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는 오래 전부터 꿈꿨던 사건이다...
아래는 이 심포지엄을 기획한 진태원 선생의 글:
‘알튀세르 효과 심포지엄’을 마련하며
오늘날 한국의 독자들에게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라는 이름이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제가 약 1년 전에 알튀세르에 관한 공동 논문집을 기획하고 또 이 심포지엄을 준비하면서 계속 품고 있었던 질문입니다.
아마도 알튀세르는 맑스주의 철학자 중에서, 또 프랑스 철학자 중에서도 세대에 따라 가장 인지도 편차가 큰 인물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40대 이상의 독자에게 그는 80년대 말과 90년대 초 한국 인문사회과학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이른바 ‘한국사회성격논쟁’과 ‘맑스주의 위기론’의 중심에 있던 인물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당시 웬만한 인문사회과학도라면 누구나 그의 책을 한 권쯤 소장하고 있었고, ‘과잉결정’(또는 중층결정)이나 ‘호명’ 같은 그의 주요 개념들은 가장 널리 운위되던 지적 담론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오늘날 20대 독자에게 그는 에티엔 발리바르나 슬라보예 지젝 또는 자크 랑시에르나 알랭 바디우의 이름과 함께 간혹 거명되는 이름 중 하나일 것 같습니다.
요컨대 구세대 독자에게 알튀세르가 한때 우리나라에서 잠깐 지적으로 유행했으나 이제는 잊힌, 추억 속의 철학자라면, 신세대 독자에게 그는 오늘날의 지적 담론을 이해하기 위한 먼 배경 중 하나, 이를테면 ‘기타 등등’ 속에 포함될 만한 나열의 대상 중 하나가 된 셈입니다.
그렇다면 왜 뜬금없이, 이제는 추억 속의 인물이 되었거나 아니면 익명에 가까운 인물이 된 철학자에 대해 이런 거창한 심포지엄을 기획하게 된 것일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런 의문을 품고 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일차적인 답변은 올해가 알튀세르가 사망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당대 프랑스 지성계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알튀세르는 1980년 11월 16일 정신착란 상태에서 부인을 목 졸라 살해한 뒤 여러 정신병원에서 요양생활을 하다가 1990년 사망했습니다. 따라서 저명한 철학자나 사상가를 기념하기 위해 탄생 몇 주년, 사망 몇 주년을 따지는 것은 널리 통용되는 방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알튀세르라는 철학자, 20세기 후반의 맑스주의를 대표하는 철학자 중 한 사람이 사망한 지 20주년이 되는 해에 그에 관한 심포지엄을 기획하는 일이 특별히 이상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이번 심포지엄을 마련하게 된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라면, 굳이 왜 알튀세르에 관한 심포지엄이냐 하고 의문을 가질 만한 사람들도 있을 듯합니다. 더욱이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는 그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나 그에 관해 무관심한 사람들만이 아니라, 그를 좋아하고 그의 사상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법합니다. 사실 이 후자의 사람들이 그런 의문을 품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지극히 정당하고 또 알튀세르 자신의 사상에 부합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철학은 자율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그 자체로는 무(無)에 불과하며, 철학은 소멸되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한다고 역설했던 사람이 바로 알튀세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생몰연대만을 이유로 그에 관한, 거창하다면 거창한 학술 행사를 기획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알튀세르 자신의 지적 원칙, 철학적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묻거니와, 왜 오늘날 이처럼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그에 관한 공동 논문집을 기획하고 심포지엄을 준비하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그것은 저를 비롯해서 기꺼이 이 기획에 참여할 뜻을 밝힌 여러 학자들이 암묵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생각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것은 알튀세르의 사상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상적 효력을 지니고 있고 현재를 사고하기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이 적어도 몇 가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사람들에 따라서 그러한 요소들이 어떤 것인가에 관해서는 당연히 이견이 존재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데올로기론이야말로 바로 그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들은 과잉결정 개념을 중심으로 한 변증법의 쇄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매우 독창적인 독해야말로 오늘날 가장 의미 있는 알튀세르 사상의 유산이라고 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알튀세르에 관한 공동 논문집과 이번 심포지엄에 참여해 준 선생님들은 그가 여전히 우리에게 무언가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고, 또 우리 역시 그의 사상에 관해 무언가 새로운 점을 밝혀낼 수 있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또한 이것은 저희들만의 생각은 아니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외국의 여러 학자들, 오늘날 사상계를 주도하는 상당수의 이론가들에게서도 이러한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증언을 인용해볼까요?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슬로베니아 출신의 이론가 슬라보예 지젝은 자신의 출세작인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 첫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우리의 첫번째 테제는 오늘날 지적 무대의 전경을 차지하고 있는 대논쟁인 하버마스-푸코 논쟁이 또 다른 대립, 이론적으로 훨씬 광대한 알튀세르-라캉 논쟁을 은폐하고 있다는 것이 되리라. 알튀세르 학파의 갑작스런 실추에는 무언가 수수께끼 같은 게 있다. 이는 이론적 패배의 관점에서는 설명될 수 없다. 이는 그보다는 알튀세르의 이론 내에는 마치 쉽게 잊히고 ‘억압’되어야 할 어떤 외상적 핵이 존재하기 때문인 듯하다.” 당시에는 신출내기 이론가의 다소 엉뚱한 도발처럼 여겨졌던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그 이후 꽤 오랫동안 지젝의 이론적 작업을 관통하는 핵심 주제 중 하나가 되었고, 지젝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점차 새로운 반향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실 1989년 당시만 하더라도 알튀세르와 그의 제자들 및 동료들의 작업은 현대 사상계의 무대에서 완전히 퇴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알튀세르 자신은 부인을 살해한 뒤 공적인 무대에서 자취를 감췄고 그의 제자들 중 몇몇(니코스 풀란차스, 미셸 페쇠)은 자살로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습니다. 70년대 영미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발리바르의 자본주의 분석이나 피에르 마슈레의 문학생산이론은 당시에는 더 이상 아무런 새로운 논의의 대상이 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젝의 예언적인 선언 이후 놀랍게도 알튀세르와 그와 함께 작업했던 철학자들의 사상은 다시 현대 사상계의 전면에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지젝과 발리바르, 자크 데리다, 주디스 버틀러 등의 작업을 통해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현대 사상의 가장 뜨거운 쟁점 중 하나로 부각되었습니다. 또한 알튀세르 사상의 영향을 받았고 이후에는 비판적인 대결을 통해 독자적인 사상의 경로를 개척한 자크 랑시에르와 알랭 바디우는 오늘날 프랑스와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이론계에서 가장 널리 읽히고 논의되는 철학자들입니다. 알튀세르의 사상의 가장 훌륭한 계승자라고 할 만한 에티엔 발리바르 역시 국민 형태 이론과 봉기적 시민권 이론, 시빌리테(civilité)의 정치철학 등을 통해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또한 포스트 맑스주의의 제창자로 유명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페의 정치철학은 알튀세르 맑스주의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알튀세르의 사상이 오랜 억압과 배제의 시련을 거친 끝에 이제 다시 부활하고 있다, 다시 한 번 알튀세르 사상의 전성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마치 무협지 같은 스토리를 늘어놓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늘날의 인문사회과학에서 제기되는 여러 가지 쟁점들을 해명하는 데서 알튀세르 사상의 요소들은 여전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알튀세르와 오랫동안 같이 작업했던 제자이자 동료이며 또 그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 중 하나인 에티엔 발리바르는 1996년에 출판된 『맑스를 위하여』 재판에 붙인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이제] 모든 맑스주의는 상상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들 중 일부, 서로 매우 다르고 사실은 매우 적은 또는 소수의 텍스트들이 대표하고 있는 몇 가지 맑스주의는 여전히 사고하고 행동하도록, 따라서 현실적 효과들을 생산하도록 할 수 있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나는 『맑스를 위하여』의 ‘맑스주의’가 능히 이것들에 포함된다고 믿는다.” 한마디 덧붙인다면, 여기에는 『맑스를 위하여』의 ‘맑스주의’만이 아니라 알튀세르의 다른 저작들, 예컨대 『자본을 읽자』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 국가장치들」 또는 『마키아벨리와 우리』의 ‘맑스주의’도 포함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심포지엄은 단순히 알튀세르 사망 20주년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의 사상의 위대함, 그의 맑스주의의 독창성을 찬양하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 이번 심포지엄의 목표는, 그의 사상의 여러 요소들 가운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치를 지니고 있고 여전히 현실적인 효과들을 생산해 낼 수 있는 주제들을 살펴보고, 알튀세르 사상과의 비판적 대결을 통해 독자적인 이론의 세계를 구축한 현대 사상가들의 작업 속에서 알튀세르 사상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또 어떤 식으로 지양되고 있는지 검토해 보는 것입니다.
좀더 궁극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목표는, 오늘날 알튀세르의 사상을 무관심하게 망각하거나 맹목적으로 배척하지 않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교조적으로 되풀이하거나 회고적으로 찬양하지 않으면서, 알튀세르의 사고 양식, 곧 맑스(주의)의 사고 양식을 다시 한 번 재개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고, 각자 나름대로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사고해 보려는 또 다른 목표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철학자로서, 맑스주의자로서 알튀세르의 가장 비범한 측면은 비교조적인 사고 양식, 가장 이단적인 방식으로 맑스주의를 쇄신하고 구원하려고 했던 그의 사고 양식에 있는 것 같습니다. 공산당의 정치적 사상 통제가 공공연히 이루어지던 시대에 그는 대담하게도 비맑스주의적인 사상의 요소들을 동원하여 맑스 사상의 핵심을 복원하고 맑스주의를 쇄신하려고 했습니다. 스피노자 철학을 원용하여(더욱이 그의 스피노자 해석은 당대의 맥락에서 볼 때 가장 이단적이고 가장 특이한 해석이었는데, 놀랍게도 오늘날 그의 이러한 해석은 현대 스피노자 연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과 구별되는 맑스주의 변증법을 사고하려는 시도나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스피노자의 상상계 이론을 통해 맑스주의적인 이데올로기론을 구성하려는 시도, 바슐라르나 캉길렘에 근거하여 맑스주의 인식론을 쇄신하려는 시도 등이 그 단적인 사례들입니다. 그의 사상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 그것은 어쩌면 그의 사상이 지닌 이러한 이단적 성격 때문일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알튀세르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고해 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그의 사상을 교조적으로 되풀이하거나 단순히 찬양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알튀세르에 대한, 알튀세르의 사상에 대한 가장 큰 배반이 될 것입니다. 알튀세르의 사상은 비판적 대결을 거치지 않고서는 이해되거나 수용될 수 없는 사상, 새롭게 변용되고 굴절되는 것을 통해서만 계승되고 재개될 수 있는 사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스피노자 연구자인 피에르-프랑수아 모로(Pierre-François Moreau) 교수는 젊은 시절 알튀세르의 파리 고등사범학교 제자 중 한 사람이었는데, 그는 서강대 서동욱 교수와 제가 편집을 맡아 출간을 준비 중인 『스피노자와 현대철학』이라는 제목의 공동 논문집을 위해 마련된 대담에서 “이제 우리가 알튀세르의 이런저런 분석에 더 이상 동의하지 않을 수는 있지만, 적어도 그는 우리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의 사망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번 심포지엄이 아무쪼록 우리 모두 다시 한 번 그에게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가 되기를, 그에게 사고하는 법을 배운 사람들에게 또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 자리가 되기를, 서로가 서로에게 사고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자리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진태원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