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말만 하는 것과 듣기만 하는 것

2007/01/22 12:11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 기준이 있다.

 

자기말만 하는 사람, 그리고 남에게 물어볼 줄 아는 사람 이 두가지이다.

 

 

내가봤을때 세상사람들은 대체로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

 

그들이 관심가지는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매우 한정되어있는데- 자기가족,  자기 애인, 그리고 직업상

자기가 꼭 밀접하게 되어야만 하는 또는 얻어낼 것이 있는 소수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다. (여기서 '권력' 이라는 의미는 꼭 통상적으로 쓰이는 제도권 안에서의 정치적 파워보다는 넓은 의미이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질문을 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알고 싶다는 것이고, 알고 싶다는 것은 관심이 있다는 것인데 관심이 없게 되면 그 사람의 삶의 뼈대인 가치관과  관심사및 살아온 인생에 대하여 물어보지 않는 것이고 또한 알고자 하는 생각도 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렇게 되면 자신에 관하여 묻는 것에 대하여 대답은 열심히 하지만 먼저 '물어보거나'  '당신생각은 어떻습니까?' 라고 결코 묻지는 않는다.

 

 

내가 최근 몇년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쪽에서 그 사람에 대하여 질문을 했을때, 저쪽에서도 함께 나를 알기 위하여 질문을 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있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운동-스포츠말고-에 관심을 가진사람들 부류였다. )

 

 

나는 한두번 볼 사이가 아니라면 어색해지지 않기 위해서 또는 조금이라도 가까워져야만 편해질것 같아서 small talk를 좀 시도를 먼저 하는 편이다.  그 사람의 하는 일, 학교, 관심분야에 대해서 적당히 물어보고 아는 체를 한다.  이건 내가 꼭 그 사람에게 관심이 대단히 있어서라기보다는 (물론 관심이 있는 경우도 있다.) 그게 예의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함께 몇번 이상씩 정기적으로 보는 사이라면, 필요를 위한 기능적 활동만 한 후에 "해산~!' 하는 것이 별로 인간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허나 멍석만 깔아지고, 상대방이 편하게 느껴진다 싶으면 주구장창 자기 얘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슬프게도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사회생활을 오래했을수록, 그리고 남자일수록 이런 경우가 많다.  사람이 남의 눈치를 살필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자신이 하는 얘기로 인하여 상대방이 지루한지 아니면 즐기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애초에 타인의 눈치를 별로 살필 줄 모르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함께 술자리를 가져도 내 얘기를 할 틈도 주지 않고, 또 내 입으로 굳이 끼어들어서 말하지 않으면 나에 대하여 물어보지도 않은 채로 자신의 얘기만 하다가 헤어지게 된다. 물론, 얘기하다가 반응이 좀 뜨뜻 미지근해서 민망해진다 싶으면 "너는... 뭐에 관심있니?" 라고 묻는 경우도 있다.

 

허나 이런식으로 인간관계를 맺다보니 몇번 이상씩 만나서 연락을 하고 지내도 나에 대해서 여전히 잘 모르면서 친구나 선배라는 이름으로 전화번호부에 올라있는 사람들이 많은것 같다.  예를 들자면 올해로 11년째 친구관계를 맺고 있는  내 친구A는 선량한 성품이고 약간 소심하며 위에 얘기한 부류들과는 달리 자기말만 하는 타입이 아니라 들을 줄도 아는 타입이다.  그러나 이 친구가 들을 줄 안다는 것은, 사실 상대방에게 큰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다소 성격상 차분하고 수동적이기 때문에 그런 것에 가깝다.

그렇기 때문에 편하게 대화를 하는 사이에 속함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이친구와 얘기를 하다보면 여전히 나의 관심사와 먼 얘기를 하고 있다고 느낄때가 많다.  직장얘기, 가족얘기,  앞으로 살아갈 인생얘기 이런것들을 이 친구와 주로 하게 되는데 A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와 결혼하기를 바라는 A 어머니의 얘기가 나오면서 A가 "나도 엄마가 말하는 것처럼 의사나 이런 사람들과 결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  하면서 어머니의 태도가 너무 노골적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자신도 어머니와 비슷한 욕구를 갖고 있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그러나 사실 내가 의뭉스러운건지, 아님 그런게 버릇이 된건지 딱히 그런얘기(?) 들에 이의를 표하거나 "너는, 네가 그런 전문직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면서 왜 굳이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스스로 경제적 자립을 충분히 할 수 있으면서도 결혼을 통해서 여성이 더욱 높은 경제적 안정감을 찾으려고 하는게 당연시 되는게 난 가끔 도둑놈 심보같은데 넌 어떻게 생각하니?-" 라는 식으로 결코 (!) 얘기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그런 얘기들을 포함하여 선봐서 결혼하는 내용을 화제로 삼아서 얘기하는 것을 내가 썩 좋아하지 않음을 살짝 느끼고는 있을지 몰라도 정작 잘은 모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식으로 내 앞에서 마치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실 그런 악의는 전혀 없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자신은 한때 노조에도 가입하고 그런 문제에 관심을 가졌지만 "그런건 이제 소용없고" ( --->이 말이 중요하다) 지금은 철저히 자본주의에 영합하여 살아가기로 했다고 몇번씩 말하는, 꽤 여러번 만남을 가진 선배가 있기도 했다. 그가 내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한다는 것을 안다면 뻔뻔한 성격을 가진사람은 아니니만큼 그런식으로 화제를 몰고가지는 않았을텐데 말이다.

 

글쎄, 그러나 왠만큼 멍석깔아져서 마음 편하지 않은 이상 나처럼 자기 표현을 잘 하지 않는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다.  앞에 말한 두명의 내 지인이 나를 그렇게 알고 있는 이유는 꼭 그들이 대단히 눈치 없는 사람인 탓이 아니다.  사실  나를 한껏 밝히게 되면  인간관계가 거북스러워 질 만한 생각의 노선을 두사람이 갖고 있기 때문에 나를 밝히지 않은게 사실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들에게 좀더 나를 밝히는 것도 내가 쭉쭉 자신감과 요령을 가졌다면 못했을 것도 아니다.  물론 그 후에 인간관계가 거북스러워 지게 된다면 그것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말이다.

 

 

 고로 많은 사람들의 ' 청취자' 역할을 하면서 인간 군상들에 관한 다양한 얘기를 듣는 것이 결코 흥미롭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나처럼 '듣는 역할만 주로 하는 것' 이 ' 자기말만 하는 것' 만큼이나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라는 생각이 든다. '자기말만 하는 사람' 과는 딱히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한 인간관계를 계속하지 않는 것이 좋고 또 굳이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 상황이 있다면,  情을 나누는 사이가 되기보다는 오고가는 업무만 하게 되는 것이 나의 심리적으로 좋다는 것이다.  관행적인 인간관계의 틀 속에 나를 집어넣는 이들에게는  결코 그 이상의 성의로 화답할 생각이 없다.  어떤 이름으로 맺어진 관계이던지, 그 관계속에서 기본적으로 만족을 해야만 그 관계는 건강하고 살아가는 힘이될 수 있지,  어떤 관계라는 '명명' 만 있고 의무나 기대만 있다면 없느니만 못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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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당신의 고양이 2007/01/22 12:34

    정말정말 동감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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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EM 2007/01/22 19:04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고민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
    제 주변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을 자기의 "장점"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제가 보기에 그건 "장점"이 아니라 "단점"에 가깝습니다. 무댓뽀로 자기얘기만 주구장창 해대는 것도 문제지만, 아무얘기 안 하는 것도 큰 문제죠. 그건 결코, 남의 얘기를 "잘 들어줘서"가 아니라, 자기얘기를 도무지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또는 어떤 식으로 "대화"를 이끌어갈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일 확률이 높습니다.
    어쨌든 "표현"이라는 것도 하다보면 느는 법이니... 오징어땅콩님도 저와함께 좀더 노력을 해보심이... ^^;; 그렇게 하는 것이, 사실은 남의얘기를 듣기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얻을 게 많기도 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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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땅콩 2007/01/23 08:41

    당고/ 동감하는 사람이 있어서 기뻐요..
    EM/ 표현을 잘 하는 것도 사실은 내심의 문제인듯 하여... 노력할 생각입니다^^; em님에게 자극되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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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혜정 2007/01/24 04:16

    나는 주구장창 내 얘기만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또 나를 잘 표현하지도 않는 사람이기도 하여
    읽는 내내 뜨끔뜨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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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오징어땅콩 2007/01/24 20:33

    혜정/ 주구장창 언니얘기 하는 것 좋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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