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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2

"그렇다면 이론에 대한 실천의 우위의 배치 속에서 철학은 실천을 순수하고 단순하게 실천의 소화로, 또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낫겠다면, 실천의 내면화로 해석하는 것에 다시 빠지지 않기 위해 어디에서 자리를 찾아야 하는가?

 

내 감각으로는 이 질문에 하나의 대답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은 맑스주의의 본래적으로 철학적인 텍스트들 속에서 찾을 수 없는데,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거기서는 이 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철학에게 이 자리는 사고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맑스주의 철학', 루이 알튀세르(서관모, 백승욱 역),104쪽)

 

이론의 이중기입을 통해 마르크스가 정치경제학 비판으로 나아가는 철학적 맥락을 설명한 알튀세르의 설명을 나 자신의 실존적 상황에 투사해 본다. 그 결과, 일정한 부적합성과 맹목성에서 기인한 불안함이 해명되는 듯 하다. 결국 이데올로기 안에 자리를 잡을 수 밖에 없음을, 철학적/유물론적 사고들은 그 아름다운 과거 속에서 사라져야 함을 생각하게 된다. 유물론이라는 '존재론'에 대한 사고 속에서 변증법이라는 인식론의 주변화를 비판하고자 했던 나의 비판의 계획 자체가 사실 그 존재론적 테마에 갇혀 있던 것이 아닌가, 결국 현실적 효과를 갇지 못하는 철학적 비판, 반대중적 공허한 담론에 머물지 않았는가 생각해 본다. 철학적으로 이러한 '비철학' 또는 '유물론' 자체를 넘어설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한 이 담론에 머물러 있는 것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너무 늦은 깨달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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