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어떤 오역에 관한 지적

2005년 쯤이었나,

더듬더듬 불어를 읽기 시작하고, 영어를 조금 읽을 수 있게 됐을 때였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발리바르의 '인권의 정치란 무엇인가'의 영역본을 보았는데,

그러다 국역본 관련 대목에서 꽤 중요한 오역을 발견했다.

공부 삼아서 그 오역 전후의 문장이 왜 그렇게 나오게 되었을까 에 관해서

개인 미니홈피에 적어 두었다가

아는 사람들이 그 글로 세미나를 한다고 해서

참고하라고 내 글을 그 클럽 게시판에 올린 적이 있다.

 

그 글을 번역하신 분이

내가 그의 번역이 오역 투성이라고 비난했다고 말했다는데

그 얘기를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기억나지 않았다. 단 하나 있다면 위의 사례인데,

글쎄, 내가 그 글을 다시 읽어 보았지만 별로 비난은 아니었고,

또 그를 욕보이려고 여기저기 퍼뜨린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오역에 관해서 지적할 수 있는 거 아닌가?

게다가 폭력/비폭력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따라서 큰 정치적 효과를 가질 수 있는

이런 논변에 관한 오역 지적은, 다시 생각해 봐도,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다. 

 

어쨌든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대단한 권위자도 실수를 할 수 있고

따라서, 적어도 중요한 대목의 경우에는, 원문을 직접 읽고 내 머리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

는 교훈을 남긴 경험이었다. 뭐 이런 태도를 '이론주의'라고 부른다거나,

'활동가의 본분'을 넘어선 것이라고 말한다면,

그런 평가의 타당성 여부에 관해서는 보는 이들의 판단에 맡기는 수밖에.

얘기가 나온 김에, 그 때 내가 쓴 글을 다시 옮겨 놓는다.

 

----------------------

 

안녕하세요.
 
<인권의 정치란 무엇인가>를 하신다니,
제가 전에 이 글 마지막(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만) 각주 오역에 관해 써둔 게 생각나네요.
이거 세미나할 땐 항상 이 문구가 문제가 됐지만 대개 결론이 나지 않은 채 끝났었는데
혹시 그곳에서도 그러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적어봅니다.
별로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니, 그냥 적어둔 영문판을 참고하시는 용도로 사용하시면 될 것 같아요.
참고로 http://www.generation-online.org/p/fpbalibar1.htm
에 가시면 영문판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문제가 되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별도로 검토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은 이제 인권의 정치의 아포리들 전체를 내포한다. 그것은 도덕주의, 법률주의의 무덤이며 또한 그것들의 추상적 전도이다. 부의 불비례성이 적수를 절멸시킬 수 있는 능력의 불비례성과 전에 없이 짝을 이루는 세계에서, 그 주된 경계(남-북이라고 불리우는 것, 또는 달리 불리우기도 하는 것 ― 왜냐하면 '남'은 어디에나 있기 때문에)가 인류를 폭력을 항상적으로 감수하는 인류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는 인류라는 두 개의 인류로 분리시키는 경향을 갖는 세계에서, 인권의 정치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비폭력'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이제 그것은 그 유명한 귀절에서처럼 폭력(대중의, 피지배자의)은 "새로운 사회를 배고 있는 모든 낡은 사회의 산파"라는 관념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
 
영역본 관련 구절은 다음과 같다:
"I will have to come back to this question: in a sense it contains, in its turn, the totality of the aporias of a politics of the rights of man. It is the tomb of moralism and legalism as well as of their abstract reversals. In a world in which the disproportion of wealth goes hand in hand, now more than ever, with that of the capability of annihilating the adversary, a world in which the principal frontier (whether it is called North/South or otherwise, for the "South" is everywhere) tends to separate two humanities, one which is constantly subjected to violence and one which is constantly girding itself against it, a politics of the rights of man cannot be "nonviolent" in principle. Nor however can it fail to go beyond the idea that, according to the famous saying, (the) violence (of the masses, of the oppressed) is "the midwife of every old society which is pregnant with a new one" (Capital, vol. I, 916)..."
 
(영역본이 맞다고 가정할 때)
국역본은 세 부분을 오역함으로써
위 문구 전체를 수수께끼로 만든다.
 
1. 영역본에 따르면 the tomb에 걸리는 것은
'(of) moralism and legalism'일 뿐만 아니라
'(as well as of) their abstract reversals'이다.
반면 국역본은 이 대목을
"도덕주의, 법률주의의 무덤이며 또한 그것들의 추상적 전도이다"라고 번역함으로써
인권의 정치의 아포리가 도덕주의, 법률주의의 추상적 전도라는 의미를 낳는다. 하지만 원문은
인권의 정치의 아포리가 도덕주의, 법률주의 뿐만 아니라
그 추상적 전도[곧 '대항폭력주의' - 이번에 추가]도 불가능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봐야 한다.
이 첫 문장의 구조는 이후 논변 전반의 구조를 집약하는 것인데
첫 문장을 오역함으로써 이후 논변도 오역의 위험을 안게 된다.
아래서 이를 살펴볼 것이다.
 
2. 가장 결정적인 오역은 역시
"인권의 정치라는 것은 원칙적으로 '비폭력'일 수밖에 없다"
는 대목이다. 영역본에 따르면 이 대목은
"a politics of the rights of man cannot be "nonviolent" in principle",
즉 "원칙적으로 '비폭력'일 수 없다"이다. 불어 원문은 다음과 같다:
"une politique des droits de l'homme ne peut être "nonviolent" par principe",
즉 영역본과 같다.
이런 오역은 사후적으로 앞 문구에 대한 해석을 규정한다.
국역본은 부의 불비례성이 절멸능력의 불비례성
을 동반하는 한에서 현재의 대항폭력은 어떻게 하더라도
기존 폭력과 겨룰 수 없기 때문에 더 이상 '전술적' 가치가 없고
오히려 저 비대칭적인 폭력 사용의 빌미만을 제공함으로써
의도와는 정반대의 효과를 거둘 뿐이라는 뉘앙스를 준다.
(그리고 여기에 분명 얼마간의 진실이 있기 때문에
오역도 가능했고 그 수용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본래 번역은
폭력의 과잉이 계급투쟁을 점점더 깊이 규정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것을 압도함으로써
'인권의 정치'가 벌어지는 지형을 바꿔놓는다는 뉘앙스이며
이는 결국 '도덕주의, 법률주의'적 방식으로 대항폭력을 불법화
하려는 부르주아의 시도에 대한 비판이다.
이는 스피노자적인 노선,
즉 대중들의 폭력을 자명한 것으로 전제하지 않고
국가 또는 제도와 연결시켜 사고하려는 노선과
완전히 일치할 뿐만 아니라
직접적으로는 앞 문장에서 제시한 테제('무덤')를
현 정세와 연결시켜 전개시키는 것이다.
반면 국역본은 발리바르의 이전/이후 사고와 대립될 뿐만 아니라
도덕주의, 법률주의 비판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옹호하는 것처럼 들리기까지 한다.
(사실 국역본의 뉘앙스야말로
대항폭력을 비판하고 비폭력을 주장하는 이들이 매양 말하는
'현실적 근거'가 아니던가?)
 
3. 국역본은 이 문장 다음을 '이 때문에'라는 접속사로 잇는다.
반면 영역본은 'Nor however'라고 하면서 역접을 사용한다.
원문은 여기서 'cependant'을 사용하는데
이는 '그렇지만'이란 뜻으로 '이 때문에'의 의미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이는 그러므로 우선 자구적인 오역이다.
(그러니까 'however'를 'so'라고 오역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눈에 뻔히 보이는 오역이 생겨났을까?
그건 물론 앞 문장을 '비폭력적일 수 밖에 없다'라고 번역했고,
뒷 문장이 나이브한 '대항폭력'론을 비판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반면 원래 문단의 논변 구조는
1) 인권의 정치의 아포리는 도덕주의/대항폭력론 모두의 무덤
2) 도덕주의 비판
3) 나이브한 대항폭력론 비판(이 문장 이하에서 본격화될)
이며, 그런 한에서 2)와 3)이 'cependant'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전반부 문장을 오역한 것이 'cependant'의 오역이라는
'사후복수'로 나타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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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포리아

2009/02/10 17:37 2009/02/10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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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marishin 2009/02/11 01:31 # M/D Reply Permalink

    원 번역자로서는 “오역투성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 느낄 수밖에 없었겠군요.^^ 정말로 너무나 엉터리 번역이라는 것을, 조목조목 지적하셨으니까요. 지적하는 사람은 그냥 별 뜻 없이 했더라도, 원 번역자는 자신이 얼마나 엉터리로 번역했는지 '찔리게' 마련이거든요. (이건 제가 잘 압니다.^^)

    그리고 지적하신 부분에 대해 거의 동의하지만 (불어가 아니라 영어 번역본을 기준으로 해서라는 한계가 있지만), 마지막 부분은 조금 아쉽습니다. “관념에 머물러 있을 수 없다”는 마지막 부분은 느낌이 살지 않고 오해의 소지도 있군요. “관념을 (틀림없이) 넘어선다.” (영문 기준으로 보면, cannot fail to 는 '틀림없이 -하다') 이것이 조금 강하다면 “관념을 넘어설 수 없는 건 아니다” 정도가 좋아 보입니다.

    세상이 두개의 인간으로 나뉘는 현재 상황에서 인권의 정치는 원칙적으로 비폭력적일 수 없지만, 비폭력적일 수밖에 없다고 해서 그것이 “기존의 대항폭력론”을 정당화해줄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 이것이 바로 '인권의 정치의 아포리아'다, 결국 이런 이야기 아닌가요?

  2. 아포리아 2009/02/11 13:17 # M/D Reply Permalink

    ㅋ 그런가요. 그 점은 많이 생각해 보지 못했네요.
    마지막 부분에 관해서는, 오역까지는 아닌 것 같아서 자세히 다루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확실히 뉘앙스 차이는 있지요.
    끝에서 말씀하신 부분에 관해서는, 전후 맥락을 보면 인권의 정치의 아포리아는 결국 폭력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이고, 특히 오늘날의 정세를 감안하면 (그에 관한 전통적인 답변이었던) 비폭력이나 대항폭력 다 답이 될 수 없다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대항폭력에 관해서는 위에서 인용한 부분 다음에 따라나오는 내용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니까 참고하시면 좋겠네요.

  3. 모험가 2009/02/13 14:08 # M/D Reply Permalink

    불어를 몰라서 그렇긴 하지만 결정적인 오역부분이라는 부분은 오인으로 인한 오역일수도 있지 않을까요? 영어 "cannot be"를 우리가 무심코 "cannot but be"로 오인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서는 이런 오역이 해명이 안되는 것 같아서 말이지요. 그리고 발리바르의 글 전체가 비폭력 대항폭력을 다 비판하고 있어서 이런 오인이 있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cannot but be "nonviolent""가 제대로된 영어인지는 모르겠으나 흔히 한국사람들이 "cannot but"을 "~~하지 않을 수 없다"로 암기하고 있으니까요. 불어에서도 이런 오인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글고 맨 앞 부분도 "of"를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인데, 이것도 확률이 대단히 낮긴 하지만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이네요. 여기서도 "도덕주의 법률주의의 무덤"과 "이것들의 추상적 전도들"(무덤과 전도라는 단어가 또 오인을 하게 만들 수도 있지 않나요?)을 등치하는, 혹은 유사한 내용으로 파악하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보이네요.
    마지막 부분은 뒷 내용을 참조해서 번역을 하면 "그러나 --라는 생각을 반드시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정도가 어떨까 생각이 드네요. marishin님 말씀대로 nor는 not의 내용으로 앞에 튀어나가 있는 것이지요.
    결국 내 추측이 맞다면 두어차례의 오인 혹은 오해로 인한 오역 끝에 마지막 문장(접속사는 빼고)의 내용이 크게 틀리지 않게 번역이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는 처음 지적한 오인이 주된 요인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은 발리바르 내용전개가 비폭력 대항폭력 양자 다를 비판적으로 언급하고 있어서 이런 오인이 있지 않았을까 추측을 해 볼 수 있다는 거지요. 물론 제 추측이 틀렸을 수 있고 번역자의 오류를 감싸는 행위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지요.
    그러나 우리가 살면서 오인 오해의 가능성은 무수히 널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오인 오해는 운동하는 사람들의 대적관계에서도 종종 나타나지요. 적들의 행위에 대해서 무조건 나쁘게 해석할 자세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대적 관계에 있어서는 우리가 오인 오해를 했다 하더라도 "아님 말고"하고 넘어갈 수 있고 자주 그렇지요. 그런데 이런 버릇이 우리 내부에 와서, 혹은 타 정파에 대한 태도에 있어서도 종종 나타나지요. 그리고 이전에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았던 사람들에 대해서도 그렇지요. 그러나 전 역지사지 할 필요, 가능한 오인 오해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는 적에 대해서도요. 왜냐하면 적에 대한 오인 오해도 그릇된 전술을 동원하게 만들어 우리의 운동에 손실을 끼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암튼 전 같이 운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요즈음처럼 운동세력이 사분오열되어 있고 지리멸렬한 상태에서는 타 정파나 논쟁 상대방에 대해 최대한의 배려,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특히 인터넷에서의 발언은 조심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요. 흔히들 "뒷담화"로 오해될 만한 발언들이 많잖아요.
    물론 어떤 양자의 관계에 있어서 배려를 해야 할 사람과 배려를 우선적으로 받아야 할 사람의 구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선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이 먼저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려는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억울하지만 같이 운동을 잘 해 나가기 위한, "우선적으로 배려를 받아야 할 사람"의 지혜일 수도 있거든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관계도 비슷한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오역논란을 계기로 제가 하고 있는 말인즉슨 오인 오해를 줄여보자, 그래서 꼬인 관계를 풀어보자, 그래서 운동을 같이 해 나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데 너나없이 노력하자는 ‘부처님 가운데 토막’같은 이야기이네요. 그 동안 꼬이고 꼬인 관계 때문에 겪어야 했을 가슴앓이를 제 삼자는 잘 모르니까 이렇게 속편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요. 부디 너그러이 보아주시길. 기럼...

  4. 아포리아 2009/02/13 21:01 # M/D Reply Permalink

    음. 오인이 아닌 오역의 이유가 있는 건가요? 사실 오인을 한 게 아닌 데도 오역을 한 거라면, '왜곡'을 한 건데,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인이겠죠. 사실 그럴 만한 이유도 있습니다. 원래 불어 원문은 'ne peut être nonviolent'인데, 불어에서는 부정문을 만들 때 동사 전후를 'ne ~ pas'로 감쌉니다. '나는 -가 아니다'라고 하면 'Je ne suis pas -' 이런 식이죠.
    그런데 이 경우는 'pas'가 없습니다. 'ne ~ pas'에서 ne만 쓰는 경우는 제가 아는 한에서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pas가 생략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ne가 허사인 경우입니다. 전자는 oser, cesser, pouvoir, vouloir, savoir 동사 등과 함께 쓰일 때입니다. 후자는 접속법과 함께 쓰일 때인데, 여기서 ne는 부정의 의미를 잃습니다.
    그런데 'peut'는 'pouvoir' 동사의 3인칭 단수 현재형입니다. 따라서 전자의 경우인 것이지요. 저는 왜 이런 오역이 발생했을까 생각하다가, 혹시 ne를 허사로 본 것이 아닐까 하는 짐작까지 해 봤는데(말하자면 영어에서 'I do play' 식으로), 그러려면 'peut'가 아니라 'puis'가 되어야 합니다.
    영어의 'cannot be'를 'cannot but be'로 본 게 아닐까 하는 짐작을 하셨는데, 아마 불어를 국역했을 테니 그렇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본을 번역했는지 모르니까, 그런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순 없겠지요.
    사실 불어 문법을 독학으로 공부한 경우, pouvoir 동사와 같이 쓸 때 pas가 생략된다는 걸 모르는 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저 역시 이 문장을 해석하면서 그런 문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만 '비폭력'에 관한 발리바르의 이런저런 입장을 고려할 때 아무래도 이상하고, 또 개인적으로도 동의할 수 없는 입장이라서 의혹을 품고 있다가, 나중에야 원문을 보고 오역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 오역은 조금 심각한 오역입니다. '인권의 정치는 원칙적으로 비폭력일 수밖에 없다', 심지어 '원칙적으로' 그렇다니 이 얼마나 강한 주장입니까?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발리바르가 맛이 갔다'는 식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저 대목이었고, 저 역시 저 대목을 변호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세미나 커리를 짤 때 저 글은 원칙적으로 누락시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쟁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오역이 있으면 그걸 지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구의 번역이 됐든 말이지요. 더구나 '번역자의 개량적인 사고 방식이 필연적으로 이런 오역을 낳았다' 뭐 이런 식으로 비난한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오인에 관한 지적을 한 것일 뿐입니다. 혹시 제 글이 너무 무례한가 싶어서 다시 한 번 살펴 봤지만, 글쎄요 제가 쓴 글이라서 그런지,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습니다. 만일 '뒷담화'를 할 요량이었으면, 뭐 이런 식으로 썼겠죠. 불어의 기본 문법도 모르고 이 따위로 번역하다니, 이러고도 학자냐 따위로. 하지만 저 나름대로는 최대한 논변의 형태로 쓰려고 했고,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뭐 별 것도 아닌 거 너무 정색하고 글을 써서 망신 주려고 하는 거냐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할 수 없습니다만, 글쎄요 비판을 하려면 근거를 갖춰야 한다는 그 분의 말씀을 너무 곧이곧대로 실천한 것일까요...

  5. 모험가 2009/02/14 02:36 # M/D Reply Permalink

    앞의 불어 문법 내용은 잘 모르겠고요... 그런데 우리같은 아마추어들 같은 경우 오역은 대개 문법이나 내용를 모르고 번역을 해서 오역을 하지요.
    그리고 오인에 의한 오역이라면 저라면 가볍게 직접 문의를 하거나 지적을 하는 게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데요. 전혀 모르는 분도 아니잖아요. 물론 스스럼없이 얘기할 수 있는 관계는 아니어서 일정한 어려움은 있었겠지만요. 그래도 유사한 생각을 가지고 운동을 하는 분이잖아요.
    암튼 사람들 사이에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겉으로 표현되지는 않을지라도)는 너무 많다, 이런 것을 가능한 한 줄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노력은 아무리 많이 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제가 이런 이야기를 여전히 약간 퉁명스럽게(?) 하고 있는 이유는 아포리아님이 저를 오해하지 않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라는 것 아시지요! 그럼...

  6. 오역 2009/02/16 18:57 # M/D Reply Permalink

    간혹 왜곡성 오역도 보입니다. 예컨대 발리바르, “공산주의 이후에 어떤 공산주의가 오는가?”[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과 소련 사회주의], 공감 68-69쪽를 보면,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이런 해석이 무효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저작에 특징적인 사고의 운동이 [바디우 식으로 말하자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임을, 즉 어떤 분업도 어떤 개인성의 ‘추상화 과정’도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는 공동체, 공동의 요소의 재확인에 머무는 것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본래의 문장은

    Cette interpretation n’est pas restée sans effets. Mais elle ne doit pas nous faire oublier que le mouvement de pensée caractérisque des oeuvres de Marx est de faire un pas de plus, de façon à ne pas rester à la reaffirmation de la communauté, de l’élément d’être-en-commun ou de transindividualité qu’aucune division du travail, aucun “process d’abstraction” de l’individualité ne peut complètement abolir.

    따라서 ‘초개인성의’라는 말이 빠져있습니다. 복구하면,


    <이런 해석이 무효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 때문에 마르크스의 저작에 특징적인 사고의 운동이 [바디우 식으로 말하자면]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임을, 즉 어떤 분업도 어떤 개인성의 ‘추상화 과정’도 완전히 폐지할 수는 없는 공동체, 공동의 요소, 혹은 ***초개인성의*** 재확인에 머무는 것은 아님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여기서 이러한 누락을 단순한 실수 이상으로 볼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문장 뒤에 이어지는 부분에서 역자가 [ ] 에 초개인성에 관련된 자신의 말을 일부러 삽입해서 넣고 있기 때문입니다.

    <‘추상적’ 개인주의에 대한 이런 비판의 반대쪽에서 항상 중요한 것은 개인성의 재건, 공동의 존재 그 자체가 필연적이게 만드는 개별성의 무한한 발전에 도달하는 것이다. 따라서 극한적으로 사고한다면, [‘구조주의적’인 의미에서 초개인성(transindividualité)으로서 사회화를 본질로 하는] 공산주의는 또한 하나의 개인주의다.>

    여기서 발리바르는 개인주의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역자는 반대로 개인주의를 지우면서 초개인성을 강조합니다. 즉 발리바르가 공산주의는 하나의 개인주의라고 강조하고 있는 곳에서, 역자는 공산주의가 “초개인성으로서의 사회화”를 “기반”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심지어 “본질”로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리바르가 여기서 개인성과 초개인성을 구분하면서 개인성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말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초개인성의 사회화를 본질로 하는 공산주의는 또한 하나의 개인주의’라는 이상한 문장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게 다가 아닙니다. 다시 뒤에 누락된 부분이 또 있습니다.

    Il est donc essentiel de penser à la limite que le communisme est aussi un individualisme (et en un certain sens nous sommes acculés à une conception négative : il n’est ni communisme ni individualisme, ces noms n’étant que des abstractions et des approximations relatives à un contexte determiné).

    여기서 괄호 바깥의 문장도 여전히 번역이 잘못되었지만 (‘본질적이다 /핵심적이다’를 본래의 발리바르 말에서 뺀 대신 역자는 ‘초개인성으로서 사회화를 본질로 하는’을 [ ] 괄호 속에 역자 삽입으로 넣고 있습니다), 불어원본의 괄호 안에 있는 말이 번역에서는 완전히 빠져있습니다. 다시 번역하면,

    따라서 공산주의는 또한 개인주의라고 극한에서 사고하는 것이 본질적/핵심적이다(그리고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그것은 공산주의도 아니고 개인주의도 아니라는 부정적인 인식의 궁지에 몰린다. 이러한 이름들은 단지 추상들이거나 규정된 맥락에 대한 상대적인 접근들일 뿐이다.)

    하지만 이러한 오역들은 단순한 불어 이해 문제가 아니라고 보이기에 문제가 더 심각한 것 같습니다.

  7. 모험가 2009/02/19 11:51 # M/D Reply Permalink

    늦었네! 글쎄, 윤선생은 발리바르와 출판 전 원고를 교환하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혹 출판 전 원고를 번역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자세히 안읽어서 모르겠지만(읽어도 모를수도...) '개인주의'를 완전히 뺀 것도 아니고 내용상 크게 다른가 싶네. 그리고 번역에서 완전히 빠져 있다는 부분은 각주에 있는데?! 이것도 혹 원래 원고에는 각주에 들어간 것 아닌가? 모르겠네!
    글고 번역을 문제삼자면 누구나 문제삼을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보기엔 번역을 아주 정교하게 하는 것 같은 진태원씨(그래서 남들 번역문제를 많이 지적하지) 번역에 대해서도 누군가 마구 지적해 놓은 것을 보았고, 아포리아가 언제 기관지에 번역한 것도 내가 보기엔 군데군데 문제가 있어 보이더라고. 물론 내가 틀렸을 수도 있지. 암튼 (사소한?) 문제들을 눈감자는 게 아니라 동지적 차원에서 최대한 오해를 하지 않고 이해해 보려는 노력을 해야 하고 문제가 진짜 있을 때라도 사근사근하게 지적해야 한다는 것이지. 그것으로 인해 사이가 틀어지지 않게 말이야. 이렇게 말하니 난 좋은 놈, 넌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그럴 의도는 아니고... 현재 벌어진 틈에 대해 누가 더 책임이 큰 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벌어진 틈을 '파경'으로까지 몰고 가면 안되지 않냐는 거지. 그런 점에서 내가 오해하고 잘못한 것은 없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는 거야. 암튼 이것은 이정도로 하고 만나서 얘기하자고. 그럼...

  8. 아포리아 2009/02/19 12:33 # M/D Reply Permalink

    앗, 저 위 글은 제가 쓴 게 아닙니다. ㅋ 위 글에 관해서는 저도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고, 문제가 되는 번역본도 지금 수중에 없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가 어렵네요.
    새로 말씀하신 것에 덧붙이자면. 전 그게 누가 됐든, 심지어 오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자의 번역에 관해 문제삼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같이 초짜들 번역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다만 그 지적이 '비난'이냐, '비판'이냐 문제가 있을 텐데요. 제 지적(그것도 개인 홈페이지 및 특정 클럽 지인들과 공유한)을 비난이라고 역자가, 그것도 책으로 출판해서 말했기 때문에, 제가 지적한 내용이 무엇이고, 그 논조가 과연 비난인지에 관해 '변론'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저 개인에 관해서는 이미 '파경'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 나온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굳혔습니다. 어떻게 평가하실지 모르겠지만, 사이가 틀어지지 않게 하는 것에 관해서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맘껏 뭘 얘기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저에게도 명예라는 게 있고, 어쩌면 지금까지 살면서 성취한 건 그것밖에 없습니다. 그게 (제가 느끼기에는) 부당하게 비난받는 상황에서, 동지들보고 저를 옹호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변론권'을 행사하겠다는 것까지 계속 자제하라는 것은 너무 불공평합니다. 더구나 어디 공적 게시판에 올린 것도 아니고, 제 개인 블로그에 이 정도 변론을 올리는 것에 관해서는, 동지들이 충분히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운짱님도 제 처지를 잘 이해하고 계시고, 이번 글도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쓰셨다는 거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약간 자조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미 '버린 몸'입니다. 이런 거 안 쓴다고 역자와의 관계가 개선되거나 제 처지가 나아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마저 문제가 되고 전체에 긴장을 거는 거라고 말한다면, 제 거취를 좀 더 깨끗이 하겠습니다. 뭐 이미 작년 이후 마음은 대략 정리한 상태입니다. 제 거취를 더 깨끗이 한다고 제가 운동을 안 할 것도 아니고, 동지들을 (다른 방식이겠지만) 만나지 않을 것도 아니니, 개인적으로 큰 미련은 없습니다.
    어쨌든 앞으로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한에서, 제 의견을 종종 쓸 생각입니다. 논조나 문체는 오해를 사지 않게 계속 고민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그러셨던 것처럼, 기탄없이 의견 밝혀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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