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내밀어 우리님의 [[부고] 고 김준 동지의 명복을 빕니다] 에 관련된 글.

40년을 살다 갔다.

할 말이 없다. 없었다.

첫날 잠간 들렀다 왔고, 다음날은 새벽 3시까지 마지막 남은 몇 몇 사람들과 술을 마셨고,

그바닥에 쓰러져 잠간 잠잤다.  머리가 계속 아팠고, 멍했다.

조문을 할때 그의 아내와 아들을 보고선 눈물이 났는데,

산기평 앞에서 영결식장에서는 내내 울었다.

잘 울지도 않는데, 왜 그렇게 서럽게 느껴졌는지 나도 모르겠다.

좀 더 그의, 그들의 싸움을 적극적으로 함께 할수 는 없었을까..

그런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비는 내리고, 그 비를 다 맞았다.. 끝났더니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렸다.

살아 있는 인간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살 것이고,

먼저 간 인간만 서러운 것일텐데, 왜 내가 그리 서러웠는지 모르겠다.

 

신길수를 시작으로 해서, 최명아, 김종호. 그리고 그 외에도 몇번이나

추모시를 썼는지 모르겠다.

시를 잘 쓰지 않는 탓도 있지만, 죽은 친구를 앞에 놓고 무슨 할말이 있어서

추모시를 써야 하는지 알수 없지만, 그래도 썼다.

날세동한테 들어야 할 핀잔도 들었다.

그 잘난 추모시 쓰는게 어려운게 아니지만,

추모시 쓸 일 없는, 서러움 남기는 죽음은 없으면 좋겠다.

 

당신의 수줍은 미소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1.

당신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노동자로 하나 되자고 외쳤을 때

나는 우리는

일상의 안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당신이 노동자를 위해 사용자 허수아비들과 힘겹게 싸우고 있을 때

나는 우리는

그 싸움은 당신의 몫이라고 애써 외면했습니다.

 

당신이 바람직한 출연기관을 위해 정권의 하수인들과 싸우고 있을 때

나는 우리는

그건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 지레 포기했습니다

 

당신이 제대로 된 세상을 만들자고 힙겹게 정권과 투쟁하고 있을 때

나는 우리는

그 투쟁에 한쪽 손 한쪽 발만 내밀며 함께하는 시늉만 했습니다.

 

 

2.

당신이 어느 날 병마와 싸우며 하루 하루를 힘겹게 넘기고 있었어도

나는 우리는

그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그 아픔 속에서도 언제나 수줍고 따뜻한 미소를 보여도

나는 우리는

그 미소의 의미를 헤아려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방황하고 있을 때

나는 우리는

그 죽음의 늪에서 당신의 손을 잡지 못했습니다.

 

당신이 삶의 온기를 잃어가고 있는 그 순간에도

나는 우리는

삶의 피곤함을 핑계로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3.

당신은 일상의 안락을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고 있었고,

부당한 권력과 폭력에 맞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 보잘것 없는 병마와 싸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나와 우리의 무관심과 싸우고 있었고

나와 우리의 패배의식과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은 나를 우리를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힘겨워 하는 동지들의 고통을 나누려고 애썼습니다

작은 힘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힘쓰고 있었습니다

나와 우리의 살아 있는 실천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병마에 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우리가 당신을 외면했고,

내가 우리가 당신을 저세상으로 몰아 갔습니다

내가 우리가 당신을 죽였습니다

 

4.

당신의 따스한 마음과 아름다운 바람은

내게, 우리들에게 맡겨 놓고

편히 떠나십시오, 김 준 동지여!

 

당신이, 그리고 우리가

인간답게 살수 있는 곳이 있다면

그건 당신이 먼저 가는 그곳일 거라 믿습니다.

 

그래도 그래도

당신의 수줍은 미소를 한 번 더 볼 수 있다면...

당신의 따스한 손을 한 번 더 잡아 볼 수 있다면...

 

2008년 11월 27일 곽장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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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8 12:30 2008/11/28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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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Subject: 김준 2주기- 여전히 눈물이 난다

    Tracked from 산오리의 단순한 삶 2010/11/26 10:00  delete

    산오리님의 [김준이 갔다.] 에 관련된 글. 김준 2주기.. 갑산공원 묘원에 차를 몰고 갔다. 산골짜기로 접어들고, 한참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서 '왠 놈의 묘지가 이렇게 높은 곳에 있나?' 하는 생각이 들다가, '이런 길에 자전거 도로나 내면 참 좋겠다'는 뜬금없는 생각이.. 산기평 식구들 거의 다 모이고, 본부와 일부 지부장들 모여서 간단한 추모식. 2년 전 장례식에서 비 다 맞아 가면서 마음 놓고 울었던 기억이 다시 나는데, 고인의 약력을 소개...

  1. 하얀모카 2008/11/29 01:58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밤늦게 와서 추모시 다시 읽고 갑니다.
    또다시 눈물이 나네요... 우씨.

  2. [은하철도] 2008/11/30 01:35  address  modify / delete  reply

    술한잔 마시고 집에 기어들어와 잠이 안와서 산오리블로그에 와봤어요. 이 글 다시 읽어보고 싶어서.. 한 번도 뵌 적 없는 분인데 이상하게 눈물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