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설이 많이 당긴다.

어쩌면 내 어릴적 살았던, 보았던, 경험했던 것들과 비슷한 장면이 많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중국의 20년대나 이나라의 60년대나 별로 다르지 않았다니,

중국의 20년대나 한국의 20년대도 별로 다르지 않았겠지.

 

 

어쨌든 바진의 자전 소설이라는 이 소설은 한 지주가 4대가 함께 사는 가족을 꿈꾸며

그 꿈을 이루었지만, 20세기 초의 격랑기에 그 가족이 멸망해 간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우리나라의 20-30년대의 계몽소설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17살 손자를 사랑한 하인은 60이 넘은 노인네에 첩으로 팔아 넘기자 정원호수에 빠져서 죽는다)

때로는 토지에 나오는 여성들이 겪는 한을 풀어 쓰기도 하고,

(4대까지 내려오면서 어떤일을 결정하는데, 여자의 역할은 거의 없었다)

또는 대를 이어가는 장손자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말을 거역하지도 못하고

(장손이 사랑했던 여자도 결국 서로를 그리다 그리다 여자가 먼저 죽는다)

결국 막내 손자가 이 집안을 탈출해서 상해로 가는 배 위에서 끝을 맺는다.

 

두 권에 걸쳐서 4대를 쓰다 보니까 수십명이 나오는

그들의 이름이 잘 기억되지 않기도 하지만,

이나라  이야기처럼 너무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장남으로서 그집의 큰손자 같다는 느낌이 많이 생겼네..ㅎ

 

다만, 그들의 땅덩어리가 큰 것처럼

소설의 지주도, 그리고 그 가족이나 하인들도 엄청나게 많고,

스케일도 컸다는것....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는 예전의 거대한 문화유산이 별로 없는데

그건 이나라 봉건 지주나 왕이나 벼슬한 사람들이

평민들을 착취하는게 다른 나라 보다는 엄청 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던데...

 

그런지, 어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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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22:34 2007/05/13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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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그의 등을 핥는다. 배의 주름 사이로 혀를 밀어 넣는다. 땀으로 축축한 겨드랑이와 모래가 잔뜩 묻어 있는 발바닥도 혀로 핥는다. 어디 한군데도 빈틈이 없도록 오일을 바른다.

내가 떠받드는 육체는 추악하면 추악할수록 좋다. 그런 편이 나를 훨씬 비참한 기분에 젖게 할 수 있으니까. 난폭하게 다루어지는  그저 살덩어리가 되었을 때야 그 깊은 곳에서 순수한 쾌감이 스며나온다 - 본문중에서..

 

 

하튼 저런 본문을 책소개로 올려 두었는데, 그게 보고 싶지 않으면 이상하지 싶다.

당장 주문해서 금새 읽었다.

 



새디즘과 매저키즘에 관한 걸 읽고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리고 친구중에 한 친구는

자연스럽게 자기 여자친구와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들었을때

나도 그렇게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못해봤다.

 

나이 오십이 넘은 소설가와 열일곱살에 고등학교도 중퇴한 여학생과 벌이는

사랑은(역자는 그걸 사랑이라고 했다) 짜릿한 것임에 분명했다... 글로만 봐도...

 

일본 소설이나 영화가 좀 자극적이긴 하지만,

그게  현실이기도 하고 , 픽션도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런 사랑을 하지 못하는 것은

수십년동안 내 머릿속에 굳어버린 돼지기름을 가득 가지고 있거나

수십년동안 내 가슴속에 절어버린 생미나리를  가득 가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많은 사랑이 남아 있을라나...내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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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3 22:18 2007/05/13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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