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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몇 마디...

"아쉬움이 있나?" 라는 질문을 친구에게 받았다.

"그런 것 없어" 라고 대답했다.

 

낯선 곳에 와서 7년을 조금 넘게 생활하고 떠나는 즈음에 다소 가라앉는 느낌도 당연할 지 모르겠다. 그런 가운데 이렇게 대만에서 마지막으로 몇 마디를 남기고 싶어졌다.

 

'고아'처럼 정말 홀홀단신으로 와서 어쩌면 이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과장해서 지어냈을 것이다. 이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 무엇인지 눈치도 보아가면서 그 마음을 사고 싶었을 것이다. 때로는 그러면서도 나 자신을 지키고자 혼자가 되기도 했다. 먼 나라로 입양된 고아가 성장하며 겪는 느낌과 약간은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보았다.

 

그래서 그런 와중에 이들의 마음을 사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일부의 마음을 사면 또 일부의 마음을 잃기도 했다. 관계가 멀어지기도 했고, 깊어지는 관계도 있었던 것 같다. 그 안에 얼만큼의 진실이 있었을까? 모두가 거짓은 아니었을테다. 나도 이들과 잘 지내고 싶은 진심이 있었고, 이들도 다소간 용기내어 닫혀 있는 자신의 회로를 열어낼 돌파구를 나에게서 찾고자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나 자신의 한계와 이들의 보수성은 그 계기를 반복해서 무화했던 것 같기도 하다.

 

떠나는 시점에 이런 것들이 드러나면서 또 얽힌다. 거짓이 드러나면서, 진심이 위태로와진다. 그러면서 그 사이에 복잡한 것들이 또 드러난다. 아마도 생활의 물질성이 박약해짐을 느꼈던 그 즈음부터였지 싶다. 그 즈음부터 귀국을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 같다. 아마도 1년쯤 전이었던 것 같다. 당시 <북촌방향>이 생뚱맞게 하나의 촉매가 되어줬다. 너저분하고 위선적이지만, 그 자체로 든든한 물질성을 보여준다. 미워도, 싫어도 그런 물질성 속에서만 삶은 살아지는게 아닌가 깊이 생각했다.

 

미련은 아니고. 아쉬움도 아니다. 하나의 확인이라고 해두자. 선의는 선이 아니다. 무수한 선의의 행동들 가운데 진정한 선은 많지 않다. 떠나는 시점이 바로 그런 것들이 확인되는 시점이다. 나의 위선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런데 어찌됐든 그러한 하나의 던짐으로서의 '선의'가 있었기에 이런 확인의 시간도 얻어진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마 성숙한 느낌이 조금 드는 것일테다.

 

아마 이제 돌아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조금 성숙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이들을 만나면 좀 더 성숙하게 관계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본다.

 

2014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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