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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유비쿼터스!

아~ 유비쿼터스! 기관지노힘 제57호 김해민 노동자의 힘 회원 2004년 4월 미국의 부시 정부는 2007년까지 어디에서나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ubiquitous)' 환경을 구축한다고 발표하면서, "미 전역에 초고속인터넷을 보급하고 소비자가 다양한 선택권을 갖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참여정부'도 비슷한 소리를 하고 있다. '참여정부'는 IT전략으로 언제 어디서나 디지털 혜택을 누리는 '유비쿼터스 사회' 구현하고 2007년까지 세계 첫 진입을 추진한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에 따르면 "U코리아(유비쿼터스 코리아)는 우리경제가 제 2의 도약으로 나가는 전기일 뿐 아니라 국민생활 전체를 바꿔놓을 일대 문화혁명"이기 때문에 "IT산업을 통해 전 국민이 일자리를 갖는 것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전 국민이 IT산업체의 주주가 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뭐 길래 이쯤 되면 몇 가지 의문이 든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도대체 뭐 길래 '국민 생활 전체를 바꿔놓을 문화대혁명'이라는 것일까? 그리고 왜 노동자-민중은 그렇게 좋은 사회를 가르쳐 줘도 투쟁만 할까? 이러한 궁금증을 뒤로하고 유비쿼터스 사회에 한번 푹 빠져 보자. 유비쿼터스 컴퓨팅(이 용어는 '유비쿼터스 환경' 혹은 '유비쿼터스 사회'와 유사한 말이다)이라는 말은 1988년에 미국 제록스 팰로앨토연구소의 마크 와이저(Mark Weiser) 소장이 처음 사용한 말인데, 앞으로 제 3의 정보혁명의 물결을 이끌 것이라고 한다. 유비쿼터스란 라틴어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어떤 기기로든 언제 어디서나 사용자가 컴퓨터와 연결할 수 있는 환경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컴퓨터의 네트워크뿐만 아니라 휴대전화, TV, 게임기는 물론이고 자동차에서도 심지어 걸어 다니면서도 자연스럽게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통신할 수 있는 환경을 의미한다. 마크 와이저에 따르면 유비쿼터스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첫째, 다수의 작고 값싼 특수 기능의 컴퓨터들이 무선의 네트워크를 통해 완전히 연결된다. 둘째, 이러한 컴퓨터들은 사용자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셋째, 가상공간이 아닌 실제 공간 어디서나 컴퓨터 이용이 가능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인간화된 인터페이스로서 사용자 상황(장소, ID, 장치, 시간, 온도, 명암, 날씨 등)에 따라 서비스가 변해야 한다. 유비쿼터스 환경에 대한 사회·문화적 전망은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한다. 유비쿼터스 사회가 오면 현재 정보화 정도의 불균형에 따라 나타나는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유비쿼터스 사회에 적용되는 기술은 마치 공기와 물처럼 일반 환경 속에 컴퓨터를 내장시켜 언제든지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보화 교육을 받지 못한 취약 계층의 사람들의 소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유비쿼터스 사회의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일 것이라고 한다. 미래에는 버려지는 쓰레기정보까지 컴퓨터에 내장되어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자원을 효과적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치 유비쿼터스 사회로 가면 저절로 사회주의 이상이 실현될 것같이 보인다. 노동자민중은 투쟁을 접고 유비쿼터스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듯하다. 라디오, 무선통신 인터넷 그리고 유비쿼터스까지 100년 전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타고 세상에 나왔을 때, 자본가(와 기술주의자, 주식투자가들)는 개개인이 무선으로 통신할 수 있는 세계를 선전하며, 이 기술이 유토피아를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무선통신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가져다 줄 것이며, 더 평등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줄 것이라고 했다. 당시 기계문명의 역동성을 찬양한 미래파 시인 마리네티(F. T. Marinetti)는 라디오 전파가 정신을 안정시켜주는 특성이 있으며 정신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준다고까지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차 세계 대전 뒤에 상업 라디오 방송이 시작되면서, 각 라디오 방송국들 사이에 치열한 전파 싸움이 일어났다. 강력한 전송탑을 새워 상대 방송국 전파를 방해하는 등 그 피해가 심각해지자 국가는 라디오 주파수에 대한 국가 규제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국가 규제 시스템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나치의 전체주의에 휩싸이면서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라디오 전파를 완전히 국가 선전 도구로 전락시켜 버렸다. 2차 세계 대전 뒤, 자유시장과 전체주의에 대한 반성으로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강화되었고 주파수에 대한 국가 규제가 정당화되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또 한번 변화를 겪게 된다. 오일 쇼크 이후 위기에 처한 자본은 탈규제의 신자유정책을 도입하게 되는데 "공공의 이익"을 위한 국가규제의 비효율성이 공격대상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민간 방송국이 생겨나고 전화시설은 사유화되었다. 이때부터 국가와 자본에 의한 공동 지배가 시작된다. 1990년대 초 본격적으로 도입된 인터넷은 국가와 자본에 포섭된 전파와는 '조금' 다르게 성장했다. 인터넷이 자유시장 이데올로기를 유포하는 기술이기도 하지만 비 상업적인 공유문화와 정치적 행동주의의 메카로서도 성장하고 있다. 자본이 본격적으로 진입하면서 인터넷은 급속도로 상업화의 길을 가고 있지만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경제의 몰락은 인터넷에 대한 자본가들의 기대를 상당부분 사라지게 했다. 그래서 자본가은 다시 국가와 자본에 의해 통제된 차세대 무선 인터넷에 기대를 품고 붐을 일으키고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인터넷을 무선 인터넷으로 전환한다는 의미는 인터넷 속에 내제된 참여와 평등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재산권에 의해 통제되는 개념으로 그리고 분권화된 공간이라기보다는 중앙 통제적인 공간으로 재정립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유비쿼터스 사회' 전망은 바로 이러한 배경을 타고 나온 것이다. 유비쿼터스 사회? 디지털 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으로 유니버설 서비스라는 정책이 있다. 서비스 공급 비용이 높아 경제성이 없는 외딴 지역이라도 이용자는 그 서비스를 이용할 권리가 있기 때문에 공급자는 그 서비스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야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그러나 현재 여러 나라에서 추진하고 있고, 유비쿼터스 사회의 붐을 조성하고 있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유니버설 서비스개념은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눈에 보이지 않는 컴퓨터가 도처에 널려있고 유무선 통신망을 통해 연결되어,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정보나 서비스를 즉시 제공하는 환경이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즉, 컴퓨터가 흘러넘쳐 컴퓨터 가치가 거의 사라지는 사회가 왔다면, 디지털 격차로 얼룩진 이 냉혹한 자본주의가 노동자민중의 투쟁 없이 바뀔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디지털 컨텐츠는 가치가 '0'인 상태로 흘러넘치지만 자본과 국가는 폭력과 경찰력을 동원해서 막고 있지 않은가? 또 유비쿼터스 기술은 특정 장소의 사람을 추적하여 확인하는 장치를 필수로 하는데, 현재 연구 중인 기술 중에 액티브-뱃지가 핵심기술이다. 이 기술은 노동통제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마지막으로 좀더 현실적인 애기해보자.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가면 항공사로부터 '마일리지'라는 선물(?)을 받는다. 이것이 쌓이면 무료 여행도 갈 수 있고, 항공사로부터 받는 서비스도 달라진다. 한마디로 항공사가 고객에게 베푸는 할인 혜택이다. 그러나 그것뿐일까? 한번 다르게 생각해 보자. 항공사는 이 사소한 마일리지 정보를 모아 사람들을 차별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맑스가 '인간은 사회적 관계의 총체'라고 했던가? 유비쿼터스 사회에서는 사소한 개인의 사회적 관계를 담은 정보가 자본가로 집중될 것이다. 이러한 유비쿼터스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는 이제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2004-07-20 15:3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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