정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1995년 12월 12·12 쿠데타와 비자금 의혹으로 기소된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이듬해 3월 첫 공판에 출석하자 재판부는 개정 직후 약 1분 30초 동안 법정 촬영을 허용했다. 이처럼 전직 대통령 사건을 맡았던 과거 재판부들은 피고인 측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건에 쏠린 국민적 관심과 사안의 중요성, 공공의 이익 등을 두루 고려해 촬영을 허가했다. 그런데 유독 지귀연 재판부만 윤석열에게 역대 전직 대통령 공판 통틀어 최초의 특혜를 제공한 것이다.
이에 더불어민주당 이건태 대변인은 12일 서면 브리핑에서 "명백한 특혜다. 윤석열의 형사재판이 국민적 관심이 집중된 중대 사안이라는 것을 재판부가 모를 리 없다"며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 전에도 윤석열은 법원의 자의적 법 해석을 통한 구속취소 결정, 검찰의 즉시항고 포기로 석방의 특혜를 받았다. 법 위에 군림해 온 윤석열이 헌재의 파면 결정으로 대통령직을 상실한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특혜를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강력 반발했다.
검사 출신인 이건태 대변인은 "윤석열에게 절차적 특혜가 주어진다면, 실체적 특혜 역시 존재할 수 있다는 국민적 의혹은 당연하다. 지귀연 판사는 이러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면서 "윤석열의 (법원 지하 주차장을 이용한) 출석 특혜, 법정 내 촬영 불허 결정을 당장 철회하라. 또한 증거인멸 우려가 높은 윤석열을 즉각 구속하라"고 촉구했다.
노상원과 문상호 등의 '롯데리아 회동' 관련 MBC 뉴스 화면 갈무리
앞서 지귀연 판사는 내란 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등 주요 피고인들 재판을 잇따라 비공개로 진행해 또 다른 의혹을 샀다. 공개 재판이 헌법상 원칙이기도 하지만 이처럼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지대한 사건을 자꾸 감추려는 인상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 판사는 지난달 27일 재판 때 정보사 관계자들에 대한 증인 신문을 비공개 결정하더니 지난 10일 김용현 전 장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김용군 전 제3야전군사령부 헌병대장의 내란 혐의 3차 공판기일에서도 '롯데리아 햄버거 회동' 멤버였던 정성욱 정보사령부 대령에 대한 증인 신문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처음 15분간은 공개 재판을 열다 "국가안전 보장을 해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방청객들의 퇴정을 명하고, 심지어 정 대령 변호인인 김경호 변호사까지 법정 밖으로 내보냈다.
대전에서 올라온 김 변호사는 "정성욱 증인은 일반 증인과 달리 이 사건의 공동 피고인이면서 동시에 증인이다.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항의했지만 지 판사는 "검찰 측에서 비공개를 요청했다"며 요지부동이었다. 이후 김 변호사는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정 대령은 증인으로 소환되었다 할지라도 실질적으로는 본인의 방어권(진술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가 매우 중요하고 변호인의 조력이 필수적"이라며 "지귀연 재판장의 변호인 퇴정 비공개 결정은 헌법 및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률에 위반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추후 상급심이나 헌법재판을 통해 절차 위법 내지 위헌 판정을 받을 위험이 크다"고 강조했다.
지귀연 부장판사. 사진 출처 나무위키
군인권센터도 성명을 내고 "처음부터 비공개 재판을 전제로 약속하고 증인을 출석시킨 검찰의 태도도 황당하지만, 이를 수용하기로 한 지귀연 재판부의 결정 역시 기막히기 이를 데 없다"면서 "재판의 핵심은 검찰이 군사기밀이라 주장하는 정보사나 특수요원의 직제나 임무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12‧3 비상계엄 당일 정보사 인원들이 어떤 경위로 노상원의 사조직에 소속돼 범죄 행위에 가담하게 됐는지 그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정보사 요원들이 선관위를 침탈하기 위해 공작을 펼치거나 준비한 일은 공개되면 국가안보에 지대한 위해를 끼치는 국내외 공작이나 정보 활동과는 전혀 상관없는 내란 범죄"라고 지적했다.
또 "설사 공개되면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된다 하더라도 사전 제출된 증인 신문 계획에 따라 해당 진술 부분만 비공개로 전환하면 될 일이다. 그럼에도 정보사와 관련한 증인 신문 전체를 모두 비공개 결정한 것은 중앙선관위에서 발생한 일은 모두 '밀실 재판'으로 처리하겠다는 뜻이나 다름없다"며 "이런 어이없는 결정을 그대로 묵인한다면 지귀연 재판장이 향후 방첩사, 특전사 소속 군인이 증인으로 나올 때마다 신문 대상이 '특수작전' '대간첩작전'을 임무로 하고 있다는 핑계로 재판을 다 밀실에서 비공개로 진행하거나, 계엄 사무가 군사기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재판 전체를 비공개로 전환하거나, 대통령에 관한 사항이 기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윤석열 재판을 통째로 비공개로 전환해도 할 말이 없어질 것"이라고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군인권센터는 "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개 재판의 원칙을 검찰과 재판부 편의에 맞춰 멋대로 적용하고 침해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내란의 피해자인 대한민국 시민 전체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나 다름없다. 지귀연 재판부의 이러한 결정에 군사법원까지 아무런 비판 의식 없이 기계적으로 동조하고 있으니, 향후 내란죄의 재판 전체의 향방이 어디로 갈지 매우 우려스럽다"며 "이렇게 계속 재판이 비공개된다면 시민들은 내란 심판과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듣지도, 보지도, 읽지도 못한 채 윤석열을 풀어줬던 지귀연 재판부만 믿고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지귀연 재판부는 황당한 재판 비공개 결정을 당장 철회하고, 모든 내란죄 재판이 똑똑히 모니터링 될 수 있도록 헌법의 공개재판 원칙에 따라 재판 전체를 공개하라. 또한 비공개를 결정한 상세한 사유와 문제가 되는 신문 사항에 대해서도 낱낱히 공개하라"며 "헌법상의 공개 재판 원칙과 시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고, 국가안보라는 허울을 방패 삼아 내란죄 재판을 어그러뜨리는 자 역시 내란 공범"이라고 규정했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의 여파 때문인지 서울 아파트 시장이 거래 빙하기에 진입했다. 3월에 비해 4월 거래량은 참혹한 수준이다. 거래량이 급감한 마당에 주택구입부담지수는 반등했다. 좋지 않은 신호다.
한국은행은 차주 가운데 빚을 갚기 힘든 '잠재 고위험 가구'의 비율을 대략 30%로 파악하고 있다. 금융파국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유예를 선언했지만, 이 조치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관세전쟁의 여파가 부동산 시장만 비켜갈 것이라는 생각은 망상에 가깝다.
3월 거래량 7863건 vs 4월 거래량 387건
서울 아파트 시장에 거래 빙하기가 닥쳤다. 3월 7863건에 달했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이 4월 들어 387건으로 급감했다. 물론 3월 거래 같은 경우 신고기간이 보름 이상 남아 있고, 4월 거래는 5월 말까지 신고가 가능해 거래량이 크게 변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2월 6348건으로 치솟았고, 3월에는 8000건에 육박하는 등 기운을 차린 듯 보이던 서울 아파트 시장이 4월 들어 순식간에 얼어붙은 건 분명해 보인다.
서울 아파트의 평균 거래금액도 2월 무려 14억 5535만 원을 넘었지만, 3월 12억 9198만 원으로 주춤한 후 4월에는 10억 5595만 원으로 주저앉았다. 고가 아파트 거래가 급감하고 중저가 아파트 위주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는 증거다. 업계에선 토지거래허가구역 재지정, 트럼프발 관세전쟁 여파 등이 서울 아파트 시장에 영향을 미치 것으로 보고 있다.
출처 : 서울부동산정보광장
다시 증가하고 있는 주택구입부담지수
서울 아파트 거래가 급감하고 있다는 소식 다른 편엔 주택구입부담지수가 반등 중이라는 뉴스가 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의 주택구입부담지수(K-HAI)는 63.7로, 전 분기(61.1)보다 2.6포인트(p) 상승했다. 이 지수가 반등한 것은 202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다.
분기마다 산출되는 주택구입부담지수는 중위소득 가구가 중위가격 주택을 표준대출로 구입한 경우 원리금 상환 부담의 정도를 보여준다. 총부채상환비율(DTI) 25.7%에 더해 주택담보대출비율(LTV) 47.9%의 20년 만기 원리금 균등 상환 조건을 표준 대출로 가정했다. 이 지수가 63.7이라는 것은 가구당 적정 부담액(소득의 25.7%)의 63.7%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으로 부담하고 있다는 의미다. 전국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2022년 3분기 89.3으로 최고 수준을 기록한 뒤 지난해 2분기(61.1)까지 7분기 연속 하락했다. 지난해 3분기에는 전 분기 수준을 유지했다.
지역별로 보면, 지난해 4분기 서울의 주택구입부담지수는 157.9로 집계됐다. 전 분기(150.9)보다 7p 뛴 것으로, 소득의 40.6%를 주택담보대출 원리금 상환에 쓴 셈이다. 서울 지역 지수는 지난 2022년 3분기 214.6까지 치솟았다가 지난해 2분기 147.9에 이르기까지 7분기 연속 내렸다. 이어 지난해 3분기 150.9로 반등했고, 4분기 큰 폭으로 더 올랐다.
이에 따라 서울 지역 차주들의 주택 금융 부담도 2023년 4분기 소득의 40.1%에서 지난해 1분기 38.8%로 하락한 뒤 3분기 연속 30% 후반대를 기록하다 4분기 들어 다시 40%를 넘어섰다. 서울을 제외하면 지수가 100을 넘는 지역은 없다. 세종이 96.9로 가장 높았고, 경기(83.8), 제주(75.6), 인천(68.7), 대전(64.3), 부산(64.2) 등이 전국 지수를 웃돌았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2023.6.7. [연합뉴스 자료사진]
소득, 자산 중 하나라도 상환 어려운 가구가 차주가구의 30%
한국은행이 지난달 27일 공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금융부채 고위험 가구는 지난해 3월 기준 38만 6000가구로, 전체 금융부채 보유 가구의 3.2%를 차지했다.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72조 3000억 원으로 전체 금융부채의 4.9%에 해당했다.
고위험 가구는 금융부채를 안고 있는 가구 가운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이 40%를 넘고, 자산대비부채비율(DTA)도 100%를 초과하는 경우를 말한다. 소득과 자산 측면에서 모두 부채 상환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고위험 가구 수와 금융부채 비중은 2023년(3.5%·6.2%)보다 떨어졌지만, 2022년(2.6%·3.8%)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진정 심각한 문제는 이게 아니다. 소득 또는 자산 한 가지 측면에서라도 상환 능력이 부족한 가구가 모두 356만 6000가구, 이들이 보유한 금융부채는 584조 3000억 원으로 추산됐다는 사실이다. 금융부채 가구 수의 29.7%, 전체 금융부채의 39.7%에 이르는 수준이다. 특히 지방의 경우 향후 주택가격이 떨어지면 부채 보유자의 자산이 줄어 상환 고위험 가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됐다.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가 단기간에 회복되긴커녕 더 나빠진다고 가정하면 금융부채 가구 중 30%에 해당하는 '잠재 고위험 가구'들이 견디기 어려울 것 같아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 내무부 장관 더그 버검, 상무부 장관 하워드 루트닉, 교통부 장관 숀 더피, 재무부 장관 스콧 베센트, 미시간주 하원 의장 맷 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25년 4월 9일 백악관 타원형 사무실에서 행정 명령과 선언문에 서명하는 것을 지켜봤다. 2025.4.9. 로이터 연합뉴스
트럼프 발 관세전쟁은 아직 본격화하지도 않아
미 국채가격이 폭락하고 증시가 붕괴하는 등 금융시장이 와해되는 기미가 역력하자 트럼프는 다른 국가에 대한 관세조치를 90일간 유예했다. 다만, 중국은 제외했다.
트럼프의 관세유예조치에 다소 안정을 찾는 듯 싶던 금융시장은 중국과의 관세전쟁이 본격화됐음을 인지하고 다시 혼란에 빠졌다. 중국과의 관세전쟁 여파가 어디까지 전개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90일 후에 트럼프가 다른 국가들을 상대로 관세를 어떻게 가져갈지도 미지수다.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계측하는 건 불가능하다. 분명한 것은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자유무역 시대에 종언을 고했다는 사실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자산이 트럼프발 관세전쟁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서울 아파트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박세열 기자 | 기사입력 2025.04.12. 08:12:07 최종수정 2025.04.12. 11:18:24
윤석열은 권력이 무너진 자리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망상에 의한 계엄이 실패한 후, 그는 다시 새로운 정치를 꿈꾸고 있다. 패잔병의 정치가 시작됐다. 그래서 여기에 또 다른 망상 하나가 추가된다.
망상 시즌 1.
윤석열은 서류 속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평생 검사로 살아온 그는 이미 발생한 범죄를 서류로 정리하고 증언을 수집하고, 논리를 꿰맞추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가 '기소해'라고 하면 기소하는 일사불란함, 그리고 범죄자의 유죄를 입증했을 때의 그 짜릿함을 윤석열은 잊지 못했다.
윤석열은 검찰 조직을 국가 통치의 모델로 삼았다. 그 외의 세계에는 무지했다. 명령과 복종, 보고와 결재, 서류와 기록의 질서. 윤석열에게 국가는 그 질서를 확장한 거대한 사무실이었고, 통치는 그 조직을 단속하는 일이었다. 명령하면 움직이는 구조에 길들어 있었고, 그 질서를 세계의 본질로 착각했다. 그의 세계에선 공소장이 곧 권력이고, 사건의 통제는 법률적 문장으로 완성돼 왔다.
하지만 계엄은 범죄를 실행하는 일이었다. 이미 발생한 사건의 조각을 수집하는 게 아니고, 조각을 맞춰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 해보지 않은 일을 개척하는 일이다. 군대는 검찰의 상명하복, 일사불란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계엄을 선포한 윤석열은 자신이 거느렸던 수하 검사들처럼 군인들도 명령에 맞춰 임무를 딱딱 실행할 줄 알았다.
윤석열은 군대에 다녀오지 않았다. 그는 군인들이 평시에 전투식량과 통조림을 먹는다고 생각했다. 군 시스템에 무지한 그는 검찰의 지휘 체계를 군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착각했다. 검찰 조직의 습성을 군대에 그대로 투영했다. '기소해' 하면 기소하던 그 마법같은 일이 계엄 상황에서 군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실로 거대한 망상이었다. 진짜 세계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는다. 군인은 검사가 아니고 시민은 수사관이 아니다. 언론은 보고서를 제출하는 기관이 아니고, 정치는 누군가를 단죄하는 것이 아니다.
계엄은 예외상태의 선언이다. 윤석열은 그 예외 상태를 검찰의 질서로 통제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맞닥뜨린 세계는 서류 너머에 있었다. 그는 그 너머를 알지 못했다. 그는 미지의 세계를 통제하려 했고 그 무지는 자기 파괴로 귀결됐다.
망상 시즌 2.
첫 번째 망상에 실패한 윤석열은 두 번째 망상을 꿈꾼다.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 자는 실패도 이해하지 못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윤석열의 측근, 이완규를 헌법재판관에 지명했다. 헌재에 의해 파면된 자가, 그 헌재에 그림자를 이식하고 있다. 헌법의 심판을 받은 자가 헌법을 모욕하려고 하는 불쾌한 장면이다. 그는 최악의 방식으로 공화국에 복수하는 꿈을 꾸고 있다. 친윤계는 그 한덕수를 '대선 주자'로 키우려는 망상에 빠졌다. 참고로 한덕수의 대선 지지율은 11일자 한국갤럽 기준 2%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그는 대통령 관저에서 여전히 정치인들을 만난다. 나경원, 윤상현, 전한길 등 자신에게 '충성'하는 사람들을 만나 말을 흘리고, 건재를 과시하려 한다.
윤석열을 만난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그가 "사람을 쓸때 가장 중요시 볼 것은 충성심이라는 것을 명심하라"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주변 인사들의 배신에 깊이 상처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는 해석이 따랐다. "헌법재판소 판결도 막판에 뒤집어 진 것으로 생각하시고 매우 상심하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윤석열 1호 대변인이 이렇게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라는 분은 뭐든지 낙관적이다. 전망을 낙관적으로 하는데 근거는 없다. 뭔가 준비를 잘해서 낙관적인 건 아니다. 다만 그게 이제 끝나고 나면 평가는 굉장히 부정적으로 한다"며 "엑스포 문제라든가 뭐 대왕고래 문제라든가 의대 정원 문제라든가 이런 정책들도 굉장히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했는데 평가할 땐 주변 사람들한테 책임을 돌리는 그런 캐릭터"라고 한다.
지금도 그렇다. 그는 헌재의 탄핵 인용도 예상하지 못하고 낙관론에 빠져 있었다. 탄핵되자 '불충한 사람들'의 '배신'을 토로하고 있다. '배신자 프레임'은 그의 유일한 무기다. 박근혜가 유승민에게 굴레를 씌운 것을 윤석열은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그는 의욕적이다. 계엄령에 군대를 동원할 때처럼, 그는 국민의힘이 자신의 손발이 되어 대선을 치룰 것이라고 생각한다. 검찰 조직처럼 국민의힘도 자기 명에 딱딱 움직이리라 믿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을 찾아온 국민의힘 사람들에게 "대선에 승리하시라"고 말하는 것도 덕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정말 국민의힘이 대선에서 승리해 자신을 사면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듯하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국회와 헌법재판소에서 파면된 그를 구제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권력을 잃은 윤석열에게 정치는 망상의 연장이다. 권력은 기억보다 빠르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곧 현실을 마주할 것지만, 그 현실을 부정할 것이다. 기억을 지우고, 현실을 왜곡하며, 끝내 자신을 신화로 포장하려 할 것이다. 내란은 종식되지 않았다.
인용된 여론조사 개요. 한국갤럽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005명 대상 전화면접 조사.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응답률은 14.9%.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
▲ 윤석열 전 대통령이 1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국군의날 시가행진 중 세종대왕상 앞 관람 무대에서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다. 2024.10.1 ⓒ연합뉴스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4일 헌법재판소가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한 데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잘된 판결’이라고 평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국갤럽]에 따르면, 지난 8~10일 전국 유권자 1,005명에게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물은 결과 69%가 ‘잘된 판결’, 25%가 ‘잘못된 판결’이라고 답했다. 7%는 의견을 유보했다.
[자료출처-한국갤럽]
모든 지역, 그리고 70대 이상을 제외한 모든 연령대에서 ‘잘된 판결’이라는 응답이 과반을 넘었다.
성향별로 ‘보수’(295명)에서는 39%가 ‘잘된 판결’이라고 응답했다. “헌재 선고 직전인 지난주 보수층에서의 탄핵 찬반이 22%:74%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들 중 일부는 선고 결과를 수용한 것”이라고 [한국갤럽]이 풀이했다.
‘진보’(254명) 96%, ‘중도’(341명) 80%가 ‘잘된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 탄핵 심판 관련 6개 기관에 대한 신뢰 여부를 물은 결과 헌법재판소에 대해서는 61%가 ‘신뢰한다’, 31%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51%:38%, 경찰 47%:40%, 법원 46%:44%,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32%:55%, 검찰 25%:63%로 나타났다.
오는 6월 3일 선출될 ‘21대 대통령’이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는 ‘경제 회복/활성화’(48%)가 꼽혔다.
‘국민 통합/갈등 해소’(13%), ‘민생 문제 해결/생활 안정’(9%), ‘계엄 세력 척결’(8%), ‘외교/국제관계’(7%), ‘검찰 개혁’, ‘국가 안정화’(이상 6%), ‘정치 개혁/여야 협치’, ‘저출생 대책’(이상 5%) 등의 응답이 나왔다.
[한국갤럽]은 “‘경제 회복/활성화’는 전 연령대(50대 63%; 20대 25%)에서 가장 많이 언급됐고, ‘국민 통합’은 상대적으로 남성, ‘민생/생활 안정’은 여성이 더 바랐다”고 분석했다. ‘저출생 대책’은 20대, ‘계엄 세력 척결’과 ‘검찰 개혁’은 40·50대에서 두드러졌다.
이동통신 3사 제공 무선전화 가상번호에 의거 전화조사원 인터뷰(CATI) 방식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3.1%p(95% 신뢰수준), 응답률은 14.9%(총통화 6,724명 중 1,005명 응답 완료). 더 자세한 사항은 [한국갤럽]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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