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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 수업 중간 감상평

왕휘 선생님은 첫 공개강연 겸 강의에서 초기 노신의 작품을 정치철학적으로 재해석했던 것과는 달리, 그 이후의 강의는 정치철학적 함의라기 보다는 중국적인 것이라는 범주의 확장에 치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 강의에서 아시아 담론을 검토한 것도 궁극적으로는 각종 아시아 담론으로 환원될 수 없는 '중국적인 것'을 확립하기 위한 사전포석으로 보인다. 세 번째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기존의 민족주의/전통주의적 담론과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을 거론하면서 '漢化'/'華化' 또는 '정복왕조/중앙정부'를 동시에 종합하면서 넘어서는 '중국화'를 시도하고자 하며, 이는 민족국가적 틀에서 볼 수 없는 일종의 문명적인 것을 포함하는 것으로 제시하는 듯 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확장과 국가간체계의 맥락에서 파악되는 동역학은 이 보다 훨씬 더 긴 2500년에 달하는 '중국화'의 초장기지속에 놓이게 된다. 나는 우선 이러한 관점이 프랑크의 초장기지속론에 닿아 있지 않은가 가설적 의문을 던져 놓는다. 자본주의적 질서의 재생산 조건으로서의 민족국가라는 정치적 체제 자체를 부차적인 것으로 전락시키는 초장기지속론에서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질서, 즉 국가와 자본에 대한 비판은 그 중요성이 부차화/종속화된다. 물론 이 초장기지속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투명한데, 강의를 통해 볼 때 '중국사상의 흥기'를 통해 보여주려는 것은 대체적으로 유교적인 어떤 것에 근거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왕휘 선생님은 이런 '중국화'라는 장기지속의 맥락에서 기존 자유주의적 시각이 노정하는 티벳이나 중국의 소수민족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의 한계를 새롭게 드러내고자 한다. 민족주의/민족국가의 틀이 서구중심적인 것이라는 관점을 아주 강하게 가지고 있는데, 아마도 이러한 반서구중심주의가 결국 '중국화'라는 장기지속에의 천착에 동력을 부여한 듯 하다. 아무리 이원론을 극복하겠다는 논리를 내세우더라도 말이다.

 

내가 보기에, 결국 민족주의/민족국가라는 틀을 서구중심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이를 대체하는 특수개념을 구성하려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틀을 서구중심적인 것이 아니라 반대로 결함을 갖는 '보편성'으로 이해하고 새로운 대안적 보편성의 조건을 검토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라고 보인다.

 

한편, 우리는 신자유주의 비판자로서의 '왕휘'에 익숙해져 있지만, 실제로 그는 전형적인 역사학자 또는 사상연구자인 것 같다. 실제로 이번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왕휘는 북경 청화대학의 중문과/역사학과 교수이다. 따라서 인문학적 상상력, 또는 창의적 연구의 측면에서 보면 그의 작업은 매우 독보적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하지만, 사회과학적 성격을 갖는 그의 개입들은 인문학이기 보다는 사회과학의 현실적 맥락에서 면밀히 검토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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