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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 숙인 벼

  • 등록일
    2014/09/05 02:25
  • 수정일
    2014/09/05 02:35
  • 분류
    추억팔이

회초리를 든 엄마 앞에 무릎 꿇고 앉아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얘기를 들으며 동전을 떠올렸던 기억이 있다. 엄마 말씀의 취지는 알겠는데 나는 왜 그런 비유가 사용되는지 이해가 안 갔던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 아니 입학하고 난 뒤 몇 년 동안도 엄마는 엄마 허락 없이 절대로 신호등을 건너가지 말 것을 명령했었다. 나중에 길 건너 사는 친구네 집에 놀러다니게 된 뒤에는 "엄마 미영이네 집은 신호등 두 번 건너야 돼"라고 말하고 허락을 받는 반쯤 해제 상태가 됐었는데,

 

그때 여섯살인지 일곱살 때, 분명히 엄마가 신호등을 건너지 말라고 했지만, 그때 무슨 풍악댄지 뭔지가 지나가니까 신호등이 깜박거렸든가 꺼졌든가, 아무튼 차가 안 다니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 풍악을 울리는 사람들을 쫓아서 신호등을 두 개나 건너 멀리 가버렸다. 돌아오는 길에는 교통 통제가 이미 끝나서 신호등을 건너 왔어야 했는데, 그 얘길 내가 직접 한 건지 누가 제보를 한 건지 엄마가 봐버린 건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엄마 말씀을 어기고 길을 건넜다는 데에 대한 추궁에, 나는 나름대로 그건 말씀을 어기려고 했던 게 아니라는 항변을 했던 것 같고, 그때 엄마는 벼 얘기를 꺼냈다. 그뒤로 벼 얘기는 엄마가 날 혼낼 때 쓰는 주된 레파토리였다.

 

그전까진 신호등을 절대 건너지 않았었고, 한번은 엄마와 언니에게 너무 화가 나서 내복입은 채로 그때 가장 소중했던 접으면 007가방이 되는 오르간?같은 걸 들고 가출을 감행했다가 신호등 앞에서 이걸 건너면 엄마한테 혼나는데...하고 쩔쩔 매다 그냥 집에 돌아간 적이 잇었다. 엄마랑 언니는 내가 나갔다 왔는지 어쨌는지 관심도 없었다-_-

 

중학교 땐지 초딩 고학년 땐지, 엄마가 안방 문을 열어놓은 채 놀러온 친구랑 대화하며 나에 대해 "쟤는 애가 외골수라 걱정이야"라고 말하는 걸 듣고 국어사전을 찾아봤었다. "외골수"라는 말은 없고 "외곬"이라는 말이 있었다. 엄마는 항상 날더러 너는 융통성이 없다고 얘기했는데 난 내가 왜 융통성이 없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갔었고, 아니 융통성이 뭔지 자체가 이해가 안 갔었다. 지금은 내가 어떻게 행동했었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아빠가 백권짜리 문학전집을 사왔는데 앞에 60권 정도가 소설 요약류였고 뒤에는 위인전기였다. 위인전 읽는 거 진짜 싫어했지만 그걸 다 읽어야 아빠가 자전거를 사준댔나.. 뭘 걸어서 기를 쓰고 끝까지 다 읽었는데 다 읽으니까 갑자기 독후감을 다 써야 사준다고 해서 집어쳐 버렸었다. 암튼 그 위인전 중 다윈은 정말 인상깊게 읽어서 엄마한테 <종의 기원> 사달라고 했는데 끝까지 안 사줘서 내가 과학자가 못 됐쟈나< 그때 겨우 그 다윈 전기 읽고 창조론은 잘못됐고 진화론이 맞는 거라고 떠들고 다녔던 것 같다. 그래서 막 신을 부정하고. 그런 나랑 입씨름하던 같은 반 애가 자기 교회 선생님이 너를 와보라고 했다고 해서 우리 집에서 길은 안 건너는데 굉장히 멀다고 생각했던 그 교회까지 갔었다. 아무도 없는 교회 예배당 그 기다란 의자에 선생이란 자와 둘이 앉아 대화를 했던 게 지금도 기억난다. 나는 겨우 초딩용 위인전기에서 읽은 진화론을 떠드는데 그 사람은 말문이 막혀서 허 참 허 참 그런 게 아니란다 허 참 이러다가 가보라고 했다. 어른이라는 존재에 권위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도 못 해본 때부터 권위라는 상이 깨졌다. 어른을 이겼다는 승리감에 좀 도취되기도 했었다. 교회 깨기...< 근데 그 뒤에 달란트 떡볶이 먹으러 다른 교회 잘만 다님ㅋ 정말로 레알 목사님인지 뭔지 앞에서 하는 얘기는 귀에 한 글자도 안 들어왔었다. 예배 시간에 앉아서 주구장창 딴생각을 했는데, 그전에 언니가 먼저 교회를 다녀서 교회 장날같은 때 따라갔다가 달란트로 사먹는 떡볶이의 맛을 잊을 수 없어서 긴 시간 인내하며 교회를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가 느므 귀찮아서 안 간 날 교회 쌤이 샌드위치 사줄테니 오라고 해서 밥도 굶고 갔더니 안 사줘서, 다시는 안 갔따 뭐야 찐따같애 ㅋㅋㅋ

 

 

나는 이런저런 모든 얘기를 엄마한테 가감없이 전부 다 얘기했었는데, 엄마가 다른 사람들한테 내 얘기를 다 하고 다닌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얘기하는 게 좀 꺼려졌다. 나를 끔찍하게 예뻐하고 자랑스러워하는 엄마가 있는 한편, 내 비밀을 천지사방에 누설하고 다니는 엄마가 있었다 -_- 나를 자랑스러워하면서도 오만방자하다고 혼내키던 엄마, 남자애들이랑 싸워서 지지 말라고 싸우는 법을 알려주던 아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냄새라든가 풍경. 가끔씩 아 이 별것도 아닌 이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이딴 생각을 하곤 했는데 그 중 대부분은 까먹었고 몇 개는 확실히 기억하고 있따 정말 아무것도 아닌 장면, 문방구 옆골목으로 보인 하늘같은 거. 흐려져서 그때 본 게 확실히 그건지는 모르겠는데 꿈 속에서 보듯이 그런 느낌적인 그런 거.

 

그런 게 있다는 거다<

 

소설 [상실의 시간들]을 읽으며 왠지 내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쓰고 싶어졌다. 좀 참다가 몇 개만 써봤다. 하나만 더 쓰자< 우리 엄마가 짱깨집을 할 때, 안방에서 늦은 시간에 티비를 보는데 남자가 여자의 목을 잡아 뽑았다. 여자 목이 땅에 나뒹굴며 뭐라고 뭐라고 말을 했다. 그게 너무너무 무서우면서 웃겼다. 갑자기 그게 생각났엌ㅋㅋㅋ 본래 글을 쓰고 싶었던 마음이랑은 아무 상관 없는 장면임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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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예 살던 고향은

  • 등록일
    2014/03/19 02:50
  • 수정일
    2014/03/19 03:00
  • 분류
    추억팔이

♬나의 사알던 고향은 인천 교도소~

란 노래가 있었다 ㅋㅋ

 

나의 살던 고향 말고 1세 때 이사와 주구장창 살아온 내 고향은 부평!!< 그 중에서도 어린 시절에 오래 살았던 그 집 주소가 갑자기 떠올랐어 -ㅁ- 주소를 기억할 줄이야 ㅇ<-< 인천시 지도포털 보다가, 옛날 위성 사진 보는 게 있어서 신기하게 보다가 나의 살던 집을 찾아봤따 ㅠㅠㅠㅠ 아놔 나 지금 너무 감동했어 ㅇ<-< 나 타임머신 탄 느낌이야 엉엉엉엉

 

사용자 삽입 이미지

 

빨간 집이 우리집이다 ㅇ<-< 1994.2.28 ~ 11.24에 찍은 거라는데 그게 언제야... ㄱ-;; 여튼 내가 저 초등학교를 다녔고(하지만 94년엔 초딩이 아님-ㅅ-) 저 빨간 테두리에 2000년대 초반까지 살았다. 엉엉엉엉 저 안에 돌아가신 엄마랑 외삼촌이 들어있었을 거 아니냐긔... 대낮이라 일하러 갔을라나..-_- 엉엉 그럼 우리 외할머니라도 들어 있겠지 우리 외숙모랑, 태어난지 얼마 안 된 수미랑... ㅠㅠㅠㅠㅠㅠㅠㅠ 내가 들어 잇을 수도 있고 ㅠㅠㅠㅠ

 

무슨 옛날 집 사진 없는 것도 아니고 위성 사진 찾고 이러고 있냐. 근데 나 너무 감격해서 당장 아빠집 가서 옛날 집 앨범 보고 싶을 정도임. 우리 옛날집... 동네에서 단풍나무집이라고 불렀는데 ㅠㅠ 총 3층이고 1층은 반지하, 반지하엔 할머니 외삼촌 외숙모 수미가 살았고 2층엔 우리 가족이, 3층엔 세를..< 우리 집이 3층에 세들어 살다가 집을 사고 2층 주인집이 3층으로 세들어 사는 그런 형국이었다<

 

여튼 이 집을 산 우리 부모님은 명실상부 중산층의 반열에 들어서며 집안 인테리어를 어찌나 촌스럽게 전형적으로 꾸며놨던지 ㅋㅋㅋㅋ 그때도 납득이 안 가던 장식물들이 좀 있었는데 ㅋㅋㅋㅋ 막 시커먼 가죽 소파, 무겁고 진한 갈색의 원목 탁자, 대리석빛(대리석이 아니고 빛이다) 주방, 커다란 실내용 화분, 알 수 없는 서예 액자, 역시 알 수 없는 도자기, 피아노, 아르누보삘의 안방침대, 커다란 텔레비젼, 커다란 괘종시계, 수족관, 그 와중에 왜 가족 사진 안 걸어놨었나가 의문이네 ㅎㅎ 이미 60-70년대 영화에서 보여주는 중산층의 삶에서 볼 수 있는 소품들로 가득한, 시대착오적인, 중산층의 미학을 싸구려 복제한, 엄마와 아빠의 낭만이었던, 그런... 그런 집. 갑자기 내 방은 차고 위라서 매 겨울마다 얼어 죽을 것 같았던 게 기억났다... ㄱ-;;;

 

아 졸린 나는 갑자기 향수에 젖어 이러는 것이다. 더 이상의 자세한 추억은 생략한다< 다음에 아빰 만나면 보여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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