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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아니지 오늘은 각종 회의와 기사로 인해 바쁠것이 불을 보듯 뻔하기에 이봉주를 응원하면서 미리 써놓고 자고자 한다.
1961년 8월 30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16개의 산별노조와 1개의 연합노조를 거느리고 출범했다.
'우리 노동자는 생산의 직접 담당자이고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또한 우리는 사회정의 실현의 선구자이고 평화의 강력한 옹호자이며 전진적 문화 창조의 주역이다. 우리 노동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같은 역사적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기 위하여 장구한 시일에 걸쳐 조직적 통일을 바탕으로 자유·민주 노동운동의 발전을 위하여 줄기차게 매진해 왔으며 앞으로도 계속 힘찬 전진을 수행해 나갈 것이다.'
윗 글은 어디에서 발췌했게? 예전에 하종강의 홈피를 어슬렁거리다가 읽고 감동먹은 글인데 놀랍게도 한국노총 선언의 맨 앞부분이다--;;
일제에 의한 자본주의 이식이후 한국 노동운동은 피와 땀의 역사를 써왔다. 일제하에서 수많은 적색노조가 노동해방과 민족해방을 위해 투쟁했고 원산 제네스트에는 일본 노동자들도 적극 협력하여 아름다운 국제주의를 구현했었다. 해방 이후 전평의 투쟁에 맞서 이승만이 대한독립촉성노동총연맹 결성을 지시했다. 이후 전평이 불법화 되어 해산당하고 대한노동조합 총연합회가 결성되니 이것이 바로 한국노총의 직접적 전신인 것이다.
독립촉성노동총연맹은 용산 철도파업, 46 총파업을 깨는데 혁혁한 공훈을 세웠으니 그 선봉에 선 분이 바로 장군이 아들 긴또깡 (김두한)이다. 아마 '야인시대' 에도 관련된 꼭지가 방영된 것으로 아는데..
하여튼 대한노동조합 총연합회는 반공전선, 노동운동 파괴 전선에서 혁혁한 공훈을 세우며 자유당의 외곽부대로서 그 소임을 충분히 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16 직후 해산 되었다가 약 세달 후인 8월 30일 박정희의 재가를 얻어 한국노총을 드디어 건설했다.
한국노총은 그로부터 약 삼십년간 사이비, 어용의 한길로 매진해왔다. 물론 한국노총 원풍모방지부, YH노조, 동일방직 노조등 몇몇 민주 노조들이 있었으나 그 노조들은 만날 한국노총에 의해 탄압받기 일쑤였다. 한국노총은 반공궐기대회의 주요 멤버였고 재수 좋으면 위원장들은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픽업되기도 했다. 또한 87년 4월 13일 전두환이 호헌선언을 한 이후 한국노총은 예총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호헌지지선언을 하며 '직선제는 안돼'를 외쳤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세워진 이후 한국노총은 설자리를 위협받기 시작했고 90년대 이후에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91년 ILO가입을 필두로 하여 노동법 개악 반대투쟁에선 민노총이랑 연대하기도 하는등 이젠 한노총 위원장이 삭발을 한다거나 한노총 사업장에서 빨간 머리띠가 등장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이제 과거의 행적들을 근거로 오늘의 한노총을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이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첨언: 04년 5월 취임한 이용득 한국노총 위원장은 한달 만에 한국노총 중앙조직의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직급별 호봉 대신 직무 경력과 능력에 따른 다면평가를 실시해 연봉제를 도입한다. ▶성과급을 도입, 상여금 600% 중 200%를 본부별 평가를 통해 차등 지급한다. ▶장기적으로 평가를 통한 개인별 차등지급제를 추진한다'.그 와중에 76명의 한국노총 사무국 직원중 30명이 넘는 인원이 노총을 떠났다. 또한 노총은 또 주5일 근무제 도입에 맞춰 월차휴가와 하계휴가는 폐지하고 연차휴가는 축소하기로 했다. 아햏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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