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자 내담자, 그 미묘한 긴장에 관하여

2008/06/18 16:51

 

 

 

 

 

1. 나는 3년전부터 학교 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이는 시험공부에 돌입하면서, 또 지인들이 학교를 졸업하면서 외롭게 되었기 때문에 나의얘기를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사실 심각한 신변의 문제가 없었음에도 그런

 

일상적인 문제가 나를 상담센터와 가깝게 만들었다. 그래서

 

상담선생님과 나는 어느새 친한 친구보다 더 자연스럽게 일상을 터놓는사이가 된 것이다.

 

(물론 나--> 상담선생님  이렇게 일방적으로)

 

 

 

2. 나의 상담선생님은 40대 초반이고 여성분이시다.

 

    선생님에 관해서라면.... 음  일단 외면적으로 유쾌하고 강단있으신 분이다. 그리고

 

    사려깊음과 세상을 보는 따뜻한 시선이 물론 있으신것은 물론 상담심리를 전공

 

   한 사람이 대부분 가진 주요한 특징일게다.  세상풍파를 어느정도 겪으시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거칠고 닳고 닳은 느낌이 아니라 노련미와 성숙함을 갖춘 인생의

 

   선배처럼 느껴지기에 신뢰감을 가질수 있는, 전형적인 인생의 선배의 여성의 유형

 

  이라고 해야할까.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선생님의 외면적 성격의 특성 외에, 그 사람의 내면적

 

     가치관 내지는 숨겨진 성향에 대해서 알게 되면서, 내담자인 내가 선생님을 대하는

 

    심리는 오히려 좀더 복잡해졌다.

 

 

 3.  내가 사람을 대할때, 그 사람의 정치적인 견해가 나의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를 많이 좌우

 

     하는 편이다.  (이건 어떤이는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기도 하고, 어떤이는 편파적이라고 비난

 

    하는 것이기도 하다.)

 

     (자세히 언급할 필요가 있겠냐 싶지만,) 여기서 정치적인 견해란, 단순히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로 소급되는 문제는 물론 아니다.  굳이  얘기하자면

 

    인간을 어떤 자세로 대하느냐,  현재의 사회체제나 주변에 대해서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느냐,

 

      관심사는 어떤것이냐,  자신의 삶에 있어서 어떤 가치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그 가치를 향해 가기 위해서 현재 어떤 길을 택하여 가고 있느냐 이런 문제들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에 있어서 내가 공감할 수 없는 가치를 갖고 있다면,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 는 급하락 한다. (물론, 모든 부분에 있어서 다 민감한것은 아니고, 아마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몇가지 부분 - 소수자적 감성이나 여성주의적 감성, 주류적

 

  인가치에 대해서 의심하는 자세, 쉽게타협하느냐 혹은 고집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밀고나가

 

  느냐의 여부, 혹은 삶에서 '소외' 를 얼마나 경험해왔느냐 이런것들이 아닐까 싶다.  아마

 

   이렇게 추상적인 언어들로 설명되지 않는다면,  그저 나의 느낌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이런 나의 호감도가 너무나 빤한 것들에 의하여 뒤바뀌는 상황은 나조차도 스스로

 

  의 태도에 대해서 의심하게 만든다.  이건 주관의 문제이냐, 아니면 내가 편협한 탓이냐?

 

   내가 좀더 마음을 넓게 가져야 할 일이냐, 아니면 누구나 그렇기에 자연스러운 것이냐 하는

 

   갈등일게다.

 

 

.그러나 몇해전부터 나는 이렇게 결정했다.

 

 "나는 편협한 사람이고, 그 사실을 인정하고, 앞으로도 편협하게 살 것이다. "

  라고.

  상황에 따라서 다르기는 하겠지만, 내가 편협할정도로 기울게 된 그 가치들과, 그 가치와

  상충하는 가치들은 세상에서 같은 비중으로 존중받고 있지 못하고,  존중받고 있지 못한

  자의 박탈감은 때로는 정당한 것이다.  그 박탈감이 반드시 상대에 대한 호의로 드러나야

  한다고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가진자들이 만들어낸 도덕일게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그 편협함을 스스로 조절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나의 편안함을 위해서

 

  이지, 윤리적의무감을 가지고 나의 감정을 억제하려고 하는 것은 언제부터인가 하지 않게

 

  되었다.

 

4.  상담선생님을 알아온 3년의 대부분의 시간동안  유쾌하고 강단있으면서 진지한

 

    그녀의 성품이 더 눈에 익었고, 사실 그녀가 어떤 정치적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는 잘 알지 못했다. 물론 386세대이고,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고, 여성은 주체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식의 매우 광범위한 범위에서는 알았지만 그 이상의 것들은 알고 있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모르는 것이 더 좋았다.  내담자가 상담자에 대해서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면 오히려 자신의 고민을 자연스럽게 털어놓지 못하고 상담자가 허용하고 이해할

  수 있을만한 틀 안에서 고민의 스토리를 주조하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나같이 편협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까 말했다 시피 상대에 대한 호의가 뒤바뀌고 나아가 상담자에

  대한 신뢰를 잃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상담선생님께서 얼마전에 학내 경찰 진입문제와 학내 교육투쟁과 학생회에 관한 견해를

 

  어느정도 밝히셨고, 그와 더불어 촛불집회등 제반 정세에 대해서 나와 완전히 배치되는

 

  견해를 가지고 계신 것을 알게 되었을때, 나는 어느정도 선생님에 대한 인간적인 친밀감을

 

  잃고 거리를 두게 된 것 같다. 

 

 

 그건 선생님이 나와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있어서 완전히

 

  다르게 접근하신다는 것도 의미하기 때문이다.  글쎄, 

 

  " 우리나라가 유럽처럼 정해진

 

   이들만 대학에 가는 체제로 바뀔수밖에 없기 때문에, 높은 등록금이 된다면 결국 대학이란

 

   선택의 문제가 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등록금 문제에 대해서는 어쩔수가 없다"

 

  라는 식의 말씀에 대해서는 너무나 교육자로서 무책임한 발언이라 느껴졌다.  또는 문제해결

 

  을 위하여 자발적인 움직임을 꾀하는 이들의 노력보다는 구조에 의한 결정을 중시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인간들의 몸에 밴 권위적 자세가 아닌가?  나는 아무래도 실망이었다. 선생님이

 

  운동판과 평생 관계없이 살아온 사람인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민중의 움직임이나 입

 

  장에 대해서 체념적인 자세인것이 내게 쉽게 용납되는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을 일이다. 쓰읍-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총학생 회장이 외부 촛불집회에서 학교를 비판하는 발언을 했다고 문제삼으신 것은

 

결국학내 문제 해결보다 학교 명예를 위한 단합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아닌가 싶어서 씁쓸했다.  어디서 많이 보던 식의 얘기 아닌가.  이런 얘기를 내가 좋게 생각

 

 하는, 학교 선배이자 신뢰하는 지인에게서 들어야 하나.

 

 

 5. 선생님의 그러한 세계관을 알게 된 이후로, 나 역시 선생님의 가치관에 나의 사고와

 

   일상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게 된 탓인지, 상담에 있어서 정작 털어놓아야 할 얘기가

 

   무엇인지 방향을 찾지 못하고 겉도는 얘기만 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비록 선생님이 내담자인 나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 진심으로 걱정해주시고 해결

  책을 내놓으신다고 해도, 그것에 대해서 약간은 신뢰를 잃은 것만은 분명하다.

  '어차피 나와 당신은 다른사람이고, 내 삶의 문제에 본질적으로 접근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코멘트를 당신은 해줄 수 없소'   이런식의 태도를 갖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본질적인 얘기

    를 털어놓을 수 없게 되다보니, 피상적인 얘기를 하게 되고 또한 그에 대한 선생님의 피드

    백도 만족스럽지 못하다보니, 오히려 불필요하게 자기노출을 했다 싶어서 약간 자존심

    상하는 측면도 있다. ' 굳이 안들어도 될 충고를 들었구만. 얘기하지 않는게 차라리 나았

   을걸' 하면서 말이다.

 

  

   그렇다고  선생님에게 이 문제를 본격적

 

   으로 털어놓아서 해결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더 골치만 아플뿐더러, 어차피 선생님은

 

  곧 다른 학교로 직장을 옮기실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님과의 인연이 대학안에서 맺은 인연중에 소중한 인연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선생님과 나와의 인간관계에서 가질 수 밖에 없는 한계다

 

 싶은 것이다.

 

 

   거리감이라고 얘기하기도 뭐하고, 불편함이라고하기도 뭐한 감정아래, 씁쓸하지만 그래도

 

   일말의 뜨뜻한 유대감과 애정을 잃지는 않은 반면 자기노출을 꺼리는 formal한 형태로

 

 선생님과 나의 관계는 변형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관계의 변형에 대해서 크게 서운하지는 않은 채로, 오히려 자연스럽게 

 

 선생님과의 상담을 마무리하면서 나 자신의 정체감에 대해서 더 독립적인 단계로 옮겨

 

  갈것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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