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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오늘(8.31)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설립

이 연재물을 목이 빠져라 기다리시는 극소수의 독자들에게 유감의 마음을 전한다. 어제는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빼먹고 말았다. 구구한 변명은 하지 않겠다.--;;

 

1980년 8월 31일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Solidarity)가 그다니스크 조선 노동자 레흐 바웬사의 주도하에 설립되었다. 요즘은 이런 연대 저런 연대 참 많지만 ..(난 심지어 '살아있는 연대'라는 슬로건을 내 건 선거팀에도 있었던 적이 있다.)연대라는 말이 아주 흔하지만 solidarity(연대)가 고유명사로 세계적 유명세를 타게 된 계기는 바로 폴란드 자유노조의 설립이었다.

 

앗 인터뷰 해야 된다. tobecontinued

 

사실 폴란드는 동독, 체코와 더불어 구 동구권내에선 선진국으로 분류되었다. 어설프게 김일성 흉내낸 차우셰스쿠가 깽판친 루마니아나 알바니아 같은 국가들에 비해선 정치, 경제적 면에서 확실히 우위를 보였던 것이다. 뿐인가? 좀 경우는 다르지만 교황까지 배출한 국가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란드 또한 현실사회주의 특유의 관료주의, 비밀경찰의 전횡, 보신주의, 노동자 직접행동에 대한 통제등으로 부터 자유롭지 못햇다. 그리하여 연대노조가 설립된 것이다.

 

근데 이른바 자유민주주의 국가인 한국의 80년은 어떠했던가? 공산주의 국가 폴란드에서 자유노조 가 설립되 위원장이 반정부 발언을 공공연히 하고 다니고 수만 대오를 이끌고 파업을 했던 그 80년의 한국은 피와 눈물로 점철되있었다. 군부는 자기네 나라 시민들을 향해 총과 칼을 휘둘렀다......

 

연대노조의 정치적 효과는 미묘하다. 레이건 정권은 연대노조에 대해 열렬한 찬사를 보냈고 연대노조를 최대한 이용했다. 공산권을 비난하는 근거로 삼았던 것이다. 바웬사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두 폴란드 인은 80년대 내내 친미진영의 선전도구로 사용되었었다, 자신의 의도가 어떤가와는 상관없이....

 

바웬사는 연대노조 활동으로 인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수상을 위해 국외로 나가면 다시 입국하지 못할까봐 그는 출국하지도 않았다. 평화상 수상과 이런 저런 일들은 미국에 의해 충분히 이용되었다.

 

 베를린장벽 붕괴 이후 그는 폴란드 정부와의 협상에 참여해 '연대' 노조와 다른 노조들의 법적 지위 회복, 새로 부활된 폴란드 의회 구성을 위한 자유로운 의원선거, 대통령직의 설치, 일정한 경제적 변화조치의 발표 등을 얻어냈다. 결국 1990년 폴란드의 초대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러나 대통령직 수행기간 내내 벌어진 경제적, 사회적 혼란과 무기력함은 그의 명성에 먹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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