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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 이건 퍼와야 해!! 왠만하면 팔연대에 실린 글은 안 퍼오려고 노력하지만-_- 이건 너무 좋은 글이라서 퍼오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너무 좋은 번역해주신 모하메드님께 왕감사 ㅜㅜㅜㅜ
2000년 2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일어난 이후 이스라엘은 점령 아래 이미 가혹했던 상황을 파괴와 수감이라는 악몽으로 더욱 악화시켰다. 경제 활동은 심히 고통스럽고 실업률은 계속 치솟고 있다. 2000년 9월 이후 432채의 공장과 9,735채의 소규모 상점과 노점상이 철거되었으며 동시에 가자의 산업은 2008~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으로 가해진 파괴와 지속되는 경제 봉쇄를 통해 완전한 붕괴를 겪어야만 했다.
팔레스타인 노동자들은 특히 일상적인 파괴와 제한 조치들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데, 직장을 구하거나 어느 정도의 생계비를 버는 것마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ILO(국제노동기구)는 점령된 아랍 영토 내 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한 최근의 보고서에서 “이스라엘 점령이 만든 제재 조치와 점령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다면 그 어떤 실질적 개선도 불가능하다”고 진술했다. 팔레스타인 노동운동에 있어 자기 결정권과 자유를 향한 투쟁은 노동 계급의 요구를 성취하는데 있어 본질적 요소이며 전제 조건이 되었다.
팔레스타인 노동운동은 1920년대 초반에 시작되어 1948년 나크바(아랍어로 대재앙의 뜻; 팔레스타인 땅에서의 이스라엘 국가 설립)가 있기 전까지 계속 성장했다. 초기의 일부 아랍 노동자들은 히스타드루트(1920년 노동계 시오니스트에 의해 결성된 유대계 노동 조직)의 아랍 분파에 가입했으나 곧 이 노조가 유대인 노동자에게 특권을 줄 뿐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는 데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백해졌다. 1948년까지 히스타드루트가 팔레스타인 노동자에 맞서 당시 팔레스타인을 식민지배하던 영국에 활발히 로비 활동을 벌이는 동안 팔레스타인 노동조합은 시오니스트의 차별에 맞설 뿐 아니라 일터에서의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서 싸웠다.
1936년 위대한 반란(Great Revolt)의 시기에 팔레스타인 노동운동은 주도적 역할을 했다. 이 봉기를 촉발시킨 주된 요인은 시오니즘 운동이 지방의 땅을 사들이며 땅을 빼앗은 것과 아랍 노동자를 유대 노동자로 대체하려는 히스타드루트의 “노동의 정복” 캠페인으로 인한 팔레스타인 노동자의 실업률 증가와 낮은 임금이었다. 1935년 영국 식민 당국이 저항의 지도자인 셰이크 이즈 앗 딘 알 카쌈을 죽였을 때 이 반란은 전국적인 봉기로 번졌다. 주목할 점은 아랍 노동계급이 노동 역사상 가장 긴 파업 중 하나인 6개월의 총파업을 시작했다는 것이다.
1939년 반란이 끝난 후 지도부가 와해되고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노동운동은 성장했다. 추가적인 조합들이 형성되고 빠르게 조직되어 퍼져나갔다. 하지만 1948년 나크바 이후 많은 노동자와 조합 지도부가 신생 이스라엘 국가 바깥으로 추방당하면서 노동운동은 혼란 속에 내던져졌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는 히스타드루트와 다른 시오니즘 기구들이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배척하고 유대인 노동자를 지원하는 데에 중점을 둔 일련의 준 국영기관들을 형성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낮은 수준으로 전락시키고 고강도로 노동을 착취하면서, 새로운 유대계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숙련 노동시장으로부터 배제시키려고 했다.
1948년부터 1966년까지 이스라엘 당국은 특정 시민군(群)에 대해서만 군사 법률을 적용했는데, 이들은 이스라엘로 편입된 땅에 남아 이스라엘 시민권을 얻은 팔레스타인인들이었다. 이는 이들 팔레스타인계 시민들의 노동시장 진입을 규제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였다. 유대인 노동계급의 실업이 증가하면, 유대인 노동자를 경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군당국은 팔레스타인 노동자에게 발행하는 허가증의 수를 줄였다(군사 법률의 지배 하에 있었던 팔레스타인인의 마을 간 이동에는 허가증이 필요했다). 하지만 1960년대의 경제성장과 특히 건설부문에서의 값싼 노동력의 필요로 인해 이러한 통제는 느슨해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여전히 차별적 제도에 직면해 있으며 문자 그대로 일할 권리를 부정당하고 있다. 아랍 노동자들은 무기 생산, 공항, 항구, 정제소, 하이테크 산업과 같은 “안보산업들”로 정의되는 부문에서 일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으며 그렇기에 효과적으로 이스라엘 경제의 주요 부분으로부터 단절되어 있다. 또한 이스라엘의 기업은 군복무를 고용의 전제조건으로 요구할 수 있는데,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들은 이스라엘 군대에서 복무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 기업의 고용 또한 효과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주어진다. 2009년에는 국영철도 회사가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150명의 아랍 노동자를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공공부문에서 차별은 만연해 있다. 예를들어 2010년에 이스라엘의 전력회사에 고용된 12,000명의 노동자 중 1.3퍼센트만이 아랍인들이었다. 전역에 걸쳐 정부기업과 부서들에는 보통 2퍼센트 이하의 아랍인 고용률이 나타난다. 민간부문 또한 그리 나을 것이 없다. 2009년에는 15,000명의 아랍 졸업생들이 실업상태이거나 그들의 전공외의 일로 내몰려 있다는 보고가 나왔다. 성장하고 있는 이스라엘 하이테크 산업에서의 숫자 또한 참담하다. 2010년 84,000개의 직장 중 500개만이 아랍 기술자들로 채워졌다.
아랍인들이 국가로부터 지급받는 총액 또한 훨씬 적다. 아랍인이 인구의 20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국가예산의 5퍼센트 미만을 지급받는다. 결과적으로 아랍 사회의 빈곤률이 더 높으며 평균 실업률보다 실업률이 더 높은 대다수의 도시-2001년 기준 47개 중 46개-가 팔레스타인인 거주지이다.
1967년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까지 불법 점령함으로써 그나마 남아 있던 역사적 팔레스타인 땅 전체를 자신의 통제하에 두게 된다. 이스라엘 국가는 팔레스타인 노동계급을 흡수하여 그 경제와 팽창, 식민촌(정착촌) 건설 프로젝트에 편입시키려 시도했다. 정치적으로는 높은 실업이 가져올 불안정한 충격을 피하고 이스라엘에서의 고용을 통해 점령에 대한 저항을 무디게 하여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영토에서 철수하도록 할 수 있는 그 어떤 정치적 방책도 차단시키기 위함이었다. 지속되는 땅 강탈, 자원 통제, 생산과 마케팅에 대한 제재, 마지막으로 교육제도와 팔레스타인인을 위한 직업훈련의 기회에 가해진 타격은 존속 가능하고 독립적인 팔레스타인 경제 건설의 토대를 서서히 약화시켰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인의 생계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967년 35퍼센트에서 오늘날 8퍼센트로 줄었다. 그 어떤 중요한 경제 발전도 점령 하에선 허가되지 않았기에 다른 분야에 종사하던 노동 인구는 이스라엘 경제에서 값싸고 보호받지 않는 직장이라도 구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더 많은 팔레스타인인이 공장과 도시 중심가에서 일을 시작함에 따라 노조 활동가들도 조직을 세우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군 당국에 위협이라 생각된 노조 활동가들은 공격받고 수감되고 추방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노동운동은 성장하여 1970년대 후반에 높은 수치에 다다랐다. 1987년에 1차 인티파다가 일어나자 1936년의 반란처럼 파업과 보이콧은 민중저항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당국은 교육을 정치적 위협으로 보았기 때문에 교사들과 교수들은 특히 호된 탄압에 직면했다. 1980년 이스라엘 당국은 팔레스타인 교과 과정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해외에서 인사들을 가르치는데 있어 점령에 대한 “충성서약”을 제정했다. 1차 인티파다 기간에 대학들은 대부분 군의 명령으로 폐쇄되었고 심지어 사적으로 가르치는 일도 “불법”이었으며 발각되면 군의 처벌을 받았다.
1차 인티파다가 끝나고 1993년 오슬로 “평화” 협정이 체결되자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는 이스라엘 국가 설립 이래 차별적 조치를 취해온 똑같은 시오니즘 기구들의 통제하에 놓인 자신들을 다시 한 번 발견하게 되었다. 오슬로 협정은 팔레스타인에 남은 지역을 반투스탄(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파르트헤이트 체제 시절 인종분리 정책으로 나타난 흑인 거주지역), 혹은 사실상의 이스라엘을 위한 예비노동자 풀로 바꾸어 팔레스타인 노동자는 여행이나 노동을 위해 허가증을 자주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다시 이 노동계급을 이용하여 새로운 식민촌(정착촌)을 지속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즉,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노동자 착취를 통해 서안지구의 식민화와 “반투스탄화”를 강화하는 것이다.
2002년에 장벽 건설이 시작되고 이 반투스탄화는 강화되었다. 농민들과 농업 노동자들은 이제 그들의 경작지에 접근할 수조차 없다. 한편 다른 노동자들, 특히 예루살렘 주변의 노동자는 일터로 접근할 수 없게 되어 실업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예를들어 2006년 5월 이후 장벽은 아부 디스와 예루살렘 인근의 팔레스타인 마을들에 살던 75,000명의 사람들을 갈라놓았으며 그들이 일하던 도시에 접근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노동자를 단속하는 주된 형태는 “허가 제도”이다. 현재 많은 이들이 이 제도에 의지하고 있는데,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은 이들은 매일 일터에 나가기 위해 검문소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한다. 이 노동자들은 불안정한 위치에 있다. 허가 기간은 짧으며 본인이나 가족이 정치 활동에 참여할 경우 허가증을 박탈당하고 직업과 생계를 잃게 된다.
허가증에 걸린 많은 제한때문에 젊은 노동자는 허가증을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이때문에 많은 이들이 불법적으로, 혹은 암시장에서 산 허가증으로 통과할 수밖에 없다. 이 “불법” 노동자들에 대한 폭력은 흔하다. 그들은 국경 경찰이 발포하는 실탄에 직면하기도 하고 붙잡히면 불공정한 대우를 수반하는 단독 구금, 잔혹행위, 심지어 고문에 처해지게 된다. 적어도 일터로 가기 위해 매일 이스라엘에 출근하는 40퍼센트의 팔레스타인인들이 “허가증” 없이 일하고 있다.
이 장벽과 식민촌(정착촌)때문에 농민들은 장벽의 뒤쪽이나 식민촌 가까이 있는 땅을 일구기 위해 허가증을 받아야만 한다. 신청자들은 안보고려를 충족시켜야 하며 ‘토지와의 연관성’을 입증하기 위한 문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 허가증을 얻어낸 이들은 종종 수확기간 동안의 제한된 시기에 그들이 소유한 땅에 접근할 권리가 허락되며 이는 농토를 유지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봉쇄로 고립된 가자지구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60퍼센트의 인구가 빈곤선 아래에 있으며 구호에 의지하고 있다. 한편, 실업률은 38%인데 이 중 30살 이하의 청년 노동자들은 이 실업의 거의 6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다. 지속적인 폭격은 이스라엘의 원료 수송 금지와 맞물려 거의 산업을 마비시켜왔다.
국제 개발 기관들은 이런 점령에 맞서기보다는 이스라엘의 지원을 받으며 서안지구에서 활동하면서 이 게토들과 공업 지대간의 상품과 노동력의 이동을 향상시킴으로써 현 상황을 지속시키고 있다.
모든 공업 지대는 미발전된 팔레스타인 경제가 만든 값싸고 유동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공업지대의 일자리는 매우 취약하며 이스라엘 시장과 정치 상황에 의존하고 있다. 노동법은 아직 합의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은 특정시기동안 법적 보호 없이 일을 하게 된다. 공업 지대는 빠르게 늘고 있으며 2025년까지 50만 명 가량의 팔레스타인 노동자가 공업 지대에서 일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업 지대는 팔레스타인의 값싼 노동력을 통해 효율적인 이스라엘의 상품 생산을 담보한다. 여기서 생산된 상품은 팔레스타인인에게 되팔리거나 이스라엘 기업에 의해 미국, EU, 걸프 등지로 수출된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포위된 시장으로서 계속 기능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스라엘의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의 수출은 1988년 8억 달러에서 2007년 26억 달러로 증가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경제에 대한 팔레스타인 경제의 의존성을 더욱 굳히고 있다. 이 공업 지대에 대한 국제 자본의 투자는 이스라엘 군사 행정에 통제받게 되고, 그리하여 이스라엘의 땅 몰수와 총체적인 점령 그 자체가 정당성을 부여받게 된다.
결국 이는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반투스탄 정책을 강화시키고, 팔레스타인인을 이스라엘에 통제되는 값싼 노동력 풀로 남게 한다. 저항은 경제를 봉쇄하고 황폐화시키는 것으로 처벌받는다.
이러한 전망 앞에서 점령에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노동자인 우리는 팔레스타인 민중에게 지속적으로 연대해온 국제 단체들과 그들이 최근 발표한 투쟁하는 팔레스타인 민중을 지지하는 성명서들에 감사를 표한다. 이스라엘이 점령을 계속하고, 팔레스타인 난민의 고향으로의 귀환권을 부정하고, 수천명의 팔레스타인 수감자들을 이스라엘 감옥에 억류하고, 팔레스타인 땅에 아파르트헤이트 장벽과 식민촌을 건설하고 유지하는 한, 전세계의 단위들이 점령과 점령 행위에 관련된 모든 이스라엘 기구를 보이콧하고 이스라엘에 무기 금수 조치를 취하고 자유무역협정(FTA)을 끝낼 것을 결정해야 할 때이다.
2011년 10월 30일 일요일 '팔레스타인 풀뿌리 반 아파르트헤이트 장벽 캠페인' 작성
원문: http://stopthewall.org/impact-palestinian-workers-under-israeli-occupation
번역: 모하메드 페트로비치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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