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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에서 찾기2004/10

[번역]리눅스 정치(The Politics of Linux)

 이 글에서는 리눅스로 대변되는 오픈 소스 운동이 갖는 의미를 비교적 쉽게 소개되어 있다. 특히 이 글은 자본주의내로 흡수 통합되어 규모면에서 확대되는 오픈 소스 운동과 그것에 저항하는 흐름을 잘 대비해서 설명하고 있다. 이들 흐름을 단순하게 에릭 래이몬드의 오픈 소스 운동과 리차드 스톨만의 자유소프트웨어운동으로 나눌 수 있으나 현재까지 명확하게 분리 대립되고 있지는 않다. 한가지 예로 리눅스의 창시자 리눅스 토발즈는 오픈 소스운동에 참여하고 있고, 데비안 리눅스를 만든 부르스 페렌(Bruce Perens) 같은 사람은 오픈 소스 운동을 만들었다가 다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으로 돌아 가기도 했다. 물론 리차드 스톨만은 지속적으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 좌파들은 이러한 두 흐름의 미묘하지만 “큰”차이를 명확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이 글을 번역하였다. 참고로 부르스 페렌은 그의 짧은 편지 "It's Time to Talk About Free Software Again"에서 왜 그가 다시 자유소프트웨어 운동에 참여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한번 읽어 보길 바란다.

이 글은 2001년 10월에 “전 세계 컨텐츠 생산자여 단결하라! 세계화의 문화정치”라는 제목으로 미국의 맥마스트(McMaster) 대학에서 열린 학회에서 발표되었던 에세이이며, 2003년 5월에  모음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번역문은 노동자의힘 45호-48호까지 연재하였다.(역자 주)

The Politics of Linux

리눅스 정치

태드 프리드만(Ted Friedman), 조지아 주립대학교

유토피아적 공간

글로벌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숙제는 현 자본주의 시스템을 넘어서는 생산과 유통에 대한 대안 모델을 개발하는 것- 점진적 개혁을 넘어선 현 글로벌 시스템에 매우 매력적인 대안을 그려보는 것이다. 이러한 종류의 프로젝트는 단순한 비판이상의 것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을 마비시키는 신자유주의 지배사상(doxa)의 족쇄를 벗어나게 하는 유토피아적 생각을 가진 새로운 정신과 창조성을 필요로 한다.

좌파에 대한 일부 비판론자들은 이런 종류의 유토피아적 생각은 죽었다는 것에 동감하는 듯하다. 러셀 야코비(Russell Jacoby)는 유토피아의 종말: 무관심 시대의 정치와 문화(The End of Utopia: Politics and Culture in an Age of Apathy,2000)에서 그렇게 주장하고 있고, 리처드 로티(Richard Rorty)의 미국 만들기 : 20세기 미국에서 좌파의 생각(Achieving Our Country: Leftist Thought in Twentieth-Century America)에서도 이와 유사하게 애도를 표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우리 주의에 흐르고 있는 유토피아적 생각의 끈들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프레드릭 제임슨(Fredric Jameson)은 그의 에세이 “물화(reification)1)와 유토피아”에서 주장했듯이, 자본주의 문화는 항상 유토피아적 요소를 포함할 수밖에 없는데, 소비자들이 주목하는 대중문화는 이러한 유토피아의 짧은 경험들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유토피아적 요소는 대중문화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유토피아주의는 빠르게 진압되고 저항은 동화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에 비판적 참여를 통해 이데올로기적 환상을 탈신비화 해야 함은 물론이고, 때로는 유토피아적 충격을 확대하고 의문을 제기하며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현 글로벌 시스템에서 우리가 그려볼 수 있는 대안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구하려고 한다면, 대중문화와 하위문화의 실천 속에서 깊이 흐르고 있는 유토피아적 희망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그 곳에 우리가 꿈꾸는 지금보다 나은 세상이 있다.

 만약 모든 대중문화 저변에 흐르는 유토피아주의가 있다면, 그 흐름은 확실히 다른 담론들보다 더 가깝게 표면위로 상승한다. 유토피아적 생각들을 풍부하게 하는 담론들은 컴퓨터 문화 영역에서 발견되는데, 그 이유는 꽤 명확해 보인다. 다름이 아닌 컴퓨터는 많은 사람들에게 미래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컴퓨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의 미래가 어떠하며 우리가 어떤 종류의 미래를 원하는지를 논의하는 것이다. 필자가 다른 글에서도 주장했듯이 컴퓨터 문화는 유토피아적 영역(utopian sphere)과 같이 동작한다 - 유토피아적 영역이란 다른 종류의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공적영역(public sphere) 내부에 안전한 공간을 말한다.

공적 영역에서 수용할 수 있는 정치적 논쟁의 범위는 [기껏해야] 연방준비은행이 0.25% 금리를 인하할 것인지에 관한 내용 정도인데, 컴퓨터에 대한 탐색의 공간은 더 급진적인 전망을 가지고 실험할 여지가 있는 극소수의 공간이다. 그것은 당면한 실용주의적 정당성에 대한 요구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이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시간의 씨앗(The Seeds of Time,1994)에서 오늘날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이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운 것처럼 보인다고 암시했듯이, 컴퓨터에 대한 담론은 자본주의를 초월하는 생각을 가능하게 하는 아주 드문 공간중에 하나이다.



리눅스란 무엇인가?


리눅스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윈도우나 애플사의 매킨토시 OS(Operating System)와 같은 컴퓨터 운영시스템이다. 이들 시스템과 차이점이 있다면 “오픈 소스(Open Source)”라는 점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 “저작권”을 설정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GPL(General Public License)이라는 [저작권]하에 배포하는 것을 말한다. 이 [저작권은]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정, 배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으며, 유일한 제약 조건으로는 이 저작권이 적용된 소프트웨어를 재배포할 때 역시 이 규약에 명시된 것과 동일하게 배포, 수정, 그리고 소스코드를 얻을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Rosenberg) 저작권(copyright)대신에 GPL은 종종 ”카피레프트(copyleft)"로,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종종 “프리웨어(freeware)2)”라고 불린다. 리눅스 소프트웨어는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모인 큰 커뮤니티들이 인터넷을 통해 서로 소통하며 집단적으로 개발하였다. 레드 햇(Red Hat)이나 칼데라(Caldera) 등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들은 리눅스를 패키지 버전으로 관련 문서와 생산 지원과 함께 팔고 있기는 하지만, 동일한 소프트웨어를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리눅스, 넓은 의미에서 오픈 소스에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일반적인 [자본주의 내에서] 그 범주 밖의 사회 경제적 관계를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이 어떻게 생겨나게 되었는지에 관한 것이다. 물론,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 개발은 특별하고 독특한 커뮤니티에 의해 진행된 전문적인 작업이기는 하지만, 리눅스의 수많은 이용자와 개발자의 상상력을 사로잡는다. 그것은  후기 자본주의와 다른 사회적 관계로 구성된 미래의 한 단면, 즉 광범위한 유토피아적 전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실천방법인 오픈 소스 개발은 반드시 경제관계 전반에서 전형(template)이 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모든 제품이 디버그될 필요는 없는 것이고 또 모든 노동자들이 숙련된 리눅스 프로그래머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되지 않고, 상품화되지도 않는 노동이라는 오픈 소스의 비전은 21세기에 우리가 원하는 노동의 모델로 작용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제임슨이 언급한 바와 같이 유토피아의 이면에는 물화(reification)가 있다. 자본주의는 상품화과정을 통해서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닥치는 대로 흡수해 버린다. 급진적 사상은 사유화되고 상품화되어 그들이 비판하고자하는 시스템을 통해서 판매된다. PC가 기술의 민주화를 가져올 도구가 될 것이라는 개발 초기의 비전은 애플사, 마이크로소프트사에 의해 성공적으로 상품화되어 판매되었다. 확실히 PC는 세계를 변하게 했다-헤게모니는 항상 협상의 과정이다.- 그리고 확실히 이전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 기술의 힘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PC가 대중적으로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권력 구조의 변화는 없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거대 음반회사에 “팔리는 것”을 경계하는 인디 락 밴드의 딜레마를 생각해보라. 공적공간에 접근하기 위해서, 당신의 상품을 시장에 팔아야 한다. 그러나 일단 그렇게 하면 당신은 당신이 반대하는 그 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티지아나 테라노바(Tiziana Terranova)는 “자유노동 : 디지털 경제를 위한 문화생산(2000)”에서 이러한 주장을 하고 있다. 테라노바는 오픈 소스 프로그래머, 아마추어 웹 디자이너, 채팅룸 관리자(moderator) 등 사이버공간에서 활동하고 무보수 자원봉사자들의 자유노동이 자본주의 생산에 저항적 대안이라기보다는 디지털 경제에서 자본주의에 통합된 부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들 지식 노동자들은 많은 “컨텐츠”를 제공하는데, 그러나 [그들의 무료 노동은] AOL,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기업들을 위해 웹(Web)을 돈벌이가 되는 곳으로 만들어 주고 있다. 그러나 그 기업들은 [그들의] 노동으로 돈을 벌어들이는데 아무른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앤드류 로스(Andrew Ross)는 “정신노동의 문제(The Mental Labor Problem)”(2000)에서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착취적 조건(주당 80시간 노동, 임시계약직, 의료혜택을 받지 못함)에 대해 순종하고 있다고 언급하면서 이러한 조건들을 미화하기까지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카페인으로 밤을 지새우는 것에 대한 예찬) 이것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포스트 모던한 노동력의 한 부분으로 “문화적 디스카운트(cultural discount)”가 널리 퍼진 예로 볼 수 있다. “문화적 디스카운트”는 창조적 기술전문가들이 다른 직업 보다 낮은 임금을 기꺼이 받으면서 좀더 개인적으로 만족하는 노동을 실현할 기회를 보상 받는 현상을 말한다. 로스는 이 시스템이-보헤미안3)의 시장에 대한 낭만적 거부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시스템- 자본주의 지식 경제를 구성하는 하나의 구조적 요소라고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러한 문화는] 대학교가 대학원 시스템에 의해 착취되면서도, 정신적 삶의 기반을 유지하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수업조교와 관련 노동자들에게 저임금을 줄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리눅스 개발자들이 이러한 창조에 대한 디스카운트(creative discount)의 본질적인 희생자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지적 자본을 기부하고 있고, 그것으로 레드햇과 IBM과 같은 기업은 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픈 소스에는 매우 독특한 점이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상품화 과정과 전유과정을 구조적으로 중지(short-circuits)시킬 수 있었는가하는 점이다. 리눅스 개발자들은 그들의 노동을 [무료로] 기부한다. 하지만 GPL에 포함된 문구는 다시 원상태로 돌릴 수 있는 특별한 탄력성을 가지고 있다. 그 문구의 내용은 아이러니하게도 다른 제한 조항을 추가할 수 없게 하여 개발자의 작품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수정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 것이다. 반면에 문화적 디스카운트는 청중들의 접근권 허용하기 위해 자신의 작품에 대한 통제권을 [단지] 양도하는 행위를 말한다. - 그들의 주요 음악 녹음을 그들의 앨범으로 제작할 수 있는 소유권을 양도해야 하는 모든 음악가들을 생각해 보라- [그러나 이와 다르게] 리눅스 개발자들은 창조적 통제의 지속적 보장에 대한 답례로 그들의 보상을 포기하는 것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같은 기업들은 이 시스템이 그들의 현 지적재산권 영역을 근본적으로 위협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사는 오픈 소스 커뮤니티에 대한 색깔시비를 벌이고 있다. CEO 스티브 발머는 리눅스를 “공산주의“로 언급하고 있고(Geene 2000), 한 기자에게 ”리눅스는 지적재산권 체제 내에 기생하여 자신이 접촉하는 모든 것에 달라붙는 암적 존재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Lea 2001). 윈도우 책임자인 짐 알친(Jim Allchin)은 ”나는 미국사람이다. 미국식으로 믿는다. 만약 정부가 오픈 소스를 장려한다면 그것은 그 위협을 이해하는 정책입안자들에 대해 우리가 충분히 교육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Bloomberg News 2001).

오픈 소스 정치

리눅스가 자본주의적 관계에 유토피아적 대안을 제공해 준다면, 이 모델은 무엇으로 구성되어있는가? 또 오픈 소스 개발의 정치는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들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리눅스의 의미, 즉 이 고무적인 프로젝트로부터 교훈을 이끌어 내고 설명하려는 이야기들, 자체가 바로 투쟁의 과정이다. 필자가 리눅스에 대한 여러 가능성들을 찾아내기 위해 네트를 찾아 내려갔을 때, 놀라울 정도로 서로 경쟁적이며 부적합한 설명들을 접할 수 있었다.

오픈 소스를 공산주의, 사회주의, 무정부주의, 학술연구 형태, 선물 경제 이랜스(e-lance) 경제4) 그리고 자유시장의 승리라고 서술되고 있다.- 몇몇 공통된 생각들은 그들이 인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부적절하지만, 물론 이 모든 설명들이 모두 부적절한 것은 아니다. 리눅스, 이 놀랍고도 고무적인 성공 이야기의 중요성을 정의하는데 현재에도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금부터 리눅스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두 가지 개념, 즉 에릭 래이몬드와 리차드 스톨만에 의해 제기되고 있는 비전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래이몬드와 스톨만은 리눅스의 개발에 핵심적 업적을 남긴 컴퓨터 프로그래머라는 점에서 많은 공통점이 있다. 스톨만은 리눅스의 전신인 GNU 운영 시스템을 개발하였고 레이몬드는 페치메일을 비롯한 많은 핵심적인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여 리눅스에 도움을 주었다. 두 사람은 리눅스의 지지자이자 이론가이기도 하다. 가장 영향력 있는 그들의 에세이, 스톨만의 “GNU 선언문”, 레이몬드의 “성당과 시장(The Cathedral and the Bazaar)”은 많은 사람들을 동참시키는데 성공하고 있다. 두 사람을 안토니오 그람시의 용어를 빌리자면 소위 “유기적 지식인”으로 볼 수 있다- 그들은 커뮤니티 외부에서 그 커뮤니티를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라 그들이 서술한 그 커뮤니티 내에서 나왔고, 자신의 커뮤니티와 바깥세상을 위해서 그들 자신의 커뮤니티를 명확하게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물론 필자는 그 커뮤니티 바깥쪽에 있는 학자이다. 그러나 이것이 리눅스에 대해 정리하는 작업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점이 리눅스 커뮤니티 내부의 목소리를 정당하게 대표하고자 노력하게 한다)

래이몬드와 스톨만이 리눅스 프로그래머로 같은 커뮤니티 내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서로 그들의 프로젝트를 보는 입장과 정치적 견해는 서로 반대되며 대립하고 있다. 래이몬드는 오픈 소스를 자유시장의 승리로 찬양한다. 그리고 오픈 소스를 소프트웨어 개발에 효율적인 도구로서 흥미를 가진다. 반면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에 대한 전망을 지적재산권 시스템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서 찾는다. 래이몬드와 스톨만의 견해에 대해 각각 "자유주의자“와 ”공산주의자“의 딱지를 종종 붙이는데, 그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래이몬드와 스톨만 둘 다 해커 문화의 고유한 자유주의적 가치로부터 같이 출발했다고 볼 수 있지만, 전혀 다른 곳에서 끝을 맺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래이몬드를 기업-자유주의자(corporate libertarian)로 스톨만을 좌파-자유주의자(left-libertarian)로 부를 수 있다. 게다가 필자는 확고한 스톨만 캠프의 지지자이다. 이 글에서 마지막으로 래이몬드 접근의 한계와 스톨만 접근법의 장점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밝히고자 한다.

우선 래이몬드의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자. 에릭 래이몬드는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도구 개발 분야에서 거의 20년 동안 활발하게 활동해온 소프트웨어 개발자이다. 그는 역시 해커 언어학자이자 인류학자이며, 새 해커 사전(New Hacker's Dictionary)을 편찬했으며“해커 문화(Hackerdom)의 짧은 역사“라는 널리 읽히는 책을 지필 하기도 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래이몬드는 아마도 가장 영향력 있는 오픈 소스의 이론가가 되었다. 래이몬드 자신이 세운 역할은 마이크로소프트사와의 전쟁에 승리하고 리눅스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기 위한 시도로 오픈 소스에 회의적인 사업가들에게 설득하는 것이다. 그의 에세이 "성당과 시장“은 넷스케이프사로 하여금 네비게이트를 오픈소스로 하기 위한 확신을 주었다.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내부 문서인 ‘할로윈문서’에 대한 그의 폭로와 분석은 이 비히무스 괴물5)이 리눅스를 실제로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뉴스로 해커들을 고무시켰다. 그의 에세이 “성당과 시장”은 현재 오픈 소스 출판사인 O'Reilly & Associates에 의해 출판된(1999), “성당과 시장”이라는 제목의 그의 에세이 모음집에 수록되어 있다.

레이몬드의 정치는 해커 자유지상주의 (급진적 자유주의 libertarianism)로 잘 알려져 있다.- 이것은 리차드 바버룩(Richard Barbrook)과 앤디 캐머론(Andy Cameron)(1998)에 의해 “캘리포니아 이데올로기”로 설명하고 있고 파울라 바숙(Paula Barsook) (2000)은 "사이버 이기주의(cyberselfishness)"로 붙이고 있다. 해커 자유지상주의는 무엇보다도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가치를 두고 있고 전통적으로 자유를 극대화시키는 주체로 족쇄 풀린 자본주의-시장을 찬양한다. 물론 자유지상주의는 모든 권력의 집중화에 회의적이지만 기업 권력보다도 국가권력에 대해 더 많이 우려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해커 자유지상주의는 이러한 경향을 따르면서도, 특히] 마이크로소프트사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의 독점이 자유시장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해커의 자유 지상주의는 소수의 자산가들에 의한 방대한 부의 축적을 위한 이데올로기적 정당성을 제공해 주는 네트 경제에 적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성당과 시장”을 읽었을 때 특히 놀라운 것은 래이몬드가 오픈 소스 개발 과정을 자유시장의 골격에 적합하게 맞추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래이몬드의 논문에서 구성된 은유는 성당 건축의 수직적 명령구조와 경쟁적이며 분권화된 시장(bazaar) 세계와 대비시키고 있다. 물론 시장(bazaar)에서의 상인은 상품을 팔아서 이윤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그들의 시간을 [무료로] 기부하는 자발적 봉사자들이다. 이러한 모순된 상황을 해명하기 위해, 래이몬드는 “선물 경제”를 오픈 소스 개발을 설명하는데 도입하였다.

선물경제로서 오픈 소스 개발의 개념은 흥미 있는 개념이다. 선물경제의 개념은 대부분 리차드 바버룩의 에세이 “하이테크 선물 경제”(1998)에 잘 언급되어 있다. 선진국가 내에서 대부분의 정치가와 기업 총수들은 자본주의의 미래가 정보의 상품화에 있다고 믿고 있다. ... 그러나 다가오는 정보화 사회의 최선두에서는 화폐-상품 관계가 아나코-꼬뮤니즘의 실존 형태에 의해 만들어지는 관계로 보조적 역할로 밀려나고 있다. 대부분의 네트 이용자들에게 네트는 그들이 서로 일하고 놀고 사랑하고 배우고 토론하는 곳이다. 물리적 거리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그들은 정치나 화폐의 직접 중재 없이 서로 협력하고 있다. 그들은 저작권에 도 무관심하여, 정보에 대해 [비용을] 지불할 생각도 없이 서로 주고받는다. 사회적 결합을 위해 국가나 시장이 없이도 시간과 생각의 선물에 의해 만들어지는 상호 책임을 통해 네트워크 커뮤니티는 형성된다.

[이상과 같이] 선물 경제는 상품화 관계와는 뚜렷한 차이가 있는데, 래이몬드는 바로 이점을 무시하고 있다. 래이몬드는 선물경제를 "탈-희소성(post-scarcity)"이라 불리는 환경에 의해 확장된 자유시장으로 보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탈 희소성” 환경에서 해커들은 더 이상 화폐를 위해 경쟁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대신에 명성- 혹은 그들이 자아 상승(ego boost)라 부르는 “에고부(egoboo)6)"을 위해 그들은 경쟁한다. 이 용어는 과학소설 팬들의 세계(science fiction fandom)에서 빌려온 개념이다. 진화 심리학7)의 가정을 빌어 그는 ”사람들이 [해커]의 동기를 “이타적”이라고 하지만 이타주의 그 자체가 이타주의자들의 자아를 만족시키는 한 형태라는 사실을 무시하는 것이다"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동어 반복일 뿐이다; 만약 사람이 모든 자신의 선택을 불가피하게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미리 정한다고 가정하면, 이기심이 없는 행동으로 보이는 것조차도 이기적인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래서 예전에 미숙한 철학자들(old freshman philosophy)에 따르면 테레사 수녀도 희생으로 다른 사람들을 보살핀 것이 아니라 그녀 자신의 이기심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라 보았다. 이런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 어떤 환경에서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심리 중에서 이타주의가 부각될 수 있는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래이몬드에게 그 대답은 “탈 희소성” 경제이다. 여기서 화폐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다른 것으로 그것을 대신하는데, 이러한 래이몬드의 견해는 기업 자유 지상주의 특유의 몰역사주의와 자기중심주의를 드러내고 있다. 현재 래이몬드는 “탈 희소성”에서 매우 특별한 어떤 것을 주장한다. : “디스크 공간, 네트워크 대역폭, 컴퓨터 성능”이 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그가 무엇을 당연하게 가정하고 있는지를 고려해봐야 하는데, [그가 당연하게 가정하고 있는 것은] 바로 사회 기반 시설이다. 오픈 소스 연구는 국가지원 연구 대학에 의해 장기간 보조금에 의존하고 있고, 인터넷은 미 국방성의 연구계획기관(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의 지원 하에 발전되었다.

더 놀라게 하는 것은 래이몬드의 글 성당과 시장의 서문에서 가볍고 대담하게 “희소 경제를 넘어서는 21세기의 정보 과잉 시대“라고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래이몬드는 미국의 방대한 부분만을 고려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나머지 세계, 즉 컴퓨터 능력이 매우 희귀할 뿐만 아니라 삶의 필수 조건이 되는 [제 3] 세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현 자본주의 체제에서 탈-희소성에 근접하는 어떤 움직임도 찾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래이몬드는 탈-희소성 경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반면에 리차드 스톨만은 탈-희소성을 투쟁해야하는 목표로 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달성하려고 한다면 경제 구조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으로 스톨만의 배경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해 보자. 스톨만은 스티븐 레비(Steven Levy)의 Hackers(1984)에서 언급한 불멸의 MIT 인공지능 연구소 소속의 유명한 프로그래머의 일원이었다. 스톨만은 항상 소프트웨어를 공동체의 자산으로 보았기 때문에, 소프트웨어의 사유화를 추구하는 MIT를 1980년대 초에 떠났다. 곧이어 스톨만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을 창설하고 유닉스(UNIX) 운영체제에 대한 오픈 소스 버전 개발 계획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을 GNU라 명명했다. GNU는 "GNU's Not Unix(GNU는 Unix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해커들이 자주 사용하는 ”자기 호출(재귀) 약어(recursive acronym)“로 일종에 유머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기를 정의하며 끊임없이 반복되게 하는 것을 말하는데, GNU가 다시 GNU's Not Unix로 반복되는 것을 의미한다. GNU는 여러 리눅스의 연속적인 개발에 가장 큰 기초가 되었다. 스톨만은 대안적인 저작권으로 ”카피레프트(copyleft)"-어떤 사람이 개발한 자유소프트웨어를 사유하거나 착복할 수 없게 하는 방식-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앞서 언급했듯이 스톨만은 래이몬드와 같은 자유지상주의 틀에서 시작했지만, 스톨만은 그것을 더 밀고 나갔다는 점이 래이몬드와 다르다. 아이디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한 그의 투자는 정보 소유에 대한 훨씬 근본적인 물음에 이르게 했다. 스톨만이 Byte 잡지에서 “나는 일반적으로 정보와 지식에 사람들이 접근하는 방식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지식을 소유하려하는 것, 지식과 정보의 사용허가를 통제하려는 것 혹은 그것을 공유하려는 것을 막는 행위, 이 모든 것은 일종에 파괴행위(sabotage)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사람의 이익을 위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을 피폐하게 하는 행위이다.“고 언급한 바 있다. 스톨만은 소프트웨어 한 단위를 빵 한 조각에 대비한다. 만약 누군가 내 빵 한 조각을 가지고 간다면 나는 그 빵을 다시 가질 수 없다. 그것은 제한된 자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무한히 복제할 수 있는 빵과 같은 것이다. 빵을 나누어주어도 당신은 여전히 빵을 가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독점하는 행위를 스톨만은 ”소프트웨어 매점(software hoarding)“이라고 불렀다

스톨만의 이 추론에 고무적인 것은 해커 윤리 중 최고의 덕목인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에 대한 존중과 세상을 변혁하려는 이상주의적 욕망을 포괄하는 그의 방법이다. 그는 이 추론을 논리적인 결론으로 밀고 나가 평등주의적이며 공동체주의적 비전에 도달하고 있다. [이제] 그 비전은 자본주의에서 신성시하는 사유재산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사이버이기주의를 벗어나 대안적 사이버토피안(cybertopian) 전망을 제시해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이야 말로 많은 오픈 소스 개발자들과 이용자들의 사명감에 책임 있는 견해로 생각된다.

물론 자유소프트웨어의 에릭 래이몬드 버전8)은 래드햇의 밥영과 같이 새로운 리눅스 기업가들에게 더 인기가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비록 그것이 더 낮은 이윤을 제공하고 그것에 익숙해질지라도, 그것은 보편적 자본주의에 훨씬 더 적합하다. 그러나 카피레프트 시스템의 천재 스톨만 덕분에 그의 생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이 자본 친화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더라도 오픈 소스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지적재산권 영역에 도전하고 있고 주목할 만한 유토피아적 대안을 제공하고 있다. 그 대안적 힘은 냅스터와 같은 유사한 도전에 대한 관심의 폭발로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GNU 선언문에서 스톨만은 자신의 미래상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에드워드 벨라미9)( Edward Bellamy), 벅민스터 풀러10)(Buckminster Fuller)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11)의 전통으로 내려오는 기술 유토피아주의의 전망과 유사하다. 유토피아적 환영은 실제 삶으로부터 눈멀게 하는 이데올로기이며, 환타지일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 우리들을 미래의 목표로 향하게 하고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도구를 제안하고 있다.

벨라미의 뒤돌아보면Looking Backward은 아마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초기에 진보적인 개혁에 영향을 주었다. 마찬가지로 풀러는 1960년대 신좌파에 영감을 주었다. 이와 유사하게 스톨만의 미래에 대한 견해로부터 필자는 용기를 다시 얻는다. “결국 프로그램들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탈-희소성 사회로 향하는 한 걸음이다. 그 사회는 누구도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되게 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법률제정, 가족 상담, 로봇 수리 그리고 소행성의 움직임에 대한 예상과 같은 필수 업무를 위해 일주일에 10시간 정도 필요 노동을 한 후에 사람들은 프로그래밍과 같은 재미있는 활동에 집중할 것이다. “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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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주) 물화(reification) 서구 비판사회이론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간주되는 루카치(Georg Lukacs)가 처음 사용 한 용어로서, 인간가치 마저 돈의 가치로 환산되는 물신주의가 전 사회 그리고 인간의 의식에까지 침투, 확산되는 과정을 물화과정이라고 설명한다.

2) (역주) 정확하게는 Free software(자유소프트웨어)이며, 이를 줄여서 freeware라고도 한다(출처: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그러나 일부 논자는 GPL이 적용된 자유소프트웨어(free software)와 구별해서 ‘공짜’ 프로그램이라는 의미로 freeware를 따로 불리하기도 한다.

3) (역주) 보헤미아는 체코의 북서부를 지칭하는 말로, 떠돌이 집시들이 많이 살던 곳이었다. 1984년 소설가인 윌리암 멕피스 세커리는 세속을 멀리하는 집시의 생활방식이 예술가와 유사하다하여 그의 작품에 예술가를 보헤미안이라고 처음 사용했고, 이를 계기로 보헤미안은 사회 관습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방랑 생활을 하는 예술가를 지칭한다.

4) (역주) 기업에 속해 있지 않은 독립적인 인터넷으로 연결된 고급 전문 인력을 통해 만들어지는 새로운 형태의 경제를 지칭하는 용어

5) (역주) 마이크로소프트사

6) (역주) 다른 팬들 사이에서 자신의 평판이 높아지는 것

7) (역주) 사람의 마음을 적응의 산물로 간주하는 학문이 진화심리학이다. 래이몬드는 성당과 시장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나는 리누스의 법칙을 설명하기 위해 .....생물학과 경제학에서의 적응계에 비유하는 것이 더 강력한 비유라고 할 수 있다. 리눅스 세계는 많은 점에서 생태계나 자유시장과 같이 행동한다. 일단의 이기적인 에이전트들이 효용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애쓰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수정하는 자율적인 질서를 만들어 내며 이것은 중앙통제가 이룰 수 있는 어떤 결과보다 더 정교하고 효율적이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이해의 원리''를 찾아낼 수 있다”.

8) (역주) 이것을 스톨만의 자유 소프트웨어 운동과 대비되게 오픈소스 운동이라 부른다.

9) (역주) 에드워드 벨라미(1850~1898) 유토피아 소설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유토피아 전통은 항상 이상적 세계를 인간 사회와 동떨어진 세계, 우주나 땅속을 배경으로 했으나 그의 소설속 시간여행에서는 2000년 미국을 유토피아로 설정하였다. 1888년에 펴낸 「뒤돌아보면 Looking Backward」로 유명하다.

10) (역주) 벅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 1895-1983, 사진, 추천사이트)는 건축가이자 엔지니어로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으려는 목적의 혁명적인 기술 디자인으로 특히 유명하다

11) (역주) 아이작 아시모프(1920 ~ 1992) 미국 생화학자이자 유명한 공상과학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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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인터넷 - 칠레의 추억

이글은 노동자의 힘 제 39호에 실린 글입니다.  --한 두어달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로운 글을 적지 못할 듯합니다. 그래서 예전에 적은 글을 시간날때 마다

update할 예정입니다.  

 

사회주의 인터넷 - 칠레의 추억 

1970년 칠레에서는 새로운 실험이 시작되었다. 선거를 통해 사회당과 공산당 그리고 일부 부르주아 정당 연합인 민중연합(Unidad Popular)의 아옌데 후보가 36.3%를 획득하여,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것이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당시 아옌데 정부에 남겨진 것이라곤 파탄에 빠진 공장과 탄광 그리고 미국의 살인적인 경제 봉쇄 정책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옌데 정부는 경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경제에서 사회주의 경제로 평화적 전환을 추진하였고, 이 과정에서 소련식 중앙집권적 관료주의를 답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과제로 제기되었다. 칠레 정부는 사회주의 경제 추진과 함께, 경제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서 현 경제 상태를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고, 중앙 집중적인 관료주의를 피하기 위해서는 분권적이며 민주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이 필요했다. 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칠레 정부는 컴퓨터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흥미로운 실험을 시작하였는데, "프로젝트 사이버신(Project CyberSyn, Cybernetics synergy)"이 바로 그것이다(1971).

프로젝트 사이버신

프로젝트 사이버신은 스테포드 비어(Stafford Beer)의 사이버네틱스(Cybernetics) 이론에 따라 칠레의 국가 경제에 대한 경영구조를 통합하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구성하는 것이었다. 사이버네틱스란 정보가 어떻게 수신, 송신, 저장, 재생되며 다시 순환된 새로운 정보가 과거의 정보와 결합하여 자동 수정되는가를 연구하는 분야로 통신기술과 정보처리기술을 바탕으로 구현되고 있다. 스테포드 비어의 사이버신 시스템은 인간의 신경 구조 동작을 모델로 삼고 있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신경구조르 뇌에 의해 통제되는 수직구조 시스템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으나 그렇지않다. 오히려 인간의 신체는 탈 중심적이며 잘 분권화 되어 있는 네트워크 구조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스템은 하부 시스템에 최대한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국가 전체를 아우르는 네트워크 시스템을 정보 후진국 칠레에서는 완성할 수 없으며, 설사 완성된다고 하더라도 국가 경제에 대한 방대한 정보 처리는 시스템 과부하 문제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걱정들은 이 실험에서 장벽이 되지 못했다. 이전 기독교 민주당 정부가 창고에 처박아 놓은 텔렉스(telex)1)와 극초단파 라디오는 훌륭한 통신 수단이었다. 이 장치들을 전국의 공장들에 배치하여 네트워크를 구축하였고, 그것을 다시 2대의 중앙컴퓨터가 있는 칠레 수도 산디에고에 연결하여, 전국적인 네트워크 시스템을 형성할 수 있었다. 스테포드 비어와 그의 동료들은 이 네트워크 시스템과 그의 이론을 바탕으로 1972년 10월에 부분적이기는 하지만 초기형태의 전국적인 사이버신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사이버신 시스템의 주요 내용은 각 공장-산업 단위에서 노동자들의 협동 경영을 통해 올라온 전국적 규모의 정보를 통계 처리하여 쉽게 가공된 정보로 가공하여 노동자들이 경영에 직접 참여하여 이용할 수 있게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또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불만사항과 요구사항을 정부에 전달하는 통로로도 사용되었다. 사이버신 시스템은 모든 기업들에 대해 노동자-민중들이 언제든지 산디에고에 있는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서 접속할 수 있게 허용하는 열린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열린 구조는 노동자, 민중과 정부와의 관계를 예전 보다 더욱 평등하고 굳건한 관계로 전환시켜 주었다.

특히 위기상황에서 이 시스템은 더욱 진가를 발휘했다. 1972년 칠레전역에 국영 운송기업 설립을 반대하는 기업주들이 공장폐쇄를 단행했을 때 이 시스템은 각 지역의 식량과 연료 상황을 알려 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아옌데 정부는 빠른 대응을 할 수 있었고 자본가들과의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 할 수 있게 해주었다.

아옌데 정권의 배신과 몰락

그러나 문제는 아옌데 정부에 있었다. 부르주아들의 지속적인 파업과 미국의 경제 봉쇄정책에 굴복한 아옌데 정권은 노동자들을 배신하고 군부와 타협하여 연립내각을 구성해버린 것이었다. 아울러 국유화, 농지개혁을 중지하고 중소 부르주아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투자의욕을 고취하기 위한 정책을 입안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영향은 사이버신 시스템 설계에도 그대로 영향을 미쳤는데, 초기 참여 과학자들과 다른 지향을 갖는 과학자들이 이 시스템 설계에 참여하게 되었고, 이들은 종종 초기 설계자들과의 마찰을 일으켰다.

1973년, 아옌데 정권의 이러한 정책들은 노동자들의 불만을 증폭시켰고 아울러 미국의 경제 봉쇄와 자본가의 계속된 파업으로 정국은 더욱 불안해졌다. 스테포드 비어는 산디에고를 떠날 것을 권고 받기도 했지만, 그는 숨어 다니면서까지 지속적으로 사이버신 시스템 설계에 참여하였다. 그 결과 1973년 9월 10일, 라모네다 대통령궁에 새롭게 갱신한 시스템을 설치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바로 그 다음날, 1973년 9월11일, 미 CIA의 조직적 지원을 받은 칠레 군부는 대통령궁에 포탄을 퍼붓는 것을 시작으로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 스테포드 비어는 다행히 몸을 피했지만, 곧 아옌데의 사망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칠레의 폭압적 군사정권에 의한 비극은 시작되었다. 칠레의 군사 정권은 이 실험적 시스템을 이용하기 위해 설계자들을 불러 조사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개방적이고 평등한 특성을 가진 사이버신 시스템은 강압적 군사정권과는 태생적으로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결국 이 실험은 75%만 국가 경제 시스템을 사이버신에 집적한 미완의 상태에서 파괴되었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잊혀져갔다.

그 후 30년

아옌데 정권의 이 실험을 어렴풋하게 기억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빅브라더를 만든 것이 아니냐는 근거 없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이버신 시스템은 초기 아옌데 정권의 사회주의 이념과 칠레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민주 집중 원리와 자주관리를 바탕으로 노동자 권력을 강화하고자 하였고,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기 위해 설계된 시스템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이 시스템에서 진정한 약점은 그 프로젝트가 오직 위로부터 추진되었다는 점과 임금노동과 이윤을 기초로 하는 경제에 밑바탕을 두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지금, 칠레 사회주의 정권시기에 이러한 약점을 극복하기 위한 실마리가 있었다는 점이 우리를 안타깝게 한다.

당시, 노동자들은 125개의 공장을 점거하고 자주관리를 실험하고 있었다. 일부 보고에 따르면 노동자가 자주관리 하는 공장이 개인 소유의 공장보다 매우 생산적이고 효율적이며 결근 비율도 훨씬 낮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파업이 치열했던 1972년에 노동자 자주관리운동은 자본가들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생산물을 노동자 스스로 통제하기 위해 노동자 조직인 '꼬르돈 인더스트리얼(cordones industriales)'을 건설하였다. 그들은 직접선거로 대표를 선출했고 소환권을 보장했다. 이 조직은 일종에 초보적 소비에트 혹은 노동자 평의회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상상해보자. 만약 옌데 정부가 이들 노동자들과 같이 했다면,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자주관리 운동과 위로부터의 사이버신 시스템 계획이 결합할 수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칠레에서 '사회주의 인터넷'을 볼 수 있었을 것이고, 지금의 인터넷 역사는 다시 써야 할지도 모른다.

 

1) 전화의 자동 교환과 인쇄 전신의 기술을 이용한 기록 통신 방식. 다이얼 등으로 상대 가입자를 호출하며 인쇄 전신기에 의해 통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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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그리고 ...... - 60나노급 플래시 메모리 개발의 의미

 무어의 법칙, 황의 법칙 그리고 ......

- 60나노급 플래시 메모리 개발의 의미


추석 전 9월 20일, 신문사 방송국할 것 없이 모든 언론사들이 일제히 '삼성 전자가 60 나노 기술을 적용한 8기가 비트 낸드(NAND)형 플래시 메모리((Flash memory)를 개발했'음을 보도하였다. 또 이 기술은 '무어의 법칙'을 능가하는 성과라고 한다. 휴대폰으로 노동자를 감시하고, 무노조의 신화를 위해 노동탄압을 일삼는 삼성에서 해마다 첨단기술의 성과를 자랑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삼성의 이러한 면을 두고 노동탄압에 대한 면죄부를 주기도 한고, 또 일부에서는 무노조이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가 가능하다고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번 삼성의 성과에 대한 '속뜻'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듯하다.

 

우선, 상식부터

60 나노기술에서 '나노'란 '니나노'가 아니라, ‘나노미터‘를 줄인 말로 길이의 단위이다. 1 미터가 100 센티미터이듯, 나노미터로 환산하면 10억 나노미터가 된다. 즉 1 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로, 대략 머리카락 지름의 8만분의 1 정도 되는 길이다. 물론 눈으로 볼 수 없고 고급의 특수 현미경으로만 관찰할 수 있는 아주 미세한 길이이다. 그러므로 60 나노기술이란 단순히 60 나노미터 폭을 갖는 미세한 전기 도선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을 말한다. 또 플래시 메모리란 디지털 사진기나 캠코더 등에 흔히 사용되는 정보 저장장치로 반도체로 만들어진 휴대형 하드 디스크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 종류로는 낸드(NAND)형과 노어(NOR) 형이 있는데, 낸드형은 많은 정보를 저장할 수 있지만 속도가 느리고 노어형은 정보저장량은 적지만 속도가 빠르다. 이번에 개발된 8 기가(Giga)비트 플래시 메모리 칩으로는 16 기가 바이트 메모리 카드를 만들 수 있는데, 이 용량은 대략 MP3 파일 기준으로 340시간 분량(4000여곡)을 저장할 수 있는 양이다.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

지난 30 여 년간 반도체 칩의 개발 속도는 무어의 법칙과 아주 잘 맞았다. 무어의 법칙이란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한 것으로,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 6개월마다 2배씩 증가하지만, 가격은 변하지 않는다는 법칙이다. 이 법칙의 핵심은 반도체 부품의 크기를 줄이는 기술인데, 반도체 부품의 크기를 작게 하면 속도를 향상시킬 수 있고 반도체 칩의 크기도 작아져 단가를 낮출 수 있다.

그런데 이번에 삼성 발표한 기술은 이 무어의 법칙을 능가하여 (1 년 6 개월이 아닌) 1년에 2배씩 집적도가 증가하였다고 한다. 삼성전자는 2001년 업계 최초로 반도체 제조공정에 100나노기술을 적용한 1기가 플래시 메모리 개발에 이어 2002년 90 나노급의 2 기가 메모리를 발표해 무어의 법칙을 능가한 바 있다. 이에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 총괄사장은 2002 년 세계 3대 반도체학회 중 하나인 ISSCC(International Solidstate Circuit Conference)에서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하면서. “반도체 집적도는 1 년에 2 배씩 증가하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 등 이른바 ‘Non-PC’ 분야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이를 ‘황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황의 법칙이 발표된 후 '희한하게도' 이 법칙에 따라 2003년 70 나노급의 4기가에 이어 2004년에 60 나노급의 8기가 플래시메모리를 실현하는 데 성공하였다.


 

플래시 메모리 시장에서 자본의 경쟁

올해 플래시메모리의 세계시장 규모는 107 억 달러 정도이고, 내년에는 175 억 달러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시장에는 미국의 인텔,  일본의 도시바, 한국의 삼성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미 삼성보다 앞서 도시바와 인텔은 각각 지난 6월과 9월초에 65나노급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리고 뒤이어 삼성이 9월말에 60나노, 정확하게는 63나노급 기술을 확보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 처럼 이 분야에서 경쟁은 불과 몇 달 차이로 매우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개별 자본가가 기술개발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이면 이 상품의 개별 가치는 사회적인 가치보다 낮아지게 되어 더 많은 이익을 높일 수 있다. 이를 '특별잉여가치'라고 한다. 이는 자본의 투자를 통해 얻는 이익이 아니라 기술개발을 통해 노동시간을 단축하지만 잉여 노동시간을 연장시킨 결과로 얻어진다. 그러나 기술개발이 보편적으로 확대되어 너도 나도 생산성이 높아지면 특별잉여가치는 자동적으로 소멸하는데, 이것이 자본가가 끊임없이 기술혁신을 통해 초과이윤을 얻도록 자극하는 계기가 된다. 무어의 법칙에 따르면 특별잉여가치가 자동적으로 소멸하는데 걸리는 기간이 1년 6개월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짧은 기간은 자본의 기술개발 경쟁을 매우 치열하게 한다.

예를 들어 1 기가급 메모리 카드가 현재 10 만원 대인 반면 내년 말쯤에 본격 생산될 것으로 16 기가급 메모리카드는 같은 크기(Size)를 가지면서도 가격이 수백만 원을 웃돌 것이라고 예측되고 있다. 그리고 이 기간이 지나면 순식간에 가격이 하락할 것이다. 그러므로 자본가는 제품을 먼저 내놓아 초기시장을 선점하고 생산량 향상에 따른 원가 경쟁력의 확보를 위해 ´나노 기술´ 적용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미 플래시메모리로 경쟁하고 있는 3사의 경우 반도체 기술이나 반도체 장치에서 세계적인 수준에 와 있다. 그러므로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어느 회사가 더 과학기술 노동자들의 (절대적 혹은 상대적) 노동강도를 강화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이 잘 맞는 이유

일반적으로 과학기술 노동자들의 노동의 결과는 노동의 시간을 통해 평가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자본가는 노동 시간 관리 이외에 다양한 노동자 관리기법이 적용하고 있다. 우선 인금관계를 개별화하여 팀간 혹은 개인간 사이의 경쟁을 제도화하고 있다. 이 방식에는 개인별로 업무성과의 목표를 정해 주는 것, 개인별로 인사고과를 하는 것, 상시적으로 인사고과를 하는 것, 개인별로 차등 임금인상하거나 개인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상여금을 수여하는 것, 그리고 개인별로 경력을 관리하는 것 등이 있다. 또 책임감을 강하게 심어주는 전략도 사용하는데, 대표적으로 반미, 반일 등 민족 감정에 호소하기도 하고, 연구기획, 개발 단계 등 다양한 경영 참여를 통해 마치 사업주가 된 것처럼 무한책임을 부여해 자율적인 자기-착취로 나아가게 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성에 입각한 복종' 기법 같은 것인데, 책임지는 직위에 있는 간부들뿐만 아니라 그 밖의 일반적인 노동자들의 경우에도 작업 속에서 정신적육체적 에너지를 초과 투입하도록 강요함으로써, 또 매우 시급하고 절박한 상황 속에서 일하는 것을 강요함으로써, 제반 [인간적인] 기준 내지 규준들과 집단적인 연대를 약화시키거나 절멸시키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있다(*).

또 과학기술 노동의 특성상 시간을 많이 준다고, 또 노동자의 헌신을 이끌어 낸다고 해도 자본이 원하는 시기에 재품을 개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본가는 ‘이성에 입각한 복종’과 함께 더 강력한 '강압적 복종 방식'을 병행한다. 강압적 복종 방식이란 무조건 개발 시간을 정해놓고 그 기간 내에 개발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이다. 언뜻 보기에는 고전적인 방식과 유사한 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고전적으로 납기를 맞추어야 하는 노동의 경우 노동시간에 따라 생산량 증가가 예측 가능하므로 과학적인(인간적인?) 관리(착취)가 가능하다. 그러나 기술 개발 노동은 그 개발 기간을 쉽게 예측할 수 없다. 이러한 특성은 개발 기간 외에는 아무런 관리 기준 없다는 뜻으로 한마디로 ‘무조건 이 기간 내에 개발하라’는 식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바로 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이다. 이 법칙이 지난 30년 동안 귀신 같이 맞았던 비밀은 자본가들이 그 법칙이 맞게 과학기술 노동자들을 강도 높게 착취했기 때문이지, 자본가들의 뛰어난 미래 예측 능력 때문이 아니다.

반도체 칩이 극도로 더욱더 미세해짐에 따라 그만큼 설계도 어렵고 생산 공정단가도 올라가고 있다. 이제 이 기술은 극한까지 와서 45 나노이하의 공정에서는 황의 법칙(혹은 무어의 법칙)을 맞추기가 매우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자본가는 공정 단가가 상승하면 할수록 자본간의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개발기간을 더욱 단축하고 싶어 한다. 이러한 상황이 격해질수록 과학기술자들의 노동 강도는 2배, 3배 더 증가될 것이다.


 

인텔과 삼성의 공통점

인텔의 공동창업자 무어 회장은 무어의 법칙을 발표하였고, 삼성의 사장은 황의 법칙을 발표하였다. 인텔과 삼성의 공통점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무어와 공동으로 인텔을 창업한 로버트 노이스는 “무노조는 우리 회사를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노조가 있는 회사의 규칙을 우리 회사에 적용한다면 회사는 곧 망할 것이다 우리 회사에서 무노조는 경영의 제일 원칙이다. 운영하는데 유연성이 필수적이다. 국가를 위한 큰 희망은 우리 경제를 마비시키는 노동자와 경영자의 깊고 깊은 분열을 피하는 길이다”라고 강변하고 다녔다고 한다. 삼성의 이병철 회장의 무노조 신념은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삼성의 황사장은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 트랜지스터를 발명한 윌리엄 샤클리라고 했다. 공교롭게도 윌리엄 샤클리는 인텔의 노이스와 함께 실리콘 벨리에서 노동자 탄압에 가장 앞장섰던 사람이다(**).



(*) '신자유주의의 본질', 피에르 부르디외 르몽드 디쁠로마띠끄 1998년 3월호

    http://copyle.jinbo.net/archives/bourdieu.htm

(**) 'Organizing Silicon Valley's High Tech Workers', David Bacon

    http://dbacon.igc.org/Unions/04hitec2.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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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 괴델 그리고 리눅스

매트릭스, 괴델 그리고 리눅스 19세기말까지만 해도 수학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완벽한 체계로 인식되었다. 수학 체계는 내부에 모순 없는 몇 개의 기본 공리만 정하면 이로부터 모든 정리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아키텍트'는 가상공간 매트릭스에 완벽한 이상적 세상으로 건설하고자 했다. 그리고 시온의 민중들을 제외하면 매트릭스 속의 민중들은 실제로 완벽한 사회로 여겼다. 매트릭스에서 네오의 역할은 수학에서 괴델(1906~1978)이 맡았다. 괴델은 모순이 없는 완벽한 체계 안에는(어떤 공리에 기초를 두고 있건 간에) 항상 그 체계에서 증명도 반증도 할 수 없는 문장이 적어도 하나 이상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이것을 간단하게 이해하기 위해 다음 질문에 답해보자. "독도 사람이 말했다. 독도 사람은 거짓말쟁이다." 이 말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만약 이 말이 진실이라면 이 사람은 독도 사람, 즉 거짓말쟁이인데도 진실을 말한 것이 된다. 그리고 이 말이 거짓이라면 독도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므로 이 말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없다. 아무튼 괴델은 이를 통해 완벽한 체계도 불완전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자유소프트웨어 재단의 그누 리눅스(GNU Linux)는 자유소프트웨어 규약(이하 GPL; General Public License)이라는 저작권 하에 배포된다. 이 것은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사용하고 수정, 배포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유일한 제약 조건으로는 GPL이 적용된 소프트웨어를 수정해서 재배포할 때 다시 GPL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IBM과 같은 거대 자본도 예외일 수 없다. 일부 오픈 소스 진영에서는 이 것 때문에 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하다고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제약조건은 자유소프트웨어(*)가 자본에 독점되지 않게 하는 강력한 방패역할을 한다. 그리고 자유소프트웨어가 마치 박테리아처럼 스스로 확장하며 번식할 수 있게 하는 내적 논리를 제공해 준다. 적어도 몇 년 전까지는 실제로 그랬다. 그러나 작년(2003년)에 오픈 소스 진영의 한 업체가 DRM (Digital Right Management; 디지털저작권관리) 기술을 GPL 규약 하에 제작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상황은 약간 달라졌다. DRM은 독점 소프트웨어를 보호하기 위한 인증수단 혹은 접근 차단 기술이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하면 ‘자유’를 차단하는 기술 개발에 ‘자유’소프트웨어 규약(GPL)과 개발 방식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리눅스 공동체를 이끌면서 오픈 소스진영에 참여하고 있는 리누스 토발즈도 이 DRM기술 개발에 찬성하였다. 그리고 그 이유는 ‘DRM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리눅스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자유로운 개발을 보장하는 GPL 규약을 어떠한 경우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말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토발즈는 자유로운 개발을 억압하는 DRM 기술 ‘그 자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간과하고 있다. DRM 기술의 외부적 조건 이 변한다고해도 즉, 자유롭게 개발하고 소스를 공개한다고 해도 기술 ‘그 자체’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괴델은 어떠한 완벽한 시스템에도(구조가 아무리 완벽해도) 항상 내부에 불완전함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역으로 이러한 불완전함의 존재는 제도적 장치와 같은 구조적인 것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시켜준다. 매트릭스에서도 완벽한 시스템 내에 균열을 일으킨 것은 그 속에 존재하는 불완전함이 아니라 그 불완전함을 이용한 시온 민중들의 투쟁이었다. 자유소프트웨어 상황은 매트릭스와는 정 반대이다. 완벽한 GPL 규약 속의 불완전성은 자본에게 개입할 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정반대이지만 결론은 동일하다. 자유소프트웨어에서도 그 불완전함은 주체(자유소프트웨어 생산자와 이용자)의 끊임없는 참여와 투쟁을 요구한다. (*) 자유소프트웨어는 지난호에 밝힌 4가지 자유를 만족하는 소프트웨어를 말한다. GPL규약은 자유소프트웨어를 만족시키는 규약중 하나이다. 이 글에서 자유소프트웨어는 GPL규약을 따르는 자유소프트웨어만을 한정한다. (**) http://www.sidespace.com/products/oggs/ **이글은 네트워커 10호에 실린 글이다. 네트퉈커에서는 마지막 부분이 조금 잘렸다. 아마도 지면관계때문인듯하다. 잘된 글은 아니자만 그래도 저자와의 상의 없이 결론부분을 짤라 버리는 것은 예의가 아닌듯하다. 나름대로 고민한 것인데...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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