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자신을 국회에 보낸 전직 대통령이자 국군통수권자, 윤석열씨 앞에 한 군인이 섰다. 23년차 특전사. 그가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내란 우두머리 혐의 형사재판 두 번째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제 부하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12.3 계엄의 밤 국회 본관까지 진입했던 특수전사령부 대대장이 21일 내란 형사 법정에서 한 말이다. 그의 앞에는 파면된 전직 대통령이자 내란 우두머리 혐의 피의자인 윤석열씨가 앉아 있었다. 특전사 대대장의 발언은 형식적으로는 재판장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내용적으로는 과거 윤씨가 했던 유명한 발언들을 사용해 눈 앞의 윤씨에게 하는 강한 항의였다.
각 잡힌 군복 차림으로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대법정 증인석에 선 김형기(43) 육군 특전사 1특전대대장(중령)은 증언 내내 시종일관 큰 목소리로 윤씨 측 변호인 질문에 답했다. 김 대대장은 지난해 12월 4일 오전 1시께 국회에서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되기 직전 자신의 상관인 이상현 특전사 1공수특전여단장으로부터 '대통령 지시사항이니 문을 부수고서라도, 유치창을 깨서라도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해온 인물이다.
"아니, 그걸 어떻게 합니까?"
'상급자에게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면, 그 지시를 왜 수행하지 않았나'라는 윤씨 측 변호인 질문에 김 대대장은 "아니 그걸 어떻게 합니까"라고 거듭 반문했다. 그는 "군이 부여 받은 임무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라며 "(만일 지시를 이행했다면)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폭동이 안 생긴 이유는 저희 병력들이 참았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김 대대장은 특전사 등 군인이 그때 유혈사태까지 감수하고 지시를 수행하려 했다면 민간인들이 얼마나 있었든 간에 진압이 가능했다고도 말했다. 김 대대장은 당시 국회로 간 휘하 병력 130여명 중 49명은 국회 경내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버스에 대기시켰다고 했다.
"나는 현장에 있었다"
'그럼 증인은 올바른 판단을 했고, 이상현 여단장과 곽종근 특전사령관은 상급자임에도 잘못된 지시를 내렸다는 거냐'는 추궁에 김 대대장은 "제가 상급자를 평가할 수 없다"면서도 "분명한 사실은 저는 현장에 있었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제가 현장에 있다 보니까, 직접 몸으로 느꼈고 체감하다 보니 '이건 잘못됐다'고 느낀 것"이라며 "책상에 앉아서 임무만 주고 지시만 하는 사람이 뭘 알겠는가,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김 대대장의 단호한 답변에 피고인 윤씨 쪽 책상에 앉은 변호인 10여명이 놀란 듯 눈이 커졌다. 눈을 감고 잠시 조는 듯한 모습을 보였던 윤씨도 고개를 들어 그를 잠시 쳐다보고는 표정이 어두워졌다. 김 대대장과 윤씨 사이의 거리는 불과 3~4미터 안팎이었다.
"차라리 날 항명죄로 처벌해달라, 그러면 부하들은 항명죄도 내란죄도 아니다"
▲김형기(43) 육군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중령)이 지난 2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특별위원회 - 제4차 청문회에 출석한 모습. ⓒ 국회방송 캡처
작심한 듯 김 대대장은 재판부에게 마지막 발언을 청했다. 지귀연 재판장은 허용했다.
김 대대장은 비상계엄 당시 받았던 명령의 부당함과 군인으로서 느낀 번뇌를 호소했다. 윤씨가 검사 시절 했던 말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와,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 때 했던 발언 '아무 일도 없었다'를 사용해 자신의 말을 했다. 그는 의원을 끌어내라는 지시를 거역한 자신을 "차라리 항명죄로 처벌해달라"고 했다.
다음은 이날 김 대대장의 마지막 발언 전체다.
"재판장님 저는 그, 사실 꼭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여러가지 많은 게 언론에 노출되지 않다 보니까. 저는 앞서 (군 생활한 게) 23년이라 말씀 드렸는데, 저는 2003년도에 이등병으로 입대했습니다. 그리고 2004년에 다시 부사관으로 임관했고, 2009년도에 다시 장교가 됐습니다. 제 나이 올해 마흔 셋인데, 군 생활 23년 동안 했습니다.
그런데 23년의 군 생활하면서 과거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게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겁니다. 저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았습니다. 조직에 충성해왔고. 그 조직이 저한테, 국가와 국민을 지켜야 할 의무를 부여했습니다. 누군가 제게 그럽니다. 항명이라고 얘기합니다. 왜냐면 저희 조직은 철저하게 상명하복을 기반으로 운영되는 조직입니다. 저는 항명이 맞습니다.
그런데 상급자 명령에 하급자가 복종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을 지키라는 고유의 임무를 부여했을 때, 그 안에서만 국한됩니다. 저는 제가 23년 동안 군 생활하면서, 국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임무를 수행해왔습니다. 그런데 지난 12월 4일 받은 임무는, 제가 거기서 어떻게 그런 임무를 수행하겠습니까.
저는 조직에 충성했습니다. 차라리 저를 항명죄로 처벌해주십시오. 그러면, 제 부하들은 항명죄도 아니고 내란죄도 아닙니다. 제 부하는 아무 잘못도 없습니다. 그날 그 자리에서 제 부하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렇기 때문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 덕분에 저는 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군이 다시는 이런 정치적인 수단에 이용되지 않게끔, 특히 제 뒤에 앉아 계신 분들께서 철저하게, 날카로운, 그리고 필요하다면 질책과 비난을 통해서 우리 군을 감시해주시길 부탁 드리겠습니다. 그래야만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죄송합니다."
김 대대장이 마지막 발언에서 군을 감시해달라고 부탁한 "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방청석에 앉아있는 언론인들과 시민들이었다.
▲19일 서울 강서구 ASSA아트홀에서 열린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자 1차 경선 토론회에서 A조 후보들이 시작 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찬탄파’(탄핵 찬성파)와 ‘반탄파’(탄핵 반대파)로 나뉜 국민의힘 대선 경선 후보 8명이 19~20일 이틀간 A조 B조로 나뉘어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의 책임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20일 서울 강서구 아싸(ASSA)아트홀에서 열린 1차 경선 B조 토론회에서 한동훈 후보는 나경원·이철우·홍준표 후보를 겨냥해 “비상계엄에 반대하지만, 경미한 과오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넓은 의미에서는 계엄 옹호”라고 지적했다. 그러자 홍준표 후보는 “2시간의 해프닝이었다. 실질적 피해가 없다”, 나경원 후보는 “한 후보가 내란몰이 탄핵을 선동해 이 지경을 만들었다”, 이철우 후보도 “(한 후보는) 왜 경솔하게 탄핵에 들어갔냐”라고 맞받았다.
4명 모두 자신들이 이재명 대항마라는 데는 한목소리를 냈다. 홍 후보는 “이번 대선은 이재명 정권이냐 홍준표 정권이냐 양자택일”, 한 후보는 “윤 전 대통령과 이재명 후보를 같이 극복할 사람이 이길 수 있다. 그게 저”, 나 후보는 “이재명의 민주당 일부 세력은 친북이라고 볼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19일 같은 곳에서 열린 1차 경선 A조 토론회 분위기도 비슷했다. 안철수 후보는 김문수 후보를 향해 “윤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했다. 탄핵 이후 국무위원으로서 사과했나”라고 말하자, 김 후보는 “저는 오히려 ‘대통령이 왜 계엄했나’를 본다. 민주당의 30번에 걸친 줄탄핵 (때문)”이라고 반박했다.
21일 아침 신문들은 국민의힘 대선 후보 1차 경선 토론회 소식을 다뤘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는 한목소리로 국힘 대선 경선 후보들을 향해 “탄핵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오로지 이재명 때리기 뿐” 이라고 비판했다.
▲21일 동아일보.
조선 “오로지 이재명 때리기” 동아 “‘반이’ 구호만”
조선일보는 <‘尹 늪’에 빠져 퇴행적 모습뿐인 국민의힘> 사설에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 보름이 넘었지만 여전히 탄핵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이라며 “비상계엄으로 국정을 혼란에 빠뜨리고 국민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해 책임을 밝히고 사과하는 게 도리지만 그런 후보는 없었다. 윤 전 대통령 논란으로 상대 후보를 공격하고 표를 얻겠다는 궁리뿐”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민주당 이재명 후보 때리기에는 한목소리를 냈다”라고 지적했다. 조선일보는 “‘믿을 수 없는 거짓말 후보’ ‘당선돼도 대법원 판결로 다시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했다. 일부 후보는 이 후보의 공약이 적힌 종이를 찢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하지만 무너진 국정 시스템을 어떻게 되살리고 경제·안보 위기를 돌파할지에 대해선 뚜렷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 오로지 ‘이재명 때리기’뿐이었다. 이래서 어떻게 국민에게 믿고 표 달라고 할 수 있나”라고 했다.
▲21일 조선일보 사설.
▲21일 동아일보 사설.
동아일보도 <아직도 ‘반탄’ ‘신당’ ‘韓등판설’ 수렁에서 헤매는 국힘 경선> 사설에서 “자기 당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지는 조기 대선에 나설 대표 주자를 뽑는 경선이지만 여전히 ‘반탄’ 수렁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19, 20일 경선 토론에서 김문수 후보는 ‘정직한 나만이 거짓과 부패를 이길 수 있다’고 주장했고, 홍준표 후보는 ‘비양심과 패륜의 나라를 막아야 한다’고 외쳤다. 한동훈 후보는 ‘위험한 사람의 괴물 정권이 나라 망치는 걸 막아야 한다’고 했다. 지지율이 앞서는 상대 당 후보 공격은 불가피하다지만, 한때 집권 여당이었던 국민의힘 후보들이 ‘반이’ 구호만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尹 창당 논란, 조선 “尹, 모든 공개 행보 멈추고 자숙하라”
경향 “국힘 보수정치 재건하려면 尹·극우와 절연해야”
지난 17일 윤석열 변호인단이 윤석열 신당인 ‘윤어게인 신당 내외신 기자방’을 만든다며 400여명의 기자들을 동의 없이 초대해 단체 카카오톡 대화방을 만들었다. 지난 18일 창당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윤 전 대통령 만류와 국민의힘 반발로 일단 유보했다. 이후 지난 19일 윤 전 대통령 탄핵심판을 변호했던 김계리 변호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과 배의철 변호사와 함께 찍은 사진과 함께 “내 손으로 뽑은 나의 첫 대통령. 윤버지(윤석열 아버지). ‘Be calm and strong(침착하고 강인해져라)’”이라고 썼다.
▲21일 조선일보.
또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지난 19일 오전 11시부터 서울 광화문에서 집회를 열고 이 자리에서 자유통일당 후보로 대선에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 목사는 “나는 대통령으로 출마한다. 차라리 이재명을 당선시키면 시켰지 국민의힘 8명 너네는 절대 당선 안 시킨다”라고 말했다.
동아일보는 4면 <‘점입가경’ 尹 사저정치, 신당 추진 변호사와 식사… 국힘선 한숨> 기사에서 김계리 변호사가 쓴 문구인 ‘Be calm and strong’을 두고 “이 문구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이 큰 청새치를 잡기 위해 스스로를 격려하며 한 말이다. 윤 전 대통령이 2020년 12월 검찰총장 시절 징계 국면 당시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로 처음 올린 뒤 2022년 대선에서 당선된 이후에도 계속 유지했던 문구다. 윤 전 대통령이 사실상 자신의 정치입문 출사표를 올려 달라고 요청한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같은 상황을 곤란해하고 있다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인 국민의힘은 곤혹스러워하는 분위기”라며 “한 부산·경남(PK) 지역 의원은 ‘경선 분위기를 띄워야지 ‘윤 어게인’ 신당으로 힘을 빼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했고, 한 수도권 의원도 ‘창당에는 두 달 이상이 걸린다. 시간적으로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한 재선 의원은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지 못해 당이 중도층 민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당이 바뀌는 모습을 못 보여주고 있으니까 심정적으로 국민의힘을 지지하던 중도층도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라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尹 늪’에 빠져 퇴행적 모습뿐인 국민의힘> 사설에서 “당 주변에선 ‘윤심(尹心) 팔이’가 계속되고 있다. 파면당해 재판 중인 전직 대통령을 대선판에 끌어들여 어쩌자는 것인가”라고 비판한 뒤 “윤 전 대통령은 ‘신당에 일절 관여하지 않았다’고 밝혔으나 그 말도 믿기 어렵다. 윤 전 대통령은 정치에서 손 뗀다는 명확한 메시지와 함께 모든 공개 행보를 멈추고 자숙해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21일 경향신문 사설.
경향신문도 <‘윤석열 정치’ 다시 꿈꾸는 극우의 준동, 가당키나 하나> 사설에서 “극우 지지층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정치 복귀를 시도하려는 윤석열의 행태는 뻔뻔하다 못해 파렴치하다. 윤석열을 다시 불러내려는 극우의 정치세력화는 한국 정치에 암운을 드리울 수 있다. 내란 수괴의 정치 복귀를 지원하고, 한술 더 떠 그 이름을 딴 정당까지 등장하는 게 도대체 가당키나 한 일인가. 헌법으로 단죄된 윤석열의 집권 3년과 내란이 빚은 퇴행이고 비극일 뿐”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 책임에선 국민의힘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극우 움직임에 국민의힘 일부 대선 경선 후보들이 윤석열 거리두기에 나섰지만, 보수·극우의 내분·갈등은 윤석열과 극우집회를 비호했던 국민의힘의 자업자득이다. 이제라도 국민의힘이 건강한 보수정치를 재건하려면 윤석열·극우와 절연하고 새출발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90% 득표 이재명, 한국일보 “대세론만으로 선택받는다 생각하면 큰 오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0일 영남권 지역순회 경선에서 90.81%의 득표율로 압승했다. 이재명 후보는 전날 충청권 경선에서 88.15%의 득표율을 기록한 데 이어 이틀 연속으로 압도적 1위를 기록하며 민주당 내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그러자 조선일보는 득표율을 두고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고 했고,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들의 토론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또 민주당 대선 후보로 압도적이라 해도 대통령 후보로서 검증을 소홀히 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21일 조선일보.
▲21일 조선일보 사설.
조선일보는 <득표율 90%, ‘이재명 1인 정당’은 위험하다> 사설에서 “1년 전 민주당 대표 연임에 성공한 전당대회에서 기록한 민주당의 역대 최고 득표율(85.4%)을 넘어선 것이다. 권위주의 국가에서나 나올 법한 득표율이다. 과거 제왕적 총재 시절에도 없던 일”이라며 “민주당은 다양성과 치열한 내부 노선 투쟁을 개혁의 원동력으로 삼았던 정당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당대표직을 지낸 3년여간 민주당 의원들은 이 후보를 위한 방탄과 입법 폭주에 동원됐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탄핵 소추안을 30건 발의해 그중 13건을 일방 통과시켰다. 대부분 이 후보 방탄을 위한 정략적 탄핵이었다. 이 후보의 대선 가도에 방해가 되는 당헌·당규는 바꾸고, 그의 정책 구호인 ‘기본 사회’를 당 강령에 명시했다. 이 후보를 위한, 이 후보의 정당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어대명’ ‘답정너’ 경선인 상황에서 검증 부실을 경고했다. 동아일보는 <충청-영남서 90% 득표 압승… ‘어대명’에 ‘답정너’ 민주 경선> 사설에서 “경선 결과가 뻔히 보이자 후보들을 검증해야 할 TV토론회도 맥 빠진 모습이다. 18일 첫 토론회는 대부분 이슈에서 세 후보가 비슷한 견해를 보이고 논쟁을 피하면서 싱겁게 끝났다”라며 “각종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는 이 전 대표는 경선 승리가 떼어 놓은 당상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경선이 그저 대선 후보 추대를 위한 ‘요식 행위’가 될 수는 없다. 치열한 논쟁으로 후보 자격을 검증받고 이를 통해 지지 기반을 넓히는 기회가 돼야 한다는 점에서 과정이 중요하다. 뻔한 결말에 힘 빠진 토론, 경선의 신뢰성 논란으로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21일 한국일보 사설.
한국일보도 <90% 득표 민주당 ‘어대명’ 경선... 그렇다고 검증 부실 안된다> 사설에서 “특히 긴장감을 찾아볼 수 없다. 경선장에서도 방송토론에서도 후보 검증을 위한 날 선 문답은 사라졌다. 정책 검증과 관련해 증세·세종시 행정수도 이전 등이 쟁점이 됐지만, 모범답안을 주고받는 수준에서 그친다. 도덕성 검증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18일 첫 방송토론에서는 이 전 대표가 주도권 토론 시간 일부를 다른 후보에게 양보하는 모습까지 전파를 탔다. 본선 토론이었다고 해도 이렇게 했을까”라고 지적한 뒤 “정치 실패는 대개 오만함에서 비롯된다. 민주당이나 이 전 대표나 대세론만으로 국민 다수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다면 이만큼 큰 오산도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세종대로 일대에서 대한의사협회 주최로 열린 ‘의료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에 참석한 사직 전공의, 의대생, 의사 등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정부가 내년도 의과대학 증원 방침을 철회하며 의사집단에 ‘백기’를 든 이후 첫 주말, 의사와 의대생들은 오히려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열고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포함한 의료개혁을 중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사단체들이 의대 증원 철회를 얻어내고도 다른 요구사항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한 행보를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20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숭례문 일대에서 ‘의료 정상화를 위한 전국의사궐기대회’를 개최했다. 주최 쪽 추산 2만5천명이 모였다. 김택우 의협 회장은 “의료를 파괴한 정권은 결자해지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정부는 과오를 인정하고 책임 있는 사과와 수습책을 제시하라”고 주장했다.
등록 후 수업거부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의대생들은 각자 학교의 깃발을 들고 집회 장소에 모였다. 40개 의대가 하나씩 호명될 때마다 학생들은 함성을 질렀다. 집회가 시작되면서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문형배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영상이 나오자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다.
의대생들의 투쟁을 이끄는 이선우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비상대책위원장은 발언대에 올라 “학생들이 수업에 복귀했다고 포장하기 바쁘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만으로도 의료계에 여전히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최근 정부가 윤석열 파면 이후 2026년 모집인원을 기존 수준으로 조정하겠다고 발표하면서도 2027년도부터는 수급추계위원회를 통해 ‘증원’하겠다고 말하고 있다. 의대 정원은 과학적 추계에 따라, 그리고 교육 현장이 견딜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결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의대생 복귀 명분을 만들어보고자 기존 입장을 번복하면서까지 내년도 의대 모집인원을 증원 전 규모인 3058명으로 되돌렸다. 의대 총장들은 의협을 향해 의대생 수업 복귀를 독려하는 입장을 내달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택우 회장은 이날 집회에서 “의대생·전공의들은 돌아갈 명분이 없다고 되뇌고 있다”며 “여러분이 시작한 외침은 옳았다. 의료의 본질을 지키는 싸움을 함께 시작하자”고 말했다. 의협 부회장을 맡은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대위원장은 “우리는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걷고 있다. 각자 자리에서 각자 방식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하자”고만 언급했다.
의협은 이날 궐기대회에서 “필수의료 패키지를 포함한 의료개혁을 중단하고, 정부·국회에서 전공의 및 의대생들의 요구안을 포함해 보건의료정책 전반을 의협과 함께 재설계하라”고 요구했다. 또 교육부를 향해 “각 대학 교육 여건에 대한 의학교육평가원의 재인증을 실시하고, 교육이 불가능한 의대에 대해선 입학 정원 조정 등의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집회는 의협이 대선 전 여야를 상대로 협상력을 끌어올리고, 내부 결속에 나서기 위해 마련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회장은 “대선 후보들에게 보건의료 공약을 제안하고 책임 있게 요구하자”고 말했다.
정부를 압박하는 의협을 두고 의료계와 시민사회에서는 “앞뒤 가리지 않고 집단 이익만을 관철하고자 하는 요구는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보건의료노조)는 비판이 나온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국장은 “흔들리지 않던 ‘의대 증원’이 계엄 사태를 계기로 후퇴했고, 이젠 대선도 앞두고 있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그동안 곱게 보이지 않았던 의료개혁 철회까지 얻어내려는 것”이라며 “의협을 포함한 의료계는 여태 아무것도 양보한 것이 없다. 이제 마지막 하나까지도 낱낱이 내놓으라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정형준 ‘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의협은) 반대만 할 뿐 대안을 가져오지 않는 비토 전략을 펴고 있다. (정부 정책을) 없던 걸로 하는 것 말고는 아무 이야기도 한 게 없다”며 “전문가단체로서 무책임한 단체가 됐다”라고 말했다.
4.20 '장애인 차별 철폐의 날'을 맞아 시민사회 단체들은 '장애인 이동권' 등 차별 철폐 문제를 오는 6.3 대통령 선거의 주요 의제로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여야의 '정반대' 장애인 정책 행보가 눈길을 끌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이재명·김동연 등 대선 경선 후보들이 앞다퉈 '차별 철폐'를 강조하며 관련 메시지 및 공약을 제시하는 반면, 윤석열 정부 출범을 전후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이동권 시위' 때리기에 나섰던 국민의힘에선 8명의 주자들 중 다수가 침묵했다.
장애·인권·노동·사회단체 연합체 '420장애인차별철폐공동투쟁단'은 20일 장애인차벌철폐의날(장애인의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전국집중결의대회를 열고 "이번 대선에서는 반드시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강고한 투쟁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420공투단은 정부가 시혜적인 관점으로 지정한 '장애인의날'이 "차별과 억압을 은폐시키는 날로 기능하고 있다"며 이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날로 명명해 매년 결의대회 등을 진행하고 있다. (☞ 관련기사 : "내 장애는 '역경'이 아니다 … 동정과 시혜는 집어치우라")
420공투단은 이날도 오후 본대회를 통해 '장애인도 시민으로 이동하는 민주주의 행진'을 실시, 이후엔 1박 2일 노숙농성을 진행한 뒤 이튿날 8일 아침 8시에는 장애인 활동가들이 휠체어를 타고 출근지하철에 탑승하는 시민운동 '62차 출근길 지하철 탑니다'에 나선다. 윤석열 정권 기간 동안 정부·여당으로부터 공격 받아온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취지를 전달하려는 취지다.
대선을 앞둔 시기인 만큼, 시민사회는 이날 장애인의날을 맞아 정치권의 장애인 관련 메시지를 주시했다.
지난 2021년부터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불법성을 주장하며 '전장연 때리기'로 장애인계와 각을 세워온 국민의힘은 '장애인의 날'인 이날 종일 침묵을 지켰다. 김문수·홍준표·나경원·이철우·유정복·한동훈·안철수·양향자 등 8명의 대선 경선 후보들은 이날 오후 3시께를 기준 장애인의날 관련 메시지나 공약 발표 없이 부활절 관련 메시지 및 경선 TV토론 활동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경원 후보만이 오후 4시께 본인 페이스북을 통해 따로 장애인 정책 공약을 발표했다.
당에선 신동욱 수석대변인 명의로 장애인의날 관련 논평이 발표됐지만, 이마저도 "우리는 '장애인의 삶'이 '기준'이 되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어 가야 한다"는 등 원론적 수준에 그쳤다. 장애인 당사자들이 강조하는 '장애인 차별', '장애인 혐오' 등의 단어는 아예 논평 전문에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는 과거 오세훈 서울시가 '장애인의날' 보도자료에 '차별'이란 단어를 배제해 장애인단체들의 반발을 샀던 것을 연상시키기도 했다. (☞ 관련기사 : '장애인의 날'을 반대하는 장애인들이 있다)
특히 논평에서 신 대변인은 "그동안 국민의힘은 장애인 사회참여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 왔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지난 2022년 이준석 전 대표 재임 시절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불법·폭동 등으로 규정하며 맹비난해 '특정 집단·계층에 대한 혐오를 정치적 동력으로 이용한다'는 취지의 지적을 받았다. 자당 내 장애인 당사자인 김예지 의원이 이에 공개적으로 반발해 이동권 시위 현장을 찾은 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같은 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 또한 오랫동안 장애계와 대치를 이어왔다. 이에 420공투단은 이날 "윤석열 파면 이후 그동안 장애인권리약탈자들이 약탈해온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염원해왔다"고 호소하기도 했는데, 이 같은 맥락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나오지 않은 채 장애인에 대한 '당의 노력'을 어필한 셈이다.
국민의힘에선 장애인의날을 앞두고 지난 18일 대선공약기획단이 장애인 공약을 발표하기도 했는데, 해당 공약에서도 근 몇 년간 장애계와 정부 간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자리했던 '이동권', '탈시설' 등의 단어는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 민주당에선 대선 경선 후보인 이재명 전 대표와 김동연 경기지사가 일제히 '차별 철폐', '국가 책임' 등의 개념을 명시한 장애인 관련 공약을 제시해 국민의힘과 상반된 모습을 보였다.
이 전 대표는 이날 본인 페이스북에 공개한 장애인정책발표문에서 "장애인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당당한 권리의 주체로, 당사자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장애인 정책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장애인 특별교통수단 확충 △장애인 이동권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확대 △발달장애인·정신장애인 돌봄 국가책임제 실시 △장애인 통합교육 환경 구축 등 장애인 권리 보장 정책을 제시했다.
김 지사는 나아가 '대통령 직속 국가장애인위원회 신설'을 약속했다. 김 지사는 "그간 국무총리 산하 장애인정책조정위원회가 보여준 집행력 부족과 부처 간 조정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정책 일관성과 조정 권한을 갖춘 실질적 컨트롤타워를 대통령 직속으로 하고, 장애인 정책을 직접 챙기겠다는 구상"이라고 밝혔다. 그는 △장애연금 2배 인상 및 장애인연금 단계적 확대 △장애인 정책예산 OECD 평균 수준 상향 △현물 지원 위주의 현 장애인 예산구조를 현금 중심으로 전환하는 정책 등 관련 정책을 함께 제시하기도 했다.
당 논평에서도 '차별' 개념이 강조됐다.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국회 서면브리핑에서 "장애인과 그 가족의 기본권이 보장되고, 차별 없는 일상 속에서 동등한 기회를 누릴 수 있을 때, 우리 사회는 더욱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다"며 "민주당은 장애인의 이동권, 자립생활, 소득보장, 교육, 일자리 등 모든 권리와 존엄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변함없는 연대와 실천을 다짐한다"고 했다.
당 인권위원회 또한 이날 성명을 내고 "그간 장애인들이 이동권, 참정권,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해 목소리를 냈을 때, 혐오와 배제로 응수하지 않았는지 성찰이 필요하다"며 "장애인을 향한 혐오와 차별, 이에 기생해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혐오세력에도 함께 맞서겠다"고 했다. 이들은 정부가 지정한 '장애인의 날'의 의의에 대해 "장애는 차이 일뿐 차별의 이유가 될 수 없다는 점을 되새기는 날이길 바란다"고 해석하기도 했다.
당 전국장애인위원회에선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판이 분출하기도 했다. 민주당 장애위는 이날 발표한 성명서에서 "윤석열정부 3년간 '약자복지' 운운하며 장애인을 위한 정책을 하겠다 했지만, 장애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은 더욱 노골화되었고 불평등은 심화됐다"며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 이후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진짜 대한민국은 장애평등사회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특히 이날 장애인의날 의의에 대해 "장애인이 시민으로 이동하는 시대를 열어야 한다"며 "'동정'과 '시혜'의 '장애인의 날'이 아니라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선언하고 장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가 지난해 1월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승강장에서 열린 출근길 지하철 탑승 시위에서 지하철 탑승을 시도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예섭 기자
몰랐던 말들을 듣고 싶어 기자가 됐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비겁하고, 조금이라도 더 늠름한 글을 써보고자 합니다. 현상을 넘어 맥락을 찾겠습니다. 자세히 보고 오래 생각하겠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20일 울산시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영남권 합동연설회'에서 정견 발표를 하고 있다. 2025.4.20. 연합뉴스
6‧3 조기 대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선출을 위해 출발한 경선 레이스가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이재명 후보는 누적 득표율이 90%에 달해 일찌감치 경쟁자 없는 독주체제를 굳혔다. 이 후보의 대선 본선 진출이 확실시되는 가운데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사실상 이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혁신당 당원들에게 간곡히 당부했다.
민주당은 20일 오후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영남권(부산·울산·경남·대구·경북) 경선의 권리당원·전국대의원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가 90.81%의 압도적 득표로 1위를 기록한 반면 2위 김경수 후보는 5.93%, 3위 김동연 후보는 3.26%를 얻는 데 그쳤다. 전날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충청권(대전·충남·세종·충북) 경선에서는 1위 이 후보 88.15%, 2위 김동연 후보 7.54%, 3위 김경수 후보 4.31%였다.
충청권과 영남권 투표 결과를 합친 현재까지의 누적 득표율은 이 후보 89.56%, 김동연 후보 5.27%, 김경수 후보 5.17%다. 투표율은 충청권(57.62%)과 영남권(70.85%) 모두 지난 대선 경선 때에 비해 10%p가량 올랐다. 윤석열 정권에서 갖은 국정 파탄에 이어 내란 사태까지 겪으며 당원들의 정권교체 열망과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증폭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경선 후보가 19일 오후 충북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선거 후보자 선출을 위한 충청권 합동연설회'에서 경선 결과 발표를 들은 뒤 인사하고 있다. 2025.04.19. 연합뉴스
이 후보는 이날 영남권 합동연설에서 자신을 "경북 안동이 낳고 길러 주신 영남의 큰아들"이라고 소개한 뒤 "영남의 당원동지 여러분, 동토에서 독립운동하듯이 민주당을 지켜온 여러분이 바로 우리 민주당의 든든한 뿌리다.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 덕에 윤석열 정권의 내란을 신속하게 저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할 수 있었다. 정말로 감사드린다"고 말해 민주당 험지에서 악전고투해온 지역 당원들을 고무시켰다.
이어 "이번 대선은 단지 5년 임기의 대통령을 뽑는 반복적인 단순한 선거가 아니다. 우리 대한민국의 국운이 달린 절체절명의 선택"이라며 "민주공화국의 위기 앞에서 2‧28 민주 의거로, 3‧15 마산 의거로, 부마항쟁으로 분연히 일어나고 저항했던 곳이 바로 영남이다.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심장으로서, 전쟁의 폐허 위에서 산업화를 이뤄낸 것도 바로 영남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권은 3년 내내 민주주의와 민생을 파괴하고 영남이 쌓아 왔던 그 역사적 성과들을 배신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먹사니즘의 물질 토대 위에 행복한 삶을 위한 잘사니즘으로, 세계를 주도하는 '진짜 대한민국'으로 도약해보자.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만들어 낸 대한민국, 그리고 영남이 앞장서면 우리가 세계 표준이 되는 진짜 대한민국이 불가능하지 않다"며 "평범한 사람들이 주인으로 대접받고 희망을 가지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나라, 공평하고 정의로운 진짜 대한민국을 시작해야 하지 않겠는가? 경제를 살리고 평화를 회복하고 민생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래서, 그러므로, 지금은 이재명이다!"라고 호소했다.
이 후보가 당심을 평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남은 순회경선 및 일반 국민 대상 여론조사에서도 이렇다 할 이변이 연출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민주당은 26일엔 호남권, 27일엔 수도권·강원·제주 경선을 진행한다. 전체 투표 반영비율의 50%를 차지하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 결과도 27일 공개하고 이를 당원투표와 합산해 최종 득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 흐름대로라면 이 후보가 합산 득표 과반을 무난하게 확보해 결선투표 없이 27일 당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전망이다.
청와대 감찰 무마 등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 형이 확정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가 16일 오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 앞에서 수감되기 전 지지자들을 향해 주먹을 쥐어보이고 있다. 2024.12.16. 연합뉴스
한편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는 18일 옥중에서 작성한 편지를 통해 민주당 후보가 결정되면 혁신당은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거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앞서 혁신당은 17일 전당원 투표를 거쳐 "내란 완전 종식과 민주 헌정 수호 세력의 압도적 정권교체를 위해 (대선) 독자 후보를 선출하지 않고 야권 유력 후보를 총력 지원하는 선거 연대를 의결한다"는 당론을 당원 98%의 찬성으로 확정한 바 있다.
조 전 대표는 옥중서신에서 "독자 후보의 필요성을 역설한 분들은 아쉬울 것이다. 그렇지만 당무위와 당원들은 당면한 시대적 과제의 중대함과 현시점 당의 역량을 고려하면서 압도적 다수 의견으로 현명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며 "친애하는 당원동지 여러분! 전(前) 대표로 부탁드린다. 민주당 후보가 결정 나면 조국혁신당 후보라고 생각하고 응원하고 돕자"고 전했다.
그는 "비전과 정책 측면에서 두 당은 차이가 있다. 조국혁신당이 더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노선을 취하고 있음은 분명하다"면서 "그렇지만 50일도 남지 않은 대선에서 이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일에는 경중과 순서가 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조국혁신당의 깃발을 들고 민주당원보다 더 앞장서서, 더 진심으로, 더 열렬하게 정권교체를 위해 헌신하자. 이것이 대한민국과 조국혁신당을 위하는 길"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2대 국회 개원식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2024.9.2. 연합뉴스
"겨울을 지나 봄에 도착했습니다”
"내란 세력, 뿌리째 뽑아야"
"한덕수 궤변 넘어 헌법 지킨 판결 환영"
"120년 전 을사년 비극, 되풀이하지 말자“
▲19일 오후 5시 30분,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한 시민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민주노총
19일, 4.19혁명 65주년을 맞아 광화문 광장은 다시 한 번 역사의 물결로 넘실거렸다.
1700여 개 시민사회 단체로 구성된 ‘윤석열 즉각퇴진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은 이름을 ‘내란 청산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으로 변경하고, ‘내란종식, 사회대개혁을 위한 시민행진’을 열었다.
시민들은 윤석열을 재구속하고 내란 청산과 민주주의를 향한 결연한 의지를 드러냈다.
"겨울을 지나 봄에 도착했습니다”
첫 무대에 선 밴드 전기 뱀장어의 보컬 황인경 씨는 군중을 향해 외쳤다.
“길었던 겨울을 지나 비로소 봄에 도착했습니다. 여기 이곳 광장에서 우리는 외쳤습니다. 권력에 이용당하는 객체가 아니라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체가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황 씨는 “윤석열을 파면시키며 하나의 언덕을 넘었지만, '보스 몬스터'를 해치웠다고 끝난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강조했다.
이어 “제2의 윤석열이 고개를 쳐들 때 깨깽하고 도망가게 만드는 사회를 함께 만들자”며 결의를 다졌다.
▲19일 오후 5시 30분,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내란청산 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주최한 시민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민주노총
"내란 세력, 뿌리째 뽑아야"
비상행동 진영종 공동의장도 단상에 올라 단호히 말했다.
“윤석열을 파면시킨 우리의 오늘은 어제와 달라야 하고, 우리의 내일은 또 오늘과 달라야만 합니다. 내란 세력을 청산하고 그 자들을 우리 사회 곳곳에서 뿌리째 뽑아버려야 합니다!”
진 공동의장은 또한 “내란수괴를 풀어준 판사와 검사는 잘못을 조금이라도 용서받으려면 책임지고 윤석열을 즉각 다시 구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계속 권한을 넘어서는 권력을 행사하려하는 권한대행 한덕수를 끌어내고, 우리의 일상에서 각자 사회 대개혁 의제를 추진하고 실천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고 열매를 활짝 맺어야만 우리는 4.19 영령뿐만 아니라 우리의 후손들께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라 덧붙였다.
"연대는 사람을 일으키는 힘”
비상행동 자원봉사단으로서 국회, 남태령, 한강진에서 밤샘 농성을 해온 김민지 씨는 밤샘 농성장에서 만난 옵티칼 하이테크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김 씨는 “옵티칼 하이테크 농성 희망텐트에서 응원하러 온 우리가 도움이 되기는 하는지 묻자 동지들은 ‘우리가 여기 있다는 걸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더 싸울 수 있다’고 말했다”며 “그때 연대는 사람을 일으키고 사람을 살리는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밝혔다.
김 씨는 “5월이 되면 고공농성이 500일을 넘긴다”며, “윤석열 파면 이후, 사회대개혁이라는 희망을 싣고 구미로 떠나는 '희망버스'에 함께 하자”고 호소했다.
ⓒ민주노총
"한덕수 궤변 넘어 헌법 지킨 판결 환영"
민변 집회 시위 지원단 단장 김상은 변호사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지명 무효화에 대해 설명하며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지명 행위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의 범위를 벗어난 것으로써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의해 임명된 헌법재판관으로부터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번 결정은 내란 세력과 결별하고 다시는 헌법을 위반하지 말라는 경고”라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독단적으로 위헌 행위를 한 한덕수는 그 책임을 통감하고 지금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사무처장은 “접경 지역에서 다시 대북 전단이 돌아오는 데서 알 수 있듯 내란 세력과 함께 지금 저들의 정책이 다시 우리 눈앞에 돌아오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접경 지역의 충돌 위기를 빌미로 한 계엄이 다시 시도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한 “미국은 관세 폭탄을 던지고 강압적으로 투자를 요구하고 미군 주둔의 대가를 더 많이 받아야 되겠다고 우리를 압박하며 한국을 원스톱 쇼핑 대상으로 취급하고 있다. 일본은 미국에게 한반도와 남중국해, 동중국해를 하나의 전장으로 통합하자면서 한국을 대중국 적대의 선봉 대장으로 떠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최 사무처장은 “내란대행 한덕수와 최상목이 과연 우리의 주권과 경제를 기준으로 협상할 수 있겠냐”며 “120년 전 을사년 세계 질서가 요동치던 시기에 주권을 잃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2025년 이번 을사년은 다시 주권과 평화를 세우는 해로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내란 공범답게 국외 지지를 위해 일본에 외교권을 넘겨주라 했던 을사년의 그 매국노들처럼 트럼프 정부의 요구에 발맞춰서 앞장서서 퍼주겠다는 한덕수와 최상목, 내란 공범들을 끌어내자”고 덧붙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가 지난 15일 유시민 작가와의 특집 대담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유튜브 영상 갈무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박정희·전두환 정권과 유착한 분단 기득권 세력은 김대중 대통령 당선을 막기 위해 “김대중이 대통령 되면 반드시 정치 보복을 할 것”이라고 누명을 씌웠습니다. 가해자 집단이 피해자에게 정치 보복 프레임을 뒤집어씌워 앞길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용서와 화해의 정치인이었습니다. 1980년 전두환 신군부는 광주 5·18을 내란으로 조작하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수괴 죄로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사형수 신분으로 감옥에 있을 때 그는 가족과 동지들에게 “내가 죽더라도 정치 보복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유언처럼 했습니다. 감옥에서 이런 글도 썼습니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기 때문에 얼마 안 가서 분명히 민주화를 이룩하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는 일제 식민지, 6·25 동족 전쟁 등의 과정에서 너무도 많은 원한과 증오가 쌓여서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이 문제는 법과 정의로만 해결될 수 없다. 잘못하면 보복의 악순환이 될 수 있다. 용서와 화해가 있어야만 가능하다.”
199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김대중 후보는 ‘국민 대화합을 위한 정치 보복 방지와 차별대우 금지 등에 관한 법률안’을 만들어 대선 공약으로 제시했습니다. 정치 보복, 차별 대우, 대통령 친족의 부당 행위 세가지를 금지하는 이른바 ‘3금법’이었습니다. 법안은 정치 보복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정치적 이념, 소속 정당 및 단체 등의 차이 또는 개인이나 정당·단체에 대한 지지·반대 등을 이유로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이익을 주는 행위를 말한다.”
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당선 뒤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법제화하기에는 정치 보복이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추상적이었기 때문입니다.
1997년 8일 이건개 자민련 의원이 비슷한 내용의 ‘정치 보복 금지를 위한 법치 확립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제안 이유가 이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정권 교체나 정치적 변동이 있는 때에 정치적 이념이나 지지 정당 등을 이유로 하여 특정인에 대한 정치적 보복이 예상될 수 있는 바 이를 방지하고 위법·부당한 정치 보복에 대해서는 구제 수단을 마련함으로써 정치 민주화와 인권 보장을 도모하고자 함”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됐습니다. 법사위 수석전문위원은 “법률안의 핵심 용어인 정치 보복의 정의 규정에 불명확한 개념을 사용하고 있어 정치 보복의 명확한 범위 설정이 곤란하다”고 부정적인 검토 의견을 제출했습니다. 법안은 15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3금법을 제정하지는 않았지만,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을 용서하고 화해했습니다. 먼저 당선자 신분으로 김영삼 대통령을 만나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요청했습니다.
대통령 취임 뒤에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도록 정부 예산 200억원을 지원했습니다. 재야와 시민사회의 반대를 무릅쓴 결단이었습니다. 자신이 기념관 건립 추진 명예위원장을 맡았습니다.
전직 대통령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재임 때 전직 대통령들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던 김대중 대통령도 딱 한 사람은 용서가 잘 안 돼서 오랫동안 마음의 고통을 겪었습니다. 1997년 대통령 선거 직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지시로 기자회견을 열어 ‘디제이(DJ) 비자금 의혹’을 제기한 강삼재 사무총장이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마음속에서 강삼재 사무총장을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용서와 화해라는 것이 이처럼 어려운 것입니다.
민주당 경선에 참여하고 있는 이재명 후보는 2022년 대선 경쟁자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과 검찰에 의해 집중적인 탄압을 받았습니다. 두번 구속 위기에 처했습니다. 10여개 혐의로 다섯개의 재판이 진행 중입니다. 이 와중에 칼에 찔려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재명 후보는 4월15일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유튜브에서 유시민 작가, 도올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와 대담했습니다. 정치 보복에 대해 이재명 후보는 “저는 인생사에서 누가 저를 괴롭혔다고 보복한 일이 한 번도 없다”고 했습니다. “분명히 진상을 가리고 책임질 거 책임져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로 쓸데없이 뒤져서 괴롭히거나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통합이 공동체 책임자의 최고 책임”이라고 했습니다.
검찰 개혁에 대해서는 “기소하기 위해서 수사해서는 안 된다. 수사와 기소는 분리해야 한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대폭 강화할 생각이다. 지금 검사가 너무 없다. 국수본(국가수사본부)의 독립성과 역량도 강화하겠다”고 했습니다.
이재명 후보의 발언은 즉각 보수 쪽의 반발을 불렀습니다.
조선일보는 17일치 신문 1면 머리에 “군 방첩사 3개로 쪼갠다”는 기사를 실었습니다. 이어지는 3면 기사에는 “간첩 잡는 방첩사를 세 토막, 검찰은 공소청 격하…‘적폐청산 시즌2’”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민주당은 방첩사를 3개로 쪼개는 방안은 실무선의 검토일 뿐이라고 부인했습니다. 조선일보 기사 내용에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민주당이 추진하는 일련의 개혁 작업이 문재인 정부가 했던 ‘적폐청산’을 떠올리게 하고 사실상 ‘정치 보복’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방첩사나 검찰을 건드리는 것은 정치 보복이니 하지 말라’는 요구입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17일 비상대책위에서 이재명 후보를 ‘저격’했습니다.
“2023년 9월 본인의 체포 동의안이 가결되자 민주당 일부 의원이 검찰과 암거래를 했다는 짐작만으로 비명횡사 공천을 했다. 이것은 정치 보복이자 숙청이다.”
“게다가 이재명 대표는 검찰을 해체하여 공소청과 수사청으로 분리하겠다고 공약했다. 공약 자체가 자신을 수사한 검찰을 둘로 찢어버리겠다는 보복 예고이다. 반면 공수처는 대폭 강화하겠다고 했다. 지난 대통령 수사에서 보았듯이 공수처는 권한과 실력도 없이 민주당의 사법 흥신소 노릇을 했다. 이러한 공수처를 강화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대규모 정치 보복을 위한 빌드업일 뿐이다.”
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왼쪽),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2022년 4월22일 오후 국회에서 ‘검찰의 수사-기소권 분리’(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한 국회의장 중재안에 합의한 뒤, 서명을 마친 합의문을 들어 보이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권성동 원내대표는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자 신분이던 2022년 4월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제안한 검찰 개혁 방안에 합의한 일이 있습니다. 검찰의 직접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되 한국형 에프비아이(FBI)인 중대범죄수사청이 출범할 때까지만 직접 수사권을 유지하는 내용입니다. 당시 윤석열 당선자도 동의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이 사퇴하는 등 법조 기득권 카르텔이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조선일보는 기사와 사설로 반대했습니다. 결국 사흘 만에 권성동 원내대표가 사과하고 합의를 뒤집었습니다. 그랬던 권성동 원내대표가 3년 만에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이 추진하는 검찰 개혁을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공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국민의힘이나 조선일보가 이재명 후보에 대해 ‘대통령이 되면 정치 보복을 할 위험이 있다’고 비판하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지난 총선 때의 이른바 비명횡사 공천에 대한 비판도 가능한 일입니다. 하지만 국민 다수가 동의하는 검찰 개혁까지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가로막는 것은 분단 기득권 세력, 법조 기득권 카르텔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익을 저버리는 만행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1980년 사형수 신분으로 감옥에 있을 때 쓴 글 중에는 이런 대목도 있습니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다. 국민 외에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올바른 사람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용기를 낼 수 있다. 용서야말로 최대 승리라는 철학과 신념을 가진 자만이 자신 있게 용서할 수 있다.
용서하는 삶, 그 삶은 용서받은 삶이요,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삶이다. 그러나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지 그 죄악과 나쁜 제도를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오른쪽부터)·김경수·김동연 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방송에서 첫 텔레비전 토론회를 시작하기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마무리하겠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나 이재명 후보가 말했듯이 정치 보복은 해서는 안 됩니다. 정치인의 가장 큰 책임은 국민 통합입니다. 사람을 상대로 보복해서는 안 됩니다. 용서하고 화해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저지른 죄악과 나쁜 제도를 용서해서는 안 됩니다.
12·3 비상계엄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친위 쿠데타였습니다. 내란이었습니다. 철저히 진상을 규명하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내란 우두머리와 중요 임무 종사자들을 사면·복권해서도 안 됩니다.
제도 개혁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내란 종식을 이유로 검찰에 칼자루를 계속 쥐여주면 절대로 안 됩니다. 검찰 개혁이 바로 내란 종식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지난해 '12.3 비상계엄'선포 이후 123일간 지치지 않고 끈기있게 싸운 주권자, 민중의 힘으로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을 쟁취했으니,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명백한 진실을 역사상 처음으로 확인한 4월혁명은 영원히 빛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빛의 혁명'의 요구는 내란수괴의 파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이 퇴행시킨 "민주와 진보의 가치를 복원하고, 노동자·농민·서민이 존중받는 평화와 평등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라고 하면서 지금부터 새로운 시작의 발걸음을 내딛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4·19혁명 이후 벌어진 한일협정반대, 유신철폐, 부마항쟁,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 그리고 '빛의 혁명'은 모두 4월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며, "이제 주권자 민중이 나서 수십 년간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반드시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4월혁명정신으로 내란세력 척결하여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자주 민주 통일의 새 나라를 세우자"고 힘차게 외쳤다.
△내란세력 척결하여 반동권력 끝장내자! △주권자 민중의 힘으로 사회대개혁 완성하자! △인권을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폐지하고 양심수를 당장 석방하라! △한미 예속동맹 철폐하고 자주국가 수립하자!는 결의가 수유리 4.19묘역에 울려퍼졌다.
박홍섭 사월혁명회 상임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은 "4월혁명이후 열린 광장에서 선배들이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 만나자 판문점에서'를 외쳤던 것은, 국권을 침탈하고 민중을 수탈하는 외세를 몰아내고 우리 민족의 힘으로 자주적으로 통일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은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며, "전봉준과 갑오농민군의 정신과 백남기 농민의 투혼을 계승한 농민들이 지난 동짓날 밤 어둠을 밝혔던 남태령의 빛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자주 민주, 통일의 그날까지 맨 앞에서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해 이 자리에서 다졌던 '윤석열 독재 종식' 결의를 밝힌 후 '윤석열 파면'을 시키고 난 뒤 조금은 당당한 마음으로 4월 영령들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 같다"고 하면서 "내란종식과 내란세력 척결에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미완의 혁명이 아니라 혁명이 완성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다짐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또 "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서 내란세력을 압도적으로 청산하고, 전쟁 위협이 없는 나라, 차별과 혐오, 배제가 없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여 내년 이 자리에서 또 다시 확인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결의도 밝혔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남수 전국대학민주동문회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남수 전국대학민주동문회 상임대표는 "민주주의는 아직도 쓰여지고 있는 시이며, 내일 또 다시 쓰여질 역사라서, 그것이 지워지지 않도록 계속 써나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오늘 다시 써본다.우리는 국민이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는 말로 4.19 65주년을 맞는 소회를 피력했다.
정혜경 진보당 국회의원은 "4.19 영령들 앞에 내란세력을 완전히 청산하고 진정한 평화와 민주주의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한다"며, △내란세력 완전 청산을 위한 압도적 정권교체 △내란세력 완전 청산 △주권자 국민의 뜻과 의지로 움직이는 민주공화정 수립 △강대국에 주눅들지 않고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당당하게 나아가는 대한민국 △한반도의 완전한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치겠다고 다짐했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4.19혁명은 시민항쟁을 통해 불의하고 부패하며, 무능한 대통령을 쫓아낸 첫번째 승리였고, 2016~2017년 촛불항쟁은 57년만에 광장의 투쟁을 통해 현직 대통령을 몰아낸 두번째 승리였으며, 2024~2025 빛의 광장 투쟁은 세번째 승리사례"라고 하면서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극우 내란세력의 재집권 저지를 위한 정권교체와 내란세력 청산, 사회대개혁 완수라는 과제를 제시하고는 "4월 영령앞에 부끄럽지 않은 힘찬 투쟁을 펼쳐 나가자"고 말했다.
최휘주 진보대학생넷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안정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상임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김다은 한국청년연대 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최휘주 진보대학생넷 대표와 안정은 한국대학생진보연합 상임대표, 김다은 한국청년연대 대표는 각각 "날때부터 엉망이었던 이 사회의 구조를 탓하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4월혁명의 선배들이 3.1운동, 5.18 민중항쟁, 87년 항쟁에서 그랬듯 역사의 수레바퀴를 힘차게 굴리는 주체이자 주동자로서 광장에서 당당하게 가장 앞장서 투쟁해 왔다", "4.19혁명의 정신은 5.18 민중항쟁, 6월 항쟁이 되었고 빛의 혁명으로 계승되었다", "65년전 선배 열사들이 독재정권에 맞서 싸웠던 것 처럼 우리는 내란세력과의 투쟁을 결심했고 이땅의 민주주의를 다시 한번 민중의 힘으로 세웠다"고 하면서 "내란세력의 완전한 척결만이 사회대개혁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시작이 될 것이다. 그길에 청년들이 앞장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월혁명 65주년 선언 (전문)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새 나라 세우자!
내란수괴 윤석열이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파면됐다.
나라를 경악과 공포에 빠뜨린 ‘12·3 비상계엄’을 선포한 후 123일 동안 지치지 않고 끈기 있게 싸워 온 주권자, 민중의 승리다.
윤석열의 12·3 비상계엄은 무장 군경을 동원한 치밀하게 계획된 내란이었다.
비상계엄 선포를 위해 전쟁을 기획하고 북한을 도발한 것까지 확인되었다.
그러나 민중은 군경이 무력으로 국회 봉쇄를 하자 맨몸으로 막아냈다.
이번 ‘빛의 혁명’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 ‘5·16 비상계엄’으로 짓밟힌 4월혁명이 ‘빛의 혁명’으로 부활한 것이다.
비상계엄을 끝내기 위해 2030 세대뿐만 아니라 여의도, 남태령, 한남동, 광화문광장에 나온 민중은 역사와 민족민중운동을 진일보시켰다.
광장과 거리에서 울려 퍼진 민중의 함성은 후안무치한 검찰공화국 수장 한 사람을 파면하자고 한 것이 아니었다.
윤석열 정권이 퇴행시킨 민주와 진보의 가치를 복원하고, 노동자·농민·서민이 존중받는 평화와 평등 사회를 건설하자는 것이 ‘빛의 혁명’의 요구였다.
주권자 민중은 윤석열 검찰공화국 시대를 살면서 공안 탄압과 양회동 열사 분신 그리고 이태원 참사라는 피바다를 건너야 했다.
그리고 국격은 무너지고, 도덕이 땅에 떨어지고, 가짜언론이 앞장서서 한 거짓말을 사실인 양 호도하는 행태를 민중은 보았다.
그러나 민중은 수 없는 아픔과 눈물의 강을 건너 ‘빛의 혁명’으로 윤석열 파면을 쟁취했다.
이제 더는 미국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사대친미주의자를 용서할 수 없다.
특히 일본 식민지를 정당화하고 일본 국익에 복무한 자들을 그대로 둘 수 없다.
2025년 을사년은 광복 80주년이자 을미사변 130년 그리고 총칼로 맺은 을사늑약 120년이다.
분단정부 수립 이후 그동안 사대종미친일정권은 미국에 굴종하고 친일 청산을 부정하고 독재를 해왔다.
4·19혁명 이후 벌어진 한일협정반대, 유신철폐, 부마항쟁, 광주민중항쟁, 6월항쟁, 촛불항쟁 그리고 ‘빛의 혁명’은 모두 4월혁명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제 주권자 민중이 나서 수십 년간 쌓인 적폐를 청산하고 반드시 나라다운 나라를 세워야 한다.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내란은 끝나지 않았다.
4월혁명정신으로 내란세력 척결하여 아무도 흔들 수 없는 자주 민주 통일의 새 나라를 세우자.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이 지난 11일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기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 앞에서 허세를 떨며 던진 말이 세상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는 아크로비스타 주민 들과 악수하며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이때 한 주민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위로를 전하자 그는 “어차피 뭐 5년 하나 3년 하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직에서 쫒겨난 그가 일말의 반성은 고사하고 대선 당시 하던 ‘정치적 어퍼컷 쇼’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세간에선 “윤석열과 비교해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 선량한 파면 대통령’이었다”는 말도 회자 된다. 윤석열처럼 관저를 나오기 전, 자기 측근들을 불러 환송 만찬을 하는 뻔뻔함도 보이지 않았고, 또 적어도 “이기고 돌아왔다”는 말 따위의 허세는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이 누구를 이기고 돌아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주장이다. 헌법이 부여한 임기 5년도 버거워 다 채우지 못한 주제에 그걸 주민들 앞에서 웃으며 말하는 그 허세가 그야말로 해괴하기 짝이 없다.
모범적 인권국가가 윤석열 3년 만에 최악 국가로 전락 위기
문제는 ‘내란 수괴’ 윤석열 파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임명한 정부 내 인권기구의 인사 적폐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5년을 하나, 3년을 하나” 똑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의 대통령 재임 3년 동안 대한민국 인권 현실은 치유가 쉽지 않을 만큼 완전히 망가졌다. 정부 기구 본연의 업무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표현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5차 전원위원회를 시작하고 있다. 2025.3.7. 연합뉴스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부터 그렇다.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는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 대신 ‘내란 수괴’ 윤석열과 그 수하 김용현 등의 법적 보호를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을 추진하여 국민을 경악케 하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차관급 상임위원이며 ‘군인권 보호관’ 겸임인 김용원은 군 유족의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군 유족을 고소하는가 하면 군인권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보호 요청은 각하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면 헌법재판소를 부숴 없애야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2023.8.30. 연합뉴스
결국 안창호와 김용원의 문제는 국제적 나라 망신으로 이어졌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이하 ‘간리’)로부터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가 2001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특별심사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이를 위해 ‘간리’ 측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관련된 인권 침해 및 고 윤승주 일병 유족과 군인권단체 활동가를 수사 의뢰한 사건 자료의 제출을 요청했다. 또한 회의 부재로 인한 진정 처리 지연 및 인권위 직원들의 불이익 등에 대한 자료도 요청했다.
‘간리’ 측은 이를 심사한 후 2004년 이후 줄곧 A등급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 인권위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국가로부터 모범적인 인권국가로 손꼽히던 우리나라 인권위원회를 윤석열은 단 3년 만에 최악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내란 직후 임명한 극우 성향 인사가 똬리 튼 ‘진화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또 어떤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12월 출범하여 국가폭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와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준 ‘진화위’를 이명박 정부가 해산시켰다. 이를 다시 출범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 노력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외면했던 ‘진화위’의 재출범을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기에 어렵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았다.
그때 20대 국회 마지막 날,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에 들어간다. 15살에 강제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 고통을 겪었던 최승우 씨는 국회 정문 앞에서 이 법안의 제정을 요구하며 3년간 천막 농성을 해 왔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없이 20대 회기가 끝나가자 그는 ‘목숨을 걸고’ 무기한 단식 점거농성에 나선 것이다. 그런 최 씨의 절박한 사연 앞에 여야 국회의원들도 정쟁을 계속할 수 없었고 법안 개정안 처리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게 최승우라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것이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진화위’의 지금 위원장은 박선영이란 인물이다. 그는 2023년 5월쯤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 칭하며,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반대한 국민이 없었다”고 주장한 극우성향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박정희 유신독재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사형당하거나 감옥 간 사람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기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부적절의 크기가 산처럼 높고, 강물처럼 깊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제100차 위원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3.5. 연합뉴스
당연히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진화위’에서는 황당한 소식이 매일 같이 들려온다. 전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을 선포하고 3일 후에 장관급 위원장으로 박선영 씨를 임명한 것도 부적절한데, 그렇게 임명된 박선영 씨는 국회에 출석하여 마스크를 벗지 않아 논란이 된 ‘국정원 출신’ 황인수 국장에게 성과급으로 최고 등급을 줬다고 한다. 전 국민에게 위원회 망신을 시킨 황 국장에게 벌이 아닌 상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무려 150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 황 국장의 이야기는 과거사 위원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큰 상실감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야말로 윤석열이 남긴 정부 인권기구 인사 적폐의 상징이다.
인권기구 내 적폐 세력 청산 없이 내란 사태 종식 없다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나 군인권보호관 김용원, 그리고 진화위원장 박선영과 같은 이들을 그대로 두고 윤석열 내란 사태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진화위’는 오는 5월 26일 조사 기간의 만료를 앞두고 ‘유족의 염원이라며’ 조직의 활동 기간 연장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12월 취임한 박선영 씨가 자신의 2년 위원장 임기를 채우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나 ‘진화위’가 그런 인사들에 대한 내란 수괴의 ‘알박기 용’ 자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와 인권 피해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이 인권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처절히 싸웠는지를 안다면 더욱 그렇다. 양심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 공동체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윤석열 내란 사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도 정부 내 인권기구의 인사 적폐는 절대 방치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직에서 파면된 윤석열이 지난 11일 관저를 떠나 서초동 자기 집에 도착하자마자 주민들 앞에서 허세를 떨며 던진 말이 세상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다. 그는 아크로비스타 주민 들과 악수하며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다 한다. 이때 한 주민이 “너무 가슴이 아프다”고 위로를 전하자 그는 “어차피 뭐 5년 하나 3년 하나…”라는 말도 했다고 한다. 대통령직에서 쫒겨난 그가 일말의 반성은 고사하고 대선 당시 하던 ‘정치적 어퍼컷 쇼’를 멈추지 않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러니 세간에선 “윤석열과 비교해 보니 박근혜 전 대통령은 ‘참 선량한 파면 대통령’이었다”는 말도 회자 된다. 윤석열처럼 관저를 나오기 전, 자기 측근들을 불러 환송 만찬을 하는 뻔뻔함도 보이지 않았고, 또 적어도 “이기고 돌아왔다”는 말 따위의 허세는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대체 대통령이 누구를 이기고 돌아왔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주장이다. 헌법이 부여한 임기 5년도 버거워 다 채우지 못한 주제에 그걸 주민들 앞에서 웃으며 말하는 그 허세가 그야말로 해괴하기 짝이 없다.
모범적 인권국가가 윤석열 3년 만에 최악 국가로 전락 위기
문제는 ‘내란 수괴’ 윤석열 파면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떠났지만 그가 임명한 정부 내 인권기구의 인사 적폐가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5년을 하나, 3년을 하나” 똑 같다고 했는데 정말 그의 대통령 재임 3년 동안 대한민국 인권 현실은 치유가 쉽지 않을 만큼 완전히 망가졌다. 정부 기구 본연의 업무 기능이 상실되었다고 표현해도 전혀 과하지 않다.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7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열린 제5차 전원위원회를 시작하고 있다. 2025.3.7. 연합뉴스
먼저 ‘국가인권위원회’부터 그렇다.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는 사회적 약자 인권 보호라는 본연의 역할 대신 ‘내란 수괴’ 윤석열과 그 수하 김용현 등의 법적 보호를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방어권’을 추진하여 국민을 경악케 하였다. 또한 ‘국가인권위원회’ 차관급 상임위원이며 ‘군인권 보호관’ 겸임인 김용원은 군 유족의 권리를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군 유족을 고소하는가 하면 군인권단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의 보호 요청은 각하 처리하고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면 헌법재판소를 부숴 없애야 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기도 했다.
30일 국회에서 열린 운영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용원 국가인권위 군인권보호관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앞은 송두환 국가인권위원장. 2023.8.30. 연합뉴스
결국 안창호와 김용원의 문제는 국제적 나라 망신으로 이어졌다. ‘세계국가인권기구연합’(GANHRI· 이하 ‘간리’)로부터 우리나라 ‘국가인권위원회’가 2001년 설립 이후 처음으로 특별심사 대상에 선정된 것이다. 이를 위해 ‘간리’ 측은 윤석열의 계엄 선포와 관련된 인권 침해 및 고 윤승주 일병 유족과 군인권단체 활동가를 수사 의뢰한 사건 자료의 제출을 요청했다. 또한 회의 부재로 인한 진정 처리 지연 및 인권위 직원들의 불이익 등에 대한 자료도 요청했다.
‘간리’ 측은 이를 심사한 후 2004년 이후 줄곧 A등급을 유지해 온 우리나라 인권위 등급을 하향 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 국가로부터 모범적인 인권국가로 손꼽히던 우리나라 인권위원회를 윤석열은 단 3년 만에 최악으로 추락시킨 것이다.
내란 직후 임명한 극우 성향 인사가 똬리 튼 ‘진화위’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또 어떤가. 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5년 12월 출범하여 국가폭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 침해와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유족의 한을 풀어준 ‘진화위’를 이명박 정부가 해산시켰다. 이를 다시 출범시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를 쓰고 노력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마침내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 우리는 박근혜 정부가 외면했던 ‘진화위’의 재출범을 문재인 정부가 공약했기에 어렵지 않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당시 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이 국회에서 발목을 잡았다.
그때 20대 국회 마지막 날,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인 최승우 씨가 국회 의원회관에서 고공 농성에 들어간다. 15살에 강제수용시설인 형제복지원으로 끌려가 고통을 겪었던 최승우 씨는 국회 정문 앞에서 이 법안의 제정을 요구하며 3년간 천막 농성을 해 왔다. 그런데 아무런 성과없이 20대 회기가 끝나가자 그는 ‘목숨을 걸고’ 무기한 단식 점거농성에 나선 것이다. 그런 최 씨의 절박한 사연 앞에 여야 국회의원들도 정쟁을 계속할 수 없었고 법안 개정안 처리가 이뤄질 수 있었다. 그렇게 최승우라는 ‘형제복지원 사건’ 피해자가 목숨을 걸고 얻어낸 것이 ‘진실화해를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인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만든 ‘진화위’의 지금 위원장은 박선영이란 인물이다. 그는 2023년 5월쯤 한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박정희의 5.16 군사 쿠데타를 ‘혁명’이라 칭하며, 쿠데타가 발생했을 때 “반대한 국민이 없었다”고 주장한 극우성향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박정희 유신독재 권력에 의해 목숨을 잃거나 고문을 당한 사람, 그리고 중앙정보부의 공작에 의해 사형당하거나 감옥 간 사람들의 진상을 규명하는 기구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부적절의 크기가 산처럼 높고, 강물처럼 깊다.
박선영 진실화해위원장이 5일 서울 중구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열린 제100차 위원회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3.5. 연합뉴스
당연히 그가 위원장으로 있는 ‘진화위’에서는 황당한 소식이 매일 같이 들려온다. 전 대통령 윤석열이 내란을 선포하고 3일 후에 장관급 위원장으로 박선영 씨를 임명한 것도 부적절한데, 그렇게 임명된 박선영 씨는 국회에 출석하여 마스크를 벗지 않아 논란이 된 ‘국정원 출신’ 황인수 국장에게 성과급으로 최고 등급을 줬다고 한다. 전 국민에게 위원회 망신을 시킨 황 국장에게 벌이 아닌 상을 내린 것이다. 지난해에 이어 무려 1500만원의 성과급을 받게 된 황 국장의 이야기는 과거사 위원회에 근무하는 직원들에게 큰 상실감을 주기에 충분할 것이다. 그야말로 윤석열이 남긴 정부 인권기구 인사 적폐의 상징이다.
인권기구 내 적폐 세력 청산 없이 내란 사태 종식 없다
국가인권위원장 안창호나 군인권보호관 김용원, 그리고 진화위원장 박선영과 같은 이들을 그대로 두고 윤석열 내란 사태가 해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더구나 ‘진화위’는 오는 5월 26일 조사 기간의 만료를 앞두고 ‘유족의 염원이라며’ 조직의 활동 기간 연장을 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12월 취임한 박선영 씨가 자신의 2년 위원장 임기를 채우려 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국가인권위’나 ‘진화위’가 그런 인사들에 대한 내란 수괴의 ‘알박기 용’ 자리로 악용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약자와 인권 피해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이 인권기구들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처절히 싸웠는지를 안다면 더욱 그렇다. 양심이 있다면 그들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 사회 공동체의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나는 주장한다. 윤석열 내란 사태의 완전한 종식을 위해서도 정부 내 인권기구의 인사 적폐는 절대 방치되어선 안 된다.
따지고 보면 '윤심(尹心)'이 모든 걸 망쳤다. 윤석열은 단 한번의 선거(대선) 승리로 착각에 빠졌다. 본인을 프리기아 황금의 왕 '미다스'라 여겼다. 자신을 임명한 문재인, 조국과의 '전쟁'에서 이겼다고 생각한 그는 대선 승리를 온전히 자신의 성과로 생각했다. 영혼의 단짝 김건희 정도에게만 공의 절반을 허했다. 대선의 자장 속에서 이뤄진 지방선거에서도 승리하자, 착각은 망상이 됐다. '윤심'의 탄생이다.
국정 운영을 시작한 윤석열은 당대표 이준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선 승리의 지분을 챙겨 '집권 여당 대표' 행세를 하는 그가 꼴도 보기 싫었다. 2021년 말 유튜버들이 제기한 이준석 성접대 의혹 사건을 빌미 삼았다. 당 윤리위원회를 동원해 당대표에게 초유의 당원권 정지 결정을 내렸다.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사라지자, 윤석열은 당을 장악하기 위해 '윤심 후보' 점지에 나섰다.
윤석열에게 후보 단일화 선물을 안겨준 안철수가 당대표 후보에 나서면서 '윤안 연대'를 언급했다. 감히 대선 승리 지분을 건드린 행위에 대해 대통령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장을 날렸다. '윤심'을 오독하지 말고 팔아 먹지 말란 얘기였다. 왕실의 명이었다. 당대표가 되겠다고 나선 나경원에 대해선 "초선 의원들의 집단린치 사태(윤상현의 표현)"의 굴욕적인 일이 벌어졌다. '윤심'에 반하는 이들을 쳐낸 윤석열은 '당원 100% 투표' 룰을 관철시켰고, 기어이 김기현을 당대표에 올린다. 당시 전당대회에 참석한 윤석열은 허공에 어퍼컷을 크게 날렸다. '손바닥 왕'의 대관식이 비로소 완성됐다.
그 사이 윤석열의 지지율은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한국 갤럽 기준 임기 초반을 제외하고 2022년 6월 셋째주 이후 단 한번도 자신의 득표율(48.6%)을 넘어서지 못했다. 김기현 당대표 출범 이후에는 20%대와 30%대를 넘나들며 쪼그라든 지지율이 고착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은 전광판을 무시했다.
득의양양한 윤석열은 2023년 10월 재보선에 '윤심 후보'를 하달했다. 강서구청장을 지내다 공무상비밀누설죄 유죄 확정으로 직을 상실한 김태우를 다시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내보내는 괴상한 아이디어였다. 결과는 17%포인트 차이 대패. 별것도 아닌 재보선을 정권 심판 선거로 끌어올렸다. 모두가 예상한 결과를 윤석열과 '윤심 당 지도부'만 몰랐다. '윤심 후보'는 그렇게 해프닝으로 사라졌지만, 윤석열은 반성하긴커녕 오히려 폭주하기 시작했다.
'윤심'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김건희가 디자인한 'BUSAN IS READY' 키링을 들고 재벌 총수들을 대동한 채 세계를 누비던 윤석열은 엑스포 표결에서도 '윤심'을 믿고 있었다. 파리 폭탄주 투혼에도 불구하고 2023년 11월 말 2030년 엑스포 개최지는 사우디아라비아로 결정됐다. 스코어는 119대 29. 처참했다. 마치 다 따라잡은 것처럼 설레발 치던 윤석열과 그의 정부 수하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무렵 국내에선 집권 여당의 '윤심 놀음'이 한창이었다. 강서구청장 재보선 패배 후 '윤심 대표'였던 김기현에게서 '윤심'이 떠나갔다. 자신의 무능함을 부하(당대표는 부하나 다름없었다)의 무능함으로 돌렸다. 그리고 다음 '윤심'이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다. '황태자' 한동훈이 등장했다. 그는 정치 데뷔 무대에서 서태지의 노래 '환상 속의 그대'를 인용했다.
"동료시민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한 빛나는 승리를 가져다줄 사람과 때를 기다리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가 바로 그 사람들이고,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2023년 12월26일 비대위원장 수락 연설)
그렇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새로운 윤심은 한동훈인듯 싶었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윤심이 환상임을 깨달은 한동훈은 '손바닥 왕'의 명을 거역하고 '하트 여왕'의 뜻을 꺾었다. 윤석열과 김건희는 현실을 깨닫는 대신 '분노'로 응수했다. 세상 인기 없는 대통령은 '윤심 공천'을 밀어붙였고, 당은 맥없이 굴복했다. 총선 결과 여당은 108석으로 쪼그라들었다. 개헌선을 간신히 지켰다. '야당의 국무위원 탄핵 남발' 환경이 조성됐다. 원인은 윤석열 그 자신이었다.
이쯤 되면 뭔가 스스로 잘못한 것은 없는 지 돌아보는 게 인지상정이다. 놀라운 건 윤석열이 반성과 성찰 대신 주체할 수 없는 분노에 휩싸여 부정선거론의 망상에 빠져들었다는 점이다. 급기야 비상계엄을 선포해 '윤심'을 전 국토에 관철하려 시도했다. 국회 대체 기구를 만들려고 했고, 정치인을 수거할 계획을 세웠다. 군대를 동원해 영구 집권을 꿈꿨다. 그러다 국회에서 탄핵됐고,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됐다. '윤심'은 이제 심연이 됐다.
끝까지 5대3 기각을 예상했다는 윤석열은 '전원일치 탄핵 인용' 소식을 "듣자마자 둔기로 얻어맞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이어 "얼핏 바로 생각나는 게 국가와 국민이라고 그러셨고 이 국가와 국민을 어떻게 하나 이런 걱정들이 들기 시작했다"(윤상현의 전언)고 했다. 그 국가와 국민이 윤석열을 탄핵한 주체다. 얼핏 생각난 건 아마 광장에서 윤석열과 망상을 공유하던 전광훈 씨와, 그가 이끄는 시위대였을 것이다. 그들은 '윤심'의 마지막 남은 추종자다.
'윤심'은 이제 열화되어 컬트가 되고 있다. '호러 영화 등급표' 밈처럼 '윤심 등급표'가 있다면 지금 상태는 아마 심연의 단계로 매겨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윤심'을 관철할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대선에 출마한 김문수는 "우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판 잘 받으셔서 자유의 몸이 되시고, 국민과 함께 행복하게 생활하는 시절이 오기를 바란다"고 했다. 한덕수는 '윤심'을 업고, 윤석열의 40년 지기로 내란 가담 의혹을 받는 이완규를 헌법재판관 후보로 지명했다. 여권 지지율 1, 2위라는 사람들의 상태가 이렇다. 그들은 여전히 '윤심'을 바라보고 있다.
현실은 냉혹할 것이다. 대선 기간 내내 윤석열 형사재판이 진행될 것이고, 그가 '헛소리'를 늘어 놓을 때마다 뚝뚝 표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이쯤 되면 '윤심' 반대로만 하면 살 수 있다는 걸 깨달을 만도 한데, 국민의힘은 아직도 윤심의 심연에서 헤매고 있다. 경험으로부터 배우지 못한 정당은 죽은 정당이다. 죽은 정당의 대선 후보가 어찌 살아날 수 있겠는가. 심연보다 더 깊은 곳의 '윤심'을 길어내려 애쓰는 사람들을 우린 계속 강제 시청해야 할 운명에 처했다.
국민의힘은 이 당연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윤석열 때문에 완전 망했다."
▲sns에서 인기를 끌었던 '고어영화 등급표' 밈을 패러디한 '윤심 단계표' 밈
박세열 기자
정치부 정당 출입, 청와대 출입, 기획취재팀, 협동조합팀 등을 거쳤습니다. 현재 '젊은 프레시안'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쿠바와 남미에 관심이 많고 <너는 쿠바에 갔다>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 참여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에게 세월호 참사 희생자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가 직접 작성한 쪽지를 건네고 있다. ⓒ 미디어몽구
"지성이 아빠입니다, 기억식 끝나고 잠깐..."
지난 16일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추모곡이 흘러나올 때였다. 기억식에 참석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에게 노란 점퍼를 입은 이가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세월호 참사로 딸 문지성양을 잃은 아버지 문종택씨였다.
문씨는 세월호 관련 현장들을 영상으로 남기는 유튜브 채널 '세월호 유가족방송 4·16TV'를 운영하고 있다. 참사 이후 11년째 세월호 현장을 기록해 온 문씨는 이날도 기억식 영상을 촬영하기 위해 왼손에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이 후보 쪽으로 한 발씩 거리를 좁히던 문씨는, 오른손에 든 꼬깃한 쪽지를 이 후보에게 건네고 다시 뒤쪽으로 물러섰다.
건네받은 쪽지를 읽어본 이 후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듯 주위를 바라본 뒤 오른쪽 겉옷 안주머니에 쪽지를 접어 넣었다. 문씨는 쪽지를 읽는 이 후보를 멀찍이 지켜보며 통제선 인근에서 자리를 뜨지 않았다. 당시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던 이 장면은 기억식 다음 날인 17일 유튜브 채널 <미디어몽구> 영상(관련 영상: [포착] 지성아빠가 이재명 후보에게 건넨 쪽지엔...)으로 공개되며 세상에 알려졌다(19일 자정 기준 조회수 65만 회).
18일 <오마이뉴스>는 문씨가 당시 이 후보에게 쪽지를 건네기까지의 상황과 어떤 말을 전하려고 했는지 얘기를 들었다. 문씨와 통화로 나눈 대화가 40분 가까이 이어졌다. 문씨가 쪽지를 건넨 이유는 이재명 후보에게 꼭 건네고 싶은 '두 가지 질문'이 있어서였다.
▲지난 1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화랑유원지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11주기 기억식에 참여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가 세월호 참사 희생자 문지성양 아버지 문종택씨로부터 받은 쪽지를 읽고 있다. ⓒ 미디어몽구
- 기억식 당일 이 후보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시던데요.
"이재명 후보님도 후보님이지만 저희 세월호가 잘못 비춰지면 또 세월호가 가라앉는 여파가 생기거든요. 무례함이랄까, 경호에 대한 안일함이랄까, 이런 것들이 합쳐져 버리면요. 그래서 더더욱 고민을 많이 했죠. 4·16TV와 잠깐 인터뷰가 가능하실지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틈이 안 나다 보니까 저로선 쪽지를 전달하는 게 마지막 기회였죠.
이 후보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렸어요. '저를 좀 보십시오', '접니다', '(쪽지를 흔들어 보이면서) 메모지입니다', 그렇게 전해드렸더니 이 후보가 받으시더라고요."
- 쪽지엔 어떤 내용을 적으셨어요?
"이 후보가 저를 아시니까 '세월호 유가족 방송 4·16TV 지성이 아빠입니다', 그리고 '외람되지만'이라고 썼나 '죄송하지만'이라고 썼나, '4·16TV 카메라가 중앙에 있습니다. 기억식이 끝나고 잠깐 와주시면 좋고', 그런 이야기를 적고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썼던 것 같아요. 혹시 나중에 인터뷰를 하게 된다면 물어볼 두 가지 질문을 갖고 있었어요. 전혀 어렵지 않은 질문들을 준비했죠."
- 어떤 질문들을 하고 싶으셨어요?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행적에 대한) 대통령기록물은 잠겨져 있지만 정부 부처 기록물들은 다 있잖아요. 국방부든 합참이든 그 기록물들이 어떻게 정리돼 있는지 볼 수 있는 권리가 피해자들에게 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안전에 관한 가장 큰 사건은 누가 뭐래도 세월호입니다. 안전에 많은 변화를 이뤄낸 것도 세월호예요. 이건 부정할 수 없어요. 그 상징적인 곳이 세월호 참사 기억식 아닙니까. 매해 오시라는 얘기가 아니고 한 번쯤은, 더군다나 내년이 12주기인데 처음 대통령이 되고 오시면 더 상징적이고, 안전에 대해 각인시키는 효과도 있잖아요."
그러면서 문씨는 기회가 된다면 이 후보에게 유가족들의 세월호 관련 문건 열람 가능성과 대통령이 된다면 내년 세월호 참사 12주기 기억식에 참석할 수 있는지, 두 가지 질문을 대신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18일 저녁 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의 첫 TV 경선 토론회가 열렸다. <오마이뉴스>는 이날 토론회가 끝난 오후 9시 50분께 MBC 1층 로비에서 이 예비후보를 만나 문씨가 하고 싶었던 질문들을 던졌다. 이 후보는 두 질문에 모두 답을 내놨다.
- 후보님,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방부 등 정부부처의 세월호 관련 문건을 유가족들 입회 하에 열람하게 해주실 수 있나요? 대통령에 당선되면 내년도 세월호 12주기 기억식에 참석해주실 수 있나요? 두 가지 답변을 부탁드립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가급적 참석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행정 정보들은 가급적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다 공개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법률적 장애가 있는지, 안보상 문제나 여러 특별한 사유가 있는지 보고 그런 문제들이 없다면 원칙에 따라 공개하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주자인 이재명(오른쪽부터)·김경수·김동연 후보가 18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MBC에서 첫 TV토론회를 시작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세월호 참사에 관한 언급은 이날 토론회에서도 나왔다. 이 후보는 "그저께가 세월호 참사 11주기였다"라며 "정말 안타깝고 가슴 아픈 장면이었는데 여전히 참사가 계속되고 있다. 그 이후 이태원 참사도 그렇고 오송 지하차도에 물이 차 열 몇 명이 사망했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도 자연재해는 아닌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태도가 문제"라며 "법률적 책임 말고 사실은 관리를 못한 행정 책임도 있다. 또 약간 넓힌다면 정치적 책임도 있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아무도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책임이 주어져야 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시행해야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
24일 서울 강동구 명일동 한 도로에 발생한 대형 싱크홀 현장에서 소방대원들이 매몰된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2025.03.24. ⓒ뉴시스
지난 3월 24일 서울시 강동구 명일동에서 싱크홀 사고가 발생해 도로를 지나던 배달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국토부에서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를 꾸려 원인 규명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지만 이 와중에도 전국 곳곳에서 거의 매일 땅 꺼짐과 지반침하 사건이 이어지며 시민들을 공포에 떨게 하고 있다.
언론을 통해 공개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명일동 싱크홀 사고는 단순한 우발적 재난이 아닌 서울시의 체계적인 안전관리 실패에서 비롯되었다. 서울시는 이미 2023년 ‘서울 도시철도 9호선 4단계 연장사업 건설공사 지하 안전 영향평가’를 진행해 해당 지역이 지반침하 취약구간이라는 것을 사전에 파악하고 있었지만 적절한 안전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지난해 서대문구에서 발생한 싱크홀 사고를 계기로 지반 침하 위험 지역을 대상은 월 1회 안전 점검(GPR 탐사)을 하기로 했지만 행정 절차 문제로 이행하지 않았고, 특히 지난 10월과 올해 2월, 사고지점 인근 지하철 연장 공사에 참여했던 노동자가 두 차례나 사고 발생 구역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민원을 제기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는 형식적인 응답만 반복한 채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지 않았다. 서울시 행의정을 감시하는 시민단체인 ‘서울와치’는 부실한 안전관리 책임을 묻는 공익감사청구를 진행한 상태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안전관리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도 서울시는 보유하고 있는 위험정보와 안전관리 보고서를 모두 비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고를 예방하겠다며 지난해 구축한 ‘지반침하 안전지도’의 경우 “위험 지역을 공개해도 시민들의 불안감을 자극할 뿐 이렇다 할 효과가 없고, 해당 지역 부동산에 악재가 되는 등 역효과가 우려되니 공개하지 않겠다”는 관계자의 전언이 전해지면서 빈축을 샀다. 정보공개센터는 안전지도를 비롯해, 의원실에 제출한 영향평가 용역 보고서, 그리고 지난 6개월간 해당 지역 지하철공사 착공후지하안전조사 월간보고서를 정보공개청구했지만 서울시는 모든 정보를 비공개 통지했다.
서울시는 안전지도가 내부용 ‘GPR 탐사의 효율 증진 등의 내부 행정 업무용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우선정비구역도를 구축한 것’이라며, 안전지도가 아닌 정비 우선순위 나타낸 지도라 공개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정비가 시급한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 역시 시민들에게 공개되지 않을 이유가 없고, 오히려 안전관리에서 우선순위의 기준이 무엇인지 시민들이 확인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서울시는 비공개 근거로 국가공간정보기본법 35조의 보안관리 조항을 들었지만, 이는 "공개가 제한되는 공간정보"에 대한 "부당한 접근, 이용, 유출"을 방지하기 위해 관리 규정을 두어야 한다는 법률이다. 만약 해당 지도에 국가기간시설물(전력ㆍ통신ㆍ가스 등)의 위치가 포함된 부분이 있다면 그러한 시설물 정보에 한해서만 비공개하고, 그 외 정보는 적극 공개해야 한다.
이외 안전영향평가 및 월간안전보고서에 대해서도 서울시는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에서 원인 파악을 위한 조사자료로 쓰인다는 이유를 들며 ‘공정한 업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정보공개법 9조 1항 5호). 하지만 이미 진행중인 공사에 대한 안전영향평가와 해당 공사 구역이 안전한지 확인한 정보는 애초에 시민들에게 공개되어야 할 정보이며, 국민의 생명 보호 및 안전을 위한 공익이 조사업무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공무원들의 추상적 우려보다 훨씬 크다. 게다가 보고서의 일부 내용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었음에도 전체 내용을 비공개할 경우 서울시의 안전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불신은 더 커질 뿐이다.
반복되는 싱크홀 사고들이 말해주는 것, 그리고 우리가 겪어온 수많은 재난이 말해주는 진실이 하나 있다면 ‘사고로 인한 피해’는 그냥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불의의 사고라도 재난에 대해 공동체가 얼마나 알고 있는지, 그리고 그에 따라 커뮤니케이션과 대응체계를 얼마나 잘 갖추고 있는지에 따라 피해의 규모는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해외에선 싱크홀 위험성 및 사고 지도, 사고조사보고서도 체계적으로 공개
사고가 자주 발생하고 위험도가 높을 수록, 사고예방 및 재난 대응을 위한 정보공개는 중요해진다. 이는 단순히 개개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그리고 시민들이 정보를 많이 알고 안전을 개선하기 위한 고민과 실천에 참여해야 사고와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발생한 구리 지반침하사고 조사 결과에서 중앙지하사고조사위원회는, 향후 예방을 위해 지반조사 정보 및 계측 정보를 관계자 및 시공자들이 적극적으로 공유해야 하며, 지반 문제 발생 시 외부전문가의 자문을 실시 해 즉각 안전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안전 문제에 있어 정보 공유는 이미 필수적, 기초적 해결방안이다. 그리고 이는 단순히 관계자에만 국한되어선 안 되며,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최대한 열려있어야 한다.
지난 수년간 싱크홀 사고가 늘어나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알려진 정보는 너무나 적다. 지반침하 사고가 공포스러운 가장 큰 이유는 도로 위를 지나는 우리는 지하의 위험징후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지하 안전을 제대로 평가하고 관리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해 여러 전문가와 시민들이 함께 위험정보를 공유하고 대응 체계를 만드는 것만이 시민들의 불안을 덜고,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길이다.
▲3월 25일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도로에서 전날 발생한 대형 땅꺼짐 현장에 소방의 출입통제 라인이 설치돼 있다. 전날 오후 명일동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발생한 지름 20m, 깊이 18m가량의 대형 싱크홀(땅꺼짐)에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빠져 사망했다. ⓒ 연합뉴스
도심 한복판에서 도로가 갑자기 푹 꺼지는 장면을 목격한다면 누구든 등골이 서늘해질 것입니다. 최근 서울 강동구 등지에서 발생한 대형 땅 꺼짐(지반침하) 사고들은 이러한 공포를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사고가 날 때마다 흔히들 "노후 하수관이 터져서"라고 원인을 짐작하곤 합니다. 그러나 도시 땅이 마치 슬러시처럼 무너지는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우리 발밑 지반을 구성하는 흙과 물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컵 속 슬러시와 빨대 그리고 말라버린 왕실 우물의 비유를 통해 도시 지반침하의 실제 원인을 알기 쉽게 설명하고, 지속가능한 해법과 정책 방향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슬러시 컵과 도시 지반의 비밀
무더운 여름에 마시는 슬러시 음료를 떠올려봅시다. 컵에 가득 담긴 슬러시는 얼음 알갱이와 시럽이 섞여 있습니다. 겉보기엔 단단해 보여도, 빨대로 바닥의 녹은 부분을 쭉 빨아들이면 위에 쌓인 얼음 덩어리가 한순간에 푹 꺼져내립니다. 왜 그럴까요? 아래쪽 액체가 사라지면 위쪽 얼음 입자들을 떠받치던 안정성이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슬러시 음료 ⓒ 챗지피티 이미지 생성
도시의 지반도 이와 비슷합니다. 흙알맹이들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공간이 있고, 그 공간을 지하수가 메우며 압력을 견뎌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이 빠져나가면, 슬러시 컵에서처럼 지반 위쪽이 흔들리고 내려앉을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지하수 과다 사용으로 지반이 속부터 허물어지는 것, 이것이 지반침하의 근본 원인입니다.
도시 지하 깊은 곳에서 물이 사라지고 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있는 경복궁에는 조선시대 임금들이 마셨다는 우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우물은 어떨까요? 안타깝게도 바짝 말라 있습니다. 600년 전에는 물이 차고 넘치던 왕궁의 샘이, 이제는 바닥을 드러낸 채 흔적만 남았습니다. 비단 경복궁뿐 아니라 다른 고궁들의 우물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경복궁 내에서 발견된 조선시대 우물 ⓒ e 영상 역사관
이는 도심 지하수위가 옛날보다 얼마나 급격히 낮아졌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입니다. 한때 지하 불과 몇 미터 깊이에 풍부하게 고여 있던 물이 이제는 자취를 감춰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쉽게 볼 수 없을 뿐, 도시 지하 깊은 곳에서는 이렇게 물이 사라지고 있고, 그로 인해 지반을 이루는 흙 구조도 안정감을 잃고 있습니다. 왕실의 우물이 말라붙은 현실은 도시 지반이 처한 위기의 경고음이라 할 만합니다.
빨대로 쪽쪽, 경쟁하듯 퍼내는 지하수
지하수가 줄줄 새나가 지반침하를 일으킨다면 '대체 지하수가 왜 그렇게 빠지는가?' 하는 의문이 남습니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두 아이의 빨대 싸움에 비유해 봅시다. 하나의 컵에 든 주스를 두 아이가 각자 빨대로 마신다고 가정해 보세요. 남은 마지막 한 모금까지 마시겠다고 서로 세게 빨아들일수록 주스는 더 빨리 바닥을 드러내겠지요.
도시의 지하수가 딱 그 꼴입니다. 한정된 지하수를 여러 곳에서 앞다투어 퍼올리면, 누구 하나 양보하지 않고 끝까지 끌어쓰는 동안 지하수는 순식간에 고갈되고 맙니다.
▲11일 경기도 광명시 일직동 신안산선 공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경기 광명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 17분께 광명 양지사거리 부근 신안산선 제5-2공구 현장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했다. 사진은 사고 현장 모습. ⓒ 연합뉴스
오늘날 도심에는 지하수를 탐내는 '빨대'들이 곳곳에 꽂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하철이나 지하주차장을 짓는 공사장에서 지하수가 차오르면 공사를 할 수 없으니 일단 마구 퍼내 버립니다. 인근 다른 건설 현장도 똑같이 지하수를 빼낸다면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지하 수위는 급격히 떨어집니다.
건물이 완성된 후에도 지하층으로 물이 스며들면 자동펌프로 계속 퍼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각자 자기 지하 공간에서 물을 빼다 보니 도시 전체의 지하수를 쪽쪽 빨아들이는 형국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은 슬러시 컵 밑동을 동시에 여러 개의 빨대로 빨아들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 결과 지하수는 고갈되고, 지반은 속이 텅 빈 슬러시처럼 허물어질 준비를 하게 됩니다.
깨진 하수관, 원인인가 결과인가
땅 꺼짐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빠지지 않는 단골 원인으로 "노후 상하수도관 파열"이 거론됩니다. 오래된 지하 관로에서 물이 새어 나와 주변 흙을 씻어내면 커다란 공간(공동)이 생기고, 결국 지반이 꺼진다는 설명입니다.
물론 낡은 관에서 물이 샌다면 지반을 약하게 할 수 있고, 실제로 이런 사례도 있습니다. 하지만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많은 경우 지반침하의 근본 배경에는 앞서 말한 지하수 문제, 즉 지반을 지탱하던 물이 빠져나간 영향이 깔려 있습니다. 지하수위가 떨어지고 지반이 서서히 내려앉으면, 그 안에 묻혀 있던 상하수도관도 균형을 잃습니다. 견디지 못한 관로 접합부가 벌어지거나 관이 휘면서 물이 새게 됩니다.
겉으로 보면 "관이 터져서 땅이 꺼졌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땅이 움직여서 관이 터진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지요. 아무리 튼튼한 관이라도 발밑 지반이 슬러시처럼 출렁거리면 멀쩡히 버티기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파손된 관로만 탓할 게 아니라,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지하수 고갈과 지반 약화를 진짜 원인으로 직시해야 합니다.
빗물을 땅속으로... 근본 해법은 물순환 회복
그렇다면 지반침하를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은 무엇일까요? 답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빠져나간 물을 다시 채워주는 것, 즉 끊어진 물순환 고리를 복원하는 일입니다. 지하수가 빠져 지반이 내려앉았으니, 빗물이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를 보충하도록 해주는 것이지요.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이기 전에는 비 내린 물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흡수되어 지하수층을 채웠다. ⓒ 연합뉴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뒤덮이기 전에는 비 내린 물이 자연스럽게 땅으로 흡수되어 지하수층을 채웠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 빗물이 지면에 닿기가 무섭게 배수구와 하수도로 내몰려 강으로 버려집니다. 이렇게 빗물을 흘려보내기만 하는 도시에서 지하수는 점점 메말라갑니다. 고갈을 막으려면 빗물을 하수구가 아니라 최대한 대지로 돌려보내는 도시로 바꿔야 합니다.
물론 최근에 일부 건물에 빗물저장 탱크를 두거나 투수성(물이 스며드는) 포장을 늘리는 등 빗물 이용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조치가 극소수 현장에 그친다면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지하수는 한두 군데 화단이나 빗물정원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라, 도시 전체와 더 넓게는 유역 단위로 접근해야 합니다. 산발적인 대책이 아니라 빗물이 흐르는 경로 전체에서 종합적으로 침투를 늘리는 통합 물관리가 필요합니다.
▲서울 강남역 일대 대심도 빗물배수터널 계획도 ⓒ 서울시 제공
한편, 일부 도시에서는 폭우로 인한 침수를 막겠다며 도심 깊숙이 거대한 배수터널을 파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서울시도 몇 해 전부터 수십 층 빌딩 높이의 지하 공간을 파서 거대한 대심도 빗물 터널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비가 오면 그 터널로 물을 몰아넣어 한강으로 곧바로 빼낸다는 구상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빗물을 모았다가 곧장 강이나 바다로 버리는 방식은 지속가능한 해법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눈앞의 홍수 위험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지하수 보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귀한 물을 도시 밖으로 더 빨리 내쫓는 셈이니까요. 지하에 커다란 공간을 만드는 공사는 그 자체로 지반 안정성을 해칠 위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런 터널은 유지관리 비용 부담만 지울 뿐, 지반침하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값비싼 임시방편인 것입니다.
지하수를 지키는 도시 설계... 해외에서 배운다
도시의 물 순환을 정상화하려면 정책과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적입니다. 이제 개발과 건설의 패러다임을 바꾸어 '지하수가 고갈되지 않는 설계'를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물을 지을 때 지하수를 무턱대고 퍼내는 관행부터 바꿔야 합니다. 공사 기간에는 불가피하게 물을 빼내더라도, 그 물을 멀리 버리지 말고 인근에 재투입해 주변 지하수위가 급락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완공 후에도 지하 공간으로 물이 스며들 때 이를 모두 밖으로 배출해 버리는 대신, 가능한 한 지하수로 재흡수하는 구조를 도입해야 합니다. 건축 허가 단계에서부터 이러한 물순환 친화적 설계를 요구하는 법 규제가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행히도, 세계적으로 이런 움직임이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해외 선진 사례 중 하나로 독일 베를린 중앙역 건설을 들 수 있습니다. 베를린은 지하수를 중시하여, 중앙역 공사 당시 땅속에서 퍼올린 지하수를 인근에 따로 판 우물로 다시 돌려보냈습니다. 공사로 인한 주변 지하수위 저하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덕분에 주변 공원의 나무와 기존 건물들이 안전하게 보호되었고, 지반 침하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유럽 몇몇 도시는 법으로 건설 현장의 지하수 처리 방법을 관리하여 개발로 인한 지반 변화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지하안전영향평가 제도 등을 보완해, 대규모 지하굴착 시 지하수위 변화까지 철저히 관리하도록 강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건물이나 지하철 공사장마다 빗물을 이용해 지하수를 보충하는 장치를 마련하도록 유도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합니다. 물을 함부로 퍼 쓰는 개발은 지양하고, 물을 지키는 개발만이 허용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모두의 노력
결국 지반침하 문제는 우리 도시의 물 관리 방식이 낳은 인재(人災)입니다. 땜질식 처방이나 남 탓으로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제는 시민부터 정책결정자까지 모두 긴 안목을 가지고 근본 대책에 나설 때입니다. 장기적이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물 관리와 토지 관리에 우선순위를 두지 않으면, 우리가 딛고 선 도시 기반은 더 불안정해질 것입니다.
우선 시민들은 물의 소중함을 인식하고 생활 속에서 작은 실천에 나서야 합니다. 빗물을 받아서 활용하는 것, 물 절약에 동참하는 것 그리고 지하수를 함부로 쓰는 개발에 문제의식을 갖고 목소리를 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또 지역 사회에서 빗물 정원 조성이나 투수 포장 확대 같은 움직임이 있다면 적극 지지하고 참여해 보세요.
▲3월 25일 서울 강동구 대명초등학교 인근 사거리에서 싱크홀(땅 꺼짐) 사고 발생으로 교통이 통제되고 있다. 앞서 전날 오후 6시 29분께 명일동의 한 사거리에서 지름 20m, 깊이 20m가량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오토바이 운전자 1명이 싱크홀에 빠져 실종됐고, 함몰 직전 사고 현장을 통과한 자동차 운전자 1명이 다쳐 병원으로 옮겨졌다. ⓒ 연합뉴스
무엇보다 정책 입안자와 행정당국의 결단이 중요합니다. 지하를 파괴적으로 개발하고 문제 생기면 땜질하는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당장 보이는 치적이나 단기 성과에 매달릴 게 아니라, 50년 뒤 이 도시의 지반이 어떻게 될지 내다보는 미래지향적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빗물을 하수도가 아닌 땅으로 돌려보내는 도시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지하수를 없애는 무분별한 개발에는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야 합니다.
지반침하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이 진행되지만, 그 영향을 받는 건 다름 아닌 우리 자신과 후손들입니다. 지금 당장 발걸음을 돌려 지속가능한 도시 물순환 회복에 힘쓴다면,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은 더 안전한 땅 위에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슬러시처럼 허무하게 꺼지지 않는 단단한 도시의 땅을 만들기 위해, 이제 우리 모두의 지혜와 실천이 절실합니다.
이바라기 노리코(1926~2006)라는 일본 시인이 있었다. 32세 때 20대를 회고하며 쓴 시 ‘내가 가장 예뻤을 때’에서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주변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 공장에서 바다에서 이름도 없는 섬에서/ 나는 멋쟁이가 될 기회를 잃어버렸다”고 고발했다. 그리하여 “내가 가장 예뻤을 때/ 난 몹시도 불행했고/ 난 몹시도 엉뚱했고/ 난 무척이나 쓸쓸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능하면 오래 살기로/ 나이 들어 매우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프랑스의 루오 영감님처럼 말이지.”
도쿄경제대 교수였던 서경식(1951~2023)은 노리코의 이 작품에 대해 “피해자 의식에 사로잡힌 한탄의 노래는 아니다. 봉건제와 군국주의의 멍에에서 해방돼 자립하려는 여성의 눈부심”이라며, 어딘가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과 같은 시라고 평했다.
쇼와의 ‘언어도단’에 거무칙칙한 웃음 피 토한 시인
작가 노리코가 50세 될 즈음(1975년 10월), 쇼와 ‘천황’이 미국을 방문하고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기자회견 하는 걸 보았다. 한 기자로부터 자신의 ‘전쟁책임’에 대한 질문을 받자, 쇼와는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서는, 나는 문학 방면에 관해서는 제대로 연구한 바가 없어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라 말(?)했다.
쇼와(昭和) 천황(1901~1989)이 누구인가? 그는 124대 천황(재위: 1926~1989)으로, 당시 일본 제국의 절대 권력자로 전쟁의 최고사령관을 했다. 일본 사회에서는 그가 사실상 신(神)으로 통했는데, ‘현인신(現人神)’이라는 것! 그랬던 자가 국내외의 무수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전쟁책임에 대해선 ‘언어의 기교’나 ‘문학 방면’, ‘제대로 연구한 바가 없어’라는, 말 같지 않은 말(?)로써 사회적 책임을 교묘히 피해나갔다. 한마디로, 세상을 속인 것! 아니, 세상 이전에 자신을 속였다. 더 놀라운 것은, 이 발언에 대해 거의 모든 언론이, 그리고 지식인들조차 별로 문제 삼지 않았던 점이다. 이바라기 노리코가 예외였다.
노리코는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시에서 당시 ‘피 끓는’ 심정을 토로했다. “전쟁책임에 대해 묻자/ 그 사람은 말했다/ 그런 언어의 기교에 대해/ 문학적 방면은 별로 연구하지 않아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와/ 거무칙칙한 웃음 피를 토하듯/ 뻗쳐올랐다가, 멈추고, 다시 뻗쳐오른다.”
‘사해파정’(四海波靜)이란 말은 천하의 풍파가 진정되어 태평해진 상태를 뜻한다. ‘현인신’으로 불리는 자가 아시아-태평양 전쟁으로 온 세상에 풍파를 일으켜놓고 전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냉정한 모습, 게다가 일본 사회 전반이 그런 태도를 상당히 공유하고 있는 상태, 그리하여 힘없는 시인 하나라도 악을 쓰면서 그런 현실을 고발해야 할 것 같은 느낌, 바로 그 모든 현실이 작가에게는 도무지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전범 당사자가 자신이 감당해야 할 책임을 회피하면서 ‘언어의 기교’나 ‘문학적 방면’은 특별히 “연구하지 않아” 말할 수 없다고 한 대목은, ‘느낌-마음-언어’로써 삶의 진실을 이야기하는 시인에게는 한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었다.
2025년 한국에 재현된 권력자의 언어도단
그런데 바로 그 ‘언어도단’의 현실을 2025년 대한민국에서 우리 모두 경험하고 있다. 2024년 12·3 쿠데타를 일으킨 윤석열은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과 시민 저항으로 채 6시간도 안 되어 국회에서 계엄해제 결의가 되자, 윤석열은 계엄 해제를 말하면서도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했다. 그 3일 뒤 국민에게 사과를 한답시고 ‘대국민담화’를 발표하면서, “저는 이번 계엄 선포와 관련하여 법적 정치적 책임 문제를 회피하지 않겠습니다”라 하고선 지금까지 책임성 있는 태도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말이라도 ‘안’ 했다면 기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의 모습을 보면 마치 ‘혁명 영웅’으로 보인다. 2025년 1월 15일 힘겨운 시간 끝에 구속 조치된 윤석열에 대해 50여 일 지나 지귀연 판사가 사실상 ‘탈옥’을 돕는 결정을 내렸다. 3월 8일 윤석열이 서울구치소에서 나올 때 그는 거의 ‘개선 장군’이었다. 그리고 4월 4일 헌재는 8:0 전원 일치로 ‘파면’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진심어린 사과나 사회적 책임감은 티끌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4월 11일 대통령 관저에서 퇴거할 때까지 마치 ‘승리 파티’라도 하는 듯 보였다.
퇴거하는 당일도 ‘내란 수괴’가 아닌 ‘혁명 영웅’의 은퇴 행차처럼 보일 정도로 경찰과 경호원들이 넓은 도로를 완전 차단하고 에스코트했다. 서초동 아크로비스타(집)에 도착했을 때, 윤석열은 환영 나온 입주민과 지지자들에게 “다 이기고 돌아온 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라 했다. 한 지지자가 “너무 가슴 아파요”라 하자 그는 “어차피 뭐 (대통령을) 5년 하나 3년 하나…”라며 웃었다. 장기 집권 욕망의 내란 수괴가 아닌, 선정을 베푼 성공 대통령이 겸허히 3년만 하고 물러난 것처럼 자기 기만한 것!
심지어, 4월 14일 ‘내란 혐의’ 첫 형사재판에서 “저는 군인에게 실탄 지급을 하지 않고 민간인과의 충돌을 절대 피하라고 지시했다”며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이지, 이것이 단기간이든 장기간이든 군정을 목표로 한 게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자명하다”고 했다. 이미 김선호 국방장관 직무대리는 2월 국회 국방위 질의·답변에서 “동원된 실탄이 18만 발로 확인돼 보고한 바 있다” 했다. 5천만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해 놓고 이제 와서 “대국민 메시지를 위한 계엄”, 즉 ‘계몽령’에 불과했기에 별 것 아니란 투다. 이 부분에서 나는 ‘차라리 쇼와가 나았다’는 생각도 든다. 적어도 쇼와는 ‘양심’이 있었던지 “대답하기 어렵다”고 자백했기 때문! 이렇게 윤석열은 ‘언어도단’을 넘어 ‘정치도단’, ‘헌법도단’을 일삼는다. 아직까지 본인이 무슨 짓을 했는지 전혀 모른다!
윤석열 김건희 뿐인가, 최상목 심우정 한덕수…
그러나 윤석열은 결코 단독범이 아니다. 윤석열을 닮은 제2, 제3의 윤석열이 너무도 많다. 김건희만이 아니다. 우선, 최상목은 한국 경제를 책임지는 자리(경제부총리)에 앉아 ‘원화’ 가치가 하락할수록, 즉 한국 경제가 나빠질수록 이득을 보는 미국 국채를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3월 27일 공직자 재산공개 현황에 따르면, 최상목은 환율이 급등하던 2024년에 ‘30년 만기 미국 국채’에 2억 원가량 투자했다. 나라살림 책임자가 나라가 죽이 되건 밥이 되건 사적인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 이게 무슨 짓인가? ‘언어도단’ 아닌 ‘경제도단’이라 해야 할까? 한편, 최상목은 2024년에 국가부채가 146조나 불어나 무려 2586조 원이 되었는데도, ‘펑크’난 살림과 ‘미래 세대’에 대해 일말의 책임감도 없이 “국가 총부채비율이 7년만에 감소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이게 말인가, 방군가? ‘언어도단’이나 ‘경제도단’을 넘어, ‘영혼도단’ 수준이다.
검찰총장 심우정 역시 3월 8일 ‘내란 수괴’ 윤석열의 탈옥 직후 법원에 ‘즉시 항고’하지 않음으로써 내란 수괴가 맘대로 다니게 협조했다. 대전지검 임은정 부장검사가 “심우정 총장과 김주현 민정수석(대통령실)은 확실한 상명하복의 관계이기 때문에 심우정 총장이 김주현 민정수석한테 대들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 논리상 어쩔 수 없이 (즉시 항고를) 하는 척이라도” 할 것이라 확실히 생각했는데, 확신했던 바가 틀려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했을 정도다. 이제 심우정 검찰총장은 윤석열과 내란 공범임이 확실시됐다. 오죽하면 임 검사는 “검찰 장례식”을 치르는 기분이라 했을까? 한편, 심우정은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검찰의 수장인데, 그 딸이 외교부 공무직 연구원 채용 과정에서 ‘아빠 찬스’를 활용했다는 의혹이 크다. 무엇보다 심 총장 딸은 서류전형 3등이었는데 면접에서 1등으로 합격했다. 반면, 서류 1등이었던 다른 지원자는 면접에서 3등이 되는 바람에 탈락했다. 윤석열이 그토록 강조하던 ‘공정과 상식’은 어디로 가고, 검찰총장마저 ‘공정도단’에 앞장서다니!
한덕수는 어떤가?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임에도 스스로 ‘대통령’이 된 듯 착각한다. 그는 4월 8일 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화통화를 했다. 미국이 57개국에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고율의 상호관세 발효 하루 전이었다. 국무총리실 발표로는 한 대행이 약 28분간 통화했는데, 한·미 동맹 강화, 무역균형 등 경제협력, 북핵 문제 등 양국 현안을 논의했다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통화 직후 자신의 SNS에 “한국의 대통령 권한대행과 훌륭한 통화를 했다”며 “거대하고 지속불가능한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 관세, 조선, 미국산 LNG의 대량 구매, 알래스카 가스관 합작 사업, 그리고 우리가 한국에 제공한 대규모 군사적 보호에 대한 지불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한국의 최상급 협상팀이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탑승했고, 상황(‘원스톱 쇼핑’) 은 매우 긍정적”이라 했다. 그럴 듯한 말의 성찬을 그만두고 골자만 추리면, ‘한국이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겠다’는 것이다. 이미 그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다.
‘내란당’에서 쏟아져 나온 후안무치 대통령 후보들
그 와중에 ‘내란당’인 국힘당에서 어찌 그리도 많은 대선 후보들이 나올 수 있는가? 그동안 참느라고 허덜시리 ‘욕 봤다!’ 그러나 그 잘 난 이들 중 어느 누구도 ‘내란 사태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거나 ‘진지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 하기야 그런 걸 안다면 아직도 ‘내란당’을 해체하지 않고 버티겠는가? ‘언어도단’을 넘어 ‘후안무치(厚顔無恥)’ 내지 ‘인면수심(人面獸心)’의 경지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범죄자가 범죄를 자백하거나 인정하지 않기 위해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기와는 전혀 무관하다는 듯 처신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로, 이인증(離人症, Depersonalization)이라 한다. 우리에겐 ‘유체이탈’ 화법이 더 익숙하다. 이미 박근혜 시절에 많이 경험한 덕분! 이인증 내지 이인화란 자신이 신체와 심리로부터 분리되어 있거나, 또는 스스로 자신에 대한 관찰자가 되는 듯한 증상을 느끼는 것이다.
실제로, 2014년 4·16 세월호 참사로 304명의 소중한 생명이 사라졌을 때다. 유가족들이 국가의 책임을 외치며 ‘단식 투쟁’에 나섰다. 그 해 8월, 로마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방문해, 세월호 유가족들을 깊이 위로했다. 반면, 박근혜는 ‘남의 일’처럼 구경만 했다. 그러고선 교황과 독대했을 때 박근혜는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의 희생자와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데 감사드립니다”라 했다. ‘언어도단’이자 ‘정치도단’이었다.
‘광기’ 극복 위한 인간적, 민주적, 생태적 연대 절실한 시점
이바라기 노리코는 만년에 조선말을 독학했다. 이어 노리코는 윤동주(1917~1945) 등 조선 시인들을 일본 독자들에게 적극 알렸다. 당시 일본 사회의 급격한 우경화도 개탄했다. 편협한 민족과 국가의 분단선을 넘어 인간적, 민주적, 생태적 연대가 절실한 시점이다. 그런 연대가 공고히 형성될 때 비로소 우리는 언어도단, 정치도단, 헌법도단의 ‘광기’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비로소 노리코가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아무도 내게 다정한 선물을 주지 않았다/ 남자들은 거수경례밖에 몰랐고/ 순수한 눈짓만을 남기고 다들 떠나버렸다”며 서글퍼하던 그런 시간들을 더 이상 겪지 않을 수 있으리!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내란 세력에서 보듯 “거수경례밖에 모르”거나 ‘성공과 출세’ 욕망에 사로잡힌, 짐승 같은 자들이 우글대는 세상에 산다.
1999년 이바라기 노리코는 73살의 나이에 <기대지 말고>란 시집을 출간했다. 당시는 일본에서 ‘히노마루(일장기)·기미가요(국가)’의 법제화가 강행되고 있었다. ‘기대지 말고’라는 시는 이런 속마음을 얘기한다. “더 이상 야합하는 사상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종교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야합하는 학문에는 기대고 싶지 않다/ 더 이상 어떤 권위에도 기대고 싶지 않다/ 오래 살면서 마음속 깊이 배운 건 이 정도/ 네 눈 귀 내 두 다리만으로 선들/ 무슨 불편 있으랴/ 기댄다고 한다면 그저/ 의자 등받이뿐.”
2006년 2월 어느 날, 서경식은 이바라기 노리코의 편지를 받았다. “이번에 나는 2006년 2월 17일, 지주막하출혈로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생전에 써 둔 것입니다.”
과연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과 같은 시, 편지, 삶이다. 쇼와나 윤석열 류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말과 글, 인생이다!
20일 서울 종로구 동십자각에서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연 '내란수괴 ' 참가자들이 응원봉을 흔들고 있다. 2025.3.20. 연합뉴스
지난 4개월 간 도처에서 만난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
불행 중 다행으로, 우리는 그 “폐허에 내리비치는 빛”들을 12·3 계엄 세력과 싸우는 4개월 여 과정에서, 국회와 길거리에서, 남태령과 광화문에서, 청계천과 안국역에서 무수히 만났다. 특히 나는 2030세대 청년들(그 중 여성들)의 눈부신 활약이 희망의 토대라 본다. 이들은 ‘응원봉 집회’에서만이 아니라 ‘전봉준 투쟁단’ 깃발을 든 농민(전농)이나 ‘노동자 희망’ 깃발의 민주노총과의 연대, 나아가 ‘녹색병원’을 이을 전태일의료센터와의 연대(전태일병원 건립기금 후원)에서도 놀라운 태도를 보여 주었다. 일례로, 남태령 대첩에서 전태일병원 건립계획을 듣고선 특히 2030여성들이 대거 후원 물결을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총 2만 7000여 후원자들 중 1만 6000명 이상(약 60%)이 2024년 12월 이후에 결합한 이들이라 한다. 현재 50억 모금 목표 중 80% 이상이 달성된 상태다. 한 역사학자는 이런 현상을 두고 “전봉준 정신이 전태일 정신으로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고 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습들이 ‘우리 사회가 가장 예쁠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는, 아름다운 시로 감동을 준 이바라기 노리코만큼 오래 살지 않은 지금도 꽤 행복하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살린다’는 한강 작가의 말처럼, ‘제대로 산 자가 죽던 자도 살린다’는 말 역시 가능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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