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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불편했던 것

  • 등록일
    2007/07/30 14:25
  • 수정일
    2007/07/30 14:25
navi님의 [이 글을 읽고, 짜증이 났다.]에 관련된 글. 당고님의 [어떻게 그는 자전거에 클리토리스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었나?]에 관련된 글. 돕헤드님의 [성폭력 가해를 반성합니다.]에 관련된 글. 밥 먹을 때, 화장실에 갈 때, 잠 잘 때, 그리고 대조영을 볼 때, (맨날 민족주의, 가족주의 등등등 혼자 궁시렁대면서도 대조영을 꾸준히 보고 있다.) 이 네 가지의 경우를 빼고는 어제 하루종일 컴터 앞에 앉아 있었다. 블로그를 계속 들락날락. 어제는 그렇게 오래 컴터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스타도 한판 안했다. 뭐 이런 저런 다른 글들을 읽기도 했지만, 불편했던 글에 대한 문제제기, 그리고 그에 달린 덧글들을 읽고 또 읽었다. 사실 지금도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게 적절한 것인가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래도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일단 쓴다. 어제 새벽부터 글을 몇번을 썼다가 다시 지우고 다시 쓰고... 혼자 그러고 있다.


나는 성적인 의미로 육체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들을 공공연하게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그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럴 때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공공연하게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하지만 이글을 쓰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사용해야 할 것 같아서 또 불편하다.)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겪은 인간들 중에는 자신의 성적욕구를 희화화해서 무대에서 노골적인 춤으로 표현하던 녀석들도 있었고, (간단히 말하자면, 그 춤이라는 게 손으로 자지를 흔드는 흉내를 내는 춤이었다.) 여자 선생님들에게 성적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표현들로 공격하던 녀석들도 있었다. (여자 선생님들이 이런 이유로 사표를 쓰기도 했다.) 뭐 남자 선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몇몇 남자 선생들은 수업시간에 종종 자신의 성관계 경험을 이야기하거나, 매우 불편한 성과 관련된 표현을 농담이라고 지껄여댔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이후에 여성주의에 대하여 나름대로 관심을 갖게 된 건 어느정도는 동성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지금 말한 경험들에 대한 불만도 크게 작용했다고 본다. 어쨌든 내 느낌과 생각과 판단은 간단했다. 나는 저런 표현들을 공공연하게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어느날, 여성들이 자신의 성에 대한 언어를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봤다. 나는 남성들이 성에 대한 언어의 주도권을 잡고 있는 세계를 혐오했고, 그래서 그런 언어들을 회피하는 상태가 되었는데, 그녀들은 똑같은 세계를 혐오하면서도 나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들의 이야기를 보고 들었고, 어느정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와는 전혀 다른 결론을 도출했던 그 주장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건 지금도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어느날 학과 선후배들과 술을 마시는데, 그날따라 모처럼 지면 술을 먹어야 하는 게임이 벌어졌다. (나는 벌칙으로 때리거나 술 먹이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근데 게임 내용이 특이했다. 돌아가면서 한명씩 "나는 ○○○를 한 적이 있다."라는 형태로 말을 하면, 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술을 마셔야 하는 것이었다. 술 먹이는 게임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술을 마시게끔 유도하는 말을 하는게 더 인정받는 구조였다. 즉, 모두가 경험이 있을만한 말을 던져야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내 차례가 될 때까지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계속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이것만큼 확실한 것이 없어서 덜컥 말해버렸다. "나는 자위를 한 적이 있다." 그 말을 끝으로 더 이상 게임은 진행되지 않았다. 나름대로 즐겁게 술을 마시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싸늘해졌다. 한 남자후배가 나에게 불쾌함을 표시했고, 그의 입을 통해서, 나의 저 표현은 '언어적 성폭력'으로 규정되었다. 그 술자리에서는 나도 그것을 성폭력으로 규정한 것에 대해서 반발했다. 뭐 그때 반발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의도한 것은 그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후 며칠동안 다시 생각해보니, 성폭력이냐 아니냐의 이분법적인 문제로 접근한다면,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성폭력으로 규정될만한 것이었다. 내가 의도한 것이 무엇이었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현상적으로는 그 자리에 나의 표현에 대해서 불쾌함과 성적 수치심을 느낀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 그리고 이론적으로는 자위를 한 적이 있는가의 문제는 게임을 통해서 YesNo의 답으로 표현하라고 강제해서는 안된다는, 즉, 개인에게 자위의 여부를 말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 나는 이 두 가지의 지점을 스스로 인정했고, 그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가해자의 위치를 보게 되었다. 이 문제는 그 술자리 이후에는 다시 거론된 적이 없었지만, 오히려 다시 거론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작아지고 말았다. 이 일은 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동시에 이 이야기를 꺼내는 게 망설여지기도 한다. 솔직히 나에게도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이고, 동시에 나의 치부이기도 하니까.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단 한번도 누구에게도 이 일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물론 일부러 숨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이미 몇년이 지난 일이었고, 나도 어느 정도 잊어가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런 게임에서 "나는 자위를 한 적이 있다."라고 했던 표현은 내가 맨 처음에 써먹은 것이 아니었다. 나는 다른 공간에서 벌어진 동일한 게임에서 몇몇 여성(나에게는 선배)들이 "성에 대한 언어를 자유롭게 활용하는 차원"에서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봤고, 그것을 모방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이 사용한 것은 누구에게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지만, 내가 사용한 것은 누군가의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 수치심을 느낀 사람들이 공평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다. 그 차이가 이미 현실이었다는 의미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두 가지 정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내가 남성이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다른 공간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전자의 문제는 내가 여성들의 자유로운 언어를 내것으로 만들려는 순간, 내가 어떻게 의식하고 표현하든지 상관없이 최소한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남성의 언어로 변해버림을 깨닫지 못했던 나 자신의 문제였다. 후자의 문제는 그 공간에서 이런 문제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논의를 했느냐는 것이다. 그녀들이 사용할 때 누구에게도 수치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던 것은 그녀들이 그 공간에서 이런 문제에 대해서 충분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내가 표현한 공간에서는 아무런 이야기가 없었던 상태였다. 나는 그 차이를 깨닫지 못한 채로, 무리한 셈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 뒤로는 일단 무조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작아졌다. 함부로 입을 놀렸다가는 내 표현이 내 생각을 왜곡하게 될까봐 그런 이유로 인하여, 또다시 누군가가 수치심을 느끼게 될까봐 겁이 났다. 그리고 내가 어떤 이유로든 표현하지 않게 되는 것들은 점점 내 일이 아닌 것으로 변해갔다. 아마도 이 블로그를 사용하기 전까지는 그랬던 것 같다. 아니,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 같다. 지금도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 하여튼 이렇게 되면서 나는 성적인 의미로 육체를 떠올리게 하는 언어들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나의 이런 판단 결과가 누구에게나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냥 나에 대하여 스스로 내린 판단일 뿐이다. 다만 남성의 위치에서 여성주의에 대하여 고민한다면, 한번쯤은 이런 문제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이런 문제에 부딪혔을 때는 남성의 언어적 자유를 고집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가지는 한계를 본 셈이다. 내가 아무리 여성주의를 지지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내가 하기는 어려운 일들이 이런 경험을 통해서 보이기 시작했다. 여성들이 표현하는 어떤 내용들을 지지할 수는 있지만, 그 내용들을 '남성으로 존재하고 있는 나'의 언어로 재주장하는 것은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돕의 글을 봤을 때, 내가 느낀 불편함은 이런 지점에 있었던 것 같다. 내가 느낀 남성으로서의 조심스러움이 돕에게는 전혀 없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글에서 보기에는 그랬다는 의미다. 실제의 돕에 대한 판단은 하지 않는다.) 돕의 글에서 느껴지던 '클리토리스'라는 단어를 대하는 자신감이 지금의 내가 전혀 공감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나는 그런 걸 버거워한다. 어떤 남성이 체위나 성관계에 대한 글을 올려도 비슷한 이유로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물론 그것이 여성 블로거가 올린 글이었다면, 생각이 달랐을 지도 모른다. 그 사람은 그런 글이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읽히는 것인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 사람도 자신의 의도를 어느정도 가지고 있겠지만, 자신의 의도 밖에서 해석될 가능성에 대해서 수습할 자신이 있는 건가? 물론 본인에게 물어봐야 아는 일이겠지만... (물어볼 의지는 없다.) 나는 그런 것에 대해서 수습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돕의 글도 버거웠지만, 지금 내가 쓰고 있는 이 글도 나에게는 매우매우 버겁다. 가급적 쓰지 않으려고 하던, 피하고 싶던 형태의 글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언젠가 한번쯤은 하게 될 이야기였다고 생각할란다. 돕의 사과문을 봤을 때, 나는 또 한번 생각해야 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그 사과문에는 내가 바라던 내용은 한 줄도 없었다. 돕을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뭐 내가 표현을 안했으니, 한 줄도 없을 수밖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말하려는 것 뿐이다. 사과를 해야하는 것이었느냐, 아니냐, 더 깊은 사과가 필요한 것이냐, 아니냐, 또는 성폭력으로 규정해야하느냐, 아니냐를 따지려는 게 아니다. 물론 그런 것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제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는가, 무엇을 이야기해야 하는가다. 이것을 말하기 위해서는 내가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말해야 할 것 같다. 이제부터는 돕에게 직접 하는 말이므로 존댓말 모드 저는 돕이 스스로 최초의 글에 대해서 너무나 당연하게 나쁜 것이었다 식으로 표현한 것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표현 속에는 몇몇 블로거들이 느낀 불편함을 배려한 것 같지만, 또 그 불편함을 글로 보고 난 후에 적은 사과문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돕 자신의 판단은 결여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내가 돕에게 바라는 것은 돕의 최초의 글에 대한 돕 자신의 입장에서의 비판이에요. 물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보기에 불쾌했다는 점도 중요하지만, 결과가 어쨌든 '-되기'운동을 머리속에서 그리면서 적은 글이었다면, 자신의 글이 그 운동의 전략전술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어떤 점에서 잘못된 판단이었는지 생각해야 한다는 거에요. 변명을 하라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런 의미는 아니에요. 냉정하게 평가하라는 이야기에요. 이것은 물론 나에게도 중요한 일이지만, 돕 자신에게도 중요한 일일 것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저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에요. 글을 요구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저에게 말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 부분을 판단하지 않는다면, '-되기'운동이라는 게 돕이 가졌던 최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여성주의의 발목을 잡는 꼴이 되는 것 같아서 반드시 짓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돕이 어떤 식으로든 판단이 있었으면 좋겠고, 혹시 가능하다면, 저도 그 판단을 알고 싶다는 거에요. 판단이 없다면, 뭐 지금부터 생각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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