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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5/08/13

강원래 “분노의 시기, 폭력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던 점 깊이 반성”

월래형, 사고난 후 사람됐다. 좌우간 황우석 박사와 좋은 결실 맺기를 바란다.

아래 초딩3년... 역시 초딩이다. 천사를 욕하다니...

 

강원래 “분노의 시기, 폭력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던 점 깊이 반성”


<뉴스엔=길혜성>



클론강원래가 자신의 미니 홈페이지에 진심 어린 장문의 '사과의 글'을 남겼다.



강원래는 13일 자신의 싸이월드 홈페이지를 통해 "내가 예전에 (미니 홈페이지에)남긴 글로 인해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께는 정말 고개숙여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싶고 그 답글로 인해 제게하는 욕설과 질책은 깊이 반성하며 받겠습니다"고 밝혔다. 강원래는 또 "그동안 내가 폭력적으로 욕설을 퍼부었던 점 깊이 반성하면서 더욱 더 긍정적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강원래가 되겠습니다"고 덧붙였다.



강원래는 독백적인 성격의 글을 통해 자신이 이러한 입장을 밝히게 된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강원래는 "12일 저녁 '뮤직뱅크'를 마치고 계속 밀려있는 일을 하려고 하니 몸이 너무 많이 아파서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 들려서 항생제 주사맞고 해열제을 맞으며 누워서 전화기를 켜니 내 핸드폰으로 갑자기 문자가 쏟아졌다"고 전했다. 강원래는 이어 "예전에 홈피에 남겼던 욕을 누가 캡처해서 각 사이트마다 뿌려서 내 홈피에 욕글이 난무하고 있다고...홈피에 욕을 왜 그렇게 많이 남겨서 이런 고생하냐고..."라며 자신이 사과의 글을 남기게 된 이유에 대해 밝혔다.



강원래는 또 "근데 떠돌아 다니는 글을 보니 전부 다 내가 예전에 남겼던 글들이 맞았다. 몇몇 말도 안되는 말도 있긴 하지만...강원래라는 이름으로 답글이 남겨진 것은 모두 내가 남긴 글이었다"고 전했다.



강원래는 이 글을 통해 "사실 난 욕을 잘한다. 솔직히 내 친한 친구들과의 대화는 60%가 욕이다. 난 내 홈피에서 만큼은 욕을 하고 싶었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하고 싶었다. 장애인으로 살면서 많은 친구들이 내 곁을 떠나갔고 내가 보내기도 했다. 난 교통사고로 휠체어를 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적이 너무나 많다"고 솔직하게 심경을 밝혔다. 강원래는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내가 많은 네티즌에게 싸이월드 홈피에서 내게 글을 남긴사람에게 욕을 퍼부을수 밖에 없었던 날 이해해달라는 뜻은 전혀 아니다. 하지만 여러분들도 나처럼 폭력적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고 전제했다.



강원래는 이 글에서 자신에게 5년 전 교통사고가 일어났을 때의 심경도 허심탄회하게 고백했다. 강원래는 "5년 전 오토바이 사고가 났다. 사고 이후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사고 이후 1달이 지나서였다. 그때는 내가 가슴 이하 하반신 마비로 평생을 살아야한다고 얘기를 들었을 때 설마 내가 왜 못걸을까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장애인으로 살아가야할 나의 현실을 인정하게 됐고 그때부터 난 폭력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놓았다.



강원래는 이어 "그때부터 난 인터넷을 배우게 됐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옮겨다니면서 욕설과 비난을 퍼붓게 되었다"고 전했다. 강원래는 또 "물론 간혹 가다가 나에게 들이대는 카메라 앞에서는 웃으며 인터뷰를 했던 걸로 기억된다. 힘내겠다고 비록 현실은 휠체어를 타고 살지만 마음만은 신나게 살겠다고...언젠가는 클론의 모습으로 돌아가겠다고...그렇게 웃으며 인터뷰를 끝내고 집에 돌아와서 잘려고 침대에 누우면 또 다시 귓가로 흐르는 눈물을 감출수 없었다. 정말로 장애인으로 새롭게 산다는게 힘들었다. 견딜수 없는 아픔이고 내가 이길 수 없는 현실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강원래는 이 글을 통해 "나에게 (인터넷을 통해) 별의 별 욕을 퍼붓던 사람을 한명 잡은 적이 있다. 성적 묘사와 욕을 구사하는게 20~30대의 여성인 것같았고 송이가 너무 맘에 상처를 받았고 그 사람이 올린 글 때문에 우리는 며칠동안 잠을 자지 못했었다. 결국 사이버수사대에 신고를 해서 잡긴 잡았는데 초등학생 3학년 여학생이었다. 그런 일이 몇번이나 있은 후 난 알게 모르게 굉장히 폭력적이었다"고 밝혔다.



강원래는 "중도 장애인들에게 코스가 있다고 한다. '부정 - 분노 - 좌절 - 수용'. '분노와 좌절' 속에서 지난 5년을 보냈던 것같다. 아니 지금도 보내고 있는 것같다. 내 홈피에 왔던 분들은 많은 쪽지를 보냈고 지금도 많이들 보낸다. 욕으로 남긴 답글을 지우라고... 하지만 난 지우지 않았다. 욕으로 답글을 남겼던 지난 나의 못된 모습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짐으로써 지금 이렇게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 당시 힘들었던 나의 모습...폭력적인 나의 모습... 좌절하던 나의 모습이 욕으로 쓴 답글 한 글자,한 글자에 욕설 한마디,한마디에 모두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고 전했다.



강원래는 이 글 마지막 부분에서 미니 홈페이지에 욕설로 답글을 단 데 대해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고 사과했다. 강원래는 또 "참 깜빡 잊은게 있어서 여러분께 한가지 부탁 드립니다. 제 아내 김송에겐 심한 말을 안하셨으면 합니다. 폭력적이고 난폭하면서도 부족한 저를 욕하는건 괜찮으나 제 아내에게는...부탁드립니다. 다시 한번 더 죄송합니다. 깊이 반성하겠습니다"는 말로써 이 글을 맺었다. comet@new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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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97년 대선 직전 박철언에 러브콜 보냈다”

 

 

이회창, 97년 대선 직전 박철언에 러브콜 보냈다”
박 전 의원 회고록 통해 주장, “81년 전두환 대통령에 이회창 대법원 판사로 임명 건의”
입력 :2005-08-12 22:13   이응탁 (et-lee@dailyseop.com)기자
박철언 전 의원은 12일 발간된 회고록에서 97년도 대통령선거 직전 당시 이회창 후보 측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고 밝혔다.

박 전 의원은 “YS가 신한국당을 탈당한 후 신한국당은 YS두들기기를 계속했다”며 “특히 대구·경북 지방에서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선동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신한국당은 자민련 내의 TK의원들도 흔들기 시작했고 그해 11월 이의익 의원이 자민련을 탈당해 신한국당에 입당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의원은 11월 15일 세 후보간의 TV3사 합동 토론회가 끝난 직후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를 미세하게 앞서기 시작했으며 특히 대구·경북 지방에서는 이회창이 43.9%를 얻어 이인제의 22.5%에 두 배 가량 앞서며 반DJ표가 결집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이 무렵 신한국당의 이회창 후보와 조순 총재 측으로부터는 각기 다른 통로를 통해 박철언 당시 자민련 부총재에게 ‘러브콜’이 들어갔다.

이회창 후보 측에서는 평소 박 부총재와 가까운 서울대 법대 동기인 명호근 쌍룡양회 회장과 김문찬 고문 등을 통해 신한국당 입당 제의를 했고, 조순 총재 측에서도 박 전 의원의 고등학교 후배인 박기봉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을 통해 같은 제의가 들어갔다.

박 전 의원은 이들이 “시대적 요구가 3김 정치의 청산이고 세대교체다. 이미 YS도 신한국당을 탈당했고 당명도 조만간 바꿀 것이다. 또 대구·경북의 큰 흐름도 이미 이회창 쪽으로 돌아섰다”며 마음을 바꿀 것을 강력히 건의했다고 주장했다.

또 조순 총재의 차남은 “박 부총재님께서 입당하면 ‘깨끗한 정치 이회창, 튼튼한 경제 조순, 통일의 기수 박철언’ 이렇게 세 분이 함께 나서서 시대가 바라는 세대교체와 3김 정치를 청산하고 새로운 정치 문화도 정착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이야기했다고 박 전 의원은 밝혔다.

박 전 의원은 당시 “TK지역이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전국적으로도 DJ와 이회창이 박빙의 호각지세로 우열을 가르기 힘들게 됐다”며 “JP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나 자신은 마음을 비웠다. 후진을 양성 하겠다’는 이야기를 몇 차례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박 전 의원은 또 민심의 향배를 알아보기 위해 대구에 내려갔을 때는 이미 “DJ대통령은 전라도 정권이다”, “YS에 대한 한을 풀어줄 사람은 이회창 뿐 이다”, “이인제 찍은면 DJ가 대통령된다”는 말이 나돌았다고 전했다.

박 전 의원은 “당초 DJT(김대중·김종필·대구·경북)을 통해 얻으려고 했던 것은 지역감정의 극복과 영·호남의 갈등 해소를 통한 ‘화해의 정치, 통합의 정치, 미래지향의 정치’였는데 결정적 순간에 있었던 몇 차례의 악수와 시간 지연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손써볼 도리가 없을 지경으로 가고 있었다”며 “야권 후보 단일화를 통한 정권 교체의 그랜드 디자이너라 할 수 있는 나의 충고를 외면한 후과는 혹독했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 전 의원은 회고록에서 81년 4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로 대법원 판사 후보를 면담하면서 당시 45세의 이회창을 만난 후 전 대통령에게 법원의 분위기 쇄신을 위해서 이회창과 같은 젊고 소신 있는 사람이 새로 대법원 판사로 들어와야 한다고 강력히 건의했다고 밝혔다.

회고록에 따르면, 손진곤 당시 민정비서관은 이회창 판사가 자주 소수 의견을 내고 개인 이미지 관리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는 평도 있지만, 그래도 법원 내에 실력이 있고 자세가 발라 소장 법관들의 큰 신망을 얻고 있다고 평가했다.

ⓒ 데일리서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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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대한 의견
회원의견(0) 비회원의견(1)  
 
악의축 전두환
2005-08-13 오전 12:31:00
(222.120.115.*)
  바로 이것이 광주를 피로 짓밟은 5공과 45세 역대 최연소 대법관 이회창이 타협하여 탄생하는 과정이다. 은폐된 성고문 정권 5공 부역자 이회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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