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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휘 수업 <티벳편>

"아주시야: 중국역사의 서술"이라는 2010년판 왕휘의 책은 왕휘가 역사를 보는 관점을 잘 드러내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주는 3장 '동서간의 티벳문제'를 다루었다.

 

왕휘는 티벳 문제를 중국(동방/아시아)와 서방의 대립구도에 위치시키면서 궁극적으로 '중국'의 평등주의적 반제국주의 정치를 긍정하고, 본래 티벳문제가 지시하는 '중국'의 합법성의 문제를 기각하거나 그 알리바이를 제공한다. 티벳문제가 민족국가에 의한 통합/배제와 무관함을 증명함으로써 '중국'은 민족국가라기 보다는 문명국가라는 논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따라서, 티벳 문제는 순식간에 '중국사회'의 위기로 전환되고, 주로 종교의 세속화, 발전주의 등에 대한 비판이 민족국가 비판을 대체한다. 수업 중에 제기하고자 했으나 시간이 없어 제기하지 못한 문제를 간단히 메모해 둔다.

 

우선 분석단위로서의 현대/당대 중국을 설정할 때, 왕휘가 설정하는 현대/당대가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초장기지속론이 그렇다. 이 문제는 역사의 현재성에 대한 서로 다른 분석의 원인이 된다. 왕휘처럼 초장기지속의 경우 그가 다루는 역사는 과거가 아닌 현재진행형인 역사이다. 즉, 자본주의적 현대성을 훨씬 초월하여 현재까지 진행되는 역사인데, 이러한 역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편성의 지표로 간주하는 자본주의적 세계질서 또는 전지구적 자본주의라는 역사적 전환을 부차화하여 통합한다. 따라서, 왕휘의 인식틀에서 '중국화'는 자본주의적 질서로의 재편 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 되고, 민족국가적 '중국' 역시 매우 일시적인 현상으로 전락한다. 여기에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보편성이다. 왕휘와 같은 관점에서 역사적 작업을 진행하면, 보편성에 대한 논의는 불가능해진다.

 

왕휘는 과거의 중국/아시아의 공납제와 유럽의 민족국가를 대립시키는데, 왕휘의 관점에서 이 둘의 대립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리고, 이러한 대립적 구도는 아마도 민족국가간체계를 넘어서는 것일테다. 그래서, 국가간체계에 놓여 탈궤와 접궤의 궤도를 그렸던 중국 사회주의 역시 여전히 부분적 역사서사에 머물게 되고, 거기에서 발생한 발전주의에 의한 평등의 불가능성은 새로운 모순에 의한 것이다. 여기서 모호하게 남는 것은 '중국화'는 '중국 주권민족국가'의 성립을 포함하는데, '중국화'의 논의가 소위 '개혁개방' 이후의 새로운 모순이 '민족국가'의 성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음 덮어버리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중국 사회주의 혁명의 성격의 문제, 혁명 이후 정치과정의 문제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가지 않게 된다.

 

몇 가지 작은 문제들도 있다.

먼저 보편성의 문제.... 서구유럽중심주의, 오리엔탈리즘을 보편적이지 않은 보편성의 문제로 인식하고, 새로운 보편성의 추구로 나아가야 하지 않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본래 유럽적 인식틀이 세계화를 거쳐 일정한 보편성을 획득한 것은 단순히 유럽에 의한 것이라기 보다는 비유럽의 수용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에 대한 반례들은 새로운 보편성을 위한 것이어야 하지, 특수성을 통해 유럽과 분리되기 위한 목적을 가져서는 안된다.

 

그리고, 비교에서의 요소주의의 문제.

1)현대민족주의는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2)중화제국은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3)중화제국은 현대적이다.

삼단 논법인데, 3)은 잘못된 추론이다. 중화제국과 현대민족주의가 정치와 문화의 융합이라는 부분적인 공통점을 가진다고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왕휘는 왕국빈의 이 논의를 적어도 두 번 인용하는데, 논리학적으로 모순됨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개인성과 집단성의 문제도 거론되는데, '집단' 간의 다원주의적이고 상호교통적 공존을 강조하는데, 그 차이들 사이의 관계의 문제를 포기하거나 무시할 경우 일종의 급진주의적 탈정치화의 위험이 있다. 차이의 정치를 탈정치화에서 구하는 길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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