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전투기 2대가 6일 훈련 중 경기 포천 일대 군부대와 민가에 폭탄 8발을 잘못 투하해 15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고가 났다. 7일 아침 주요 종합일간지는 해당 사건을 모두 1면 기사로 배치했고 ‘초유의 사태’라며 군의 오폭을 지적했다. 전투기가 훈련 중 오폭 사고를 내 부상자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민간인과 군인을 합쳐 15명이 다쳤고 이 중 2명은 중상을 입었다. 군 당국은 오폭 사고가 발생한 뒤 1시간 37분이 지나고서야 사고 소식을 언론에 알려 늦은 대응 역시 비판을 받고 있다. 공군 관계자는 “공군의 탄이 맞는지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다”는 입장이다.
다음은 7일 아침 발행되는 전국 단위 주요 종합 일간지 1면 기사 제목이다.
경향신문 <민가에 폭탄 ‘날벼락’ 군 100분 뒤에야 “오폭”>
국민일보 <어이없는 전투기 오폭…포천 민가 ‘날벼락’>
동아일보 <전투기 2대, 폭탄 8발 민가 오폭…軍 “좌표 잘못 입력”>
서울신문 <초유의 민가 오폭 포천 민가 덮쳤다>
세계일보 <포천 민가에 초유의 전투기 오폭>
조선일보 <민가에 폭격 나사빠진 軍>
중앙일보 <민가 덮친 폭탄 8발…군 수뇌부, 30분간 몰랐다>
한겨레 <민가에 전투기 오폭…15명 중경상 ‘초유의 사태’>
한국일보 <전투기, 민가에 8발 오폭…“좌표 잘못 입력”>
▲7일 한겨레 1면.
공군 전투기 2대가 6일 훈련 도중 폭탄 8발을 잘못 발사해 민가 지역을 덮치는 사상 초유의 오폭 사고에 대해 군은 “조종사가 실수로 좌표를 잘못 입력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6일 오전 10시 4분쯤 공군 KF-16 전투기 2대에서 투하된 공대지 폭탄 8발이 사격장과 8㎞가량 떨어진 경기 포천시 이동면 민가 지역에 떨어져 폭발했으며 15명 부상자 가운데 10명이 병원으로 실려갔고 중상은 2명, 경상 13명이다.
이영수 공군참모총장은 “공군은 이번 비정상투하 사고를 엄중히 인식하고, 철저히 조사해 문책한 후 다시는 이러한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주민 여러분이 입은 정신적·신체적·재산상 피해에 대해서는 최대한 보상해드릴 것”이라고 밝혔다.
▲7일 한국일보 1면.
공군 관계자는 1번기 좌표가 잘못 입력됐다고 했지만 언론은 2번기도 오폭을 했기에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일보 1면은 “하지만 조종사가 실제 사격까지 3차례 좌표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 데다, 좌표를 틀리게 입력한 1번 전투기는 물론 제대로 입력한 2번기도 민간 지역에 폭탄을 떨어뜨려 의문을 남겼다”며 “공군은 곧바로 사고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정확한 원인 조사에 나섰다”고 전했다.
한국일보는 1면 기사에서 “2번기에는 1번기와 달리 정확한 좌표가 입력돼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이어 “실사격 훈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조종사 개인에게 모든 확인 의무가 주어지는 허술한 확인 절차의 문제점이 이번 사고로 고스란히 드러났다”며 “가장 중요한 좌표 입력이 제대로 됐는지 여부는 조종사 본인 외에 누구도 확인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한 언론은 군 당국의 늦은 대응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1면 기사에서 “군 당국은 오폭 사고가 발생한 뒤 1시간37분이 지나서야 사고 소식을 언론에 알렸다”며 “늑장 대응 비판이 제기된다”고 전했다. 관련해 공군 관계자는 “공군의 탄이 맞는지 등 정확한 확인이 필요했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역시 1면 기사에서 “군이 사고 발생 100여분이 지나도록 별다른 공지를 하지 않아 ‘늑장 대응’ 지적도 일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2면 기사 <좌표 타이핑 실수, 고칠 기회 3차례 놓쳐…표적 8km 밖 민가 오폭>에서 “조종사는 이 과정에서 입력된 좌표가 정확한지를 확인해야 하고, 비행 중에도 이를 거듭 확인하도록 돼 있다. 좌표 지점에 도착하면 맨눈으로 표적 확인도 해야 한다고 공군은 설명했다”며 “최소 세 차례 이상 표적 좌표가 정확한지 확인해야 했지만 이 같은 절차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셈”이라 전했다.
이어 “항공기 관제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도 따져볼 대목”이라며 “두 전투기는 정상 투하 시 비행 경로에서 다소 벗어났고, 이는 레이더에도 포착됐다고 한다. 항공기 관제를 통해 예정 항로를 벗어난 두 전투기에 경로 이탈을 알렸다면 오폭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고 전했다.
▲7일 동아일보 2면.
한겨레 “내란 사태에 어처구니 없는 사고까지 더한 군 어떻게 믿나”
언론은 이날 사설을 통해 지난해 연말 계엄 이후 군에 대한 좋지 못한 시선이 있는데 이 와중에 생긴 오폭 사태까지 벌어졌다며 군의 기강해이 등을 지적했다. 경향신문은 7일 사설 <한·미연합훈련 민가 오폭, 군 기강해이 철저 점검해야>에서 “윤석열이 벌인 12·3 내란으로 군 리더십이 사실상 공백 상태인데도 오히려 훈련 규모를 키움으로써 한반도 긴장을 조성하는 것이 타당한지, 국민은 불안하다”며 “지난해 수류탄 투척 훈련과 군기 훈련 도중 발생한 훈련병 사망 등 군 기강 해이와 안전 불감증으로 인한 사고들이 빈발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민일보도 이날 사설 <초유의 전투기 오폭 사고…군 기강 다잡는 계기 삼아야>에서 “지난해 연말 느닷없는 계엄 사태 이후 군에 대한 국민의 시선이 곱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사고인 만큼 군은 기강을 다잡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 전했다.
서울신문도 <민가 폭탄 날벼락까지… 안보 불안에 잠이 안 올 지경인데> 사설에서 “계엄에 가담한 김용현 전 장관이 사표를 낸 이후 국방부 장관 공석이 근 석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며 “여기에 계엄 수뇌부 청문회와 사법처리 과정에서 군의 명예와 기강이 심각하게 흔들리면서 군의 사기도 떨어질 대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세계일보 <한·미 훈련 중 전투기 오폭 15명 부상… 군 제정신인가> 사설은 “공군은 사고 초기부터 소방 당국에서 전투기 오폭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사고 발생 후 1시간 40분이 지나서야 간단한 사실관계를 국방부 출입기자들에게 문자로 공지했다”며 “전투기 오폭 사실을 인지조차 못 하다가 언론 보도를 접한 뒤에야 진상 파악에 나선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사실이라면 군의 기강해이가 심각하다는 방증이다. 군이 제정신인지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7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이날 사설 <전투기 훈련 중 초유의 민가 오폭, 원인 철저히 규명해야>에서 “조종사가 좌표를 잘못 입력한 이유가 뭔지, 좌표를 재차 확인하는 절차는 없었는지, 나아가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기강이 해이해진 건 아닌지 전반적으로 점검해야 한다”고 전했다.
한겨레는 사설 <비상계엄 이어 전투기 오폭 사고, 군 왜 이러나>에서 “가뜩이나 윤석열 대통령의 군을 동원한 ‘12·3 내란 사태’로 국민들의 시름이 깊은 터에 어처구니없는 사고까지 더하다니, 이런 군을 믿고 국민들이 어떻게 밤잠을 이루겠는가”라며 “12·3 내란 사태로 국민들은 지칠 대로 지쳐 있다. 이유야 어쨌든 12·3 내란에도 군이 동원됐다. 군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군으로 인해 국민이 안심하고 지낼 수 있다. 그런데 군 때문에 국민이 불안해서야 되겠는가”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발 관세 위기, 한국 리더십 공백으로 위기 심화 우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대한 군사 지원을 거론하며 “한국의 평균 관세율이 4배 높다”고 발언해, 언론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안보를 볼모로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을 인상 등 압박을 본격화할 것이라 예상했다. 게다가 한국 정치 상황으로 인해 대응 공백이 있어 위기가 더욱 심화될 것이라 우려했다.
동아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관세 막무가내’ 트럼프… ‘상견례’도 못하는 한국>을 배치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12일까지 불과 5일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탄핵 정국 장기화로 인한 대응 공백으로 한국이 ‘트럼프발 태풍’을 직격타로 맞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악관은 5일(현지시간)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자동타 관세 부과를 한 달 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한국과 함께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가 예고된 일본, 상호관세 부과 대상으로 거론되는 인도 등도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관세 면제 등을 논의했다.
동아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국정 리더십 공백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은 트럼프 행정부와 수시로 관세 등 현안을 논의할 상설 고위급 채널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관세 면제를 논의하기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기로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일본이나 호주 등 주요국이 정상 외교를 통해 발빠른 대미투자를 약속하며 관세 면제를 요구한 것과 달리 한국은 관세 문제 등을 논의할 실무급 협의체도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라 전했다.
서울신문은 이날 사설 <트럼프의 오해, 리스크 첩첩… 한미 소통 채널 강화 고삐를>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쏟아낸 폭탄성 발언들과 관련해 통상 리더십을 복원하고 한미 소통채널을 강화하는 작업이 더 시급해졌다”고 언급했다.
조선일보는 이같은 트럼프의 압박을 언급하며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 심판이 늦어진다며 헌재가 총리 복귀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사설을 내놨다. 조선일보는 사설 <헌재, 통상 전문가 한 총리 복귀 시간 끌면 안 돼>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을 거론하며 청구서를 내밀기 시작했다”며 “미국은 대미 무역 흑자가 큰 나라부터 국가별 협상을 시작해 4월부터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협상할 수 있는 ‘골든 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런 시기에 통상 전문가로 주미 대사까지 지낸 한 총리가 두 달 넘게 발이 묶여 있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라 전했다.
정성우 방첩사령부 1처장이 10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계엄 대비 문건과 관련한 질의에 답하고 있다. 2024.12.10. 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당시 검찰이 국군방첩사령부 측과 전화 통화를 하고 대검찰청 소속 고위급 검사들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과천청사로 출동한 정황이 공개됐다. 당시 여인형 방첩사령관이 정성우 방첩사 1처장에게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니 중요한 임무는 검찰과 국정원에게 맡기고 그들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은 이미 지난해 12월 경찰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을 통해 전해진 바 있으나 검찰이 실제 개입한 정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 '윤석열 내란 진상조사단'은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과 국정원이 12·3 내란에 직접적으로 개입했다는 자료와 제보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단장을 맡고 있는 추미애 의원은 "내란 진상조사단에서 아주 중요한 제보를 받고 확인을 한 사실을 알리겠다"면서 "내란 당일에 대검 고위급 검사가 방첩사에 연락을 했고 결국 선관위에 출동했는데도 검찰은 '내 식구 감싸기'로 관련 수사를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진상조사단에 따르면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얼마 전인 오후 8시 30분쯤 여인형 방첩사령관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에게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에서 올 거다. 중요한 임무는 검찰과 국정원에서 할 거니 그들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정 처장은 계엄 선포 뒤인 오후 11시 50분쯤 방첩사 대령 8명에게 같은 명령을 하달했다. 당시 배석한 방첩사 신원보안실 중령은 이를 꼼꼼히 메모까지 했고 수사기관에 그대로 제출했다고 한다. 정 처장에게 지시받은 방첩사 인원 중 대령 4명이 검찰 및 국정원 개입에 관해 진술한 내용을 진상조사단이 확보했는데, 다음과 같다.
A 대령 : 정성우 처장이 8명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검찰과 국정원을 언급한 사실이 있음.
B 대령 : 선관위 출동을 앞두고 회의 과정에서 서버를 확보하면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고, 인계해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음.
C 대령 : 계엄 선포 이후, 선관위 출동 전에 정성우 처장이 검찰과 국정원을 언급했음.
D 대령 : 선관위에 가서 서버를 확보하면 검찰과 국정원이 올 거다, 거기에 인계해 주면 된다는 지시를 받음.
여인형 방첩사령관의 선관위 관련 진술.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정성우 방첩사 1처장은 계엄 당시 출동할 부하들에게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다" "중요한 임무는 검찰 등에 맡기고 이후에 지원하면 된다"고 알렸다. JTBC 뉴스 화면 갈무리
이 같은 방첩사 대령 4명의 진술은 여인형 사령관이 정성우 처장에게 지시했다는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여 사령관의 지시와 정 처장의 명령 하달 후, 자정을 넘긴 12월 4일 0시 37분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소속 박모 선임과장(부장검사급)이 방첩사 송모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1분 22초 정도 통화를 했다. 이어 0시 53분쯤 방첩사 대령은 국가정보원 과학대응처장과 약 2분 2초간 통화했다.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은 디지털 포렌식과 거짓말 탐지기 조사, DNA 분석, 사이버범죄 수사 등을 하는 부장검사급 고위 검사이고, 국정원 과학대응처장은 국가안보수사국 소속 고위공무원으로 사이버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진상조사단 소속 박선원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선임과장, 방첩사 대령, 국정원 과학대응처장 간의 통화 내역은 처음 밝혀진 것으로, 그 한밤중에 누구의 지시에 의해 대검 선임과장은 왜 방첩사 대령에게 전화를 걸었는지,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 또 어떤 실행 계획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서영교 의원은 "검찰과 법무부가 개입되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했고, 검사장 출신인 양부남 의원도 "경찰이 신청한 김성훈 경호차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검찰이 왜 그토록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기각했는지 그 이유와 전모가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고 자신했다.
진상조사단은 나아가 "검찰, 방첩사, 국정원 간의 한밤중 통화에 이어 12월 4일 새벽에 대검찰청 과학수사부 고위급 검사 2명이 과천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주요 제보까지 확인됐다"면서 "무엇보다 선관위로 출동한 고위급 검사 2명 중 1명은 방첩사 대령과 통화한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이라고 한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검 고위 검사가 방첩사 대령과 소통한 후에 선관위로 출동한 것으로, 12·3 내란 관련 실질적인 검찰 개입이 드러났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들 고위 검사가 선관위에 도착했는지까지는 확인되지 않았고 출동만 확인됐다고 부연했다.
민병덕 의원은 "그런데 김용현, 윤석열 공소장에는 이 부분과 관련해 국정원은 나오지만 검찰은 나오지 않는다. '국정원과 수사기관 등' 이렇게 나온다"며 "제가 내란 국정조사 특위에서 다섯 번 질의를 했지만 검찰과 법무부 측은 모두 본인들이 조사했는데 그런 사실이 없다, 뜬소문일 뿐이라고만 했다"고 강한 의문을 제기했다. 이어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고위급 검사 2명이 왜 출동했는지, 추가적으로 과학수사부 소속 수사관은 총 몇 명이나 출동했는지, 누구의 지침을 받았는지 등이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져야 한다"면서 "이처럼 검찰의 12·3 내란 관련 개입이 명백히 드러난 만큼 수사기관은 검찰 개입 여부를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밝히고, 국힘당은 특검을 즉시 수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모습. 2021.6.14 연합뉴스.
대검찰청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 연합뉴스
진상조사단 측은 계엄 당시 검찰이 방첩사로부터 중앙선관위 서버를 넘겨받아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음모론을 뒷받침하는 데이터 조작을 기획한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의 직할 조직인 '국가디지털포렌식센터'는 국내 최대 규모의 포렌식 수사 인력과 역량을 갖춘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러나 검찰이 선관위로 이동하기도 전에 국회가 새벽 1시 신속하게 계엄 해제 결의를 하면서 '미수'에 그쳤을 가능성을 추정해볼 수 있다. 당시 방첩사 병력도 선관위 과천청사 인근에서 대기하다가 국회에서 계엄이 해제되자 곧 철수했다.
그러나 대검은 이날 민주당 진상조사단 기자회견 뒤 언론 공지를 통해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방첩사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지원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고 다른 기관을 지원한 사실도 없음을 재차 밝힌다"고 했다. 대검은 "해당 과장은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비상소집으로 대검에 출근해 사무실에서 대기하던 중 평소 친분이 있는 방첩사 대령이 걱정돼 사적으로 먼저 전화를 해 어떤 상황인지와 함께 안부를 물었고, 상황이 종료돼 귀가한 후 다시 전화로 건강을 잘 챙기라고 당부했을 뿐"이라며 "방첩사로부터 지원을 요청받거나 선관위에 출동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또 그가 지난해 12월 4일 0시 5분에 대검 청사에 들어와 2시 46분쯤 나간 것으로 출입 기록이 확인됐다고 전했다. 대검은 "특히 해당 과장의 전담 업무는 영상녹화 조사, 문서 감정, 심리 분석 등 법과학 분석 분야"라면서 "컴퓨터 서버 등에 대한 디지털 포렌식 업무는 해당 과장이 아닌 다른 과장(디지털수사과장)의 소관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원도 언론에 배포한 공지문에서 계엄 당시 통화했다는 방첩사 대령과 국정원 처장에 대해 "평소 교류가 있던 선후배 사이"라며 "방첩사 대령이 국정원 직원에게 '당시 상황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지' 단순 문의하는 개인적인 통화를 한 것"이라고 대검과 흡사한 해명을 내놨다. 그러면서 "방첩사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거나 선관위 출동 등 어떠한 조치도 한 것이 없음을 명백히 밝힌다"고 했다.
내란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이르면 다음주에 내려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종합일간지 논설위원들이 일제히 칼럼을 내고 윤 대통령을 비판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이 음모론에 기반한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탄핵심판 과정에서 승복 의사를 밝히지 않으면서 사회·경제적 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중앙일보와 한겨레는 윤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게 독재자의 모습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앙 “尹, 짓밟힌 사법질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경향신문·한겨레 등 진보성향 언론사 논설위원은 물론 동아일보·중앙일보 등 보수성향 언론사 논설위원들은 6일 칼럼을 내고 윤 대통령이 승복 메시지를 내지 않고 사회 혼란을 부추겼으며, 경제적 손실을 불러왔다고 비판했다. 다만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과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렬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은 <계엄보다 더 나쁜 것>에서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이후 한국에 찾아온 사회적 혼란을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위원은 “그의 탄핵심판 최후진술은 국민 기대와 크게 달랐다. 무엇보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어떻게 나든 승복하겠다는 의사 표명이 없었다”며 “그래 놓고는 서부지법 난동자들과 관련해 ‘저의 구속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청년들도 있다’며 ‘너무나 마음이 아프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이 부린 난동, 짓밟힌 사법질서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위원은 독재자를 감별할 수 있는 구체적 신호로 헌법 부정, 선거 불복, 지지자들의 폭력행위에 대한 암묵적 동조 등이 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윤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와 지지자들 사이에서 언급되는 내용과 닮았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는 신호가 우리 주변에서 깜박이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 위원은 “12·3 계엄은 한국 민주주의의 흑역사로 남을 것이다. 계엄은 나빴다”며 “계엄 이후 분열과 폭력의 선동과 법치의 부정은 더 나쁘다. 국민은 갈라지고, 법치는 위태로워졌다. 이 나라를 어디로 몰고 가려고 이러나”고 비판했다.
장택동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칼럼 <아무 일도 없었던 게 아니다>에서 “국회 등 국가기관이 실제로 전복되지 않았더라도 헌정질서가 무너질 위험이 발생했다면 내란죄가 성립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라며 “이번 계엄은 어땠나. 국회 경내에는 군용 헬기와 무장 병력이 투입됐고, 선관위에도 군이 들이닥쳤다… 다수의 국민이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고 본다”고 했다. 장 위원은 “법적 문제만 있는 게 아니다. 계엄에 따른 경제적 손실이 6조 원 이상이라고 한국은행은 추산했다”며 “계엄 이후 증폭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데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고 했다.
동아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송평인 칼럼니스트는 동아일보 칼럼 <민주당 폭주와 윤석열 탄핵 사이에서>를 통해 “윤 대통령에 대한 처벌은 형사재판으로도 가능하고 사실은 그게 진짜 처벌이다. 탄핵이란 본래 3심까지 가는 형사처벌에 앞서 단심으로 공직자를 파면하는 신속 절차일 뿐”이라며 “탄핵이 기각되더라도 내란 혐의의 경우 형사재판은 진행된다. 윤 대통령이 탄핵으로 당장 파면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처벌을 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과 중국 선거 개입 음모론은 중국인·화교에 대한 혐오를 불러왔다. 조선일보가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20대의 72%, 30대의 68%가 중국을 경계대상이나 적대 대상으로 보고 있다. 중국의 비호감도는 북한과 비슷한 수준이다.
▲6일 경향신문 칼럼
이명희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학교 가기 두려운 중국인 유학생들>에서 “부정선거 의혹과 중국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황당무계한 음모론이 결합하면서 혐중 정서에 제동이 걸리지 않고 있다”며 “윤석열 지지자들의 마녀사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가늠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 위원은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가는 곳마다 중국인들이 탄핵소추에 찬성한다고 나선다’고 발언한 것을 전하면서 “리더십 공백으로 힘든 상황에서 공당임을 망각한 듯한 여당의 혐중 선동은 대중외교의 걸림돌만 될 뿐”이라고 했다.
박현 한겨레 논설위원은 <나라 망가뜨리는 윤 대통령의 교활한 책략>에서 “윤 대통령의 자기중심주의는 상상을 초월한다. 자신을 지켜주는 경호원과 정당한 공무 집행을 하려는 경찰이 어떻게 되든, 국민들이 두 진영으로 갈라지든 말든, 경제와 외교가 어떻게 되든 별 상관하지 않는다는 태도”라며 “자신은 털끝만큼도 잘못한 게 없으며, 모든 게 야당·노동단체 등 반국가세력이 북한의 지령을 받아 자신을 끌어내리려는 공작이라는 것이다. ‘대중은 작은 거짓말보다 큰 거짓말을 더 빨리 믿는다. 충분히 반복하면 조만간 믿게 된다’는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의 선동 교본을 떠올리게 한다”고 했다.
박 논설위원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건 이런 민주주의 파괴자를 감싸고도는 여당의 행태다. 일부 의원이 ‘헌법재판소를 쳐부수자’는 망발을 해도 지도부는 내버려둔다”며 “그게 제 무덤을 파는 행위인 줄도 모른다. 무책임하고 아둔한 국민의힘 지도부 때문에 한국 민주주의는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6일 조선일보 칼럼
김창균 조선일보 논설주간은 <헌재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칼럼에서 이미 헌재 결정은 나왔을 것이며, 최근 탄핵 찬성·반대 집회 열기가 뜨겁지만 헌재 결정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 주간은 “이 문제만을 심사숙고해 온 재판관들의 입장은 진작에 결정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인용 또는 기각 시나리오에 대해 어떤 논리로 결정문을 구성해야 좋을지 다듬는 과정일 것”이라며 “(탄핵 찬성·반대 집회 참가자) 양측 모두 거리의 열기로 헌재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믿는 분위기다. 대통령 운명을 결정지을 헌재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고 했다.
김창균 주간은 “인용, 기각 어느 한쪽에 온몸의 무게를 싣고 있다가 반대쪽 결론이 나오면 방향 전환을 하지 못하고 뒤뚱거리며 균형을 잃게 된다”며 “게다가 과열된 거리 분위기는 거부감을 일으켜 민심에 부정적인 영향만 줄 뿐”이라고 했다.
한국 때리는 트럼프, “돈 뜯을 상대로 집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때리기가 본격화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한국 안보를 도와주고 있음에도 한국이 미국에 관세를 높게 부과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 관세가 미국의 4배”라고 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고 대미 수입품 평균 관세율이 0.79%에 그치며, 관세 환급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0%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이 전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부과하는 평균 최혜국 대우 관세(13.4%)가 미국(3,3%)보다 높다는 것을 문제삼은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과 미국은 FTA가 체결됐기에 이 관세율이 적용되지 않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을 비판 대상으로 삼으면서 ‘트럼프 태풍’이 찾아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중앙일보는 1면 <“한국관세, 미국의 4배” 트럼프 ‘내맘대로’ 청구서> 보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취임 전부터 우려했던 관세와 방위비 문제를 사실상 동시에 거론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에 ‘청구서’를 내밀겠다는 제스처를 취한 셈”이라고 했다.
▲6일 조선일보 2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 관세를 문제삼으며 동시에 한국과 일본이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에 참여해 수조 달러 투자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한국 정부가 최종 확정하지 않은 사안이다. 조선일보는 2면 <엑손모빌도 발 뺐는데… 달갑지 않은 알래스카 초대장> 보도에서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은) 수익성을 내기 쉽지 않다는 우려가 크다”며 “앞서 엑손모빌 등이 해당 사업에서 발을 뺴던 2016년 당시,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업체인 우드매켄지는 ‘세계에서 가장 경쟁력이 낮은 프로젝트 중 하나’라고 혹평했다”고 했다.
조선 기술 등 한국이 가진 카드를 가지고 트럼프 측과 협상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일보는 <뜬금없이 “관세 4배”… 결국 한국 겨눈 트럼프> 사설에서 “신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트럼프 시대 뉴노멀이지만, 우리 정부와 기업이 적극적인 대응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 조선업 부흥 의지를 밝힌 것은 세계 최고 조선기술을 보유한 한국 입장에선 협상 카드가 될 수도 있다. 트럼프의 무차별 공세에 맞서려면 우리가 가진 것을 공격적으로 활용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했다.
▲6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사설 <‘한미 원전 동맹’ 모델, 트럼프 시대 돌파구 될 수 있다>에서 “한미 간 조선 상생 모델을 만들면 대미 통상 협상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며 “한미 원전 기업들이 해외 원전 수출에 힘을 합치기로 한 ‘한미 원전 동맹’은 트럼프 시대 한미 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조선·반도체·에너지 분야에서도 원전 동맹과 같은 상생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트럼프 파고를 헤쳐가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은 변수다. 동아일보는 사설 <트럼프 “韓 안보 돕는데 관세는 4배” 또 억지… 곧 닥칠 ‘태풍’ 예보>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까지 끊어 백기를 들게 만들면서 유럽 국가들을 충격에 빠뜨린 트럼프 대통령”이라며 “이제 아시아로 눈을 돌려 새 표적을 찾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한국이 탄핵정국의 리더십 부재 상황이라지만 언제까지 유예기간을 줄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노태악 선관위원장 사과문 발표에 “마지못해 사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진정성이 의심받는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한국일보는 사설 <마지못해 사과하고, 떠밀려 직무배제하는 선관위>에서 “(선관위는 문제가 발견된 직원) 일부는 논란이 불거졌을 당시 잠시 대기 발령 조치를 했다가 여론 감시가 시들해지자 슬그머니 복귀시켰다”며 “여론과 정치권 압박에 떠밀린 늑장 사과에 국민들이 얼마나 신뢰를 보낼지 미지수다. 여기에도 특혜 자녀에 대한 조치는 담기지 않았다”고 했다.
▲6일 중앙일보 사설
중앙일보는 <선관위원장의 뒤늦은 사과…뼈를 깎는 쇄신 따라야> 사설에서 “일반 행정부처에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면 곧바로 장관이 경질될 뻔한 사안이다. 그런데 선관위는 보도자료로 어물쩍 넘어가려다 뒤늦게 분위기 파악을 했는지 위원장이 직접 나섰다”며 “선관위가 조직의 적폐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라고 했다. 중앙일보는 선관위 감시를 위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경향신문 역시 사설 <선관위원장 대국민 사과, 국회는 합리적 통제방안 마련해야>를 내고 선관위 통제방안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경향신문은 “선관위에 대한 불신은 선거제도에 대한 신뢰를 흔들리게 해 대의민주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위원장의 사과가 철저한 성찰과 쇄신, 합리적 통제 방안 마련의 계기가 돼야 한다”며 “정치권은 선관위 개혁 논의가 국론 분열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선 안 된다는 점을 깊이 새겨야 한다”고 밝혔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방심위 직원의 류희림 민원사주 의혹 양심고백 “재조사해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이 이해충돌 사실을 인지하고도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보도 심의에 나선 것으로 드러났다. 류 위원장 ‘민원사주’ 의혹 핵심관계자가 지난 5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심의 가책과 심리적 고통을 많이 겪었다”며 진술을 뒤집은 것이다. 장경식 방심위 소장은 류 위원장 동생이 방심위 민원 신청을 했다는 것을 류 위원장에게 사전 보고했지만 지난해 국회에서 ‘보고하지 않았다’고 거짓말했다고 밝혔다. 류 위원장은 이 직원이 국민권익위원회 조사에서 ‘류 위원장에게 사전보고하지 않았다’고 진술하자 ‘고맙다. 잘 챙겨주겠다’고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6일 경향신문 사설
이에 대해 경향신문은 <방심위 직원 양심고백, 류희림 ‘청부 민원’ 재조사해야> 사설을 통해 “친인척의 민원 접수 사실을 미리 알지 못했다는 류 위원장의 주장이 거짓임이 드러난 것”이라며 “방송의 공공성을 위한 심의 업무를 맡은 방심위가 내부 심의 절차까지 무시해가며 권력 비판 보도를 징계한 건 언론자유를 훼손시킨 폭거”라고 했다.
경향신문은 민원사주 의혹 관련 ‘판단 불가’ 결정을 내린 권익위에 대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나선 제보자를 보호해야 할 권익위와 경찰은 류희림 봐주기로 일관했다”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여부를 파악할 수 없다는 권익위의 논리는 무너졌다. 권익위는 즉각 재조사에 나서고, 경찰도 청부 민원을 통한 업무방해 혐의 수사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밝혔다.
▲6일 한겨레 8면
한겨레는 8면 <방심위 간부 “류희림에 ‘가족 민원’ 보고”… 류 거짓말 드러나> 보도에서 “이번 증언으로 (류희림 위원장이) 법망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까지 드러났다”며 “류 위원장에게 (친인척 민원 신청 사실을) 대면 보고한 당사자의 진술이 나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당대의 지성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월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간담회에 앞서 참석자와 대화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최 권한대행, 김병환 금융위원장연합뉴스
금융시스템은 금융 및 실물거래를 뒷받침하고 한 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는 핵심적인 경제 제도 중 하나이다. 금융시스템은 ▲ 금융 거래가 이뤄지는 금융시장 ▲ 금융 거래를 중개하는 금융기관 ▲ 금융 거래를 지원하고 감시하는 금융 하부구조(금융 인프라)로 구성된다. 금융시스템은 자금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에 자금 이전을 원활하게 함으로써 금융 및 실물거래를 활성화하고 개인 후생 및 기업 이윤의 증대를 통해 한 나라의 경제 발전에 기여한다.
하지만 2025년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이러한 기능을 적절히 수행하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다. 한국의 금융시스템은 그동안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규모를 확장했지만, 성장에는 기여하지 못하고 자산 불평등을 확대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금융사는 역대 최고 수준의 수익성을 향유하고 개개 금융사의 건전성은 제고되었는지 모르지만, 장기적인 경제성장을 유도하고 가장 생산적인 부문으로 자금이 흐르도록 돕고 있지 못한다. 오히려 금융시스템 내 금융자산은 매우 비생산적 부문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기서 생산적이라는 것은 생산과 투자, 고용, 구매 등 기업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자금을 말한다. 그렇지 않은 부문은 비생산적이라 할 수 있는데, 비생산적인 부문이라 해서 모두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을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가계대출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개인의 노동생산성을 향상에 기여하는 금융은 사회적으로 유용하다. 하지만 소유권 거래와 관련된 부문에 투입되는 자금은 비생산적이다. 아파트를 짓는 데 처음 들어가는 자금은 생산적이다. 건축자재를 구입하고, 건설노동자 임금으로 지급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지어진 아파트를 구매하는 데 들어가는 대출은 GDP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생산적인 소유권의 이전이다.
상장이나 신주발행 시 주식매입 대금은 생산적이지만, 2차 유통시장에서 거래되는 증권의 소유권 이전을 돕는 금융은 그 거래가 자주 일어나고 거래 규모가 커지더라도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다. 물론 유통시장이 있기 때문에 발행시장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금융자산 규모는 커진다. 금융기관 간 거래, 파생상품 발행과 판매가 계속되면 실물자산 증가와 관계없이 금융자산 규모는 확대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한국만 가계부채 늘어
▲정부가 무주택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구입·전세자금 정책대출 금리를 수도권에 한정해 0.2%포인트 올린 2월 23일 서울 한 은행에 주택담보대출 금리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문제는 현재 금융의 대부분이 실물 생산자본의 확충을 위해 사용되기보다 소유권 이전 거래에 따른 이득을 노리는 데 동원된다는 점이다. 총금융자산 크기로 보면 금융의 규모가 2024년 3분기 말 현재 무려 2경 6015조 원에 달한다. GDP의 10.8배나 된다. 1975년 말 금융자산은 27.5조 원으로 당시 GDP 대비 2.62배였다. 금융자산의 증가가 실물경제 성장보다 훨씬 빨랐다. 팬데믹 기간이었던 2020년과 2021년에 각각 2180조 원과 2300조 원의 금융자산이 증가했다. 왜 팬데믹 기간 중 수도권 주택 가격이 2~3배 폭등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많은 나라에서 자국 금융시스템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국제결제은행(BIS) 등 국제 금융기구는 부동산 소유권 이전에 사용되는 가계부채의 과도한 증가가 결국 금융위기를 야기함으로써 마이너스 성장을 초래하고, 자산 불균형을 확대시킨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에 따라 가계부채 비중이 높았던 미국이나 영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OECD 회원국이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을 줄였다.
그런데 한국은 예외였다.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08년 이후에도 계속 상승했다. 아래 그림을 보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은 2016년 전후로 미국을 앞지르게 된다.
▲[그림] 한국과 미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1995~2024)BIS statistics
최근 들어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중이 다소 하락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국민계정 통계의 기준연도 개편에 따른 착시현상이다.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기준연도를 2015년에서 2020년으로 변경함에 따라 100.4%에서 93.5%로 6.9%p 낮아졌다. 국제금융협회(IIF) 통계를 보면 2023년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새로운 기준연도에 따르더라도 세계 34개 나라(유로 지역은 단일 통계) 중 가장 높다.
한국 금융의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비즈니스모델은 2025년 한국경제에 두 가지 도전과제를 던지고 있다.
첫째는 무엇보다 극심한 자산 불균형이다. 가계부채 대부분이 주담보대출 형태로 이뤄짐에 따라, 다시 말해 금융자산의 증가가 사회적으로 유용하지 않은 부문으로 집중됨에 따라 특정 지역 부동산가격이 폭등하게 되었다. '2020년 이전에 강남 지역 아파트를 샀는지' 여부가 사회적 신분을 결정짓게 되었다.
둘째는 가계소득 대비 부채원리금 상환 비율이 높아짐에 따라 처분가능소득이 줄고 국내 소비를 위축시켜 저성장을 가져온다. 1천만 명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여기에서 비롯된다.
주택담보대출 중심의 비생산적인 금융시스템 문제는 2000년대 초반부터 지적되기 시작했다. 지난 10년만 놓고 보면 박근혜 정부 후반기였던 2015년과 2016년에 가계부채는 각각 110조 원, 123조 원이 증가했다 (아래 표 참조). 전년 대비 가계부채 증가율은 각각 11.5%, 11.6%를 기록했다.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의 결과였다.
▲[표] 연도별 가계대출 증가 추이자료: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2023년 중 가계대출동향(잠정)’(2024. 1. 10) *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의 출처는 IMF Household Debt, Loans and Debt Securities.금융위원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문재인 정부 시절 가계부채 증가율은 이전 보수정부 시절에 비해 낮았다. 하지만 팬데믹이 발생했던 2020년과 2021년에 미국 연준을 비롯한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의 자금 공급에 따라 국내에도 엄청난 양의 유동성이 몰려들었다. 설상가상으로 저금리와 낮은 소비에 따른 저축 여력까지 겹쳐 돈이 부동산으로 몰림에 따라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낳았다. 보수정부는 금융산업의 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금융회사의 이익을 건드리지 않았고, 민주개혁정부는 금융의 생산적 기능을 확보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민간은행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적 이익추구(자산의 확대와 막대한 이자이익의 창출)에 대한 공공 통제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발독재 시절의 관치금융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공공 통제의 강화를 가로막은 측면도 있다.
은행이 로펌에 거액 자문료 지급하는 이유
▲금융위원회 권대영 사무처장이 2월 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2025년도 가계부채 관리방안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은행은 영업이익의 절반을 판매비 및 관리비로 사용하면서 거액의 광고비와 자문료 집행을 통해 금융산업의 사익 추구에 유리한 여론과 법률적·제도적 환경을 조성한다. 사외이사, 자문위원 위촉을 통해 학계와도 강력한 '친 민간 금융사' 이해관계를 형성하고 있고, 법무법인에는 거액의 자문료를 지급한다. 국내 1개 금융지주사가 특정 1개 대형 로펌에 지급하는 자문료가 연 2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금융시스템의 핵심 요소인 금융인프라(감독과 규제 포함)를 운영하는 '모피아'(과거 재무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는 금융산업이 추구해야 할 적절한 생산적 중개 기능의 필요성과 민간 금융사의 사적 이익 극대화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금융 관료 집단(+금융감독원 출신자)의 은퇴 후 고수입 보장'이란 집단적 이익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전에는 은행을 억압(financial repression)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개발 목표를 추구하며 자신의 집단적 이익을 관철시켰다면, 외환위기 이후에는 금융사의 사적 이익에 편승(regulatory capture)하면서 집단의 이익을 유지해 오고 있다. 그 결과가 금융시스템의 비생산적 작동이다.
국민, 신한, 하나, 우리은행 등 4개 시중은행의 총자산은 2024년 9월 말 현재 2420조 9000억 원이다. 2023년 명목 GDP 2236조 3000억 원의 108%에 달한다. 4개 은행의 자기자본금은 128조 4046억원에 불과하다. 자기자본금 대비 19배에 달하는 대출(신용창출)을 하고, 예대마진(예금과 대출의 금리차)으로 역대 최고의 수익을 올린다.
한국 금융시스템의 생산적 기능 강화와 이를 위해 주담보대출 중심의 비즈니스모델을 통제하는 것은, 한국경제의 성장과 불균형 완화를 위한 필수적인 과제라 할 것이다.
▲김용기 /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아주대 교수)김용기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용기 생산과포용금융연구회 대표는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에서 학부를 마치고,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학 석사, 국제정치경제학 박사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 주제는 '금융규제제도와 정책선택'입니다. 아주대 국제학부·국제대학원 교수로 국제통상과 국제투자이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문재인 정부 대통령직속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장관급)을 지냈습니다. 공저로 <한국경제 20년의 재조명> <한국경제가 사라진다>가 있고, 단독 저술로 <각국 기업지배구조의 결정요인 비교: 경로의존성과 정치·역사적 특수성>등이 있습니다.
4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위원장 양경수),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위원장 김동명)이 함께 ‘윤석열 대통령 파면’을 촉구했다.
이날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한 양 노총은 “윤석열은 노동조합을 탄압하고, 파업과 집회를 불법화하며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말살”하고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 3권을 철저히 짓밟았다”며 윤석열 즉각 파면을 요구했다.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은 “헌법재판소의 신속한 윤석열 파면 결정은 비상식적이고 폭력과 혐오가 난무하는 지금의 무질서를 바로잡는 수단이 될 것”이라며 “더 이상의 분열과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헌법재판소는 윤석열에 대한 신속한 파면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헌정 질서를 문란케 한 윤석열을 파면하는 것, 그리고 그를 추종하고 동조하는 세력들을 낱낱이 처벌하는 것이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공고히 할 것”이라 강조했다.
한국노총 김동명 위원장도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국민을 반국가세력으로 내모는 대통령, 말로는 법치를 외치며 법 위에 서려는 대통령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특히 “헌재의 파면 결정은 무너진 법치를 다시 세우고,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일상이 회복되는 첫걸음이며, 국민주권 존중의 시작이자,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로 세우기 위한 시작”이라며 “윤석열의 헌법과 법률 위반, 무엇보다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반인륜적 행태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단호한 철퇴를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4일 서울 안국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김동명(왼쪽), 양경수 위원장이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사진-민주노총]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윤석열 모형에 파면 스티커 붙이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에 ‘양대노총 윤석열 파면촉구 의견서’를 제출했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5일 ‘윤석열 탄핵심판 최종변론’을 끝낸 뒤 재판관 평의를 통해 파면 여부, 그 사유를 담을 결정문을 논의하고 있다. 다음 주께 결정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의사당에서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고 있다. 워싱턴/A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중심주의와 거래주의로 재편되기 시작한 국제질서의 폭풍이 한반도로 다가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일(현지시각) 집권 2기 첫 의회 연설에서 미국이 손해 보는 대표적 국가로 한국을 지목하며 “한국을 군사적으로 많이 도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종전 구상에 따르지 않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망신을 주며 압박한 뒤 군사 지원을 전면 중단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 역시 안보의 핵심인 주한미군 감축 등을 ‘카드’로 압박해,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릎을 꿇리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은 세상이 닥쳐온 것이다.
우선 트럼프 대통령은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비롯해, 한·미 연합훈련과 미국 전략무기 한반도 전개에 거액의 ‘청구서’를 내밀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미국은 2026년부터 5년간 적용할 제12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미국 대선 직전이던 작년 10월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기 때도 전략폭격기, 항공모함 등 전략무기의 한반도 전개 비용을 상세하게 계산해 지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는 그 비용을 한국에서 반드시 받아내려고 더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핵위협에 대응하려고 2023년 ‘워싱턴 선언’에 기초해 출범한 한·미 핵협의그룹(NCG)이 앞으로 유지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한·미 핵협의그룹의 핵심은 미국이 한반도에 전략무기를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북핵에 대응하는 한·미 훈련을 강화·실시하는 것인데, 이를 지속하려면 한국 정부가 거액의 청구서를 감당해야 하는 탓이다.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대해서도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 후보자는 4일 미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지난 6~8개월간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 그것이 지속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며 한국의 정치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라고 말했다. 타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무시하고 재협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관측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한국에 비용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는 주한미군을 대폭 감축하거나, 대중국 견제 역할을 강화하는 쪽으로 주한미군의 성격을 바꾸려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이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는 북한 위협을 방어하는 ‘붙박이’ 군대인 주한미군의 역할을 중국 견제를 강화하는 쪽으로 전환하고, 주한미군 지상군 전력을 축소해 전략적 유연성을 늘리려 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것은 중국과 직접 관련되는 문제여서 한국의 외교와 안보에 큰 도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전략가들은 중국을 미국 패권에 대한 핵심 위협으로 본다. 이에 따라 중국을 최대한 억제하려면 주한미군이 북한 방어에만 전념해서는 안 된다며, 대만해협이나 남중국해에서 중국 견제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이런 요구가 현실화할 경우, 중국은 강하게 반발할 것이고 한국은 미-중 사이에서 곤경에 처할 우려가 크다. 장용석 박사는 “트럼프 행정부의 전략을 잘 파악해 대비하면서 주한미군 역할 조정 부분 등에서 필요한 부분은 협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그와 동시에 전시작전통제권을 가져와 자체 억제력을 강화하고, 남북간의 긴장을 완화해 북한의 위협을 감소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세계관에서 동맹과 우방은 언제든 ‘버릴 수 있는 카드’가 될 것이라는 방기의 위험도 커지고 있다. 당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대한 압박을 높이겠지만, 대만 방어를 포기하는 대가로 중국으로부터 이익을 챙기는 거래를 할 수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미국이 동맹에 제공해온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수록 한국을 비롯한 동맹국에서도 핵무장론이 높아지고 있다. 최근에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지 않으면서도 유사시 즉각 핵무장에 나설 수 있는 ‘핵 잠재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제안도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재처리 시설이나 권한이 없는 한국으로선 핵 잠재력 확보도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여권 일각에서 나오는 사전투표 폐지 주장에 대해 “관리를 잘해야지, 사전투표를 왜 폐지하느냐”고 비판했다. 또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안을 주장하는 여권 대선 주자들을 향해서도 “얼마나 대통령이 하고 싶으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나”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홍 시장은 5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에 반대하며 단식 중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을 격려 방문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그는 “투표율을 높이고 모든 사람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사전투표 제도를 도입한 게 아니냐”며 “시시티브이(CCTV·폐회로텔레비전)를 설치하고 철저히 투표함 관리를 하도록 하면 되지 그걸 어떻게 지금 폐지하나”라고 했다. 이어 “미국 같은 경우에 투표를 한 달 전부터 한다”며 “사전투표를 폐지하자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극우 지지층 일부가 사전투표 과정에서 부정선거가 이뤄졌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장동혁 국민의힘 의원이 사전투표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권성동 원내대표가 “의원총회를 열어 논의해보겠다”고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홍 시장은 최근 페이스북 발언 등을 통해 윤 대통령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실시될 경우 출마하겠다는 뜻을 드러내고 있다. 그는 이날 출마가 거론되는 여권 주자들을 향한 견제구를 보내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 전후 상황을 담은 책을 출간하며 최근 정치 행보를 재개한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해 “당을 이렇게 망쳐놓고 양심이 있어야지, 나라를 이렇게 어지럽게해 놓고 무슨 쓸데없는 소리냐”고 비판한 게 한 예다.
또 한 전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자기희생’을 언급하며 차기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개헌에 나서겠다고 한 것에 대해서도 “수천억원을 들여서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대선을 하는데 3년 짜리 (대통령을) 뽑으라는 거냐”며 “얼마나 대통령이 하고 싶으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말했다. 이어 “말하자면 ‘내가 되어본들 너희들이 지겨울 테니까 3년만 하고 물러나겠다’는 소리 아니냐”며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을 어떻게 국민들이 대통령으로 뽑겠나”라고도 했다. 홍 시장은 자신의 개헌 구상에 대해선 “구상은 진작 다 해놓고, 정리해서 곧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해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에 반대하며 무기한 단식을 하고 있는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는 윤 대통령 탄핵 선고를 앞둔 헌법재판소를 공격하는 발언도 쏟아냈다. 홍 시장은 “(현재 헌재 심판은) 여론으로 하는 원님 재판이나 다를 바 없다”며 “여론에 따라가는 재판을 하는 것은 헌법재판관이 아니고 뒷골목 양아치나 하는 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나는 대통령이 잘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 했으나 처벌하더라도 적법 절차대로 하자는 말”이라며 “(헌재가) 지금 법 절차에 맞지 않게 탄핵을 하고 있다. 계엄 한번 잘못했다고 그걸 갖고 모든 적법 절차를 뒤흔들어버리고 있다. 저렇게 적법 절차를 하지 않으면 헌재는 폐지”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의 발호를 안팎에 과시했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극우세력의 음모론적 주장과 폭력적 양태가 거리를 채우고, 보수여당마저 끌려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현상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중국타도와 부정선거를 외치는 오늘의 극우파시즘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여당의 재집권이 저지돼도 극우파시즘의 폭주가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극우파시즘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간 여러 방면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연구자, 전문가들의 기고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극우 파시즘을 넘어 더 진보하고 진화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왜 파시즘인가?
윤석열이 벌인 무모한 내란 사태는 우리 사회에 심각한 불안과 갈등에 더해 더더욱 심각한 걱정거리를 안겨주었다. 그에 대한 탄핵과 심판으로 사태가 일단락될 것이라는 기대가 무색해지고 있다. 윤석열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1월 19일 서부지법 난동사태로 그 걱정이 더해졌다.
그 사태 직후 파시즘적 광기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대중의 폭력행위가 애국주의로 정당화되는 사태 가운데서 권력자와 그 집단이 벌인 패악 행위와는 또 다른 사회적 현상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파시즘’은 그 현상을 일컫는 개념어로 새삼 부상하였다. 기왕의 권위주의적 정치를 일컫는 ‘독재’라든지 ‘전체주의’ 또는 그와 관련된 이념적 경향으로서 ‘극우주의’ 등이 혼용되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히 해명되지 않는 사태를 일컫는 개념이다. 하지만 그 개념이 널리 통용되고 있음에도 그 실체가 딱 떨어지게 포착되는 것은 아니다. “파시즘은 어떤 것이면서 동시에 그와 반대되는 것이며, A이면서 동시에 A가 아니다”(José Ortega y Gasset). 파시즘의 개념 정의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다.
결국 우리가 그 실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등장한 파시즘의 현상을 주목할 수밖에 없다. 잘 알려진 대로 그 기원은 1920~30년대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주도한 파시스트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정작 파시즘을 말할 때 그 전형은 독일의 히틀러가 주도한 나치즘을 연상한다. 훨씬 파급효과가 컸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파시즘의 전형으로 여겨지는 나치즘은, 국가주의와 반공주의, 그리고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인종주의와 차별주의 등을 골자로 하여 전 사회를 강력하게 통제하는 체제를 구축한 데 그 특징이 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특기할 만한 양상을 덧붙인다면 그것이 단지 일부 집권 세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대중의 호응을 동반하였다는 점일 것이다. 그 파시즘 체제는 합법적 절차를 통하여 형성되었지만, 기존의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민주적 절차를 뛰어넘는 극단적 성격을 띠었다.
파시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대략 공통되는 양상을 신진욱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첫째 공동체를 위협하는 ‘적’에 대한 공포와 증오의 확산, 둘째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원하고 재건한다는 애국적 열정을 결집하는 대중행동과 조직화, 셋째 지도자들과 대중이 적으로 규정한 집단과 공공기관에 대한 물리적 공격, 넷째 보수 정치권과 기득권층의 묵인과 협력 하에 정치권력 획득, 다섯째 국가기구를 장악한 뒤에 대중을 억압하는 테러독재 체제의 수립.”(한겨레, 2025.2.12.)
더불어 기왕에 파시즘의 사회적 토양과 잠재력이 갖추어져 있는 터에 급기야 헌법기관을 공격하고, 이를 보수 정치세력이 묵인하는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파시즘 현상을 우려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이미 펼쳐지고 있던 극우 대중의 정치적 집회에 그치지 않고 공공기관을 공격하고 이를 일부 기존 정치세력이 사실상 옹호하고 있는 사태에서 그 위험한 징후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운동본부 등 보수단체 회원들이 1일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불법, 사기탄핵반대 3.1절 광화문국민대회를 하고 있다. 2025.03.01. ⓒ뉴시스
왜 극우 개신교인가?
극우 개신교는 어쩌다 그 음험한 사태의 중심에 서게 되었을까? 전광훈 목사가 주도하는 극우 개신교의 정치적 집회와 그 사태가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여러 정황상 분명하다. 윤석열 탄핵을 반대하는 전광훈의 메시지와 서부지법에서 난동을 벌인 이들의 동기가 일치한다는 점에서만 그 상관관계가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전광훈은 공공기관의 합법적 절차를 부정하는 언행을 수없이 반복해 왔으며, 윤석열의 구속영장 청구가 임박한 시점에는 “서부지방법원에 구속영장 청구하면 서부지방법원도 불 속에 넣어 태워버려야 한다”고 하기까지 했다. 실제 난동을 벌인 당사자 가운데 일부가 전광훈의 사랑제일교회 특임전도사로 확인되었다. 전광훈은 부인하고 있지만 누가 봐도 그 연관성을 부정하기 어렵다.
극우세력의 정치행동이 급기야는 헌정질서와 공권력을 부정하는 폭력행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데 그 사태의 위험성이 있다. 이른바 ‘전광훈 현상’은 극우 정치세력이 결집하고 행동하는 포괄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지만, 극우 개신교가 그 중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 주목거리이다. 파시즘의 역사적 사례를 통해 볼 때 종교세력은 대개 그 주도세력에 의해 동원되는 양상을 띠었다. 종교가 지니는 상징성과 그 동원력 때문이다. 반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오히려 극우 개신교라는 종교세력이 파시즘을 부추기는 역할을 맡고 있고, 여기에 지지 대중과 일부 정치세력이 동조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 가히 극우 개신교가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침이 없다. 최근에는 전광훈을 중심으로 하는 ‘광화문파’와 결별하여 손현보를 중심으로 하는 ‘여의도파’가 경합을 벌이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진영의 분열로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역할 분담을 통한 극우 개신교의 확장성과 동시에 극단성을 강화하는 양상일 수도 있어 우려된다. 상호간 주목경쟁은 그 저변을 넓히려는 시도와 더불어 선명성을 강화하려는 방향을 치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가 성장해 온 방식을 따르는 경로이다.
과연 극우 개신교는 어떻게 한국 사회의 극우 정치세력을 결집하는 주도적 역할을 맡게 되었을까? 교회가 지닌 조직력과 그에 따른 동원력 덕분일까? 그러나 그것이 필요조건일 수는 있으나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렇다면 신앙이 요구하는 순종의 미덕이 지도자와 대중의 결속력을 높이는 조건이 되는 것일까? 이 역시 충분조건은 아니다. 교회가 지니는 어떤 특성만으로 그 원인을 찾고자 한다면 정곡에서 벗어난다. 유사한 조건에 있는 다른 교회들의 행태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개신교의 일부가 극우화되고 사회 전반의 극우세력을 향도하는 역할을 맡게 된 사연은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통찰을 필요로 한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한편으로는 반공주의를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성장주의를 바탕으로 하여 성장해 왔다. 이는 분단 이후 한국 사회의 지배세력과 이해관계를 같이해 왔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적 근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형태였다. 거시적 맥락에서 이해관계를 같이해 왔을 뿐 아니라 교회의 유력자들과 정치세력이 긴밀한 유대관계 속에서 가치를 공유해 왔다. 교인들은 그 가치를 내면화했다. 그와는 달리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평화 통일을 추구하는 개신교인들이 의미있는 대안세력으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강고한 지배체제 안에서 보수 개신교는 그렇게 그 입지를 굳건히 하고 있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그 양상은 달라졌다. 민주화의 효과는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권위주의와 성장주의를 되돌아볼 여지를 남겼다. 교회는 사회적 민주화가 진척되는 가운데서도 상대적으로 지체된 영역으로 드러나기 시작했고 교회의 흡인력도 줄었다. 그즈음 진보 개신교는 민주화와 인권운동에 헌신한 역량을 바탕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선언을 발표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1988년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의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은 그간 한국 교회가 견지해 온 반공주의를 공식적으로 철폐하는 의미를 지녔다. 이에 보수 개신교는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결과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결성하였다. 이후 한기총은 사회적 의제들에 대한 보수적 입장을 표방하는 한편 정치적 발언과 행동에 나서 시민사회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게 되었다.
1990년대를 지나 2000년대에 이르는 동안 민주주의의 정착으로 기존 정치적 보수 세력이 더는 이전처럼 확고한 입지를 갖지 못했고, 다양한 사회적 의제들 또한 분출되었다. 그 가운데 교세 확장은 정체되고 기존 보수 교회의 사회적 효능감 및 신뢰도는 점점 떨어졌다. 보수 개신교는 이를 내적 갱신의 계기로 삼기보다는 선명한 정체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치달았다. 이는 과거 반공주의의 효과를 변형된 형태로 답습하는 방식으로 재현되었다. 곧 위기의 원인을 외부의 적에게 돌리고 내적 결속을 다지는 방식이다. 그것은 사회적 평등의 가치에 반하는 것으로, 주로 성소수자와 무슬림 등 이주민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를 향한 공격적 태도로 가시화하였다. 세속 문화에 대항해 신앙의 순수성을 지킨다는 이른바 ‘문화전쟁’이라 할 만한 양상이었다. 보수 개신교가 보수정권을 지지한 것은 그 정권이 자신들이 의도하는 문화전쟁을 대신해 주고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반대, 그리고 무속 논란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맹목적 지지는 그 사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상 그 동맹관계 안에서 극우주의가 싹텄다.
보수 개신교 가운데 일부 세력이 그렇게 극우로 치달으며 보수와 극우가 갈렸다. 한기총은 극우를 대변하는 기관이 되었고, 더불어 지위를 둘러싼 내부 스캔들에 휩싸였다. 한기총을 대신하여 2017년 보수 개신교 연합기구로서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이 결성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극우 잔존 세력의 중심에 전광훈이 우뚝 섰다. 보수 개신교와 극우 개신교가 가치를 상당 부분 공유하면서도 다른 점은 지난 2월 24일 한교총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천명한 데서도 확인된다.
교회적 기반의 확장성에 한계를 지닌 극우 개신교가 자리한 곳은 광장이었다. 지금 그렇게 극우 개신교는 광장에서 헌정질서를 부정하는 극우세력들을 결집하는 중심축으로서 역할을 맡고 있다. 그것은 개신교의 내적 조건에 따라 돌출한 현상만은 아니며 극우 정치세력의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에 힘입어 나타난 현상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등 의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여의대로에서 열린 '세이브코리아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 참석해 있다. 2025.03.01. ⓒ뉴시스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
극우 정치가 파시즘으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는 지금 그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서는 전 사회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특히 우려하는 그 사태가 단순히 종교적 현상만은 아니라는 점에서 사회 공통의 대안이 절실하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의 위기는 언제나 사회경제적 위기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경제적 격차로 인한 상실감과 사회적 차별로 인한 소외감이 그 자양분이다. 이를 정치세력이 이용하여 자신들의 권력의지를 구현하고자 할 때 파시즘 현상은 파시즘 체제로 귀결된다. 그 누구도 곤궁에 처해 있는 나를 대변해 주지 못한다는 상실감이 깊어갈 때 환상에 기대는 파시즘의 유혹은 떨칠 수 없게 되며, 그 위에 위험한 정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바로 그 점에서 사회경제적 평등에 기초한 사회적 연대의 강화, 그리고 그 누구든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명실상부한 정치적 대의제 구현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된다.
물론 우려할 만한 그 사태에 극우 개신교가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만큼 개신교의 입장에서도 절박한 대책이 필요하다. 헌정질서가 위협받고 사회가 혼란에 빠져 있는데, 개신교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개탄의 목소리가 높다. 마땅한 우려이며, 그에 동조하지 않는 개신교의 경각심이 요청된다.
우선 전광훈이나 손현보와 같은 이들이 결코 교회의 입장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이미 전광훈에 대해서는 그가 속한 교단에서도 면직 및 제명 처분을 하였을 뿐 아니라 여러 교회 기관에서 누차 그에 대한 우려의 입장을 밝혀 왔다. 최근 부상한 손현보에 대해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대처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이 행세하는 것은, 다양한 교단들이 각기 독자성을 갖는 개신교의 교단 구조상 실효적 제제에 이르지 못하는 한계 때문이다. 개신교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기는 하나, 교회가 그들을 배태한 책임을 통감하며 그들과 다른 교회의 입장을 분명히 하는 것은 교회 대중이 오도된 길에 이끌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
다행히 한국 개신교인들의 평균적인 정치사회 의식은 그렇게 극단화되어 있지 않으며, 대체로 시민사회의 평균적 인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흔히 생각하듯 목회자나 교회에 의해 좌우되는 것만은 아니며 대체로 일반적 인식의 경향을 띠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비상계엄 직전에 이뤄진 2024년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개신교인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 평가에서 비개신교인과 마찬가지로 개신교인 역시 60% 안팎으로 부정적 평가 비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몇 해에 걸쳐 누적된 인식조사에서 드러난 일관된 경향이기도 하다. 미세하게 보수적 경향을 띠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개신교인들의 정치사회 인식의 경향은 시민사회의 인식과 크게 괴리되어 있지 않은 결과를 보여 주고 있다.
미세하게 보수적인 경향을 띠고 있는 점이 어째서 두드러지게 보일까?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하나는 개신교 공적 기관의 대표성이 주로 고령층 남성들에게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며, 또 다른 하나는 언론이 주로 돌출된 극우 개신교의 현상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안에서 특정 세력이 교회 전반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처럼 오인되는 과잉대표성의 문제는 교회의 내적 과제로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여론의 문제는 사회적으로 함께 대처해야 할 과제이다. 여러 교단들이 전광훈과 손현보에 대해 우려의 입장을 밝히고 다수의 개신교인들이 헌정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대열에 적극 참여하고 있는 것은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지 못하고, 돌출된 극우 집회 현장만 조명을 받는 사태는 개신교의 실상을 심각하게 왜곡한다. 또한 ‘주목경쟁’을 동원의 중요한 방식으로 삼고 있는 극우 정치집회를 의도치 않게 강화해 주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바로 그 점에서 극우 개신교의 실상을 과대하기보다는 상대화해서 볼 수 있도록 조명하는 언론의 몫 또한 실로 중요하다. 이른바 ‘이대남’을 퉁 쳐서 말해서는 안 되듯, ‘극우=개신교’로 등식화해서도 안 될 것이다.
심각한 성차별' 1위 승진, 2위 임금…尹 "구조적 성차별 없다"에 '동의 않는다' 84.7%
최용락 기자 | 기사입력 2025.03.05. 19:58:11
여성 5명 중 1명이 결혼·임신·출산·보육·돌봄 등으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남성의 4배 이상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부설 민주노동연구원이 지난 1월 31일부터 31일까지 15세 이상 임금노동자 109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성별 임금 격차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조사'를 보면, 여성의 61.9%, 남성의 40.6%가 경력 단절을 겪었다고 답했다.
경력 단절의 사유를 결혼·임신·출산·보육·돌봄으로 좁혀보면, 여성은 20%(응답자 32.4%), 남성은 4.5%(응답자 11.2%)가 이로 인한 경력 단절을 겪었다. 다른 사유는 '더 좋은 직장을 위한 준비', '직장 내 갈등', '건강 문제' 등이다.
'임신·출산·육아 등 돌봄 책임이 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라는 항목의 5점 척도 조사에서도 여성(2.9점)의 점수가 남성(2.1점)보다 높았다. '식구 중 환자가 생겨 일을 그만둘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는 항목에서도 여성(2.4점)이 남성(1.9점)보다 점수가 높았다. 가정 내 돌봄 부담이 여성에게 더 크다는 점을 드러내는 지표로 해석된다.
심각하다고 느끼는 직장 내 성차별의 종류는 △승진에서의 성차별(3.53점) △성별 임금 격차(3.43점) △중요한 업무 배제 (3.4점) △채용에서의 성별 차이(3.35점) △성희롱(3.13점) 순으로 조사됐다.
위 설문에서 1위를 차지한 승진 성차별과 관련 '성별 비율이 비슷한 직장에서 여성 관리직 비율'을 살핀 결과, '성별 비율이 비슷하다'는 응답은 12.6%에 불과했고, '남성관리직이 많다'는 응답은 72.7%에 달했다.
연구진은 이에 대해 "여성의 승진이 구조적으로 제한되어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2위를 차지한 성별 임금 격차와 관련해서는 여성의 임금이 남성에 비해 29.4% 낮은 것으로 조사됐고, 응답자의 92.9%가 '성별 임금 격차 해결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성별 임금 격차 발생원인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은 △남성은 생계부양자, 여성은 가사노동담당자라는 성역할 고정관념 31.1% △정부의 성평등 정책 실현 의지가 없어서 16.2% △육아와 가족 돌봄으로 인한 여성의 경력단절 14.6% 등 순으로 많았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꺼낸 "더 이상 구조적인 성차별은 없다. 차별은 개인적 문제다"라는 발언에 대한 동의 여부를 묻는 설문도 이뤄졌다. 이에 대해 응답자 84.7%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동의한다'는 답은 6.7%, '그저 그렇다'는 답은 8.5%였다.
조사결과에 대해 연구진은 "한국 사회와 노동시장이 여전히 젠더 불평등을 기반으로 구조화돼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해석했다. 이어 "성역할 고정관념을 약화시키고 성평등한 노동시장과 사회구조를 설계해 변화를 추진해야 한다"며 "특히, 여성에게 가족 돌봄의 책임을 부과하는 불평등한 구조를 개선하고, 돌봄 공공성을 강화"하는 정책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해 3월 8일 오후 민주노총 세계여성의날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 참가자가 성별임금 격차 해소가 적힌 피켓을 들고 서울 종로에서 대학로 방면으로 거리 행진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용락 기자
내 집은 아니어도 되니 이사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집, 잘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충분한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임금과 여가를 보장하는 직장, 아니라고 생각하는 일에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나, 모든 사람이 이 정도쯤이야 쉽게 이루고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대검찰청 고위급 검사 2명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를 더불어민주당이 공개했다.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이 휘하 지휘관들에게 '선관위에 올 검찰과 국정원을 지원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이후 대검 소속 검사 2명이 선관위에 출동하는 등 비상계엄에 가담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고위급 검사 2명, 내란 당일 방첩사 대령과 통화 후 선관위 출동"
민주당 내란진상조사단 단장을 맡은 추미애 의원은 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난해 12월 4일 새벽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고위급 검사 2명이 과천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가 확인됐다"라며 "선관위로 출동한 고위급 검사 2명 중 1명은 12·3 내란 당일 방첩사 대령과 통화한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부장검사급)이라고 한다. 제보 내용이 사실이라면 대검 고위 검사는 방첩사 대령과 소통한 후 선관위로 출동한 것으로 12·3 내란 관련 실질적인 검찰 개입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여인형의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라는 지시와 대검·방첩사·국정원 간 한밤중 통화도 확인됐다"라며 "수사기관은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고위급 검사 2명이 왜 선관위로 출동했는지, 과학수사부 소속 수사관은 총 몇 명이나 출동했는지, 누구의 지침을 받았는지 등의 의혹을 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중앙선관위 전산 서버를 촬영 중인 계엄군 ⓒ 중앙선관위 CCTV
이날 추 의원이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 3일 오후 8시 30분경 여 전 사령관은 정성우 전 방첩사 1처장에게 "선관위에 검찰과 국정원에서 올 거다. 중요한 임무는 검찰과 국정원에서 할 거니 그들을 지원하라"라고 지시했고, 정 전 처장은 오후 11시 50분경 방첩사 대령 8명에게 같은 내용의 명령을 하달했다고 한다.
추 의원은 "정 전 처장의 지시를 받은 대령 4명의 진술을 확보했다"라며 이들의 진술을 공개했다. 이들은 "정성우 처장이 (방첩사 대령) 8명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검찰과 국정원을 언급한 사실이 있음"(A대령), "선관위 출동을 앞두고 회의 과정에서 서버를 확보하면 검찰과 국정원이 올 것이고 인계해 주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음"(B대령), "계엄 선포 이후 선관위 출동 전에 정성우 처장이 검찰과 국정원을 언급했음"(C대령), "선관위에 가서 서버를 확보하면 검찰과 국정원이 올 거다, 거기에 인계해 주면 된다는 지시를 받음"(D대령)이라고 진술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가 있은 뒤 대검·방첩사·국정원으로 이어진 통화 내역도 공개됐다. 이날 민주당 진상조사단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4일 0시 37분경 대검 과학수사부 소속 선임과장은 방첩사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약 1분 22초 통화했고, 이후 0시 53분경 방첩사 대령은 국정원 과학대응처장과 약 2분 2초 통화했다고 한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의원 ⓒ 남소연
이에 대해 추 의원은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여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를 국정원과 검찰에 인계하라고 지시했는데 실제 대검 과학수사부가 움직였다는 증거를 찾았다"라며 "검찰이 올 거라고 여 전 사령관이 말한 뒤인 0시 37분경 대검 과학수사부 선임과장(부장검사)으로부터 방첩사 A대령에게 전화가 왔으며 A대령은 국정원 과학대응처장에게 전화 상의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방첩사·검찰·방첩사·국정원 순으로 긴박하게 연락을 주고받은 다음 대검 과학수사부 고위직 2명이 선관위로 출동했다는 제보까지 있다"라며 "대검 포렌식 담당 조직이 방첩사와 국정원과 순차 모의하고 현장 출동까지 한다는 것은 검찰총장과 법무부 장관의 지시 없이는 불가능하다. 검찰의 내란 가담 수사를 촉구한다"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검찰청은 입장을 통해 "검찰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하여 방첩사 등 다른 기관으로부터 어떠한 지원요청을 받은 사실이 없고, 다른 기관을 지원한 사실도 없음을 재차 밝힌다"라고 했다.
▣ 제보를 받습니다
오마이뉴스가 12.3 윤석열 내란사태와 관련한 제보를 받습니다. 내란 계획과 실행을 목격한 분들의 증언을 기다립니다.(https://omn.kr/jebo) 제보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호되며, 제보 내용은 내란사태의 진실을 밝히는 데만 사용됩니다.
▲백악관 X(옛 트위터) 계정에 게재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상회담 모습.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여섯 차례나 “당신에게는 (내밀) 카드가 없다”라고 면박을 줬다. 이어 마이크 왈츠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과 협상할 수 있고, 결국 러시아와 협상을 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우크라이나)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미국 백악관이 우크라이나의 정권 교체를 시사하는 발언까지 한 것이다.
과거 강대국들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핵보유국 지위를 스스로 포기한 미국의 우방국인 우크라이나가 이 같은 대우를 당하자, 조선일보는 일부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최근 “핵 무장이나 핵 잠재력” 발언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환영하는 사설을 냈다.
▲5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 “민주당 의원들이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 매우 긍정적 변화”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17일 당 국방안보특별위원회 강연에서 당론은 아니라고 전제를 달면서도 “핵 무장이라고 하는 주제를 우리 스스로 금기시할 필요가 없다. 월성 원자력발전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관이 상시적으로 나와 있는데, 사찰을 받으면서 사용 후 핵연료봉 재처리를 하자”라고 주장했다. 위성락 민주당 의원도 지난달 23일 “최근 핵무장이나 핵 잠재력에 대한 논의의 한 자락이 우리 당으로도 들어와 있다. 지금부터 어떻게든 담론을 잘 만들어서 (정책) 방향을 정립해야 하는 과제가 앞에 놓여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우크라 보며 민주당서도 나온 핵 잠재력 확보론> 사설에서 “민주당은 그동안 핵 무장과 전술핵 반입 등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기시해 왔다. 이재명 대표가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강대국들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2000여 개 핵무기를 포기했던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으로 영토를 빼앗기고 미국에마저 외면당하는 상황에 처하자 핵 잠재력이라도 갖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한 뒤 “핵 잠재력은 핵무기 개발은 아니지만 언제든 핵 무장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대표적인 나라가 일본이다. 일본은 1988년 미·일 원자력 협정 개정으로 재처리·농축 권한을 확보했다. 일본이 재처리를 통해 추출한 플루토늄은 47t이 넘는다. 유사시 즉각 핵 무장에 나설 수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의 핵 잠재력은 미국에도 도움이 된다. 미국 비확산 정책에 직접적 충돌이 아니면서 중국, 러시아, 북한에 대한 억제에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일의 자체 핵무기 보유에 열린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었다. 러시아는 북핵을 용인했고 트럼프 정부 인사들도 북한을 핵 국가로 불렀다”라며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의원들이 핵 잠재력 확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은 매우 긍정적인 변화다. 여야는 핵 잠재력 확보 국론을 모아가기 바란다”라고 주장했다.
▲4일 조선일보 3면.
앞서 지난 4일 조선일보는 3면 <안보협정 믿고 핵·영토 내줬지만…누구도 우크라 지켜주지 않았다> 기사에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면박당한 장면을 언급하며 “소련 해체로 1991년 독립국이 됐지만 30여 년 동안 강대국의 안보 약속만 믿고 있다가 국제사회 ‘힘의 질서’에 휘둘려 이 같은 상황을 맞게 됐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조선일보는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패착으로 독립 초기 강대국들의 회유에 핵보유국의 지위를 스스로 내려놓은 것이 꼽힌다. 우크라이나는 소련 붕괴 직후 러시아와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셋째로 많은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였다. 중거리 핵미사일과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 가능한 전략 핵탄두 수가 1700개 이상이었고, 중·단거리 미사일과 전략 폭격기용 전술 핵무기도 최소 2000개 이상으로 평가됐다. 유럽 최대 규모의 원전 시설에 기반한 자체 핵무기 제조창까지 갖고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5일 경향신문 칼럼.
경향신문도 5일 한국의 핵 잠재력 보유 추진을 주장하는 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의 칼럼을 실었다. 이종석 전 장관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과 핵 잠재력> 칼럼에서 “나는 직전 칼럼에서 북한의 핵무기 보유와 국민 불안 심리 증대 등 변화한 정세에 대응하여 유사시 대응 능력 향상을 위해 한·미 확장억제전력 강화에 더해 핵 잠재력 보유 추진 의견을 개진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주장을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포기한 것이며 주변국 반발을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한다. 심지어 핵무장론의 ‘변형’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들은 핵 잠재력 보유 추진이 나쁜 정책이라는 왜곡된 프레임에 갇혀 나온 부당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전 장관은 이어 “NPT(핵확산금지조약)에 가입한 국가도 핵 잠재력을 보유할 수 있는데, 그 길은 산업적 측면에서 이루어지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범위 확대이다. 즉 NPT가 허용한 범위에서 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나 우라늄 농축을 통해 핵 잠재력을 확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며 철저하게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와 통제를 받는다. 우리가 가야 할 길도 이 길”이라며 “핵 잠재력 보유 과정은 미국과의 긴밀한 소통을 비롯한 합법적인 국제협력의 틀 내에서 이루어지기에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일본이 핵 잠재력을 보유했다고 해서 누구도 일본이 비핵화 원칙을 포기했거나 핵무장을 추구한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헌재 비난 서한 국제인권기구에 보낸 안창호, 한겨레·경향 “한심해”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위원장이 각 나라 인권 기구 등급을 결정하는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 승인소위 사무국을 맡고 있는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에 한국의 헌법재판소를 비난하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안창호 위원장은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이 국내 시민단체가 제기한 ‘인권위의 12·3 비상계엄 정당화’ 문제에 대해 해명을 요구하자 지난달 27일 “국민 50%가 믿지 못하고 있고, 불공정한 재판을 한다”며 헌재를 비난하는 답변서를 보냈다.
이 같은 사실이 지난 3일 한겨레 단독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인권위원들은 지난 4일 전원위원회에서 항의했다. 그러자 안 위원장은 “의문을 제기했을 뿐 헌재를 비난하지 않았다”라고 주장했다.
한겨레는 <극우 논리 ‘헌재 비난 서한’ 국제기구 보낸 인권위원장> 사설에서 “내란을 일으킨 권력자를 비호하는 게 인권위의 역할인가. 게다가 국제 인권기구에 이런 한심한 서한까지 보내다니, 나라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라며 “안 위원장은 박근혜 파면 결정 때 출처가 불분명한 중국 고사성어를 인용한 보충의견을 냈다가 망신을 당한 바 있다. 애초 헌법재판관의 자질을 의심받았던 인사다. 임명 과정에서도 그동안의 행적이나 인식이 도저히 인권위원장을 맡을 수 없는 수준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안 위원장은 더 이상 인권위, 나아가 나라를 욕되게 하지 말고 자중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5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은 <국제인권기구에 헌재 비난 서한, 안창호 제정신인가> 사설에서 “여권과 극우·보수층이 헌재를 공격하는 논리를 그대로 담아 12·3 내란을 노골적으로 비호하는 내용의 서한이다. 헌재 흔들기를 통해 대통령 윤석열 탄핵심판 결정에 불복 여론을 부추기려는 의도를 의심케 한다. 헌법상의 기본권과 인권 수호에 앞장서야 할 국가 독립기구의 수장이 헌정과 민주주의를 유린한 내란을 옹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니 참담한 일”이라고 지적한 뒤 “안 위원장은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즉각 사퇴하는 것이 마땅하다”라고 당부했다.
의대 증원 혜택 본 신입생들 증원 반대 수업 거부 동참, 조선·동아 “개탄스러워”
의대 증원 문제를 둘러싼 의정 갈등이 2년 째 이어지는 가운데, 전국 의대가 4일 대부분 개강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의대생은 강의실에 나타나지 않았다. 의대 증원에 반대하며 수업 거부에 동참한 신입생 중에는 지난해 의대 증원 혜택을 보고 입학한 학생도 있다. 이를 두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의대 정원 혜택을 본 신입생들을 향해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
▲5일 조선일보 12면.
조선일보는 <증원 혜택 의대 신입생들이 “증원 반대” 수업 거부> 사설에서 “의대 증원 혜택을 본 올해 의대 신입생들이 의대 증원에 반대하는 수업 거부에 동참하고 있다 한다. 의대 정원은 지난해 3058명에서 올해 4567명으로 늘었다. 이번 의대 신입생들은 그 정책의 혜택을 본 학생들이다. 그런 신입생들이 ‘의대 증원 반대’를 위한 수업 거부에 나선다면 ‘염치없는 이기주의’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의대 신입생들이 수업 거부를 하는 것은 선배들 입김이 적지 않게 작용했다고 한다. 의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선배들이 신입생을 대상으로 ‘투쟁 필요성’을 설명하거나 휴학을 권유했다고 한다”고 설명한 뒤 “지난해 정부가 갑자기 의대 정원 2000명 증원을 밀어붙인 것은 무리한 정책이었다. 그렇다 해도 의료계 일부에서 내년 의대 모집 중단까지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다. 의료 사태가 2년째로 넘어가는 것은 막아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5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도 <의대 신입생 수업 거부는 문제 해결도, 정의도 아니다> 사설에서 “눈치를 보던 의대 신입생들도 수업 거부에 가세하고 있다”라며 “하지만 올해 의대 신입생들은 정부 증원 정책의 수혜를 입어 전년보다 1497명이 증가한 약 4600명이 입학했다. 더욱이 의대 증원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이 심각했다는 점을 이미 알고도 지원했다. 이제 와서 정부 정책을 이유로 휴학에 동참할 명분이 있나”라고 비판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현재 의대생 7500명을 한꺼번에 교육하기 위한 여건이 미비한 것은 사실이지만 신입생들의 휴학은 그간 투자된 사회적 비용을 낭비하고, 의대 교육의 파행을 장기화할 뿐이다. 신입생이 유급, 제적과 같은 불이익을 감수하고 수업을 거부하는 것은 선배들의 조직적인 압력과 무관하지 않다. 교육부가 설치한 의대 학생 보호·신고센터에는 하루 수십 건씩 선배들이 휴학 동참을 압박한다는 신고가 접수된다고 한다”라고 설명한 뒤 “의대생은 일단 복학해서 정부와 의료계의 협상을 지켜보다 휴학을 선택하더라도 늦지 않다. 지금 무작정 휴학부터 하는 것은 의정 갈등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만 아니라, 정의롭다고 할 수도 없다”고 했다.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의 폐업한 문구점 앞에서 상인이 장난감을 팔고 있다. 박고은 기자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에서 30년간 문구점을 한 김아무개(73)씨가 지난 2일 진열대 위 상품을 비우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달부터 20평 남짓한 가게 규모를 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매출이 크게 떨어진 탓에 월세라도 줄여보고자 하는 심산이다. 김씨가 비운 자리는 같은 골목에서 다른 문구점을 하던 상인이 오기로 했다. 그 역시 같은 이유로 매장을 옮기게 됐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매출이 절반 이상 떨어졌는데, 지난해 연말부터는 세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예요. 월세를 내지 못해 보증금 까먹고 있는 가게가 한두곳이 아니에요.”
새 학기를 앞둔 이날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은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어린 자녀와 함께 찾은 손님들이 많았지만, 대부분 문구점보다는 장난감 가게를 찾았다. 문구점을 찾더라도 규모가 큰 서너곳에 손님이 몰렸다. 7살 딸과 함께 시장을 찾은 이지은(38)씨는 “주말이어서 아이와 구경할 겸 시장을 찾았다”며 “학용품은 이미 온라인으로 시켜서 오늘 구매하진 않았고 장난감만 하나 샀다”고 말했다. 이날 매출이 3만원도 되지 않는다는 한 문구점 상인은 “평일에는 (매출이) 이보다 더 못하다”고 했다.
시장 골목 곳곳엔 셔터를 내린 채 ‘임대’ 펼침막을 내건 문구점이 여럿이었다.
학령인구 감소와 구매처 확대 등으로 문구업계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문구유통업협동조합이 파악한 지난해 전국 문구 소매점 수는 7800여곳으로, 5년 전인 2019년(9468곳)에 견줘 20%가량 줄었다. 매해 333곳의 문구점이 사라진 셈이다. 업계에서는 저가 생활용품 유통 업체와 온라인 유통 쇼핑몰의 경쟁력을 이겨낼 수 없는 문구 소매점의 줄폐업이 심화될 거란 우려가 나온다.
서울 종로구 창신동문구완구시장의 한 문구점이 장사가 되지 않아 가게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기로 했다. 지난 2일 가게 한쪽 진열대 위 상품이 비어 있다. 박고은 기자
학교 주변 동네 문구점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경기 화성에서 7년간 문구점을 하다 지난달 폐업한 임아무개(48)씨는 “가게 앞에 ‘점포 정리’를 내걸고 땡처리를 해도 재고 정리가 안 돼 폐업 매입 전문 업체에 반의반 값으로 팔았다”고 했다. 소매 문구점이 벼랑 끝에 내몰리니 도매업을 하는 문구점도 타격이 크다. 창신동에서 30년 넘게 도매 문구점을 하고 있는 오아무개(75)씨는 “이 일을 하는 동안 매출이 떨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는데 지난해부터 매출이 감소 추세로 꺾였다”고 했다.
문구 소매점의 자리는 다이소 등 저가 유통 업체나 온라인 쇼핑몰이 대체하고 있다. 통계청의 온라인쇼핑동향조사를 보면, 온라인 문구·사무용품 거래액은 2022년 1조874억원에서 2023년 1조9171억원, 지난해 2조35억원으로 크게 확대되는 추세다. 학교에서 교과과정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매해 학생에게 지급하는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의 여파도 있다. 학교는 입찰을 통해 업체를 선정하는데 가격 경쟁력이 우선시되다 보니 동네 문구점이 참여하긴 어려운 구조다.
문구점 단체들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 중이다. 문구유통업협동조합은 소형 문구점이 저렴한 가격에 물품을 사들일 수 있도록 소형 문구점들의 공동 구매를 연계하고 있다. 협동조합 관계자는 “이와 함께 소형 문구점도 온라인 판매에 나설 수 있도록 플랫폼을 만들 계획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습준비물 지원제도에 관해서는 지역에 있는 문구점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역문구점 인증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025년 2월 28일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집무실에서 열린 회담 중 설전을 주고 받았다.연합/EPA
지난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회담은 단순한 외교적 실패가 아니었다. 그것은 치밀하게 계산된 모욕이었다. 트럼프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젤렌스키를 철저히 압박하며 굴욕을 안겼다.
이 자리에서 젤렌스키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었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서, 개인이 아닌 국가의 대표로서 트럼프의 모욕을 감내하고 그의 비위를 맞출 것인가, 아니면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해 미국이 지원을 끊을 빌미를 제공할 것인가.
예상치 못한 트럼프의 기습 전략에 젤렌스키는 본능적으로 후자를 선택했다. 젤렌스키의 오만한 오판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굴욕적 대응을 해도 어차피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을 중단할 명분을 위해 플랜B, C를 가동했을 것이다.
결국, 트럼프는 우크라이나를 손쉽게 미국의 짐짝에서 던져버릴 기회를 만들었고, 그의 의도를 전 세계는 쉽게 읽을 수 있었다. 상상을 초월한 미-우 정상회담에 러시아는 쾌재를 불렀고, 유럽은 충격에 빠졌다.
미국의 선택, 새로운 국제 질서의 서막
미국은 더 이상 국제사회의 수호자가 아니다. 오랫동안 경찰이자 심판을 자처했던 미국은 이제 단순한 '이익 추구자'로 변모했다. 심판의 권한과 영향력을 쥔 채, 이제는 선수로 뛰겠다고 직접 그라운드로 뛰어들었다.
국제 기구와 협약, 조약을 무시하며, 다자 외교보다는 힘 있는 국가 간 거래를 최우선으로 삼고 있다. 공정성과 규범이 아닌 힘과 거래가 외교의 중심이 되면서, 국제 질서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에게 더 이상 미국이 책임질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젤렌스키에게 협박하듯 말했다. "미국의 지원을 원한다면, 미국의 입맛에 맞춰라." 이것은 단순한 협상이 아니었다.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의 영향력을 재편하는 선언이었다.
과거의 미국이라면 벌어지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은 이미 다른 길로 들어섰다. 철저하게 이익을 계산했고, 필요 없다고 판단한 순간 과감히 버렸다. 트럼프의 행동은 단순한 외교적 선택이 아니라, 세계 질서를 흔드는 태풍이었다.
물론 과거의 미국이 이익을 계산하지 않았다거나, 필요없다고 판단되는 것을 쥐고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미국이 체제수호를 통해 얻어지는 이득을 추구했다면, 트럼프의 미국은 체제를 뒤흔들어 이익을 최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변화는 유럽을 혼란에 빠뜨렸다. 2차 대전 이후 유럽은 미국이 만든 질서의 최대 협력자였고 동반적 수혜자였다. 하지만 이제 유럽은 미국의 본심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제 유럽은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냉혹한 현실과 마주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협상이 결렬되고 예정된 공동 기자 회견이 취소된 후 떠나고 있다.연합/EPA
러시아의 장기 전략, 유럽을 겨누다
이 분열을 가장 기다린 것은 러시아였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유럽과의 힘 대결을 위한 전초전이었다. 푸틴은 단기적인 승리가 아니라, 서방을 내부적으로 분열시키고, NATO를 무력화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미국이 우크라이나 지원에서 손을 떼면, 러시아는 보다 대담한 움직임을 보일 것이다. 몰도바, 발트 3국, 그리고 폴란드에 대한 압박이 서서히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군의 군사훈련은 점점 서방 국경과 가까워지고 있으며, 크렘린은 유럽 내 친러 정당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정치적 균열을 심화시키려 하고 있다.
푸틴은 단순한 전쟁에서의 승리가 아니라, 유럽이 미국 없이 무력해지는 순간을 노리고 있다. 그는 서방이 독자적인 방위 체계를 구축할수록, 그것이 러시아의 공격 명분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동유럽, 30년 전쟁의 서막인가
우크라이나 전쟁은 단순한 국지전이 아니다. 이는 20세기 초 동아시아에서 벌어졌던 '30년 전쟁'과 같은 장기적인 안보 지형의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1세기 전, 동아시아에서의 전쟁은 단발적인 전투가 아니었다.
청일전쟁(1894)에서 시작된 충돌은 러일전쟁(1904), 만주사변(1931), 중일전쟁(1937), 그리고 태평양전쟁(1941)으로 점진적으로 확대되었다. 이 일련의 전쟁은 동아시아의 질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고, 결국 세계대전으로까지 이어졌다.
현재 동유럽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감지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몰도바, 발트 3국, 폴란드 등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는 한 번의 전쟁으로 모든 것을 얻으려 하지 않는다. 러시아의 유럽 진출 전략은 일본의 대륙 진출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러시아는 점진적으로 서방을 약화시키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크림반도 병합(2014)과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2022)은 그 과정의 일부일 뿐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러시아는 트럼프라는 유리한 변수를 맞이했다.
미국의 고립주의, 러시아의 기회가 되다
트럼프의 고립주의적 성향은 러시아의 유럽 확장이라는 장기 목표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한다. 공교롭게도, 1세기 전 일본이 동아시아 대륙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할 때도 미국의 고립주의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19세기 말부터 미국은 태평양에서 일본과 경쟁관계에 있었지만, 미국의 외교적 개입이 줄어들게 되면서 일본의 확장 가능성을 키워준 결과를 낳았다. 1930년대에 들면서 미국은 본격적 고립주의를 채택하며 유럽과 아시아 문제에서 거리를 두었다.
100여 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다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의 경쟁관계에서 발을 조금씩 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확장 가능성을 키우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트럼프의 고립주의는 러시아의 유럽을 향한 서진 정책에 날개를 달아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EPA=연합뉴스
푸틴의 다음 목표는 어디일까? 몰도바는 가장 먼저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크다. 친러 분리주의 세력이 장악한 트란스니스트리아지역은 이미 러시아의 영향권 아래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성과를 거둔다면, 몰도바에 대한 압박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발트 3국도 안전하지 않다.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는 과거 소련의 일부였으며, 지금도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가 가장 눈독을 들이는 곳이면서 가장 가까운 사정거리 안에 있다.
물론 이들 발트 3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NATO)회원국이다. 러시아가 군사력을 동원하면 우크라이나와 달리 모든 나토회원국, 또는 일부 회원국이 자동 개입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러시아의 전략은 군사력 동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러시아는 이미 20세기 초에 핀란드, 그리고 21세기초 우크라이나를 대상으로 한 하이브리드 전쟁에 익숙한 나라다. 군사적 개입이 아니라 내부 분열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서서히 흔들어가는 전략에 능숙하다.
우선 친러 정당을 만들고 정보전을 활용해 정치적 혼란을 조성하고, NATO의 대응 능력을 시험할 것이다. 서방이 단합하지 못한다면, 러시아는 더욱 대담한 도발을 감행할 것이다. 발트 3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협은 군사 침공이 아니라, 사회적 균열이다.
동아시아의 지각변동
트럼프의 돌발적 행동이 유럽에 충격을 준 것은 이 이유 때문이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의 마지노선이 아니라, 첫 번째 단계일 가능성이 높다. 100년 전 동아시아의 대혼란이 단지 역사 속의 일만은 아니다.
일본이 1894년 조선과 만주에서 영향력을 넓히며 청나라를 패퇴시킨 후, 러시아와 충돌했고, 이후 만주사변을 거쳐 중국 전역으로 전쟁을 확대했던 것처럼, 러시아 역시 서방의 대응을 시험하며 서서히 범위를 넓혀갈 것이다.
20세기 초 국제연맹이 일본의 침략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 못한 결과, 동아시아 전체가 전쟁으로 빨려 들어갔다. 유럽이 지금 러시아를 효과적으로 저지하지 못한다면, 결국 같은 길을 밟을 수도 있다.
푸틴의 전략적 목표는 유럽 전체의 재편이다. 그는 군사적 충돌에서 승리하는 것이 아니라, 서방의 분열을 유도하고 새로운 안보질서를 형성하려 한다. 동유럽의 안보 질서가 재편되는 순간, 유럽은 더 이상 과거의 유럽이 아니다.
유럽이 스스로 안보를 책임질 능력이 있는지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이 예상보다 빨리 다가오고 있다. 바꿔 말하면 미국이 100년의 기득권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검증 받는 시간이 앞당겨지고 있는 것이다.
기로에 선 한국
그렇기에 동북아시아도 거대한 변화의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트럼프 행정부 이후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대만은 더 이상 보호의 대상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 위의 카드가 되었고, 일본은 재무장을 본격화하며 안보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어느 때보다 자주국방과 외교적 자율성이 강조된다. 일본의 재무장은 이제 한미일 공조 체제 속에서의 군사력확장이라기보다, 미국의 개입이 줄어든 상황에서 나타나는 독자적인 움직임에 가깝다. 이러한 변화는 아시아 지역의 긴장을 한층 더 고조시킬 수 있다.
지난해 12월 3일 비상계엄 선포에 따른 내란 사태는 1월 19일 서부지법 폭동을 거치며 극우파시즘의 발호를 안팎에 과시했습니다. 수면 아래에 있던 극우세력의 음모론적 주장과 폭력적 양태가 거리를 채우고, 보수여당마저 끌려가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극우파시즘이라는 낯선 현상에 많은 이들이 당황하고 걱정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군사독재 정권의 억압적 통치와 달리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중국타도와 부정선거를 외치는 오늘의 극우파시즘은 낯설고 당혹스럽습니다. 윤석열이 탄핵되고, 여당의 재집권이 저지돼도 극우파시즘의 폭주가 제어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극우파시즘이라는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깊이 파악하는 것이겠습니다.
그간 여러 방면에서 관련 문제를 다뤄온 연구자, 전문가들의 기고를 몇 차례 연재합니다. 이를 통해 극우 파시즘을 넘어 더 진보하고 진화하는 길을 찾아보려 합니다.
나에게 수개월째 지속되는 증상이 하나 있다. 휴대전화를 켰을 때 카카오톡 메신저 아이콘에 100을 넘기는 숫자가 떠 있는 것을 보면 늘 가슴이 철렁거린다. 애플리케이션 아이콘에 떠 있는 숫자가 많으면 괜히 거슬리고 불편해지는 강박 같은 건 아니다. 누군가의 중요한 연락을 놓쳤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아니다.
나를 철렁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학창 시절에 만나서 지금까지도 자주 교류하는 절친한 친구들과 함께 만들고 십여 년째 지속하고 있는 단톡방(단체대화방)이다. 애초부터 ‘출근하기 싫다’, ‘너무 춥다’와 같은 별 의미 없는 말들을 숨 쉬듯이 올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단톡방이기 때문에, 잠시만 다른 일을 하고 있으면 금세 안 읽은 메시지가 수백 개가 되는 건 예사로운 일이었고 이에 반응을 안 한다고 해도 뭐라 하는 친구는 없었다. 그렇게 편하고 좋은 친구들이지만, 그런 친구들이 모인 단톡방에서 내가 안 본 사이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오갔을까 노심초사하기 시작한 것은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부터다.
휴대전화를 잠시 안 보고 있던 사이에 ‘헌법재판관 임명에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마저 탄핵하는 건 야당의 폭정이고 독재 아니냐’, ‘야당이 시민들 카카오톡을 검열하고 이재명 욕하면 처벌하는 법을 만든다는 게 사실이냐’, ‘민주당은 왜 간첩법 개정에 반대하냐’, ‘문형배 헌재소장 대행이 음란물을 공유했다더라’ 따위의 이야기를 나누며 야당에 대한 반감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나는 뒤늦게나마 사실관계를 정정해준다. 그러면 일부는 이를테면 ‘오마이뉴스는 좀...’이라는 식으로 말끝을 흐리며 팩트체크 기사의 출처의 신뢰도를 의심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를 여전히 존중하고 있는 대부분의 친구들은 자신들이 이야기했던 것이 ‘가짜뉴스’였음을 인정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허위보도로 경찰에 고발한 인터넷언론 스카이데일리의 기사 ⓒ홍페이지 캡처
하지만 그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야당 진영 및 윤석열 탄핵의 당위성과 정당성 등에 대해 가지게 되는 일말의 반감 정서는 사실을 정정하는 것만으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 말해, 가짜뉴스 공해로 인해 발생한 담론의 오염이 누적되는 속도가 그것을 팩트체크로써 정정하고 ‘정화’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다. 무엇보다 가장 유감스러운 점은, 팩트체크는 그때뿐이라는 것이다. 다른 친구가 또 다른 가짜뉴스를 단톡방에 올리면 팩트체크와 사실관계 정정, 맥락과 배경 설명의 지난한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는 동안 친구들의 대화 주제는 다른 데로 넘어간다.
다행인 것은, 팩트체크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여당 세력과 극우 혹은 내란 옹호 세력의 흑색선전, 음모론, 내전 및 내란 선동, 혐오적 극언 등을 포함한 일체의 가짜뉴스를 인용 보도만 하고 사실관계의 정정이나 맥락 설명은 일절 없는 언론을 우리는 비판하지만, 언론의 본령을 다하는 언론사는 없지 않고, 많다. 적어도 내란 사태와 탄핵 심판 관련한 사안에 있어서는 그때그때 기민하게 가짜뉴스에 반박하고 전후 상황을 잘 정리하는 기사는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쉬운 일, 가짜뉴스로부터 키워드 두 개만 추출해서 검색창에 입력하면 곧바로 팩트체크 기사를 찾을 수 있는 10초도 걸리지 않는 일을 직접 능동적으로 해낼 의지를 그 누구에게서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항상 단톡방을 주시하며 친구들에게 언제든 팩트체크 기사를 떠다 먹여줄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
그날 이후 가짜뉴스를 공유하는 친구들에게
수시로 팩트체크를 한다
나는 친구들에게 배달 음식 시킬 때 고민하는 시간의 십분의 일만큼이라도 써서 신문 기사를 읽으라고 권한다. 그럴 때마다 ‘바빠서 어쩔 수 없다’, ‘도대체 뭘 믿어야 할지 모르겠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일하느라 바쁘고 정신없는 와중에 여기저기서 온갖 정보가 쏟아지는 바람에 무엇을 걸러내고 수용해야 할지 알지 못하여 극심한 피로감과 환멸을 느끼고 결국에는 일체의 정치 뉴스에 대한 관심을 끊게 된다(그러면서도 가짜뉴스의 선정적인 헤드라인에는 반응한다). 최종적으로, ‘진실’이라는 것 자체를 불신하고 냉소하게 되며 무미건조한 ‘팩트’마저 당파성의 산물이라는 의심을 품게 된다.
가짜뉴스의 범람으로 인한 담론 오염의 가장 심각한 폐해가 바로 이것이다. 가짜뉴스를 비롯한 일체의 선동이 문제인 이유는 그것을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미국의 철학자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는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라는 책에서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포함한 탈진실 시대의 정보 공작을 ‘역정보(disinformation)’라는 더 넓은 개념으로 범주화한다. 그에 따르면 역정보의 핵심은 진실을 은폐하거나 없앨 수 없으면 개소리로 둘러싸고 거짓을 쏟아내 많은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는 데 있다. 그렇게 사기가 꺾이면 진실을 파악하는 것을 포기하게 되며, 이러한 형국이 지속되면 거짓말을 믿지 않는 사람들마저 결국에는 진실이라 일컬어지는 모든 것이 당파성에 종속된 것이라는 불신과 적대감을 가지게 된다고 매킨타이어는 말한다. 따라서 이러한 공작을 ‘disinformation’라고 명명한 것은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본래 냉전기 첩보전의 정보 교란을 일컫는 말로 쓰였지만, ‘dis’라는 접두사가 무언가를 부정, 반대하거나 해체함을 의미한다는 것을 상기하면 도대체 뭐가 무엇인지 알 수 없게 만드는, 극도의 사회적 혼란과 좌절마저 초래하는 교란 행위를 가리키는 말로 더없이 탁월하다.
따라서 가짜뉴스는 오늘날 역정보의 폐해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역정보로 인한 과학 부정과 역사 부정이 현실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는 인지능력의 저하 및 인지의 편향의 출발점에는 이른바 ‘바이든 날리면’ 사건이 있다. 전 국민에게 듣기평가 시험을 치르게 한 이 희대의 사건은 생생하게 들리는 육성마저 당파성, 지지하는 정당, 이념에 따라 해석에 열린 무언가로 바꿔버렸다. 뉴스토마토가 미디어토마토에 의뢰해 진행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의 문제의 발언에서 ‘바이든’을 들었다고 한 응답이 58.7%,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한 응답이 29.0%, ‘모름’은 12.4%로 집계되었다.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65.0%가 ‘날리면’으로 들었다고 응답했다. 대통령과 정부 및 여당은 언론을 압박하며 현실마저 자기 마음대로 조작한 것이며, 일부 무시 못 할 규모의 대중은 그 농간에 기꺼이 놀아났다. 객관적인 것을 눈앞에(혹은 귀 앞에) 두고 그것을 A로 인식하냐 B로 인식하냐에 따라 그 사람의 정치적 성향을 유추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진실이라는 것이 저기 어딘가에 있어서 언제가 되었든 결국에는 발견되고 드러날 수 있는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짜뉴스 등의 역정보에 휘둘리지 않는 혹은 휘둘리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들은 그때그때 체크와 정정만 하면, 혹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자연스레 해결되리라 안일하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진실이란 언젠가 발굴되기를 수동적으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투쟁의 대상이자 산물이며 적극적으로 구성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이에 관련한 자세한 논의는 수십 편의 논문으로도 모자랄 터이지만, 쉬운 이해를 위해 예를 들면 ‘야당이 탄핵을 남발했다’라는 주장은 백번 양보해서 ‘사실’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와 여당은 이 주장을 밀어붙여 ‘야당이 탄핵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켰다’라는 주장을 내놓는데 이것은 ‘진실’이라고 할 수 없다. 이에 대응하려면 사실관계를 정정하는 것을 넘어서 과거로부터 여러 사례와 사실들을 적극적으로 길어 올려서 하나의 새로운 형상을 구성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진실이 상대주의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실의 구성 요소로서 사실이라 일컬어지는 것은 사람들이 공통된 인지 체계를 갖추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다. 성장한 문화권에 따라, 교육의 여하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인간으로서 타고난 생태적 조건, 그리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지는 공유된 인지 체계는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이며 이것이 있어야만 기초적인 사실 판별이 가능하다. 이것은 일종의 게임의 규칙과 같으며, 진실을 둘러싼 투쟁은 게임의 규칙을 따르면서 경합하는 과정이다. 역정보는 이러한 규칙을 붕괴시키며, 최종적으로 의사소통의 최소 조건을 붕괴시킨다. 역정보로 인해 진실에 대한 불신과 냉소가 극으로 치닫는 형편에서 사람들은 똑같은 것을 보고 들으면서도 서로 전혀 다른 것을 보고 듣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언론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형편에서 다수 언론은 항상 쉬운 길을 택한다. 가짜뉴스나 음모론, 극언 등을 말하는 정치인이나 유명인을 단순히 인용 보도만 한다거나, 그가 하는 이야기를 더 들어보겠다는 이유로 방송에 출연시키거나 하는 것은 의도 및 취지와는 무관하게 매킨타이어에 따르면 ‘진실 도살자’ 혹은 적어도 ‘방관자’다. 더불어서 편파적이라는 혐의를 피하기 위해, ‘양쪽 진영’의 입장을 기계적으로 양분하여 보도하는 것 역시 진실 도살에 일조한다. ‘바이든’을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 부정선거 음모론, 선관위에서 중국인 간첩 99명이 체포되었다는 보도를 믿은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을 균형 있게 다루는 것은 최악의 방법이며, 양 진영이 마치 해석이나 선택, 신념의 문제인 것처럼 만든다. 다시 말해, 그러한 음모론이나 가짜뉴스를 믿지 않는 것 또한 어떤 편향의 결과라는 점을 시사한다. 그로써 추가로 전달되는 암시는 진실이 양쪽 의견 사이 중간에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실이 어딘가에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안일하게 믿고 있는 동안 진실은 점점 더 갈수록 빠르게 극우로 기울게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방법원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담장 너머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다. (공동취재) 2025.01.18. ⓒ뉴시스
중립을 자처하며 양비론에 선 많은 이들이
극우화 물결에 합류할 것을 우려한다
친구들 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친구들이 부정선거 음모론이나 중국인 간첩 관련한 음모론, 가짜뉴스를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이다. 윤석열의 계엄선포와 내란 행위를 옹호하지도 않고 탄핵에 반대하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왜 이 친구들은 역정보가 담긴 기사를 단톡방에 공유하는 걸까? 이들은 중립을 자처하기 때문이다. ‘탄핵 찬성’과 ‘탄핵 반대’ 사이에 중립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양쪽 의견이 각자 편향의 결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이들이 자처하는 중립은 구색만 갖춘 양비론이자 정치혐오다. 이러한 탓에 내란을 일으킨 자 및 그를 옹호하는 세력과, 위험을 무릅쓰고 국회의사당 담을 넘어 계엄 해제를 가결시킨 세력을 둘 다 똑같이 나쁘다고 하는 ‘거짓 등가성’의 오류에 사로잡혀 있다. 따라서 탄핵에 반대하지는 않지만, 탄핵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소동과 소음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탄핵의 당위와 정당성에 시비가 걸리는 상황에 아주 쉽게 동요하게 된다. 말하자면, 말이 안 된다고 느끼겠지만, 이들은 윤석열과 그를 옹호하는 여당을 매우 싫어하며, 윤석열이 탄핵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되 탄핵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지는 않지만 탄핵에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조기대선이 치러져서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내 친구들에 한한 이야기를 섣부르게 일반화할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마저도 중립이나 중도를 자처하는 사람들의 어떤 심리나 논리의 단초는 내 친구들의 사례로부터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소위 ‘2030 남성’이 극우화되었다며 우려를 표하고, 다른 일부에서는 여전히 ‘2030 남성’의 탄핵 찬성률이 높게 집계된다며 안도를 표하지만, 위와 같은 ‘~이기도 하고 ~이 아니기도 한’ 상태는 여론조사만으로는 결코 파악이 안 된다. 이 상태를 안일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뭇사람 헷갈리게 만드는 ‘2030 남성’뿐만 아니라, 중도를 자처하며 양비론을 채택하고 있고 진실을 향한 열정을 결여한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여론조사의 ‘탄핵 찬성 측’에 암약하고 있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엄청난 극우화의 물결을 일으킬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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