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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와 5.18의 변증법

임동규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박현채 선생이 차명 또는 필명으로 쓴 글만 모아도 책으로 100여권의 분량에 달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조용범 선생의 <후진국경제론>이나, 김대중의 석사학위논문인 <대중경제론> 외에도, 박현채 선생이 쓴 글이 여러 곳에 묻혀 있는 셈이다.

 

우연찮게 <상황> 잡지 1973년 봄호(종간호)에서도 조용범 선생의 이름을 차용해서 쓴 <민족경제론 서설>이라는 글이 실려 있음을 발견했다. 사실 이 글에서 일정하게 체계를 갖춘 '민족경제론'의 구상이 드러나고 있다. 이 외에도 박현채 선생이 편집위원으로 참여한 <월간 다리>에도 조용범 선생의 이름으로 실린 글이 있는데 박현채 선생의 차명 집필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60년대부터 일본에서 발간된 <한양> 잡지에도 박현채 선생이 쓴 것으로 보이는 글이 눈에 띈다. 특히 <한양> 잡지는 지금까지도 필진들의 이력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필명을 사용했던 것 같다.

 

국내의 문학비평계에서는 1960년대를 다시 역사화하는 작업을 일정하게 진행한 것 같다. 고명철 선생, 하상일 선생 등이 민족문학론의 기원으로 <창비>가 역사로부터 단절되어 표상되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고, 이를 4.19 세대의 상징권력화와 관련지어 문제화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대체적으로 이러한 역사화를 진행함을 통해서, <창비>의 자기 성찰과 70년대 유신체제하에서 폐간되거나 단절된 이들 잡지들의 필진이 <창비>와 결합하게 되는 측면을 연결짓고 있는 부분이다. 실제로 임헌영 선생을 비롯한 <상황> 잡지의 필진들은 이후 <창비>에 결합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1960년대의 정경이 다시 드러나는 측면이 있지만, 아쉽게도 대부분의 연구가 문학비평에 초점이 맞춰진 이유로 해서, '사상'의 전반적 측면은 여전히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남아 있다.

 

특히, 박현채 선생이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이는 <한양>, <상황>, <월간 다리>는 박현채 개인을 포함하면서도 그를 넘어서는 그 시대의 정신 상황을 조망하는데 중요한 자원이 될 것 같다. 그리고 그로부터 이어지면서도 단절되는 지점을 파악하는 단서로서 그 이후의 박현채의 작업들과 수용, 오해 및 배제의 상황을 연구과제로 채택하여 80년대를 재역사화할 수 있을 듯 싶다. 물론 거기에는 5.18이 핵심적인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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