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에서 찾기레일라 칼리드

줌(Zoom),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 환장의 꼴라보 - feat. 레일라 칼리드

작년말 올초 5개월간 유저가 천만에서 3억으로, 주가가 3배로 뛴 줌(Zoom).
때문에 코로롱 확산 배후에 줌이 있는 거 아니냐는 농담이 떠돌 정도였는데요.

이런 줌이 웨비나를 검열하고 있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항일무장투쟁을 했던 독립운동가에 비견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가 '레일라 칼리드'를 ‘테러리스트’라며 그를 연사로 초빙한 웨비나를 무단으로 취소한 겁니다.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도 줌의 대열에 동참했고요.

비대면이 일상화되며 사회 전 영역의 기본 플랫폼이 된 줌.
이번 줌의 검열은 표현의 자유, 특히 학문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고, 군사점령당한 민중들의 정당한 저항권을 억압합니다.

스크립트

테.러.리.스.트.가.나.타.났.다?

9월 22일, ZOOM이
샌프란시스코 주립대의
온라인 공개 강연을 취소했다

강연 불과 하루 전 일이었다.

연사로 초빙된 레일라 칼리드가
미국이 지정한 “테러” 단체
소속이라는 이유였다.

주최측은 급히 다른 플랫폼을 알아봤지만
페이스북, 유튜브, 인스타그램까지
줄줄이 삭제·거부했다.

그럼 그 “테러리스트”
레일라 칼리드는 누구일까?

그는 두 건의 비행기 탈취로
전세계에 팔레스타인을 각인시킨
팔레스타인 해방운동가다.

비행기를 탈취했던 1969, 1970년은
팔레스타인이 이스라엘에
군사점령당한 직후였다.

((인터뷰 삽입))
항공기를 탈취하자 전 세계가 우리가 누군지 궁금해했습니다.
입장을 막론하고 모두 궁금해했죠.
하지만 우리가 이스라엘 감옥에서 고문당할 때, 누가 우리의 비명에 귀기울였나요?

팔레스타인 원주민은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전후 해
인종청소당했다.

그는 5살에 난민이 되었다.

((인터뷰 삽입))
우리는 구호물자면 족한 ‘불쌍한 난민’이 아닙니다.
우리를 난민으로 만든 건 자연재해가 아니에요.
우리는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자 비행기를 억류했습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누구인가?”

승객 피해 최소화를 위해 노력했다.
그 결과 사망자는 없었다.

((인터뷰 삽입))
승객 분들께 이유를 설명드리려 노력했어요.
계속 사과드리면서도 아주 솔직하게, 우리가 이럴 수밖에 없음을 말씀드렸죠.

미국이 테러집단이라 부른
레일라 칼리드의 조직 PFLP는
국회의원들도 속한 팔레스타인 정당이다.  

((인터뷰 삽입))
무엇이 테러리즘인지 누가 결정하고 정의하죠?
내가 아는 한 점령은 테러리즘입니다.
민중에겐 자기 나라를 점령한 자들에 맞설 권리가 있어요.
무장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요
UN 헌장에도 적혀 있죠.

레일라 칼리드를 초빙한 강연 제목은
누구의 서사인가? 젠더, 정의, 저항 : 레일라 칼리드와의 대화

10월 23일,
10여개 대학과 연구자 그룹 들이
줌의 무단 검열에 침묵당하지 않겠다며

다시 그의 메세지를 전하는
줌 웨비나를 기획했지만

줌은 3개 행사를 또 취소했다.(* 이 중 2건은 문제제기 후 복구)

줌의 검열은 처음도 아니다.

6월에도 중국의 요청에 응해
홍콩 활동가들의 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코로나 확산 후
폭풍 성장한 줌.

비대면이 일상화되며
대학, 정부, 민간 어디서든
줌은 기본 플랫폼이 되었다.

유튜브랑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마찬가지다.

 IT 기업들이 개별 국가보다도
더 큰 자원과 막대한 권력을 가진 지금

플랫폼 검열에 어떻게 대항하면 좋을까?

가상 배경화면 이미지를 통해
줌에 항의하는 캠페인에 동참해 주세요!
배포처: pal.or.kr/wp/ZoomUnmuteFreedom

((인터뷰 삽입))
한가지 꿈이 있어요
팔레스타인이 해방되면
3일 동안 나무 아래서 잠을 자는 거죠.
흙냄새를 맡고 싶어요

제작기

형식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많이 허비했는데 결국 좋은 생각이 안 떠올라서 그냥 했다. 사운드 많이 넣을 생각이었는데 시간낭비 이미 너무 많이 해서 ㅜㅜ

문자에 모션 넣고.. 모루겄다ㅜㅜ 짧게 만들기 위해선 이스라엘 정부 펀드로 운영하는 앱이 트롤 군단에 지령 내려서 대량으로 플랫폼의 신고 시스템을 악용한다는 거랑 학문의 자유에 대한 문제 등 쟁점도 빼야 했고, 또 글자수 맞추느라 정확한 표현을 지우고 만들면서도 표현 계속 고치고 빼고

근데 이 영상이 하나의 스타일로 정착시킬 정도로 매력적인가 하면 그렇지도 않네 뭔가 보던 거랑 비슷하게 만들긴 했는데 내가 원하던 게 이런 형식인가 하면 그건 아니었구.. 뭘 원하는 거여 뭔가 어디서도 본 적 없는 뭔가... 안 떠올라 노념노상

마지막에 캠페인 넣는 것도 고민이었는데 첨엔 뭔가 상황을 전달하기만 하는 게 아니고(언론 보도?처럼)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 액션을 제안해 주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넣을라니까 그냥 캠페인용 영상이 되어버리는(전락) 것 같아서 멘트를 무지하게 바꾸다가 에휴 지엽적인 게 문제가 아니거늘 모루겠더라구

팔레스타인 투쟁보다는 줌과 페북 등 테크기업에 포커스 맞추고 싶었는데 왜 줌이 ban했구 왜 그게 틀렸는지 설명하려니 이미 2분 넘어버림.. 으휴 모루겟다 계속 모름

레일라 칼리드 우리 모두의 우상 진짜 뽕 차서 영화상영회 다시 하고 싶더라구 2012년 버전의 자막 번역 구려서 자아님이 자막 다시 번역해 주면 머박적일 것 같오

글고 설명란에 결국 넣었지만서도 우리네< 항일무장투쟁과 비유 있었는데 이게 단순히 민족주의에 호소하는 게 아닌데 설명 없으면 그렇게 읽히는 게 오히려 자연스러워서 항시 고민이며 짧은 영상에선 더더욱 어렵지 뭐여 글타고 그런 요소가 왕전 없는 것도 아닝께 어려버버려 암튼 그래서 본문에선 뺐다.. 짧지만 제대로 비유할 수 있는 힘이여 오라 내게로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

레일라 칼리드, 비행기 납치범 Leila Khaled Hijacker, 2006

사용자 삽입 이미지

http://www.leilakhaled.com/

 

팔레스타인에서 여성이 투쟁을 한다는 것을 상상하기 힘들던 60년대에 레일라 칼리드는 최초의 여성 게릴라, 최초의 여성 비행기 납치범 등 많은 수식어를 달고 활동을 시작했다. 1967년 아랍 사회주의의 기치를 건 나세르와 아랍 군대의 패배로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식민지가 되고, 당시 나세르가 해방을 가져다 주리라 믿고 있었던 레일라 칼리드는 해방은 남이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님을 깨닫고 투쟁 전선에 뛰어든다.

 

인질이 된 승객들은 풀려난 뒤 그녀와 동료들의 정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는데, 애초 비행기 납치의 목표가 세계의 이목을 끄는 것, 그것으로 식민 종식의 돌파구를 찾는 데에 있기도 하였으나, 레일라 칼리드가 속한 조직 PFLP의 방침이 절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인질들에게 위해를 가하지 말 것이기도 했다. 실제로 레일라 칼리드가 수행한 두 차례 작전에서 다치거나 살해당한 사람은 그녀의 동료 뿐이었다.

 

그러나 레일라는 '테러리즘'의 아이콘으로 떠오르게 된다. 최초의 여성 납치범으로서의 '명성'과, 이후 다른 정파들이 행한 일련의 납치 사건에서의 사상이 이런 이미지를 형성하게끔 한 것 같다. 

 

감독은 팔레스타인계 부모를 둔 스웨덴 사람으로, 어린 시절 레일라 칼리드가 자신의 우상(idol)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자라며 만난 스웨덴 사람들은 팔레스타인을 테러리즘으로 이미지화하고, 팔레스타인계 스웨덴 소녀에게 왜 팔레스타인은 테러를 일삼는지를 묻는다. 그렇게 나이가 먹으면서 감독은 레일라 칼리드가 당시 행했던 테러리즘을 후회하지 않을까, 궁금증을 안고 레일라 칼리드를 만나러 온다. 다양한 레일라 칼리드의 모습과 마주하며 그러나 달라진 것은 칼리드의 생각이 아니라, 유럽인의 정체성을 획득한 자신임을 보게 된다. 

 

재미있게도 충실한 다큐멘터리로 구성된 이 영화에서 연출된 씬은 단 하나였는데, 그건 바람 부는 옥상에서 레일라 칼리드가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이었다. 쌩뚱맞게도 나는 '앙겔루스 노부스'를 떠올렸다. 슬픈 바람이 아니고, 카메라를, 관객을, 역사를 응시하는 눈빛이 후회하지 않는다고 읽혔고, 그건 쌩뚱맞기도 하고 강렬하기도 했다. 

 

영화는 주로 레일라 칼리드 외에도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담고 있다. 특히 당시 비행기 납치 때의 이스라엘인 비행기 조종사나 승무원과 인터뷰할 수 있었던 게 이 영화가 가진 또 다른 힘이었다. 아마 감독이 그저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임을 생각하며, 감독이 전화해서 자기를 어떻게 소개했을까, 팔레스타인계라고 소개했을까 궁금해졌다.

 

개인사가 의미를 갖지려면 그가 살아낸 역사를 함께 보여줘야 한다. 이 영화가 팔레스타인의 전반적인 역사와 현실을 보여준 것은 아니나 -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 적어도 레일라 칼리드의 선택과 현재를 이해하기에 충분한 사회사를 보여주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과 동시에 난민이 된 레일라 칼리드와 그녀의 가족과 그 마을 사람들, 그리고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일어났던 피난 행렬.. 3차 중동 전쟁에서 아랍 측의 완벽한 패배. 오히려 그녀의 개인사에서 동생이 대신 죽는다든지 뼈아픈 이야기들이 있는데, 이런 부분들을 다루지 않은 것이 더 좋았다.

 

영화를 보고나서 테러리즘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온갖 의미들이 덧씌워져서 개념적으로 가치를 잃어버린 단어... 그래도 나는 테러리즘을 객관적인 단어로 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_- 근대 국가가 사적 폭력을 용납하지 않고 폭력을 독점하는 것이 합의된 정치체라면 국가가 아닌데 무장하고 그 무장력을 민간인을 향해 사용하는 것으로, 그래서 좋거나 나쁘다의 가치판단을 배제한 단어로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예컨대 이스라엘 건국 전에, 현재 이스라엘 방위군(우웩)의 전신이 된 이르군 등 수많은 시오니스트 무장 단체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있지 않은가. 걔네들이 국가가 돼서 합법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행위는 일정한 정당성을 부여받은 전쟁이 된 것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하자면 나는 무장 투쟁은 택할 수 있는 전법 중에 하나라고 보며, 아무리 대화와 타협이 하고 싶어도 니 맘대로 될 것 같냐? 어느 시기에 어느 국면에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데 그 점에서 팔레스타인 무장 투쟁을 평가할 수 있지만, 무장 투쟁=테러리즘=폭력=나쁘다로 연결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음. (테러나 무장투쟁에 대해서는 다음에 상술하겠댜)

 

레일라 칼리드는 이 영화에서는 무장 투쟁을 후회하지 않는데, 나중에 입장을 바꿨다고 들었다 (아직 직접 확인하지 않음).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는 것을 이스라엘에 금지당한 채, 레바논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는 그녀는 아들이 둘이 있었다. 그 아들들도 팔레스타인에 있으면 분명 돌을 던지고 감옥에 갔을 거라고 얘기하는 그녀를 보며, 부모로서의 정체성이 한국 부모와 좀 비슷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추한 모습을 뭐하러 찍냐는 그녀, 감독에게 어서 아이를 가지라고 하는 그녀, 무장 투쟁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그녀의 다양한 모습이 재미있었다.

 

* 10월 13일(토) 오후 3시에 여성플라자에서 영화 상영회가 있습니다. 한글 자막과 영어 자막이 제공됩니다. 혼저 옵서예!!!!!!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아서... 조만간 문장은 다시 다듬을 예정...;;;)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