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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13

아마 어쩌면 학술계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크게 아쉽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렇게 기꺼운 것도 아니지만.

일단 남한의 생활을 기본적으로 정리하기로 했다. 이미 일부 정리하고 왔지만, 미련을 버리고 다 싸들고 들어오기로 했다. 내년 봄이면 과도기를 거쳐 이제 대만으로 완전히 돌아온다.

대만에서 또는 남한이 아닌 어떤 다른 곳에서 학술계의 일원으로 살아 남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역시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나마 남한과는 달리 여기에서는 학계를 떠난 '안빈낙도'의 삶이 불가능하지 않다. 적어도 출구를 열어주는 셈이다. '곡학아세' 보다는 나은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더욱 의미 있을 수 있다. 그래서 학계를 떠나는 것이 크게 아쉽지는 않다. 대저, 길이 끊겼으면 인정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고 벌써부터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1년 반 정도의 시간 동안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작업을 하려고 한다. 대단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저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 속에 내가 축적한 것들을 외화하는 작업일 것이다.

10월 들어 대만에서 한번은 '문학', 한번은 '경제(사회구성체)'를 가지고 강연을 했다. 후자를 가지고 11월에 중국 상해에서 한번, 남한 광주에서 한번 이야기를 던져 본다. 그리고 다시 내 책을 정리해서 중문판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가 아닐까.

간단한 작업은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잘 정리하려고 노력을 해야 떠남의 순간에 후회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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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9

선생님 연구실 이사를 며칠 동안 도와드렸다. 90년 대만으로 오셔서 지금까지 축적된 수많은 넘치는 문서들을 어떻게 정리할지 어쩔 줄 모르시는 선생님 옆에서 나도 어쩔 줄 모르는 상황이었다.

오늘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고 나서 남겨두고 가신 책들을 살펴보다, 구석에서 다시 엄청난 문서들이 남아 있는 걸 발견하고, 아주 일부분만 꺼내서 살펴보았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까지 대만, 아시아, 구미를 넘나들며 관계망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주고 받은 서신과 공부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익히 잘 알려진 사람들이지만, 당시에는 다들 30대 초중반이었을 수많은 그들의 사진도 남아 있었다. 다시 한번 비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지금 나는, 우리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그런 작업들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나, 그리고 우리의 작업들도 그런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억울한 감정을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람을 탓하지 않으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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