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藝術人生님의 [읽지만 이해하지 못한다.] 에 관련된 글.
言文一致의 기원은 明治維新이다. 그리고 그 운동은 결과적으로 일본 보다 조선에서 더욱 급진적으로 실천된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문명의 끝자락에서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그 요는 言과 文을 분리하는 것이 첫째요, 言에 文을 일치시키는 것이 그 다음이다. 그래서 어떤 변화가 생겨났는가?
言과 文을 분리함은 조선 후기 이래로 역사적 현실 인식 하에 윤리적 지식 관계를 바탕으로 민주적 문명 사회로 지향해 나갔던 지식-대중 관계의 실현 가능성을 파탄시켰다. 文을 言에 일치시킴은 끊임 없는 탈역사화 실천이자, 동시에 대중 우매화(포퓰리즘)의 시도이고, 종국적으로 지식과 사상 부재의 시대를 앞당긴다. 실제로 한자를 기만적으로 배제하고 있는 현행 우리의 언어문자체계는 주체적 사상/지식의 부재와 불가능성, 그리고 대중의 전체적인 우매화의 중요한 원인이었다.
言과 文은 역사적 현실 안에서 본래 정세적 분리만 있을 뿐 본질적으로 변증법적 통일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文은 역사성의 축적이기 때문에, 역사적 현실 인식의 필수불가결한 바탕일 수 밖에 없고, 동시에 그것은 言의 매개를 통해서만 현실적 주체의 언어로 전화될 수 있다.
따라서 言과 文의 변증법적 통일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긴급하다. 이는 言과 文 사이의 번역적 관계의 복원일 것이다. 이는 일반적 의미의 번역과 비교할 때, '교육적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마치 과거에 난해한 사서오경에 주해를 달아가며 공부하는 것과 비슷한 차원의 번역이다. 지금의 교육에 이러한 '번역'이 상실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진중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는 교육의 영역에서 일상적 원리로 복원되어야 할 '번역 실천'이 아닐까.
그런데 사실 文은 역사적이고 국제적 관계 속에서 얻어진 자기인식이자 세계인식이다. 우리 민족 내부의 '교육적 번역'의 상실, 즉 지식/사상의 불가능성은 文 자체의 역사적 단절을 초래해 왔고, 나아가서는 이를 제도화하고 있다. 제도화는 사실상 文의 폐기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폭력성과 비윤리성을 배태하고 있는지는 이미 지난 20세기의 역사에서 보아왔다. 여기에서 현대화된 번역체제가 그 핵심인데, 아마도 中韓 번역 영역이 역사적으로 관건이되는 戰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위기의 심화는 轉機를 제공하는데, 아마도 향후 일정 기간이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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