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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9

문혁 50주년 토론회에서 발표를 마치고 이런 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예상했던 대로, 내 발표는 '토론'이라 할 만한 어떤 반응을 끌어낼 수는 없었다. 행사가 끝나고 일부 선생님들로부터 '신식민-분단체제' 개념에 대한 일정한 조언들이 있었던 것이 그나마 수확이었다고 할까. 

 

발표하면서 머리 속으로는 줄곧 누군가는 이 이야기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이 있겠지... 아마도 그 '누군가'는 연구자가 아닐 가능성이 많고, 또는 연구자라고 해도 '중국' 연구자가 아닐 가능성이 높고,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기존의 '관성'적 타자 접근방식에 물들지 않은 학생 또는 신참연구자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농후한 지적인 '주입'의 분위기 속에서 좌절감을 느끼면서도, 그 누군가를 기대하며 자신감을 갖고 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밤 늦게까지 뒷풀이가 이어졌으나, 단절된 느낌은 여전했다. 늘 그렇듯이 시간이 늦어지면 '젊은 연구자'들의 밥 벌이 걱정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당연히 그러한 '선의'가 고맙지만, 역으로 나는 그러한 '선의'가 어떤 책임소재에 대한 알리바이가 될 위험성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선의'의 주체와 대상 모두에게 관련된다. 나는 세대간 관계에서 선배 세대들이 더욱 열심히 연구를 해서 역사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노력이 늘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더욱 치열한 논쟁을 통한 발전적 전망을 보고 후배들 또한 일정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의 상황은 어떤 '과거'에 발목잡힌 빈곤의 악순환이 아닐까. 내가 나를 '용서'하는 순간, 동료를 용서하게 되고, 나아가 나 보다 어린 집단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댈 수 없는 법이다. 사실 이러한 쉬운 '용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성찰'이 전제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 여전히 '성찰'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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