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인터랙티브 <당신은 특권을 갖고 있나요? 차별을 받고 있나요?>
경향신문 신년기획 중 하나인 <가장 보통의 차별>은 그간 차별을 말해온 익숙한 방식을 벗어나 다른 이야기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점에서 매우 훌륭한 기획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커버링'을 키워드로 삼은 첫번째 기사도 매우 인상적이었고요. '특권과 차별'을 키워드로 삼은 두번째 기사도 나름 의미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어요. 그건 기획에 대한 것이라기보다 우리가 차별을 이해하는 방식에서의 어려움에 관한 것에 가까운데요. 그런 점에서 더 많은 분들과 고민을 나눠보고 싶어서 끄적거려봅니다.
1. 차별을 받고 있다는 인식은 차별의 실제와 차이를 보이곤 합니다. 차별이 너무 당연하게 여겨지는 상황일수록 자신이 차별을 받는다고 인식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있거든요. 차별 경험이 많을 것이라 여겨지는 장애인, 성소수자 집단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차별받은 적 없다는 응답이 꽤 나온다거나, 성차별이 심각하다고 응답하는 여성들이 본인이 차별 당한 경험이 있냐고 물으면 응답률이 낮아지는 연구결과가 종종 나오는 이유가 그것이죠. 차별 받은 적 있다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응답하게 되는 건 실제로 특권적 위치에 있어서 차별경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지만 어떤 경우는 너무 심각한 차별적 환경에 놓여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차별의 실제와 주관적 차별 경험 사이에 놓인 간극이 더욱 주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경험들을 '차별'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촉진하는 것부터가 차별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과제가 되는 거죠.
2. 특권과 차별은 대립하는 개념일까요? 누군가 신경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누리게 되는 유리한 조건이 특권이라면 그것은 가지는 것이기보다 누리는 위치일 것입니다. 즉 특권 역시 구조적 차별의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지 차별의 원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 특권을 가지는 만큼 차별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차별이 존재하는 만큼 누군가는 특권적 위치에 누군가는 권리가 박탈되기 쉬운 위치에 놓이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신의 특권적 위치를 알아차리는 것은 차별의 구조를 알아차리는 것과 같은 효과를 갖습니다. 그런데 '특권'에 대한 이야기는 '차별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는 성찰로 흔히 이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특권은 어떤 위치이므로 특권을 내려놓을 수도 없고 개인이 주의하는 것으로 차별이 해소될 수도 없습니다. 물론 알아차리는 만큼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차별경험들을 줄일 수는 있겠지만, 많은 차별경험들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넘어선 구조에서 발생합니다. 조금 다른 말로 하자면, 차별받는 것은 언제나 개인(들)-즉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경험-이지만 차별'하는' 것은 개인(들)을 넘어서는 수준에서 이뤄지는 일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 차별당할 수도 있지만 할 수도 있다는 말은, 참 맞는 말이면서도 마치 차별 '당함'과 '함'이 동등한 수준에서 발생하는 문제처럼 여기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위험한 구도이기도 합니다. 특히 소수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더 예민하고 더 성찰적이기 쉽다는 점에서도요. '차별'이라는 말이 품은 여러 층위의 문제들을 차차 구분해서 사용할 필요도 있을 듯합니다.
이런 고민들은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너무 중요한 고민인데요, 어떻게 더 효과적으로, 간명하게 말할 수 있을지 늘 고민입니다. 경향신문에서 준비한 인터랙티브에 직접 참여해보시고 혹시 비슷한 고민이나 또다른 고민 드시면 많이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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