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구로사와 회고전 부대 행사 중 하나로
<카게무샤>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로 데뷔한 이래 그의 작품에 꾸준히 출현한
유이 마사유키 대담이 있었다.
구로사와에 얽힌 여러 가지 재미있는 얘기를 많이 해 줬는데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
구로사와는 여름에 겨울 장면을, 겨울에 여름 장면을 찍는 걸
그 반대 경우(즉 제철에 촬영하는 것)보다 더 선호했다고 한다.
까닭인즉슨, 여름에 여름을, 겨울에 겨울을 찍게 되면
당연히 기대하는 장면이 나오겠거니 생각하여 느슨해지기 쉬운데
그 반대 경우가 되면 무엇이 여름을 여름답게, 겨울을 겨울답게 하는지 고민하게 되며
원하는 효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는 것.
내면이나 본질 따위가 아니라 '외양'의 중요성을 역설했으니
그는 천상 예술가다. 거기다 한 마디를 덧붙인다면
그를 탁월한 유물론자라고 부를 수도 있으리라.
정신에 대해 물질의 '존재론적' 우위를 주장한다는 뜻에서가 아니라
군주의 정치적 실천의 요체로 외양을 지목한다는 마키아벨리적 의미에서 말이다.
Posted by 아포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