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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는 않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홍콩과 대만이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로 '중국'으로부터 분리되었고, 냉전체제의 형성으로 주체적 탈식민의 가능성을 제약받으면서, 상호간에 일정한 연계를 강하게 형성했던 부분에서 주어지는 일정한 간접적 인식이다. 일종의 '신식민적 민주화' 동맹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냉전적 체제의 구성요소의 아시아적 연계에 남한의 '민주화'가 어떻게 결합되는지, 그리고 이른바 '포스트 냉전' 시기 각국 '민주파'의 난맥상에 대해서는 논의이 별도로 필요할 것 같다.
홍콩과 대만 및 그 사람들에게 있어서, '중국'은 역사적 연원이자, 현실적 요인이기도 하다. 원론적으로 얘기해서, '냉전'을 체제적 차원에서 사유한다면, 홍콩과 대만의 탈식민은 '중국'이라는 역사성을 '회복'함을 전제로 한다. 이는 매우 어렵고 지난한 과제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잃어버린 '언어'를 되찾아오는 일련의 실천이 동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담론적 수준에서 가능한 것이 물론 아니다. 이른바 立人, 즉 사람을 다시 세우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충분한 고민이 필요하다. 역사적 왜곡과 그 원인에 대한 철저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짊어질 현실적 주체 형성의 가능성까지 염두해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 차원에서 매우 중요해진다. 이를 둘러싼 현실적 역량의 대결의 표현 가운데 하나가 이번 시위의 복잡성일 것 같다.
특히 식민으로 인한 왜곡, 그리고 냉전의 제약이라는 차원에서, 내지의 '중국'은 문제의 원인 인식과 해결에 있어서 외재적일 수 없다. 그래서 여기에서 일정하게 인식론 상의 '분리주의'적 사고를 극복할 필요성이 주어진다. 이는 실천 상에서 나타나는 홍콩/대만의 분리주의라는 표층적 차원만이 문제가 아니며, 궁극적으로 대만과 홍콩에 대한 중국 내지의 인식(주로 공산당)과 대만 및 홍콩의 분리주의적 역사인식이 모두 1949년을 기점으로 전前 현대와 자신의 역사를 분리시키는 역사인식을 전제로 했다는 문제이다. 따라서 단순한 '통일지상'도 '분리주의'도, 적절한 노선이 될 수 없음은 자명해진다.
'신중국'의 성립과 이어지는 우여곡절은 대약진이나 문혁에서 드러난 바 있는 것 같은 그 내재적 문제만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신중국에 내재한 문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신중국'의 역사적 단절을 문제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차원에서 '홍콩'과 '대만', 나아가 '마카오'는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는 궁극적으로 '식민지' 해방의 궁극적 경로 및 그 핵심 과제로서 주체화의 문제와 관련된다.
'신중국'이 홍콩과 대만을 여전힌 외재적 '식민지'로 파악하지 않고, '신중국'의 탈역사성을 재역사화하는 참조적 고리로 끌어안을 때, 그리고 홍콩과 대만이 '신중국'의 역사적 성립과정을 자신이 참여한, 홍콩과 대만 민중의 역사적 요구를 끌어 안았던 과정으로서, 외재적 '반공주의'가 아닌, 내재적 '동정'적 시각으로 재인식할 때, 이와 같이 쌍방향에서 역사와 현실이 마주칠 때, '중국'은 다시 역사적으로 성찰의 지점을 확보하고, 대중의 현실적 요구를 받아 안으며, 내부적으로 혁신되고, 세계에 대해서 더욱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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