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씨네필을 향한 정열의 폭주열차 * 비고 : 시끄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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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28
    [왓챠 추천] 전쟁전야, When the War Comes, 2018
    뎡야핑
  2. 2020/03/09
    낮은 곳에 임하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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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0/02/29
    [왓챠 영화 추천] 왈라의 선택 What Walaa Wants, 2018
    뎡야핑
  4. 2019/11/17
    청춘의 덫 떴다!!!!!!!!
    뎡야핑

[왓챠 추천] 전쟁전야, When the War Comes, 2018

슬로바키아에 극우파 십대 청소년 중심의 준군사조직(민병대, 의용군)이 생겼다. 한국으로 따지면 일베 성향의 청소년들이 오프라인에 군사 조직을 만들었다는 건데.. 슬로베키아는 산이 많은 국가라, 그냥 야산에 자기네끼리 주말마다 모여서 군사 훈련이란 걸 한다. 진짜 너무 조악하고 어설퍼서 저딴 게 무슨 군대야, 라며 우스워 보이는 한편, 정말 평범한 청소년들이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걸 보고 너무 무서워졌다. 이들이 사회에서 어느 정도 일탈 세력으로 취급받는지도 잘 모르겠다. 영화의 주요 인물인 두 십대 소년, 리더격의 페테르랑 신입병사(?) 한 소년의 부모들은 이들의 사상과 활동을 지지한다. 부모와 자기가 하는 일을 공유할 만큼 사이가 좋고, 개하고도 놀고, 술 취하면 웃고 춤추고 떠들고 영락 없는 평범한 십대로 보이는데 이들은 "무슬림이 쳐들어온다"면서 자체적 군사 훈련을 통해 조국을 "침략"하는 난민들로부터 나라를 구해야 한다고 믿고, 실행하고 있다. 이들이 적이라고 말하는 무슬림들이란 주로 시리아 출신의 난민들이다.

내가 뉴스를 제대로 팔로업하지 못 해서 유럽의 난민 문제, 라고 하면 그리스 이태리 독일 등등만 생각했는데, 슬로바키아에서도 난민을 조금 수용하게 되면서 난민에 대한 사회적 혐오가 심각한 수준인 것 같다. 슬로바키아는 2015년 8월 유럽연합의 특히 시리아 난민을 회원국에서 수용하라는 결정에 대해 크리스챤 200명만 받겠다고 밝힌 바 있다.여기엔 이슬람 사원이 없기 때문에 무슬림들이 와봤자 불편할 거라면서.. 그 뒤로 난민을 더 수용하게 됐는데, 이들에 대한 분노와 혐오가 점점 제도권에 편입되고 있다.

170여명 규모의 군사조직을 만든 후, 이들은 극우 정당을 만들어 의회진입을 노린다. EIDF에서 상영되며 방한했던 감독과의 GV요약글에 따르면 그 제도권에 진입하려는 시도가 나름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 다큐 초반에 야산에 훈련하러 가기 전, 마을에서 군복을 입고 총을 든 이들에게 위압감을 느낀 주민들이 이들을 경찰에 신고하는 게 나오는데, 이들을 규제할 아무 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경찰이 군복에 붙은 슬로바키아 정규군과 관련된 표식을 제거하라고 충고하는 정도로 일이 마무리된다. 그 뒤 우익 단체들의 행사에서 경비 업무도 맡고, 초등학교에 민족주의에 대한 강연도 하러 가고, 범슬라브 민족주의자들과 접촉하며 세를 확장해 나간다. 그러다 결국 국회 진출까지 노리게 된 것이다.

이들은 아직 창당 후 초기 단계지만, 이미 슬로바키아 국회 의석 150석 중 17개석을 극단적 극우 정당 Kotlebists가 차지하고 있을 만큼 극우의 제도권 진출은 성공적이다.

이스라엘 같은 나라도, 이미 우파 조직들조차 상종도 해선 안 된다고 할 정도의 극우 정당들이 예전부터 의석을 얻었고(이스라엘 총선, 강화되는 인종주의와 헤브론 참조) 유럽에서 극우주의의 부상이야 세계 금융 위기 전부터 이미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함께 문제돼 왔던 건데, 그런데도 평범한 청년들의 어설픈 군사놀이가 사회적 승인을 얻어가는 과정을 본 게 처음이라 충격적이었다. 아마 히틀러도 이렇게 시작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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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판에 창당하고 행진할 때 나치 독일의 괴뢰 국가였던 슬로바키아 공화국(지금의 공화국과 관련 없음)의 깃발을 내건 것도 충격적이다.

슬로바키아에 대해 아는 거라곤 여행지로 엄청 좋아하는 체코와 같은 나라였다가 분리됐다는 것 뿐인데, 내가 읽는 국제 뉴스가 중동, 북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미국에 편중돼 있어서기도 하지만 타임라인에 슬로바키아 뉴스가 뜬 걸 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냥 내가 전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동유럽의 인구 600만도 안 되는 작은 나라라서 극우주의 흐름이 이렇게 크다니 보는 내내 계속 깜짝 놀랐다.

사실 난민 규모가 지금처럼 커지기 이전에 이미 이주 노동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이 한국에도 있을 만큼 신자유주의 이후 만연했다. 이들이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에 우리 국민(민족)을 우선시해야 한다고들 말하는 자들 중 많은 이들이 이주 노동자들이랑 일자리가 겹치지도 않는다. 그리고 2013년 이후 난민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이주 노동자들에게 가해지던 혐오와 차별이 고대로 난민에게 향해졌는데, 너무 빤한 소리지만 대규모 난민을 만들어 난민수용국들에 난민 혐오를 자양분 삼은 극우 파시스트들이 성장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도, 그 난민들 중 반미반제를 이유로 또다른 극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을 만든 것도 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국가들이다. 정말 너무 화가 난다. 난민이 발생하지 않을 조건을 만들라고... 난민 수용이 싫다면 난민이 발생하지 않게끔 하는 게 최선이라고. 에휴

감독이 어떻게 이렇게 내밀한 내용까지 찍을 수 있었을까 궁금했는데 위 GV내용에 나온 바 이 리더격인 페테르와 파워 게임 비슷하게 했다고.. 영화가 이들을 더 비판적으로 다뤘어야 한다는 비평이 많았나본데 왜 때문에 더 비판적인 감독의 시선이 필요하죠...? 관객이 스스로 판단하고 자시고 할 여지도 없이 감독이 이들을 비판적으로 그릴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하지 아니한가.. 안 자명한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저런 비판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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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곳에 임하신, 영화

결혼하며 구매했던 국산 중소기업의 티비는 볼륨이 12가 넘으면 잡음이 섞여나왔다. 이걸로는 도저히 영화를 볼 수 없었다. 이사하면서 7년간 짜증내며 썼던 티비를 아빠한테 주고 85만원 짜리 거대한 엘지 티비를 샀다. 가로 138cm, 해상도 3840 x 2160 태어나서 집에 둬 본 티비 중에 제일 크다.

나도 언젠가부터 거대한 스크린을 갖는 게 꿈이 됐다. 영화를 막 많이 보던 시기에는 딱히 큰 스크린을 원하진 않았다. 나에게 영화를 본다는 건 (물론 나도 극장에서 시작했지만) 어두운 방구석에 혼자 비디오를 크게 틀어놓고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개인적인 경험이었다. 그래서 화면 사이즈에는 구애 받지 않았고, 같이 보는 사람에게 방해 받지 않고 영화랑 나만 있는 것만이 중요했다(하지만 막상 극장에서는 크게 봐야 된다고 앞에서 주로 4번째 자리에 앉아서 봄).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는 변했지만 여전히 그런 부분이 남아 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실현하면서부터는 아주 작은 방에 빔과 흰 스크린을 설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는데 사실 빔은 흐려서 원래 좋아하지도 않고 다만 충분히 어둡고 좁은데 한 벽이 스크린으로 가득하고 방음돼서 사운드 귀 터지게 틀을 수 있는 영화방을 갖고 싶어졌다. 그렇게 큰 스크린을 자연히(?) 욕망하게 됐는데 이번에 산 티비 진짜 크네. 이렇게 큰 줄은 몰랐다. 집에 설치된 거 보고 너무 좋아서 기겁함 ㅋㅋ

그런데 티비 해상도가 좋아버리니까, 영화들이 적나라하게 보인다. ㅁ이 표현대로 "영화들이 다 서프라이즈(티비 프로)가 됐"다 ㅋㅋㅋ 영화의 아우라가 사라지고, 외국인들의 어색한 연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그 프로그램의 싸구려 질감과 꼭 같아보인다. 마치 콩깍지가 벗겨진 느낌이다. 더이상 영화가 아름답지 않았다. 내가 극장과 집에서 영화를 보며 감탄하고 아름답다고 돌아버리겠다고 했던 것이 불과 해상도의 문제였던가. 내 방에서 영화는 필터가 벗겨진 채 세속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영화가 '세속화'되었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내가 영화를 '성스럽게' 여겨왔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스스로를 시네필이라고 절대 부를 수 없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나 까짓 게 시네필일 수 없다고 완고하게 부정했던 건 단순히 영화 보기를 게을리하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는 걸 넘어서 영화를 성스럽게 여겨왔기 때문이었다. 왜 어쩌다가 나는 영화에만 이런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게 된 걸까? (만화광이라고 얘기하는 데는 주저하지 않음) 모름

아무튼 나는 이 거대한 티비를 통해 그 성스러움이 벗겨지고 적나라하게 속세로 '내려온' 영화를 보고 있다. 그래서 그게 싫은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재밌다. 처음엔 정말로 이게 뭐야 서프라이즈야 뭐야 눈이 휘둥그레졌는데(4K도 마찬가지) 저예산 영화의 그 때깔 없음을 보는 익숙함도 있고, 전과는 다른 새로운 영화 보기를 하게 된다는 게 재밌다. 그게 어떤 걸지는 아직 전혀 모르겠지만 너무 기대가 됨. 왠지 영화 보기를 더이상 소홀히 하지 않을 것 같은 자신감이 솟아나고? 아마 이건 큰 소리로 틀어도 된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런데 딴 얘기지만 넷플과 왓챠에 <밤과 안개>가 없다. 넷플에선 밤과 안개로 검색하면 아우슈비츠나 히틀러 관련 영화를 추천해 준다. 뭔 영환지 알고 있다는 거잖아. 같은 소재 영화 추천하는 게 더 빡침 아는 사람이 그래?? 사람이 아님 ㄷㄷ 암튼 21세기에도 불다를 찾아 헤매야 한다는 게 넘나 귀찮고 자본주의 일 좀 해라 (ㅋㅋㅋㅋㅋㅋㅋ 근데 검색했더니 비메오에 뙇 있다.)


우카이 사토시 <저항에의 초대> 쫌밖에 안 읽어서 잡았다가 갑자기 세르주 다네 책 읽고 싶어서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 읽다가 영화 관련 아무거라도 쓰고 싶어서 갑자기 흰소리를 적었는데
본인이 과문한 탓에 세르주 다네가 팔레스타인 영화론을 시도했단 걸 전혀 몰랐다. 넘나 알고 싶은데 일단 읽던 책들 모조리 읽고 찾아보자 참자 나자신이여

옛날에도 영화가 보낸 그림엽서를 이렇게 재밌게 읽었던가? 넘나 재미져서 기절하며 읽는 중

하지만 여전히 시네필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은 드는데, 내가 영화를 통해 동시대를 바라보거나 이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 면이 당연히 있지만 누구나 그렇듯이 하는 그런 정도고, 누구나 시네필이 아니듯 그래서 나도 아님

가끔씩 보면서 읽으면서 들으면서 나도 폭발적으로 얘기하고 싶어지는 작품이 있는데 세르주 다네 책이 그런 책이규.. 그만하고 책 읽어 -_-


페북 댓글에 TV의 프레임 보간 기능 때문일 수 있다구 설정 바꿔보라는 조언이 달렸는데 그 기능이 이제는 막혔다. 암튼 그런 문제였다 24프레임으로 찍은 걸 60프레임으로?? 보여주는 거라고?? 잘 모름;; 검색해보니까 그래서 서프라이즈 된 거라고 다들 고통받고 설정 바꾸더라고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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