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올해의 영화

 

단연코,

내가 본 올해의 영화는 Mysterious Skin (2004, Gregg Araki)이다. 

한 사람의 감독이 성숙한다는 것은,

그리하여 다시 한 걸음 더 전진한다는 것은,

서슬 푸르게 날이 선 칼을 내리고 손 내미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왜 서로 칼을 겨누고 있는지 물어보는 일은 이제

너무 지겹다는 것을,

그 답을 발견하더라도, 그것만으로

우리는 아무 것도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기원에 대한 매혹, 그 이데올로기를 뿌리치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 남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기꺼이 상대가 겨눈 칼을 맨 손으로 쥐겠다고,

혹은 내 칼을 내 품으로 끌어 안아야 한다면 끌어안겠다고.

우리는 살아 남을 것이라고.

 

외국, 낯선 거리의 어느 극장에서,

숨죽이며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눈치채지 못했다. 

몇 일 전인가,

프랑소와 오종이 성숙했다고 떠들던 타임 투 리브를 보다가

알아차렸다.

애러키는 전진하고 있었다.

 

닥치라 그래.

우린 이렇게 또 살아남을 꺼야. 

 

이렇게 중얼 거리며.

진보블로그 공감 버튼트위터로 리트윗하기페이스북에 공유하기딜리셔스에 북마크

Posted by 아포리아

2008/10/14 15:49 2008/10/14 15:49
Response
No Trackback , a comment
RSS :
http://blog.jinbo.net/aporia/rss/response/2

Trackback URL : http://blog.jinbo.net/aporia/trackback/2

Comments List

  1. 아포리아 2008/10/14 15:51 # M/D Reply Permalink

    오래 전 한 친구가 쓴 글이다. 그 글에 나는 다음과 같은 생각을 붙였다:
    이 곳에서 계속 엇갈리던 그와, 역설적이게도 내 인생에서 가장 희귀할 시공간에서 마주쳤다. 나는 그간 그에게 궁금했던 질문들을 던졌고, 그 중 가장 궁금했던 것은 이 영화에 관해 그가 붙인 글이었다. 철학의 재미, 또는 끔찍함 중 하나는 반성을 그칠 수 없다는 데 있다. 유물론적 테제도 관념론적 효과를 낼 수 있고, 그 역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라는 희대의 유물론자의 테제를 따를 때, 특히 '원인에 의한 인식'이라는 테제를 항상 내 주장의 결론으로 내세울 때 나는 가끔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믿었는지 모른다. 물론 나는 여전히 인식의 힘을 믿으며, 스피노자의 원인 개념이 관념론적인 기원 개념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인식의 힘에 '고유한 효과'이며, 원인 개념과 기원 개념의 차이를 효과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난 그렇게 했을까? 그러기는커녕 유물론적 이론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효과에 대한 비사고의 알리바이로 삼지는 않았을까? 이 영화에서처럼 그들 같은 주체들이 나에게 '선사'되었을 때, 따라서 항상 기원도 결말도 아닌 '중간'에서 윤리와 정치가 시작될 것이다. 그 불순함과 대면하는 것을 돕는 한에서 '원인에 의한 인식'은 비로소 유물론적이 될 것이다.

Leave a comment
« Previous : 1 : ... 170 : 171 : 172 : 173 : 174 : 175 : 176 : Next »

블로그 이미지

당연하잖아 비가 오면 바다 정도는 생긴다구

- 아포리아

Tag Cloud

Notices

Archives

Calendar

«   2024/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Site Stats

Total hits:
288629
Today:
106
Yesterday:
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