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돔과 고모라에서의 깨달음

2006/11/22 02:43

내가 가끔 들어가보는 게시판이 있다.

20대 여성들이 주로 모여있는 게시판으로, 익명으로 무슨얘기든 하는 곳이다.

내가 이곳에 들어가보는 이유는 뭐랄까. 머릿속이 답답하고 뭔가 refresh가

필요할때이다.

뭔가 말초적인 가십성의 얘기들을 읽으면서,  긴장을 풀고 멍청해지면서 신경줄을

느슨하게 하고 싶을때이다.

 

 

그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들의 정신세계에 별로 공감할

수 없어서  리플도 달지 않고, 어이없는 글의 내용으로 서로 치고박고 싸우고 있어도

그냥 읽어보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러면서도 이따금 그 게시판에 들어가서

조회수 순서대로 글을 클릭해서 글을 읽는다.

 

 

 

오늘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 중의 하나는 모 전 장관의 딸에 관한 것이었다.

내용인 즉슨 그 장관딸이 사법연수원 생과 결혼을 한다는 얘기인데

사실 그게 주가 아니라

그 장관 딸이 s대 법대출신에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서울 중앙지법

판사고 미모도 출중하더라이런 얘기가 오가면서 그 가족 사진이 다 올라오고 그 밑에는

리플이 스무개씩 달렸다.

 

 

 

 

' 저렇게 집안도 좋고 얼굴도 예쁘고 수재에... 세상은 불공평 ㅠㅠ'

 

'세상은 불공평 22222'

 

'진짜 부러워...'

 

' 저 가족은 살맛 나겠네....'

 

대충 이런 내용으로.....

 

 

 

그 글을 클릭해서 보고 있으면서 음 큰딸 미인이네. 연수원3등이면 정말 머리가 좋긴 하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웠지만, 왠지 그 밑에 리플들을 보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짜증이 버럭 났다.

 

 

 

 

 

뭐가 그렇게 부럽다는건지

세상에 사람이 몇천만이 있으면 그 중에서 머리가 좋은 사람도 있고

일등이 있으면 꼴찌도 있고

시대의 미의 기준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 있으면 아닌 사람도 있고

그리고 그 수많은 집합 중에서 머리가 좋은 사람과 예쁜 사람의 교집합이란 당연히 있을 수

있는 거고.

또 그 교집합과 집안이 좋은 사람과의 교집합이란것도 있을 수 있는 거고.

세상에 별일이 다 있고 별 사람이 다 있으니까 당연히 교집합의 교집합도 있는건데

왜 유독 그 확률에 자신이 당첨되지 못했다고

해서 자기를 비하하고 부럽다고 하는지

그 부럽다고 리플을 단 사람들은 정말 그럼 그 장관딸이 부러울만큼 힘들고

비참한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럴까?

그런 사람도 있지만, 사실 그 게시판에 모이는 여성들의 특성상 안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을것은 명약관화하다.

자신을 그 정도로 타인과의 우열을 통해서 확인해야 할만큼 스스로  존재가치도 없게 여기면서,

 유독 그런 소위 '혜택받은' 사람들만 바라보면서 서로 한 계단이라도 더 올라가려고 밀치고

아둥바둥하면서 살아가는 삶으로 밀어넣고 있는지

아니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의식이 그렇게 되어가고 있는 거겠지만

그런 걸 그냥 혼자서 느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겉으로 표출하지 않으면 못견디는 사람들

 너네 같은 애들이 도처에 깔려 있어서 자주 마주치는 내 삶은 얼마나 텁텁하냐!

 

 

 

 

 사실 그 게시판의 이들이 어떤 삶을 살든지 내가 알 바는 아니다.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그런 세계에서 내가 별로 좋은 대접을 못받을

것 같아서 이기도 하고

그런 리플을 다는 사람들을 살면서 별로 피하지 못하고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우울해서이기도 하고.

어쩌면 스스로를 '진보' 라고 일컫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나게 될

사람들조차저런 의식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할것을 생각하니 더 암담해서

이기도 하고,

(물론 '어떤면' 에서 자신을 진보라고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나 역시도 그런 글들을 읽으면서 그들과 나를 차별화 하는 듯 하고 있지만 사실

딱히 다른 양태의 삶을 지금 구상할 여건은 별로 되지 않고

 

 

그래서 인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경지에는 온 것같다.

어디까지나 그런 가치관을 갖고 살아가는 그들은 그들이고

나도 그들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나도 나의 삶이 있고

살면서 점점 더 많이 비슷해질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편으로는 더 많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달라짐을 위한 달라짐은 별로 필요가 없다.

그래도 어떻게 살면 내가 행복한지를 명확히 알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삶은 거북이같이 변화없고 지루함의 연속인것 같기도 하다.

무언가를 해도 별로 역할을 하는 것 같지도 않고 티도 나지 않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30대를 살아가게 될 것 같다.

간혹 보람도 느끼고 반가운 것들도 생기겠지만

내 한몸 건사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세상에는 즐겁게 사는 방법도 아직은 있을거고

세상이 각박해 질수록 그 안에서 즐겁게 살기를 치열하게 구상하는

이들도 많을것이다.

 

나라는 사람의 존재의 의미를 하나 나타내기도 정말 쉽지 않지만

그래도 내가 필요한 곳은 분명히 있을것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도.

내가 곰발바닥처럼 둥글둥글 해지고 별다른 특징없이 길가다가 부딧

히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된다고 해도

 

조금만 노력하면 내 삶에서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지는 것들이 고갈되지

않게 할 수는 있겠다는

굳이 아둥바둥 휩쓸려서 살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 하지 않아도

뭔가 해보고 싶은 것들은 크게나 작게나 내 삶에서 고갈되지는 않을거라는

 

 

턱없는 낙관주의는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타인과 연대하여 살아가는 삶도 내가 가져갈 수 있는만큼

은 가져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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