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조기 대선에서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를 선호하는 의견이 과반을 훌쩍 넘었다고 [리얼미터]가 3일 알렸다.
지난달 26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506명 대상으로 차기 집권세력 선호도 조사결과, ‘야권에 의한 정권 교체’(정권교체) 55.1%, ‘집권 여당의 정권 연장’(정권연장)은 39.0%였다. 5.9%는 의견을 유보했다.
그 전주와 비교해 ‘정권교체’가 6.1%p 올라갔고, ‘정권연장’은 6.3%p 떨어졌다. 두 의견 간 차이는 16.1%p로 오차범위(±2.5%p) 밖으로 벌어졌다.
60대 이상을 제외한 전 연령대, 대구·경북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정권교체’ 의견이 ‘정권연장’을 크게 앞질렀다. 특히, ‘무당층’에서 정권교체(46.7%)가 정권연장(25.3%)을 크게 앞섰다. ‘중도층’에서도 정권교체(60.6%)가 정권연장(33.6%)을 압도했다.
[리얼미터]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여권 주자로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간의 대선주자 가상 양자 대결 조사 결과도 공개했다.
△이재명 50.0%, 김문수 31.6%, △이재명 50.3%, 오세훈 23.5%, △이재명 50.0%, 홍준표 24.2%, △이재명 49.7%, 한동훈 20.3%로 “이재명 대표가 여권의 잠룡 4인과의 대결 구도에서 18%P ~ 29%P 차이로 많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
[에너지경제신문] 의뢰에 따라 [리얼미터]가 무선 자동응답 방식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2.5%p, 응답률은 6.0%(25,263명 통화 시도해 1,506명 응답 완료). 더 자세한 사항은 [리얼미터]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
이에 대해, 3일 ‘김어준의 겸손은힘들다 뉴스공장’에 출연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지난달 25일 윤석열탄핵심판 최종변론, 윤석열·김건희의 공천개입 뒷받침하는 명태균 폰 공개, 극우세력의 대학가 시위 등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봤다.
증인 불출석, 위증 등으로 성과 미진
김현태, 조태용, 김성훈 등 10명 고발
마지막 날에도 계속된 여당의 몽니
지난해 12월 31일 출범한 국조특위는 역대 국정조사처럼 구체적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는 불법비상계엄에 대한 여야의 상반된 입장과 핵심 증인들의 불출석이 이유로 꼽힌다. 그럼에도 60일 동안 활동한 국조특위는 일부 증인들의 핵심 증언을 이끌어냈고, 국회 봉쇄 및 단전 지시가 있었음을 밝혀냈다.
안규백 내란 국조특위 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전체회의 청문회를 주재하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의원들은 내란 국조특위 고발 대상자와 관련해 항의하며 자리를 떠났다. ⓒ 뉴시스
마지막인 28일, 결과보고서 채택과 동행명령을 거부하거나 위증을 일삼았던 증인들의 고발 건이 의결됐다. 고발이 의결된 증인은 총 10명이다. 윤석열, 김용현, 여인형, 노상원, 문상호, 강의구, 김용군, 조태용 등이다.
여당은 증인 고발에 반발했다. 야당이 조태용 국정원장과 김현태 707특수임무단장을 위증으로 고발하려 하자, 이들과 배치되는 주장을 한 홍장원 국정원 제1차장과 곽종근 전 육군특전사령관까지 고발해야 한다고 몽니를 부린 거다.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은 홍장원, 곽종근도 출석할 때마다 말이 달랐다는 취지로 말하며, 이들까지 함께 고발 의결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말이 바뀐 건 조태용 원장과 김현태 단장이다.
조 원장은 불법계엄 당시 국무회의 참석 사실을 숨겼고, 기자회견에서 홍 전 차장의 보고를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이후 보고를 받긴 받았다고 말을 바꿨다.
김 단장은 지난해 12월 전쟁기념관 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곤 “곽 전 사령관에게 전화가 왔고, 국회의원이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한다. 끌어낼 수 있겠느냐”는 뉘앙스의 연락을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하루 만에 “저한테는 끌어내라고 까지는 아니었다”고 번복했다.
이 내용은 이날 채택된 결과보고서에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선원 민주당 의원은 국민의힘 의원들의 자가당착, 내란 옹호를 지적했다. “207페이지에서 208페이지에 조 원장이 거짓말하는 내용이 그대로 담겨있고, 그에 반해 홍 전 차장의 일관된 주장은 204~206페이지에 그대로 나와 있다”며 “이 내용에 대해 여당도 동의했는데, 이건 이미 자신들이 통과시킨 보고서 자체를 부인하는 자가당착”이라고 꼬집었다.
무엇이 밝혀졌나
다섯 차례의 청문회, 두 차례의 기관보고, 합창 및 결심실 현장 조사 등 약 두 달에 걸친,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국조특위)’ 활동이 종료됐다. 그 과정에 국조특위는 어떤 성과를 이루었을까
처음 국조특위에 출석한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였다. “의원들을 끄집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냐”는 질문에 10초 정도 망설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곽 전 사령관은 그런 지시가 있었음을 시인했다.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인원들을 밖으로 끌어내라”는 윤석열의 지시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후 윤석열 측은 ‘요원’이었다는 초라한 변명을 내놨다.
국회 단전 시도가 있었다는 것도 CCTV를 통해 공개됐다. 계엄 해제안건이 의결되고 불과 6분 뒤였다. 박수민 국민의힘 의원은 “전체적인 것도 아니었고, 지하1층의 부분적이었다”며 별일 아닌 것처럼 주장했으나, 노종면 민주당 의원은 “1차 불을 내렸을 때, 비상등이 잠시 들어왔지만, 그것까지 또 차단했다”며 “이후 밝아진 건 CCTV가 적외선 촬영모드로 전환된 것”이라고 반박했다.
군 내부에서 작성된 ‘비상계엄 선포’ 관련 문건도 공개됐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이 11월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계엄사-합수본부 운영 참고자료’라는 방첩사 내부 문건을 공개한 거다. 해당 문건은 여인형 전 사령과 지시로 방첩사 비서실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계엄과, 합동수사기구의 법적 근거부터 주요쟁점이 정리돼 있었다. 윤석열의 내란이 사전에 치밀히 모의 됐었다는 증거였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의 언론사 단전·단수 의혹도 드러났다. 허석곤 소방청장은 계엄 당일 밤 11시 37분쯤 이 전 장관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밝혔다. “언론사 다섯 곳을 말 하셨다”며 “단전·단수 지시가 명확하게 있던 건 아니고 경찰에서 협조 요청이 있으면 (소방청이) 협조해주라는 뉘앙스였다”고 밝혔다. 이어 허 청장은 “회의 석상이라 옆에 있던 (이영팔) 소방차장과 의논했지만, 특별하게 액션을 취한 것은 없다”고 말했다.
검찰은 공소장에 윤석열이 이 전 장관에게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MBC, JTBC, 여론조사 꽃을 봉쇄하고 소방청을 통해 단전·단수를 하라’는 내용이 담긴 문건을 보여줬다고 명시했다.
이 전 장관은 이에 대해 질의하는 야당 의원들에게 “답변하지 않겠다”는 말로 일관했고,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서는 “단전·단수 지시를 받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명의로 이른바 ‘세컨드 폰’을 만들어 정치인과 연락한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 밝혀진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지난해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로 등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사무총장 세컨드 폰 사태와 관련해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고 비판해 온 국민의힘의 처지도 난감해졌다. 정치권에선 “그 ‘부패한 카르텔’은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는 비판이 나온다.
2일 경향신분 보도에 따르면 김 전 사무총장은 지난해 8월4일 강화군수 예비후보자로 등록했다. 당시 국민의힘 예비후보자는 14명이었는데, 김 전 사무총장은 1차 경선을 통과해 경선 대상 4명에 포함됐다. 다만 같은 해 9월 있었던 최종 경선에서 탈락했다.
전날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선관위 명의의 ‘세컨드 폰’으로 정치인과 연락을 주고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발표 내용을 보면 김 전 사무총장은 2022년 1월부터 세컨드 폰을 이용해 정치인과 연락했다. 그해 3월과 6월에는 각각 대선과 지방선거가 연이어 열렸다.
김 전 사무총장은 세컨드 폰을 통해 정치인과 어떤 얘기를 나눴는지에 대해 밝히지 않았다. 감사원은 “김 전 사무총장이 ‘정치인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각양각색인데 그 부분까지는 말할 수 없다’며 구체적인 진술을 거부했다”고 전했다.
감사원 감사 결과에 대해 국민의힘은 김 전 사무총장을 비난하며 선관위를 믿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장관급인 사무총장이 특정 정치인과 선별적으로 몰래 소통하며 업무를 진행하는 선관위를 어떻게 신뢰하나”라고 썼다. 같은 당 나경원 의원도 김 전 사무총장 사례를 언급하며 “비리종합세트 선관위의 실체”라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이 같은 행태에 대해 진보당은 “겉으로는 부정선거·관리부실 운운하며 정작 안으로는 그 핵심 당사자를 따뜻하게 품고 지자체장 선거에까지 출마하도록 배려했다니, 그 뻔뻔함에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라고 꼬집었다.
진보당 홍성규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국민의힘에서 내란까지 노골적으로 비호하며 연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독립성·공정성을 공격하는 가운데, 정작 정치인 통화 논란이 제기된 김세환 전 선관위 사무총장이 바로 작년에 국민의힘 소속으로 인천 강화군수 보궐선거에 출마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며 이같이 밝혔다.
홍 수석대변인은 “작년이면, 윤석열 대통령부터 국민의힘에 이르기까지 일상적으로 그 무슨 대국민담화가 있을 때마다 부정선거 운운하며 선관위를 공격했던 때 아니냐”며 “결국, 그 ‘부패한 카르텔’은 다름아닌 국민의힘과 연결된 것이었냐”고 반문했다.
이어 “엊그제도 국민의힘은 김동원 대변인 논평을 통해 선관위 내부의 가족채용 실태를 비판하며 '차라리 가족기업으로 전환하라'고 일갈했다”며 “아들 특혜 채용 의혹의 장본인이 바로 김세환 전 사무총장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홍 수석대변인은 “양의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팔아온 것은 바로 국민의힘이었다”면서 “이러고도 과연 국민의힘에서 선관위 사무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운운할 자격이 있나. 즉각 해명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지난달 27일 서울 중구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발언하고 있는 최승호PD. 사진=금준경 기자
뉴스타파 구성원들이 피켓을 들었습니다. 박중석 신임 사장 체제에서 최승호 PD에게 회사 운영규정상 정년이 초과했다고 통보해 논란이 시작됐습니다. 최승호 PD에 따르면 사측은 자신에게 지나치게 많은 자원이 투입됐다고 지적했고, 4대강 보도를 더는 하지 않겠다고도 했습니다.
노조는 단체협약과 취업규칙상 정년 조항이 없고, 사측이 제시한 운영규정은 이미 사문화됐다고 반박했습니다. 논란이 되자 사측은 해고 압박이 아닌 용퇴 요청이라고 했습니다. 4대강 보도를 하지 못하게 한 것도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최승호 PD는 김만배 신학림 녹취록 보도 당시 촉발된 이견과 반발이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사측은 이 역시 부인하고 있습니다.
노조는 연일 피케팅을 하는 등 집단행동에 나서 사측의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번 갈등에는 최승호 PD 개인의 인사 문제를 넘어 뉴스타파 보도방향 및 운영 방식 등을 둘러싼 이견 등이 이면에 있습니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27일 노조의 피케팅 현장을 찾아 최승호 PD 등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사측에도 인터뷰 요청을 했으나 ‘내부의 일’이라며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측의 입장을 반영해 최승호 PD를 인터뷰했습니다.
이제 트라피스트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9개 남았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 걸까. 재작년 라 트라페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앞으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시기 쉽지 않겠다는 직감이 들었다. 양조장 관계자는 수도사가 되려고 하는 유럽인들이 없다고 털어놨다. 하긴, 아무리 성직자의 길을 걷고 싶어도 외부와 단절된 트라피스트의 삶을 선택하는 게 쉽지 않겠지.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봉쇄 수도원이다. 수도사는 베네딕트 성인의 규율, '일하고 기도하라'에 따라 자급자족을 수행한다. 수도원에서 생산하는 치즈, 와인, 맥주는 수행하는 이들을 위한 작은 노동의 대가일 뿐이다.
아이러니하게 이런 이유로 트라피스트 맥주는 전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이 됐다. 수도원이라는 거룩하고 신비스러운 배경이 맥주를 프리미엄 상품으로 등극시켰다. 트라피스트 제품을 인증하기 위해 창설된 국제 트라피스트 협회(International Trappist Association)도 맥주가 아니었더라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0년 상업 맥주 양조장 밸텀이 트라피스트 이름으로 맥주를 출시하자 진정성 문제가 불거졌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오르발 수도원이 즉각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트라피스트 수도원에서 생산된 맥주에만 '트라피스트 맥주'라는 이름을 허가했다. 단, 수도원 맥주 레시피로 상업 양조장에서 만드는 맥주는 '애비 비어'(Abbey beer)로 구분해 분쟁의 여지를 없앴다.
상표권 보호를 절감한 트라피스트 수도원들은 1997년 협회를 조직한 후, 세 가지 규정을 충족한 제품에만 육각형 ATP(Authentic Trappist Product) 라벨을 붙이도록 했다. 규칙은 다음과 같다. 모든 제품은 수도원 내에서 생산될 것, 모든 제품은 수도사의 관리 감독을 받을 것, 수익은 수도원 운영과 지역 공동체 발전에 사용할 것.
ITA는 수도원이 이 규정을 따르고 있는지 주기적으로 관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라벨을 박탈했다. ATP 라벨은 트라피스트의 진정성을 나타내는 표식이 됐다. 사람들은 육각형 라벨을 통해 트라피스트 정신을 공감하고 소비했다. 현재 ATP 제품은 치즈, 와인, 맥주, 초콜릿, 벌꿀, 쿠키, 초, 비누를 포함 총 14종이 있다.
위기의 트라피스트 맥주
▲이태리 트레 폰타네 트라피스트 맥주윤한샘
2020년까지만 해도 ATP 맥주를 생산하는 수도원은 12곳에 달했다. 벨기에 트라피스트 맥주의 대부, 베스트말레를 필두로 오르발, 베스트블레테렌, 시메이, 로슈포르, 아헬, 6곳과 네덜란드 라 트라페와 준데르트 그리고 영국 틴트 메도우, 미국 스펜서, 이탈리아 트레 폰타네, 오스트리아 엥겔스젤이 트라피스트 맥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2021년부터 불안의 조짐이 나타났다. 벨기에 아헬과 미국 스펜서가 맥주 생산을 중단한 것이다. 아헬은 수도사 부족으로 수도원을 폐쇄했고, 스펜서는 재정 문제가 원인이었다. 그나마 아헬은 베스트말레의 도움으로 2023년까지 맥주가 나오다가 상업 양조장에 인수되어 애비비어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23년에는 오스트리아의 유일한 트라피스트 수도원, 엥겔스젤이 문을 닫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던 4명의 수도사는 인원 부족으로 수도원 운영이 힘들다는 판단 아래 폐쇄를 결정했다. 그레고리우스, 벤노 같은 아름다운 트라피스트 맥주도 자연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2023년 사라진 오스트리아 엥겔스젤 벤노윤한샘
맥주만 위기를 겪는 것은 아니다. 다른 제품들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현재 ATP 인증 제품이 나오는 수도원은 13곳에 불과하다. 트라피스트 수도원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역과 연대하고 있다. 본질을 흐리지 않는 선에서 수도원 운영과 제품 생산에 지역 사람들을 참여시키고 수도원을 개방해 피크닉과 휴식 공간으로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라 트라페는 수도원 마켓을 통해 지역민에게 빵, 치즈, 맥주, 옷을 비롯한 다양한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 레스토랑에서는 친환경 음식과 수도원 맥주를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고, 뒤뜰 텃밭에서 재배한 유기농 채소도 지역 커뮤니티에 공급하고 있다.
맥주에 낭만 한 스푼
▲세 개의 규칙을 상징하는 그림들쓰리룰즈 보도자료
2024년 라 트라페는 첫 맥주 출시 140주년을 기념하는 맥주를 세상에 내놓았다. 이름은 쓰리 룰즈(Three rules), 트라피스트 맥주를 정의하는 세 가지 규칙에서 가져왔다. 진정한 트라피스트 맥주가 아니라면 흉내 낼 수도, 따라할 수도 없는 이름이었다.
가슴을 찡하게 한 건, 영국 틴트 메도우와 네덜란드 준데르트가 양조에 참여했다는 사실이었다. 수익을 추구하지 않고 지역 색과 개성이 뚜렷한 트라피스트 맥주에서 협업은 극히 드문 사례다. 이전까지 트라피스트 수도원들끼리 협업한 맥주는 이태리 트레 폰타네가 2019년과 2021년 진행했던 '시네르지아'가 유일하다. 트레 폰타네는 수도원 연대 활동 강화와 자선 사업에 필요한 자본 확충 그리고 새로운 양조 경험을 목적으로 협업을 했다.
2020년 출시된 시네르지아' 19는 지금은 사라진 미국 스펜서와 협업으로 나온 벨지안 IPA였다. 벨지안 IPA는 벨기에 효모 향과 미국 홉 향이 어우러진 맥주로 크래프트 맥주에서나 볼 수 있는 스타일이다. 물론 트라피스트 맥주가 전통적인 스타일에 국한되지는 않지만 ATP 라벨이 붙은 벨지안 IPA는 좀처럼 예상하기 힘든 경우였다. 아마 미국에서 크래프트 맥주 영향을 받은 스펜서 수도원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더 이상 스펜서 트라피스트 맥주를 마시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쉬울 수밖에.
▲지금은 사라진 미국 스펜서 트라피스트 맥주윤한샘
시네르지아' 21은 트레 폰타네, 로슈포르, 베스트 말레의 협업으로 탄생한 맥주다. 7.5% 알코올을 품은 어두운색 벨기에 에일, 두벨로 출시됐다. 두벨은 20세기 초 베스트 말레 수도원에서 양조된 이래 벨기에 맥주 스타일의 근간이 됐다. 맥아에서 올라오는 감초, 초콜릿, 견과류 향 그리고 맥주 전체를 조용히 감싸고 있는 옅은 페놀 향이 전 세계 사람들을 매료시켰다.
매우 드물지만 트라피스트 수도원과 상업 양조장의 협업으로 나온 맥주도 있다. 라 트라페와 미국 브룬스윅 비어웍스, 이 어색하고 생경한 조합은 트라피스트와 크래프트가 만난 첫 번째 사례로 주목받았다. 맥주 이름 또한 거룩했다. '오라 에 라보라'(Ora et Labora), 기도하고 일하라.
7.5% 알코올을 가진 도펠 복, '오라 에 라보라'는 유럽과 미국 홉이 첨가됐고 병 내 이차 발효를 통해 탄산화와 숙성을 진행했다. 전통적인 도펠 복의 문법을 비틀어 전통과 실험을 적절하게 버무린 작품이었다.
트라피스트 맥주가 협업을 한다는 건, 수익 이외의 공익 목적이 있다는 뜻. 이 맥주는 우간다에 병원을 건립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라 트라페 수출 책임자 안토니오 반 헤케는 에이즈로 고통받는 아프리카에 도움과 관심이 필요하다며, 이번 프로젝트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거라고 말했다. '기도하고 일하라', 트라피스트 정신이 담긴 이름을 아무 맥주에나 붙일 수 있는 게 아니다.
형제애로 지구를 지키다
▲쓰리룰즈를 협업한 수도원장들쓰리룰즈 보도자료
지금까지 트라피스트 협업 맥주가 베일에 싸인 채 비밀리에 진행됐다면, 쓰리 룰즈는 다르다. 공식 홈페이지를 열고 맥주가 세상에 나온 이유를 적극적으로 밝히고 있다. 그것도 세 명의 수도원장을 앞세워서.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세 명의 수도원장이 전면을 장식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순간 살짝 찡했다. 자신을 숨긴 채 살아가는 트라피스트 수도사들이 얼굴을 드러낸 이유가 무엇일까. 로슈로프와 라 트라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수도사의 사진을 찍는 것도 불허했던 트라피스트 아닌가.
마치 성배를 들고 있는 듯 두 손으로 병을 받치고 있는 틴트 메도우 수도원장 조셉 옆으로 라 트라페 수도원장 이삭과 준데르트 수도원장 귀도는 누구보다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흰색 튜닉 위에 검은 색 스카풀라를 걸친 세 수도사의 눈빛에서 라 트라페 140주년 맥주를 향한 강한 형재애가 느껴졌다. 사라져가는 트라피스트 맥주를 지키는 수호자의 굳은 의지와 진심 또한 묻어났다. 이렇게 낭만 터지는 맥주라니.
얼마 전 웹상에서만 보던 쓰리 룰즈를 한국에서 만날 수 있었다. 맥주를 직접 보니 경건한 마음이 절로 생겼다. 스테인글라스를 투과한 빛줄기처럼 쓰리 룰즈는 우아한 자태를 뽐냈다. 육각형 ATP 라벨을 가운데 두고 금색으로 버무린 수도원의 상징들이 병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홉에 둘러싸인 세 개의 규칙과 수도원 로고는 진짜 트라피스트 맥주 정신이 무엇인지 말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라트라페 140주년 기념 맥주, 쓰리 룰즈윤한샘
▲라트라페 140주년 기념 맥주 쓰리룰즈윤한샘
쓰리 룰즈는 두벨이다. 짙은 갈색을 두르고 7.4% 알코올로 무장한 쓰리 룰즈의 첫 향은 우아한 감초와 캐러멜이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향 뒤로 섬세한 수지 향이 물씬 밀려왔다. 적절한 쓴맛과 단맛이 만나 이루는 균형감은 완벽했다. 손의 온기로 잔의 온도를 높이면 우아한 바디감이 입안 곳곳을 물들였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뭔가 한 방이 더 있을 텐데. 역시나, 쓰리 룰즈의 수익금은 네덜란드 환경단체 'Trees For All'이 1만 4000 그루의 나무를 심는데 기부되고 있었다. 140년 된 트라피스트 맥주의 가치 수호와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보호를 위해 뭉친 수도원 맥주라니. 이보다 낭만 넘치는 맥주가 있으려나. 내가 쓰리 룰즈를 마시며 작은 위안을 얻었던 건, 요즘 한국 사회를 혼란하게 하는 일부 종교에 지쳐있기 때문이리라.
종교가 맥주의 힘을 빌어 우리 사회를 더 살 만한 곳으로 이끌고 있다니, 이보다 더 멋진 경우는 없었던 것 같다. 어려울수록 진정성에 답이 있다. 종교와 맥주가 가야할 길도 마찬가지다. 오라 에 라보라.
지난 달 28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에서 한 아이가 외투를 반쯤 입은 채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일인 2일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 비가 내리는 가운데 오후부터 강원 산지 등 일부 지역에는 50㎝에 이르는 많은 눈이 내릴 전망이다.
이날 기상청은 “북쪽에서 남하하는 찬 공기로 기온이 낮아지면서 오전부터 강원 산지, 밤부터 수도권과 그밖의 강원도, 충북 북부, 경북 북부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곳도 있을 것”이라고 예보했다.
이날부터 다음 날까지 예상되는 지역별 적설량은 강원 동해안·산지 20~50㎝(많은 곳 70㎝ 이상), 강원 내륙과 충북 북부에 5~20㎝(많은 곳 25㎝ 이상), 서울·인천·경기 서해안과 충북 중·남부 3~10㎝, 대전·세종·충남과 대구·경북 중남부 내륙, 울산·경남 서부 내륙, 전북 동부 1~5㎝다.
이 기간 경기내륙과 강원도, 충북, 경북을 중심으로 시간당 3~5㎝(특히 강원 동해안·산지 시간당 5㎝ 이상)의 습하고 무거운 눈이 내릴 것으로 보인다. 약한 구조물은 붕괴 우려가 있어 유의해야 한다.
같은 기간 예상 강수량은 강원 동해안·산지 30~80㎜(많은 곳 100㎜ 이상), 경북 동해안 30~80㎜, 서울·인천·경기, 서해5도와 강원 내륙, 대구·경북 내륙·경북 북동 산지, 부산·울산·경남, 울릉도·독도 20~60㎜ 등이다.
이날 아침 최저기온은 0~11도, 낮 최고기온은 8~18도로 평년(최저 -5~4도, 최고 7~12도)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오전 8시 기준 주요 지역 기온은 서울 8.6도, 인천 7.6도, 수원 8.4도, 춘천 0.9도, 강릉 9.8도, 대전 8.8도, 대구 10.8도, 전주 9.7도, 광주 12.6도, 부산 13.4도, 제주 14.8도다. 주요 지역 낮 최고 기온은 서울 12도, 인천 11도, 수원 13도, 춘천 10도, 강릉 8도, 대전 14도, 대구 13도, 전주 17도, 광주 17도, 부산 14도, 제주 18도가 예상된다.
오후부터는 순간풍속 시속 55~70㎞/h(15~20m/s)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 곳이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음 날부터는 전라 해안과 경상권 해안에 차차 바람이 순간풍속 70㎞/h(20m/s) 이상, 제주도 산지 90㎞/h(25m/s) 이상으로 강한 바람이 불면서 강풍특보가 발표될 가능성이 있다.
해상에서도 서해 중부 먼바다와 서해남부 북쪽 바깥 먼바다, 동해 중부 해상에서 바람이 30~80㎞(8~22m/s)로 매우 강하게 불고, 물결이 1.5~4.0m로 매우 높게 일 것으로 보인다.
미세먼지 농도는 서울·인천은 ‘나쁨’, 그 밖의 권역은 ‘좋음’∼‘보통’으로 예상된다. 다만, 경기 북부·경기 남부·세종·충북·충남·대구는 오전에 ‘나쁨’ 수준을 보일 전망이다.
끊임없이 반복해 죽어야만 하는 직업을 가진 청년의 이야기. <미키 17>은 자연스럽게 현대 사회의 노동권 문제를 거론한다. 야심차게 개장한 마카롱 가게가 폭망하고 거액의 빚에 쪼들려 지구를 떠나 극한 직업을 택할 수밖에 없던 미키의 전사前史는 현재를 살아가는 MZ 세대들의 극한 상황을 빗댄다. 인간 복제에 대한 윤리적인 문제 제기와 종교적 파시즘이 자본과 엮였을 때 어떤 기행적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 흥미롭게 묘사하기도 한다. 이러한 표면적 요소들은 <미키 17>을 대중적으로 관람하기 위한 좋은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 <미키 17>은 분명 현 시대를 풍자하고 있는 작품임에 틀림없고 굳이 이러한 사실을 감출 의도 없이 노골적으로 지리멸렬한 시대적 풍경을 SF 장르 속에 잘 녹여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봉준호 감독의 장기이기도 하다.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현실의 구석 틈새로 묵직한 카메라 렌즈를 들이밀고 그 어떤 가치도 발견하지 못했던 미시적 순간들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펼쳐내곤 했다. <미키 17> 또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세계의 한 조각으로서 세상에 대한 그의 시선을 충실히 담아낸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끊임없이 마음 한구석을 건드린 대사 한 줄이 이 작품 전체를 새롭게 고민하도록 만든다. 모든 사건이 해결되는 마지막 순간, 주인공 미키(로버트 패틴슨)는 내레이션으로 되뇐다. "나도 이제 행복해도 괜찮아." 미키의 죄책감은 운전 중 자신이 누른 버튼 때문에 부모님이 세상을 떠났다는 오해에 뿌리를 둔다. 그것이 오해인지 진실인지 영화는 굳이 관심 두지 않는다. 영화적 관심은 미키의 반복된 죽음과 재생이 중단될 수 있는지,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그 여부에 있다. 고통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미키의 심리적 원인보다 그 원인을 야기하는 사회 구조적 문제, 시스템의 모순을 해체하고 그곳에서 미키의 고통을 중단시키는 것만이 서사의 주된 관심사다. 힘없는 개인이 혁명을 일으키고 세상을 바꾸는 영웅 모험담은 영화 서사의 근간이다. 관객은 큰 스크린을 통해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유토피아적 (또는 디스토피아적) 세계가 현실화하고 극복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한다. <미키 17>은 그러한 작법을 충실히 따르고 그래서 대중적이다. 봉준호 감독의 모든 작품은 대중적 요소를 지니고 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해피엔딩의 공법을 따른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만약 미키의 마지막 대사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무척 낯설고 이질적인 봉준호 표 영화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미키 18과 미키 17. ⓒ워너브라더스코리아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미키의 마지막 대사는 미키 18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미키 17이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토로할 때도 미키 18은 진실이 아니라며 화를 낸다. 이전의 미키들과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호방하고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며 과감하기까지 한 미키 18은 진정한 빌런이다. 어쩌다 이전의 소극적이고 순응적이며 소심하기까지 한 미키들과 전혀 다른 미키가 탄생할 수 있었는지는 영화의 관심사가 아니다. 단지 영화적 설정을 통해 그냥 어느 날, 어느 순간에 이런 미키가 탄생했을 뿐이다. 미키 18은 사건을 일으키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끄는 불온한 존재다. 탄생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시스템 오류의 결과 값이다. 영화 제목에서조차 인정하지 않고 감춘 존재이지만 그는 온몸으로 파국을 막아내고 모든 사건을 종결시키는 진정한 영웅이기도 하다. 봉준호의 작품 세계에서 이러한 존재들은 대체로 안타고니스트이거나 혹은 공포의 대상으로 묘사되곤 했다. 가장 대표적인 캐릭터가 바로 <기생충>(2019)의 근세(박명훈)다. 대대손손 자본을 이어가며 상층부의 호화 저택에서 살아갈 것만 같았던 동익(이선균) 가족과 시스템에 기생하여 그들의 피를 빨아먹고 살려 했던 기택(송강호) 가족 모두를 해체하는 진정한 빌런이 바로 근세였다. 미키 18은 분명 근세에 버금가는 빌런임에도 <미키 17>은 그를 서사적으로 소비하거나 터부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를 통해 서사를 완성하고 미키 17의 계몽적 자각을 이끌어 낸다. 이 근본적 차이가 <미키 17>을 봉준호 작품 세계 속에서 무척 이질적으로 느끼도록 만든다.
수없이 복제된 미키들처럼 미키 17과 미키 18은 결국 다르면서 같은 존재다. 유전학적으로는 동일자이나 존재론적으론 서로 낯선 타자다. 그들의 동일성은 과학적 근거를 따른다. 이성적이고 분석적인 결과물로서 그들은 절대 다른 자들이 아니다. 하지만 그들의 캐릭터, 사상, 추구하는 바는 전혀 다르다. 가장 극명히 나뉘는 점은 서로의 욕망을 표현하는 데 있다. 미키 18은 이전 미키들은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던 욕망에 충실한 자다. 미키 17의 마지막 대사에 언급된 '행복'이야말로 미키 18이 추구한 가장 근원적 가치다. 미키 18에게 행복은 사회가 부여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 또는 자신에게 부여된 임무를 완수하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오히려 사회적 목표엔 관심도 없고 오직 욕망을 따르는 것만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적 시선 속에서 미키 18과 같은 존재들은 터부시되고 불편한 존재로 치부되어 버린다. 과거 봉준호 감독의 작품 속 미키 18과 같은 존재들이 모두 안타고니스트, 적대적 존재로 내비친 이유다. 하지만 <미키 17>은 그런 미키 18을 통해 혁명을 완수한다. 그리고 관찰자인 미키 17 자신을 해방한다. 미키 17이 자각한 행복의 가치는 노동 해방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신의 욕망을 발견하고 이를 실현하는 것, 그 가치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으로까지 나아간다. 어떤 의미에서 진정한 자아 발견이야말로 미키 17이 추구한 행복인 것이다.
▲복제되는 미키. ⓒ워너브라더스코리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마지막 미키 17의 대사에 언급된 '행복'은 그 원류가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행복에 대비되는 '불행'의 순간에는 단지 죽음을 반복해야 하는 극한의 노동 조건만 포함되지 않는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희생되었다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도 포함된다. 그 죄책감은 미키가 자신의 불행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원동력이다.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죽었으니 부모님의 보호 없이 살 수밖에 없는 현실, 사업이 망하고 그 빚으로 인해 극한의 노동을 할 수밖에 없는 모든 현실적 조건들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다. 이 논리는 봉준호의 작품 세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논리다. 봉준호의 작품 세계 속 인물들은 모두 운명론에 사로잡혀 있었다. '옥자'는 먹잇감으로 개발된 동물이기에 도축될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희봉(변희봉)이 운영하는 매점은 강두(송강호)를 거쳐 현서(고아성)로까지 이어지며, 기택(송강호)의 가족과 동익(이선균)의 가족은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자본 계급으로 선명히 나뉘어 있다. 봉준호의 작품들이 비극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인공이 그 운명을 거스르기 위해서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신이 설계한 운명에 맞서는 순간 모든 신화 속 인물들은 변신이라는 심판을 면치 못했다. 변신은 신이 내린 벌이며 죄를 지은 자로서 소멸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구원의 길이다. 봉준호는 그 신화적 공식을 해체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며 수많은 빌런들을 통해서 구조를 전복시키려 노력했다. 동시에 그 노력이 얼마나 힘겹고 불가능에 가까운 것인지 또한 잘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의 아들이 범죄자임을 알고 있음에도 기억을 잊는 침을 놓고 미친척 관광버스 춤을 춰야 했던 '마더'(김혜자)의 몸짓이 만든 처절함이 그 증거다. 봉준호에게 영화는 현실을 넘어서는 것이었으며 동시에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의 잔혹함을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였다. 봉준호의 그로테스크함은 그 모순으로부터 비롯한다.
그랬던 봉준호 감독이 드디어 행복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자아실현을 깨닫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조금 낯설지만 그럼에도 반갑게 다가온다.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한 행복을 영화 속에서라도 맛보고 싶은 마음이 관객의 마음이기 때문일까? 그보다는 영화를 통해서 현실을 살아가고 버틸 수 있는 동력을 얻고자 하는 관객의 마음 때문이라 여기고 싶다. 판타지로서의 영화는 현실을 외면하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만 너무 잔혹한 현실이라면 존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잠시 거리를 두는 것은 필요하다. 영화 속에서 만끽한 행복의 감각들이 극장에 불이 밝혀지고 긴 통로를 빠져나가 현실로 돌아가는 관객들에게 또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관습, 또는 대중성이란 이름으로 폄하하기에 <미키 17>은 충분히 귀엽고 깜찍하다. 그래서 사랑스럽고 미워할 수 없다. 잔인한 현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비관적 태도를 유지했던 봉준호 감독의 변화가 반가운 이유다.
▲<미키 17> 메인포스터. ⓒ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동윤 영화평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영화 연출, 시나리오, 영상문화이론을 전공했다. <포도나무를 베어라>(2007), <오이시맨>(2008)의 시나리오를 집필 했으며 CGV아트하우스 큐레이터, 춘천SF영화제 프로그래머를 역임 했다. 2019년부터 4년 간 서울국제프라이드영화제와 함께 ‘한국퀴어영화사’ 연작 시리즈를 책임 편집 했으며 『A Collection of Korean Queer Cinema』(2023)를 집필하여 영문으로 출간했다. 현재 영화 평론, 시나리오, 영화 연출 등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형식의 글쓰기와 창작을 수행 중이다.
106주년 3.1절.. 광장에 함께 선 야5당
“내란종식·민주헌정 수호”, “윤석열 파면”촉구
내란종식의 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봄비가 내렸다.
변론의 시간은 끝났다. 이젠 파면, 그리고 내란 종식과 새로운 사회로 나아갈 시간이다.
3.1운동 106주년을 맞은 3월1일. 내란청산의 봄을 맞이하기 위한 외침이 서울 곳곳에서 피어났다.
기본소득당·더불어민주당·사회민주당·조국혁신당·진보당 등 야5당도 광장에 나왔다.
지난 19일 야5당이 모여, ‘내란종식·민주헌정 수호! 새로운 대한민국 원탁회의(원탁회의)’를 출범한 후, 광장에서 첫 공동집회를 연 것.
야5당은 이날 오후 ‘내란종식·민주헌정 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촉구 범국민대회’ 한 자리에서 만나 “윤석열 파면과 내란 종식”에 입을 모으고, 12월3일 맨 몸으로 계엄군의 총에 맞선 시민들과 함께 사회대개혁, 새로운 사회를 만들 것을 다짐했다.
각 당의 대표를 비롯해 원내대표와 다수의 의원들이 함께 자리했다.
▲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3.1절 야5당 공동 내란종식 및 민주헌정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 촉구 범국민대회’ ⓒ뉴시스
앞서, 이들 야5당은 원탁회의 출범 당시 공동선언문에서 “극우내란세력들이 내란을 부추기고 헌정파괴를 시도하는 등 내란은 현재진행형”이라며 “민주주의와 헌정을 수호하고자 열망하는 모든 이들의 튼튼한 연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열겠다”고 다짐한 바 있다.
윤석열 파면과 “내란 종식”, “민주헌정 수호”, 그리고 새로운 대한민국!
이날 범국민대회에서도 출범선언문에 담긴 결심이 야5당 대표의 목소리를 통해 뿜어져 나왔다.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는 “106년 전 ‘대한민국 만세’를 외친 우리 선조들은 해방 후 민주, 자주, 평등, 평화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그러나 내란 일당에 의해 대한민국이 무너져 내렸다”면서 “내란 세력의 준동을 막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자”고 호소했다.
“소수 특권층의 나라, 극우세력이 다시 권력을 갖고 부패를 장악하지 않도록 사회개혁으로 나가자”고 말한 그는 “윤석열 파면 다음은 국민이 실망하지 않는 새로운 정치의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신뢰와 연대의 정치를 만들자고 외쳤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12월3일 국회를 지킨 국민들이 없었다면 윤석열의 포고령이 법이 되었을 것이고, 왕이 된 윤석열은 비상계엄을 ‘혁명’이라고 했을 것”이라며 “윤석열 한 사람의 파면으로 끝내는 것이 아닌, 내란세력 모두를 발본색원해 처벌하고 역사의 기록에 남기자”고 말했다.
용혜인 대표도 “기후위기, 경제안보위기, 불평등 위기에 현명히 대처하는 것은 국민통합의 길을 여는 정부를 만드는 것”이라며 야5당이 국민과 함께 힘모아 가자고 호소했다.
▲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3.1절 야5당 공동 내란종식 및 민주헌정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 촉구 범국민대회’ ⓒ뉴시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도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단결과 연대”를 강조했다.
김 상임대표는 윤석열의 최후변론을 거론하며 “말끝마다 야당, 민주노총, 간첩 타령을 했다”면서 “대통령이 이렇게 간첩을 걱정하는데, 국정원, 방첩사, 검찰과 경찰은 무엇을 했단 말인가”라고 반문하며, “윤석열이 진짜 걱정하는 것은 간첩이 아니라 여기 있는 우리가 단결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내란세력은 간첩을, 중국을, 북한을 입에 달고 살며, 국민이 서로를 의심하고 분열하기를 바라며, 혐오와 갈라치기로 나라를 사분오열 내고 정치적 내전을 선동하고 있다”면서 “저들이 원하는 것의 반대로 가야 한다. 내란세력, 헌정질서파괴세력에 맞서 다같이 단결하자”고 호소했다.
김 상임대표도 “야당 정치인들을 잡아가두고, 노동자 농민을 때려잡고, 남북 간 대결을 끌어올려 정권유지 수단으로 삼던 시대를 이젠 해체시켜야 한다”면서 “광장에서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상상이 증발하지 않도록, 진보당이 확성기가 되어 모두가 꿈꾸는 세상을 향해 더욱 진보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원탁회의를 처음 제안한 조국혁신당의 김선민 대표 권한대행도 무대에 올라 내란동조자 국민의힘을 규탄하고 ‘내란종식’의 목소리를 높였다.
김 권한대행은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거부하고, 폭력을 선동하며 내란을 옹호하는 국민의힘이 제대로 된 정당인가”라고 따져 묻곤 “내란의힘, 내란동조자일 뿐”이라 일갈했다.
그는 “내란특검, 명태균특검으로 내란전모를 낱낱이 밝혀내고, 내란세력에 맞서 시민사회의 연대로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압도적인 집권을 만들자”면서 “조국혁신당이 쇄빙선이 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에서 열린 ‘3.1절 야5당 공동 내란종식 및 민주헌정수호를 위한 윤석열 파면 촉구 범국민대회’ ⓒ뉴시스
마지막으로 무대에 오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내란이 끝나지 않았음”을 강조하며 “빛의 혁명을 완수하자”고 말했다.
이 대표는 “12월3일, 국민이 맡긴 국가무력인 군대를 동원해 결코 용서받지 못할 역사적 반동을 만들었다”, “국민을 배반하고 민주공화국의 질서를 부정하며 내란에 동조한 세력은 보수가 아닌 수구반동일 뿐”이라며 내란수괴 윤석열, 내란동조자 국민의힘을 규탄하곤, “이젠 이들을 넘어, 벼랑 끝에 내몰린 민주주의와 국민의 삶을 회복하고, 희망의 나라를 만들자”고 전했다.
이날 가수 강산에 씨는 “비상계엄을 온몸으로 막아내고 광장에서 새로운 사회를 외치는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며 제주도에서 올라와 무대에 서 시민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3월 1일 서울 경복궁역 광화문 일대에서 20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3차 범시민대행진이 진행됐다.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1919년 3월 1일 전국 13도를 휩쓴 '독립만세'의 함성이 106년이 지난 광화문에서 '윤석열파면 만세', '내란종식 만세', '민주주의 만세'의 외침으로 되살아났다.
대통령 윤석열의 탄핵심판 변론이 종결되고 최종 선고를 앞둔 3월 1일 서울 경복궁역 광화문 일대에서 20만명(주최측 추산)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3차 범시민대행진이 진행됐다.
'전쟁도, 굴육외교도, 윤석열도 없는 3.1절'을 대회 주제로 삼아 시민들이 염원하는 새로운 세계를 표현했다.
앞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자주통일평화연대(평화연대)는 경복궁역 앞에서 '3.1혁명 106주년 역사정의, 평화주권 시민대회'를 사전대회로 열었다.
이홍정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평화연대 상임대표의장인 이홍정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 공동대표는 "국민 주권이 살아있는 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온다"며, "우리는 반드시, 자주, 평화, 통일을 이룬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봄을 쟁취할 것"이라고 힘차게 연설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헌법재판소가 내란 수괴 윤석열을 조속히 탄핵해야 하지만, 그의 파면만으로 내란사태가 끝나고 이땅의 민주주의를 옥죄는 분단 냉전체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역시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반공·전쟁 정치가 비상 계엄을 통해 거듭해서 반복되는 근본 원인은 분단·냉전 체제에 있으며, 헌법을 유린한 내란 세력을 제대로 단죄하지 않는다면 깊이 뿌리 내린 분단·냉전에 기대어 저들은 다시 되살아날 수 있다"는 것.
국가보안법없는 세상, 북풍공작없는 세상, 한미연합전쟁연습없는 세상, 그래서 비상계엄 따위는 다시는 없는 그런 세상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나아가 한·미·일 신냉전 동맹세력들에 의해 고착화된 분단·냉전 체제를 넘어 남북이 어깨동무하고 중국과 러시아, 미국과 일본의 손을 함께 잡고 모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는 "미완의 해방, 분단 80년에 맞는 3.1운동 106주년에 이른 오늘의 독립과 해방운동은 남과 북이 끝나지 않는 전쟁체제 아래 교전중인 적대적 두 국가관계로 남아있는 가운데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며, "오로지 주권자의 힘으로 내란을 끝내고 민주주의와 자주, 평화, 통일의 봄을 앞당기자"고 호소했다.
비록 황제가 폐위되고 국권이 상실되었어도 '인민주권'은 살아있다는 각오로 주권재민의 기치를 높이 들고 목숨을 건 독립해방운동을 전개한 106년전 3.1운동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자는 뜻이다.
사전대회에서는 각계 대표들이 광복군의 결의를 담은 '한국광복군 서명문 태극기'를 배경으로 대회 참가자 명의의 '3.1선언문'을 낭독했다.
이들은 "일제의 갖은 폭압과 착취에도 분연히 맞서 싸워 온 강산을 뒤흔들었던 106년 전의 3.1혁명이 독립 해방 운동으로 4.19 혁명으로, 5.18 광주항쟁으로 87항쟁과 2016년 촛불행동 항쟁, 그리고 지금 빛의 혁명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하면서 "주권자의 힘으로 내란을 끝내고 민주의 봄, 역사 정의의 봄, 평화 주권의 봄을 앞당기자"고 다짐했다.
또 "윤석열이 파면된다 해도 내란은 결코 끝나지 않았다"며, "내란에 동조한 군은 대규모 전쟁연습을 강행하고 있으며, 반국가 세력을 운운한 빨갱이 몰이도 되살아나고 있다. 북한의 위협을 앞세우면 비상계엄도, 내란도, 친일 역사쿠데타도, 전쟁마저도 가능해지는 더 강력한 분단 냉전 체제를 넘어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120년 전 을사년은 일제로부터 국권을 강탈당한 치욕적인 을사늑약의 해였고, 60년 전 을사년은 일제 식민문제를 온전히 해결하지 못한 굴욕적인 한일수교의 해였다"고 하면서 "그러나 올해 을사년은 내란과 전쟁 범죄의 전모를 철저히 밝히고 관련자를 처벌하며 광장의 힘으로 극우 내란 전쟁세력을 청산하는 해, 진정한 자주·평등·평화의 새로운 사회로 향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앞에서 야5당 공동 '내란종식·민주헌정수호를 위한 윤석열파면 촉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정당 대표들도 무대에 올라 '광장의 승리, 윤석열 파면'을 단언했다.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는 "우리 사회의 차별과 혐오, 불평등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극우 파시즘은 언제든지 독버섯처럼 다시 피어날 것"이라며, "광장의 목소리, 사회대개혁의 실현이 이같은 상황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3.1만세운동의 광장이 조선의 독립과 자주권을 선언했다면, 오늘의 광장에서 우리는 빼앗긴 권리를 되찾고 사회대개혁 실현으로 나아갈 주권자의 의지를 천명했다"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상을 삶속으로 가져올 때라고 역설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정치가 광장의 요구에 충실하지 못해 시대적 요구에 눈감은 결과 괴물과도 같은 윤석열 정권이 탄생하고 말았다"는 것.
"혐오를 이용한 정치가 분열을 선동할 때 광장의 주인공인 시민들은 더 많은 연대를 호소하고, 그들이 헌정질서의 파괴를 시도할 때 우리는 보다 나은 사회 질서를 상상하자"고 당부했다.
황운하 조국혁신당 원내대표는 "시민이 나라의 주인이고 윤석열은 역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헌법을 지키는 사람들이고 윤석열은 헌법을 파괴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위대한 국민들이 피와 눈물로 이루고 지켜낸 민주주의가 존재하지 않는 허깨비, 망상과 싸우는 윤석열을 이길 수 밖에 없다며, "민주주의에 도전한 윤석열은 반드시 가루가 되어 부스러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빠르면 열흘, 늦어도 보름안에는 탄핵심판 결과 나올 것"이라며, "헌법과 상식에 기초할 때 윤석열 파면은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석열 파면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다시는 민주주의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들어야 하고 극우세력들이 준동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탄핵심판의 결과에 대해서는 유승익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부소장이 나서 다시 한번 정리해 주었다.
유 부소장은 윤석열이 지난해 12월 3일 선포한 비상계엄은 야당과 국민을 '계몽'하기 위해 발령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국무회의 심의, 국회 통보 등 헌법이 정한 절차를 어느 하나 지킨 것이 없다는 점에서 위헌·위법하며, 이것만으로도 그의 파면은 확정적이라고 거듭 설명했다.
또 국민 모두가 증인인 명백한 증거가 있고,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중대한 위헌 행위를 했으며, 그의 변호인들은 변론에도 완벽히 실패했고 그 자신이 '계엄의 형식을 빌린 대국민호소'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탄핵 사유를 자백했다는 점도 재확인했다.
그래서 1~2주안에 헌법재판소에서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 문구가 정확하게 낭독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 [사진-통일뉴스 이승현 기자]
빗속에 진행된 사전대회에서 박석운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공동대표는 "제 106주년 3.1절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는 윤석열 정권의 친일 역사 쿠데타를 격파하고 한일역사정의를 바로 세우는 새로운 출발점에 서 있음을 직시하고자 한다"며, 광복 80년을 맞는 해에 겹친 을사늑약 120년, 굴욕적인 한일협정 60년이 되는 2025년의 엄중한 역사적 상황을 설명했다.
또 "윤석열 정권은 민주주의 파괴, 민생 파탄, 반평화와 전쟁 조작을 일삼다가 이제 그 종말을 앞두고 있다"고 하면서 "내란수괴 윤석열은 감옥에 갇혀 파면이 선고되고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때를 맞춰 내란을 옹호하고 탄핵무효를 우겨대는 움직임에 대해서는 "친일, 친미, 반공주의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종속적 파쇼 극우세력인 이들의 거짓선동과 폭력행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다"며 단호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교사가 설립한 배재학당을 졸업한 이승만은 1898년 만민공동회에서 연사로 나섬으로써 대중적 스타가 되었지요. 그는 1899년 1월 9일 박영효 역모사건으로 체포되었습니다. 그런데 권총 탈옥을 시도했다가 붙잡혀 탈옥미수죄로 감옥생활을 했는데요, 그는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감옥 안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도서관과 학교를 운영하였고 신문 기고와 번역서 발간도 가능했어요. 원고 집필도 할 수 있어 그의 대표 저작인 『독립정신』도 감옥에서 집필한 것입니다. 그는 1899년경에 기독교를 받아들였어요.
옥중에서 찍은 사진. 맨 왼쪽이 이승만
『독립정신』에서 그는 서구열강의 정치제도를 수용하고 친밀한 외교를 주장했습니다. 그가 기독교를 받아들일 것을 역설한 이유는, 서양 국가들이 부강한 이유를 기독교에서 찾았기 때문인데요. 하지만 그에게 제국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었습니다.
1908년 3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이 대한제국의 외교 고문으로서 일제 침략을 옹호해 왔던 미국인 스티븐스를 처단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때 이승만에게 법정 통역을 요청했으나, "예수교인의 신분으로 살인재판의 통역을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절했어요. 오히려 그는 현지 한글신문이었던 <공립신보>에 기고하여, “감정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오히려 서구 국가를 적으로 돌리게 되어 그들이 일본과 더더욱 밀착해 일본을 도우는 꼴이며, 독립에 도움은커녕 해악이 된다”고 비판하였습니다.
프린스턴 대학에서 박사학위
무장투쟁 기피하고 외교독립론 주장한 이승만
그는 졸업 후 1910년에 귀국하여 YMCA에서 교육 활동을 하다가, 1912년 세계감리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출국했는데요, 하와이에서 『한국교회핍박』을 발표하여 일본에 대한 의열투쟁과 군사적 행동을 비판하면서 기독교를 통한 외교독립론을 주장했어요.
1925년 이승만의 국내 지지자들은 흥업구락부를 창립해서 일제가 허용한 범위 안에서 농촌사업을 진행했습니다. 1938년 흥업구락부는 대규모로 구속되어 해체되었는데, 검거된 회원들은 전향한 뒤 일제에 협력하였고, 단체의 모든 자산을 국방헌금으로 납부했어요.
서울 YMCA에서 같이 일하게 된 옥중 동지들과 귀국 직후 찍은 사진. 왼쪽부터 김정식, 안국선, 이상대, 이원긍, 김린, 이승만.
미국 공격하던 친일 기독교, 해방 후 친미로 변신
그 후 신흥우의 주도로 「적극신앙단」이 결성되었습니다. 그들은 히틀러의 영향을 받아 미국식 민주주의와 고전적 자본주의 및 공산주의를 비판하였어요. 「적극신앙단」은 전체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의 이념적 좌표는 국가사회주의, 즉 파시즘이었습니다.
미국 유학을 거친 ‘친미파’ 상당수가 반미파, 곧 친일파로 변신하여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라고 규정하고 백인사회와 선교사들의 인종차별을 맹렬히 비난했습니다. ‘대동아전쟁’은 동양인의 생존권과 자위권을 지키기 위한 정당방위의 전쟁으로 규정되었어요.
해방이 되자 일본의 편에서 미국을 저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미국인과의 네트워크가 강력한 사회적 자본으로 급변하여 미군정의 특권적 일부로 편입되었습니다. “친미적이면서 반공적인 세력의 발견과 육성”이 필수적인 과제인 미군정과 자연스럽게 융합되었어요.
한국 기독교는 미군정을 지지했고, 가장 보수적인 이승만 진영을 압도적으로 응원했습니다. 좌익 세력과 무력충돌까지 서슴지 않았지요. 월남한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되었던 서북청년단이 가장 대표적 사례였습니다.
이승만과 김구, 그리고 미 군정장관 하지 중장.
미군정과 정권 지원 아래 급속히 팽창한 개신교 점유율
미군정 및 이승만 정권 시기에 한국 기독교는 많은 후원과 특혜를 받았어요. ‘사실상의 기독교 국가’로 탈바꿈했고, 자유당은 ‘기독교 정당’으로 통념화 되었습니다. 고위 공직자나 국회의원 중에 개신교 신자의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았지요.
기독교를 나라의 기초로 삼아야 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이승만은,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윤영 목사에게 기도를 요청했어요. 미군정하에서 공휴일로 지내던 성탄절을 대한민국 정부에서도 그대로 공휴일로 인정했습니다.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연설하는 이승만.
정치지형 변동의 종교적 결과로 “개신교의 급팽창”과 “종교시장 내 개신교의 점유율 확대”가 나타났지요. 1945년 당시 15만이 안되던 신자 수가, 1955년에는 100만 명을 돌파하여 불교에 이어 제2의 교세를 가진 종교로 급성장했습니다.
한국기독교교회연합회(KNCC)는 2대 대선에서 이승만 지지운동을 벌였습니다. “기독교계의 요청을 수용하여 국기경례를 주목례로 대신하도록 고쳤고, 군목제도를 설치했으며, 국가의식을 기독교식으로 지령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1952년 정부통령선거에서 무소속 함태영 목사가 당선되었고 이기붕이 자유당의 제2인자로 떠올랐는데요. 개신교 인맥이 핵심 실세를 이루면서, 자유당의 지도자들 모두 개신교 신자들로 채웠습니다. 배은희는 장로교 목사, 이승만은 감리교 장로, 이기붕은 감리교 권사였어요.
국가의 제도와 행사, 물적 자산 배분을 기독교 중심으로
1954년 12월 기독교방송이 개국했는데,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을 높이고 교세를 신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리고 개신교와 천주교만의 참여로, 1951년 초부터 군종제도가 시행에 들어갔지요. 오로지 개신교에만 허용된 형목제도는 타 종교의 참여가 봉쇄되었습니다. 국가적인 장례식도 개신교 방식으로 진행되었어요. 기독교계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에도 “국군장병의 ‘위령제’를 ‘추도식’으로 개칭할 것”, “‘충영탑’이란 명칭을 ‘기념탑’으로 변경할 것”, “‘33인 합동추념식’에서 ‘분향’을 실시하지 말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49년 당시 문교부 안호상 장관은 국기배례를 거부한 학생들에 대한 퇴학 처분을 옹호했어요. 개신교 측은 배례 방식이 ‘국기의 우상화’를 조장한다면서 변경을 요구했습니다. 이승만 정부는 교회의 요구를 수용하였고, 문교장관을 기독교인으로 교체했어요.
1948년 제헌 선거일은 원래 일요일로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교회는 대대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였고, 결국 선거일은 일요일을 피해 5월 10일로 결정된 것이었어요. 1949년 이승만 정부는 일요일과 겹친 ‘제헌절 1주년 기념식’을 월요일에 거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아울러 개신교는 이승만의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습니다. 미국으로부터 달러화로 들어온 선교자금과 관련된 외환정책을 통해서, 그리고 귀속재산 혹은 적산의 처리ㆍ배분 과정에서 천리교 부지를 영락교회를 비롯한 개신교회들이 차지하는 혜택을 입었지요.
국민들 죽어가는데, 독재자 송축한 기독교계
이승만 정부하에서 교회와 신자들은 권력자와 과도하게 일체화되었습니다. 교회는 온갖 영예를 받았고, 신자들에게도 교회의 일원이라는 사실은 자부심의 원천이었어요. 한국 사회 내의 지배적 종교의 하나로 확고한 위상을 갖게 된 것입니다.
그토록 강성하던 이승만 정권이 4.19 혁명으로 붕괴위기에 직면하자, 교회는 이승만에 대한 동정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이는 교회의 사회적 공신력 하락과 그에 따른 신자 증가율의 하락으로 나타났어요. 독재와 부패에 대한 개신교의 공동 책임을 추궁 당했습니다.
당시 서울에는 살아있는 권력자의 동상이 남산공원에 있었어요. 25미터에 달하는 당시 세계 최대의 동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쫓겨나자, 동상은 끌어내려졌고 산산조각 나고 말았습니다. 한국의 개신교계는 이승만의 개인 우상화 시도에 대해서 어떠한 비판도 하지 않았어요.
남산공원에 세워졌던 세계 최대 규모의 이승만 동상.
오히려 똑같은 개신교인였던 조병옥이 4대 대선에 나서자 “이 박사와 겨루는 것은 곧 하나님과 겨루는 것과 같다”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백만 기독교도는 강하고 담대한 사람 장로 이승만과 착하고 진실한 사람 권사 이기붕을 세우자“고 선거운동을 벌였어요.
개신교계는 자유당 후보 이승만과 이기붕의 당선을 독려했고 부정선거 규탄시위의 원인을 ‘하루하루 첨예화해 가는 정당 싸움의 결과’로 분석했습니다. 심지어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던 4.19혁명이 일어난 후인 4월 22일에조차, KNCC는 이승만의 “건강을 송축”했어요.
기독교계의 이승만 이기붕 지지 포스터
오늘날 광장의 성조기로 되살아난 이승만의 기독교 국가
4월 혁명은 한국 기독교에 중요한 변화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고려는 불교로, 조선은 유교로, 또 대한민국은 기독교로 망한다’는 말까지 돌았어요. 당시 개신교회의 모습은 ‘푸줏간에 끌려가는 송아지 모양으로 민중의 심판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팎으로 정화와 혁신의 요구가 분출되었고. 새로운 정교 관계의 윤리를 토대로 갱신, 혁신될 것이 요청되었습니다. 그러나 박정희의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다시 권력과 손을 잡았어요. 결국 한국 개신교가 권력과의 유착을 끊고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잃었어요.
이승만이 만들었던 반공과 친미를 통한 기독교 국가의 건설이라는 틀은, 한국 교회의 원형적 가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미동맹은 신앙만큼이나 절대적인 가치를 이루었어요. 오늘날 극우 집회에서 태극기와 함께 미국의 성조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대한민국바로세우기국민운동본부가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인근에서 연 탄핵 반대 광화문 국민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5.2.1. 연합뉴스
한국 교회는 윤석열 정권 아래서 이승만 정권 당시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과오를 범했어요. 무속에 의지하는 윤석열 부부를 치하하고 축복하며 지지했습니다.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해서 격려했고, 윤석열이 교회를 방문할 때마다 열렬히 환대해 주었어요.
오늘날 전광훈-손현보로 대표되는 극우 기독교가 한국 사회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승만을 국부로 칭송하며 기념관을 건립하고 다큐 영화제작을 후원하고 있어요. 그리고 마치 한국 사회를 이승만 시대로 회귀시키려는 시대착오적 주장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손현보(왼쪽)와 전광훈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는 목사
지난 2019년 전광훈은 “하나님 까불면 나한테 죽어”라고 했습니다. 2021년에는 “하나님 사표 내고 나랑 바꾸자”라는 등 신성모독적인 발언을 했는데도 한국교회는 전광훈을 방치했어요. 그 결과 그를 추종하는 세력을 키웠고, 마침내 법원 폭동 사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현재 전광훈-손현보로 과잉 대표되고 있는 한국 개신교에 대한 신뢰도는 21%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습니다. 뒤늦게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지만, 이번 기회에 정리가 되지 못하면 개신교 전체의 공멸로 이어질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삼일절을 맞아 배우 송혜교와 함께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1910∼1944)을 알리는 영상을 제작했다고 1일 밝혔다.
서 교수는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영상은 제가 기획하고 배우 송혜교 씨가 후원했으며, 한국어 및 영어 내레이션을 각각 입혀 국내외 누리꾼에게 널리 전파 중”이라며 이렇게 밝혔다.
서 교수는 “영상의 주요 내용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특사, 근우회 핵심 간부, 난징 조선부녀회 창립, 조선혁명군사정치 간부학교에서의 교관 활동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며 “특히 유관순 열사에 이어 두 번째로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된 여성독립운동가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전했다.
4분 30초 분량의 이 영상에는 의열단장 김원봉의 아내로 항일 여성운동 단체 근우회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다 일본군과의 교전 중 부상, 그 후유증으로 숨진 박차정의 생애에 대한 내용이 상세히 담겼다.
서 교수는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독립운동가의 삶을 재조명하고 전 세계에 널리 소개하고자 정정화, 윤희순, 김마리아에 이어 네 번째로 영상을 올리게 됐다”며 “앞으로 꾸준히 시리즈로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다.
서 교수와 송혜교는 지난 2012년부터 역사적인 기념일에 맞춰 해외에 있는 독립운동 관련 유적지 37곳에 한국어 안내서, 한글 간판, 부조 작품 등을 기증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최근 국회에서 재개된 국민연금 개혁 논의에서 자동조정장치가 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야는 그동안 의견 차이를 보이던 소득대체율(받는 돈)에 대해서는 점차 이견을 좁히고 있지만, 정부·여당이 자동조정장치를 합의 조건으로 내세운 것이다.
자동조정장치는 국민연금 급여를 사실상 삭감하는 기능을 한다. 구체적인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항이지만, 국회에서나 사회적으로도 제대로 논의된 적은 없다. 윤석열 정부도 자동조정장치에 대해 '도입을 검토'하겠다면서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에 현재 정부와 거대 양당만 모여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상황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받는 돈' 약 20% 삭감되는 '자동조정장치'...연금개혁 논의 쟁점으로
정부와 국민의힘·더불어민주당은 지난 27일 오후 국민연금 개혁 관련 실무 협의를 했지만 연급개혁안에 대해 합의를 보지는 못했다.
쟁점은 소득대체율과 자동조정장치였다. 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이날 실무협의 뒤 기자들과 만나 "(소득대체율과 자동조정장치에 관해) 전혀 합의가 안 됐다"고 말했다.
현재 여야는 보험료율(내는 돈)을 현행 9%에서 13%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지만, 소득대체율을 놓고 국민의힘은 43∼44%, 민주당은 44∼45%를 주장하면서 의견이 갈린 상태다. 1%p(포인트) 차이로 결국 연금개혁 모수조정 합의를 보지 못한 지난 21대 국회와 비슷한 상황이다.
다만, 국민의힘은 소득대체율 44%를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지만, 자동조정장치 도입을 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자동조정장치는 인구·경제 지표를 반영해 소득대체율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제도적 장치다. 현재 정부는 급여에 물가상승률을 반영할 때 가입자수 감소율과 기대수명 증가율를 빼는 일본식 모델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 지급액은 전년도 소비자 물가 인상률을 반영해 인상된다. 여기에 가입자수가 감소하고 기대수명이 늘어날수록 물가 반영 비율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급여는 가입자의 수급 전 소득을 기준으로 정해지는 만큼 물가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급여의 실질가치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올해부터 정부가 검토하는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된다고 가정하면,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 2.3%가 온전히 급여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소리다. 지난 2023년 발표된 국민연금보고서는 올해 가입자 변동률(감소율) 3년 평균을 1%, 평균수명 증가율을 0.4%로 추산했다. 이를 반영해 자동조정장치를 적용하면 올해 급여에는 물가가 0.9%(2.3%-(1.0%+0.4%))만 적용된다.
사실상 국민연금 급여를 깎는 효과다.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의 추계에 따르면 자동조정장치를 오는 2036년에 도입하는 것을 기준으로 1975년생(50세)은 20.3%, 1985년생(40세)은 21.8%, 1995년생(30세)은 22.1%, 2000년생(25세)은 21.3% 삭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 평균 21% 정도 급여가 삭감되는 셈이다. 급여 삭감 효과는 청년세대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자동조정장치가 매년 작동될수록 물가반영 비율이 점점 더 떨어지기 때문이다.
남찬섭 동아대 교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하면 소득대체율이 8%p 내려가는 효과가 있다"면서 "(여야가) 소득대체율을 44%에서 합의한다고 해도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되면 실제로는 36%가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대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우원식 국회 의장,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국정 안정을 위한 국회-정부 국정협의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5.02.20. ⓒ뉴시스
연금특위서도, 공론화서도 논의 없었던 '자동조정장치'
윤석열 정부도 "신중하고 충분한 논의 필요" 강조했는데
자동조정장치가 본격적으로 언급된 것은 지난해 9월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연금개편안에 담기면서부터다. 그러나 당시 정부도 '도입을 검토'하겠다는 데서 그쳤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자동조정장치에 대해 "소득보장 수준에 미칠 변화 등을 고려하여 충분한 논의와 세밀한 검토를 거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22대 국회에서 연금개혁 논의가 좀처럼 재개되지 못하던 상황에서 '12.3 비상계엄' 사태로 자동조정장치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 20일 여야정 국정협의회에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이 갑자기 자동조정장치를 제안하면서 연금개혁의 중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윤석열 정부가 내세운 연금개편안을 다시 밀어붙인 셈이다.
당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정부·여당이 소득대체율 44%를 수용하는 대신, 자동조정장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이 대표는 자동조정장치 발동 시 국회 승인이 필요하다는 조건을 붙였다.
이 대표의 자동조정장치 수용 입장이 알려지자 사회시민단체는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민주당은 반대 입장을 재확인하면서도 검토 가능성에 대해선 열어둔 상황이다.
문제는 자동조정장치가 연금개혁의 핵심 쟁점으로 갑자기 협상 테이블에 올랐지만, 제대로 된 검토와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2022년 윤석열 정권 출범 초기부터 구성돼 2년 가까이 연금개혁을 논의했던 21대 국회 연금개혁특위에서는 자동조정장치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지난해 4월 시민 500여명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에서도 안건으로 조차 오르지 못했다.
자동조정장치에 대해선 아직 논의할 부분이 많다. 정부는 일본처럼 가입자수 감소율과 기대수명을 반영하는 자동조정장치를 검토하고 있지만, 나라마다 조정방식이 다르다. 안철수 국민의힘이 주장하고 있는 스웨덴식 자동조정장치는 소득연금(IP)의 경우 평균임금 변화율과 기대수명을 반영해 급여를 산정한다. 덴마크, 이탈리아, 핀란드 등은 기대수명에 따라 수급연령을 조정하는 자동조정장치를 도입했다. 이마저도 덴마크 등은 기대수명을 모두 반영하는 반면, 핀란드 등은 2/3만 반영하는 등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자동조정장치 도입 시기에 대한 검토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복지부는 지난해 자동조정장치 도입 검토를 제안하면서 급여 지출이 보험료 수입을 초과하는 2036년(보험료율 13%, 소득대체율 42% 정부안 기준), 기금 감소 5년 전인 2049년, 기금이 감소하기 시작하는 2054년 등 3가지 시나리오를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의 인구 및 경제 상황에 맞는 자동안전장치 모델이 무엇인지, 또 이를 언제 도입돼야 하는지 제대로 된 검토는 이뤄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사회적 논의 없이 정부와 거대 양당이 자동조정장치 도입 여부를 논의하는 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는 "(자동조정장치가 도입돼면) 생애 연금액이 경우에 따라선 20% 가까이 떨어지는데, 국민연금이 지금과 같이 급여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도입하는 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남찬섭 교수도 "국민연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장 명문화는 몇년 동안 주장해도 안 받아줬는데 자동조정장치는 말이 나오자마자 (민주당이) 덥석 물어버린 건 말도 안 된다"면서 "자동조정장치를 협상카드로 인정 자체를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국회 승인' 조건을 걸어도 자동조정장치가 법제화되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 교수는 "법안에 어떤 형태로라도 (자동조정장치를) 넣는다면 국민연금의 소득보장성 강화보다는 급여를 어떻게 깎을지에 대한 논의부터 하게 될 것"이라며 "향후에 국민연금 정책 방향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 당장 자동조정장치를 막아둔다고 해도 급여 삭감 방안을 법제화한다면, 향후에 국민연금 재정 문제가 다시 불거질 경우 우선 논의 대상이 될 것이란 우려다.
“난 조선일보 폐간에 목숨 걸었어.” 지난달 26일 주진우 시사IN 편집위원이 조선일보 폐간을 언급한 김건희 여사의 육성을 공개해 파장이 적지 않다. 육성이 담긴 통화는 윤석열 대통령 국회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인 지난해 12월 말 이뤄졌다. 김 여사는 왜 조선일보에게 적대감을 드러냈을까.
지난해 11월1일부터 12월31일까지 두 달 치 조선일보 사설만 봐도 김 여사가 조선일보에게 적대감을 갖기엔 충분했다. 조선일보는 윤석열 정부 지지율 하락을 막기 위해 모든 문제의 원인이 김 여사에게 있다고 지적하며 ‘윤석열’과 ‘김건희’를 분리시키려 했다.
조선일보는 11월1일 사설에서 “대통령실은 대통령 부부와 명씨의 관계, 그리고 제기된 의혹들에 대해 사후 해명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전체 사정을 밝혀야 한다. 대통령을 협박하는 정치 브로커와 전전긍긍하는 대통령실을 보며 개탄하는 국민이 많다”고 했으며 2일 사설에선 10%대로 떨어진 대통령 지지율을 언급하며 “김 여사의 공천·국정 개입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국민 인내심이 한계치에 다다르고 있다. 윤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의 불화 배경에도 김 여사 문제를 둘러싼 이견이 깔려 있다”고 김 여사를 겨냥했다.
11월4일 사설에서는 국민의힘 상임고문단이 비공개 회의를 갖고 명태균씨 녹취록과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며 “여권 전체가 위기감을 호소하며 불안해하고 있는데 대통령 한 사람만 못 느끼는 것인가”라고 했다. 6일 사설에선 “윤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이유는 누구나 아는 것이다. ‘김 여사 문제’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이 신문은 “그동안 윤 대통령의 담화나 기자회견은 국민 기대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았다. 지난 2월 KBS 녹화 대담 때는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해 ‘매정하게 뿌리치지 못한 점에 대해 아쉽다’며 사과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11월8일 사설에선 전날(7일) 대국민담화 및 기자회견 내용을 가리켜 “김 여사 문제나 공천 개입 의혹에 대한 일반 국민의 인식과 괴리가 적잖았다”며 “윤 대통령 지지율이 20% 아래로 떨어진 가장 큰 이유는 모두가 아는 것처럼 김 여사 문제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사과했지만 김 여사의 부적절한 처신이나 국정 개입 논란이 다시 벌어지면 모두 허사가 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지금 여권에서도 ‘김 여사 라인 정리’와 ‘쇄신 개각’ 요구가 나오고 있다. 대통령실 내부의 실세들로 불리는 이른바 ‘김 여사 라인’은 모두 정리하는 것이 옳다”고 강조했다. 9일 사설에선 “윤 대통령은 ‘아내의 처신이 잘못됐다’며 사과했지만 구체적 의혹엔 ‘침소봉대’ ‘악마화’라고 반박하며 김 여사를 감싼다는 인상을 줬다”며 “김 여사가 대선 때 ‘조용히 성찰하며 아내의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이라도 지켜야 한다”고 했다. 사실상 김 여사의 ‘완전한 퇴장’을 주문하는 논조였다.
11월16일 사설에선 “문재인 정부 때부터 공석이었던 특별감찰관마저 대통령실의 소극적 태도와 국회의 비협조로 빈자리로 남게 되면서, 친인척 관리에 큰 공백이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김 여사의 명품 가방과 국정 개입 의혹이었다”고 지적했다. 18일 사설에선 “국민은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김 여사와 각종 의혹들을 어떻게 풀어가는지 지켜보고 있다. 이 대표 유죄 판결에 환호하며 야당을 공격하기만 하면 여권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다고 여긴다면 보통 착각이 아니다”라며 다시금 김 여사의 퇴장을 주장했다.
조선일보는 계엄 이후인 12월11일 사설에서도 “윤 대통령 몰락의 근본 원인 중 하나가 김건희 여사 문제지만, 친윤계는 이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라 바로잡으려는 사람을 공격하는 일을 해왔다. 이런 친윤계는 점차 민심에서 멀어졌고 이는 총선 참패의 한 원인이 됐다”고 했다. 13일 사설에선 “총선 참패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김건희 여사 문제로 민심이 악화한 것이 가장 심각했다. 윤 대통령은 김 여사 문제를 성역으로 만들어 민심 이반을 키웠다”며 “스스로 민주당에 압승을 안겨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여사 때문에 정부가 무너졌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 신문은 31일 사설에서도 “김 여사 문제는 윤석열 정부를 망친 근본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민적 의혹은 분노로 바뀌어 있다”면서 “윤 대통령의 계엄은 김건희 특검을 막으려는 뜻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는 2024년 내내 사설과 칼럼을 통해 ‘윤석열 정권 유지를 위해서라면 김건희 여사를 버려야 한다’는 논조를 보였다. 양상훈 조선일보 주필은 지난해 4월12일자 칼럼 <윤 대통령 부부,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에서 “국민의힘에서 심정적으로 김건희 특검에 동조하는 사람은 수십 명이 넘을 것”이라고 썼다.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실장은 같은 해 7월13일자 칼럼 <김 여사의 그림자>에서 “용산발(發) 뉴스 중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다 김 여사가 개입했다는 말도 나온다”며 “불길하고 또 불길하다”고 썼다.
이 같은 논조는 다른 보수신문 논조에도 당연히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고, 이는 김 여사가 폐간을 언급한 배경 중 하나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지난해 10월부터 ‘명태균 USB’를 손에 넣은 조선일보가 사실상 ‘갑’의 위치에서 대통령실에 보수 재집권을 위해 임기 단축·개헌 등을 비롯해 각종 인사를 요구하고, 이에 ‘을’이 되어버린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조선일보가 대통령 행세를 한다’며 분개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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