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대구에서 고향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시골에서 국민학교 다닐때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니까 그 이후로 첨 본 친구들은

30년이 넘은 후에 만난 것이다.

아무리 기억력이 뛰어난다 한들, 30년도 더 지난 얼굴들을 기억할까마는

악수하고, 서로 이름 알려주고 나면 30년 전의 친구들로 금새 되돌아 갔다.

참 신기한 노릇이지...

그리고,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 즈음의 얼굴이 조금 남아 있는 듯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혀 이름조차 생소한 친구들도 물론 있고..

 



친구들이 많으니까 대구에서 가끔씩 모이는데,

이번에는 서울부근에 살고 있는 친구들 5명이 합세했고,

모이거나 들럿다 간 친구들까지 합치면 40여명이 되었다.

그당시 한학년에 세 반이고, 한반에 60명이 채 안되었으니까

170여명 가운데 40여명의 얼굴을 본 셈이다.

 

어쨌거나,

음식점에서 밥먹고 술 몇잔씩 하고,

그리고 회비도 거두고,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회장과 총무도 뽑고,

앞으로 애경사가 있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도 논의하고,

여기까지는 여느 모임과 다를 바 없는

동창회나 친구들 모임 정도였는데....

 

10시즈음에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겨서부터는

거의 '아줌마'들의 세상이 되었다.

그렇게도 많은 '뽕짝'이 무려 4시간동안 불리워졌고,

그 뽕짝에 맞춰서 자리에 앉는 적이 거의 없이

쉼 없이 뛰고, 흔들고 춤추기의 계속이었다...

 

노래방에서 그렇게 계속되는 '뽕짝' 에 우선 적응이 잘 안되는데다,

또 한순간도 앉아 있지 못하게 끌고 다니면서 '돌리는' 데

정말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산오리는 노래 부르라고 해서 딱 한곡을 불렀고,

그 난리통속에 목이 잠기고 말았다....

노래방에서 무려 4시간..

그 분위기를 이끌고 간 친구들은 당연히(?) 아줌마들이었다.

 

새벽 2시가 되어 노래방을 나왔으니 끝내려나 했다.

어느 아줌마가 밤새우고 놀아야 하는데, 너무 못놀았으니까

나이트클럽에 가자 는 제안을 했고,

슬금슬금 뒤꽁무니 빼는 친구들을 몰아서 나이트로 갔다.

그리고 또 두어시간을 그 시끄러운 음악과 현란한 조명에 맞춰

사생결단을 낼 것처럼 뛰고, 흔들고, 춤췄다.

춤이라고 제대로 추는 사람이 어디 있었으랴마는...

 

그리고는 겨우 잠자러 왔는데, 그것도 아쉬워 더놀아야 한다며

끝까지 몇 몇은 남았다.

 

이제 애들 다 키워서 군대까지 갔다 온 아들을 둔 친구도 있고,

대부분은 대학생 자식들을 두고 있으니까.

이즈음까지 살아온 인생을 조각조각 들어봐도

그 숱한 고생들을 강물에 풀어 헤쳐도 모자랄 것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직도 남편의 심한 간섭에 저녁에 친구 만나러 놀러 나가는 것조차도

감시(?)받거나 거짓말 해가면서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아줌마, 아저씨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노는 것'이 인생에서 너무 부족했음이 틀림 없다. 

 

그들 아줌마 아저씨들을 신나게 놀게 좀 해 줘라!(특히 아줌마들은)

 

문득,

관광버스에서 음주가무는 벌금을 물린다는 소식을 들은 적도 있는데,

관광버스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라고 장려해야 할 것 아닌가 싶다.

그렇게 신나게 놀고 싶을 때 놀다가 사고라도 나서

혹시 죽는다 하더라도 그건 행복한 것이 아닐까 하는...

 

'노는 것'은 누구도 뺏을 수 없는 권리일테니까

부부라고 해서 그걸 간섭하지 말도록 하는 법을 만들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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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12 17:30 2005/12/12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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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사촌 여동생이 10일 대구에서 결혼을 한다.

산오리는 그날 저녁 시골친구들 모임이 있다고 해서

겸사겸사해서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아버지에게는 이제 하나 남은 '누님'이고 그 딸이 결혼한다는데,

한번 가실거 같아서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물어봤다. 월요일인가, 화요일인가...

내려가시겠다고 해서 10일 내려가는 KTX 는 아버지와 산오리 부자의 표 두장.

 



아버지 거 한장... 이렇게 예매를 후다닥 하고 카드 결재도 하고,

프린터로 표까지 인쇄했다.

(어떻게 변할지 몰라, 거의 막바지에 가서 표를 사야 하는데... 하면서)

 

그 와중에 대구에 갈 산오리의 친구가 차를 가져 가야 한다고 전화를 했다.

그러니 아침에 일찍 가면서 같이 가자는 거였다.

결혼식 시간에 맞춰가면 되는 거니까 별 문제는 없을 거 같은데,

아버지가 아들 친구의 차에 같이 가는게 좀 거북스럽지 않을까 싶었다.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그랬더니, 뭘 타고 가면 어떠냐고, 상관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그날 밤 느지막해 아버지가 전화를 하셨다

"몸도 않좋아서 안갈란다, 너 혼자 같다 와라!"

"무슨 일 있었어요?"

"일은 무슨일... "

"알았어요!"

(어이그,,, 성질머리 하고선...)

전화를 끊자마자 산오리가 혼자 한 말이다.

 

(이 양반이 분명 하루만 지나면, '결혼식에 갈거니까 표 취소시키지 마라'고 하실 게

 분명한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산오리는 아침에 출근하자 마자 예약된 표 모조리 취소시켜버렸다.

 

그리고 낮에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왜 아버지 안가신다고 하느냐?고...

전날 저녁에 반찬투정 하다가 화를 벌컥 내고서는 한잠 주무시고,

그러고는 산오리한테 전화해서는 안간다고 하셨다는 거다.

열차타고 가자 했다가, 친구 차로 바꾼거 때문은 아니라니까 다행이긴 한데,

뭔가 신경질  난다고 엄마한테 한바탕 하고서는 애꿎은 결혼식 가는걸

취소하라고 한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자 아버지가 다시 전화를 하셨다.

"그 표 다 취소시켰냐?"

"예!"(당당하게 대답했다)

"다시 좀 사라, 같이 가자"

"예............"(대답하기 싫은 걸 억지로 했다)

 

그리고는 어제 대전 출장가는 길에 서울역에 나가는 길에

돌아오는 아버지의 표를 다시 샀다.

 

젊었을 때부터 불같은 성격에 집 밖에서 화풀이는 못하고, 집에 와서는

엄마한테, 자식들한테 화풀이 해대던 성격이었는데,

지난 수년간 수술 두차례 하시고, 성격도 많이 누그러 졌다는 평가가

자식들간에 지배적이었는데,

여전하시다....

 

그 성질에 맞서

하루만에 전화올 걸 예상하면서도

똑같이 예매표 취소시켜 버리는

산오리도 그 아버지의 '못된 성질머리'를

닮았다.....  

그래서, 짜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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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09 13:24 2005/12/09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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