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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박사과정 들어와서 지속적으로 반항하면서 일부 동의하게 된 것 중 하나가 바로 '역사화'라는 것일테다. 진광흥(천꽝씽) 선생의 조금은 불친절한 강조에 대해 여러번 흥분하여 대응하기도 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그에게 당신은 '역사화'는 있지만 '정치화'는 결여되어 있지 않은가 하는 문제를 제기했던 것이었다. 이 측면에서 볼 때, 왕휘에게는 '역사화'와 '정치화'라는 두 범주가 모두 존재하는데, 그것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그 사이에 긴장이나 모순이 있지 않은지, 그렇다면 그것을 어떻게 풀어내는지에 대해 어제 수업 중 질문을 던져 보았다.
왕휘는 제임슨의 '영원한 역사화'의 입장에 있기 때문에 역사화는 본질주의화와 다른 것임을 먼저 강조하고, 한편 '정치'란 일정한 의미에서 '역사의 중단'이며, 곧 역사가 중단되는 곳에서 정치가 탄생하는 것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야기를 더 끌고가지는 않았고, 이후 수업이 주로 역사화/정치화라는 범주를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이후 충분한 논의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왕휘 선생님과의 대화 덕분에 '역사'와 '정치'를 그 관계 속에서 좀더 분명하게 개념화할 수 있는 길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물론 내가 보기에 왕휘는 '역사화'를 비본질주의화하면서, '정치'의 가능성의 조건을 탐색할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 같다. 어떤 의미에서 왕휘 선생에게 있어서 '역사화 또는 역사서술'은 '정치화'(또는 정치적인 것)을 위한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왕휘 선생과 사카이 나오키 선생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물론 그들의 작업이 갖는 효과를 고려하면 또 다르지만. 나는 이와 대비되는 시도로 전리군 선생님의 작업을 주목하고 있다. 전리군 선생은 '정치화를 위한 역사화'를 시도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치적인 역사서사'를 시도한다. 따라서, 왕휘가 '당대의 정치'를 위해 현대성이라는 '과거의 역사'에 주목하는 반면, 전리군은 '당대의 정치'를 위해 '당대역사의 재구성'을 시도한다. 즉, 전리군 선생은 역사 속의 대안적 주체의 계보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통해 당대의 정치적 공간에 직접 진입하는 시도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흥미롭게도 왕휘는 '서술'의 관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반면, 전리군은 '서사'의 관점에서 역사를 대하는 대비가 드러난다. 물론 이러한 구도는 두 선생님이 진행하고 있는 작업을 전반적으로 포괄하고 있지는 않고, 게다가 진행 중인 부분도 있기 때문에 이후 진행될 부분을 배제하고 판단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아마도 전리군 선생은 소위 '역사화'보다 '정치화'에 더 방점을 찍고 있는 듯 하고, 나아가 역사화의 문제를 나름 해결하는 방식을 노신에서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반면, 왕휘 선생은 정치화를 위한 사상적 자원을 역사화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데, 그러한 역사화가 어떻게 새롭게 정치화를 가능하게 하는지, 또는 할 것인지는 두고 볼 문제이다.
이 문제는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유물론과 변증법의 문제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가지고 있다. 근래 내가 알튀세르를 통해 고민해 왔던 문제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문제이다. 역사화가 해체적이고/유물론적인 것이라고 할 때 정치(성)에 묶여있는 목적론적인 부분은 어떻게 해소될 수 있는지라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그러한 목적론을 배제할 경우 일종의 '우연의 유물론'으로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라는 질문도 제기될 수 있다.
아무튼, 조만간 정치적인 것(정치)와 역사적인 것(역사)의 관계에 대한 소론을 써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한편, 왕휘 선생과 3박4일 동부해안을 돌아보면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었는데, 왕휘 선생은 한국의 80년대 사회성격논쟁와 한국 사회운동의 궤적에 대해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적극적으로 글을 한편 써보라는 권유도 했었다. 물론 나는 나보다 훨씬 더 많은 '권위'자들이 한국에 있고, 나는 생계를 위해 당분간 중국연구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는 '현실론'을 폈다. 생계 문제가 해결되면 언젠가 돌아가야 할 주제임은 분명한 것 같다. 나 스스로 한국 사회운동을 얼마만큼 전유하고 있는지 아직 확신이 없지만, 지속적으로 반추하고 역사화/정치화해야할 자원임은 분명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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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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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론, 기대되는데요.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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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신지 궁금했는데, 알고보니 '고미숙의 개드립?'이라는 인상깊은 제목의 포스팅이 기억에 남아있네요. 아직 진보넷에 이사와서 동네분들과 별 왕래 없이 지내는 중인데, 마침 그 글은 당시 제가 '수유너머'에 대해 생각하던 바도 있고 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藝術人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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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왕휘 선생의 사회과학적 발언들이 초래하는 편향과 쟁점들도 그의 정치화와 역사화의 관계를 통해서 바라보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나는 잠정적으로 정치화라는 범주가 왕휘를 탈정치적 역사화의 편향으로부터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본다. 물론 근래의 추세로 보면 갈수록 좀 힘들어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