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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책임에도 책은 읽을 때마다 늘 다른 느낌을 준다. 아마도 앞으로 두 세달 정도 정말 열심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게 될 것 같다.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실 그동안 책을 '읽지' 않고 주로 '보는' 데 그친 경우가 많았던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낸 어떤 결핍을 채우기 위한 적절한 시간이 될 수 있을 듯 하다.
이번 주는 일본 쪽에 치중한다. 죽내호竹內好와 구구웅삼溝口雄三을 중심으로 읽어 볼 예정이다. 책은 읽을 때마다 단지 다른 느낌을 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읽기 위한 자신만의 준비가 있었을 때, 책은 비로소 나의 책이 되어 읽히는 듯 하다. 책은 모름지기 이렇게 읽어야 한다.
죽내호의 고뇌가 내 안에 들어오고, 또 그 모순과 한계가 내 안에서 문제화되어 그와 나의 구체성을 형성한다. 앞으로 할 얘기가 많을 것인데, 우선 <다케우치 요시미 선집>은 '죽내호'의 문제의식에 반하는 번역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마치 죽내호가 <중국문학>의 폐간하며 지적했던 자기부정이 이 책의 역자에게는 부재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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