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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익, 김주익, 김주익

김주익 열사 추모제에 다녀와서 몇 꼭지나 되는 관련 기사를 썼고 한 참 지나버렸지만 어떻게든 정리를 해놓고 넘어가야 되겠다 싶더라. 사실 그 동안 몇 번이나 썼다가 지워버리곤 했다.

 

1주기 추모제가 벌어지기 이틀 전 총연맹 부산본부 갔다가 자료집 한 권을 얻었다. '85호 크레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절절했던 추모사, 아이들이 아버지에게 보냈던 크레용으로 그린 그림일기들, 김주익 지회장의 유서, 관련 자료들을 일년만에 다시 읽었고 또 김지회장에 대한 정은임의 멘트들 까지 다시 찾아 읽었다. 집에서 눈물 좀 미리 빼고 그 다음날 한진중 노조 사무실에 갔더랬다.

 

거기서 정말 멋진 형님 한 분을 만났다.( 바로 박성호 한진중 열사정신계승 사업회 회장 http://media.jinbo.net/news/view.php?board=news&id=31178&page=2&category1=1) 예전엔 현장 마다 멋진 형님들이 참 많았었는데 요즘은 참 멋진 형님을 만나기 힘든 시절이다. 최근에 국회에서 다시 만난 옛날 형님으로는 배일도 행님이 있다 --;; (엊그제 성폭력예방교육 받고 멋진 형님 찾는 나도 구제불능이지만..뭐 어때? 멋진 누나는 멋진 누나고 멋진 형님은 멋진 형님이지..) 벅찼던 과거, 슬픈 이야기, 힘든 현실과 헤쳐낼 각오들을 비장하게 풀어내는 사람들은 꽤 많다. 그러나 그런 이야기들을 웃으면서, 칼날을 솜에 숨긴 채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박성호 회장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국감 땡땡이 치고 참석한 심상정 의원도 멋진 누님이었다. 박성호, 김주익, 심상정, 노무현 이 네 사람은 박창수 열사를 매개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었더랬다. 박창수 열사가 의문의 죽음을 당했을 때 박성호 회장은 노조 교선부장이다가 해고 당하고 열사 대책위 간사 활동을 했다. 그리고 또 구속당하고...김주익 열사는 문체부장이었는데 겨우 해고를 피했단다. 그리고 심상정은 박창수 비대위 상황실장을 맡았었고 '인권변호사' 노무현은 박창수 진상규명단장을 맡았더랬다.

 

작년에 심상정은 한진중 상급연맹인 금속 연맹 교섭 대표를 지냈다(9월 30일까지) 심상정이 금속에서 임기를 마친 후 17일만에 사고가 났고...인터뷰 때 이 누나가 '국회에서도 가끔 김주익 지회장이랑 이야기 하곤 해요' 라고 하더라. 첨엔 뭔 말을 하는가 싶었지...그리고 작년 김주익 지회장이 제 몸을 달아맸을때 노무현 대통령은 '아니 아직도 한국에 이런 일이 있냐' 고 탄식했다고 열우 모 의원께서 이야기 해주더라. 노무현 대통령이 통치하는 한국에 그런 일은 참 많다. 김주익 열사의 일주기가 되던 날 법원은 효성 노동자들에게 또 손배 칠십억을 때렸다.

 

추모제 당일 아침 일찍 한진중에 나갔더랬다. 눈에 들어오는건 바로 85호 크레인, 햇빛 때문에 제대로 올려다보기도 힘든 운전실.

 

 

사실 나는 열사라는 말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35 미터 높이에 있는 저 무쇠방을 보기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히더라.  천이백명의 조합원을 남겨두고 혼자서 저 위로 기어올라가 문을 잠궈버리고 백스물 아홉날의 여름밤을 지켜낸  그 마음을 , 비닐 봉지에 담긴 밥을 밧줄로 매달아 올려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기던 그 마음을 어찌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여름밤에 휴대 전화기가 울리기라도 하면 얼마나 반가웠을까? 통화가 막친 후 더 고고해졌을 적막은 어찌 견뎠을까? 천이백 파업 대오가 칠십으로 줄어 자기 몸뚱아리를 매달땐 솥발산에 먼저 누워있는 박창수 선배가 생각났을까?

 

파업에 참가하면 무급이지만 그냥 결근해버리면 70퍼센트 임금 준다는 회사 앞에서, 생활비 때문에 그리고 고등학교 다니는 딸래미가 눈에 밟혀 몸이 안좋다는 핑계로 여남믄 날 동안 파업 대오에서 빠지다가 결국 후배의 죽음을 맞이한 곽재규 열사의 죄책감의 무게는 얼마였을까? 그 무게가 얼마나 무거웠으면 85호 크레인 아래 4호 도크로 제 몸을 던져서 피로 유서를 써내려갔을까? 그들이 짊어졌을 짐의 무게를 난 짐작조차 못하겠더라.

 

추모식 날 광장을 가득 메운 작업복의 물결들, 참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한마디로 뽀다구 나더라.

 

 

조합원들이 유급 참여를 보장 받은 이 시간에 사내 하청 노동자들과 이주 노동자들은 조선소 여기저기에 두더쥐들처럼 박혀 일했다. 물론 그건 한진중 조합원의 책임이나 잘못이 아니다. 노조에서 비정규직의 비 짜만 꺼내도 사측이 어떻게 대응하는진 나도 잘 알고 있다.  차해도 한진중 지회장의  안타까워 하던 모습이 악어의 눈물이 아니란 것도 잘 안다. 한진중 조합원들이 얼마나 힘든 싸움을 치워냈는지도 안다. 그리고 그들더러 이제 또 당신들이 앞장 서시오 하고 명령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누구도 없다.  하지만 추모식이 끝난 후 함께 선 밥줄에서 이런 위원장, 저런 위원장, 노동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을 훔쳐 보던 하청 노동자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들을.

 

남한 노동 운동의 위대한 전사  현대 중공업이 올해 금속연맹에서 제명당했다. 94년 파업 이후 그들은 십년 무쟁의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그래 쟁의 안 할 수도 있지 뭐. 하지만  '현장파' 출신 탁학수 집행부는 자본과 손을 잡고 해고자들을, 비정규직을 몰아내는데 집중했다. 지금 현중 집행부는 심지어 해고자들의 아침 선전전에 가끔 참여하는 현중 해고자 울산 동구청장 이갑용을 직무유기로 고발하기도 했다. 근데 아직도 현중노조원들은 '영원하라 현중노조' 노래를 부를까? '칠천만의 해방을 위해 영원하라 현중노조'라는 부분을 부를땐 좀 간지럽지 않을까?

 

육해공군 상륙작전 전쟁 선포에 맞섰던 현중이, 그리고 이갑용,이영현, 조돈희의 현중이, '동지들 새해 복 많이 쟁취하시라'는 시로 백무산이 노래했던 그 현중이, 전노협의 상징이었던 '골리앗의 그림자'라는 투쟁가가 헌정되었던 그 현중이, 영국에서 만난 칠십 먹은 노동당원 할아부지까지 투쟁 비디오를 봐서 알고 있던 현중노조가 특별히 나쁜 놈들로  이루어져 이 모양 이 꼴이 난건 아닐게다. 

 

추모식에 참석한 여러 장기 투쟁 사업장과 금속연맹내 비정규직 조합원들. 뿐만 아니라 리베라 노조, 성람재단, 풀무원 아저씨 아줌마 조합원들...이들이 모두 김주익이다, 그리고 곽재규다. 비정규 노동자 앞에 내놓은 노무현 정부의은 비정규직 개악 법안은 바로 21년차 노동자 김주익이 받아들었던 13,5000짜리 가압류된 월금 명세서다. 한진중은 '귀하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고 말하며 저 명세표를 내밀었고 노무현 정권은 비정규직 보호하겠노라며 개악안을 들이밀고 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내몰리고 있는 거리가 바로 85호 크레인이다. 우리는 김주익을 추모하지만 되살릴 순 없다. 이제 또 다른 누군가를 추모하진 말자. 열사란 말 난 정말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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