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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7/02/21
    야밤에 전화(3)
    너나나나
  2. 2007/02/21
    귀경길(3)
    너나나나
  3. 2007/02/21
    그냥 있는 거 꺼내 먹기(3)
    너나나나

야밤에 전화

"두두두두두두두두"

 

저녁 9시 30분

전화기를 진동으로 했더니

책상 전체가 울립니다.

 

미루 재우다가

완전히 낙담합니다.

 

한 시간 가까이 실랑이 끝에

겨우 잠들기 직전이었습니다.

 

"여보세요"

"오~!! 전화 받네.."

 

"아...난 또 누구라고.."

 

사무실 사람입니다.

 

"근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작아요"

 

건너편은 아주 시끌벅적합니다.

 

"애 재우다 나왔거든요.."

 

"하하하..그래요? 지금 어딘대요?"

 

술취했습니다.

취한 인간의 전형적 대화법을 구사합니다.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화가 났습니다.

 

"어디긴 어디야..집이지.."

 

"집이 어딘데?"

 

집은 또 왜 묻나 싶은데

무슨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런 것 같지도 않습니다.

 

"집은 왜 물어? 대방동이야.."

 

"오호, 대방동~"

 

도저히 저의 지금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말투입니다.

 

"근데 왜 이 시간에 전화했어!!!"

 

버럭 화를 냈습니다.

하루 내내 스트레스가 쌓였는데

잘 됐습니다.

 

저쪽에서 미안해하면서 통화하면

화도 못 내고 괴로웠을텐데

화 내기 딱 좋게 말을 합니다.

 

"아..미안해요.."

 

화내고 나니까 미안하다고 하더니

옆 사람을 바꿔줍니다.

 

"오랜만이예요"

 

미루가 옆으로 기어오더니

본격 사운드를 내기 시작합니다.

 

"애 옆에 있어요?"

"네..근데 이 늦은 시간에 웬일이예요?"

 

"늦긴 뭐가 늦어요. 인제 9시 30분이구만.."

"그건 일할 때 얘기죠...하, 진짜.."

 

"알았어요...근데 이번 주 토요일날 시간 있어요? MT같이 가게"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습니다.

있는대로 화를 냅니다.

36년의 내공을 담은 온갖 욕설을 패키지로 보내줍니다.

저쪽에선 안절부절 못하다가

백배 사죄를 합니다.

다시는 밤에 전화 안 하고

낮에도 먼저 문자를 날리겠다고 약속합니다.

 

이런 상상을 하면서

계속 화를 내볼까 했지만

소심해서 그만뒀습니다.

 

전화를 끊고

미루가 자기까지 3시간 걸렸습니다.

 

12시 20분

겨우 재우고 시계를 보니까

다시 온몸이 화 덩어리가 됩니다.

 

육아휴직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육아하는 사람 처지를

끝까지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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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경길

다시 생각해봐도

이번 설 귀경길은

기억에 참 많이 남습니다.

 

"상구...설날표 결제했어?"

 

빛나는 인터넷 표구하기 전쟁에서

서울-김제간 표를 두장씩 예약한 저는

결제 마감일 다음날 주선생님이 이렇게 물어봐서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대답했습니다.

 

"아니. 큰일났다."

 

저 자신에게

어이가 없었습니다.

 

"현숙아~인터넷 다시 들어갔더니.. 남아있는 표 있다 있어!!"

 

설이 끝나고 올라오는 길,

새벽 5시 4분 기차를 타게 됐습니다.

 

무궁화호는

그 새벽에 다들 자는데

실내불을 환하게 켜놓고 달립니다.

 

미루가 잠이 깰까봐

우리는 미루 눈을 최대한 가렸습니다.

 

"이번 역은 익산, 익산역입니다.."

 

화들짝 놀랐습니다.

귀를 안 막았습니다.

 

기차 방송이

이렇게 클 줄 몰랐습니다.

 

"위아 어라이빙 앳 익산, 익산 스테이션"

영어로도 합니다.

 

"고노 예끼니.."

일본말로도 방송합니다.

 

"뭐라고 하는 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중국말까지 합니다.

 

미치겠습니다.

그래도 미루는 잡니다.

 

"서울까지 열번은 더 방송하겠구만.."

 

그래도 이 정도 길이면

잘 넘어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한 20분쯤 더 달렸는데

승무원분이 띡하고 마이크 켜는 소리가 들립니다.

 

"우리 열차는 광주를 새벽 4시쯤에 출발하여..."

 

무슨 안내할 게 있는가 봅니다.

무조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습니다.

승무원분이 직접 하시니까

4개국어로 하진 않을 겁니다.

 

"저희 승무원은 여러분의 안전하고 쾌적한 여행이.."

 

방송이 짧으면

매우 쾌적한 여행이 될 게 확실합니다.

 

"내리실 역을 지나치셨을 경우에는 무리하게 뛰어내리지 마시고...쓰레기는 객차 사이의 휴지통을 이용.."

 

무척 많은 안내를 합니다.

 

한참을 얘기하다가

승무원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울러, 열차 이용에 관한 몇 가지 안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주선생님과 저는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열차 이용에 관한

안내말씀이 아니었단 말입니까.

 

"열차내의 기계 장비는 함부로 만지지 마시고..."

 

계속 이어집니다.

 

"저희는 3번 객차에서 근무.."

 

3번 객차로 쫓아가고 싶었습니다.

벌써 5분도 넘게 방송을 하고 있습니다.

 

"어린아이를 동반하신 승객께서는 어린 아이가 객차 안에서 뛰거나 떠들지 않도록.."

 

결국 미루가 고개를 벌떡 들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지르기 시작합니다.

 

어린아이를 동반하신 승객이

아이가 떠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마음을 졸였지만 이미 상황은 벌어졌습니다.

 

이대로 미루를 안고

왔다갔다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낑낑.."

 

11시 방향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립니다.

고개를 쑥 빼고 보니까

엄마가 아이를 업고 서 있습니다.

 

"응애~~"

 

또 반가운 소리가

7시 방향에서 들립니다.

고개를 획 돌렸습니다.

 

역시 엄마가 아이를 업고 서 있습니다.

 

"으앙...", "에에...에에.."

 

객차 이곳 저곳에서

잠자던 아이들이 하나둘

일어납니다.

 

아까 그 방송 때문입니다.

 

어떤 엄마는 애를 안고 서서

의자에 머리를 박고 잡니다.

 

새벽 5시 30분

무궁화호 안에는

애들 소리가 가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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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있는 거 꺼내 먹기

며칠 째 반찬이 계속 정체입니다.

 

냉장고에는 각종 고대 음식이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가히 반찬의 박물관입니다.

 

"현숙아..오늘 아침은

있는 거 꺼내 먹기의 하일라이트가 될 것 같애.."

 

좀 미안하지만 할 수 없습니다.

 

3일된 호박볶음을 꺼냅니다.

역시 3일된 닦고기 볶음도 꺼냅니다.

 

그 보다 반나절 더 오래된 국을 올려놨습니다.

딴 건 몰라도 이 순간 만큼은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눅눅해진 김도 올려놓습니다.

 

그러게 전 작게 잘라져서

한번 먹을 만큼씩 파는 김이 좋습니다.

큰 김은 꼭 남아서 눅눅해집니다.

 

반찬 그릇을 다 꺼내놓고 보니까

아무래도 너무한다 싶습니다.

 

할 수 없이 비상수단을 쓰기로 했습니다.

 

"상구..뭐 해?"

 

접시를 왕창 꺼내서

반찬을 일일이 담았습니다.

 

손님이 왔을 때나 하는 짓입니다.

 

보기 좋게 담아놓으니까

분위기가 확 다릅니다.

 

"오...좋아 좋아..오늘 반찬 죽이는데.."

 

주선생님이 한 말이 아니고

제가 한 말입니다.

 

다시 봐도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기 좋은 떡의 위력입니다.

 

이런 기술은 가끔 써먹을 때

효과가 있습니다.

 

근데 다음 끼니는

또 어떻게 준비하나 걱정입니다.

 

"따르르릉..."

 

전화가 왔습니다.

어머님입니다.

 

"여보세요.."

"상구야~반찬 택배로 보냈다.."

 

살았습니다.

 

다양한 설반찬이 곧 집으로 옵니다.

 

요새 시골에서 반찬 갖다 먹는거

완전히 재미 붙였습니다.

 

이게 도착하면

또, 있는 거 꺼내먹기만 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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